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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1(남해 금산/錦山)-금산 日出은 못보고 봄냄새만 맡고 오다!! 본문
[100대 명산]1(남해 금산/錦山)
2007년 초봄. 강/사/랑은 지금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서 나름 열심히 면학(勉學) 중이다. 오랜 직장생활로 심신이 피폐해져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 싶었을 무렵 잠시 현업에서 벗어나 재충전(再充電)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푸르디 푸른 젊은 청춘(靑春)들 가득한 캠퍼스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여 가능하다면 이 시간을 오래 붙들고 싶은 심정이다. 허나 세상 일이란 것이 마냥 좋은 쪽으로만 있는 것은 아니니 이 기쁜 젊은 날도 그렇게 길지는 않다. 다만 지금 이 순간 그 젊은 청춘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깊이 즐기면 될 일이다. 2월 28일. 이 날은 중간 중간 과정이 끝날 때마다 있는 평가가 있는 날이다. 이날은 세 과목 평가가 있었다. 두 과목은 객관식이라 문제를 배배 꼬아 두어서 헷갈리기는 해도 찍으면 되는데, 회계학은 계산문제에다가 출제도 백프로 영어로 해 두어서 머리에 김이 팍팍 났다. 그나마 사전에 예상문제를 알려 주는 바람에 낯설지가 않아 어찌어찌 메꿔 넣기는 했다.
금산/錦山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남해 금산 지형도.
남해를 가자면 옛날엔 남해안 고속도로 타고 하동 진교까지 갔다가 국도 갈아타고 한참을 달려 남해대교를 거쳐 다시 한참을 가야 했지만, 이젠 삼천포와 창선도를 잇는 다리가 새로 연결되어 시간 단축이 많이 된다.
# 창선대교 아래의 죽방렴(竹防簾). 죽방렴은 물살 빠른 해협에 말뚝과 대나무를 박아 만든 고정식 그물이다. 오랜 옛날부터 전해진 고유의 어로방법이다. 지족해협의 죽방렴이 더 유명하다.
삼천포해협의 창선대교를 건너 창선도를 가로 지르고, 다시 지족해협을 건너 이동면 거쳐 금산쪽으로 진행했다. 이번 산행의 주 목적은 일출 명소 중 하나인 남해 금산 일출을 보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해마다 새해의 시작을 山上 일출맞이로 시작했는데, 올해는 그냥 지나친 탓에 늦게나마 금산 정상에서 해맞이를 해 보자는 것이다.
산장에 도착했다. 빈방 없을까 걱정을 했는데 객(客)은 우리 밖에 없다. 강아지도 같이 묵어도 되겠냐고 허락을 얻고 늦었지만 저녁식사도 청했다. # 금산산장의 소박한 저녁상.
# 산장지기 아주머니들.
이 산장은 TV에도 몇 번 소개가 된 적이 있어 산장지기들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외모와 말투는 거칠고 어눌하지만 불교 지식이 해박한 주인 총각과 일 도와주는 아주머니 두 분이 이 산장을 지키고 있다. 원래는 절에 딸린 암자인데 개인이 인수해서 산장으로 운영하고 있나 보다. 주인 말로는 신라시대 때부터 이 자리에 건물이 있었다 한다.
저녁식사 후 숙소에 들어 가는데 조용필이 부른 아주까리 정자인지 방이 딱 두 평짜리다. 그래도 산 정상에 이런 아늑한 잠자리가 있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감사한 마음뿐이다!!
# 상주면과 상주 해수욕장이 새벽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 한순간 저멀리 바다위로 붉은 빛덩이가 불쑥 올라온다.
# 오옷!!! 올해 첫 일출이다!!! 심호흡 크게 하고 완전히 모습을 드러낼 불덩이를 기다리는데,
# 눈꼽만큼 자신을 허락하더니 이내 구름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 버얼건 빛무리만 남겨둔 채....
# 그걸로 그만이다. 아쉽다. 아랫 동네 상주면의 부지런한 이장님은 "동민 여러분께 알리것습니다!!"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 금산 정상.
# 아침을 맞이한 보리암과 관음상.
# 역광속에 우뚝한 대장암.
#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상사바위.
# 오히려 신비한 조망을 연출한다.
# 멀리 미조항 앞바다가 내려다보인다.
# 간밤에 묵었던 금산산장. 산꼭대기 절묘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 상사바위와 상주해수욕장.
# 바다와 보리암.
# 실루엣이 멋진 암봉들.
# 낙랑장송 하나.
완전한 일출을 보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구름 속의 일출이 나름대로 또다른 감흥을 주기에 충분하다. 산장으로 돌아와 아침식사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간밤에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웠던 산장지기들과도 작별을 나눴다.
# 숙소 천장 전깃줄에 표지기 하나 남겼다.
# 이 분은 산속에 있어서 새로 바뀐 만원권을 처음 본다고 했다.
좌선대/坐禪臺
# 흐린 봄바다가 보여주는 멋진 풍경
#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 일월봉.
상사암/想思岩 # 상사바위. 금산에서 조망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한다. 대개 상사병에 관련된 전설은 이뤄지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이곳은 특이하게 해피엔딩이었다
# ...
# 뒤쪽의 길다란 섬이 서포 김만중이 유배당했던 '노도'다.
김만중(1637∼169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로 본관은 광산(光山), 아명은 선생(船生),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諡號)는 문효(文孝)이다.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이고, 충렬공 익겸의 유복자이며, 숙종의 장인인 광성부원군 만기의 아우로서, 숙종대왕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의 숙부이다. 그의 어머니 해평 윤씨는 인조의 장인인 해남부원군 윤두수의 4대손이고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 방(昉)의 증손녀이며, 이조참판 지(遲)의 따님이다. 서포의 어머니는 흔히 맹자의 어머니와 비유되곤 한다. 자식교육에 대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병자호란때 순절한 김익겸의 유복자로 태어나 오로지 어머니 윤씨의 남다를 가정교육에 힘입어 성장했는데 그의 생애와 사상도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베짜고 수놓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갔으나 학업에 방해가 될까 봐 어린 자식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서포의 어머니의 지극한 정서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1665년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수찬 등을 역임하고 암행어사로 활동한다. 그러나 임금 앞에서 직언도 불사하는 강직성으로 관직을 삭탈당하고 '金'씨 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벌을 받기도 했다. 이후 예조참의로 복귀하여 대사헌을 거쳐 대제학에까지 오르는 등 7년간은 전생애를 통한 황금기였다. 그러나 변덕쟁이 임금인 숙종이 정비인 인현왕후를 폐비시키고 장희빈을 세우려 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남해에 유배당한다. 유배지에서 숙종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쓴 것이 '사씨남정기'다. 이러한 와중에 그의 어머니 윤씨는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던 끝에 병으로 죽었으나 효성이 지극했던 그는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남해의 유배지에서 56세의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사상과 문학은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주희의 논리를 비판하거나 불교적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한 점등에서 사상의 진보성을 찾아볼 수 있으며 그가 주장한 '국문가사 예찬론'은 문학이론에서의 진보성을 보여준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이후 허균의 뒤를 이어 소설문학의 거장으로 나타난 그는 우리 문학사에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왔다. 즉 소설을 천시했던 조선시대에 있어 소설의 가치를 인식, 창작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문학은 마땅히 한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후 국문소설의 황금시대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그의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國字意識은 높이 살 만하며 특히 숙종을 참회시키기 위해 쓴 '사씨남정기'나 모친을 위로하기 위해 순수한 우리말로 유배지에서 쓴 '구운몽' 같은 국문소설의 창작은 허균을 잇고 조선후기 실학파 문학의 중간에서 훌륭한 소임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곳저곳> # 과연 사방으로 조망이 좋다.
# 오늘 남해 바다는 흑백사진이다.
# 금산정상과 보리암.
# 보리암. 저런 곳에 절을 모실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 보리암 좌측에 있는 금산산장.
# 상사바위 위의 성혈. 사랑을 이룬 기쁨의 눈물인가?
# 홀로 여행 중이라는 여자분.
상사바위 # 멋진 무지개 다리.
# 자연의 오묘함이 느껴진다.
# 흔들바위.
# 단군성전. 98년에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어째 좀...
# 금산 정상 오르는 길의 신이대 숲.
# 양지바른 곳엔 새싹이 마른 풀을 헤집고 머리를 내 밀었다.
잠시 후 남해 금산의 정상에 오른다. 산행 거리가 짧아 산 타는 재미는 별로 없지만, 기암으로 이뤄진 산의 품새와 바다에 한 쪽 발을 담궈고 있는 산의 위치,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연출하는 자연의 대향연이 결코 품넓은 산들에 뒤지지 않는 곳이다. 게다가 오늘은 잔뜩 흐른 날씨가 또다른 신비한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
# 만경창파(萬頃蒼波)를 볼 수 있는 곳이다.
# 정상 망대 위의 모습. 남해 금산 정상에서는 그야말로 사방으로 최고의 조망을 보여준다.
#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속의 바다는 수묵화 분위기다.
# 미조 앞바다에 낯익은 섬이 하나 있어 줌으로 땡겨본다. 虎島(범섬)이다. 젊은 시절 저곳에서 軍생활을 했다. 1983년 겨울의 얘기다. 20가구 정도 사는 작은 섬이다. 학생수 5명인 분교 운동장에서 공을 뻥 차면 축구공이 바다에 풍덩 빠졌다.
83년 그해 겨울은 겨울 가뭄이 아주 심해서 섬에 딱 두 개 있는 우물이 완전히 말라 버렸다. 10월에서 이듬해 봄까지 내내 그러했다. 그래서 일 주일에 한 두번씩 행정선이 와서 식수를 보급해주었다. 허드렛물은 여름에 받아둔 빗물을 사용했다. 타일러도 않되고, 욕을 해도 그때 뿐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를 몇 해 전 수리산 등산하면서 만났다. 세상 참 좁았다. 덩치가 자기만한 아들과 같이 있는데 차마 "요즘은 잘 씻고 사냐?" 라고 물어볼 수는 없고, 같이 해후의 술잔 나누면서 유심히 보니 이제는 치아가 하얗게 잘 닦여 있더라. ㅎㅎㅎ # 줌으로 바싹 땡겨보니 선착장과 마을이 보인다. 아!!!!!!!! 내 젊은 날의 범섬이여!!!!!!!!!!!!!
# 정상 너머의 조망. 저 길따라 내려 가면 주차장이 나온다.
# 정상 한 쪽에 있는 '명필암'엔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이라고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조선 중종대의 대학자 주세붕이 쓴 글이라고 한다. "홍문이 있어 금산에 올랐노라" 이렇게 풀이되나? 남들은 다르게 풀이하던데... "가정"이라고 중국 연호를 써 둔 것이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 상주해수욕장쪽 조망.
# 앞바다엔 대형 유조선 한 척이 어제부터 계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금산 정상석. 정상 약간 아래 암봉 위에 있다.
# 우리 순이.
# 금산 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 본다.
한참을 경치 구경을 하다가 보리암쪽으로 내려갔다. 보리암에는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참배객들로 붐빈다. 보리암이 낙산사 홍련암, 강화 보문사와 함께 3대 관음 기도도량으로 유명한 탓이다. # 보리암의 처마. 그림 분위기가 난다.
# 대장암을 배경으로 남해바다를 굽어 보고 있는 관음상.
# 볼이 통통하시다.
# 보리암 삼층석탑. 탑돌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 저 탑 아래에 나침반을 대면 자침의 남북이 바뀐단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기현상이라는데 ,전자 나침반으로 시험해보니 제대로 남북을 가르킨다.
# 보리암 뜰엔 동백이 꽃망울을 맺었다.
# 보리암을 나와 쌍홍문쪽으로 내려갔다.
# 원래 어제 오후에 이 길로 올라 오려고 했다.
# 상주쪽에서는 이 돌문을 통과해야 금산을 오를 수 있다.
# 속세에서 불국토(佛國土)로 들어가는 관문인 셈이다.
# 쌍홍문. 바위벽에 저렇게 구멍이 뚫려있고 그 길을 통과해야 올라 갈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 쌍홍문 옆의 바위 절벽. 만장대.
# 송악이라는 식물로 뒤덮힌 장군암.
# 장군암을 꼭 끌어 안고 있는 송악.
# 이렇다.
# 쌍홍문 안에는 암벽에 이렇게 구멍 3개가 뚫려있다.
# 저곳에 돌을 던져 골인시키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단다. 음...나는 두 번째에 골인!!!!
# 엄청나게 강한 바람이 구멍을 통과한다.
# 다시 보리암으로 낑낑 올라와 대장봉과 부처님 닮은 형리암과도 작별했다.
# 남해바다와도 작별하고... 작은 섬과도...
# 산길 걸어 주차장으로 내려와 금산을 올려다 본다.
# 짧지만 강렬한 만남을 가졌던 금산을 벗어났다. 길가에 동백꽃이 만발하다.
# 동백은 꽃잎이 지는 것이 아니라 꽃송이 채 땅에 뚝뚝 떨어져 내린다.
# 조만간 선운사 동백꽃 보러 가 봐야겠다.
# 매화는 이미 활짝이다. 광양 매화마을에 꽃구경 가기로 즉석에서 결정했다.
# 세상에나... 민들레가 벌써...
# 광대나물도...
# 서상 스포츠 파크 앞에 있는 유명한 물회 먹으러 갔다.
# 이 집 물회는 이렇게 큰 세숫대야에 담겨 나온다.
# 그동안 먹어 본 물회 가운데 가장 맛있다.
# 반찬도 아주 정갈하고 맛나다.
# 갓김치도 일품이다. 강추! 남해 서상 부산횟집의 물회!!!
횟집에서 간만에 맛보는 일품요리에 흠뻑 빠져 있는 동안에 강한 비바람이 몰아친다. 전국적으로 비를 예상하더니 일기예보가 오늘은 정확히 맞다.
비가 계속 강하게 내려 매화 꽃향기 맡으러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귀경길에 올랐다. 남해에서 산본까지 다섯 시간이 걸렸는데 내내 강한 빗속을 운전하여 올라 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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