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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백두대간]열여섯번째(죽령~고치령)-천상화원(天上花園) 소백(小白)의 향기!!! 본문
나는 원래 낚시꾼이었다. 지금 산꾼으로서 사용하고 있는 닉네임도 낚시꾼 시절의 닉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백두대간 종주에 뛰어들어 산꾼이 되었지만, 종주를 완료하는 순간 다시 낚시꾼의 모습으로 돌아갈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세월 흘러 학교 졸업하고 수도권으로 서식지를 옮기면서 경기도 일원의 저수지와 수로, 호수 등이 주 활동무대가 되었다. 지도 한 장 펼쳐 두고 집을 중심으로 5cm의 원을 그려 그 속에 있는 모든 저수지를 돌아다녔다. 이윽고 완료되면 원을 다시 10cm로 키워 범위를 넓혔다. 그 세월 동안 거의 매주 빠짐 없이 수도권, 충청권은 물론 강원권에 있는 많은 낚시터를 섭렵했다. 그리하여 내 청춘은 낚시이야기로 가득했고 온 몸에 비린내 폴폴 풍겼다. 그때의 내 모토는 '섬세하고 우아하게!'였다. 단 한 마리의 붕어를 낚더라도 섬세하고 우아하게 잡고 싶었던 것이다.
8월 마지막 주말. 내가 활동하던 견지낚시 동호회 '灘 灘 灘(탄탄탄)'의 정기 공동출조회(共同出釣會)가 남한강 단양에서 1박 2일로 예정되어 있다. '灘'은 '여울 탄'자로 맑은 여울에서 하는 견지낚시를 상징한다. '탄탄탄'이란 저 모임 이름은 내가 작명했다. 약간 코믹한 느낌은 있지만, 여울 속에 선 낚시꾼들을 상징하고 있다. 오랜만에 동호회 선후배들과 쐬주 한 잔 하면서 회포를 풀고 백두대간 종주도 한 구간 진행하는 방안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면 단양 근처의 구간을 선택하면 될 일이다. 그리하여 이번 주는 구간을 한참 건너 뛰어서 소백산 구간을 하기로 결정했다. 토요일날 소백 구간을 하고 단양으로 가서 낚시 동호회 정기 출조도 참석한다는 계산이다.
구간 : 백두대간 제 33 소구간(죽령 ~ 고치령)
죽령/竹嶺
죽지령(竹旨嶺)의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가는 봄이 그리워 / 모든 것이 서러워 우네 / 아담한 얼굴에 / 주름살 지는 것을 / 잠시 사이나마 / 만나 뵙게 되었으면 / 님이여 그리운 마음으로 가시는 길 / 쑥대마을에 자고 갈 밤 있으실까.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33소구간 죽령 ~ 고치령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안개 자욱한 죽령 고갯길을 꼬불꼬불 올라 죽령휴게소에 도착하니 새벽 1시 20분이다. 죽령휴게소는 짙은 안개 속에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데, 이마에 등불을 단 단체산행객 10여 명이 준비운동하고 파이팅 외치며 출발하고 있다.
# 백두대간 구간 중 들머리가 가장 넓은 죽령.
6시 30분. 이런저런 이유로 출발이 늦어졌다. 부랴부랴 짐 챙기는데 아이들을 대동한 두 가족이 주차하고 요란하게 올라 가더니 금방 내려와서는 다시 차를 몰고 가버린다. 이 가족은 나중에 비로봉에서 다시 조우한다. 이 코스가 너무 어려울것 같아 짧은 코스로 이동했다 한다.
# 천문대까지 가파르게 이어지는 시멘트길.
# 물봉선. 소백은 전체적으로 습한 환경인지 오늘 구간 내내 습지식물인 물봉선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이질풀. 소백 화원의 주인공. 소백 전체를 뒤덮고 있다.
# 가을의 전령사인 구절초.
# 진범.
# 힘겹게 오르막을 올라 가는데 봉고차 한 대가 휙 스쳐 올라간다. 아마도 천문대 차량인 듯하다. 너무나 힘들어 태워 달라는 소리가 목구멍을 차고 나오려고 한다.
마눌은 얼마나 앞서 가버렸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혼자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한참을 오르니 'KT 송신소'가 불쑥 나타난다.(08:00). 죽령에서 1시간 30분 소요되었다. 지도의 예상시간보다 10분 초과했다.
# 송신소.
# 소백의 구름바다.
# 너무나 장엄하여
# 말문이 막힌다.
# 올라 오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싹 가신다.
넋을 잃고 우윳빛 운해(雲海)를 감상하다가 으슬으슬 추워져서 다시 출발했다. 땀에 범벅이 되었었는데 강력한 소백의 칼바람이 순식간에 한기가 들게 만들어 버린다. 송신소와 '제2연화봉'을 뒤로 하고 잠시의 휴식으로 회복된 기운으로 힘차게 출발했다.
# 반가운 천문대의 돔.
천문대 입구에서 마눌이 기다리고 있다. 강아지라면 좋아 어쩔줄 모르는 마눌은 미리 도착해서 천문대의 강아지와 놀고 있었단다. 홀로 산꾼 중 '백두'님이 저 강아지의 식량인 건빵을 얻어 드시고 후답자들에게 꼭 보답을 하라고 글을 남겨 몇몇 분이 갚았노라고 하자 마눌 눈이 반짝한다. 배낭을 뒤져 건빵과 육포며 끄집어 내더니 강아지와 희희낙낙!!!
'연화봉'은 천문대에서 지척이라 한달음에 올랐다. 지난 겨울 순백으로 가득했던 소백 연화봉엔 연꽃 대신 눈꽃이 가득했었는데 오늘은 울긋불긋 등산객들의 등산복이 꽃으로 피어있다. 야호 소리가 연방 들려 돌아보니 래게 머리를 한 아가씨가 혼자 호들갑이다. 그 아가씨 복장이 가관이다. 운동화에 짧은 반바지. 아이구, 이 사람아! 소백이 어떤 산인데... 동행인듯 여자 둘이 얼른 데리고 자리를 이동한다.
# 연화봉 정상석.
# 천문대 뒤로 구름꽃이 피어 오른다.
# 멀리 제2연화봉 위에 우뚝 선 송신소.
# 운해에 갇혀 순식간에 섬이 된다.
# 가야 할 소백의 주능선. 왼쪽의 제2연화봉과 오른쪽의 소백 주봉(主峯)인 비로봉. 높낮이가 적어 편안한 마음이다.
연화봉을 떠나 제1연화봉으로 향하는 길은 울창한 잡목숲으로 시작한다. 지난 겨울 봅슬레이 경기장처럼 미끄러운 얼음판으로 거북이 걸음을 걷게 만들었던 등로는 오늘은 질척한 진흙길로 바뀌어 있다. 질척한 숲속을 벗어나자 한순간 강력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넓은 안부가 나타난다.
# 안부엔 소백의 칼바람과 짙은 개스 그리고 헬기장이 있다.
역시 소백의 칼바람은 여전하다. 안부를 넘어오는 바람이 한순간 몸을 휘청이게 한다. 개스는 바람을 따라 온 안부를 휘감았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헬기장 너머엔 소백특유의 자연보호용 나무등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 제1연화봉 중턱 나무 전망대에서 돌아 본 모습.
# 등산객이 꽤 많이 있다. 나무계단 탓에 모두들 절름발이 걸음으로 절룩절룩 다리를 절며 계단을 오른다.
# 제1연화봉
# 제1연화봉 이정목. 1394.3m다.(09:38)
'제1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는 세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한다. '1382봉','1395봉'과 '천동리갈림길 전 봉우리'다. 그래도 높낮이가 극단적이지 않아 콧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다.
# 오늘 마눌은 앞장 서 잘 간다. 컨디션이 좋은 편이다.
# 소백의 안부엔 바람과 개스로 가득하다
# 소백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오늘 소백의 능선은 제대로 된 대간 능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등로 주변은 온통 천상화원이다. 이질풀이 지천이다.
# 강한 바람에 몸을 눕힌 풀들. 그 모습이 마치 바람 부는 바다 물결처럼 보인다. 공자(孔子)가 편찬한 시경(詩經)을 달리 모시(毛詩)라고 한다. 그곳에 이런 시가 있다. 草上之風草必偃 誰知風中草復立 <毛詩序> / 풀위에 바람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뉘라서 알리오,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서고 있음을!
# 1395봉. 암봉으로 되어있다. 그 뒤로 소백의 주봉인 비로봉이 보인다.
# 1395봉에서 돌아 본 1382봉.
# 1395봉에서 본 천동리갈림길 전봉과 멀리 비로봉.
# 주목관리소와 비로봉이 전방에 있다.
# 비로봉 가는 길.
# 비로봉 옆 국망봉 가는 길의 첫 봉우리.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 주목관리소. 부자집 별장같은 분위기다. 지난 겨울 칼바람을 피해 온 사람으로 만원이더니 오늘은 텅 비었다.
# 지난 겨울 칼바람 속을 엉금엉금 기어서 갔던 주목관리소 가는 길.
# 비로봉 오름. 칼바람은 여전하다. 체온이 순식간에 내려간다. 지난 겨울 여기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던 곳이다. 그 겨울 이 계단길을 공포에 가득찬 채 엉금엉금 기어 내려 갔었다.
# 드디어 비로봉 정상(10:40). 죽령에서 4시간10분 걸렸다.
'비로봉 정상'엔 등산객이 많다. 칼바람이 너무 매워 모두들 삼가리쪽 바람 없는 곳에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하거나 쉬고 있다. 아침에 죽령휴게소에서 차 돌려 가셨던 가족을 이곳에서 만났다.
# 삼가리쪽 하산길.
# 지나 온 소백의 주능선. 큰 오르내림 없는 소백 특유의 산세가 길게 누워 있다. # 국망봉 가는 길. 백두대간은 저 길로 계속 이어져 고치령으로 향한다.
지난 겨울 백두대간 준비산행의 두번째 도전 장소였던 소백산. 삼가리에서 비로사 거쳐 이곳 비로봉에 올라 왔을 때 초보 산꾼인 우리 부부는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과 너무나 매서운 칼바람에 놀라고 또 놀랬더랬다. 푸르디 푸른 겨울 하늘, 기기묘묘한 눈꽃, 하얀 산천, 날카로운 바늘로 마구 찌르는 듯한 아픔과 몸을 가누지 못하게 강력한 칼바람.
# 국망봉을 향해 Go! 소백의 주능선에는 드문드문 있던 등산객들이 이곳에는 전혀 없다.
# 바위떡풀이 운치 있게 뒤덮은 암봉을 만났다. 오래된 풍경을 보는 기분이다.
# 푸른 이끼로 옷을 해 입은 거대한 고목을 지난다.
# 촛대승마.
# 정영엉겅퀴.
# 산꼬리풀.
# 고들빼기.
# 동자꽃.
# 노란물봉선.
# 이질풀. 꽃잎에 혈관이 내 비치는 듯한 모습이다.
# 마주송이풀, 바람개비처럼 생겼다. 바람 불면 빙빙 돌아 하늘로 날아 올라 갈 것 같은 느낌이다.
# 미역취. 잎을 비비면 미역 냄새가 난다. 미역취란 이름은 이 때문에 생겼다.
# 눈높이에서 바라 본 금마타리.
# 삽주.
# 소백은 야생화로 가득하다. 특히 이질풀은 소백을 온통 뒤덮었다.
# 한 길이 넘는 철쭉 군락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 국망봉 전 암봉. 작은 돌탑이 있다.
# 초암사 갈림길. 2월에 사고당하신 분들이 이곳으로 올라와서 비로봉쪽으로 향하다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오늘도 바람이 아주 강하다.
# 국망봉(12:18). 비로봉에서 1시간 18분 걸렸다.
# 마의태자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국망봉' 봉우리 앞에서는 세 분이 식사 중이다. 우리도 배가 고팠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국망봉 부근엔 바람이 무시무시하게 분다. 비로봉보다 바람의 세기가 훨씬 더 강하다. 바람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대간의 마루금을 타고 넘는 것이 개스 탓에 한눈에 보인다.
# 엉터리 이정목. 누군가 엉터리라고 떼어 놓은 것을 또 누군가 정렬해 두었다.
# 바람, 개스 가득한 대간길.
국망봉 이후의 구간엔 이정목들이 계속 나타나는데 엉터리가 많다. 거리 표시도 틀린 경우가 있고 늦은맥이 고개에 세워져 있어야 할 신선봉 갈림길 표지판이 상월봉 앞에 세워져 있고 그렇다. 실전 백두대간의 예상시간도 실제 소요시간보다 길게 표시 되어 있다.
# 늦은맥이고개.
춥고 음산해서 밥맛도 별로다. 평소 점심식사는 항상 1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는데 오늘은 40분만에 끝내고 1272봉을 향해 출발했다(13:50).
늦은맥이고개에서 가파른 오름을 치고 올라가니 '1272봉'이다. 좌측으로는 신선봉으로 가는 길이고 대간길은 오른쪽으로 내려 간다. 잡목지대로 이뤄진 긴 내리막이 이어진다. 간혹 오름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약한 오름이어서 편안한 길이다. 충분히 쉬고 밥도 먹었겠다, 편한 구간이겠다 자연히 발걸음이 빨라진다.
# 폐헬기장과 쓰러진 이정목이 있는 1060.6봉.
# 연화동갈림길.
편한 길을 내달려 어느듯 '연화동 갈림길'에 도착했다(15:05). 실전 백두대간에서는 늦은맥이에서 연화동갈림길까지 2시간 10분을 예상했는데 1시간 15분이 걸렸다. 아무리 편한 길이라 속도를 냈다고는 하지만 우리 실력으로 1시간이나 단축했다니... 아무래도 지도가 잘못되었나 보다. 이후 마당치까지 지도에서는 1시간을 예상했는데, 우리는 1시간 20분이 걸린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지도의 오류인 듯하다.
# 연화동갈림길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하나 오르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 다시 50여 분 더 가니 1031.6봉으로 추정되는 봉우리가 나온다. 지도나 이정표 모두 믿을 수가 없어 이곳이 1031.6봉인지 앞의 헬기장이 1031.6봉인지 확신이 안선다.
# 내리막을 다시 30여 분 더 가서 마당치에 도착했다(16:34).
이제 고치령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거리이다. '마당치' 이정목엔 누군가 고치령까지 1시간 거리라고 표시해 두었다. 천천히 가자. 배낭 벗어 두고 간식 먹으며 잠시 한숨 돌렸다. 고치령 민박집에 트럭 부탁하려고 전화하니 휴대폰 불통지역이다.
# 형제봉 갈림길 이정목(17:08)
이후로 고치령까지는 내리막의 연속이다가 고치령 직전에서 '863봉'으로 한번 솟아 올라 있을 뿐이다. 1시간여 길을 걸으면서 계속 전화를 시도해 보지만 연결이 안된다.
휴식시간 포함해서 11시간 30분 걸렸다. 실전 백두대간 예상시간과 거의 일치했지만 이번 구간의 지도는 믿을 수가 없다. 밥 먹고 휴식하느라 2시간 정도 소비한 것을 감안하면 준수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선답자들의 종주기를 보니 모두들 휴식 포함해서 9시간 30분, 10시간 정도에 끝냈더라. 에그, 우리가 그렇지!!!
고치령엔 지난 4월 이후 4개월만에 다시 섰다. 그때는 양쪽 날머리, 들머리에 각각 소백지장(小白地將), 태백천장(太白天將)이라는 1개씩의 장승만이 있었는데, 오늘 보니 양쪽으로 2개씩 더 세워져 있다.
죽령휴게소에 돌아 와 택시비 지불하고 나니 완전 빈털털이가 되었다. 택시비 50,000원 달라고 했으면 외상으로 할 뻔 했다. 누군가 안배를 하듯이 이렇게 정확히 맞을 수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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