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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45(황악산/黃岳山) - 바람산 황악! 본문
[100대 명산]45(황악산/黃岳山) - 바람산 황악! |
산동무 두루님이 추풍령 고개 안쪽에 작은 근거지를 마련한 것이 여러 해 전이다. 그동안 두어 차례 산꾼 모임을 그곳에서 가져 그이의 산골생활은 이미 구경한 바 있다.
올해 홀로 산꾼 가을모임 역시 그곳 두루님 아지트에서 개최된다 한다. 저마다 홀로 산길 걷던 산꾼들이 일 년에 딱 한 번 얼굴 보는 자리이니 참석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추풍령이 워낙 먼 고장이니 그곳까지 간 김에 인근 명산이나 한번 올라가 보자 하였다. 추풍령 근처라면 제일 먼저 황악산(黃岳山)이 떠오른다. 황악은 백두대간 종주 할 때와 산꾼들 시산제 때 이미 오른 경험이 있는 산이다. 육산(肉山)이라 모나지 않고 푸근하였던 기억의 산이다.
황악산은 100대 명산이다. 100대 명산 야영 산행을 진행하고 있는 나로서는 꼭 다시 한번 올라가 봐야 하는 산이니 마침 딱 알맞았다.
'황악(黃岳)'이라는 이름은 역사가 꽤 깊다. 그 첫 등장은 '세종실록지리지'다. 지리지 '경상도 상주목 금산군'편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本朝恭靖王元年己卯, 安御胎于縣西十里黃岳山, 陞爲知郡事, 別號金陵(본조 공정왕(恭靖王) 원년 기묘에 어태(御胎)를 현(縣) 서쪽 10리 되는 황악산(黃岳山)에 안치하고 지군사(知郡事)로 승격시켰다. 별호(別號)는 금릉(金陵)이다.)"
공정왕은 조선 2대 왕 정종(定宗)의 시호다. 정종의 어태(御胎)를 황악산 봉우리에 묻었다는 기록이다. 태(胎)는 생명력의 상징이었다. 태를 잘 보관하여 좋은 곳에 묻으면 그 태의 주인도 좋은 기운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일반인이 아니라 왕의 태를 묻은 곳이니 최고의 명당이었을 것이다.
학이 많아 황학산(黃鶴山)이라고도 불렀다 하는데 여러 기록에서는 황악산(黃岳山)으로 나온다. 만물의 중앙은 땅이다. 황(黃)은 중앙을 상징하는 색이다. 높고 험준한 산이라 '악(岳)'자를 썼고 육산(肉山)이며 국토의 중앙이라 '황(黃)'자를 썼다.
황악산은 그런 곳이다. 백두대간이 남으로 지리산을 향해 달리는 중간에 우뚝 솟아 김천과 영동의 들을 구분하고 왕의 태를 품어 왕기(王氣) 가득한 명산이다.
그 산 정상에서 하룻밤 머물러 하늘과 땅의 중간에서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노라면 옛 왕의 기운 한 자락이나마 나눠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산꾼 모임 가는 짐과 함께 야영짐 따로 챙겼다. 오랜만의 야영 산행이다. 이십여 년 전 백두대간 종주 할 때 기억 가득한 황악과의 만남이니 더욱 기대감 가득이다. 부푼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23년 시월 말의 이야기다.
일시 : 2023년 10월 20~ 21일
황악산/黃嶽山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代項面)과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梅谷面)·상촌면(上村面)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1,111m이다.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으로 불렀다고 하며 지도상에도 흔히 그렇게 표기되어 있으나, 직지사(直指寺)의 현판 및 《택리지(擇里志)》에는 황악산으로 되어 있다. 서남쪽에 연봉을 이룬 삼도봉(三道峰:1,176m)·민주지산(珉周之山:1,242m)과 함께 소백산맥의 허리부분에 솟아 있다. 주봉(主峰)인 비로봉과 함께 백운봉(770m)·신선봉(944m)·운수봉(740m)이 치솟아 있으며,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한 편이어서 암봉(岩峰)이나 절벽 등이 없고 산 전체가 수목으로 울창하다. 특히 직지사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천룡대로부터 펼쳐지는 능여(能如)계곡은 대표적인 계곡으로 봄철에는 진달래, 벚꽃, 산목련이 볼 만하고 가을철 단풍 또한 절경을 이룬다. 그밖에 내원(內院)계곡과 운수(雲水)계곡의 경관도 뛰어나다. 북쪽의 괘방령(掛傍嶺)과 남쪽의 우두령(牛頭嶺)을 통해 영동군과 김천시를 잇는 지방도가 지난다. 정상에서는 서쪽으로 민주지산, 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 동쪽으로 금오산, 북쪽으로 포성봉이 보인다. 등산시에는 직지사와 운수암을 거쳐 주능선에 도달하는 3~5시간 정도 되는 산행을 하게 되는데, 계곡길은 가파르지만 능선길은 경사도 완만한 편이다. 겨울의 설화(雪花)와 가을의 단풍이 아름다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 |
# 황악산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황간 나들목을 나와 직지사로 향했다. 황간 나들목은 고속도로휴게소 안에 나들목이 있다. 나는 매번 이곳에서 나들목을 지나치곤 한다. 이번에도 같은 실수다. 어찌어찌 나들목으로 나가기는 했다.
직지사에 도착해서 주차장을 찾았다. 차량들이 직지사 입구까지 올라간다. 따라가보니 절 입구 한쪽에 넓은 나대지 주차장이 있다. 주변에는 사찰 중건 공사가 한창이고 차량들이 꽤 많이 주차되어 있다. 그런데 강풍이 순간순간 불고 있어 공사자재들이 바람에 굴러다닌다. 밤중에 무슨 일이 있을 줄 모르겠기에 다시 차를 돌려 입구에 있는 공원 주차장에 주차했다. 고개 드니 백두대간 능선이 올려다보인다.
# 날씨는 맑은데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조짐이 수상치 않다.
# 얼른 짐 챙겨 산행을 시작했다. 시각은 이미 오후 세 시에 가깝다. 산그림자 사찰 가까이 이르렀다. 직지사는 역사 깊은 사찰이다. 신라 눌지왕 2년인 418년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이 사찰은 조계종 제8교구 본사다. 사명대사가 출가한 사찰로 고승대덕의 흔적 많고 문화유산도 즐비하다.
직지(直指)라는 이름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불교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했다. 수행자가 경전(經典)의 매개 없이 마음을 가리켜 단박에 성불하게 된다는 교리다. 경전의 매개 없으니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세계다.
말 많은 인간으로서는 깨닫기 어려운 경지다. 입 닫고 사찰 잠시 둘러보다 산으로 발길 돌렸다.
# 황악교를 지난다.
# 늦은 시각이라 산으로 올라가는 산객은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다. 그런데 모퉁이 돌아서자 앞선 산객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배낭 둘러멘 그의 어깨가 무겁다. 무슨 사연이 있으신가?
# 이 산에는 본사인 직지사 외에도 암자가 아주 많다. 암자 갈림길을 계속 지난다.
# 노란 솔잎 곱게 깔린 길을 지난다. 굉장히 예쁜 길이었는데 사진에는 잘 표현되지 않았다.
# 우측 운수계곡을 따라 올라 백련암, 운수암 거쳐 백두대간 능선에 합류하고 좌측 정상으로 갈 예정이다. 내일 하산은 좌측 길로 하산하면 될 것이고. 그러나 막상 산행은 원점회귀 코스를 택했다.
# 정상까지는 4.4km 거리다.
# 계곡을 건너는 곳에 돌다리가 있고 앞에 석종(石鐘)이 조각되어 있다. 스틱으로 석종을 두드려보았다. 아무 소리 없다. 일찌기 남명 조식 선생은 "지리산은 하늘의 종이라 하늘이 울려도 울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 돌종도 그러하다.
# 돌종은 응답이 없는데 승합차 한 대 휙 지나간다. 운수암까지 가는 차다. 운수암 아래 주차장이 있어 그곳에 주차하면 한 시간은 절약할 수 있다. 난 천천히 걷고 싶어 이 길을 걷는다.
# 명적암 갈림길 지나고,
# 중암 갈림길,
# 백련암 갈림길도 지난다. 이 산은 참 많은 절집을 품고 있다.
# 잠시 더 오르면 이 산속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운수암을 만난다. 시간 없을 때는 이곳까지 차를 가지고 오면 된다. 정상은 좌측길이다.
# 입구에서 만난 이정표에서 1.4km를 걸어왔다.
# 저이는 당일 배낭 차림인데 이 시각에 정상길을 잡았다. 조금 더 오르다 쉼터에서 만났다. 내 또래의 사람이다. 왠지 시름이 많아 보이는 느낌이다. "시각이 늦었는데 정상 가시냐? 하산할 때 어두워질 텐데 야간산행 준비는 하셨냐?" 걱정하였더니 발길 돌려 하산하신다...
# 점점 경사가 가팔라진다. 이정목에 운수봉이라는 산이름이 나온다. 운수암 위의 봉우리라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지도에는 천덕산으로 나온다. 20여 년 전 백두대간 종주할 때 나도 천덕산으로 알고 지나갔다.
# 갈수록 경사는 더 가파르다. 오랜만에 무거운 박배낭을 멨더니 힘이 부친다. 나무 계단 낑낑 밟고 하나씩 올라간다.
# 한걸음 한걸음 오르다 보니 백두대간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 백두대간 능선 도착. '운수암 갈림길'이다. 20년 만의 만남이다. 그때는 마눌과 함께 우두령을 출발해 바람재, 황악산을 넘고 괘방령까지 걸었다. 참 오랜 옛날이야기다.
# 괘방령을 가자면 다시 천덕산과 여시골산을 넘어야 한다. 괘방령은 옛날 과거 보러 한양으로 풍운의 꿈을 안고 상경하던 선비들이 넘던 고개다. 방(榜)이 걸리는(掛) 고개이니 기대감 높아 그랬을 것이다.
# 등짐 내리고 한숨 돌렸다. 찬바람 강하게 불어 체온이 금세 식는다.
# 다시 정상으로 향한다. 산행 시작한 지 1시간 20여분쯤 지났고 정상까지는 다시 1시간 반 가량 남았다. 능선을 넘는 바람이 차갑고 강하다.
# 능선길이라 전체적으로 완만하다. 큰 오르내림 없이 그러나 꾸준히 올라간다.
# 벌써 낙엽이 많이 쌓여서 스틱 끝에 꼬치 꿰이듯 걸린다.
# 정상은 상기 멀었다. 숲 너머로 정상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곧장 가는 것이 아니라 우측 봉우리로 올랐다가 다시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 구급함이 있다. 열어보니 다른 의약품은 없고 손 소독제만 있다.
# 정상을 착각하면 안 된다.
# 조망이 열린 벤치 쉼터가 나온다. 벤치 뒤 나무에 표지기 꽃이 피었다.
# 표지목 기둥에 누군가 "양키 고 홈"이라고 적어 두었다. 양키가 돌아가고 나면 그 자리를 김정은 군대나 시진핑 군대가 밀고 들어올 것이다. 양키가 마냥 좋아서가 아니라 양키가 가진 국제무대에서의 힘이 필요할 따름인데, 알고 저런다면 사악한 자이고 모른다면 무지한 자이다. 이렇게 좋은 산에서 저렇게 정신 나간 글을 보자니 욕지기가 치민다.
# 개소리는 잊고 한숨 돌린다. 조망 좋은 곳이라 노을 지는 산하 감상한다.
# 김천 일대 인간세가 발아래다.
# 노을을 배경으로 우뚝한 저 산은 김천 백마산인 듯한데 확실치는 않다.
# 노을 지는 산하 오래 감상하였다. 저 멀리 산줄기는 백두대간 능선이지 싶다.
# 정상은 황금 구름으로 모자를 썼다. 황악(黃岳)이라 불러 마땅하다.
# 다시 길을 나섰다. 봉우리를 오르고 좌측으로 방향을 잡았다. 황악산 정상부는 넓은 억새 군락지다. 예전 기억으론 평평한 곳이라 야영지가 있었다 싶었는데 전부 경사지다. 내 기억이 왜곡되었나 보다.
# 정상 직전에 있는 헬기장에 도착했다. 목표했던 야영지다. 그런데 엄청난 강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걱정이다.
# 걱정은 뒤로 미루고 일단 정상으로 향했다. 참으로 오랜만의 방문이다.
# 정상석 끌어안고 이십 년 만의 해후를 나눴다. 감격이다. 황(黃)은 중앙의 상징이다. 중앙에 섰으니 천하의 중심을 잡은 셈이다. 치우치지 않고 왜곡되지 않은 정신 가다듬었다.
# 황악 정상과의 해후 마치고 야영 준비를 했다. 헬기장에는 바람이 너무 강해서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짐 내려두고 정상 주변을 탐색했다. 금세 어둠이 내려 사이트 확보가 어려웠다. 별수 없이 헬기장에 설영했다.
내 텐트는 쭝국 농협표 초경량텐트다. 1.5kg에 못 미치게 극도로 가벼운 반면 홑겹의 매쉬 구조라 바람에 취약하다. 텐트 안으로 찬바람 쓩쓩 들어오고 폴대는 휘청휘청 스킨은 찢어질 펄럭인다.
이대로는 야영이 불가능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단 바람을 막아야 해서 얇은 1인용 매트로 바람벽을 세웠다. 두 귀퉁이는 땅에 고정하고 폴대로 기둥을 삼았다. 폭풍 만난 범선의 돛처럼 부풀기는 해도 어찌어찌 버텨주기는 했다.
# 집 지은 후 옷을 있는 대로 꺼내 입어 보온했다. 온기 도니 살만했다. 힘든 설영이었다. 설영 마치고 안정 되찾았으므로 정상 의식의 순서다. 준비한 저녁과 막걸리 한 잔 마시며 천하 중심의 기분 만끽했다. 텐트 밖으로 인간 세상의 불빛 휘황하다. 휘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가물거리기는 것처럼 저 불빛 각각의 사연 구구절절일 것이다. 막걸리 한 잔으로 그들의 사연 모두 들은 셈 하였다.
# 굉장한 밤이었다. 단 한순간도 바람이 잦지 않았다. 마치 미친 말들이 무리 지어 달리 듯 헬기장을 휘몰아치는 바람에 숲과 억새밭은 아우성치고 내 텐트는 밤새 펄럭였다.
# 늦게까지 잠 못 이루다가 새벽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죽은 듯 잠들었다가 텐트 펄럭이는 소리에 눈을 떴다. 바깥이 붉어 텐트 밖으로 나오니 일출의 여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 보통 밤새 강풍이 불더라도 아침에는 잦아들게 마련인데 이곳은 날이 밝았는데도 여전히 바람이 강하다. 내 야영장비는 허약한 내 체력을 감안해 경량화가 목표다. 텐트, 침낭, 매트, 취사장비 등등 장비 모두 경량화에 치중하다 보니 강성은 약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강풍에 박살 날까 봐 밤새 전전긍긍하였다.
내 걱정과는 달리 싸구려 저 장비들이 어찌어찌 잘 버텨주기는 했다. 다만 얇은 천으로 된 1인용 매트 한쪽 끈이 떨어졌길래 밤중에 스트링으로 긴급 보수하기는 했다.
# 일출이 더디다. 찬바람 강해 덜덜 떨며 일출을 기다렸다.
# 이곳 황악 정상 헬기장은 조망이 툭 트인 곳은 아니다. 수줍은 해가 얼굴을 바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억새풀로 가린 채 조심스레 나타난다.
# 휴대폰 카메라의 허접한 성능 때문에 표현은 잘 못되었지만 뜨거운 일출이다. 가슴 벌려 그 뜨거운 기운 가득 담았다. 세상의 중앙 황악에서의 일출이다. 왕기(王氣) 가득한 산에서의 일출이고. 마음껏 받아들여 부족함이 없을 일이다. 흐흐읍 흐흐읍 뜨겁게 받아들였다.
# 밤새 광풍(狂風)의 휘몰아침에 시달렸지만 이 아침 뜨거운 일출로 충분히 보상받았다. 오래 그 기운 받았다.
# 나는 요즘 간헐적 단식 중이라 조식은 생략이다. 물 한 잔 마셔 속을 진정시킨 후 철영하였다. 짐 다 꾸리고 나니 햇살 따스해지고 바람이 사라졌다.
# 짐 둘러메고 다시 정상에 올랐다. 황악 정상의 모습은 이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돌탑이나 해설판 등은 여전하고 정상석만 밝은 화강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 이 안내판도 예전엔 없던 것이다.
# 정상 뒤로 굽이치는 저 산줄기는 삼도봉, 석기봉, 민주지산 거쳐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 인 듯하다.
# 정상석과 함께 사진 한 장 남겼다.
# 정상과 작별하고 좌측 길로 하산하려는데 아침 일찍 정상을 찾은 어느 여성이 그쪾으로는 하산길이 없다고 한다. 엥? 황악산 제1코스 등로가 그쪽인데? 뭔가 내가 모르는 사연이 있지 싶어 원점회귀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잘못했다. 그냥 1코스로 하산하면 되는 일이었다.
광풍과 함께 격정의 밤을 보낸 헬기장과 다시 작별했다.
# 억새꽃 익어가고 있다. 해는 어느새 한참 올랐다.
# 하산 도중 억새밭 뒤로 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처음 보는 곳이다.
# 직지사를 품은 내원계곡이 발아래 펼쳐진다.
# 이 산에서 최고로 조망 좋은 곳이다. 오래 그 풍광 감상했다.
# 정상이 바로 뒤다.
# 형제봉,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하산길이다. 저 길로 하산하면 되는 것이었다.
# 다시 뜨거워진 햇살 받아 골짜기 깊게 온기가 퍼진다.
# 첩첩한 산그리메가 참으로 아름답다.
# 이제 곧 단풍 붉게 물들겠다.
# 황홀한 전망이다. 오래오래 그 자리에서 황악의 산하를 즐겼다. 그러다 다음 사람을 위해 자리 양보하고 짐 챙겨 하산하였다.
# 운수암 갈림길로 복귀.
# 이 능선을 따라가면 백두대간 길이고 산 아래에 괘방령이 있다.
# 어제 올랐던 길을 길게 내려 하산하였다. 올라갈 때 지나쳤던 운수암을 잠깐 찾았다. 운수암(雲水庵)은 비구니 사찰인 모양이다.
# 운수암 아래 계곡에 청량한 물소리 가득하다.
# 직지사 부도군. 옛 고승들의 안식처인 이곳은 따스한 햇살 아래 고즈넉하였다.
# 떨어져 쌓인 솔잎이 황금빛이다.
# 직지사 경내 구경도 잠시 하였다. 이곳은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세계다. 말로써 업을 쌓을 곳은 아니다. 입 꼭 다물고 잠시 둘러보았다. 대웅전 앞 불탑 주위로 꽃향기 가득하였다.
# 주차장에 복귀하여 산행을 마무리했다. 어젯밤 광풍과 함께 격정의 밤을 보낸 황악 정상이 올려다보인다. 감개무량하다.
이후 김천으로 들어가 사우나에서 깨끗이 씻고 추풍령으로 갔다. 산동무들이 어제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느닷없이 황악 정상에서 하룻밤 보내고 온 나의 행동을 의아해했다. 산꾼이 산을 찾아 하룻밤 유(留)하는데 까닭이 있겠는가? 그저 좋아 그랬을 뿐이지...
그나저나 황악의 바람은 정말 대단하였다. 오랜만에 만난 바람의 공격이기도 했고 뜻밖의 바람이라 좀 놀래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생각하니 황악과 바람은 따로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백두대간 황악산 구간은 우두령을 출발해 황악산을 넘고 괘방령에 이르는 산길이다. 기억 더듬어 보니 황악산 직전에 바람재란 높고 넓은 고개가 있다.
바람재는 이름처럼 바람이 많아 얻은 고개 이름이다. 천 미터가 넘는 높은 산들 사이에 상대적으로 낮은 안부로 자리 잡았으니 바람 없을 수가 없는 곳이다. 이십 년 전 마눌과 함께 백두대간 종주할 때도 바람 구경 실컷 한 기억이 있다.
원래는 목장과 농장이 있던 곳인데 십 수년 전 산꾼 모임으로 가봤더니 빈 건물만 남아 있었다. 너무 잦고 차갑게 부는 바람은 작물을 마르게 하고 생육을 방해한다. 동물 역시 바람 잦은 곳에서는 살찌기 힘들다. 바람의 역설이다.
바람재를 갖고 있는 황악산은 바람의 산이다. 그 바람재를 두 번이나 만났으면서도 바람을 잊고 있었다. 그 미친 듯한 황악의 바람을 정상에서 하룻밤 유하면서 제대로 경험했다. 놀랍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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