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명산]4(북한산/北漢山)
가까이에 있는 산은 / 항상 아내 같다 / 바라보기만 해도 내 것이다 // 오르면 오를수록 재미있는 산 / 더 많이 변화를 감추고 있는 산 / 가까이에서 더 모르는 산 / 그래서 아내 같다 / 거기 언제나 그대로 있으므로/ 마음이 놓인다 // 어떤 날에는 성깔이 보이고 / 어떤 날에는 너그러워 눈물난다 / 칼바위 등걸이나 벽이거나 / 매달린 나를 떠밀다가도 / 마침내 마침내 포근히 받아들이는 산 // 서울 거리 어디에서도 / 바라보기만 하면 가슴이 뛰는 산 / 내 것이면서 내가 잘 모르는 산.
- 이성부 '삼각산'(전문)
그 무서운 질병(疾病)이 내 몸 속에 있었다는 것을 안지 6개월이 지났다. 입원, 치료, 퇴원, 다시 입원, 퇴원을 하였고 이후 철저한 관리와 조심스런 회복 과정을 거쳤다. 삶의 방식과 세상을 보는 눈을 완전히 바꾸고자 하였고 무엇보다 마음 관리를 잘 하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나를 지배했던 제일 큰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더이상 활동적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더이상 산길도 들길도 물길도 마음껏 활보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매사에 유리알 다루듯 몸을 관리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재활(再活)하는 육 개월 내내 그동안 해오던 모든 격한 활동을 멈추고 천천히! 노인행(老人行)으로 일관하였다. 그 답답한 두려움의 시간을 보내면서 놓치지 않은 것은 꾸준한 마음 관리였다. 시간 지나 마음이 어느 정도 잡히자 이제는 조금씩 활동범위를 넓혀 보았다. 마음이 앞서고 몸이 뒤따르니 조금씩은 예전 모습이 되찾아지기는 했다.
그 과정에 지난주 걸었던 소요산 산행이 있었다. 비교적 낮은 산이고 난이도 높지 않아 선택하긴 했지만, 소요산 산행 내내 사실은 혼자 가슴 졸이며 걱정을 많이 하기도 했다. 원효굴을 출발해서 공주봉, 의상대 거쳐 자재암으로 하산하였는데 이상 징후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 한번의 산행이 마음과 몸 모두에 고무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일반적 산행에 대한 자신감을 어느 정도 회복하는 계기가 되어 준 것이다. 아직 종주 산행같은 과격한 산길은 어렵지만 천 미터급 이하의 단일 산은 무난히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평생 산꾼으로 이 땅 모든 산줄기를 걸어보자 작정했던 산꾼에게 산길 걸으며 느끼는 기쁨과 해방감을 회복하였다는 것은 세상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환희의 감정이다.
그 환희의 감정 이어가고자 이번주는 지난번 소요산에 이어 '전철 타고 가는 명산 순례'를 계속 하기로 했다. 그 대상지는 우리나라 수도 서울 최고의 진산인 북한산(北漢山)이다. 북한산은 대한민국 정치, 경제, 문화의 집결지인 수도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 오히려 찾기 어려운 산이다.
나역시 수도권에서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북한산자락에서 닭도리탕에 쐬주만 먹고 놀다 왔지 막상 북한산엔 한번도 올라 본 적이 없다. 백두대간과 아홉 개의 정맥을 종주하겠다고 매번 먼 곳의 산길만 더듬어서 그럴 것이고, 너무 가까이 있어 그 소중함을 몰라서도 그럴 것이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은 우리 역사에서 절개(節槪)와 지조(志操)의 상징같은 인물이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 남한산성에서 청(淸)에 대한 항복을 목숨 걸고 반대했다. 나중에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 가면서 피눈물을 토하며 지은 시가 '가노라 삼각산아'이다.
지금은 좋은 시절이다. 더이상 우리나라 관리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갈 일은 없다. 이 호시절을 사는 강/사/랑은 처음으로 삼각산을 만나러 간다. 그리하여 청음의 시에서 한 구절을 차용한다. "가노라 삼각산아! 오늘 한번 만나 보자!"
전철 타고 가는 명산 기행, 삼각산!!
일시 : 2007년 4월 8일 해의 날. 산행코스 : 우이동(10:40) ~ 백운대 매표소(11:40) ~ 하루재(12:07) ~ 인수산장(12:45) ~ 위문(12:58) ~ 백운대(13:20)/점심식사 ~ 위문(14:12) ~ 용암문(14:20) ~ 약수터 ~ 산성 주능선 ~ 동장대(15:12) ~ 대동문(15:20) ~ 보국문(15:40) ~ 대성문(16:00) ~ 대남문(16:09) ~ 구기계곡 ~ 구기매표소(17:30) ~ 구기동.
총 소요시간 6시간 50분.
북한산/北漢山
서울특별시 북부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에 있으며 백두산, 지리산, 금강산, 묘향산과 함께 대한민국 오악(五嶽)에 포함되는 명산이다. 높이 836.5m이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三角山으로 더 잘 알려진 산이다. 이는 최고봉 白雲臺와 그 동쪽의 仁壽峰, 남쪽의 萬景臺(일명 국망봉)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三峰山, 華山 또는 負兒岳 등으로도 부른다. 중생기 말기에 지층에 파고 든 화강암이 지반의 상승과 침식작용으로 표면에 드러났다가 다시 풍화작용을 받아 험준한 바위산이 되었다. 서울 근교의 산 가운데 가장 높고, 산세가 웅장하여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鎭山)으로 불렸다. 최고봉인 백운대에 오르면 서울 시내와 근교가 한눈에 들어오고, 도봉산·북악산·남산·관악산은 물론, 맑은 날에는 강화도·영종도 등 황해의 섬도 보인다. 인수봉은 암벽등반 코스로 암벽등반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 밖에 노적봉(716m)·영봉(604m)·비봉(碑峰:560m)·문수봉(716m)·보현봉(700m) 등 이름난 봉우리만도 40여 개나 된다. 등산 코스는 우이동·정릉·세검정·구파발을 기점으로 하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진관내동·세검정·성북동·정릉·우이동 등의 여러 계곡도 볼 만하다. 능선에는 북한산성이 8㎞에 걸쳐 펼쳐지는데, 평균높이는 7m이며, 14개 성문 가운데 大南門·大西門·大成門·輔國門·龍岩門 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또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 터를 비롯해 유명한 북한 이궁지(離宮址)와 진관사·문수암·태고사·원효암·祥雲寺·道詵寺·승가사·화계사 등 많은 사찰과 문화유적이 산재한다. 서울 외곽에 있어 연중 등산객과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983년 도봉산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삼각산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아침 일찍부터 교회로 자원봉사하러 가는 마눌이 태워주는 차편으로 금정역까지 함께 갔다. "조심해서! 천천히!"라는 마눌의 당부를 뒤로 하고 금정역에 내렸다. 지금 군포 금정역 앞 도로는 온통 벚꽃의 꽃잔치로 흐드러지고 있다.
군포 금정역앞 도로는 벚나무가 길게 식재되어 있어 해마다 이맘 때면 화려한 벚꽃의 축제가 벌어진다. 인도가 좁고 차들이 많이 다녀 느긋하게 꽃그늘 아래 술 한 잔 마시고 휴식하기는 어렵지만...
# 금정역 앞 벚꽃 터널.
# 한 순간 아우성하듯 피었다가 일시에 허무하게 떨어지는 것이 꼭 우리네 인생을 닮았다.
꽃향기 진하다. 한참을 꽃향기에 취했 있다가 금정역에서 전철을 탔다. 금정역은 4호선과 1호선 국철이 환승하는 역이라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각이지만 다양한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4호선 타고 북상하였다. 스물 아홉 정거장을 지나 수유역에 도착했다. 3번 출구 통해 밖으로 나오니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로 이곳의 버스 정류장 역시 붐비고 있다. 120번 버스 타고 20여 분 달려 우이동 종점에 도착했다.
종점엔 이미 산행을 마치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사람들과 이제 막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이거 오늘 산속에서 정체가 심하겠는걸...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데 중간 중간 등산용품점들이 세일 품목을 내걸고 유혹하고 있다. 이 상점 저 상점 들어 가서 옷구경이며 용품 구경이며 느긋하게 구경하며 올라간다.
# 가족, 친지, 직장 동료 등등 끼리끼리 많이들 오셨다.
# 진달래 능선으로 갈라지는 곳. 꽤 많은 이들이 저 능선으로 올라갔다.
옛날 매표소를 지나자 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가파른 아스팔트 길이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데, 승용차와 단체 산행객들을 실은 관광버스들이 계속 꼬리를 물고 올라간다. 이 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산행에 나서는데, 입구에서 차량통제를 하지 않는 국립공파의 처신이 못마땅하다.
그리고 저이들은 산에 오면서 차를 왜 가지고 오냐? 입구에서 내려 걸어 오면 될 것을... 가파른 오르막이라 차들이 전부 가속페달을 밟아 재끼는 바람에 매연 때문에 숨쉬기가 곤란하다. 산에 오르기도 전에 건강 망칠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길 필히 차량 통제가 필요한 곳이다. 한참 그렇게 오르니 차량들로 뒤덮인 주차장과 백운대 매표소가 나온다.
# 도선사 광장에 가부좌를 튼 부처님.
# 백운대 매표소. 매연을 내뿜고 서너 대의 대형차량에 떼로 몰려온 어느 산악회. 스트레칭 한다고 큰소리로 고함 지르고 호각 불고 야단이다. 입구에 차 세우고 천천히 걸어 오면 자연스레 몸이 풀리지 않겠나? 이 산악회 이 날 곳곳에 자기팀에게 길 안내 한다고 안내종이를 뿌려 댔는데 모두 회수했을라나?
시작부터 팍팍한 돌길이 길게 위로 이어진다. 국립공원 중 가장 많은 이용객을 자랑하는 산답게 수 많은 등산객으로 곳곳에서 정체가 이어진다.
# 최대한 천천히!!! 모두에게 추월을 허용하자!!!
# 노랭이 삼형제가 마사토 위에 뿌리를 내렸다.
# 많은 산객들로 붐비는 하루재.
앞으로 자꾸만 내 달릴려고 하는 몸을 최대한 억제하며 천천히 천천히 올라갔다. 그렇게 조심스레 하루재에 올랐다. 하루재는 영봉과 인수봉을 이어주는 고갯길이다. 골을 타고 올라온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다.
하루재를 넘어 산모롱이를 도는 순간.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른 인수봉이 위용을 드러낸다. 인수봉 등짝엔 암벽인들이 까맣게 매달려 있다.
# 하루재에 서면 전방으로 인수봉이 반겨준다.
# 하늘 높이 솟은 인수봉의 위용.
# 인수봉 옆구리엔 클라이머들이 참 많이도 붙어 있다.
# 어떤 기분일꼬?
# 인수산장.
하루재 바로 너머에 인수산장이 있다. 인수산장은 인수봉을 오르려는 암벽인들의 베이스 캠프로 활용되고 있어 대형 텐트들이 즐비하고 비너며 자일이며 암벽장비들이 이곳저곳 쌓여 있다.
1980년, 대학 1학년때 멋 모르고 들어간 산악부에서 암벽을 경험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산악부는 이산 저산 다니면서 막걸리 마시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곳인 줄 알았더랬다. 나의 이런 착각은 산악부 가입 이후 첫 산행에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당시 나는 체중이 47kg, 허리 27인치로 불면 날아 갈 것 같은 갸냘픈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선배들이 산행 출발하면서 배낭을 내 체중과 맞먹는 놈으로 지게 만들었다. 배낭은 키슬링(Kissling)이란 해외 원정용 대형 배낭인데, 그 속에는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 예들 들면 고장난 암벽장비 같은 것까지 꽉꽉 채워 40kg을 맞췄다.
평생 무거운 짐이라고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갸냘픈 몸으로 그 배낭을 지고 산행을 했으니 버틸 재간이 있나? 산 중턱쯤 갔을 때 난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다. 완전히 탈진해서 거의 기절 직전이었는데 그 순간에도 도와주지 않고 고함만 질렀다. 그리고 쓰러진 나는 산중에 내버려 두고 모두들 먼저 올라가 버렸다. 엉금엉금 기어서 베이스 캠프까지 갔는데 그날 이후 군기는 또 얼마나 잡던지... 밤마다 기수 빳다에 막걸리 사러 서너 시간 거리의 마을까지 갔다 오게 만들기도 하였다. 군대 훈련소를 방불케 하는 군기가 그곳 분위기였다.
다음 날부터 1주일 동안 바위에 달라붙어 스파이더맨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이건 체질에 맞는 일이었다. 체중이 워낙 가벼워 남들보다 유리했는지 잘 한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 비록 1주일에 불과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름대로 바위의 매력을 느낄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했었다.
그러나 당시 어수선한 시국 탓에 맨날 데모한다고 몰려 다니고, 무엇보다 군기 잡는 것이 딱 질색이라 산악부를 금방 그만 두는 바람에 바위와의 인연은 그걸로 그만이었다.
# 인수산장 너머로 보이는 인수봉.
# 산장 주변의 암봉들.
인수봉
백제의 시조(始祖)인 온조왕이 형(兄) 비류와 함께 올라 도읍을 정했다고 전해지는 이곳은 산 전체의 형상이 마치 어린아이를 업은 듯하다 하여 부아산(負兒山) 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도 불리운다. 특히 대포알을 바로 세워 놓은 듯한 약 2백미터의 화강암 봉우리는 전문 산악인들의 암벽등반 훈련장으로 인기가 많다. - 인수산장의 안내판.
# 대포알을 닮았나? 아이 업은 형상을 닮았나?
# 오랜만에 암벽 등반 장면을 보니 그저 바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벌렁 거린다. 옛 기억이 있어 그럴 것이다.
# 하단부 출발점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 바위 지식 없고 장비 없는 우리 같은 뚜벅이는 그저 바위 사면의 계단으로 올라간다.
# 20여 분 올라 백운산장에 도착했다.
# 백운산장 뜰에 있는 시원한 우물물도 한 잔 한다. 두레박, 너 참 오랜만이다!!!
# 백운산장 주변의 암봉.
백운산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삼사오오 모여 식사도 하고 휴식도 취하고 있다. 시원한 우물물 한 잔 마시고 잠시 쉰 후 다시 위로 올라 갔다. 곧 백운대와 만경대를 연결하는 삼각산의 주요 관문 중 하나인 위문에 도착했다.
위문(衛門)의 정식 명칭은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이다. 높이 1.7m, 폭 1.7m이다. 북한산성에는 6개의 대문과 7개의 암문, 1개의 수문이 있다. 그중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게 만든 비상출입구이다. 북한산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관문인 만큼 많은 사람들로 정체 현상을 빚고 있니다. 위문 우측으로 올라 백운대로 향했다.
# 위문. 위문이란 이름은 일제 강점기 이후 불린 이름이다.
# 백운대를 올려다본다.
# 만경대(萬景臺)와 노적봉(露積峰)의 위용.
# 세워서 찍었다.
# 만경대 정상부.
만경대(萬景臺)는 만수봉(萬壽峰)이라고도 한다. 높이는 800.3m이다. 북쪽의 인수봉과 백운대, 그리고 만경대 셋이서 우뚝하여 북한산의 원래 이름은 삼각산(三角山)이다.
고려 우왕 1년인 1375년에 큰 비로 봉우리가 무너졌다 하고 조선 선조 30년인 1597년에는 이 산이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어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둘 다 나라가 위태롭고 내우외환에 시달릴 때였다. 그후 이곳에서 기우제와 기설제(祈雪祭)를 지냈다고 한다.
나란히 있는 노적봉(露積峰)은 높이는 해발 716m이며 북한산에서 두 번째로 큰 암장(巖嶂)이다. 명칭은 봉우리 모양이 노적가리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졌다.
# 만경대 사면을 돌아 주능선으로 이어지는 길. 산객들이 많다.
위문에서 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철책과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지만, 등산객이 너무 많아 정체가 아주 심하다. 꽉 막힌 휴가철 고속도로 마냥 중간에서 전혀 진행이 되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정체를 피해 아무 확보 장치도 없이 바위사면으로 올라 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 마다 제지하고 계단쪽으로 불러 들였더니 같이 오르던 사람들이 나를 국립공원 직원 쯤으로 보는 눈치다.
# 백운대 오르는 길. 정체가 심하다.
# 운동화나 케쥬얼화를 신고 와서는 정체를 더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 한 자리에서 10분 이상을 서 있어야 할 때도 있다.
#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정상부에 올랐다. 인수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 정상부는 모란 장날 풍경 같다.
#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꼭대기엔 발디딜 틈도 없다.
# 태극기 휘날리는 백운대 정상. 삼각산의 최고봉이다.
높이 836m인 백운대(白雲臺) 정상부는 널찍한 등짝과 정상의 머리를 갖춘 형상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느 시골 5일장 장터를 방불케 한다. 정상의 머리 부분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비집고 올라가 정상 바위를 끌어 안고 삼각산의 정기를 받았다. 흐으읍!!!흐으읍!!!
# 건너편 인수봉에도 산객들이 많다.
# 인수봉(仁壽峰) 정상을 땡겨본다. 인수봉은 삼각산 제2의 봉우리이다. 높이는 811m. 우리나라 최고의 암벽등반코스이다.
# 인수봉의 암벽인들을 좀더 가깝게 느껴 본다.
# 바로 위 오버행 부분은 어떻게 통과하시려나?
# 바위 옆에 붙어서도 지구 중력 방향과 몸을 일치시킨다.
# 홀로 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산악인.
# 염초봉 능선을 타고 백운대로 오르는 사람들.
# 저쪽 코스는 꽤 위험한 구간인데도 많이들 오르고 있다.
# 겁이 없는 건지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 백운대 정상에서 마눌이 싸준 도시락으로 홀로 성찬(盛饌)을 즐겼다. 100% 채식 식단이다.
# 식사 후 또 한번 극심한 정체를 겪은 후 위문으로 돌아왔다. 주능선쪽.
# 위문 밖 주능선 쪽에서도 많이들 온다.
# 위문에서 계단길을 내려와 산성 주능선으로 향하는데,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린다. 쳐다보니 백운대의 염초봉쪽 암벽 꼭대기 절벽에 사람들이 붙어 올라가고 있다.
# 7~8명의 사람들인데, 아무 확보 장치도 없이 90도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고 있다.
# 줌으로 땡겨보니 바위틈으로 오르면 마냥 어렵기만 한 곳은 아닌 듯하다.
# 그렇지만 여성도 끼어 있고 만에 하나 실수라도 한다면 끝장인 곳인데, 저렇게 아무 확보도 없이 오르다니... 떨어지면 땅에 닿는데 3박 4일은 걸릴 듯하다.
# 30여 분 동안 저들이 무사히 오르는 것은 망원렌즈로 확인했다. 난 저렇게 무모한 사람들을 보면 마구 화가 난다. 산을 정말 잘 타는 사람들은 확보물 없이 절벽을 올랐다 자랑하는 만용이 아니라 확보를 철저히 해서 안전하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사고 없이 오르는 것을 자랑한다.
# 삼각산의 또 하나의 뿔인 노적봉.
# 갈림길.
# 용암문(龍暗門).
북한산성
이 성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면서 뺏고 빼앗기던 쟁탈 대상지로 백제시대에 쌓은 토축산성이었다. 고려 고종19년(1232년)에는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거란이 침입했을 때는 이곳에 고려 태조의 재궁(관)을 옮겨 온 일도 있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외침을 당하여 도성 외곽의 축성론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년)에 왕명으로 대대적인 축성공사를 하여 석성으로 완성되었다. 조선 영조 21년(1745년) 僧 성능이 지은 '북한지'라는 문헌에 북한산성의 축조과정이 기록, 전해지고 있다. 당시의 성의 길이는 21리 60보 이며 시설로는 14개의 성문과 동장대,남장대,북장대와 행궁,군창이 있었으며, 성내에는 승군이 주둔했던 중흥사 등 12개의 사찰, 99개소의 우물,26개소의 저수지가 있었다고 한다. 한성의 방어 역할을 했던 이 산성은 현재 성 둘레가 12.7km이며 성안의 면적은 2백만평이다. 1990년부터 훼손된 대남문, 대성문, 대동문, 보국문의 4개 문과 동장대를,1997년에는 용암문을 보수 복원하였다.
# 멀리 보현봉과 문수봉 사이에 대남문이 보인다. 오늘 저곳까지 가야 한다.
용암문에서 그만 원위치로 도선사쪽으로 하산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대남문까지 가 보기로 했다. 급격한 오르내림 없이 성벽을 따라 가면 되니까 천천히 호흡 조절해 가며 가 보자는 생각이다.
# 용암문에서 부터는 성벽을 따라 길게 진행한다.
# 동장대(東將臺). 동장대는 고유명사라기 보다 보통명사이다. 보통 산성이나 성곽에는 동서남북 네 곳의 장대(將臺)가 있다. 장대는 전시에 장수가 전장을 지휘하는 지휘소이다.
# 동장대의 조망.
# 동장대에서 한참을 휴식한 후 대동문을 향해 출발했다.
# 대동문(大東門). 높이 9척, 너비 10척의 문루이다. 1993년에 복원하였다. 이곳에서 진달래 능선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 보국문을 향해 성벽 따라 구불구불 올라 간다.
# 보국문 오름에서 정릉쪽으로 향하는 칼바위능선.
# 보국문으로 내렸다가 대성문을 향해 낑낑 올라가야 한다.
# 보국문(輔國門). 원래 이름은 동암문(東暗門)이다. 그 아래에 보국사를 창건한 이후 보국문이라 불렀다.
# 대성문(大成門) 오르는 길은 경사가 가팔라 힘이 많이 들었다.
# 10여 분 더 진행해 오늘의 종착지 대남문(大南門)에 도착했다.
# 저 쪽 백운대에서 이곳까지 걸어 왔다.
# 백운대를 땡겨 본다.
# 동장대. 저곳에서 여기 대남문을 바라보는 조망이 아주 훌륭했다. 지금 저쪽 동장대에서 누군가 이곳을 바라보며 멋지다고 감탄하고 있을 것이다.
# 대성문쪽 성벽
# 성문 너머로 보현봉이 보인다.
# 보현봉 능선.
# 보현봉(普賢峰). 대남문 밖에 있는 이 봉우리는 높이 714m의 암봉이다. 보현보살에서 따온 불교식 이름이다.
# 오늘의 종착지 대남문과 작별한다.
# 길게 나무계단이 이어져 있다.
# 비봉, 향로봉으로 연결되는 승가봉 능선.
대남문에서 더 진행해서 비봉능선을 따라 승가봉, 비봉, 향로봉을 거쳐야 삼각산 종주를 완성하게 되지만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지금 내 몸 상태에서는 이것이 최선이다.
# 하산길엔 온통 노란 생강나무꽃 천지다. 생강나무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이다.
# 길 잃은 무당벌레 한 마리 로프 위에서 방황하고 있다.
# 구기동 계곡을 길게 길게 내려 갔다.
# 계곡 물소리가 시원하다.
구기계곡을 따라 길게 아래로 내려갔다. 한적한 산길을 콧노래 흥얼거리며 내려가자니 기분이 최고이다. 작년 10월 갑작스런 발병 이후 이렇게 길게 혼자서 산행을 해 보기는 처음이다. 최대한 천천히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산행을 했더니 그다지 힘든 줄도 모르고 마칠 수 있었다.
아, 좋다!!! 산사람은 역시 산에 있어야 행복해지는 법이지!!! 산아, 억만년 세월 그 자리에서 묵묵한 산아!! 그대의 품속에서 난 너무나 행복하여라!!!
# 버스 타고 경복궁역으로 가서 몇 정거장 가다가 충무로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 탄 후 산본으로 복귀했다.
<뱀발> 구기매표소를 지나 세검정 쪽으로 내려 가는데, 산 입구 각종 가게에서 산행을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 잔을 나누는 모습이 너무 부럽더라. 음~~ 쩝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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