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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36-1(청량산 축융봉/淸凉山 祝融峰)-건너다보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 본문
산이나 들, 강, 바다와 같은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을 우리는 '풍경(風景)'이라 부른다. 한자로는 '바람 풍(風)'과 '볕 경(景)'을 쓴다. 이른바 바람과 햇볕이 그려내는 경치(景致)를 나타내는 말이다. 햇볕은 사물에 색깔과 형태를 부여하고 그림자를 만들어 깊이를 갖게 한다. 바람은 사물을 움직이게 하고 그 움직임의 소리도 일으킨다. 그리하여 모양과 그림자와 움직임과 소리가 공감각(共感覺)하여 풍경은 우리 오감(五感) 안으로 들어온다. 풍경이 한자어 風과 景을 쓰는 이유다. 인간은 감각의 동물이다. 감각으로 인지된 풍경은 인간의 심성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풍경은 기쁨으로 광활한 풍경은 호연지기로 삭막한 풍경은 쓸쓸함으로 인간 감정을 자극한다. 인간 감정의 희로애락이 풍경과 무관치 않아 우리는 좋은 느낌 갖고자 산으로 들로 바다로 찾아간다. 그곳 자연 속에서 우리는 바람과 햇볕이 그려내는 무늬에 안겨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슬퍼하며 또한 즐거워한다. 바람과 햇볕은 자유로운 존재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시시각각 변화한다. 그리하여 그의 모습은 천변만화(千變萬化)하여 한량(限量)이 없다. 봄이 다르고 여름이 다르다. 아침이 다르고 한낮이 다르다. 북쪽이 다르고 남쪽이 다르다. 풍경이 주는 한량없는 변모를 온전히 보자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자연 깊이 들어가 바람과 햇볕의 모습을 전 감각으로 느껴야 한다. 그러나 이곳에도 함정은 있다. 너무 깊이 들어가 있으면 전체를 보기 어려운 탓이다. 깊이 있어 그 속살은 느낄 수 있으되 그로 인해 전체의 모습은 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무릇 산속에서는 산을 보지 못하고 숲속에서는 숲을 보지 못하는 법이다. 그 폐단 막고자 옛 현인(賢人)들은 한걸음 물러나기를 권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 약간의 거리를 두면 산의 진면목과 숲의 전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으리라 하였다. '건너다보는 풍경'의 탄생이다. 세상 만물은 너무 가까이 다가가고 너무 깊이 들어가면 눈이 멀고 혼란스러워지는 법이다. 집착과 욕심이 눈과 의식을 흐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발 물러나 건너다보면 맑은 눈과 총명한 의식으로 온전히 풍경을 모두 볼 수 있게 된다. '청량산(淸凉山)'은 경북 봉화의 명호 강가에 있는 명산이다. 청량은 퇴계의 산이었다. 퇴계(退溪) 선생은 이 산을 사랑하여 스스로 청량거사라 부르기도 하였고 늘상 이 산을 찾아 심신을 도야(陶冶)했다. 청량산은 아름다움의 명성이 높은 산이다. 그 아름다움이 어찌 퇴계의 눈에만 들었겠는가? 청량의 명성은 온 세상 사람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하여 봄갈여름겨울 구분 없이 청량을 즐기려는 이들로 넘쳐난다. 나 역시 청량의 풍경을 느끼고자 여러 차례 그 산을 찾았다. 청량은 부처님의 손가락처럼 하늘 높이 솟은 육육봉의 암봉이 아름답고 손바닥 장심(掌心)에 안기듯 자리한 청량사의 풍광 역시 뛰어난 곳이다. 특히 가을날 단풍 들 때의 청량은 그 이름처럼 맑고 서늘하여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 그러나 역시 산속에서는 산을 보지 못하는 법이어서 청량 속에 들어가 있노라면 청량의 진면목을 보기는 어려웠다. 가을날 청량의 맑고 서늘한 기운에 한껏 취했음에도 전체로서의 청량을 온전히 보지 못한 아쉬움이 늘 남았다. 해결책은 있었다. 한 발 물러나 건너다보는 것이었다. 청량산 맞은편에는 같은 청량산군(淸凉山群)에 속한 '축융봉(祝融峰)'이 우뚝 솟아 있다. 높이 845.2m로 한껏 높은 산이지만 청량산의 명성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축융봉에는 삼국시대에 축성된 산성이 있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러 공민왕의 사당이 있기도 하다. 역사 깊은 산이다. 하지만 그동안 축융봉은 맞은편 청량산 육육봉의 명성에 가려 있었다. 청량이라는 명산의 곁에서 잊혀진 산으로 누누세세 그 자리를 지켜왔던 것이다. 청량의 육육봉과는 달리 한 봉우리로 단조롭게 솟은 외모에도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축용봉의 진가는 따로 있다. 청량산 조망처로서의 역할이 그것이다. 청량은 부처님 손바닥처럼 혹은 한 송이 연꽃처럼 하늘 높이 손바닥을 세우거나 꽃잎을 펼친 형태의 산이다. 그 중심에는 청량사라는 명찰(名刹)을 품고 있다. 청량의 육육봉과 그 품속의 청량사 전체를 완전히 보자면 건너다보는 것이 최선이다. 축융봉 산정에 서서 청량의 육육봉을 바라보노라면 '건너다보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 말을 실감하게 된다. 청량의 바람과 햇볕이 그려내는 무늬는 천변만화한다. 그 화려한 변화는 건너다볼 때 전체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2019년 어느 가을날 축융산정에서 노을지는 청량의 육육봉을 건너다보며 바람과 햇볕의 무늬를 오래오래 즐겼다. '건너다보면서...'
건너다보는 풍경이 더 아름답다! 일시 : 2019년 11월 2일. 흙의 날.
늦가을 깊어가는 11월 첫 주말. 두 개의 행사가 동시에 겹쳐 열린다. 하나는 오랜만에 가지는 가족 모임이고 나머지는 홀로 산꾼들의 가을 모임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선택은 중요도나 희소성에 그 기준을 두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중요하기로는 가족이 당연 먼저이겠으나 희소성으로는 산꾼 모임이 먼저다. 우리 홀로 산꾼들은 그동안 봄과 가을에 전국 모임을 가졌다. 평소 저마다 홀로 산길 걷던 전국의 산꾼이 일 년에 딱 두 번 등짐 지고 모여 막걸리 한 잔하며 회포 푸는 기회로 삼았다. 그런데 금년부터 봄 모임을 없애면서 일 년에 단 한 번만 모임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어쩌다 일이 생겨 모임에 한 번만 빠져도 이 년에 한 번 얼굴 보게 되는 일도 생기게 될 터였다. 가능하면 두 모임 모두 참석하는 묘수가 필요했다. 여러 방안을 고민하다가 좀 무리한 계획을 세웠다. 일단 가족 모임에 참석하여 토요일 하루종일 시간 보낸 후 저녁 늦게 산꾼 모임으로 이동하는 방안이었다. 가족 모임은 태백이고 산꾼 모임은 태백과 춘양의 경계인 도래기재이니 그다지 멀지 않아 가능할 계획이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해서 태백에 집결한 후 숙소 잡고 이런저런 행사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집안 모임이 취소돼버렸다. 평소 건강에 약간 문제가 있으신 분이 계셨는데 출발할 즈음에 갑자기 컨디션이 나빠지신 것이다. 또 다른 대안이 필요해졌다. 하루 동안의 일정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반나절 정도의 일정으로 소화할 수 있는 산행처가 필요했다. 도래기재 부근을 검색하다가 문득 축융봉 생각이 났다. 축융봉은 청량산군(淸凉山群)의 하나로 청량산 건너편에 우뚝한 산이다. 공민왕이 피난 와서 세웠다는 청량산성이 산허리를 휘감고 있는데, 무엇보다 이곳 산정에서 건너다보는 청량산의 조망이 일품인 곳이다. 예전 청량산 산행 왔을 때 축융봉의 위용을 보았고 그 산정에서 하룻밤 야영하며 청량산을 건너다볼 작정을 이미 오래전에 세운 터였다. 비록 축융산정에서의 야영은 못 하지만 청량산을 건너다보는 풍경 조망은 충분할 일이어서 갑작스러운 일정 공백의 대안으로 축융봉 산행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태백으로 향하던 자동차를 돌려 봉화 명호면으로 방향을 잡았다. 청량산성/淸凉山城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청량산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계획에 없던 일정 변경이라 청량산 도착이 아주 늦다. 청량산은 가을이 특히 아름다운 산이다. 때문에 가을 산을 즐기려는 등산객으로 언제나 넘쳐난다. 오후 늦게 청량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미 산행을 마친 산악회 버스 수십 대가 나래비를 서 있고 곳곳에 하산주 파티가 한창이다. 잠시 그들의 파티를 구경하다가 청량산 골짜기 안으로 깊게 들어갔다. 골 위에서 산행 마치고 내려오는 차량들이 많다. 제일 위에 있는 작은 주차장에 도착했다. 시각이 너무 늦어 마음이 급했다. 얼른 산행 준비 마쳤다. 축융봉까지는 2km 거리다. 가깝다. # 짐 챙겨 산행 들머리로 들어섰다. 오후 3시 30분이다. 주차장에서 차량 통제하던 알바생이 우리의 늦은 입산에 눈이 동그레진다. # 화려한 암봉으로 이뤄진 청량산과 달리 축융봉은 소박하다. 산행길도 산성을 따라 밀성대를 거쳐 정상으로 가는 길과 산길을 따라 공민왕 사당을 거쳐 정상으로 가는 길 두 가지뿐이다. 우리는 산길로 올라갔다가 산성길로 내려올 생각이다. # 순한 길이 위로 이어진다. 맞은 편에서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산객들과 지나쳤다. # 계곡을 따라 단풍이 물들고 있다. 올해는 시절이 늦고 기온이 높다. 그래서인지 단풍도 시절이 늦고 색깔도 약하다. # 흥얼흥얼 콧노래 부르며 위로 올라갔다. # 등로가 우측으로 휘감는 곳에 산성길 갈림길이 나온다. 낙석 때문에 등로가 무너진 곳이 있다고 산성길 입구를 막아두었다. # 애초에 우리는 그 길로 올라갈 생각이 없었으므로 순한 산길을 따랐다. # 축융봉 우측으로 갈라져 나간 봉우리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다. # 그 봉우리 절벽에 단풍이 물들고 있다. # 고개 들어 경치 구경할 일 많다. # 넓은 산길이 위쪽으로 이어져 있어 산행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 등로가 휘감는 곳에는 경사가 있어 가쁜 숨을 몰아쉬게 된다. # 가을 산의 냄새가 참으로 좋다. # 잠시후 밀성대로 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우리는 계속 직진의 등로를 따랐다. # 한차례 오르막을 오르자 묘지가 있는 공터에 자동차 두 대가 서 있다. # 단 세 가구 있다는 북곡리 마을이다. 이곳까지 오는 산길이 넓은 이유가 이 마을 때문이었다. # 길은 마을 우측으로 휘감는다. # 공민왕 사당을 보기 위해 잠시 등로를 벗어났다. # 100여 미터 위에 사당이 있다. # 단 두 개의 당집으로 된 소박한 사당이다. # 공민왕(恭愍王)은 고려 31대 왕이다. 고려 이름은 '왕전(王顓)'이고 몽골식 이름은 '왕바얀테무르(王伯顔帖木兒)'였다. 고려의 부흥을 꾀했던 개혁군주였다. 그러나 부인이었던 원나라 노국대장공주의 사후 혼미해져서 결국은 '흥왕사의 변'으로 내시 최만생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곳 청량산까지 몽진온 것은 홍건적(紅巾賊)의 난 때문이었다. 홍건적은 중국 원나라 말기 하북과 강남 일대에서 일어난 한족 반란군이다. 주원장이 홍건적의 수장으로 나중에 명나라를 세웠다. 공민왕 4년 모거경이 이끄는 홍건적이 침입한 이래 1361년(공민왕 10년) 다시 침입해 수도 개경을 함락시키는 등 피해가 컸다. 왕은 난을 피해 안동까지 몽진해야 했다. 이를 '복주천도(福州遷都)'라 한다. 복주는 지금의 안동이다. 안동은 내성, 춘양, 소천 등을 포함하고 있었으니 이곳 명호의 산성 역시 복주의 관할이었을 것이다. # 광감전(曠感殿)이라는 당호(堂號)를 가지고 있다. # 안내판에는 공민왕을 신으로 모신 사당이라 적혀 있다. 공민왕은 인간적 고뇌가 많았던 왕이지 신적 위엄의 대상은 아니다. 그의 불행했던 일생에 대한 추모라 생각하면 되겠다. # 사당 주변의 숲 느낌이 아주 좋다. # 공민왕에 대한 추념을 마치고 등로로 복귀했다. 이 동네 세 가구 주민은 세상 일과는 무관한 삶을 살지 싶다. # 코스모스 단아하다. # 북곡리 산중 마을을 지나 정상으로 향한다. 한차례 올리면 저멀리 마루금이 눈에 들어온다. # 이 묘지의 후손은 멧돼지 공격을 어지간히 받은 모양이다. 묘지 주변에 하얀 약품을 뿌려놓았다. # 마루금을 향해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 공제선에 도착. # 마루금은 산성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 마루금에 도착하니 비로소 청량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 울긋불긋 단풍 너머로 청량산의 모습이 성벽처럼 서 있다. # 몇 해 전 가을에 저 봉우리 전부를 걸었다. # 좌측 너머에 축융봉 정상이 올려다보인다. # 야영할 만한 곳이 있으려나? # 잠시 오르면 정상 아래 넓은 공터가 나온다. # 오마도터널로 이어지는 갈림길이기도 하다. # 축융의 정상은 두 개의 암봉으로 되어 있고 두 암봉 사이에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 우측 봉우리에 작은 정상석이 서있다. # 비로소 건너다보는 풍경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축융봉은 최고의 청량산 조망처인데, 오늘은 미세먼지 있어 대기가 온통 뿌옇다. 아쉽다. # 좌측 낙동강 방향의 조망이다. # 낙동강 상류의 은빛 물결이 가운데를 가르고 우측 청량산의 두들마 마을과 좌측 은장골의 고랭지밭이 보인다. # 맑은 날이면 축융에서 이런 조망을 볼 수 있다. # 청량은 여섯 손가락 하늘 향해 벌린 것처럼 보인다. 그 손바닥 한가운데에 청량사가 있다. # 낙동강과 은장골. # 나는 몇 해 전 가을에 우측 암벽길을 걸어 자소봉 정상으로 오르고 이후 마루금을 따라 좌측으로 자란봉, 선학봉을 거쳐 하늘다리를 건넌 후 청량의 정상인 장인봉에 올랐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 두들마 마을을 구경하고 암봉의 중간을 걸어 청량사까지 갔었다. # 잠시후 우리가 하산해야 할 길이 길게 가로로 누워있다. # 저멀리 낙동강이 구불구불 흘러내리고 있다. # 축융의 좌측 봉우리. # 청량산 주봉인 장인봉 중턱에 있는 두들마가 건너다보인다. 두들마는 청량산 중턱의 두메산골 마을이다. '두들마'라는 이름은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두들 혹은 두들마란 이름은 이곳 말고도 여러 곳이 있다. 모두 두메산골이다. 한자로는 보통 구촌(邱村/丘村)이라 적는다. 산비탈에 형성된 저 마을은 집집이 손바닥 만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랫동네에 마실 나갔다가 돌아올 때 술 취해 발 잘못 디디면 그 길로 인생 하직할 동네였다. 다만, 경치 하나는 천하절경이었다. # 은장골. # 좌측 봉우리에 올랐다. 이곳도 경치 좋은 곳이다. 팔 벌려 천지기운을 받아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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