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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34코스/묵호역~한국여성수련원 입구-옥계송림(玉溪松林) 본문
[해파랑길]34코스/묵호역~한국여성수련원 입구 |
2006년 6월. 우리는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에 도전 중인 부부 대간꾼이었다. 백두대간 종주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강원도 진부령까지 이어진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온전히 두 발로 걸어내는 대장정(大長征)의 산길이다.
도상거리 600여 km, 실거리 800여 km에 이르는 장거리 산행을 부부가 함께 도전함은 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할 정도의 무수한 난관을 뚫어야 하는 일이라 때로는 부부 사이를 곤란하게도 만들지만, 전체적으로는 돈독하고 친밀한 전우애를 갖게 만든다.
우리처럼 부부가 함께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사례는 당시나 지금이나 꽤 드문 케이스였는데, 같은 동지로 해리님 부부가 비슷한 페이스로 대간 종주에 도전 중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산길을 부부가 함께 손잡고 헤쳐나간다는 동료의식 강하여 그들 부부와는 공감대가 많았던 터라 의기투합하여 몇 구간 동반하여 종주길에 나서기도 하였다.
그해 6월에 우리 두 부부는 임계와 동해를 잇는 구절양장의 백봉령 고갯마루를 출발하여 삽당령까지 이어진 산길을 함께 걸었다.
자병산, 생계령, 고뱅이재 등 무수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18.5km의 마루금을 오르내렸는데, 늘 둘이만 걷던 산길을 동지 부부와 함께 걷자니 오손도손 얘기꽃도 피어나고 맛난 음식도 나누며 꽤 화기가 애애하였다.
그러다 산행 막바지 피로가 최고도에 이를 즈음 암벽이 병풍을 두른 듯 우뚝 우뚝 솟은 '석병산(石屛山)'을 만났다. 1055.3m의 높은 암봉으로 이뤄진 석병산은 오후 햇살을 받아 황금빛이었는데, 그 정상에 서자 강력한 바람과 함께 사방 툭 트인 절경의 장관이 지친 산꾼의 눈앞에 펼쳐졌다.
지나온 삼척의 청옥, 두타와 함께 가야 할 강릉의 화란, 능경 등 천 미터가 넘는 고산준령의 산굽이는 물론이요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과 그 산과 바다에 깃들어 사는 인간세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지도 펼쳐 확인하니 강릉 남단의 '옥계(玉溪)' 지방 일대였다. 옥계라면 옥으로 빚은 계곡이란 뜻이라 참으로 고상하고 우아한 이름을 가진 고장이다 싶었지만, 그때는 갈길 바쁜 종주 산꾼이어서 무심히 발길을 돌려 삽당령으로 이어진 산길을 걸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백두대간 종주는 물론 아홉 개의 정맥(正脈)까지 모두 걸었고 이 땅의 여러 들길과 산길, 그리고 물길을 여전히 나는 걷고 있다. 그중 하나가 '해파랑길'이다.
2022년 5월. 나의 해파랑길은 묵호를 벗어나 강릉으로 접어든다. 그 종착지는 '옥계해변'이다. 뙤약볕 강렬한 5월 말의 바닷길을 걸어 옥계해변에 도착했는데 해변 진입 직전에 제법 넓은 하천 하나를 건너게 된다.
그 다리 위에서 서북쪽으로 고개를 들자 백두대간의 장쾌한 흐름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지도 확인하니 저 멀리 석병산의 모습이 아련하고 내가 서 있는 하천이 저 석병산에서 발원한 '주수천(珠樹川)'이다.
"아, 그래! 십육 년 전 6월 나는 저 석병산 암봉 위에서 이곳 주수천과 동해, 그리고 옥계를 굽어보았지. 이제 세월 흘러 바닷길을 걸으며 그때의 산길을 되짚어 보는구나!"
세월 무상하고 감회 새로웠다. 무심히 지나쳤고 오래 잊고 살았지만 옥계는 꽤 나에게 의미 있는 고장이었구나 싶었다. 그리하여 집으로 돌아와 옥계를 잠시 궁구(窮究)하였다.
옥계의 옛 이름은 '우계(羽溪)'였다. 주수천과 낙풍천이 새의 양 날개처럼 감싸며 흐르는 고장이어서 그랬는지 새의 깃털처럼 여러 물길을 모아 흘러 그랬는지는 몰라도 까마득한 예부터 '깃털 우(羽)'를 고장 이름으로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羽溪縣在府南六十里 本高句麗雨谷縣 一名玉堂 新羅景德王改令名爲三陟郡領縣 高麗顯宗九年來屬(우계현(羽溪縣), 부 남쪽 60리에 있다. 본래 고구려 우곡현(羽谷縣)이며 옥당(玉堂)이라고도 하였다. 신라 경덕왕이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삼척군 속현으로 만들었는데, 고려 현종 9년에 본부로 이속 시켰다.)
전해지는 기록으로 보아 고구려 시대부터 '깃털 우(羽)'와 '구슬 옥(玉)'이 혼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깃털이나 구슬은 맑고 깨끗한 물과 관련 있다. 따라서 이 고장은 예로부터 푸르고 맑은 물을 가진 고장이었음을 고을 이름으로 증명하고 있다.
옥계라는 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옥천우계(玉泉羽溪)에서 각각 취하여 개칭하였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계, 옥천, 옥당보다는 옥계라는 이름이 발음상은 물론 의미도 아름다워 참으로 잘된 네이밍이지 싶다.
아무튼 이런 의미 높은 옥계를 2022년 5월 해파랑길 걸으며 만났는데 내 눈에는 맑고 투명한 물빛보다는 옥계해변의 송림이 훨씬 아름답고 아늑하였다.
송림의 다복솔은 새의 깃털 같기도 하고 해변을 따라 길게 형성된 소나무숲은 바닷새가 날개를 펼친 듯도 하니 '우계(羽溪)'라는 옛 이름이 허명은 아니구나 싶었다.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옥계송림(玉溪松林) |
구간 : 해파랑길34코스(묵호역~한국여성수련원입구)
거리 : 구간거리(13.8km), 누적거리(215.9km)
일시 : 2022년 05월 21일. 흙의 날
세부내용 : 묵호역 ~ 묵호항 ~ 어달항 ~ 대진항 ~ 망상해변 ~ 도직항 ~ 옥계해변 ~ 한국여성수련원입구
나의 해파랑길 종주는 참으로 집중력 떨어져서 마지막 나들이가 재작년 여름이었으니 이미 2년 세월을 격하고 있다. 예전 백두대간 종주나 아홉 정맥 종주할 때는 열정으로 똘똘 뭉쳐 집중하였는데 나이 들어가면서 도전 의식도 점점 약해지는 모양이다.
20년 초부터 전 세계를 덮친 중국발 역병 탓에 몸도 마음도 겁먹어 움츠렸던 까닭도 한몫하였다. 그렇게 집에 콕 처박혀 세월만 보내야 했다. 안타까운 나날이었다.
그러나 역병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라 세월 흘러 역병의 공포도 어느덧 약해지고 바깥세상 공기도 한결 깨끗해졌다. 공기 좋아지니 바깥 풍경 그리웠다. 특히 동해 드넓은 푸른 물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그런 그리움이 마눌에게도 통했는 모양이다. 문득 동해로 차박 야영을 가자고 한다.
"좋소, 짐 챙기시오! 이왕 동해 가는 김에 해파랑길도 한 구간 합시다!"
해파랑길 34코스 ‘동해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동해안을 따라 걷다 강릉으로 넘어간다. 묵호등대에서 동해의 전경을 부감하고, 어달해수욕장에서 어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삼척, 동해 구간 해파랑길은 동해안 대표해변인 망상해변으로 마무리되고, 망운산 골짜기를 지나 강릉 옥계시장에 닿는다. 교통편 - 34코스시작점: 묵호역 동해고속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 32-3번 이용, 동해프라자 정류장 하차 후 도보 (약100m) - 시내버스: 15-3, 31-1번 버스 이용. 택시 - 삼척콜택시 033-575-6400 / 동양택시콜 033-573-9858 - 동해콜 033-521-0000 |
# 해파랑길 34코스 묵호역~한국 여성수련원 입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동해는 정말 먼 고장이다. 주말 교통 정체까지 겹치니 더욱 그렇다. 아주 오랜 시간 운전하여 동해에 도착했다. 재작년 멈췄던 묵호역 앞에서 34구간 해파랑길을 시작했다. 그때처럼 마눌은 주변 바닷가 구경하며 야영지 찾기로 하고 나 홀로 해파랑길에 나섰다.
# 묵호역 화장실에서 간단히 화장하고 채비를 점검했다. 화장실 거울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 장 남겼다.
# 묵호역을 돌아나가면 34구간 스탬프가 있다.
# 뙤약볕 강렬한 길을 따라 북동진하였다. 발한삼거리 버스정류소에 해파랑길 표식이 붙어있다.
# 묵호항에 도착. 항구 안 바닷물이 잔잔하다.
# 묵호항 횟집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 싱싱한 자연산 횟감이 가득하다. 오징어는 잡히지 않아 금징어가 되어 있고 고등어가 한창이다.
# 묵호항 수변공원을 만난다. 이곳 산자락에 오래된 횟집이나 곰치국 집이 여럿 있다. 수십 년 전 낚시꾼 시절 이곳에서 자주 낚시를 했었다. 그때는 곰치국이 지금처럼 잘 알려지지도 않고 가격도 착할 때였다.
어느 지역이나 그곳 주민들이 단골인 작고 오래된 식당이 진국인 법이다. 식사할 곳을 찾다가 작고 허름한 식당을 골라 들어갔다. 할머니 혼자서 테이블 딱 두 개만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과연 기대대로 시원하고 기가 막힌 곰치국이 나왔다.
이후 여러 해 동안 동해를 방문할 때는 그 식당을 찾았다. 그러다 몇 년 소원했는데 어느 해인가 산행 마치고 묵호를 찾았더니 그 식당이 없어져 버렸더라. 연세 많으셔서 그만두셨는지 세상을 떠나셨는지는 알 길 없었다. 오늘 다시 찾아보니 낡았던 집은 없어지고 집터만 남아 있다.
# 이곳에서 먼바다를 향해 원투낚시를 던지면 동해 특유의 검은 노래미가 곧잘 나온다.
# 돌아보면 저 멀리 동해항과 그 너머 삼척 해안이 보인다.
# 해파랑길은 묵호등대로 올라가 저곳 스카이밸리를 지나야 한다. 바다 구경하느라 들머리를 지나쳐 버렸다. 해파랑길로 합류하기 위해 골짜기로 올라가는데 예전에 없던 인공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도깨비골 스카이워크란다. 입장료를 받고 있다. 그냥 해안에서도 바다 구경은 실컷 할 수 있으니 무시하고 도로 해안으로 내려왔다.
# 까막바위. 이곳도 유명한 낚시 포인트다. 지금은 무슨 공사 중이어서 주변이 어수선하다.
# 일출로를 따라 계속 진행했다. 요즘 곰치가 잘 잡히는 모양이다. 횟집 수족관에 커다란 곰치가 가득하다. 예전에는 못생기고 살이 흐물흐물하여 버리던 생선이 지금은 금값의 고급 생선이 되었다. 곰치국의 시원한 맛이 널리 알려진 탓이다.
그런데 동해에서 잡히는 이 생선의 이름은 실상 곰치가 아니라 '미거지(물곰)'이다. 곰치, 즉 물메기는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는데 저 미거지보다는 조금 작고 몸에 검은 줄무늬가 있다. 맛은 구별이 어렵다.
진짜 재미있는 사실은 곰치란 생선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장어처럼 생긴 아열대 지방의 공격성 강한 심해의 물고기가 진짜 곰치인데 우리는 그냥 물메기, 미거지를 구별 없이 곰치라 부르고 있다. 이름이야 뭐든 맛만 좋으면 되지 뭐...
# 어달항. 이곳도 내 예전 단골 낚시 장소였다. 방파제 끝이나 테트라포트 곳곳에 낚싯대 던질 곳이 많다.
# 해안을 크게 돌아가면 어달해수욕장이 나온다. 성미 급한 이들은 벌써 여름휴가 분위기다.
# 일출로를 따라 계속 북상하면 대진항이 나온다. 햇살 뜨거워 대진항 항구 건물 그늘에서 간식 먹으며 잠시 쉬었다.
# 요즘 동해의 해변들은 서핑이 유행인 모양이다. 이곳 대진해수욕장도 서핑족들이나 차박족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서핑보드를 매단 캠핑카들이 장박 모드로 여럿 있다.
# 햇살 강렬하여 해수욕장은 텅 비었다.
# 잠시 더 가면 마상천이 바다와 만나는 해물금교에 도착한다. 마상천이 해안사구에 막혀 구불구불 몸을 틀며 바다로 스며든다. 좌측에 노봉해수욕장이 있다. 저곳에도 캠핑카들이 여럿 있다. 뙤약볕 강렬한 저곳에서 무얼 하는지 는 모르겠다.
# 해안가 백사장에 갯메꽃이 만발하다. 메꽃은 국산 나팔꽃이다. 그중에서도 갯메꽃은 해풍에 적응하여 키가 작고 모래바닥에 붙어 자란다.
# 망상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휴가철에 인파로 붐볐을 망상해변에는 시즌 전이라 인적 드물다. 햇살은 휴가 때나 다름없이 강렬하고 뜨겁지만...
# 망상해변은 길고 규모가 크다.
# 망상컨벤션센터를 돌아 나가면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홍보관이 나온다. 주차장이 넓다.
# 저 캠핑카는 산불 피해주민들이 임시숙소로 사용했던 것인 듯하다.
# 구간 종착지인 여성수련원까지는 6.4km 남았다.
# 망상 오토캠핑리조트 정문에서 좌측 영동선 철길 아래를 통과한다.
# 그리고는 우측으로 올라 동해대로에 합류한다.
# 이 길은 동해안 자전거길과 공용이라 잔차족들과 자주 조우하게 된다.
# 햇살 뜨겁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 강하다. 동해대로를 따라 길게 북상한다. 망상해변의 한옥촌, 기곡 해수욕장, 도직 해수욕장을 지나 고가도로에 올라선다. 저 멀리 망상해변이 길게 누워있다.
# 동해 난바다의 물빛이 푸르고 푸르다.
# 옥계항의 한라시멘트 공장이 해변에 우뚝하다. 그 뒤로 금진항의 호텔이 보인다.
# 고가 아래로 도직항이 보인다. 작은 규모의 어항이다. 도직(道直)이란 '길이 곧은 곳'이란 뜻이다. 길이 크게 굽어지는 곳에 있는 동네인데 곧은길이라 함은 이곳에 이르는 망상해변의 길이 곧아서였던 모양이다.
# 낚시 삼매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한참 서서 구경했는데 쉬 잡아내지는 못한다.
# 한라시멘트 공장 앞을 통과한다. 옥계의 한라시멘트는 역사 깊은 회사인데 IMF 때 부도가 나 프랑스 라파즈에 매각되었다. 낚시꾼 시절이나 산꾼으로 이곳을 지날 때 오랫동안 라파즈의 이름을 달고 있더니 이번에 보니까 다시 한라시멘트 이름표를 달고 있다. 기사 찾아보니 그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고 지금은 아시아시멘트가 인수하여 다시 한라시멘트로 옛 이름을 되찾게 하고 계열로 편입한 모양이다.
# 저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강릉, 주문진, 속초, 양양을 지나 고성까지 올라가야 한다.
# 옥계역 교차로에서 좌틀한다.
# 길가에 꽃향기 가득하다. 족제비 꼬리를 닮은 족제비싸리의 보랏빛 꽃이 만발하다.
# 주수천교에 올라선다. 좌측으로 고개 돌리면 제법 넓은 규모의 주수천이 백두대간으로 이어져있다. 물길 위의 저 파이프는 백두대간 자병산 자락에 있는 공장으로 연결되어 있다.
# 멀리 백두대간 산줄기가 남북으로 길게 누워 우뚝하다. 백봉령, 자병산, 석병산, 두리봉을 지나 대관령으로 향하는 산줄기다. 십수 년 전 우리 부부는 저곳 석병산 암봉 위에서 강한 산바람 맞으며 이곳 옥계를 내려다보았다. 석병산은 암봉이 병풍처럼 솟은 산이다. 산세 빼어나고 기상 높은 곳이다. 가슴 뻥 뚫리고 호연지기 솟아나는 명소다.
이제 세월 흘러 바다에서 석병산을 우러러 올려다본다. 옛 추억 방울방울 피어난다.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는 그 시각(視覺) 사이에 수십 년 세월이 누워있다. 다시 석병산을 올라 이곳 옥계를 내려다볼 날 있을지 궁금하다.
# 옥계 산업단지는 실패한 산업단지인 모양이다. 옥계항 가까운 해안에 부지만 조성해 두고 정작 입주한 기업은 몇 되지 않는다. 텅 빈 공단에 포스코 제련소만 눈에 들어온다.
# 곧 낙풍천이 바다와 만나는 광포교 위에 선다. 옥계는 두 개의 물길이 합해져서 바다로 향하는 곳이다. 좀 전의 주수천은 백두대간 석병산, 두리봉 자락에서 발원하여 산계, 천남을 거쳐 이곳으로 오고 낙풍천은 백두대간 두리봉과 이어진 만덕봉에서 발원하여 북동, 낙풍을 거쳐 이곳에 이른다. 이윽고 두 물줄기는 옥계 바다 바로 코앞에서 합해져 모래사구를 넘어 동해로 흐르게 된다. 이런 모양의 수계(水系)는 또 처음 본다. 재미있는 곳이다.
#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틀하여 옥계 바다로 향한다.
# 해파랑길은 바다로 가지 않고 솔숲 안으로 들어가라 한다.
# 옥계는 수십 년 동안 동해를 찾으며 그냥 지나친 곳이다. 주변에 망상이나 정동진 같은 명소가 즐비하여 소외된 탓이리라. 이곳에 이렇게 멋진 송림이 있는 줄 몰랐다. 솔숲 그늘이 시원하고 솔바람 상쾌하다.
# 솔숲 한가운데 여성수련원이 있고 그 앞에 34코스 종착지가 있다. 아직 시간 이르고 체력도 많이 남아 35코스도 이어갈 수 있을 듯하지만 홀로 기다리던 마눌의 원성 대단하여 그만 멈추기로 했다.
# 옥계 해변으로 나갔다. 옥계는 찾는 사람 드물어 해변의 모래사장에 잡풀이 무성하다.
# 바로 곁에 시멘트 공장이 있는 탓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역시 저 공장의 존재 때문에 이곳은 늘 그냥 지나치던 곳이다.
# 옷에 묻은 먼지 털어내고 해파랑길 34코스를 마무리했다. 이후 마눌과 함께 묵호항으로 이동했다. 그곳 수산시장에서 회를 조금 사고 막걸리도 한 통 샀다. 그리고 마눌이 혼자 이곳저곳 돌며 찾아 둔 망상 북쪽의 한적한 해변에 자리 잡았다. 뙤약볕 강렬한 곳이지만 카텐트와 타프로 그늘 만들어 쉰 후 하룻밤 보낼 요량이었다.
# 고등어, 도다리, 노래미로 회를 뜨고 볼락은 몇 마리 손질하여 구이로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단돈 삼만 원이다. 시즌 전의 현지 물가 저렴한 이유도 있고 마눌의 흥정 실력 덕분도 있다. 마눌은 고등어회가 처음이란다. 고등어회는 산지에서만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막걸리는 곰배령 옥수수막걸리라는데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은 아니었다. 다만 안주가 좋아 그냥 묻어갔다.
# 막걸리 한 잔 나누는 동안 바람이 아주 거세게 일었다. 뙤약볕 강렬하고 바람 강하여 야영 환경이 열악했다. 고민 끝에 이동을 결정했다. 장소는 옥계 송림이었다. 송림 속은 야영이 금지되어 있지만 송림 뒤 주차장은 괜찮은 모양이었다. 좀 전 해파랑길 마무리할 때 보니 몇 팀이 차박으로 쉬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과연 옥계 송림은 최고의 장소였다. 송림이 바람을 막아주고 있고 그늘 시원한 데다 솔향기 그윽하여 지금껏 만난 차박 야영지 중 손꼽을만하였다. 아직 시즌 전이고 잘 알려지지 않아 한적하고 고요하였다. 편안하고 고요히 하룻밤 잘 보냈다.
# 뒷날 아침 챙겨 먹고 커피 한 잔의 여유까지 느긋하게 즐겼다.
# 솔바람, 솔 그늘 아까워 떠나기 싫었다. 오래 머뭇거리다 다음을 기약하고 옥계 송림을 떠났다. "감사히 잘 쉬었습니다."
# 이후 정동진을 향해 북상하다가 심곡항에서 잠시 쉬었다. 낚시 준비를 해 왔다면 손맛 좀 보았을 곳이었다.
# 우리는 천상 산꾼이다. 바다에서 하룻밤 유했더니 계곡이 그리워졌다. 그리하여 안인진 인근의 단경골 계곡으로 향했다. 단경골은 낙풍천의 발원인 만덕봉의 물길이 안인진 쪽으로 흘러가는 군선천의 윗 계곡이다. 지금 단경골은 도로 공사 중이라 길이 험하고 먼지 풀풀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계곡은 여전히 청정 그 자체였다.
# 계곡 옆 그늘에 자리 깔고 오래 쉬었다. 바지 걷어 올리고 계곡에 들어가니 차갑고 시원한 기운 온몸을 휘감는다. 그러다 문득 숲을 올려다보니 숲 속에 취나물이 드문드문 보인다. 잠시 숲 근처를 헤맸는데 봉지 하나에 취나물이 가득하다. 사람들 손길 타지 않아 취가 벌써 억세다. 점심 먹으며 연한 것 골라 쌈으로 먹으니 입안에 취향 그윽하다. 잘 먹고 잘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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