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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열여섯번째(죽령~고치령)-천상화원(天上花園) 소백(小白)의 향기!!! 본문

1대간 9정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열여섯번째(죽령~고치령)-천상화원(天上花園) 소백(小白)의 향기!!!

강/사/랑 2007. 6. 25. 19:23
 [백두대간]그 열여섯번째(죽령~고치령)



나는 원래 낚시꾼이었다. 지금 산꾼으로서 사용하고 있는 닉네임도 낚시꾼 시절의 닉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백두대간 종주에 뛰어들어 산꾼이 되었지만, 종주를 완료하는 순간 다시 낚시꾼의 모습으로 돌아갈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내 낚시의 이력은 역사가 아주 깊다. 그 시작은 유년시절이다. 남들 딱지치기하고 놀 시기부터 난 낚시가 좋았다. 우리 고향은 진주 남강(南江) 상류의 시골마을이었다. 집현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나불천을 이뤄 남강에 합류하는데, 그 일대가 나의 놀이터였다.


우리 마을엔 대밭이 아주 많았다. 대밭에서
적당한 굵기의 통대를 잘라 구멍가게에서 사온 낚시줄을 묶고 수수깡으로 찌를 만들어 고무튜브 채워 성냥개비로 고정하면 훌륭한 채비가 되었다. 미끼야 거름자리 뒤지면 통통한 지렁이가 지천이니 걱정이 없었다.

그렇게 붕어 낚시꾼으로 나이테 수를 늘렸다. 나이테 굵어질 그동안 서부 경남 일대의 여러 호수와 저수지, 그리고 강계(江界)를 숱하게 누비고 다녔다.


세월 흘러 학교 졸업하고 수도권으로 서식지를 옮기면서 경기도 일원의 저수지와 수로, 호수 등이 주 활동무대가 되었다. 지도 한 장 펼쳐 두고 집을 중심으로 5cm의 원을 그려 그 속에 있는 모든 저수지를 돌아다녔다. 이윽고 완료되면 원을 다시 10cm로 키워 범위를 넓혔다.


그 세월 동안 거의 매주 빠짐 없이 수도권, 충청권은 물론 강원권에 있는 많은 낚시터를 섭렵했다. 그리하여 내 청춘은 낚시이야기로 가득했고 온 몸에 비린내 폴폴 풍겼다. 그때의 내 모토는 '섬세하고 우아하게!'였다. 단 한 마리의 붕어를 낚더라도 섬세하고 우아하게 잡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육칠 년 전에 우연히 우리나라 고유의 낚시 방법인 '견지'의 맛에 빠져 들면서
붕어낚시는 접게 되었다. 견지낚시란 우리나라에만 있는 낚시 방법이다. 맑고 깨끗한 강물의 여울 속에 들어가 꼭 파리채처럼 생긴 자그마한 낚싯대로 고기를 잡는 묘한 낚시법이다.


역사는 오백 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며 주로 대동강과 한강에서 성행했던 낚시이다. 맑은 강물과 흐르는 여울이 반드시 있어야 하므로
현재는 남한강, 홍천강, 임진강, 금강, 섬진강 등 여울이 살아있는 강계(江界)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6,70cm의 작은 낚싯대와 0.8호의 가는 줄, 7호의 작은 바늘로 5,60cm 급의 큰 물고기
를 능수능란하게 잡아내는 놀라운 낚시법이다. 주 대상어는 덩치 큰 누치,  끄리, 눈불개, 송어 등이다.


물론 작은 피래미도 주 대상어 중 하나인데,
작은 피래미 한 마리에도 낭창거리는 낚싯대 때문에 화끈한 손맛을 볼 수 있다. 우리 고유의 낚시법이고 저변이 확대되어 있질 않아 동호인들이 대부분 연세가 높은 편이다.

몇 해 동안 참 부지런히도 견지낚시를 다녔는데, 올해 들어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면서 흐르는 강물 속에는 더이상 들어서질 못하게 되었다. 때문에 내 몸에선 비린내 대신에
땀냄새만 진동하게 되었다.


8월 마지막 주말. 내가 활동하던 견지낚시 동호회 '灘 灘 灘(탄탄탄)'의 정기 공동출조회(共同出釣會)가 남한강 단양에서 1박 2일로 예정되어 있다. '灘'은 '여울 탄'자로 맑은 여울에서 하는 견지낚시를 상징한다. '탄탄탄'이란 저 모임 이름은 내가 작명했다. 약간 코믹한 느낌은 있지만, 여울 속에 선 낚시꾼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동안 백두대간 종주에 빠져 있느라 올해에는 낚시동호회 모임에 한번도 참석 하지 못했다. 그래도 명색이 동호회 창립 맴버인데 회원들 보기 미안한 일이다.  그리하여 무엇인가 대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동호회 선후배들과 쐬주 한 잔 하면서 회포를 풀고 백두대간 종주도 한 구간 진행하는 방안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면 단양 근처의 구간을 선택하면 될 일이다. 그리하여 이번 주는 구간을 한참 건너 뛰어서 소백산 구간을 하기로 결정했다. 토요일날 소백 구간을 하고 단양으로 가서 낚시 동호회 정기 출조도 참석한다는 계산이다.



천상화원(天上花園) 소백(小白)의 향기!!!



구간 : 백두대간 제 33 소구간(죽령 ~ 고치령)
거리 : 구간거리(24.83 km), 누적거리(347.02 km)
일시 : 2005년 8월 28일.
세부내용 : 죽령(06:30) ~ 송신소입구(08:00) ~ 제2연화봉 ~ 천문대(08:35)/휴식 ~ 연화봉(09:00)/
휴식(09:15) ~ 제1연화봉(09:38) ~ 1382봉 ~ 1395봉 ~ 천동리갈림길(10:29) ~ 주목관리소 ~ 비로봉(10:40)/휴식(11:00) ~ 새밭갈림길 ~ 철쭉군락지 ~ 초암사갈림길 ~ 국망봉(12:18) ~ 상월봉(12:33) ~ 늦은맥이고개(13:10)/식사(13:50) ~ 1272봉 ~ 1060.6봉(14:37) ~ 연화동갈림길(15:05) ~ 1031.6봉 ~ 마당치(16:34) ~ 형제봉갈림길(17:08) ~ 863봉 ~ 고치령(18:00).

총 소요시간 11시간 30분.(휴식,식사시간 포함). 만보계 기준 44,800걸음.

8월 26일. 금요일. 일찍 퇴근해서 짐 챙겨 출발할 생각이었는데, 뜻하지 않은 술자리가 생겼다. 도저히 빠질 수가 없는 자리여서 참석을 했는데 분위기도 먹고 죽자는 분위기다. 에라, 모르겠다! 같이 먹고 죽자! 부어라! 마셔라!

술 폭탄 맞고 인사불성된 직장 선배 업고 끌고 해서 겨우 집에 넣어 주고
택시 타고 집에 오니 새벽 4시다. 이 상태론 도저히 못 간다. 좀 자자!

느지막히 일어나 아점 먹고 출발했다. 토요 산행은 틀렸고 먼저 동호회 모임에 참석해서 술 한 잔 하고(또?),
죽령으로 이동해서 일요일에 대간을 하기로 했다.


미리 벌초하러 떠나는 사람들 탓에 모든 고속도로는 정체 내지는 서행 중. 국도, 지방도 돌아 돌아 한번도 막히지 않고 단양에 도착하니 오후 5시다. 동호회 사람들 깜짝 놀라며 반가워했다. 올해 처음으로 참석하는 모임인지라 미안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선후배들인지라 반갑기도 해서 부어라! 마셔라! 오늘도 술잔이 쌓여간다. 선배 한 분이 쑥으로 모기불을 피워놓아 향기며 정취며 장난이 아니다.

백두대간 이야기를 했더니 대단하다고 하기도 하고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렇다. 미안타! 마시자! 선배님, 잔 받으소! 그럭저럭 12시까지 술자리가 계속 되었다. 취기 가득할 무렵 아쉬워하는 동호회 회원들에게 인사하고 죽령을 향해 출발했다.

이틀 연속 술독에 빠졌더니 기분은 좋은데 몸 컨디션은 엉망이다. 마눌더러 운전하라 하고 옆자리에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뭔가 번쩍해서 일어나 보니 과속단속 카메라가 터졌단다. 60km 구간을 85km로 달렸단다. 이후  5일만에 잘 찍힌 사진 한 장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이런! 돈 잘 쓴다! 길이 꼬불꼬불하니 천천히 갑시다! 마눌! 죽령은 원래 오르막 30리, 내리막 30리 라네.
  천천히 가세!


죽령/竹嶺


죽령은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에 있다. 소백산맥에 나란히 자리한 여기 죽령과 문경새재·추풍령을 일러, 영남과 기호지방을 통하는 관문의 삼형제라면 죽령은 바로 그 맏형격이다. 그 연대, 그 자리, 그 높이, 그 구실이 단연 으뜸인 때문이다.소백산 제2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잘록한 지점에 자리한 해발 689m가 죽령이다. 삼국사기에 『아달라왕(阿達羅王) 5년(서기158년)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 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에 竹竹이 죽령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고,고개마루에는 죽죽을 제사하는 사당(竹竹祠)이 있다고 했다. 유구한 역사와 온갖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죽령은 삼국시대 한동안 고구려의 국경으로 신라와 대치, 삼국의 군사가 뒤엉켜 엎치락 뒤치락 불꽃튀는 격전장이기도 했다.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한 것은 장수왕 말년(서기 470년경) 신라 진흥왕 12년(서기 551년) 왕이 거칠부(居漆夫)등 여덟장수를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 죽령이북 열 고을을 탈취했으며, 그 40년 뒤인 영양왕 1년(서기 590년) 고구려 명장 온달(溫達)장군이 왕께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등의 기록(삼국사기)으로 당시 죽령이 얼마나 막중한 요충이었음을 짐작할 만한 하다. 서기 1910년대까지도 경상도 동북지방 여러 고을이 서울 왕래에 모두 이길을 이용했기에, 청운의 뜻을 품은 과거선비, 공무를 띈 관원들이며, 온갖 물산을 유통하는 장사꾼들로 사시장철 번잡했던 이 고갯길에는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객점, 마방들이 목목이 늘어 있었다. 장장 2천년 유구한 세월에 걸쳐 우리나라 동남지역 교통대동맥의 한 토막이었던 이 길은 근래 교통수단의 발달로 행객이 끊겨 수십년 숲덩굴에 묻혀 있었던 바, 이제 옛자취를 되살려 보존하는 뜻에서 '99. 5월 공공근로사업으로 이 길(2.5km)을 다시 열었고 '99. 8월 죽령 옛길 안내판(희방사역 및 죽령고개 2개)과 전설안내판(옛길 요소요소에 5개)을 설치하여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죽지령(竹旨嶺)의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죽지는 진덕여왕 대의 재상 술종(述宗)의 아들이다. 술종이 삭주(지금의 춘천)의 도독사로 부임하는 길에 죽령(삼국유사에는 죽지령이다)에서 한 거사(居士, 이 거사가 해동 고승 원측법사라는 설도 있다)를 만나 서로 정겹게 사귀고 헤어진 후, 삭주에서 꿈을 꾸었다. 죽령의 거사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꿈이었으니 부인도 같은 꿈을 꾸었다. 술종이 죽령에 사람을 보내 알아본 즉 거사가 죽은 날이 바로 꿈을 꾼 날이었다. 이에 술종은 거사가 자기 집에 환생하였음을 굳게 믿었다. 마침내 아들이 태어나 이름을 죽지라 불렀다. 효소왕 때 화랑 득오(得烏)는 향가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를 후세에 남겼다.득오가 문관인 익선(益宣)에게 징발되어 고생할 적에 상관이었던 죽지를 그리며 지은 노래라 한다. 


가는 봄이 그리워 / 모든 것이 서러워 우네 / 아담한 얼굴에 / 주름살 지는 것을 / 잠시 사이나마 / 만나 뵙게 되었으면 / 님이여 그리운 마음으로 가시는 길 / 쑥대마을에 자고 갈 밤 있으실까.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33소구간 죽령 ~ 고치령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안개 자욱한 죽령 고갯길을 꼬불꼬불 올라 죽령휴게소에 도착하니 새벽 1시 20분이다. 죽령휴게소는 짙은 안개 속에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데, 이마에 등불을 단 단체산행객 10여 명이 준비운동하고 파이팅 외치며 출발하고 있다.

술이 깨질 않아 이 상태로 갈 수는 없고 우리는 잠시 차에서 눈을 붙이고 가기로 했다. 좁은 차안이 불편하기는 해도 피곤해서인지 한번도 깨질 않고 다섯 시까지 잘 잤다.

다섯 시에 기상해서 차에서 나오니 짙은 안개와 함께 차가운 바람이 훅 달려든다. 이틀 연속 술독에 빠졌더니 속이 너무 쓰리다. 해장국 한 그릇 했으면 좋겠지만 희망사항일 뿐이고 라면 끓여 쓰린 속을 달랬다.


# 안개 자욱한 죽령휴게소와 표지석.

 

 

# 백두대간 구간 중 들머리가 가장 넓은 죽령.

 

 

6시 30분. 이런저런 이유로 출발이 늦어졌다. 부랴부랴 짐 챙기는데 아이들을 대동한 두 가족이 주차하고 요란하게 올라 가더니 금방 내려와서는 다시 차를 몰고 가버린다. 이 가족은 나중에 비로봉에서 다시 조우한다. 이 코스가 너무 어려울것 같아 짧은 코스로 이동했다 한다.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들머리로 들어섰다. 조금 올라가니 왼쪽에 화장실이 있다. 공손한 매표소 공단직원의 배웅을 받고 팍팍한 '시멘트 도로'를 차고 올라갔다. 이틀 동안 술독에 빠졌다가 나왔더니 오르막이 너무나 힘이 든다. 헉헉! 낑낑!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억지로 보조를 맞춰주던 마눌 도저히 안되겠는지 앞장서 내달려 버린다.

아이고, 죽겠다! 이놈의 시멘트 길은 언제나 끝날려나? 지도를 확인하니 2시간 20분이나 가야 된다.


                     

# 천문대까지 가파르게 이어지는 시멘트길.

 

 

# 물봉선. 소백은 전체적으로 습한 환경인지 오늘 구간 내내 습지식물인 물봉선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이질풀. 소백 화원의 주인공. 소백 전체를 뒤덮고 있다.

 

 

# 가을의 전령사인 구절초.

 

 

# 진범.

 

 

 

# 힘겹게 오르막을 올라 가는데 봉고차 한 대가 휙 스쳐 올라간다. 아마도 천문대 차량인 듯하다. 너무나 힘들어 태워 달라는 소리가 목구멍을 차고 나오려고 한다.

 

 

마눌은 얼마나 앞서 가버렸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혼자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한참을 오르니 'KT 송신소'가 불쑥 나타난다.(08:00). 죽령에서 1시간 30분 소요되었다. 지도의 예상시간보다 10분 초과했다.

마눌은 벌써 지나 가버렸는지 보이질 않고 송신소를 돌아가는 길 한 쪽에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엔 사진작가들인지 몇사람이 사진장비와 사륜구동차를 세워 두고 식사중이다.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해도 반응이 시큰둥하다. "에이~ 밥 달라 안한다!!!"

전망대에 서니 아~~~ 그곳에 기가 막힌 자연의 대향연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얀 구름의 바다가 소백의 준봉들을 섬으로 만들어 점점이 띄워 놓고 가끔 강력한 바람과 자욱한 개스로 짓궂게 보여줬다 가렸다를 반복한다.


                     

# 송신소.

 

 

        

# 소백의 구름바다.

 

 

# 너무나 장엄하여

 

 

# 말문이 막힌다.

 

 

# 올라 오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싹 가신다.

 

 

넋을 잃고 우윳빛 운해(雲海)를 감상하다가 으슬으슬 추워져서 다시 출발했다. 땀에 범벅이 되었었는데 강력한 소백의 칼바람이 순식간에 한기가 들게 만들어 버린다. 송신소와 '제2연화봉'을 뒤로 하고 잠시의 휴식으로 회복된 기운으로 힘차게 출발했다.

길은 잠시 비포장으로 변하더니 금방 다시 시멘트 길로 바뀐다. 중간 중간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지만 무시하고 계속 올라 갔다. 샘터 안내판도 보이는데 물은 충분히 준비해 왔으니 그것도 무시.

바람이 한바탕 강하게 불어 오더니 개스가 가득 차서 앞이 잘 안보인다. 후끈한 열기를 머금은 개스 속을 힘들게 차고 올라가니 첨성대를 닮은 '천문대'의 돔이 개스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지도에서는 송신소에서 1시간을 예상했는데 30분 만에 도착했다.


        

# 반가운 천문대의 돔.

 

 

천문대 입구에서 마눌이 기다리고 있다. 강아지라면 좋아 어쩔줄 모르는 마눌은 미리 도착해서 천문대의 강아지와 놀고 있었단다. 홀로 산꾼 중 '백두'님이 저 강아지의 식량인 건빵을 얻어 드시고 후답자들에게 꼭 보답을 하라고 글을 남겨 몇몇 분이 갚았노라고 하자 마눌 눈이 반짝한다. 배낭을 뒤져 건빵과 육포며 끄집어 내더니 강아지와 희희낙낙!!!

천문대 앞엔 깨끗한 화장실이 있다. 연이어 마신 술이 장을 뒤집어 놓았는지 배가 살살 아파온다. 천문대 화장실은 앞이 바로 계곡과 연결되어 있어
강력한 소백의 맞바람 탓에 냄새 하나 없이 깨끗하다. 볼일 보고 나서 옷도 올리지 않고 문을 여니 강력한 바람이 확 달려든다. 아, 시원하다!!! 보는 사람도 없고 시원하고 냄새도 없으니 오늘 거풍(擧風)은 이걸로 좋다!!!

 

'연화봉'은 천문대에서 지척이라 한달음에 올랐다. 지난 겨울 순백으로 가득했던 소백 연화봉엔 연꽃 대신 눈꽃이 가득했었는데 오늘은 울긋불긋 등산객들의 등산복이 꽃으로 피어있다.


야호 소리가 연방 들려 돌아보니 래게 머리를 한 아가씨가 혼자 호들갑이다. 그 아가씨 복장이 가관이다. 운동화에 짧은 반바지. 아이구, 이 사람아! 소백이 어떤 산인데... 동행인듯 여자 둘이 얼른 데리고 자리를 이동한다.

연화봉. 또 한번 멋진 조망을 선사한다. 간혹 개스가 덮쳐 시야를 방해하기는 하나 동서남북 막힌 데 없이
둥근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 연화봉 정상석.

 

 

        

# 천문대 뒤로 구름꽃이 피어 오른다. 

 

 

# 멀리 제2연화봉 위에 우뚝 선 송신소.

 

 

 

# 운해에 갇혀 순식간에 섬이 된다.

 

        

#  가야 할 소백의 주능선. 왼쪽의 제2연화봉과 오른쪽의 소백 주봉(主峯)인 비로봉. 높낮이가 적어 편안한 마음이다.

 

 

연화봉을 떠나 제1연화봉으로 향하는 길은 울창한 잡목숲으로 시작한다. 지난 겨울 봅슬레이 경기장처럼 미끄러운 얼음판으로 거북이 걸음을 걷게 만들었던 등로는 오늘은 질척한 진흙길로 바뀌어 있다. 질척한 숲속을 벗어나자 한순간 강력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넓은 안부가 나타난다.


                     

# 안부엔 소백의 칼바람과 짙은 개스 그리고 헬기장이 있다. 

 

 

역시 소백의 칼바람은 여전하다. 안부를 넘어오는 바람이 한순간 몸을 휘청이게 한다. 개스는 바람을 따라 온 안부를 휘감았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헬기장 너머엔 소백특유의 자연보호용 나무등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 제1연화봉 중턱 나무 전망대에서 돌아 본 모습. 

 

 

                     

# 등산객이 꽤 많이 있다. 나무계단 탓에 모두들 절름발이 걸음으로 절룩절룩 다리를 절며 계단을 오른다.

 

 

        

#  제1연화봉 

 

 

                     

# 제1연화봉 이정목. 1394.3m다.(09:38)

 

 

'제1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는 세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한다. '1382봉','1395봉'과 '천동리갈림길 전 봉우리'다. 그래도 높낮이가 극단적이지 않아 콧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다.


                     

# 오늘 마눌은 앞장 서 잘 간다. 컨디션이 좋은 편이다.

 

 

                     

# 소백의 안부엔 바람과 개스로 가득하다

 

 

                     

# 소백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오늘 소백의 능선은 제대로 된 대간 능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등로 주변은 온통 천상화원이다. 이질풀이 지천이다.

 

 

        

# 강한 바람에 몸을 눕힌 풀들. 그 모습이 마치 바람 부는 바다 물결처럼 보인다. 공자(孔子)가 편찬한 시경(詩經)을 달리 모시(毛詩)라고 한다. 그곳에 이런 시가 있다.


草上之風草必偃 誰知風中草復立 <毛詩序> / 풀위에 바람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뉘라서 알리오,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서고 있음을!

 

 

        

# 1395봉. 암봉으로 되어있다. 그 뒤로 소백의 주봉인 비로봉이 보인다.

 

 

                     

# 1395봉에서 돌아 본 1382봉.

 

 

        

# 1395봉에서 본 천동리갈림길 전봉과 멀리 비로봉.

 

 

        

# 주목관리소와 비로봉이 전방에 있다.

 

 

                     

# 비로봉 가는 길.

 

 

        

# 비로봉 옆 국망봉 가는 길의 첫 봉우리.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 주목관리소. 부자집 별장같은 분위기다. 지난 겨울 칼바람을 피해 온 사람으로 만원이더니 오늘은 텅 비었다.

  

                     

# 지난 겨울 칼바람 속을 엉금엉금 기어서 갔던 주목관리소 가는 길.

 

 

                     

# 비로봉 오름. 칼바람은 여전하다. 체온이 순식간에 내려간다. 지난 겨울 여기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던 곳이다. 그 겨울 이 계단길을 공포에 가득찬 채 엉금엉금 기어 내려 갔었다.

 

 

                     

# 드디어 비로봉 정상(10:40). 죽령에서 4시간10분 걸렸다.

 

 

'비로봉 정상'엔 등산객이 많다. 칼바람이 너무 매워 모두들 삼가리쪽 바람 없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하거나 쉬고 있다. 아침에 죽령휴게소에서 차 돌려 가셨던 가족을 이곳에서 만났다.


                     

# 삼가리쪽 하산길.

 

 

        

# 지나 온 소백의 주능선. 큰 오르내림 없는 소백 특유의 산세가 길게 누워 있다.

 

                      

# 국망봉 가는 길. 백두대간은 저 길로 계속 이어져 고치령으로 향한다.

 

 

지난 겨울 백두대간 준비산행의 두번째 도전 장소였던 소백산. 삼가리에서 비로사 거쳐 이곳 비로봉에 올라 왔을 때 초보 산꾼인 우리 부부는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과 너무나 매서운 칼바람에 놀라고 또 놀랬더랬다. 푸르디 푸른 겨울 하늘, 기기묘묘한 눈꽃, 하얀 산천, 날카로운 바늘로 마구 찌르는 듯한 아픔과 몸을 가누지 못하게 강력한 칼바람.

오늘 비로봉은 초록빛 키 낮은 풀밭과 별을 뿌려 놓은 듯 아름다운 꽃들로 반겨준다. 한번 본 안면이 있다 이것이겠지. ^^*

충분히 휴식한 후 11:00 정각에 국망봉을 향해 출발했다. 대부분의 등산객은 비로봉을 기점으로 하산하거나 연화봉쪽으로 출발하고 대간길엔 우리만 보인다.


                     

# 국망봉을 향해 Go! 소백의 주능선에는 드문드문 있던 등산객들이 이곳에는 전혀 없다.

 

 

                     

# 바위떡풀이 운치 있게 뒤덮은 암봉을 만났다. 오래된 풍경을 보는 기분이다.

 

 

                     

# 푸른 이끼로 옷을 해 입은 거대한 고목을 지난다.

 

 

                     

# 촛대승마.

 

 

        

# 정영엉겅퀴.

 

 

                     

# 산꼬리풀.

 

 

                     

# 고들빼기.

 

 

        

#  동자꽃.

 

 

        

#  노란물봉선.

 

 

        

# 이질풀. 꽃잎에 혈관이 내 비치는 듯한 모습이다.

 

 

         

# 마주송이풀, 바람개비처럼 생겼다. 바람 불면 빙빙 돌아 하늘로 날아 올라 갈 것 같은 느낌이다.

 

 

                     

# 미역취. 잎을 비비면 미역 냄새가 난다. 미역취란 이름은 이 때문에 생겼다.

 

 

         

# 눈높이에서 바라 본 금마타리.

 

 

        

# 삽주.

 

 

 

        

# 소백은 야생화로 가득하다. 특히 이질풀은 소백을 온통 뒤덮었다.

 

 

                     

# 한 길이 넘는 철쭉 군락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 국망봉 전 암봉. 작은 돌탑이 있다.

 

 

        

# 초암사 갈림길. 2월에 사고당하신 분들이 이곳으로 올라와서 비로봉쪽으로  향하다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오늘도 바람이 아주 강하다.

 

 

        

# 국망봉(12:18). 비로봉에서 1시간 18분 걸렸다.

 

 

        

# 마의태자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국망봉' 봉우리 앞에서는 세 분이 식사 중이다. 우리도 배가 고팠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국망봉 부근엔 바람이 무시무시하게 분다. 비로봉보다 바람의 세기가 훨씬 더 강하다. 바람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대간의 마루금을 타고 넘는 것이 개스 탓에 한눈에 보인다.

지난 겨울의 조난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8월말이 이정도인데 겨울 밤에 느껴질 추위나 바람의 강도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항상 안전, 또 안전을 우선해야 할일이다.


        

# 엉터리 이정목. 누군가 엉터리라고 떼어 놓은 것을 또 누군가 정렬해 두었다.

 

 

                     

# 바람, 개스 가득한 대간길. 

 

 

 

국망봉 이후의 구간엔 이정목들이 계속 나타나는데 엉터리가 많다. 거리 표시도 틀린 경우가 있고 늦은맥이 고개에 세워져 있어야 할 신선봉 갈림길 표지판이 상월봉 앞에 세워져 있고 그렇다. 실전 백두대간의 예상시간도 실제 소요시간보다 길게 표시 되어 있다.

비로봉에서 국망봉을 거쳐 상월봉까지 오는 동안 무서운 소백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진행했다. 마눌은 윈드브레이크를 꺼내 입고서도 춥다고 한다. 저는 그냥 반팔에 토시만 꼈더니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상월봉 바로 앞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직진하면 '상월봉' 정상으로 올라가고 우회하는 길이 좌측으로 나 있다. 대간 표지기 몇 개가 좌측길에 붙어 있다. 좌측길로 들어섰더니 잡풀이 우거져 걷기조차 힘이 든다.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도 보이질 않는다. 좀 전에 좌측길이 신선봉가는 길이라고 붙은 이정목이 있었는데...

다시 빽! 갈림길에서 보니 상월봉 올라 가는 길은, 길은 좋아 보이는데 표지기가 전혀 없다. 지도를 확인하니 좌측으로 꺽이는 게 맞다. 선답자들의 종주기에도 잡풀 가득한 길을 걸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다시 좌측으로 진입해서 잡목을 헤치고 올라 가니 급하게 떨어지는 내리막이 나온다. 결국 아까 그 이정목이 엉터리다.

가파르게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막을 한차례 오른 후 이내 긴 내리막이 계속 이어진다. 속도를 더해가며 한참을 계속 가니 갈림길인 '늦은맥이고개'에 도착했다. 13시 10분. 비로봉에서 2시간 10분 걸렸다. 예정보다 20분 절약되었다.

식사하기 별로 좋은 여건은 아니었지만 배가 너무 고파 자리 깔고 점식식사를 했다. 막걸리도 한 잔 하고... 


        

# 늦은맥이고개. 

 

 

춥고 음산해서 밥맛도 별로다. 평소 점심식사는 항상 1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는데 오늘은 40분만에 끝내고 1272봉을 향해 출발했다(13:50).

 

늦은맥이고개에서 가파른 오름을 치고 올라가니 '1272봉'이다. 좌측으로는 신선봉으로 가는 길이고 대간길은 오른쪽으로 내려 간다. 잡목지대로 이뤄진 긴 내리막이 이어진다. 간혹 오름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약한 오름이어서 편안한 길이다. 충분히 쉬고 밥도 먹었겠다, 편한 구간이겠다 자연히 발걸음이 빨라진다.


                      

# 폐헬기장과 쓰러진 이정목이 있는 1060.6봉.

 

 

                     

# 연화동갈림길.

 

 

편한 길을 내달려 어느듯 '연화동 갈림길'에 도착했다(15:05). 실전 백두대간에서는 늦은맥이에서 연화동갈림길까지 2시간 10분을 예상했는데 1시간 15분이 걸렸다. 아무리 편한 길이라 속도를 냈다고는 하지만 우리 실력으로 1시간이나 단축했다니...


아무래도 지도가 잘못되었나 보다. 이후 마당치까지 지도에서는 1시간을 예상했는데, 우리는 1시간 20분이 걸린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지도의 오류인 듯하다.



                     

# 연화동갈림길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하나 오르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 다시 50여 분 더 가니 1031.6봉으로 추정되는 봉우리가 나온다. 지도나 이정표 모두 믿을 수가 없어 이곳이 1031.6봉인지 앞의 헬기장이 1031.6봉인지 확신이 안선다.

 

 

                      

# 내리막을 다시 30여 분 더 가서 마당치에 도착했다(16:34).

 

 

이제 고치령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거리이다. '마당치' 이정목엔 누군가 고치령까지 1시간 거리라고 표시해 두었다. 천천히 가자. 배낭 벗어 두고 간식 먹으며 잠시 한숨 돌렸다. 고치령 민박집에 트럭 부탁하려고 전화하니 휴대폰 불통지역이다.

한참을 쉰 후 이내 가파른 오르막으로 치고 올라간다. '형제봉 갈림길'이 있는 1032봉 헬기장으로 오르는 오르막이다. 그러나 정상 부근에서 대간길은 오른쪽으로 우회하게 되어 있다.

 


                     

# 형제봉 갈림길 이정목(17:08)

 

 

이후로 고치령까지는 내리막의 연속이다가 고치령 직전에서 '863봉'으로 한번 솟아 올라 있을 뿐이다. 1시간여 길을 걸으면서 계속 전화를 시도해 보지만 연결이 안된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약간 높아 보이는 곳으로 올라가
이곳 저곳 위치를 바꿔가며 전화를 하니 드디어 연결이 되었다. 그런데 부인이 받으시더니 지금 고치령 아랫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 있다는 거다. 아이구야! 간만에 아무 탈 없이 잘 진행된다 싶더니 결국 마지막에 한건 한다. 미리 전화로 확인을 하지 않은 불찰이다.

할 수 없이 풍기택시로 전화를 해서 요금을 확인해보니
죽령까지 무려 60,000원이나 달라고 한다. 심하다!!! 지난번 춘양택시는 박달령에서 고치령까지 80,000원이나 달래더니...

돈이 얼마나 있나 하고 확인해보니 애그머니 지갑을 안가지고 왔다. 며칠 술독에 빠져 지냈더니 건망증이 생겼나??? 마눌 지갑 속에는 꼭 40,000원이 있을 뿐이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일단 고치령까지 가서 걸어 내려가던지 혹시 재수 좋으면 히치를 하던지 하자 하고
계속 가는데, 마눌이 국립공원 구조 표지목에 붙어있는 영주 개인택시 스티커를 발견하고 저곳에 전화를 해보자고 한다. 마침 바로 연결이 되었는데 죽령까지 40,000원이라고 한다. 30분 뒤에 만나기로 하니 이제야 한숨 돌리게 된다!



# 드디어 고치령에 도착(18:00).

 

 

휴식시간 포함해서 11시간 30분 걸렸다. 실전 백두대간 예상시간과 거의 일치했지만 이번 구간의 지도는 믿을 수가 없다. 밥 먹고 휴식하느라 2시간 정도 소비한 것을 감안하면 준수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선답자들의 종주기를 보니 모두들 휴식 포함해서 9시간 30분, 10시간 정도에 끝냈더라. 에그, 우리가 그렇지!!!



# 도래기재 방향 들머리와 산신각.

 

 

고치령엔 지난 4월 이후 4개월만에 다시 섰다. 그때는 양쪽 날머리, 들머리에 각각 소백지장(小白地將), 태백천장(太白天將)이라는 1개씩의 장승만이 있었는데, 오늘 보니 양쪽으로 2개씩 더 세워져 있다.

마눌이랑 서로 수고했다고 격려하고 있는데
고개 너머 단양쪽에서 자동차가 한 대 넘어 오고 있다. 이곳은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곳이라 히치는 기대도 안하고 영주택시를 불렀는데 자동차를 만나다니... 아이구, 아까워라!!!!

세워달라고 하기도 전에 자동차가 서더니 타라고 한다. 이미 택시를 불렀다고 사양하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는데 그래도 타란다. 내려 가다가 택시를 만나면 그때 내리라면서... 남자분과 비구니스님 이렇게 두 분이신데
백두대간 하는 사람이 신기하고 대견하고 그랬나 보다.

조금 내려가지 않아 아래에서 택시가 올라온다. 그분들께 인사 드리고 택시로 갈아 타고 내려 갔다.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남 신세지지 않고 택시 타고 가자고 생각하니 속은 편하다.

좌석리로 내려가는데 길옆 계곡의 물소리가 너무나 시원하다. 기사님께 잠깐 세워 달라고 하고 계곡에 내려가 손 씻고 세수했더니 너무나 좋다. 기분같아서는 홀랑 벗고 풍덩했으면 좋으련만, 기사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이걸로 만족해야 한다.



# 다시 돌아 온 죽령휴게소. 다음에 벌재 ~ 죽령구간할 때 한번 더 와야 한다.

 

 

죽령휴게소에 돌아 와 택시비 지불하고 나니 완전 빈털털이가 되었다. 택시비 50,000원 달라고 했으면 외상으로 할 뻔 했다. 누군가 안배를 하듯이 이렇게 정확히 맞을 수가 있다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귀경길도 여전히 모든 고속도로는 정체 중이다. 단양 IC에서 중앙고속도로 타고 제천에서 빠져 39번 국도로 안성까지 내쳐 달려
안성에서 다시 안성~평택간 고속도로 타고 청북에서 빠져서 다시 국도 타고 산본까지 한번도 안 막히고 집에 돌아 왔다. 자동차 거리계를 보니 220km이다. 지난 주 경북 상주의 화령재까지 거리가 정확하게 220km 였는데 오늘도 똑같이 220km다. 그 참! 신기하네!!!

집에 돌아와 씻고 누으니 오늘 만났던 소백의 준령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음, 소백은 언제나 놀랍고 멋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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