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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33코스/추암해변~묵호역 - 묵호(墨湖) 가는 길 본문

길이야기/해파랑길

[해파랑길]33코스/추암해변~묵호역 - 묵호(墨湖) 가는 길

강/사/랑 2020. 8. 30. 19:03
[해파랑길]33코스/추암해변~묵호역

 

동해시(東海市)는 영동지방 중남부의 작은 해안도시다. '동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졌지만 10 행정동, 면적 180.20㎢,  인구 10만이 채 안 되는 아담한 규모의 소도시다.

동해라는 이름의 역사는 짧다. 1980년 4월 1일 삼척군 북평읍과 명주군 묵호읍 일원을 통합하여 새로운 행정구역을 탄생시켰는데, 두 지역 모두에게 기울지 않게 '동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였다. 비슷한 규모와 역사를 가진 두 고장을 하나로 통합하자면 탕평(蕩平)의 정책이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묵호(墨湖)'는 통폐합 전 명주군의 작은 어촌 항구였다. 18세기 영조 연간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묵진(墨津)'으로 표기되어 있다. '묵호(墨湖)'라는 표기는 이후 일제시대에 제작된 '조선지형도(朝鮮地形圖)'에 이르러 볼 수 있다. '나루(津)'가 '호수(湖)'로 바뀐 것이다.

원래 이름은 '오리진(烏里津)'이다. 까마귀가 많아 '오리(烏里)'라 불렀다 전해진다. 까마귀(烏)가 먹(墨)으로 바뀐 유래는 '동해시 지명유래지'에 두 가지로 나온다.  

첫번째는 순조 연간의 강릉부사 이유응이란 이의 작명이다. 그즈음 이 지방에 해일이 닥쳐 피해가 컸는데 이를 살피러 파견된 이유응이 물도 검고 바다도 검고 물새도 검어 고장 이름을 '묵호(墨湖)'라 지었다는 것이다. 백성들의 고초를 살피고 살림을 재건시켜야 할 관리가 엉뚱하게 동네 이름이나 짓고 있었던 모양이다.

두 번째는 이 고장에 이미 있던 '발한(發翰)'이라는 동네 이름과 대구(對句)로 작명되었다는 설이다. ' 한묵(翰墨)'은 학문과 선비의 상징이다. 발한은 이미 있으니 돌도 바다도 검은 이 고장을 묵호(墨湖)로 상대하였다는 것이다.

자료 찾아보니 '이유응(李儒膺)'이란 이가 헌종(憲宗) 3년(1837)에 식년시(式年試)를 통해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고 홍산 현감과 광주 판관을 거쳐 강릉부사(江陵府使)를 지냈다고 나온다. 1860년 강릉부사로 부임했다가 이듬해 3월 소임을 마쳤는데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사망했다 한다(辛酉三月 卒于路也). 옛 전설이 허언 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목호의 어달리 바닷가에는 검은색 바윗덩이가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처럼 우뚝 서 있다. 이 고장 사람들은 '까막바위'라고 부르는 검은 바위다. 얼핏 보면 까마귀를 닮은 듯도 하다. 바닷가에 까마귀가 많을 일은 없다. 이 바위가 '까마귀 오(烏)'의 어원일 수도 있겠다. 물도 검고 바위도 검어 '오리진(烏里津)으로 불렀다가 나중에 이유응 부사가 '먹 묵(墨)'자를 가져와 묵호(墨湖)로 고급스럽게 바꿨을 수도 있겠다.

'북평(北坪)'의 옛이름은  '뒷드루'다. '북쪽에 있는 넓은 들'이란 뜻이다. 들이 넓으니 곡식 산출이 풍부했다. 들과 물과 물산의 풍부함은 기록에 많이 나타난다.

'미수(眉叟) 허목(許穆)'은 남인의 영수였다. 우암 송시열과의 예송논쟁(禮訟論爭)에 패배해 삼척부사로 좌천되었다. 삼척의 옛 이름은 척주(陟州)다. 그는 삼척의 지방 행정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지방의 연혁과 지리 정보를 정리하여 책을 엮었다. '척주지(陟州誌)'다.

척주지에 북평의 기록이 나온다.  “北坪里 海上川澤之鄕 多竹林 其穀宜稻麥(북평리는 하천과 못이 있는 들판에 위치한 바닷가 마을로 죽림이 많다. 곡식은 벼와 보리를 재배하기에 적합하다.)”

이렇게 역사와 상징성 뚜렷하니 어느 한쪽의 이름으로 통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고심의 결과가 동해(東海)다. 동해는 어느 한 지방명으로 한정하기에는 그 뜻이 너무 넓은 이 땅 강역(疆域)의 한 축이다. 그러나 묵호와 북평 어느 한쪽으로 기울기 어려웠던 고심을 이해해 줄 수는 있었을 것이다.

나는 오래 전 낚시꾼의 삶을 살았다. 꽤 긴 세월 비린내 폴폴 풍기며 이 땅 방방곡곡의 깊고 얕은 물을 찾아다녔다. 그중의 하나가 묵호다. 묵호 어달리 바닷가에 지금처럼 관광객 붐비지 않고 횟집 많지 않았을 시절 방파제 끝이나 까막바위 근처 갯바위에서 검은 바다 멀리 낚싯대 던지면 이 고장 특유의 까만 노래미가 곧잘 물리곤 했다.

그러고 보니 이 동네는 노래미조차 까만색이었다. 까만 바위에서 까만 바다로 낚시 던져 까만 노래미를 낚았으니 묵진(墨津) 혹은 묵호(墨湖)에 조화로웠다.

그 오랜 기억의 장소를 이제 먼 길 걷는 나그네 되어 다시 찾았다. 해파랑길 33코스는 내 오래 추억의 장소 묵호를 통과한다.

 

묵호(墨湖) 가는 길

구간 : 해파랑길 33코스(추암해변~묵호역)
거리 : 구간거리(13.6km), 누적거리(202.1km)
일시 : 2020년  08월 14일. 쇠의 날.
세부내용 : 추암역 ~ 동해역 ~ 한산 해변 입구 ~ 묵호역 입구

 

 

여름휴가를 강원도 일대에서 보냈다. 예전 푸르렀던 시절 마눌과 함께 했던 기억을 되살려 정선 아우라지 일대를 돌며 야영했다.

 

강과 산에서 며칠 보냈으니 바다를 외면할 수 없었다. 이왕 강원도에 왔으니 해파랑길을 한 구간 걷자 싶었다. 그래서 동해를 찾아 산맥을 넘었다.

 

임계 지나 구절양장 백복령 넘어 백두대간을 넘어 가면 2년 전 가을에 발길을 멈춘 삼척의 추암역이 나온다. 세월 참 빠르다. 벌써 2년 세월이 흘렀다. 그때는 가을이었고 지금은 한여름이다.

 

해파랑길 33코스 

해파랑길의 33번 째 코스로 삼척 동해 구간 중 동해시 추암동에서 발한동을 잇는 길이다. 추암해변에서 출발해 동해역과 한섬해변을 거쳐 묵호역 입구에 이르는 도보길로 동해 시내를 관통한 뒤 묵호역까지 끝없이 이어진 바닷길이다. 

관광포인트 
- 촛대바위와 형제바위, 해암정이 절경을 만드는 추암해변 
- 신라 51대 진성여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의 전설이 서린 감추사와 감추해변 
- 오랜 역사를 최대한 살려 리모델링한 동해역 

여행자 정보 
- 삼척 종합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 11번 이용, 후진정류장 하차 후 도보 
- 추암해변, 동해역, 한섬해변, 묵호역 등지에 화장실, 매점 이용 가능 
- 출발지인 추암역에서 묵호역까지 열차 이동이 가능

 

 

 

# 해파랑길 33코스 추암해변~묵호역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삼척선 추암역 앞에서 해파랑길 33코스를 시작한다. 역 앞에 신축 건물이 있고 주차장에 차량이 가득하다. 러시아산 대게를 판매하는 곳인 모양이다.

 

 

# 이번 33코스는 나 홀로 순례할 작정이다. 햇살 너무 뜨거워 마눌은 자동차로 날머리로 이동하여 동해 일대 구경하기로 했다. 

 

 

# 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공단로를 걸어 해파랑길을 시작한다.

 

 

# 이곳은 도로 넓은데 차량 통행 드문 한적한 길이다.

 

 

# 자전거로 해파랑길을 주행하는 이들이 가끔 보인다.

 

 

# 공단으로 넘어가는 거대한 구조물을 통과한다.

 

 

# 이곳은 북평국가산업단지다. 가끔 대형차량들만 지나가고 인적 없다.

 

 

# 이곳에서 해파랑길은 도로를 버리고 우측 갈림길로 들어가라 한다.

 

 

# 하수처리시설을 공원으로 꾸며 놓고 해파랑길 또한 그 안으로 연결하였다.

 

 

# 태양광 발전 패널이 햇볕을 잔뜩 받아 곁에서도 뜨끈뜨끈하다.

 

 

# 길은 이내 하수처리장을 벗어나게 된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동해 공공하수처리시설'이다. 해파랑길은 하수처리장 후문을 벗어나자마자 곧 우측으로 꺾인다.

 

 

# 그곳에 이정목이 서있다. 호해정 방향으로 가야 한다.

 

 

# 숲을 벗어나면 넓은 공터가 나오고 차량이 많이 주차되어 있다. 시멘트 원료 컨베이어 시설 같은 시설물이 해안을 따라 거대하다.

 

 

# 해파랑길 안내판이 있다. 해파랑길은 해변의 숲으로 올라가라 한다.

 

 

# 석탄이나 코커스 같은 원료가 배에서 하역된 후 저 컨베이어를 통해 화력발전소로 이동하는 모양이다.

 

 

# 국가 기간시설인듯 경계가 철저하다. 데크길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이 산을 구미산(九美山)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다.

 

 

# 종주 산행 도중 산에서 자주 만나는 군부대 외곽 같은 느낌이다.

 

 

# 한차례 오르면  초소가 있고 그 앞에 비석 하나가 서 있다. '을미대(乙未臺)'라 적혀 있다. 평양에 있는 을밀대는 들어보았어도 을미대는 또 처음이다. 사연은 알 길 없다. 예전 이곳에 을미대란 정자가 있었든지 아니면 바위 절벽 위 이곳을 을미대라 불렀든지 했을 법하다. 그리고 을미생(乙未生)의 누군가가 세웠든지 을미년(乙未年)에 세웠든지 둘 중 하나이기도 하겠고.

 

 

# 아래로 내려가면 이곳 할미바위(麻姑岩)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서있다. 망부석의 전설이 있는 곳이라 한다.

 

 

# 바로 아래에 그늘 좋은 정자가 하나 있다.

 

 

# 호해정(湖海亭)이란 현판을 달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광복 기념으로 이 지역 사람 39인이 주춘계(住春契)를 조직해 1947년 4월에 건립하였다고 나온다. 현판의 글씨는 '석재 최중희'라는 이 지역 서예가의 솜씨다.

 

 

# 그늘 좋고 바람 시원한 정자에서 오래 쉬었다.

 

 

# 쌍용양회 시멘트 공장이 전방 조망을 모두 차지한다. 저 공장 너머에 동해항이 있다.

 

 

# 이곳은 전천(箭川)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이다. 전천은 길이가 11.3km에 불과한 짧은 하천이다. 이 지역 동해 삼화동에서 발원하여 곧장 이곳 바다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의 발원이 삼화동의 여러 산을 비롯 백두대간의 무릉계, 두타산, 청옥산, 고적대 등의 물길 또한 합친 것이라 그 기상은 높다.

 

 

# 전천을 따라 백두대간 방향으로 접근한다.

 

 

# 저 가족은 여름휴가를 고향 할아버지 댁으로 온 모양이다. 낚시 도구 갖추고 전천으로 온 가족이 나왔다.

 

 

# 시멘트 공장의 위용이 대단하다. 항공사진을 보니 더욱 웅장하였다.

 

 

# 강변의 산책로를 따라 동해시가지로 접근한다. 북평고가교가 나타난다.

 

 

# 다리 아래 그늘에서 한숨 돌리며 고개를 드니 멀리 장대한 산맥의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 백두대간의 위용이다. 좌측 댓재에서 출발해 우뚝 솟은 두타산을 넘고 다시 청옥산, 고적대, 상월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모습이다. 저 구간은 지리산에서 강원도 진부령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전체 구간 중 가장 힘든 구간 중 하나다. 나는 2006년에 저 산마루금을 걸었다. 감회가 새롭다.

 

 

# 이윽고 전천을 건너고 다시 영동선 철길을 따라 동진하여 동해송정 일반산업단지, LS전선 공장을 거쳐 동해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마눌과 합류했다. 그리고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 다시 마눌과 헤어져 홀로 길을 나섰다.

 

 

# 동해역사에 들러 화장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도 잠깐 쐬었다. 그 바람 아까워 길 나서기 어려웠다. 뙤약볕 뚫고 동해 시가지를 통과하면 '용정 굴다리 사거리'가 나온다. 용정동(龍井洞)은 용과 관련된 전설이 많은 곳이다.

 

 

# 굴다리 통과.

 

 

# 이곳부터는 영동선 철길 좌측의 녹지 통로가 길게 이어진다.

 

 

# 이곳 녹지대는 키낮은 해송 숲이다.

 

 

# 폭 좁고 키 낮은 소나무 숲이지만 그늘은 충분하고 바람 또한 가득하다. 시원하고 좋은 길이다.

 

 

# 영동선 열차가 굉음을 울리며 하행한다. 해파랑길 걸으며 철길을 따라 걷기는 또 처음이다.

 

 

# 누군가 돌탑을 두어 개 만들어 두었다. 나는 그 돌탑 위에 커다란 돌 하나 아슬아슬 세워 멋을 보탰다.

 

 

# 이 솔숲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산책길인 듯하다.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 나온 이들이 많다.

 

 

# 솔숲길이 한참 길다. 오래 걸어 솔숲을 벗어나고 작은 개천 있는 곳에서 바다 쪽으로 나간다.

 

 

# 한섬 해안길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우측으로 꺾어 내려간다.

 

 

 

# 한섬 해수욕장이 나온다. 한 뼘짜리 작은 해수욕장이다. 저 멀리 작은 동산 모양의 '감추산'이 보인다.

 

 

# 갯바위가 촛대처럼 솟았다.

 

 

# 갈매기 한 마리 그 위에서 그림이 되었다.

 

 

# 숲 속 소로인 한섬 해안길을 따라 북상한다. 그 길 좌측에 '관해정(觀海亭)'이란 현판을 단 정자가 있다. 잠시 둘러보고 이내 길을 나섰다.

 

 

# 한섬 해안길은 호젓하다. 인적 없고 파도소리만 귀를 간지럽힌다.

 

 

# 군부대 초소 앞에서 좌측 길로 간다.

 

 

# 어느 기도원 갈림길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 잠시 후 깜짝 놀랄 만한 비경(秘景)의 장소가 나타난다. '고불개 해변'이다.

 

 

#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작은 해변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비경이다. 이런 곳에 이런 멋진 해변이 있을 줄 뉘 알았으랴? 남들 모르게 살짝살짝 찾고 싶은 곳이다.

 

 

# 언덕을 넘어 내려가면 다시 작은 해변이 하나 나온다.

 

 

# 이 동네는 사람들 붐비지 않는 작고 멋진 해변이 곳곳에 숨어 있다. 나중에 은퇴 후 평일 사람들 없을 때 야영하며 낚싯대 하나 던지면 좋을 듯싶다.

 

 

# 바다 물빛 좋고 파도 소리 좋다.

 

 

# 참 좋은 곳이다. 꼭 나중에 다시 찾아 올 작정이다.

 

 

# 철길 옆 좁은 길 통과.

 

 

# 해변 암릉길이 제법 아기자기하다.

 

 

# 멀리 묵호항이 보인다. 어달리 뒷산 등대도 보인다.

 

 

# 도시가 가까워지자 비로소 해수욕 나온 이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그래도 붐비거나 번잡한 수준은 아니다. 하평 해변.

 

 

# 부곡 돌담마을 해안숲 공원 통과.

 

 

# 지중해 풍 파란색으로 도색된 굴다리를 통과하여 해변을 벗어난다.

 

 

# 동해선 철길 좌측의 향로봉길을 따라 북상한다.

 

 

# 묵호항역 역사를 통과한다. 화물역사인 모양이다. 빨간 벽돌의 오래된 양식의 건물이다.

 

 

# 철길 너머 바다 쪽 조망.

 

 

 

# 다시 굴다리를 통과하여 철길 우측으로 간다.

 

 

# 이곳 향로봉길은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이다. 오래된 주택들이 키를 잔뜩 낮춰 길 좌우로 길게 늘어섰다. 문을 열면 바로 안방이 나오는 집도 있다. 6,70년대 우리나라 곳곳은 전부 저런 골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풍년쌀집'이라는 상호가 정겹다. 

 

 

# 골목이 끝나고 묵호역사거리 옆의 발한로가 33코스의 종착점이다. 그곳 은행나무 아래에 인증소가 있다. 인증 도장 하나 남기고 33코스를 마무리했다.

 

 

# 이윽고 큰길로 돌아나가 묵호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마눌과 재회했다. 몸에 묻은 먼지 털어내고 오랜만의 해파랑길을 정리했다. 이제 남은 휴가 즐기러 다시 어느 조용한 바다를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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