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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열여덟번째(밤티재~밀재)-어두운 숲속, 길을 잃고 헤매다! 본문

1대간 9정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열여덟번째(밤티재~밀재)-어두운 숲속, 길을 잃고 헤매다!

강/사/랑 2007. 6. 25. 19:28
  [백두대간]그 열여덟번째(밤티재~밀재)  

 

 
강/사/랑 부부의 백두대간 종주는 지금 2주째 개점휴업(開店休業) 상태다. 처음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할 때는 매주 종주 길에 나서자 작정하였다. 그러나 밥벌이 바쁜 생활인이 모든 주말을 활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때문에 매 주말 대간길에 나서지 못하고 간혹 한주씩 건너뛸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2주 이상 쉬어 본 적은 거의 없다. 이 길이 워낙 멀고 힘든 길이라 2주 이상 쉬어 리듬이 깨지는 순간 '핑계'라는 악마가 손을 뻗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9월 11일. 속리산 밤티재에서 멈춘 후 연속 2주 동안 대간길에 나서질 못했다. 한 주일은 중간에 추석 연휴가 있었고 한 주는 회사 일이 바빴기 때문이다.

 

"이렇게 띄엄띄엄 대간길에 나가서 언제 진부령에 내려설 수 있으려나?" "앞으로 가야 할 길은 태산같이 남았는데, 어느 세월에 마무리할 수 있을까?"


처음 이 길을 시작하면서 마음먹은 것처럼 '솔방솔방' 그리고 '쉬엄쉬엄' 가자고 마음 다잡아 보지만 자꾸만 조급증이 생긴다. 산길 걸으며 그 품속에서 산의 마음을 배운다고 하지만, 아직 수양이 덜 된 모양이다.

 

누구는 대간은 물론 정맥까지 모두 끝냈다는데... 누구는 5월에 시작해서 벌써 강원도 산길을 걷고 있다는데... 등등 자꾸만 앞서가는 다른 이들과 비교하는 마음이 생긴다.

"아서라! 애초에 행복이란 비교하는 마음을 버릴 때 찾아오는 법. 즐기자! 대간의 기막힌 절경을 즐기고, 땀 뻘뻘 흘리며 오른 정상에서의 한 줄기 바람을 즐기고, 죽을 듯한 고통 이후에 찾아오는 나른한 쾌감을 즐기자!"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자왈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낙지자).'
그 옛날 공자께서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겨 하는 것만 못하다." 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 행위가 좋아서 즐기며 하는 자를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일단은 백두대간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그 속의 나무들은, 풀들은, 짐승들은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어서 그 앎을 바탕으로 백두대간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그 좋아하는 백두대간과 함께 하는 방법 또한 좋아해야 한다. 그리하여 백두대간 속으로 들어가 그 길을 두 발로 느끼며 그와 함께함을 즐길 수 있을 때 비로소 백두대간 길은 나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알아 보세, 좋아해 보세, 그리하여 드디어는 마음껏 즐겨보세! 




어두운 숲속, 길을 잃고 헤매다!


구간 : 백두대간 제 22 소구간(밤티재 ~ 밀재)
거리 : 구간거리(17.99 km), 누적거리(382.33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5년 10월 2일.
세부내용 :

밤티재(07:20) ~ 전망대 ~ 696.2봉 ~ 629봉(08:30) ~ 늘재(09:05),휴식 ~ 정국기원단(09:45) ~ 870봉 전망대 ~ 헬기장 ~ 청화산(11:05) ~ 시루봉 갈림길(11:25) ~ 858봉 ~ 암릉 ~ 801봉 전망대(12:30),점심식사 및 휴식(40분) ~ 갓바위재(14:00) ~ 공터 ~ 암릉 ~ 조항산 前峰 ~ 조항산(15:00) ~ 길주의 갈림길 ~ 737봉 ~ 고모령(16:00) ~ 고모샘(15분간 휴식) ~ 889봉,마귀할미 통시바위 갈림길(16:45) ~ 854봉 ~ 집채바위(17:15) ~ 밀재(17:50) ~ 밀재에서 벌바위로 탈출 ~ 다래골 ~ 월영대 ~ 길 사라짐. 계곡 건너 길 연결 ~ 용추/다시 길 사라짐. 계곡 다시 건넘 ~ 돌마당식당(19:30)

총 소요시간 12시간 10분.(휴식,식사시간, 탈출구간 포함).  만보계기준 43,000걸음.

 


10월 2일. 남들은 3일 연휴다 뭐다 하면서 온 나라가 난리가 아닌데 나는 1일은 전날 월 마감하느라 새벽에 귀가하는 바람에 늦잠 자 버리고, 3일은 정상 출근을 해야 하니 결국 2일 날 하루 밖에 여유가 없다.

1일 날 저녁 늦게 출발했는데도 영동과 경부고속도로는 밤 늦게까지 정체다. 정체길 피하는 솜씨 발휘해서 별 무리 없이 문경새재 IC 빠져나와 가은과 농암 거쳐 안개 가득한 밤티재에 도착하니 아직 12시 전이다.

 

밤티재는 차를 세워놓을 만한 공간이 없어 아래로 조금 내려오니 계곡 쪽에 차 세 대 정도 세워 둘만 한 공터가 있다. 얼른 주차하고 차창 조금 열어놓고 담요 덮고 눈을 부쳤다.

새벽 5시 쯤 일어나려고 하는데 트럭 한 대가 다가오더니 한 사람을 내려놓고 다시 떠난다. 아마도 버섯 따는 사람들인가 보다. 누워서 보니 그 사람 우리 차 안을 들여다보고 하더니 우리 차 앞쪽으로 가서는 바지를 까고 가만히 앉는다. 이런 CCC! 볼일을 보려면 좀 멀리 가서나 보던지... 그래도 다행히 바람이 뒤에서 강하게 불어와서 냄새는 안 난다.

 

그 사람 볼일 보고 나서도 산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차 주변을 계속 배회한다. 왜 저러나? 그냥 가지. 불안하기도 하고 지금 일어나면 저 사람 당황할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조금 더 자기로 했다.

6시경에 일어나서 버너에 불 붙이고 준비해 온 누룽지를 끓였다. 신새벽에 라면을 먹을려고 하니 매운 국물이 부담스럽고 속에도 좋지 않아 누룽지를 끓여 먹어 보기로 한 것이다. 구수한 누룽지 국물이 아침의 허한 속에 너무나 좋다. 진작 이렇게 할걸!!!

아침 먹고 있는데 오래된 승용차 한 대가 주차하더니 두 분이 내려서 산으로 들어간다. 식사 좀 하시랬더니 먹고 왔다며 어디서 왔느냐? 자기는 경기 화성에서 왔다. 조용필과 같은 고향이다. 등등 말하더니 버섯 따러 산으로 들어 갔다. 요즘 속리산 구간 산속에는 산꾼보다는 송이버섯 따는 사람들이 더 많다.

밤티재에는 계곡이 흐르고 있어 야영하기에 그만이다. 수량도 많고 맑아 양치하고 세수까지 무난히 할 수 있다. 여름에는 가물지만 않는다면 알탕도 가능할 듯.

준비하고 밤티재를 향해 올라갔다. 아침인데도 차량 통행이 많다. 밤티재에는 길가 화단 위로 랙스턴 차량 한 대가 치고 올라가 주차되어 있다. 대간 하는 사람은 아니길... 금방 봉고차 한 대가 도착하더니 남녀 대여섯 명이 내려서 산행 준비를 한다. 인사하고 늘재 방향 들머리로 올라섰다. 7시 20분.


 

 

청화산(靑華山)과 우복동(牛腹洞)

청화산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 문경시 농암면, 충북 괴산군 청천면등 3개 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중앙에 우뚝 솟아 있다. 청화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의상저수지를 거쳐야 하는데 청화산과 주변의 산그림자가 저수지 수면위에 아름답게 펼쳐져 산을 오르기 전에 산과 어우러진 자연의 경관에 감탄하고 깊은 산속에서 흘러나와 모여진 물은 맑고 깨끗하여 여름철에도 발을 담그지 못할 정도로 차가와 등산에 지친 산악인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준다. 이곳 저수지는 마을 주민들이 상수원으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깨끗하며 빙어 등 각종 어류가 풍부하여 저수지에서 강태공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청화산에는 산죽군락 지역과 소나무가 많아 겨울철에도 푸르게 보이는 산으로 아마도 청화산의 유래가 여기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청화산 동쪽 시루봉은 그 남쪽 도장산을 아늑하게 감싸안고 분지형을 이루고 있다. 바로 이곳을 세상에 둘도 없다는 명당 牛腹洞이라 한다. 우복동은 지리산 靑鶴洞, 경기도 가평군 어디에 있다는 유교사회의 이상향인 板尾洞과 함께 전설적인 이상향이다. 이 우복동은 평생을 선비가 살 만한 땅을 찾아다녔다는 이중환이 擇里志에서 "청화산은 뒤에 내외의 선유동을 두고 앞에는 용유동에 임해 있다. 앞뒤편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다.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나 속리산 같이 험준한 곳은 없다. 흙봉우리에 돌린 돌이 모두 수려하고 삼기가 적고 모양이 단정하고 평평하여 빼어난 기운이 흩어지지 않아 자못 福地다" 라고 적고 있다.

택리지/擇里志

조선시대 1751년(영조 27)에 실학자 淸潭 李重煥(1690~1756)이 저술한 지리서. 博綜誌라고도 한다. 저술 당시에는 책의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으며 뒤에 이긍익(李肯翊)이 이를 八域卜居志라 하였는데, 약칭하여 八域志라는 異名이 생겼다. 《택리지》라는 이름도 후인들이 그 내용을 보고 붙인 이름인 듯하다. 八道總論과 복거총론 2편으로 나누어서 서술하였는데 <팔도총론>에서는 전국을 8도로 나누어 그 지리를 논하고 그 지방의 지역성을 출신인물과 결부시켜서 밝혔고(地人相關), <복거총론>에서는 살기 좋은 곳을 택하여 그 입지조건을 들어 타당성을 설명하였다. <팔도총론>은 地方誌에, <복거총론>은 인문지리적 총설에 해당된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의 입지조건으로서 地利·生利·人心·山水 등 4가지를 들었으며, 여기에도 여러 가지로 구별하여 可居地類 ·避兵地·福地·隱遁地·一時遊覽地 등으로 분류하였다. 내용 여러 곳에 풍수지리설이 인용되었으며 이 책의 특징으로는 ① 한국 사람이 저술한 현대적 의미의 지리서라는 점, ② 실생활에서 참고와 이익을 주도록 저술된 점, ③ 근대 한국의 지리학과 사회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외국에서도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22소구간 밤티재~늘재~밀재 개념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이번 구간에서는 경치 좋은 곳이 너무 많아 사진을 많이 찍으면서 진행했다. 카메라 메모리 카드 두 개를 사용했는데 그 중 하나가 집에 돌아와 확인하니 에러가 발생했다. 고쳐 보려고 아무리 해도 안돼서 A/S를 보냈는데, 절반 이상의 사진을 살릴 수가 없다고 한다. 특히 처음 밤티재~늘재~청화산까지의 사진은 모두 날라 가버리고 그 이후 사진도 띄엄띄엄 복구를 해서 돌아 왔다. 그것도 맘에 드는 사진은 다 날라 가버리고... 몇 년 동안 잘 사용했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다. 덕분에 이번 구간 종주기는 사진이 없어 흐름이 매끄럽질 못하다.

'밤티재 절개지 사면'을 따라 올라서니 발 아래 밤티재 '에코 브릿지'가 내려다보인다. 그 어떤 동물도 지나갈 수 없는 형국이다. 국민의 혈세로 이따위 짓을 하다니... 에라이~~~ 보면 볼 수록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시작부터 가파른 오름이 계속 된다. 등로엔 안개가 가득하고 찬바람이 몰아친다. 날씨가 흐려서 가다가 멈추면 으슬으슬 떨린다. 흙비탈을 한참 올라가니 '묘지가 있는 무명봉'이 나온다. 어느결에 땀이 한바탕 솟아 올라 방풍의를 벗고 반팔 차림으로 진행했다.

비탈길을 계속 올라 가니 속리산이 한눈에 조망된다는 '바위전망대'가 나오지만, 개스가 짙어 전망은 전혀 볼 수 없다. 다시 오르니 암릉구간이 나오고 또다시 '개구멍'이 나온다. 개구멍은 속리산 하산길에서 다 끝난줄 알았는데, 여기에 또 있다. 틈새가 좁아서 배낭을 메고는 통과가 불가능하다. 빈몸으로 먼저 올라 와서는 배낭을 건네 받고 마눌도 끌어 올려 주었다.

'전망대'가 다시 나타나지만 역시 개스 탓에 전망은 없고 찬바람만 씽씽 불어 땀을 식혀준다. 곧이어 '696.2봉'과 '629봉'을 넘어 긴 내리막을 한참을 걸은 후에야 '늘재'에 내려설 수 있다. 
09:05.


밤티에서 1시간 45분 걸렸다. 하루 산행의 시작 부분이라 그렇지 구간 마지막에 만났다면 역시 만만치 않게 힘을 빼야 할 구간인 것 같다. 늘재에는 화북과 송면을 이어주는 49번 도로가 지나고 있고 320살 먹었다는 음나무와 언덕 위 공터에 산신당이 모셔져 있다.

 

대간꾼 한 분이 묵직한 배낭을 메고 빨래판 메트리스를 털고 계시길래 인사 나눴다. 여기서 야영하고 땜빵으로 늘재에서 이화령까지 진행하실 생각이란다. 같이 가자고 했더니 일행이 올 예정이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얘기 주고 받다가 작별하고 청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조선일보刊 실전 백두대간에서는 늘재에서 청화산까지를 2시간 정도 예상하고 있다. 고도는 400m대에서 984m로 500m이상을 높여 가야 한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한걸음 한걸음 올라갔다.

대간길 좌측으로는 흰색 노끈으로 울타리를 만들었는데, 산 정상 근처까지 계속 이어진다. 산야초 재배지, 출입금지, 채취자 신고하면 포상금 지급 등을 적은 팻말을 달고서... 잠시 오르다 오른쪽으로 임도가 산자락을 휘감아 돌아가는 곳이 나온다. 그런데 그쪽으로 표지기 몇 개가 붙어 있네? 누가 사람 헷갈리게 만들려고 여기에 매달았냐? 지도를 확인해 봐도 그 쪽은 아니다. 그냥 올라가자!

비탈은 점점 가팔라지고 로프가 매달린 암릉도 나온다. 로프에 매달려 오를 정도는 아니라서 스틱만 짚고 그냥 오른다. 중간중간에 전망이 좋은 암봉이 수시로 나타난다. 어느듯 개스가 많이 걷혀서 늘티마을이나 청화산 농장 등이 한 눈에 들어오고 속리산도 드문드문 조망된다. 사진이 다 날아가서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숨이 턱에 찰무렵 '정국기원단'에 도착했다.(09:45) 비석과 제단 커다란 돌향로 두 개가 툭 트인 전망바위 위에 모셔져 있다. '靖國祈願壇(정국기원단)' 나라가 편안하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다.

 

요즘 고이즈미란 원숭이가 매년 참배를 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왜국(倭國)의 야스쿠니 신사가 한자로 '靖國神社(정국신사)'다. 동일한 글자가 이렇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다니... 역사에 대한 통렬한 반성만 있다면 현재의 국력으로 봐서 세계를 리드하고 존경받을 수 있을 텐데. 수천 년 세월을 이어 온 좀스런 국민성이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白頭大幹(백두대간) 中元地(중원지), 不失其朝(부실기조), 三派水(삼파수) 등의 글자도 새겨져 있다. 백두대간 중원지(白頭大幹 中元地)란 이곳이 백두대간의 근원이 되는 곳이란 뜻이고, 삼파수(三派水)는 이곳 늘재보다는 속리산 천황봉을 가리키는 말이다. 천황봉에 떨어진 빗물이 낙동강과 금강, 그리고 남한강으로 흘러내려 세 강의 시원(始源)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부실기조(不失其朝)'의 뜻은 파악하기 힘들다. 글자대로 해석하면 그 근본을 잃지 말라는 뜻인데 정확하지 않다. 다만 자료를 찾아보니 시경(詩經)에 "부실기치(不失其馳) 사시지파(舍矢知破)"란 말이 나온다. "법도에 맞에 수레를 모니 쏜 화살이 정통으로 맞는구나"란 뜻이다. 말을 달리며 화살을 쏘는데 마부가 우왕좌왕하지 않고 법도에 맞게 수레를 똑바로 몰아주어 쏜 화살이 모두 명중하였다는 말이다. 군자(君子)는 명분이 있고 올바른 왕을 위해 출사하여 봉사한다는 의미이다.


아마도 이곳이 백두대간의 근원이 되는 곳이고 세 강물의 근원이니 그 근본을 잃지 말라는 뜻인 듯하다. 내 나름의 해석이긴 하지만 누가 이렇게 좋은 뜻을 이곳에 펼쳤을까? 자료를 찾아 봐도 알 수가 없다. 전체적인 배치나 석물(石物)이 조금 조잡해 보이기는 해도 그 뜻이 너무 좋으니 다 좋아 보인다.


북악산 아래 푸른 집에 사는 우리나라의 모(某)씨도 그 괴상한 사상과 열등감, 패배감, 그로 인한 적대감을 버리고 국민통합, 경제살리기에 나선다면 진정한 정국(靖國)을 이룰 수 있을텐데!!!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는 게 우리 나라의 불행이고 그를 선택한 우리 국민의 자업자득이다.

안타까움과 절망감으로 무거워지는 마음을 그곳에 내려 놓고 청화산을 향해 다시 올라 갔다. 가파른 오름을 헉헉대며 한참을 오르니 '870봉 전망대'가 나온다. 어느새 개스가 다시 가득 차서 전망은 전혀 없다. 찬바람에 땀을 조금 식히고 정상을 향해 한참을 오르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정상은 헬기장 바로 위에 있다.

 

 


#  꽃향유.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수리취. 봄철 여린잎을 따다가 쌀가루와 버물려 떡을 해 먹는다. 수리취떡은 섬유질이 풍부해 장건강에 좋다.

 

 

 

#  청화산 직전 헬기장. 개스가 가득하다.

 

 

 

11시05분. 정확히 두 시간 만에 '청화산 정상'에 도착했다. 지도의 예상 시간과도 일치했다. 청화산 정상석은 생각보다 작고 초라하다. 푸르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글자에 파란색을 입혔는데, 함부로 색칠을 한 듯 색깔이 글자 밖으로 번져 있다.

그런데 지도에는 청화산 높이를 984m로 기재되어 있는데, 정상석에는 970m로 적혀 있다. 오류가 있는 듯하다.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은 이 청화산을 너무나 사랑하여 스스로 '청화산인(靑華山人)'이라 칭했다. 그리고 이곳 청화산 자락의 '우복동(牛腹洞)'을 길지 중의 길지(吉地)로 선비가 머물 만한 곳이라 했다.


청화산 정상엔 개스가 가득해서 아무 조망도 없다. 찬바람 탓에 금세 추워진다. 이중환이 칭송해 마지않은 우복동을 보고 싶었는데, 짙은 개스 탓에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가야 할 길 찾아 정상에서 물러 났다.

 

 


#  청화산 정상석. 아주 작고 아담하다. 정상부는 개스 때문에 조망이 없다.
 

 

 

 

정상석 뒤쪽으로 잠시 내려서던 대간길은 다시 오름길로 바뀌어 가다 '시루봉 갈림길'을 만났다.(11:25) 이정표가 갈길을 알려주고 무수히 많은 표지기들도 역시 대간길이 좌측으로 급격히 꺾여 내려감을 알려 준다.

 



# 시루봉 갈림길. 대간길은 좌측으로 90도 꺾여 급격한 내리막이 된다. 시루봉은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  소박한 이정표.

 

 

 

#  858봉 가는 길의 암봉. 암릉길은 늘 마눌을 힘들게 한다.

 

 

 

#  연무가 이슬로 맺혀 숲은 축축하고, 참회나무 빨간 열매는 물방울을 달고 있다.

 

 

 

#  지나온 대간길. 청화산과 뒤쪽의 속리산 자락.

 

 

 

#  858봉의 조망. 멀리 조항산이 보인다.

 

 

 

#  조항산 가는 길의 암릉과 801봉. 멀리 상궁리도 조망된다.

 

 

 

시루봉 갈림길에서 이어지는 대간길은 급격한 내리막으로 시작된다. 짙은 연무로 인해 등로는 축축하게 젖어 아주 미끄럽다. 마눌은 계속해서 미끄러져 넘어진다. 등산화 바닥이 어느새 많이 닳은 모양이다. 돌아가면 제일 먼저 신발부터 사야겠다.

'858봉'은 전망이 아주 좋다. 지나 온 대간길과 멀리 조항산, 산 아래 상궁리 마을까지 시원스레 조망된다. 858봉을 지나 대간길은 암릉지대를 위태롭게 오르내리게 한다.


어느새 햇살이 따갑게 내려 비취고 가릴 게 없는 암릉길은 금방 온몸이 땀에 흠뻑 젖게 한다. 헉헉대며 암름지대를 오르내리다가 다시 가파르게 올라 전망이 기가 막힌 '801봉 전망대'에 이른다. 너무 지치고 배고프다. 밥 먹고 가자!

 

 


#  801봉에서 돌아 본 858봉.
 

 

 

 

#  마루금 어느 소나무 아래 점심상을 펼쳤다.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식사.(12:30)

 

 

 

시원한 막걸리 한 잔에 흐뭇해 하고 있는데, 늘재에서 만났던 대간꾼이 동료들과 함께 지나간다. 그래도 아는 안면이라 불러서 막걸리 한 잔 권해 드리고 다음을 기약했다.


이 분들도 오늘은 우리처럼 밀재까지 계획되어 있다. 이번엔 그 분이 서둘러 가자고 한다. "먼저 가십시오, 저희는 솔방솔방 가겠습니다. 여유 한번 부려 보죠 뭐."

 

 


#
  갓바위재 전 암봉의 전망대. 등산객들이 보인다.

 

 

 

느긋하게 점심 식사하고 거풍도 한 후 갓바위재를 향해 출발했다. 801봉 내리막은 직벽의 '암벽'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직벽을 본 마눌의 눈이 땡그래진다. 살살 달래서 내려서서 한참 가니 조금 전 암봉에서 봤던 산객들과 조우한다. 의상저수지에서 올라 왔다고 한다.


안산하시라 하고 우리는 맞은 편 전망대로, 그들은 801봉으로 나뉘어 올라 갔다. 잠시 후, 똑같은 시각에 서로 위치를 바꿔 서로를 쳐다 보았다. 오늘 구간엔 '전망대'가 수십 곳이나 된다. 조망도 아주 좋다. 속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햇살이 따가운 바위전망대를 지나 가파르게 내림길을 이어 가니 '갓바위재'에 도착한다. 갓바위재는 좌측으로는 의상저수지, 우측으로는 상궁리로 이어진다.



#
  갓바위재 前 전망대. 멀리 의상저수지가 보인다.  청화산 등산을 위해 저곳에서들 많이 
올라 온다.

 

 

 

#  고개를 돌리면 가야 할 조항산이 보인다.

 

  

# 갓바위재.(14:00)  소박한 옛고개다.

 

  

실전 백두대간의 지도에는 갓바위재에서 조항산까지를 15분 거리로 표시해 두었다. 명백한 오류다. 다른 곳에서는 최소 50분 이상을 예상하고 있는 곳이다.

갓바위재 바로 위의 '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바위 전망대를 지나자 가파른 급비탈 오름길이 이어진다. 뙤약볕이 너무 강렬해 땀을 주룩주룩 흐른다. 거의 기다시피하며 암봉에 매달려 올랐다. 여기가 조항산인가? 그러나 암봉을 다 올라 가 보니 그 다음에 있는 것이 조항산이다.

'項' 목 항자이니 새목산이란 뜻이다. 아마도 멀리서 봤을 때 산 정상 부근의 암반지대가 하얗게 빛나는 것이 새의 목덜미 깃털같아 보여서 지은 이름인 듯하다.

암봉 위에서 물 마시고 한숨 돌리는데 매 한마리 빙빙 돌며 먹이를 노리고 있다. 암봉에서 위태롭게 내려가서 다시 가파른 길을 치고 올라 정상을 향해 갔다. 뙤약볕이 강렬해서 무척 힘이 든다. 새의 목부분을 힘들게 기어 올라 새의 머리에 올랐다. '조항산 정상'이다.(15:00)


 


#
  조항산, 왼쪽 암반 옆으로 정상 가는 길이 나 있다.
 

 

 

 

# 조항산 정상석. 역시 자그만하다. 이곳 역시 지도에는 961.2m로 되어 있는데 정상석엔 951m 라고 새겨 두었다.

 

  

#  대간의 대표적 자연 훼손 지역인 고모치 광산이 흉물스럽게 입을 벌리고 있다.

 

 

 

#  광산 뒤로 멀리 희양산의 직벽이 보인다.

  

 

버리미기재까지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밀재까지만 가기로 하고 느긋하게 쉬었다. 한참을 쉰 후, 조항산을 떠나 고모령으로 향했다. 잠시 후 의상저수지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난다. 다시 급경사 내리막을 내렸다가 '737봉'을 지나고 '고모령'에 내려섰다.(16:00)

고모령엔 지리산 임결령 샘물에 버금가는 '고모샘'이 있다. 오른쪽으로 10m쯤 내려가자 작은 움막 모양으로 비가림을 해 둔 고모샘이 나온다. 바위 틈에 쇠파이프를 박아 두었는데 물이 콸콸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석간수(石間水)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충분히 쉬었다. 이곳에서 너무 많이 쉬어서 나중에 결국 큰 코 다치게 된다. 

 


# 철판으로 만든 이정표를 누군가 참나무 사이에 박아 두었다. 마눌이 나무줄기에 박힌 쇠판을 빼어내어 나무 이정표에 묶었다. 나무야 얼마나 아팠니!!!

 

 

 

#  고모샘. 시원한 석간수다.

 

 

 

# 천남성의 열매. 옥수수 절반 크기만 하다. 독성이 아주 강한  녀석으로 옛날 사약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고모샘에서 충분히 쉰 후 밀재를 향해 출발했다. 충분히 쉰 탓인지 발걸음이 가볍다. 지도에 40분을 예상한 '889봉'까지를 30분 만에 올랐다. 889봉은 '마귀할미 통시바위'와 '둔덕산'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다.

 

통시는 경상도 방언으로 변소를 가리킨다. 어릴 때 우리집엔 통시가 세 개나 있었다. 대문간엔 공용, 사랑채엔 할배 전용, 감나무 밑엔 여성 전용. 통시라고 해봤자 거대한 옹기 독을 묻어 두고 그 위에 집을 지어 놓은 것이었다.

마귀할미 똥누는 데 방해될까봐 그 쪽으로 가지 않고 854봉을 향해 좌측으로 내려갔다. 완만하게 올라 '854봉'을 지나고 849봉은 '우회'하게 대간길이 나 있다. 우회하여 잠시 가자 한 눈에 들어 오지 않는 거대한 '집채바위'가 나타난다.


밀재 역시 한 번에 모습을 드러내질 않고 길게 내려갔다가 '밀재'인가 잠시 헤깔리게 만드는 밀재 前 안부를 지나고 나서야 모습을 보여 준다.(17:50).


밤티재에서 10시간 30분 걸렸다. 조항산과 고모령에서 너무 많이 쉬었나? 계절이 어느새 깊어 아직 여섯 시도 안 되었는데 숲속은 벌써 어둑어둑하다.




# 마귀할미 통시바위 능선.


 

 

 

#  이것인가?

 

 

 

#  아니면 이것인가?

 

  

# 어느 것이 통시바위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  889봉. 마귀할미 통시바위 갈림길이다. 대간은 좌측으로 가야 한다.

 

 


#
 집채바위. 덩치가 어찌나 큰지 카메라 뷰파인드에 다 들어 오질 않는다.

 

 

 

# 오늘 구간의 목적지인 밀재에 도착했다. 밀재는 백두대간 조항산과 대야산 사이의 고개이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용추계곡으로 이어진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홀대모 조진대님께서 추천해주신 대로 '용추계곡'으로 탈출하기로 했다. 밀재에서 용추로 내려가는 길은 편안하기만 하다. 산죽밭 사이를 지나 작은 계곡을 따라 계속 내려갔다. 지도에서는 1시간 30분 정도를 예상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중간에서 어두워질 전망이다. 계곡 따라 내려만 가면 되니 별 걱정은 없을거라 예상하고 쉬엄쉬엄 내려갔다.

다래골이 끝나고 용추골로 접어들 때 쯤 숲속이 어두워져서 이마에 불을 밝혔다. 내려가는 길이니 힘도 안들고 노래 불러 가며 월영대를 지났다. 달 그림자를 보려고 올려다 보지만 숲이 짙어 하늘은 뵈질 않았다.

그런데, 무성한 산죽 속을 내려 오다가 갑자기 길이 끊어져 버린다. 산죽이 끝나는 부분은 계곡의 넓은 암반지대인데 물소리가 콸콸 나는 게 장난이 아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길을 찾을 수가 없다. 표지기도 하나도 없이 끊어져 버렸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길은 산 위쪽으로 우회하여 나 있었다.


우리는 OK shop의 7구 짜리 LED 등불을 쓰고 있는데, 이 녀석 주변은 밝은데 직진성은 너무 떨어진다. 이곳저곳 혼자서 뛰어다니며 찾아봐도 길이 보이질 않는다. 다시 올라 가 보자! 길을 더듬어 다시 위로 올라가는데 분명히 외길로 잘 따라 내려 온 것이 분명하다.

30여 분 가까이 주변을 헤매다가 마눌이 계곡 건너 편에 표지기가 보인다고 한다. 불빛을 비쳐보니 건너편 나무에 흰 표지기 하나가 희미하게 펄럭이고 있다. 문제는 계곡을 건너는 것인데,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 갔더니 누군가 징검다리를 만들어 두었다. 비록 몇 개가 물이 불어 물에 잠겨 있긴 했지만...

스틱으로 중심을 잡으며 조심조심 건너 가서 보니 정말 표지기들이 있고 길이 아래로 나 있다. 휴~~ 다행이다!!  둘이서 이런 저런 얘길 하며 그 길로 한참 내려 왔는데, 에그머니! 길이 또 끊어져 버리네???

이번엔 망설임 없이 건너편 계곡으로 불을 비춰 보는데 아까보다 계곡이 더 넓어 불빛이 건너 편에 닿질 않는다. 이거 미치겠군. 돌마당 식당에 전화를 해서 물어 보려고 해도 휴대폰 불통지역이다.

건너가 보려고 하지만 물이 깊어 만만치 않다. 물살도 빠르고 바로 아래엔 폭포가 있는지 물소리가 굉장히 크게 난다. 어차피 건너야 할 것 같아 자세히 보니 징검다리가 있는데 물속에 푹 잠겨 있다. 에라! 모르겠다! 물속에 잠긴 징검다리 밟고 그냥 건너 버렸다.

 

양발이 모두 푹 젖었다. 신발 속에 들어온 물 쏟아내고 양말 짜서 다시 신었다. 주변을 둘러 보니 여기가 바로 고려 태조 왕건이 도선대사로부터 비결을 받는 장면을 촬영했다는 용추이다. 위험한 곳인지 접근 못하도록 굵은 로프로 막아 놓았다. 그곳을 따라 내려가니 길이 다시 이어진다.

이후는 길이 평탄하게 아래로 이어진다. 유달리 겁이 많은 마눌은 길이 끊어진 두 곳에서 거의 자지러졌다. 이제부터는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키고 이런저런 얘기로 달래주면서 내려왔더니 멀리 불빛이 몇 개 보이기 시작한다.

그거 참! 가다가 길이 끊어져 버리면 어떡하나?  표지기도 멀쩡한 곳에서는 수십 개씩 붙어 있고 정작 이처럼 꼭 필요한 곳에서는 없으니... 야간에 좁아진 시야 탓에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워낙 고생을 하였더니 괜히 남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돌마당 식당에 들어서니 집 나갔던 탕자가 고향에 돌아 온 기분이다. 홀대모라고 했더니 심사장님 즉석에서 비법의 막걸리와 쏘주를 내놓고 옆자리에 앉아 스크랩북을 꺼내서는 설명이 한창이다. 조껍질 막걸리에 감식초를 혼합했다는데, 시원하고 맛있다. 연거푸 석 잔을 비웠더니 길 잃고 헤맨 것은 오랜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음~ 조우타!!!


 


#  돌마당표 막걸리.
 

 

 

 

#  맛깔난 산채비빔밥과 도토리묵으로 허기를 달랬다.

 

  

돌마당 식당 심사장님. 제 멋에 겨워 살아가는 독특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한 가지 일을 계속 해 온 사람들의 자부심과 경상도 사람 특유의 부산스러움이 섞인...

식사 후 밤티재까지 태워 주셨는데 말씀하시느라 시속 30km 이상을 밟질 않는다. 돌마당에서 밤티재까지 가는 동안 모든 곳의 이야기를 모든 말투로 다 들려 주었다. 제주도 관광가이드 보다 두 배쯤 많이 말씀하셨다 하면 될 것이다. 밤티재엔 우리 차만 외롭게 서 있다. 차비를 드릴려고 해도 뿌리치고 가신다. "감사했습니다!"

용추계곡은 계곡미가 기가 막힌 곳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두운 밤길 더듬어 내려 오느라 경치 구경을 못해 '눈 호사'는 못 했다. 그러나 비온 뒤라 수량이 많아 호호탕탕 굽이쳐 흐르며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는 실컷 들어 '귀 호사'는 충분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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