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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43(설악산/雪岳山) - 추일설악(秋日雪岳) 본문
2006년 10월의 이야기다. 백두대간 종주(白頭大幹 縱走)를 시작한 지 1년 7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고 길었던 대간 종주의 마무리를 눈앞에 둔 때였다.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월악산, 소백산, 태백산, 오대산의 산군(山群)을 지나온 백두대간은 설악산군(雪岳山群)에서 대단원(大團圓)을 짓게 된다. 그 대단원의 마무리인 설악산 구간을 종주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때마침 추석 연휴가 일주일이나 되어서 대간 종주 마무리하기에 적당하였다. 그때 나는 직장 생활에 스트레스가 굉장하여서 하루하루 폭발하기 직전의 폭탄 같은 상태였다. 당시 내 스트레스의 표면적 이유는 목표 지상주의로 고착된 회사 정책, 줄타기만 하는 상사, 목표의식 없는 부하 팀장들, 무능하고 무책임한 직원들의 행태(行態)에 맞춰져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사실 모든 일의 원인(原因)은 나였다. 업적 부진도 각종 사고도 대부분 책임자인 나의 탓이었다. 비록 원인이 모두 외부 요인이었다 해도 나에게서 이유를 찾아야 해결이 가능하였다. 세상사 모든 일이 외부에서 원인을 찾으면 애초에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원래 타인과 외부 조직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존재(存在)이다. 그들은 모두 그들의 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세계 속에서 산다. 외부인인 내가 그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나는 그들에게 기준(基準)을 제시하여 길을 열어 줄 뿐이고,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내가 움직여서 그들의 흠결(欠缺)을 보충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것을 몰랐다. 그들의 무능에 무책임에 분노하고 질책하며 화를 키울 뿐이었다. 내 뜻과 달리 돌아가는 그들과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결국 그 분노(憤怒)가 나를 갉아먹고 있음을 그 화(火)로 인하여 내 몸과 정신에 병(病)이 들고 있음을 몰랐다. 그렇게 병든 몸과 정신으로 설악(雪岳)을 찾았다. 밤샘 운전과 이른 출발로 딱 두 시간 눈 붙인 후 산행을 시작했다. 아침 일곱 시에 한계령(寒溪嶺)을 출발해서 오르막 입구의 설악루(雪岳樓)를 통과했다. 추석 연휴이고 단풍철의 시작이라 설악에는 관광객의 물결 넘쳐났다. 많은 산객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르막을 올랐다. 두 시간 정도 치고 올라 한계삼거리에 도착했다. 시월 초 설악에는 막 단풍이 시작되고 있었다. 고운 단풍 군데군데 물들인 설악은 장쾌하고 아름다웠다. 돌아보면 귀떼기청봉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중청과 소청에서 좌측으로 갈라져 나간 용아장성의 용이빨들이 날카롭게 서 있었다. 그 순간 내 모든 분노와 아픔은 모두 사라졌다. 속세(俗世)의 모든 번뇌(煩惱)는 더이상 고통이 아니었고 오직 설악의 아름다운 자태(姿態)만이 나를 가득 채웠다. 그 아름다움 놓치기 싫어 카메라 셔트를 연속으로 눌렀다. 디지털 카메라 메모리가 걱정될 정도였다. 그렇게 서북 능선을 걸어 끝청을 지나고 중청대피소에 도착했다. 이윽고 대청봉에 올라 풍덩 뛰어들어도 좋을 듯한 동해바다에 취(醉)하고 우리나라 남녘 땅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대청(大靑)이 보여주는 동서남북 막힌 데 없는 광활한 풍광에 마음껏 반하였다. 황홀하였다. 그 황홀한 감동을 안고 중청대피소로 복귀했고, 다시 소청 거쳐 희운각 대피소로 내려갔다. 그때 희운각은 낡은 옛 건물이었는데, 취침 환경이 엄청나게 열악하였다. 좁은 방에 남녀 구분 없이 정원을 두세 배는 초과하여 입실(入室)시켰으니 정상적인 수면은 불가능하였다. 낯선 사람과 몸을 밀착하여 자는 것은 견딜 수 있다 해도 탱크 굴러가는 소리의 코골이와 잠꼬대로 욕을 해대는 아수라장 속에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밤 11시쯤 더는 견디지 못하고 마눌과 함께 방을 탈출했다. 대피소 처마 밑 좁은 공간에 자리 깔고 노숙자처럼 웅크려 잠을 청했는데, 대피소 뜰에서 밤새 술판 벌이고 개판 치는 몰상식 때문에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도저히 잘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새벽 다섯 시쯤 일어나 짐 정리하고 아침밥을 끓였다. 희운각 마당에서 음식 끓는 동안 카메라 메모리를 확인하는데, 갑자기 메모리가 포맷되고 있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멍한 상태여서 무심결에 포맷 버튼을 누른 모양이었다. 정신 차렸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 있었다. 카메라 속이 텅 비어 버린 것이다. 전날 설악의 풍광은 환상 그 자체여서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한 사오백 장은 찍은 듯한데 그 모든 사진이 전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참으로 허망한 일이었다. 그래서 내 백두대간 산행기의 설악산 부분 전반은 사진 없는 기행문(紀行文)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해 시월에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고 내 인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여러 우여곡절(迂餘曲折)이 있었고 파란만장(波瀾萬丈)의 물결이 일었다. 그 변화는 상처이기도 하고 치유이기도 하였다. 세월도 많이 흘러 십일 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그동안 이 땅의 여러 산맥(山脈)과 산정(山頂)을 꾸준히 찾아다녔지만, 설악은 다시 찾지 못했다. 그러다 금년 추석 연휴의 시작에 다시 설악을 찾을 기회가 생겼다. 금년 추석은 유래 없이 긴 연휴를 선사했다. 무려 열흘이나 되는 길고 긴 연휴가 이어진 것이다. 그 연휴의 첫 시작에 설악에 들기로 한 것이다. 설악은 국공파의 위수 구역이다. 요즘 우리나라 국공파 공단은 가장 교조적(敎條的)인 국가조직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규제, 금지, 단속, 처벌 등의 단어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휘두르고 있다. 따라서 국립공원 안에서는 그들이 정한 시간에 입산하고 정한 시간 내에 하산하여야 하며 정한 곳만 걸어야 하고 정한 곳만 봐야 한다. 국립공원에서 합법적으로 밤하늘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대피소가 유일하다. 하지만, 대피소 자리 확보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 그 안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이번 설악산 산행은 길게 확보된 시간과는 달리 당일 산행 외에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한계령에서 대청봉으로 올랐다가 오색으로 하산하는 코스였다. 기분 같아서는 야영하면서 공룡능선을 걷고 싶었지만, 좋은 연휴의 시작을 불안감과 죄책감으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눌의 체력이 아직 야영 배낭 메고 공룡을 넘기에 충분하지 않은 점도 고려하였다. 그렇게 계획을 잡고 보니 이번 설악 산행의 계획이 십일 년 전 백두대간 종주할 때와 비슷하여 잠시 놀랬다. 그때도 긴 추석 연휴에 설악을 찾았고 단풍철 많은 산객 틈에 섞여 설악을 걸었다. 그해 가을의 설악은 정말 황홀한 조망과 풍광을 보여주었지만, 여러 우여곡절로 점철된 사건사고 많았던 이틀이었다. 사람 많이 모여드는 계절이라 온갖 괴상한 사람들이 빚어내는 아수라장을 겪었던 것이다. 이번 설악 산행이 십일 년 전 설악행과 여러모로 비슷하지만, 그 점만은 비슷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때 겪었던 그 난장판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만 그날 설악에서 보았던 황홀한 풍광만은 그때 같기를 희망하였다. 그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기대만발한 채 짐 챙겨 설악으로 향했다. 추일설악(秋日雪岳)!!
한계령 ~ 설악루 ~ 1307봉 ~ 한계삼거리 ~ 1397봉 ~ 1474.3봉 ~ 끝청 ~ 중청대피소 ~ 대청봉 ~ 오색
우리처럼 설악에서 추석 연휴를 시작하려 생각한 이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한계령 일대는 주차 전쟁 중이었다. 한계령 휴게소는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오고 가는 손님이 중요하지 우리처럼 산으로 들어가는 손님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객이라 여기는 듯했다. 입구 문을 차단하여 등산객의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고개 이곳저곳을 넘나들며 주차 공간을 찾다가 오르막 입구 길가에 주차하였다. 다른 차들이 이미 길게 주차해 놓고 있기에 우리도 그 뒤로 꼬리 물어 주차한 것이다. 내가 주차한 뒤로도 차들이 연달아 길가에 주차하였다. 모두 당연한 듯 주차한 곳이라 안심하고 짐 챙겨 출발 준비하였다. 그런데 막 출발하려는데 한계령을 넘어 양양으로 가던 시외버스가 불법 주차된 우리들 차 때문에 중앙선을 넘어 고개를 넘고 있었다. 맞은 편에서 차가 넘어 온다면 큰일 날 일이었다. 좁은 고갯길 갓길에 주차가 길게 되어 있으니 일반 승용차는 문제가 없지만, 대형 버스는 지나가기 어려운 모양이다. 저래서는 양심에 찔려 안심하고 산행을 할 수 없다. 우리가 차를 뺀다고 해서 이미 길게 주차된 차들 때문에 변화 있을 일 없지만,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대로 떠날 수가 없었다. 다시 짐을 차에 싣고 한계령을 떠났다. 고개를 넘어 두어 굽이 돌면 필례령으로 넘어가는 갈림길이 있다. 예전 대간종주할 때 지나다녔던 길이고 점봉산 구간 할 때 비에 흠뻑 젖어 걸어 넘었던 길이기도 하다. 그곳은 차량 통행이 적은 곳이고 갓길도 넓은 편이다. 가보니 그곳에도 이미 여러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다. 우리도 빈 곳 하나 찾아 주차했다. 겨우 안심할 장소에 주차하였다. 이제 안심하고 짐 꾸려 한계령으로 향했다. 그럭저럭 3, 40분 이상 까먹었다. 설악산/雪岳山 높이는 1,707.86m이다.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지리산(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며 ‘제2의 금강산’이라고 불린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야 녹는다 하여 설악이라 불린다고 하였다. 또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서는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덮이고, 암석이 눈같이 희다고 하여 설악이라 이름 짓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 밖에 설산(雪山)·설봉산(雪峯山)이라고도 불렀다. 태백산맥 연봉(連峯) 중의 하나로 최고봉인 대청봉(大靑峯)과 그 북쪽의 마등령(馬等嶺)·미시령(彌矢嶺), 서쪽의 한계령(寒溪嶺)에 이르는 지역으로 그 동부를 외설악, 서부를 내설악이라고 한다. 또한 동북쪽의 화채봉(華彩峯)을 거쳐 대청봉에 이르는 화채릉, 서쪽으로는 귀떼기청봉에서 대승령(大勝嶺)·안산(安山)에 이르는 서북릉이 있으며, 그 남쪽 오색약수(五色藥水)터·장수대(將帥臺) 일대를 남설악이라고 한다. 외설악의 북부에는 쌍천(雙川)이, 남부에는 양양남대천이 흘러 동해로 들어간다. 그리고 내설악의 북부에는 북천(北川)이, 남부에는 한계천(寒溪川)이 서쪽으로 흘러 북한강의 상류를 이룬다. 지질은 화강편마암·결정편암·화강암 등으로 되어 있다. 편마암류가 부정합으로 덮인 중생대층에 대규모의 화강암이 관입하여 차별침식 및 하식작용으로 지금과 같은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경관이 만들어졌다. 연평균기온은 매우 낮으며, 산록에서 정상에 이르는 사이의 온도 차는 약 12∼13℃에 이른다. 동해와 접하고 있기 때문에 강수량도 많은 편이다. <이곳저곳>
# 필례령 넘어가는 언덕 위에 주차하였다. 그곳에도 이미 여러 대의 차가 주차하고 있다. # 망대암산을 돌아 보았다. 십일 년 전 비 철철 맞으며 저 산을 내려 왔었다. # 고갯길 걸어 한계령으로 올라갔다. # 한계령 입구에도 차들이 넘쳐난다. # 오색령 표지석 앞에 관광객들이 기념촬영 중이다. 오색약수 때문에 오색령(五色嶺)이라 불렀을 것인데, 18세기에 만든 해동지도에 그 기록이 나온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옛 지도에는 '소동라령(所冬羅嶺)'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 고개의 원 이름인 '바드라재' 가 '소등라(所等羅)'라고 이두식으로 표기되었다가 다시 발음 편하게 '소동라(所冬羅)'가 되었다 전해진다. 하지만 '바드라'가 무슨 뜻인지는 자료에 없다. 바다로 들어가는 고개인가? # 우리가 멀리 차를 주차하고 걸어 오는 동안 주차장이 개방되었다. 어쩔 도리 없다. # 양양쪽으로 내려다 봤다. 오색골 골짜기 깊고 아득하다. # 망대암산과 점봉산이 겹쳐 보인다. # 한계령 휴게소는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하다. # 휴게소 주차장 개방되니 하나둘 차들이 늘어난다. # 가볍게 몸 풀고 산행을 시작한다. 무려 십일 년만의 한계령 들머리 산행이다. # 계단 끝에 있는 설악루. 현판의 글씨는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중정부장 김재규의 글씨다. 김재규의 글씨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1968년 그가 사단장으로 있던 공병부대에서 한계령 길을 현대식으로 뚫고 포장하였기 때문이다. # 많은 산객 틈에 끼어 설악으로 스며들었다. # 한 차례 올리면 좌측으로 열린 조망처가 나온다. # 건너편 가리산의 위용 우뚝하다. 가리와 설악과의 사이 한계리 쪽으로 운해가 덮여 있다. # 다시 위쪽으로 방향 잡아 오른다. # 설악 한계령 길에는 철계단이 많이 생겼다. 예전 우리가 백두대간 종주 할 때는 이런 계단이 없었다. # 예전에는 모두 이런 돌 길이고 암릉 지대에는 철 말뚝과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 좋은 계절이라 설악을 찾은 사람들이 아주 많다. 수많은 산객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올랐다. #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려 능선에 올라섰다. # 씨앗이나 곤충을 포집하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 돌 박아 놓은 능선길을 따라 위로 오른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죄다 이런 돌 길이다. 등로 보호의 명분으로 국공에서 한 일이다. 등로는 보호될런지 모르겠지만, 산객의 무릎은 박살이 난다. 이런 돌 길을 오래 걸으면 강한 충격이 무릎에 고스란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 국공파에게 대항할 힘이 없는 우리는 그저 순응할 뿐이다. 희한한 일이다. 분명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그들을 고용하고 월급을 주는데, 국립공원 안에서는 그들이 주인이고 왕이다. # 긴 오르막 끝에 1307봉에 도착했다. 서북능선에 있는 한계삼거리까지는 한 번에 위로 밀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삼 단 정도 오르게 되어 있다. # 이곳이 1307봉의 끝부분일 것이다. 못 오르게 줄을 막았어도 기어이 오르는 이들이 있다. # 다시 아래로 잠시 떨어져 내려야 한다. # 가을 단풍 물든 설악의 산하가 참으로 곱다. # 단풍 구경하며 허위허위 걸었다. 가파른 오르막 뒤에 찾아온 평지라 발걸음이 가볍다. #어허~ 불 탄다! # 도둑바위골 쪽 봉우리 하나 우뚝하다. # 1310봉을 찍고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 하늘 장수가 가지고 놀았을 공깃돌 하나 암봉 위에 놓여져 있다. # 이곳도 예전에는 바위에 박힌 쇠밧줄 잡고 올랐던 기억이 있다. # 단풍 고운 곳이라 산객들 발걸음 일제히 멈춰 선다. # 이런 멋진 조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계령 너머 가리봉, 인제 원대리 일대, 저멀리 가로로 누운 산줄기는 백두대간이지 싶다. # 그 골짜기 마다 운해 가득하다. # 기가 막힌 풍경이다. 그저 입 딱 벌리고 오래 그 자리에 돌이 되었다. # 마냥 돌이 되어 서 있을 수는 없어 다시 길을 나섰다. # 이 돌기둥은 설악의 절경에 반한 누군가가 그 자리에 돌로 굳어 버린 것인가? # 긴 계단길이 다시 앞에 하늘 같이 곤두서 있다. # 철계단 오르다 고개 들어 위를 보니 김삿갓(金笠)이 석상이 되어 서 있다. # 땡겨보니 영락 없는 김삿갓의 뒷모습이다. 삿갓과 죽장으로 팔도를 유람한 김립이 드디어 이곳 설악에서 돌이 된 모양이다. # 긴 오르막 끝에 한계삼거리에 도착했다. # 내설악 일대의 조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 귀때기청봉에서 구곡담으로 흘러내리는 암릉이 용의 이빨같이 날카롭다. # 진짜 용의 이빨은 우측 전방에 날카롭게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 찬바람 불어 땀을 씻어 준다. 금세 몸이 으슬으슬해진다. 단체 산객들의 고함소리도 요란하다.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 대청을 향해 서북능선에 발을 내디뎠다. # 우측으로 조망이 열렸다. # 붉은 단풍과 하얀 암봉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 전방에 점봉산 우뚝하다. 그 뒤로 길게 누워 첩첩한 산하는 백두대간이다. # 이 놈의 돌 길! 요즘 일부 지자체에서는 근교의 산길에 야자매트를 깔아 등로를 보호하고 주민들 건강도 챙긴다. 국립공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돌보다는 수명이 짧겠지만, 매년 수백만 명의 산객이 찾는 것을 감안하면 그 정도 예산은 투입할 가치가 충분하다. 쓸데없이 반달곰 복원한다고 예산 낭비하는 것 보다는 백 번 나은 일이다. 곰 같은 맹수를 한 해에 수백만 명이 찾는 산에 풀어 어쩌자는 것인가? 게다가 그 반달곰은 우리 고유종도 아니고 비슷하게 생긴 외국종이지 않는가? # 한계삼거리 곁에 우뚝 솟은 저 봉우리는 빼어난 자태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얻지 못했다. # 이 산줄기가 흘러 한계령으로 내려간다. # 서북능선의 주요 포스트인 1456봉과 1461봉이 나란히 솟아 있다. # 우리는 이 데크길도 생소하다. # 그 길 끝에 조망처가 있다. # 중청에서 흘러내리는 용아장성 일대의 산하가 장쾌하게 누워 있다. # 용아와 귀태기청 능선. 그 뒤로는 공룡능선과 미시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보인다. # 맨 뒤에는 저항령 너머 황철봉이지 싶다. 그 앞에 뾰족한 봉우리는 마등령봉일 것이다. # 중청의 모습 우뚝하다. # 전방의 조망을 파노라마로 그려봤다.(이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me too! # 다시 대청을 향해 출발! # 아직 5km 넘게 남았다. # 이런 돌길을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 만약 이런 멋진 조망이 없다면 다시 찾을 일 없을 것이다. # 망대암산과 점봉산. 십일 년 전 백두대간 종주할 때 우리 부부는 하루 종일 비에 젖은 채 힘겹게 저 능선을 걸었다. # 옛 추억을 되새기며 설악과 함께 한다. # 설악의 길은 이렇게 가파르기도 하고, # 가끔은 이렇게 평탄하기도 하다. # 그리고 변함없이 이렇게 아름답다. # 인제 방향의 산하가 수묵담채(水墨淡彩)의 모습으로 황홀하다. # 아무리 경치 아름다워도 갈 길은 멀고 만만치 않다. # 암릉길에 취약한 마눌은 이 날 고생 좀 하였다. # 단풍철이라 설악을 찾은 사람이 많았다. 사람 무리 많아지면 다양한 사람 모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사고 발생할 가능성 많다. 이 날도 다름없었다. 여러 종류의 모임이 눈에 띄더니 그예 사고가 났다. 한계삼거리 쪽에 구조헬기가 떴다. # 착륙할 곳 없으니 대원이 자일 타고 하강한다. 그 자일로 부상자 끌어 올리자니 쉬운 일이 아니다. # 1456봉에 올랐다. # 중청 너머로 공룡능선이 용틀임하고 있다. # 중청은 아직 아득하다. # 사실 우리도 이번에 저곳 공룡능선을 탈 계획을 세우기는 했다. 마눌의 근심걱정과 국공파의 공격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여 다음으로 미루기는 했지만... # 땡겨보니 중청의 축구공도 보인다. # 멋진 포토 포인트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찬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고 있다. 자칫 실족하면 큰일이다. # 하얀 암릉이 발달한 중간의 산은 망대암산이고 뒤쪽의 우뚝한 산은 점봉산이다. # 좌측 아래로 필례령 넘어가는 도로가 보이고 우측에 가리봉과 주걱봉이 우뚝하다. # 석고덩골 너덜밭을 따라 강한 바람이 올라오고 있다. # 조망바위에서는 누구나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 다시 출발이다. # 설악은 곳곳이 절경이다. # 한 차례 올려 1461봉에 도착했다. 공터가 있어 쉬면서 간식 먹는 이들이 많다. # 중청대피소까지는 3.1km, 대청까지는 3.7km 남았다. # 솔방솔방 가보세! # 단풍 예쁘게 든 길을 따라 길게 진행했다. # 잠시나마 돌길에서 벗어나니 발바닥이 웃는다. # 그러다 위로 한차례 밀어 올리면 끝청에 도착하게 된다. 끝청은 해발고도 1610m이다. # 서북능선 걷는 동안 일기가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하늘이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 안내도에서 알려준 그 방향의 조망이다. 지나온 서북능선과 귀때기청봉, 그리고 좌측 뒤로 가리봉과 그 산 우측에 뾰족한 주걱봉이 보인다. # 망대암산과 점봉산, 그리고 그 너머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장쾌한 흐름이다. # 우리는 2006년 가을에 바람 강하게 불고 비 추적추적 하루종일 내린 날 저곳 점봉산과 망대암산을 넘었다. 힘든 산행이었다. # 오색골 너머로도 산첩첩이다. # 좋은 가을에 좋은 산을 찾은 이들 많다. # 이제 다시 중청을 향해 출발이다. # 내설악의 장관이다. #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의 암봉들이 두 마리 용으로 길게 누워 있다. # 저멀리 봉정암이 보인다. 지금 저 사찰에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 이제 대청봉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 중청의 하얀 축구공도 보인다. # 두 봉우리를 동시에 조망. # 얼마전 회사 임원 두 분이 설악에 간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날이 오늘이다. 두 사람 중 한 분은 산을 자주 타는 사람이고 한 분은 이날이 거의 처음인 사람이다. 그들이 설악에 간다는 얘기만 들었지 어떤 코스를 선택했는지는 몰랐다. 안내산악회를 따른다면 아마도 우리와 코스가 같으리라 짐작했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산객들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중청이 바라다보이는 사면에서 간식 먹으며 잠깐 쉬었는데, 산객들이 종종 지나갔다. 문득 그들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정말이었다. 그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름을 불렀더니 깜짝 놀란다. 미아리에 돗자리 깔아야 할 것 같다. # 직장 동료들과 함께 중청으로 향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중청대피소와 대청봉이다. # 중청대피소에 도착했다. 찬바람 어마무시하게 불고 있었다. 인증샷 남기고 있는 동료들이다. # 속초와 동해바다가 발아래다. # 찬바람 강하여 몸을 가누기 어려울 지경이다. 잔뜩 웅크린 채 대피소로 향했다. # 찬바람 너무나 강해 바깥에서는 식사는 물론 잠깐 서 있기도 불가능했다. 차례 기다렸다가 지하 취사실로 내려갔다. # 따끈한 국물 끓여 막걸리 한 잔 나눴다. 맨날 일 이야기만 함께 하던 직장 동료와 설악에서 막걸리 한 잔 나누니 참으로 정겹고 좋다. # 긴 식사를 즐긴 후 짐 챙겨 대피소 밖으로 나왔다. # 바깥 기온은 더 떨어졌다. 바람은 더 강해졌고. # 울산 바위가 추위에 떨고 있다. # 화채능선. 원백두대간길이지만, 출입금지 구간이다. # 한계령 쪽으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 우리는 대청봉을 향해 출발했다. # 그런데 그 시각 대청봉 길은 정말 엄청난 강도의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 찬바람이 워낙 강해 체온이 급강하했다. 우모복과 고어자켓 등 준비해간 옷을 모두 꺼내 입었지만,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다. # 중청대피소와 중청봉. # 눈잣나무는 땅바닥에 바짝 몸을 낮추고 있다. # 작별이다, 중청이여! # 정말 엄청난 바람이다. 몸을 가누기 힘들다. 급기야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 밧줄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 밧줄 잡고 올라야 했다. # 악전고투(惡戰苦鬪)란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 몸무게 가벼운 여성들은 휘청휘청 쓰러진다. 그녀들의 비명소리 난무하였다. # 위로 오를수록 비바람은 더 거칠어졌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증샷 욕구는 세계 최고이다. 몸을 가누기 힘들게 찬바람 강한데 정상석 사진 찍겠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브이'도 빼 먹지 않는다. 대단하시다! # 꼭 우리 사진이 나와야 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 정상석만 나오면 되는 것이다. # 사진 찍기 위해 줄 선 이들 교대하는 잠깐의 찰나에 뛰어가서 정상석 한 번 어루만져 교감 나누면 정상 인증으로 충분하다. # 그래도 정상 사진 하나는 남겨야지. # 그러나 강한 비바람 때문에 눈을 뜰수가 없으니 삼각점 배경으로 한 정상 인증 사진 조차 제대로 남길 수가 없다. # 정상 뒤쪽 바위 바로 아래는 같은 정상이라도 바람에서 벗어나 있다. 마침 누군가 태극기를 바위에 올려 두었다. 태극기 어루만져 국태민안(國泰民安)하고 만고번영(萬古繁榮)하기를 기원하였다. # 누군가 애국심 강한 이가 다녀간 모양이다. 정상 여러 곳에 태극기를 매달았다. # 저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설악동으로 갈 수 있다. # 그러나 오늘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오색이다. # 대청봉과 작별하고 다음을 기약하였다. # 오색 방향에서도 찬바람 올라 오고 있다. # 지금 오색에서 올라오는 저이들은 정상 찍고 어디로 갈 작정일까? 대피소 예약했나? 오색 방향에서도 비가 왔나 보다. 우비를 입고 있다. # 이제부터 가파르기로 유명한 오색 하산길을 내려가 보자. #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자 숲길이 나타난다. 이곳은 바람이 적다. 비로소 강한 찬바람에서 벗어나게 된다. # 찬바람 없으니 숲도 평온하다. # 다시 가을냄새 가득한 숲을 즐길 수 있다. # 상당 구간까지 적당한 경사의 내리막이 이어져 가을냄새 만끽하며 내려간다. # 등로 주변으로 보랏빛 투구꽃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 오래된 숲이다.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곳이다. # 이윽고 아주 가파른 내리막이 길게 이어진다. # 무거운 등짐 지고 이 길을 올라 가자면 고생 꽤나 하겠다. # 고사목 하나가 트위스트로 몸을 비튼채 말라 죽었다. 주목인데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 가파르기가 정말 아찔한 곳이다. 체중이 온통 하체로 집중된다. 무릎과 발목이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 무릎이 얼얼할 무렵 계곡에 도착했다. # 하산 도중 계곡에서 열받은 발을 식히는 이들이 많다. # 이 계곡 아랫쪽에 설악폭포가 있다. # 길고 긴 내리막에 무릎과 발목이 남아나질 않겠다. # 제1쉼터에 도착했다. # 아주 오래된 금강송 몇 그루가 쉼터를 지키고 있다. # 슄터에서 한숨 돌린 후 다시 길을 나섰다. # 다시 극강의 내리막이 길게 이어진다. 토사유출 방지를 위해 등로를 전부 돌로 덮어 둔 곳이다. 이렇게 돌을 박아 둔 곳은 무릎이 완전 박살나게 된다. # 경사가 하 가파르니 똑바로 내려가지 못하고 옆걸음으로 내려가게 된다. # 정말 힘든 내리막이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구간이다. # 가뭄이 길어 계곡에 물이 적다. # 길고 긴 내리막을 걸은 후 오색탐방지원센터를 나서게 된다. # 시각이 많이 흘렀다. 어느새 땅거미 내려 어둠 찾아오고 있다. # 산행을 마친 이들이 산악회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 안내 산악회편으로 온 사람들이다. # 산악회 버스 때문에 대청봉에서 먼저 하산했던 직장 동료들을 다시 만났다. 맨날 회사에서 보다가 설악에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 이후 택시 편으로 한계령 올라가 자동차를 회수했다. 다시 긴 운전 끝에 밤 늦게 귀가했다. 집에 돌아와 짐 정리하고 밖을 보니 보름달이 휘엉청 밝게 떠 있다. 추석 보름달이다. 저 달을 설악산정에서 보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다음을 기약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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