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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44(운악산/雲岳山)-현등(懸燈)의 산 운악(雲岳)!! 본문
桑下曾經種夙因 / 水分雲隔十三春 / 如今蓮鉢垂垂老 / 依舊樺巾可可貧 / 硏露題詩添瘦冷 / 斸烟栽藥養和眞 / 入門一笑看靑眼 / 到處靈泉作主人 <雲養集 - 贈明涵長老> 상하증경종숙인 / 수분운격십삼춘 / 여금연발수수노 / 의구화건가가빈 / 연로제시첨수냉 / 촉연재약양화진 / 입문일소간청안 / 도처영천작주인 "뽕나무 아래에서 일찍이 오랜 인연을 맺고 / 물 나뉘고 구름 막힌 채 십삼 년이 지났네 / 지금은 연꽃 발우 점점 늙어가고 / 여전한 자작나무 껍질 두건 가난하기도 하네 / 이슬 갈아 시 적으니 수척함 더하고 / 연기 베어 약초 심으니 진기가 길러지네 / 문 들어서자 한번 웃으며 반겨 주는 눈 / 도처에서 나오는 영험한 샘물의 주인이 되었네." 인연(因緣)을 노래한 이 시는 '운양집(雲養集)'에 나오는 시이다. 운양집은 구한말 온건 개화파 인사였던 '운양 김윤식(金允植)'의 문인인 황병욱(黃炳郁) 등이 스승을 기려 편찬한 문집이다. 제목인 '증명함장로(贈明涵長老)'는 현등사 주지인 명함에게 주는 시를 뜻한다. 문집에는 이 시작(詩作)의 사연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丁巳夏 / 余飮泉于彌智之上元庵 / 明涵主寺事 / 今余飮雲岳之泉 / 明涵間復移錫于懸燈寺 / 再作主人 / 意有緣湊 / 誠非偶爾也 ; 정사년(1857, 철종8) 여름에, 나는 미지산(彌智山) 상원암(上元庵)에서 샘물을 마셨는데 명함(明涵)이 그 절 주지였다. 지금 나는 운악산(雲岳山) 샘물을 마시고 있는데, 그 사이 명함은 현등사(懸燈寺)로 이석(移錫)하여 다시 주지가 되었다. 인연이 있어서 모였으리니, 참으로 우연은 아닐 것이다." 미지산(彌智山)은 용문산(龍門山)의 다른 이름이다. 시에서는 용문산 상원암의 주지였던 명함(明涵)과 샘물을 매개로 맺어졌던 인연이 다시 운악산 현등사로 이어졌음을 노래하고 있다. 용문산은 계곡이 좋은 산이다. 운악산 역시 산 곳곳에 수량 풍부한 계곡과 샘물을 품고 있다. 모두 산 높고 골 깊어 그렇다. 높고 깊은 산에는 사찰 또한 많다. 운악산에는 산 이름과 같은 '운악사(雲岳寺)'와 '현등사(懸燈寺)'가 산의 동서 사면(斜面) 깊숙이 숨어 있다. 원래 명산(名山)은 대찰(大刹)을 품어 선풍(仙風)이 산속 깊이 어리게 만든다. 그러면서 서로 이름을 공유하여 일체(一體)를 이루게 된다. 이름의 일체는 산 이름이 먼저이기도 하고 절 이름이 먼저이기도 하다. 운악산에는 운악사(雲岳寺)가 있다. 운악산의 다른 이름은 현등산(懸燈山)이다. 그리하여 현등산에는 현등사(懸燈寺)가 있다. 운악산이라 할 때는 산 이름이 먼저이고 현등산이라 할 때는 절 이름이 먼저이다. 현등사는 역사가 오래된 절이다. 신라 법흥왕 때 인도승 마라가미(摩羅訶彌)가 포교차 신라에 온 것을 기념해 왕이 창건하였다 전한다. 이후 고려 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중창하였다. 보조국사가 도봉산 원통암에 있을 때 동쪽 산에서 삼일 주야간으로 불빛이 빛나 찾아가 보니 허물어진 절의 관음당(觀音堂)에 석등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불빛이 사방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다. 그래서 절을 중창(重創)하고 절 이름을 현등(懸燈)이라 정하였다. '懸'은 "매달다", "내걸다"란 뜻이다. 재미있는 것은 운악은 산 이름이 먼저라 사찰이 작고 아담한 반면 현등은 절 이름이 먼저라 사찰이 크고 웅장하다. 두 개의 이름 중 운악은 산의 이름이요 현등은 절의 이름인 탓이다. 다만 사람들이 나중에 절 이름을 따 현등이라 함께 불렀을 따름이다. 기록에도 운악이라는 이름이 많다. '동람도', '청구도', '세종실록지리지', '해좌승람', '대동여지도', '경기 37관도', '경기 38관도', '대동지지', '여지도', '동여도', '대동여지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문헌비고', '해동도' 등에 운악(雲岳)이라는 기록이 등장한다. 현등이란 이름은 '해동여지도' , ' 포천군읍고지도'에만 독자적으로 나오고 '동여비고', '경기고지도첩', '여지도', '천하여지도책'에는 운악과 현등이 병기(倂記)되어 있다. 결국 원래 바위 많고 그 산정이 구름 위에 우뚝하여 운악(雲岳)이라 부르던 산을 큰 사찰인 현등사의 이름을 따서 간혹 지역 주민들 사이에 현등산이라 불러왔음을 알 수 있다. 덕분에 운악은 바위 많아 얻은 이름인 악(岳)자 때문에 거칠게 느껴지던 산 이름에 등불을 내걸어 세상 번뇌를 몰아내고 밝은 지혜를 밝혀 주는 현등(懸燈)이란 선풍 넘치는 이름을 얻었으니 세상 사람들 운악이라 불러도 좋고 현등이라 불러도 좋을 금상첨화(錦上添花)를 이루었다. 운악은 원래 한북정맥(漢北正脈)에 속한 산이다. 한북정맥은 한수(漢水)의 북쪽 울타리를 이루는 산줄기다. 수피령을 출발한 한북은 복주산과 광덕산을 넘은 후 흰 구름 걸린 백운산을 솟구치고 다시 도마치봉, 국망봉, 민둥산, 강씨봉을 넘은 후 이곳 운악으로 이른다. 운악은 바위 많고 험해 백두대간과 아홉 정맥 중 가장 위험한 암릉길을 가졌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지독한 원칙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위험한 암릉 구간을 우회하여 진행한다. 나는 십수 년 전에 아주 우여곡절 많은 한북길을 걸었다. 그해 가을 홀로 한북길을 걸어 운악산을 바로 앞둔 노채고개에 도착한 이후 덜컥 무서운 질병에 걸려 버린 것이었다. 이후 반년 넘게 투병과 재활을 거친 후 다시 정맥 종주에 나선 것이 바로 이곳 운악이었다. 그때는 내 건강을 염려해서 마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맥 종주에 동참했었다. 둘이서 전전긍긍(戰戰兢兢) 살얼음판 건너듯 조심스레 운악을 넘었다. 당연히 위험한 암릉 구간은 우회하였다. 조심스러운 산행이었지만 무사히 운악을 넘었고 이후 자신감을 얻어 다시 정맥 종주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륙 년 후 1대간 9정맥을 완주할 수 있었다. 운악은 나에게 이런 인연(因緣)의 산이었다. 마눌에게도 남편 재활의 첫 출발을 함께 했던 의미 깊은 산이다. 그때 운악의 산정에서 우리는 나중 기회 되면 이 산정(山頂)에서 하룻밤 머물며 별구경을 하자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오래 이뤄지지 못했다. 1대간 9정맥의 완주라는 큰 목표가 우선이었기에 다른 산에는 눈길 주기 어려웠고 정맥 완주 이후에도 이상하게 운악과는 인연이 쉬 연결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늘 운악의 앞뒤를 지날 때는 저 산정에서의 하룻밤 약속이 되새겨지곤 했다. 맺어질 인연이란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맺어지기 마련이다. 가을이 깊어가던 시월의 어느 주말. 야영지를 두고 고민하던 차에 마눌과 내 입에서 거의 동시에 운악이란 이름이 등장했다. 우리 둘 다 운악산정에서의 하룻밤이 늘 바람으로 가슴 속에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인연의 끈 이어보고자 무거운 등짐 꾸려 집을 나섰다. 그 산정에서 하룻밤 보내고 오면 가슴 속에 등불 하나쯤 빛날 것 같은 느낌 가득 안고서 말이다.
현등(懸燈)의 산 운악(雲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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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순환도로 타고 달리다 퇴계원에서 빠져 나와 47번 국도로 갈아탔다. 진접과 내촌을 거쳐 북상하다가 수원산을 지나 잠시 달리면 도로 우측으로 우뚝한 운악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 운악산 주차장이 있다. 운악산/雲岳山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과 가평군 조종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936m. 광주산맥의 여맥 중의 한 산으로 북쪽으로 청계산(淸溪山, 849m)·강씨봉(姜氏峯, 830m)·국망봉(國望峯, 1,168m) 등으로 이어져 포천시와 가평군의 경계를 이룬다. 산의 동북쪽에는 화악산(華岳山, 1,468m)·명지산(明智山, 1,267m) 등의 명산이 있다. 산의 동쪽사면을 흘러내린 계류는 청계산·명지산 등에서 흘러내린 계류와 합류하여 조종천(朝宗川)이 되어 넓은 하곡을 이루며 남류한다. 조종면에서 운악산을 오르면 장엄한 무우폭포(舞雩瀑布)가 있으며, 산 중복에는 현등사(懸燈寺)가 있다. 이 절은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된 고찰로 고려 희종 때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석등을 발견하고 여기에 재건하여 현등사라 하였다. 그 뒤 여러 번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현재 지진탑(地鎭塔)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또한, 6·25전쟁 전까지 도요토미[豊臣秀吉]의 금병풍이 남아 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운악산은 현등사의 이름을 따서 현등산이라고도 한다. ‘경기금강(京畿金剛)’으로 불리는 이 산은 이름 그대로 산악이 구름을 뚫고 구름 위에 떠 있는 것과 같은 암봉의 절경 명산이다. <이곳저곳>
# 운악산 주차장. 예전에 볼수 없던 것인데 새로이 단장한 모양이다. 시각이 늦어 한산하다. # 운악산 휴게소 뒤로 운악산이 올려다보인다. # 가볍게 몸 풀고 등짐 챙겨 주차장을 떠났다. # 주차장 바로 곁에 운악산 입구가 있다. # 입구에 안내도가 있다. 우리는 왼쪽 1코스로 올라갔다가 가운데 2코스로 내려올 작정이다. # 시각이 늦어 산객들 대부분 이 산을 떠났다. 입구 지나 올라 가는 길이 인적없이 한산하다. # 조금 오르면 다시 안내도가 나오고 그 곁에 가게들이 있다. # 펜션과 카페를 겸하고 있는 '사랑으로'라는 집이 있다. # 그 곁 광장에 운악산 비석이 서 있다. 그 비석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남겼다. # 사랑으로 카페 앞에서 1코스와 2코스가 갈린다. # 우리는 1코스로 진입했다. 나무 계단을 따라 등로는 시작된다. # 그러다 작은 계곡도 지난다. # 잠시 오르니 벌써 몸에 땀이 돈다. 배낭 내리고 겉옷 벗어 패킹하였다. # 올려다 보니 소나무 푸르고 싱싱하다. 이 산은 소나무가 성한 산이다. # 그 솔숲 길을 따라 다시 산을 오른다. 등짐 무겁다. # 산행 마치고 하산하는 이들을 만났다. 이들도 늦게 하산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서야 산행을 시작하고 있다. # 산길은 잠시 산허리를 휘감아 돌며 편안해진다. # 길이 다시 가팔라지는 곳에 폭포 갈림길이 있다. '무지치폭포 전망대'란 이정표가 있고 너머에 팔각정이 있다. 무지치폭포는 궁예왕이 백성들에게 쫓겨 들어와 피를 씻은 곳이라 하는데, 한자로는 '홍폭(虹瀑)'이라 쓰고 있다. '무지개 虹' 자를 쓴다. 네이버 지도 등 일반 지도에는 무지개폭포라고 적혀 있다. # 지금은 물 없을 시기다. 전망대로 간들 폭포 구경할 수 없다. # 곧 다시 윗쪽으로 길을 잡았다. # 등짐 무거우니 숨소리 거칠다. 기차 화통소리 같은 숨소리 내쉬며 위로 오른다. # 길게 오르니 무지치폭포 하단 갈림길이 나온다. 다음에 물 철철 흐를 때를 기약하고 폭포는 패스. # 숲 너머로 폭포가 건너다 보인다. 희미하나마 물소리가 들린다. # 계단 높은 곳은 용을 쓰며 올라야 한다. 등짐 무거우니 계단도 버겁다. # 매양 주말마다 이렇게 등짐 지고 산을 찾지만, 도시생활에 익숙한 우리 몸은 늘 무거운 등짐이 부담된다. # 암벽 아래에 누군가 작은 제단을 만들어 두었다. # 우리도 돌 하나 세워 작은 기원을 올렸다. # 고도가 높아지면서 산은 점점 바위산으로 변해간다. # 숲 너머로 폭포 상단이 건너다 보인다. 이 폭포는 높이가 210미터에 이르는 대규모 폭포라는데 겨울에는 빙폭 등반을 하는 산악인들이 많이 찾는 모양이다. # 길은 점점 더 가팔라진다. # 로프 설치된 길을 따라 위로 오른다. # 그 길 상단에 작은 성벽 하나가 나타난다. # 암벽에서 능선 바깥으로 20여 미터쯤 되는 성벽을 쌓아 두었다. 대규모 산성의 치(雉) 같은 전망대 역할인 모양이다. # 그 성벽 끝에 서서 운악의 정상부 주변을 둘러 보았다. # 운악 정상부가 올려다 보인다. # 멀리 서파교차로와 그 너머로 수원산이 건너다 보인다. 한북정맥은 운악에서 서파 거쳐 저곳으로 이어진다. # 우측 숲 아래로 폭포 상단이 내려다 보인다. 궁예왕은 왕건 일당에게 쫓겨 길을 헤매다 어느 백성의 가래에 머리를 찍혔다. 피투성이가 되어 운악으로 도망온 궁예왕은 무지치 폭포물로 선혈을 씻었다. # 성터를 떠나 다시 길을 나섰다. # 조금 더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약수터 갈림길이다. # 거대한 암벽 아래를 휘감아 돌아 간다. # 궁예왕의 전설이 깃들어 있을 법한 동굴이 그 암벽 아래에 있다. # 약수터 곁에는 작은 정자도 있다. 겨울에 이곳에서 야영하면 딱이겠다. # 암벽 아래 땅속으로 쇠파이프를 묻어 물길을 만들어 두었다. # 가물어 물 귀할 때인데 콸콸 잘도 나온다. 물맛도 좋다. 이렇게 좋은 약수가 있을 줄 알았으면 물 무겁게 지고 오지 않았을 것인데, 정보 없어서 집에서부터 물을 잔뜩 짊어 지고 왔다. # 약수의 근원이 된 이 암벽은 바윗꾼들의 연습장소인 모양이다. 바위 중간에 볼트가 여럿 박혀 있다. # 약수물 한 잔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섰다. 연습 바위의 위용이 대단하다. # 바위 아래 동굴은 혼자 앉아 면벽수도하거나 홀로 누워 비바람 피할 공간이 맞춤으로 있다. # 정상은 아직 갈 길이 멀다. # 꺼이꺼이 오르지만 정상까지의 숫자는 쉬 줄어들지 않는다. # 잠시후 갈림길을 다시 만난다. # 좌측으로 가면 신선대가 나온다. 운악산 신선대는 거대한 바위로 된 암장이다. 바윗꾼들의 성지 중 하나이다. # 바위와 인연 끊은지 사십 년이 다되어 가는 나는 신선대 가는 길 대신 정상으로 방향을 잡았다. # 단풍 발갛게 물들었다. # 숲속이 온통 울긋불긋하다. 한숨 돌리면서 그 풍취 잠시 즐겼다. # 그 단풍 물든 숲속에 다시 갈림길이 있다. # 용굴 갈림길이다. # 물소리 졸졸 들리고 있어 용굴 방향으로 가봤다. # 그곳에 단풍 물든 계곡이 있다. 이 곳 물이 흘러 내려 무지치 폭포를 이룬다. # 용굴은 어딘지 찾지 못했다. 갈 길 바빠 자세히 찾지 않은 탓이다. 갈림길로 돌아와 정상 방향으로 다시 길을 잡았다. # 길은 이제 아주 가파른 돌길로 변하였다. # 길은 가파르고 등짐은 무겁다. 금세 온몸에 땀이 범벅으로 흐른다. # 등로 좌측에 작은 굴이 있다. 용은 못살겠고 토끼 정도는 문제없겠다. # 시간이 흘러 숲속에 그늘 짙어졌다. 광량이 부족하여 사진이 밝지 못하다. # 다시 계곡을 만났다.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이 산은 의외로 물 구하기 좋은 산이다. 예전 한북정맥 종주 할 때는 계곡이 아니라 산의 마루금을 걸어 이 산을 통과했다. 그러니 이 산에 이렇게 물이 좋은 줄 알지 못했다. # 고생 많소! # 숲 그늘 짙은 곳에 대궐터란 이름표가 매달려 있다. # 왕건 일파에게 쫓기던 궁예왕이 이곳에 터전을 쌓고 반 년이나 농성하였다는 전설이다. 그러나 목숨 경각에 달리고 부하 모두 배신하여 혈혈단신이었던 궁예가 대궐을 지을 정신이 있었을까? 게다가 이곳은 대궐이 아니라 움막 하나 제대로 지을 공간이 부족한 곳이다. # 아마 홀로라도 명색이 왕이 몸을 숨겼던 곳이니 이름이나마 대궐이라 불러주자 하였던 모양이다. # 대궐터를 지나 다시 가파르게 돌길을 오르는데 윗쪽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시각이 늦어 입구쪽에서 한 무리의 등산객과 교차한 것이 전부인데 정상 가까운 이곳에서 하산하는 부부를 만났다. # 정상에서 넋놓고 놀다 하산이 늦어진 모양이다. 등불도 준비하지 않은 차림이었다. 하산 완료하기 전에 날이 어두워질 것인데, 그들의 안전이 걱정되었다. 몸 가볍고 아랫쪽은 길이 좋으니 별일이야 없겠지 싶기는 했다. # 조금 더 오르자 좌측으로 신선대가 건너다 보인다. 신선대는 거대한 암벽으로 되어 있다. # 단풍잎 환영받으며 계단길을 올랐다. # 저 바위에 매달리면 스릴 만점이겠다. # 바위 무서운 우리는 계단으로 높게 올라 갔다. # 가파른 계단길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 계단 상부에서 잠시 한숨돌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 포천 일대의 인간세와 천주산, 왕방산, 소요산 등이 첩첩으로 겹처져 있다. # 멀리서 보이는 골프장 불빛이 화려하였다. # 계단은 아직 멀리 하늘 방향으로 이어진다. # 우측 위로 운악 서봉이 올려다 보인다. # 갈 길은 먼데 날은 어느새 어두워졌다. # 휴대폰 사진이라 광량 부족하면 움직이는 물체는 흔들린다. # 계단이 참으로 많기도 하다. # 이제 사위는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지고 골프장 불빛만 밝게 빛난다. # 계단길 끝은 작은 암봉 정상이다. # 그 정상은 조망이 훌륭한 곳이다. # 이 산이 왜 악(岳) 자가 들어가는 산인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광경이다. 저 능선이 한북정맥의 원능선이다. 저 능선때문에 운악산이 1대간 9정맥 중 가장 위험한 암릉길을 가진 산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 능선은 너무 위험해 대부분 우회로를 통해 정맥을 이어간다. # 잠시 조망 감상하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이때부터 이마에 등불 달았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것이다. #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리면 운악서봉이 나타난다. 운악산은 서봉과 동봉 두 곳의 봉우리가 대표적인 봉우리이다. 따라서 두 곳 모두에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나는 이곳 운악산을 11년 전인 2007년 봄에 지나갔다. 그때도 마눌과 함께였다. 내 기억에는 이곳 서봉에도 야영할 만한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이었다. 운악서봉은 비탈진 곳으로 집 지을 평지가 없었다. 배낭 내리고 정상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정상 바로 아래에 작은 평상 형태의 데크가 두 곳 나타났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데크는 너무 작아 텐트를 올릴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망경대까지 살펴보았지만 야영지는 없었다. 지친 마눌은 크게 실망하였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다시 짐 짊어지고 동봉을 향해 길을 나섰다. # 암릉을 걷다가 아래로 내린 후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고 다시 올라 가면 운악 정상인 동봉이 나온다. 동봉은 넓은 광장 형태의 정상이다. 그곳에는 커다란 정상석이 두 개나 서 있다. 이 산에 기댄 포천시와 가평군이 각각 정상석을 올린 것이다. # 키 큰 정상석에는 운악산 비로봉이라 적혀 있다. 운악산 정상이 언제 비로봉이 되었나? 이 정상석은 근래 세워진 모양이다. 11년 전 내가 지날 때는 없던 것이다. 그나저나 운악 정상은 넓은 광장이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동쪽이 기울어진 경사가 있는 지형이다. 텐트 세우기 적당하지 않은 곳이다. 예전에 내가 지날 때 정상 아랫쪽에 넓은 테크가 있었던 기억이 있다. 마눌은 정상에 있어라 하고 나 혼자 정상 아래로 내려갔다. 잠시 내려가서 주변을 살피니 과연 커다란 데크가 두 개 있다. 하지만 그곳에는 선객(先客) 세 사람이 두 동의 텐트를 각각의 데크에 올려놓고 그 사이에서 산상 주연을 벌리고 있다. 깊은 밤중에 불빛 달고 나타나니 낯선 침입자로 여겼는지 그들은 극도로 경계하였다. 말투에서 적대감이 느껴졌다. 선량한 산객임을 알리고 야영지를 문의하였다. 비로소 경계를 푼 그들의 정보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 공사하면서 헬기로 날아왔음직한 나무 파렛트가 있다. 그러나 그곳 역시 몸을 누일 공간은 없었다. 소득없이 정상으로 복귀했다. # 정상으로 돌아와 주변을 꼼꼼이 살피니 가장자리 쪽으로 약간 경사가 있기는 해도 텐트 딱 한 동 칠 공간이 있었다. 바닥 잘 고르고 얼른 집 한 채 올렸다. 지치고 배 고팠지만 이런 환경에 익숙한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집 짓고 짐 풀고 야영준비를 했다. # 그밤 운악 정상에는 찬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바람 넘어가라고 바람 방향에 맞춰 타프를 설치했다. 집 짓고 나서 땀범벅이 된 옷 벗고 물티슈 목욕을 했다. 한결 개운해진 몸으로 새옷 갈아 입었다. # 집 짓고 목욕하고 새옷 갈아 입었으니 이제 저녁 먹어야 한다. 많이 늦었다. 소고기 굽고 깻잎에 싸서 안주 장만 한 후 막걸리 한 잔 나눴다. 맛나다. 이 맛에 우리는 등짐 지고 산으로 올라 간다. # 가끔 내 사진을 보면 깜짝 깜짝 놀랜다.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는가 싶어 그렇다. 좋은 업적 남긴 것 없는 세월 참 빨리도 흘렀다. 그러나 이 사진도 나중에 돌아보면 좋은 시절이었다 싶을 것이다. # 저녁 먹고 정상을 돌며 산책하였다. 찬바람 강하게 부는 밤이지만 포만하여 시원하였다. 별구경하며 오래 소요하였다. # 보조국사 지눌이 멀리 도봉산에서 지금 운악을 바라보면 우리 텐트 불빛이 그날 그를 이곳 운악으로 이끈 석등의 불빛처럼 보일려나? 어쨌거나 우리도 이밤 운악 정상에서 현등(懸燈)하였다. # 간밤 잠자리 찾지 못해 늦게까지 방황한 것에 비해 아주 편안하게 숙면한 밤이었다. 싸이트 바닥이 경사가 약간 있어 침낭이 한쪽으로 밀리기는 했어도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우리가 자리 잡은 곳 곁에 아이스께끼 장수의 과자통이 놓여 있다. 아랫쪽 숲속에도 비밀창고가 있었다. # 일출보고자 일찍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갔다. 동쪽 하늘이 이미 벌겋게 물들었다. 운악산에는 정상 제일 높은 곳에 공룡알 같은 바위가 하나 있다. 그곳에 올라가 일출을 기다렸다. # 오랜만에 보는 아침 노을이다. # 서파와 수원산 방향. # 운악 정상의 모습이다. 바닥이 우측 아래로 기울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 어젯밤 완전히 어두워진 다음에 도착했던 서봉의 모습이다. 야영자리 찾으러 앞쪽 망경대까지 갔었다. # 까마귀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비행하고 있다. # 서파 건너 수원산이고 그 뒤로 수락이나 불암산 쯤 되지 싶다. # 연인산, 칼봉산 쪽 방향이지 싶지만 확실치는 않다. # 바위에 올라선채 정상부 전체를 길게 찍어봤다. # 이 아침 해가 떠오르는 동쪽 산 마루금에 구름이 짙게 깔려 있다. 해는 그 구름때문에 마루금을 뚫고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한참 위 구름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산을 뚫고 올라오는 화려한 일륜(日輪)을 기대했는데 아쉽게 되었다. # 그러나 이 정도의 일출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벅찼다. # 정상 아래 데크에서 야영했던 팀들도 일출보러 올라 왔었다. 그들은 정상 앞쪽에 있는 만경대에서 일출을 본 모양이다. 나에게 만경대를 추천한다. 일출은 이미 한참 지났지만, 만경대로 가 보았다. # 만경대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이다. # 차가운 은빛 철재로 사다리를 만들어 두었다. # 만경대는 소나무 한 그루 올려 키워낼 운치를 갖춘 곳이다. # 만경대는 검정 돌로 만든 이름표를 달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그 명패를 두 동강 냈다. 못된 인간이다. # 만경대란 이름은 서봉 앞에 있는 망경대의 아류(亞類)이지 싶다. 우리 옛사람들은 충(忠)을 제일로 삼았다. 그런 이유로 전국 곳곳에 왕에 대한 사모의 뜻을 가진 전망대가 많이 전해 오고 있다. 망경대(望京臺), 망군대(望君臺) 등이 그런 곳이다. 운악산에도 왕이 계신 서울을 그리워한 망경대가 있다. 이 암봉의 이름은 망경대가 있으니 비슷한 이름으로 만경대라 지은 것 같다. # 저멀리 한북정맥의 산줄기는 왕이 있는 한양을 향해 뻗어 가고 있다. # 현등사쪽으로 흘러내린 능선 뒤로 가평 현리쪽 인간세가 아침 운무를 머리에 두르고 있다. # 가평은 산이 많은 동네이다. 왼쪽 멀리 뾰족한 것은 칼봉산이지 싶고 중앙의 산들은 대금, 청우, 불기 쯤으로 짐작된다. # 해는 이미 하늘 위로 많이 올라 왔다. # 일출이 남긴 오색 구름이 하늘 가득이다. 장엄미(莊嚴美)가 느껴지는 광경이다. # 현리 일대의 인간세는 아침 운무를 머리에 쓰고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다. 찬바람 강해 으스스 추웠지만 오래 만경대 위에서 이 황홀한 아침을 홀로 즐겼다. # 운악이 이렇게 훌륭한 풍광을 가졌는지 예전에 미쳐 몰랐다. # 오래 그 광경 즐긴 후 정상으로 다시 복귀했다. # 운악은 이제 서서히 단풍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 간밤에 야간 등반하느라 고생한 마눌은 아직 기상전이다. # 한북정맥은 이 산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 우측 산줄기가 죽엽산으로 이어어지는 한북정맥이고 가운데 산줄기는 주금산으로 이어진다. # 이제 이곳 정상에서의 호사(豪奢)도 마무리해야 할 시각이다. 간단하게 아침 끓여먹고 주변 정리했다. # 우리의 하룻밤 보금자리는 약간 경사지기는 했어도 아주 훌륭하였다. # 운악산 최고의 야영지인 정상 아래 데크에서 야영했던 이들이 정상 인증하러 올라왔다. 그들보다 먼저 아이스께끼 장수도 올라와 영업 준비에 바쁘다. # 우리도 짐 정리 마치고 운악 정상과의 작별에 들어갔다. # 가평에서 세운 정상석에는 제운악산(題雲岳山)이란 시가 적혀 있다. 이 시는 함허선사(涵虛禪師)의 작품이다. 함허선사는 조선초 무학대사의 법통을 계승한 대선사로 현등사를 중창한 이다. 현등사에 그의 부도가 있다. 이런 인연으로 그의 선시가 이곳 운악의 정상에 새겨졌다. # 운악산의 실질적 정상인 바위에도 글이 새겨져 있다. 오래되어 글씨가 흐리다. 자세히 보니 충성(忠誠), 명예(名譽), 단결(團結)이란 글씨 아래 비호결사대(飛虎決死隊), 결사돌격대(決死突擊隊), 결사돌파대(決死突破隊)라 적혀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예전 이곳 운악산에 군부대 유격장이 있었다 한다. 그때 그 부대의 누군가가 적은 글씨인 모양이다. # 나는 십몇 년 전 한북정맥 종주할 때 이 바위 위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긴 적이 있다. 그때를 생각하며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 이윽고 운악 정상과 작별하였다. # 하산은 서봉을 거쳐 암릉길로 내려갈 생각이다. # 간밤에 등불 달고 걸었던 길을 되짚어 갔다. # 어느새 정상이 저만치 멀어졌다. # 지금 운악의 단풍은 가을 햇살에 바짝 익어가고 있다. 운악산은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산이다. # 두 정상 사이에 있는 전망대에서 조망 감상하였다. # 다시 암릉길을 걸어 오른다. # 어젯밤에 야영자리 찾느라 고생하였던 운악 서봉에 복귀하였다. 이렇게 가파르니 어디에서 야영하겠는가? # 포천시는 운악 동봉과 서봉 모두에 정상석을 세웠다. 어젯밤 어두운 시각 땀에 젖은 채 야영자리 확보 못하여 불안한 상태로 정상 사진을 찍었는데, 오늘은 한가하고 여유롭게 인증 사진을 남긴다. # 포천 이북의 산들이 조망된다. # 망경대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 서봉 아래에는 두 개의 나무데크가 있다. 그런데 그 크기가 너무 작아 텐트를 올릴 수 없다. 가로 세로 동일하고 짧아 누우면 머리와 발끝이 허공에 뜬다. 어제 여러 차례 시도하다 포기해야 했던 곳이다. # 서봉에서 조금만 가면 망경대가 나온다. # 딱 한양 방향으로 조망이 열린 곳이다. 그리하여 임금 계신 곳을 그리워 하는 망경대(望京臺)이다. # 동봉 정상이 건너다 보인다. # 한북정맥의 흐름. # 절고개 거쳐 서파로 이어진다. # 망경대 아래 저 바위는 밀면 굴러 떨어질 듯하다. # 서울 방향의 조망이 장쾌하다. # 포천 이북 방향. # 하산길의 암릉이 예사롭지 않다. # 암릉길의 시작이다. 마음 단단이 먹고 출발한다. # 시작은 매끈한 철계단이다. # 평상시 암릉에서 겁을 많이 먹는 사람인데 오늘은 무거운 등짐까지 있으니 무척 조심하며 내려간다. # 경사가 가팔라 아래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기차 화통소리다. # 1차 암릉길이 끝나고 다시 2차가 시작이다. # 이곳은 직벽을 줄 잡고 내려가야 한다. 다행히 발판이 있어 발디딤은 된다. # 백두대간 종주할 때 늘상 이런 밧줄 구간을 통과했는데 이 사람은 늘 암벽만 만나면 벌벌 떤다. # 가을냄새가 온산을 휘감고 있다. # 두어 차례 아찔한 암벽 구간을 통과하고 전망바위가 있는 암봉에 올라섰다. 휴일을 맞아 운악을 찾은 단체 산객들이 많다. # 망경대에서 내려다보이던 바윗덩어리가 바로 앞에 있다. # 망경대와 우리가 내려온 암릉길을 올려다 본다. # 한북정맥이 이어지는 절고개 쪽 조망 # 이 산은 곳곳이 조망처이다. # 정상부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남겼다. # 우뚝 솟아 있는 입석 우측으로 하산길은 이어진다. # 그 방향의 하산은 상당한 난이도의 암릉길이다. # 아찔한 높이의 암봉이라 정신 무장을 단단이 하고 하산에 임한다. # 상행하는 단체 산객들이 있어 하염없이 윗쪽에서 기다려야 했다. # 여성들이 많아 암릉 중간에 지체가 심하였다. # 그들이 웬만큼 올라오기를 기다렸다가 우리도 밧줄 잡고 바위에 매달렸다. # 가파른 암릉은 계속 이어진다. 그만큼 마눌의 입에서도 "어머 어머!" 하는 소리가 연속으로 이어진다. # 돌아다보면 아찔한 운악의 암릉길이 올려다 보인다. 대단한 산이다. 악(岳)자가 왜 들어갔는지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다. # 시간 여유 많아 느긋하게 경치 구경하며 쉬었다. # 포천 북쪽의 인간세와 그 너머 철원의 명성, 각흘, 광덕산쪽 산군(山群)이지 싶다. # 암릉길은 아직 멀었다. # 올라오는 사람 많아 계속 기다려야 했다. # 마눌의 악전고투는 계속 된다. 그녀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바위산을 만나 옛 기억을 되살리게 되었다. 예전 백두대간 종주할 때 많이 겪었던 일이니 그 기억 더듬어 한 발 한 발 가 보시오! # 암릉이 어지간히 끝난 곳에서 불붙는 단풍을 만났다. # 그리고 암릉이 끝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나무계단길이 길게 이어졌다. # 계단 아래 조망처가 기다리고 있다. # 서파삼거리 아래 서울 방면의 조망. # 정상부는 이제 끝만 조금 보여준다. # 어제 올라갔던 신선대쪽 조망. 우측으로 궁예성터가 이어지는데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 참으로 경치 좋은 산이다. # 저 아래 휴양림이 언뜻 보인다. # 다시 아기자기한 암릉길을 따라 하산한다. # 하산길 중간에 좁고 잘록한 고개가 있다. # 그 고개 아래에 신비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 운악사(雲岳寺)이다. 운악사는 이곳 병풍바위 능선 아래 손바닥만한 골짜기 안에 동굴처럼 꼭꼭 숨어 있는 사찰이다. 골이 좁으니 규모도 크지 않다. 다만 깊은 곳에 숨어 있어 지금처럼 산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예전에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하여 수도(修道)할 수 있었겠다. # 운악사에서 한 숨 돌리며 쉰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서늘한 숲그늘 아래 길게 내려갔다. # 그 길 끝에 운악산 자연휴양림이 나온다. 휴일을 맞아 휴양림을 찾은 이들이 많다. # 휴양림 끝에 날머리가 있다. # 운악광장을 따라 길게 내려간다. 가파른 암릉을 겪은 후라 느긋한 이 내리막이 참 좋다. # 어제 오후 올라 갔던 갈림길을 다시 만났다.' 운악산 사랑으로'라는이 카페에서 등로는 두 갈래로 나뉜다. # 운악산 주차장으로 복귀했다. 몸에 묻은 먼지 털어내고 1박 2일간의 야영산행을 마무리 했다. # 짐 정리하고 주차장을 떠났다. 47번 국도에 차를 올리는데 좌측으로 운악산이 올려다 보인다. 잠시 차를 세우고 정상의 암봉을 감상하였다. 간밤에 야영자리 찾아 헤맸던 일과 하산하며 암릉에서 애쓴 일들이 되새김된다. 하룻밤 잘 보냈소이다. 다음을 기약하오! 귀갓길에 잠시 차를 멈추고 운악산을 올려다보았다. 운악은 하얀 바위 모자를 쓰고 우뚝하였다. 그 가슴과 등에는 단풍옷 화려했다. 짧았지만 흐뭇했던 이틀이 상기되었다. 편안한 휴식을 허락하신 운악산 산신령께 감사의 인사와 훗날 또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작별을 고했다. 좋은 산이다. 잠시라도 눈을 쉴틈 주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산이다. 그런 산이다. 운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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