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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3(소요산/逍遙山)-장자의 소요유! 본문

산이야기/100대 명산

[100대 명산]3(소요산/逍遙山)-장자의 소요유!

강/사/랑 2007. 6. 25. 18:53

 [100대 명산]3(소요산/逍遙山)



동양사상(東洋思想)의 두 축(軸)은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이다. 유가는 개인의 수신(修身)에서 확장해 국가 경영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수천 년을 이어 왔고, 도가는 민중들의 삶속에서 생활 철학이나 민간 신앙으로 그 뿌리를 면면이 이어오고 있다.

유가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에서 기원하였고 도가는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에게서 기원하였다. 그래서 유가를 공맹사상(孔孟思想)이라 하고 도가를 노장사상(老莊思想)이라고도 한다.

중국사람들을 흔히 뻥이 심한 민족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압권(壓卷)은 '장자(莊子)'이다. 장자를 읽다보면 뻥이 심하다 못해 이건 숫제 상상도 안되는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물론 그 뻥 속에 숨어 있는 참 진리를 찾아내야 장자를 제대로 아는 것이 되겠지만.

장자의 뻥을 한 번 보자면,

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 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天池也. 齊諧者, 志怪者也. 諧之言曰.. 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북명유어 이명위곤 곤지대 부지기기천리야 화이위조 기명위붕 붕지배 부지기기천리야 노이비 기익약수천지운 시조야 해운즉장사어남명 남명자 천지야 제해자 지괴자야 해지언왈 붕지사어남명야 수격삼천리 박부요이상자구만리 거이유월)

북명에 물고기가 있었다. 이름은 곤이다. 곤은 크기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물고기가 변해 새가 되었는데 새의 이름은 붕이다. 붕의 등 넓이도 몇 천 리에 달하는지 알 수 없다. 붕이 힘차게 날아 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을 가득 뒤덮은 구름을 연상시킨다. 붕은 바다 기운을 타고 남명으로 옮아가려 한다. 남명은 바다이다. 붕이 남쪽 바다로 옮아갈 때 파도는 삼천리나 솟구치고 붕새는 회오리 바람을 타고 위로 구만리까지 날아 오르는데 6월의 바람을 타고 간다.

뭐 대충 이런 식이다.

오래전 쉽게 풀어 쓴 장자를 읽어 보았는데, 책 제목처럼 쉽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철저하게 인위적(人爲的)인 세상에 길들여져 살아온 굳은 머리로 무위(無爲)와 자연(自然)의 참뜻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던 탓이다.

장자의 사상은 '장자(莊子) 제1편인 '소요유(逍遙遊)'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위의 대붕의 이야기도 소요유에 처음 나오는 구절이다. 소요유(逍遙遊)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이다. 소요(逍遙)는 보행(步行)과는 달리 목적지가 없는 행위(行爲)이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이며 그저 하릴없이 거니는 것을 뜻한다.

강/사/랑의 산행 방식은 지향점(指向點)이 원래 '소요유'였다. '솔방솔방' 그리고 '사부작사부작' 이 땅의 산하를 노닐 듯 주유(周遊)하다가 경치 좋은 곳 만나면 기꺼이 머물러 쉬어가는 방식을 취하고자 하였다.


그러던 것이 백두대간에 들어가고 아홉 정맥에 발목 잡히면서 시간에 쫒기고 구간 진행속도에 휘몰리게 된 것이다. 게다가 진행 결과를 남들과 비교하여 쓸데없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산행을 해 왔던 것이다.

그러다 내 뜻과는 달리 불청객으로 불쑥 찾아온 병마(病魔)가 자연스레 종주산행(縱走山行)이 아닌 소요(逍遙)를 하게 만들어 주었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삶이 나를 변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란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병을 얻은 이후 제대로 된 산행은 전혀 하지 못했다. 산행 도중 발생할지 모르는 비상사태가 두려웠던 탓이다. 몸이 아직 완전 회복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긴급 상황에 대한 우려가 너무 크다. 따라서 그동안 동네 뒷산인 수리산 자락이나 학교와 연결된 안산을 산책하듯 다녔을 뿐이다.


그러나 수 년 집중하여 종주 산행을 하던 사람이 산냄새 못 맡고 살려니 너무 갑갑하다. 게다가 봄이 점점 깊어 가고 꽃향기 풍겨오니 산 갈증(山 渴症)이 더욱 심해진다. 그리하여 그 갈증 풀고자 가까운 수도권의 산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런 내 시야에 동두천에 있는 '소요산(逍遙山)'이 들어왔다. 집에서 가까운 수도권에 있으면서 그다지 험하지 않고 그러면서 조망은 훌륭한 산인 데다 100대 명산에 포함된 산이어서 그렇다.


소요산은 십오륙 년 전에 눈 많이 내린 날 가보고는 처음이다. 그때는 산행보다는 닭도리탕에 쐬주 한잔이 더 큰 목적이었고 산행 기억보다는 술 먹고 즐긴 기억만 남아 있는 산행이었다.

지금 강/사/랑은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갔다. 학교 다니면서 전철편으로 등하교를 하는데 소요산까지 전철이 간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좋아! 소요산으로 가보세! 전철 타고 산행길 나서는 것 그것도 낭만적이네!!



장자의 소요유!! 강/사/랑의 逍遙遊!!


2007년 3월 17일. 흙의 날. 요즘 교회에 푹 빠져 버린 마눌은 위험한 건강을 가진 남편이 혼자 산에 간다는 데도 아랑곳 않고 교회 행사에 참여 해야 한단다.


마눌 다니는 교회가 비교적 생활이 어려운 이들이 많은 동네에 위치하고 있어 교회 인근 아이들을 위해 격주로 토요일에 떡볶이를 만들어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이번 주엔 본인이 당번이라 절대 빠질 수 없다는 것이다.

좋다, 그럼 혼자서 산행 가겠네!

마눌 교회 가는 편에 전철역에 데려다 달래서 군포 역에 도착하니 시각이 이미 10시를 넘고 있다. 아이고, 출발이 너무 늦다!! 아무리 전철을 타고 간다고 하지만 동두천이 여기서 어딘데... 서둘러야겠다.



소요산/逍遙山

경기도 동두천시와 포천시 신북면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587m이고, 주봉(主峰)은 의상대(義湘臺)이다. 서울에서 북쪽으로 44km, 동두천 시청에서 동북쪽으로 약 5km 지점에 있다.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산세가 수려하고 아름다워서 경기의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한다. 645년 신라의 원효대사(元曉大師)가 개산(開山)하여 자재암(自在庵)을 세운 이후, 974년(고려 광종 25) 소요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中臺庵·小雲庵·소요암·靈源寺 등의 사찰과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1981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자재암은 奉先寺의 末寺로서, 원효대사가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고 하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소요산에는 청량폭포(淸凉瀑布)와 원효폭포가 있는데, 이 지대를 하백운대(下白雲臺, 500m)라고 한다. 그 오른쪽에 원효대(元曉臺)가 솟아 있고 원효대사가 수도한 곳이라고 전하는 玉露峰을 넘어 북동쪽으로 나한대(羅漢臺, 510m)·의상대·비룡폭포가 나온다. 또 원효대에서 약 30m쯤 되는 절벽 위를 上백운대라고 하며, 그 밑으로 선녀탕을 볼 수 있다.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산중턱의 금송굴도 유명하다. 산 입구에는 구한말에 독립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홍덕문의 추모비가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소요산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군포에서 소요산까지 한 번에 가는 열차가 없어 청량리에서 한 번 갈아 타야 한다. 소요산행 열차는 외곽으로 나갈수록 등산객들로 채워지고 10여 분 간격으로 한 명씩 각종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잠시만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며 온갖 희한한 물건들을 눈앞에 펼쳐 놓는다.

건너편 노부부는 신발 깔창, 붉은 악마 티셔츠, 돋보기 세트를 쌍으로 구입하였다. 그래도 만원이 들지 않는다. 완행열차 타고 느긋하게 나들이 가는 기분이다. 음~~ 이것 또한 재미있군!!!

 


# 소요산까지는 군포에서 50 정거장을 가야 한다. 멀다!!!

 

 

소요산역까지는 참으로 멀어서 12시 47분이 되어서야 산 입구에 도착했다. 소요산이 작은 산이고 한바퀴 종주하더라도 다섯 시간 이내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산행 시작 시각이 너무 늦어서 걱정이다.

일단 쉬엄쉬엄 한 번 가 보자!!
그나저나 배가 너무 고픈데??


# 소요산역. 한 두어 시간 전에는 도착을 했어야 하는데 도착이 너무 늦었다.

 

 

# 소요산은 부채살처럼 오목하게 펼쳐져 있는 산이다. 좌측으로 백운대를 거쳐 의상대로 가도 되고 우측으로 공주봉을 거쳐 가도 된다.

 

 

배가 고프기는 하지만, 소요산 정상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일단은 출발한다. 전철역에서 매표소까지는 20여 분 이상을 걸어 올라 가야 한다.

이미 산행을 마치고 내려 오는 사람들과 길가의 노점과 식당 등에서 뒤풀이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전철역이 생겨서인지 편안한 복장으로 가족 단위로 놀러 온 사람들로 아주 많다. 소요산은 봄철 진달래와 가을 단풍이 아주 아름답다고 한다.


# 주차장에 있는 자재암(自在庵) 표지석. 글씨가 시원스럽다. 소요산은 원효대사(元曉大師)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원효는 요석공주(瑤石公主)를 만나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이곳 소요산으로 들어와 토굴을 파고 그 안에서 용맹정진하였다.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을 친견(親見)하여 자재무애(自在無碍)의 수행을 쌓았다. 이후 이곳에 사찰을 세워 그 이름을 자재암이라 지었다.

 

 

소요산의 유래는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 봉래 양사언(蓬萊 楊士彦)과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이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장자의 소요유와는 거리가 좀 있다. 그리고 세 사람이 동시대의 사람이 아니니 같이 거닐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늦은 산행을 시작한 강/사/랑도 느긋하게 소요하듯 올라간다.


# 매표소. 자재암에서 2,000원의 입장료를 받는다.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 짓을 못하게 막아야 하는데...

 

 

# 소요산은  암봉이 발달한 산이다.

 

 

# 일주문. 이곳도 골프장하고 전쟁이 붙은 모양이다.

 



# 세속을 떠나는 다리이다. 속리교(俗離橋)이다. 속리산 아닌 소요산 다리에 속리란 이름이 있어 약간 어색하기는 하다.

 



# 원효폭포 앞 암굴. 원효굴이다.

 



# 원효폭포. 갈수기라 수량이 적다.

 


매표소 ~ 일주문 ~ 속리교 ~ 원효폭포를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곧이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소요산 산행길 장심(掌心)인 셈입니다. 장심은 손바닥 가운대를 말한다.


이곳 갈림길에서 각 손가락 방향으로 산행길이 갈라진다. 새끼 손가락 방향으로 가면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칼바위 ~ 나한대 ~ 의상대 ~ 공주봉 ~ 구절터 ~ 갈림길로 돌아 오게 되고, 엄지 손가락 방향으로 가면 반대로 구절터 ~ 공주봉으로 해서 한바퀴 돌게 된다.

잠시 망설이다가 엄지 손가락 방향으로 방향을 잡고 올라 간다.


# 갈림길.우측으로 올라 간다.

 


# 시작부터 팍팍한 돌길이 나타난다.

 

# 내쳐 가파른 돌길을 올라야 한다.

 


# 중간중간 암봉들이 나타난다. 암봉 발달한 산이라 그렇다.

 


산행 시작하면서부터 내내 몸에 대한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그래서는 절대 않되는데... 최대한 조심하자, 최대한 천천히 가자! 위험한 낸 건강에 대한 걱정이 내내 마음 졸이게 만든다. 아무래도 발병 이후 첫 산행이어서 그렇다.


걱정은 걱정이고 배 고프다 간식 먹고 쉬었다 가자!


# 최대한 천천히 조심해서 오르막을 올라간다. 잠시 후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 소요산의 정상인 의상대에 이르는 능선이 올려다 보인다.

 


#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의상대이다.

 



# 의상대를 가까이 땡겨보았다.




# 렌즈를 바꿔서... 정상엔 사람들이 옹기종기 많이도 올라 있다.



# 고개를 아래로 돌리면 자재암이 멀리 보인다.




# 가까이 땡겨본다. 자재암 구경 나온 사람들이 많다.


 



# 암봉.



 


# 백운대 능선 뒤쪽의 산군(山群).

 


전망대를 나오자 다시 위로 길게 오름이 이어진다. 이곳부터는 질펀한 진흙탕길이다. 미끄럽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바지와 등산화가 금방 흙투성이가 된다.


# 참나무 시듬병 때문에 훈증처리한 곳이 많이 나타난다.

 



# 미끄러운 뻘길을 한참 올라 공주봉 정상에 오른다.

 


공주봉은 해발 526m로 소요산의 제일 우측 엄지 손가락에 해당한다. 나무 전망대로 정비되어 있고 동두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봉우리 이름인 공주는 요석공주를 가리킨다.


# 동두천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가까이 있는 것은 미군부대들.

 



# 멀리 군기지가 있는 산이 건너다보인다.

 



# 동두천역에서 내려 공주봉으로 바로 올라 오는 코스도 있다.

 



# 소요산 정상인 의상대가 건너다 보인다.

 



# 의상대 전(前) 암봉.

 



공주봉에선 다시 가파르게 내렸다가 암봉을 두 개 지나야 의상대에 오를 수 있다. 로프가 있는 바위 구간을 가파르게 내려 안부에 이르자 하산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의상대 너머에서 헬기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알아보니 누군가 10여m 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졌단다. 부디 무사하시기를...

의상대를 향해 낑낑 올라 가다가 배가 고파 도저히 더 이상 못가고 햇살 따스한 곳에 앉아 마눌이 싸준 도시락으로 마음에 점 하나를 찍었다.


# 마눌표 야채 도시락. 5개월 동안 육식을 끊고 풀만 먹었더니 이마 양쪽이 근질근질하다. 아마도 초식동물처럼 뿔이 돋아 나려나 보다.

 



# 의상대 직전은 나무 계단 구간이다.

 



# 의상대 정상부 암봉 구간.

 


정상부 로프를 붙잡고 올라가자 소요산 주봉(主峰)인 의상대(義湘臺)가 나온다. 소요산은 원효(元曉)의 산이다. 원효가 수행한 원효굴, 원효가 창건한 자재암, 요석공주가 머물던 별궁터, 요석공주의 이름을 딴 공주봉 등등... 그런데 주봉이 원효봉이나 원효대가 아니라 의상대(義湘臺)이다.


의상은 원효와 동시대 인물로 원효보다 8년 연하이다. 원효와 함께 당나라 유학을 가다가 해골물을 마시고 원효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달아 민중속으로 들어가고 의상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공부한 후 해동(海東) 화엄종(華嚴宗)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의상이 함께 공부하였던 원효를 찾아 소요산을 올랐고 그 산 제일 꼭대기에서 회포를 풀거나 함께 수행을 했을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원효는 이 산 제일봉의 이름을 의상에게 주었나 보다.  


정상은 좁고 가파른 암봉으로 되어 있다. 두 사람 이상 서 있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 좁은 정상에서의 조망은 사방으로 훌륭하다. 이 산이 그리 큰 산이 아니지만, 100대 명산에 든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뚝 우뚝한 암봉들, 아기자기한 암릉길, 다양한 접근로 등이 심심찮은 산이다.

한참동안 정상에 머물며 조망 감상을 했다.


# 소요산 정상인 의상대. 좁고 가파른 정상이다.




# 지나온 공주봉이 건너다 보인다.

 



# 다음 봉우리인 나한대(羅漢臺)다.

 


# 땡겨보니 동동주 장수가 앉아 있다.

 


의상대를 내려와 다시 안부로 가파르게 내렸다가 봉우리를 오르면 나한대가 나온다. 나한대 정상엔 어느 부부가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인사를 해도 멀뚱멀뚱 쳐다만본다. 내가 무얼 잘못했나?


#  정상 너머의 산군(山群)들.
 

 



#  줌인.

 



# 소요산 정상 의상대.

 


#  가까이 당겨본다. 내가 지나온 뒤에도 산객들이 많이 올라 왔다.

 


의상대에서 주변 조망 구경 한참을 하다가 다시 가파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안부에 이르자 바람이 차갑게 휘몰아치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상중하 백운대를 거쳐 자재암으로 내려가게 되고, 좌측 계곡으로 내려가면 곧바로 선녀탕 거쳐 자재암으로 내려가게 된다.

백운대를 거치면 2시간 정도가 소요되고 그냥 내려가면 1시간 정도 절약된다. 소요산 완전 코스인 백운대로 가는 것을 한참을 고민해보다가 그냥 하산하기로 했다.

오늘 산행이 우리집에서 소요산까지 접근하는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워낙 늦게 시작을 했고, 지금이 4시인데 앞으로 두시간 후면 혹시 어두워질 수도 있다. 만에 하나 일몰 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 일을 당할 수도 있다. 욕심이 나더라도 그냥 여기서 멈추자!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도 욕심이 날 때마다 거기서 멈추는 '절제(節制)'를 배우자! 우리는 항상 너무 많이(Too much!) 원하는 데서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제 그만!!!" 텔레토비는 그래서 충분히 철학적이다!!

보라돌이 흉내를 내면서 하산했다. 하산길은 경사가 아주 급한데다 엄청나게 질척거리고 미끄럽다. 한걸음 한걸음 신경을 바짝 세워야 낭패를 면할 수 있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길게 아래로 내려 선녀탕 갈림길에 도착했다.


# 갈림길에서 이제 그만! 외치고 아래로 내려 갔다.

 



# 다다다다~~ 드럼 소리가 들려 올려다보니 딱따구리가 보인다.

 


#  저녀석은 아이큐가 얼마일까? 저렇게 머리로 두들겨 대는데...

 


# 누군가 돌을 끼워 대추나무 시집 보내듯 해 두었는데 세월이 흘러 나무와 돌이 하나가 되어 버렸다.

 


미끄럽고 가파른 내리막이 끝나자 선녀탕이 나온다. 수량이 적어 선녀가 목욕하기는 어렵겠고 손 정도만 씻을 수 있겠다.


# 선녀탕.

 


# 선녀탕 곁에 봄빛이 내렸다. 겨울 이겨낸 새잎이 햇볕을 받아 꽃잎처럼 빛난다.

 



# 잠시 햇살 따뜻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생강나무가 노란 꽃을 피웠다.

 


한참을 내려 자재암에 도착했다. 자재암(自在庵). 스스로 그러한 자연 속에서 스스로 실존한다는 의미인가? 자료 찾아보니 자재무애(自在無碍)의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한 소식 들어 거리낌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경지를 말하는 가 보다.

소요산처럼 자재암 역시 작지만 여러 곳에서 의미가 느껴지는 사찰이다.


# 아담한 자재암 대웅전.

 


# 바위틈 속의 자재암 나한전.

 



# 청량폭포. 봄철 가물 때라 지금은 수량이 적다. 하지만 물이 많을 때는 장관이겠다.

 


# 세월이 묻어나는 소나무의 위용.

 



# 자재암을 내려 오는 길에 나옹화상의 선시(禪詩)를 적어 두었다. 靑山見我 無言以生/ 蒼空見我 無塵以生/ 解脫嗔怒 解脫貪慾/ 如水如風 生涯以去.

 



# 일주문 가는 길의 암봉.

 

 


# 편안하게 소요산 역쪽으로 내려가며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했다.

 



# 원효대사에 얽힌 전설이 많은 산이다. 파계(破戒)에서 벗어나 용맹정진하는 원효를 요석은 끝까지 찾아왔다. 어쩌자는 얘긴가? 하지만 원효는 고승대덕이니 속세의 인연은 아무 걸림이 아니었을 것이다.

 



주차장 주변의 노점이나 음식점들에서는 산행을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에 파전, 도토리묵, 닭도리탕 등으로 뒤풀이가 한창이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자꾸만 멈춰지고 침이 꿀꺽 넘어간다. "이 술값 내가 낼테니 막걸리 한 잔만 합시다!" 이러고 옆자리에 앉고 싶은 심정이다.


질병 때문에 술을 끊었는데,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지만, 이렇게 산행 마치고 하산하는 순간이나 산 정상에 있을 때 가장 참기 어렵다. 끄으응~~~~~

소요산 역에 도착하니 마침 전철이 출발하려고 한다. 이 전철을 놓치면 한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정신없이 뛰어 탔다. 전철은 열차 전체가 등산객으로 꽉 차 있다. 전철 개통 때문에 소요산이 많이 대중화가 되었다는 얘기다.

마침 빈자리 하나가 보여 편안히 앉아서 올 수 있었다. 눈 감고 하루 종일 마음 졸이며 진행한 산행을 마무리했다. 아프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 하는 산행을 무사히 마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산행이 힘들거나 어렵지는 않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 탓에 계속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소요유(逍遙遊)'하면서 욕심 부리지 않고 산천 경계 구경하며 쉬엄쉬엄 솔방솔방 목적없이 걸어보려 한다.




# 먼길 다시 달려 군포역에 돌아 오니 이미 캄캄한 밤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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