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그 열아홉번째(밀재~은티재) 
슬럼프 (slump) : [명사] 심신의 상태 또는 작업이나 사업 따위가 일시적으로 부진한 상태.
사전(辭典)에서는 '슬럼프'를 이렇게 정의(定義)하고 있다. "심신(心神)이나 사업 따위가 일시적으로 부진한 상태". 그렇다면 나는 요즘 슬럼프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슬럼프다. 회사 일도, 집안일도, 심지어 대간길도 요즘은 슬럼프 상태이다.
회사 일이나 집안일은 소소한 개인사이니 논할 바 없는 일이고 백두대간 종주길만 두고 보자면 이러하다. 그 시작은 두어 구간 이전부터이지만, 결정적으로는 지난 구간의 일이다. 지난번 속리산 구간이 나는 참으로 힘들었다. 전체적으로 아주 먼 거리이고 문장대 이후 암릉 구간이 난코스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전 갈령을 떠나 속리의 주봉인 천황봉을 오르는 내내 힘이 너무 들어 발을 질질 끌며 산행하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구간에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 같은 장거리 산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체력에 한계가 나타나는 때가 있다. 그것을 '사점(死點)'이라 한다. 영어로는 'Dead point'라 적는다. 높은 강도의 운동으로 인해 일시적 한계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다른 말로는 '예비적 운동 거부' 상태라고도 한다.
사점은 말 그대로 한계 상황이다. 호흡이 극에 달하고 체력은 고갈되어 한 걸음 내딛기도 어려운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고강도 운동을 오래 지속하면 사점은 찾아오기 마련인데, 이 사점이 늦게 찾아올수록 운동 능력이 높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 산악인이나 마라토너들은 이 사점이 없거나 늦어지도록 평소에 꾸준한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한편, 강한 의지나 반복된 훈련 등으로 사점에 대한 극복이 이뤄지면 순식간에 다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것을 '제 2 호흡' 또는 'Second wind'라고 한다. 사점을 극복하고 호흡이 터지면 가벼운 심신으로 다시 운동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어쨌건 나는 요즘 사점이 빠르고 잦게 나타나는 슬럼프에 빠졌다. 백두대간 종주 중 두어 차례 그런 증세가 반복되더니 본격적으로 속리 구간에서 한계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그때 이후 산행길에 자신감이 뚝 떨어진 기분이다. 올해 들어 매주 산행길에 나서면서 조금씩 다리에 힘도 붙어 가고 체중도 줄고 혈관도 조금은 깨끗해졌는지 호흡도 쉬워지고 하더니... 요 근래는 오히려 다리 힘도 없고 체중도 원위치고 숨도 다시 가빠져 버렸다. 특별하게 무슨 이상이 있거나 변화가 올만한 일이 없는 데도 그렇다.
'萬事不如吾心(만사불여오심)'이라! 세상사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정한 이치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 속상하여 스트레스 팍팍 받고 쌓인 울분을 술로 풀려고 하다 보니 평상시 운동과는 담쌓게 되고... 이런 악순환이 나를 깊은 슬럼프 속으로 밀어 넣고 있나 보다.
심리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슬럼프 극복의 제일 첫걸음은 자신이 현재 슬럼프라는 것을 '인정(認定)'하는 것이라 한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작으나마 극복의 실마리가 발견되는 이치라 그런 것이다. 음~~ 좋다. 난 지금 슬럼프다. 인정(認定)! 그리고 삶의 전반을 엉킨 실타래 풀 듯 하나씩 하나씩 풀어나가자! 한 걸음 한 걸음 산길 가듯 바로 눈앞의 걸음에 집중하자!!!
무지몽매(無知蒙昧), 또다시 길을 잃다!

구간 : 백두대간 제 23,24 소구간(밀재 ~ 버리미기재 ~ 은티재) 거리 : 구간거리(21.18 km), 누적거리(403.51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5년 10월 15일. 흙의 날. 세부내용 : 벌바위(07:35) ~ 용추 ~ 월영대 ~ 떡바위 ~ 사기골갈림길 ~ 밀재(09:16) ~대문바위 ~ 전망대 ~ 암봉 로프 ~ 대야산(10:20), 25분 지체 ~ 직벽 로프구간 ~촛대재(12:00) ~ 촛대봉(12:13) ~ 불란치재(12:32) ~ 전망대(13:00) ~ 미륵바위 ~ 곰넘이봉(13:15) ~ 암벽 ~ 전나무숲 ~ 버리미기재(14:10)/점심식사 후 출발(14:40) ~ 장성봉(16:04),10분 휴식 10분 알바 ~ 막장봉 갈림길 ~ 827봉(17:14) ~ 시묘산 옆 전망대 ~ 809봉(17:39) ~ 787봉 ~ 공터 ~ 악휘봉 삼거리(18:56) ~ 820봉 ~ 암릉 ~ 722봉 ~ 암반 대슬랩, 세 번째에서 길 잃음/우측 숲 1시간 사투 ~ 은티재(21:10) ~ 과수원 ~ 은티마을 ~ 은티마을 구판장(22:05)
총 소요시간 14시간 30분.(휴식, 식사시간, 알바, 접속구간 포함). 만보계 도중 분실로 미기록.
10월 14일. 금요일. 늦은 퇴근 탓에 서둘러 저녁 먹고 샤워하고 짐 챙겨 출발을 재촉했다. 마눌은 대야산 직벽의 두려움 때문인지 자꾸 미적거린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직벽이 100m 길이다, 스틱을 던졌는데 까마득히 떨어져 못 찾았다, 겨울에 얼음 낀 로프 타고 내려가다 이마부터 떨어졌다 등 이런저런 얘길 읽고는 미리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것이다. 어허! 호통 한 번으로 제압하고 산본을 출발했다. 11시 50분.
이래저래 오늘도 출발 시각은 늦다. 그것 만회하고자 고속도로에서 좀 심하게 밟아 영동고속도로 거쳐 내륙고속도로 문경 IC 로 빠져나와 가은 거쳐 벌바위에 도착하니 1시 40분이다. 세상에! 이곳까지 두 시간도 안 걸렸다. 산행길도 이렇게 빨랐으면...
벌바위 주차장엔 캄캄한 어둠과 강력한 바람만 가득하다. 텅 빈 주차장에 우리만 달랑 있으니 어째 좀 으스스하다. 창문 조금 열어두고 잠을 청해 보는데 추워서 좀체 잠이 안 온다. 너무나 조용한 주위에 압도되어 차 시동을 걸어 놓기가 뭐해서 갈아입으려고 챙겨온 짚티 하나 더 껴입고 담요를 덮어보지만 그래도 춥긴 매한가지다.
계절의 변화가 무섭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계절이 이렇게 깊어져 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차 시동을 켜고 히터를 작동시켰다. "천지신명이시여! 죄송합니다. 이 조용한 침묵을 기계 소리로 어지럽혔나이다."
춥고 잠도 모자라고 해서 주위가 훤하게 밝아지고 나서야 차 밖으로 나와 버너에 불을 붙였다. 지난번부터 누룽지를 끓여서 아침을 대신하는데 구수하고 부드러워 정말 좋다.
벌바위 주차장엔 입장료를 받는 부스가 있고 그 옆엔 작은 화장실도 하나 있다. 작은 것 용 한 칸, 큰 것 용 한 칸 이렇게 단출하다. 큰 것 용에 들어가니 깨끗하기는 한데 아래에 물이 가득 차 있어 하나 내려보내고 벌떡 일어서야 안전하다. 국민체조의 다리 운동하듯 몇 번을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차를 몰아 돌마당식당에 들어서니 심 사장님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부인이 반겨준다. 하산하여 들러기로 하고 차를 한쪽 구석에 주차하였다. 산행 짐을 챙기는데 마눌 스틱 중 한쪽이 끝대가 고정이 되지 않고 계속 헛돌기만 한다. 국산 제품의 한계인가? 레키로 바꿔야 하나? 너무 비싸던데... 결국 한쪽은 포기하고 한 쪽만 짚으라 하고 용추계곡으로 출발했다. 07:35

大耶山(대야산)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931m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 걸쳐 있는 산이다.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백두대간의 주요 산이다. 계곡이 아름다운 산으로 경북 쪽에는 선유동계곡과 용추계곡, 충북 쪽으로 화양구곡이 있다. 대하산·대화산·대산·상대산 등으로도 불리지만 1789년 발행된 문경현지에 대야산으로 적혀 있다. 산행은 일반적으로 이화령을 넘어 문경시를 지나 가은읍 벌바위에서 시작한다. 계곡을 따라 난 신작로를 걸어가면 서쪽으로 기암이 두드러진 산이 올려다보인다. 이 계곡이 용추계곡인데 입구에 '문경팔경'이라고 새긴 돌비석이 있다. 용추계곡의 비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용추폭포는 3단으로 되어 있으며 회백색 화강암 한 가운데로 하트형의 독특한 탕을 이루고 있다. 용추의 양쪽 옆 바위에는 신라시대 최치원이 쓴 세심대·활청담·옥하대·영차석 등의 음각 글씨가 새겨져 있다. 용추에서 약 20분을 오르면 바위와 계곡에 달빛이 비친다는 월영대가 나온다. 이곳은 다래골과 피아골의 합수점이다. 계곡을 따라 약 2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 부근은 경사가 심하고 길도 험해서 바위를 기어오르고 수풀을 헤치며 가야 한다. 정상은 10평 정도의 바위로 삼각점과 산 이름을 적은 나무푯말이 서 있고 백두대간의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조망된다. 정상을 가운데 두고 북쪽에는 불란치재, 남쪽은 밀재가 있다. 하산은 촛대봉을 거쳐 불란치재로 갈 수도 있지만 길이 험하며 이 코스로 갈 경우 총 산행시간이 약 7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남쪽 능선을 따라 밀재 쪽으로 내려가며 총 산행시간은 5시간 안팎이 걸린다. 밀재는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장성봉/長城峰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915m이다. 산이름은 '긴 성'이라는 뜻이며, 멀리서 보면 암봉(巖峰)처럼 보인다.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줄기를 가은읍 서쪽에서 떠받치고 있다. 주위로 악희봉(843m)·구왕봉(898m)·희양산(999m)·애기암봉(731m)·둔덕산(970m)·대야산(930.7m)·군자산(910m) 등이 둘러싸고 있다. 희양산과의 사이에 자리한 북쪽 계곡은 봉암사가 있는 봉암용곡으로, 희귀식물인 솜다리(에델바이스)가 서식하는 등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능선 아래에는 예전에 수정을 캐내는 수정광산으로 쓰던 석굴 4∼5개가 있다. 산행은 완장리 벌바위에서 북서쪽으로 약 3㎞ 떨어진 불란치재 직전의 삼거리를 기점으로 하며, 옻나무골 능선과 정상을 거쳐 불란치재로 다시 내려오는 데 4시간 걸린다. 장성봉 정상에 오르기 바로 전에 연결되는 애기암봉이나 희양산 앞산인 원통봉(668m)과 연계하여 종주하는 코스도 있다. 정상 부근은 2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북쪽 봉우리가 정상이다. 정상에서는 서남쪽으로 계곡이 내려다보이고, 오른쪽으로 쌍곡계곡과 군자산이 보이며, 북으로는 백두대간 주능선 너머로 장성봉을 둘러싼 산들이 바라보인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23, 24소구간 밀재 ~ 버리미기재 ~ 은티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돌마당식당. 문경 가은 용추계곡에 있는 산꾼들의 유명 쉼터다. 
아침에 늑장을 부려 출발이 너무 늦어 걱정이다. 일단 버리미기재까지 가 보고 그 이후는 그때 상황봐서 결정하기로 했다.
'용추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지지난 주 야간 하산길에 길을 잃고 헤맨 것을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때는 비온 뒤라 계곡에 수량이 상당히 많았는데 오늘은 물이 많이 줄어 하류조차 계곡을 건너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때는 길이 끊어져서 계곡을 두 번이나 건너야 했지만, 오늘 올라가면서 보니 물을 전혀 건널 필요가 없다. 야간에 시야가 좁아져 길을 두고 엉뚱한 곳을 헤맨 탓이다.
맑고 깨끗한 용추계곡의 풍광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동안 대간길을 진행하면서 덕유산의 칠연계곡이나 삼도봉 아래 물한계곡을 보고 좋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곳들은 개발이 많이 되어 있고 또한 계곡이 너무 크고 넓어 사람의 출입을 철조망들으로 막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 용추계곡은 아담하고 무엇보다 인공구조물이 거의 없어 친근감이 간다.
# 대야산 안내도. 월영대에서 밀재로 오르고 정상 찍은 후 다시 월영대 거쳐 하산하는 코스가 일반 산객들이 선택하는 표준 산행코스다. 
# 용추 가는 길. 지난번 밤중에 헤맬 때와는 달리 수량이 적어 안전하다. 
# 용추계곡의 가장 중심지 龍湫(용추). 삼단으로 되어 있다. 용이 승천한 곳이다. 
# 용추를 위에서 본 모습. 좌측에 용이 승천하면서 바위를 스치고 가서 생긴 비늘자국이 있다. 
# 용추를 지나 호젓한 가을 산길로 접어든다. 
# 계곡과 산길을 번갈아 올라간다. 
# 지난번 하산할 때 야간에 엄청 헤맨 곳인데 오늘은 가뿐하다. 
# 월영대(月影臺) 위 널찍한 마당바위. 
계곡이 너무 좋아 산길 대신 계곡으로 올라왔더니 중간에 '월영대'에서 '피아골'과 '다래골'로 갈라지는 이정표를 못보고 지나쳐 버렸다. 가다보니 계곡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좌측에도 표지기가 붙어 있고 우측에도 표지기가 붙어 있다. 좌측에는 아무 기록이 없는 빨간 리본이 하나씩 몇 미터 간격으로 붙어 있고 우측에는 많은 표지기가 붙어 있다. 일단 우측으로 가 보자. 한참을 올라 가다 보니 길이 영 안면이 없다.이정표도 없고... 우측이면 피아골이어서 밀재가는 길이 아닌데? 다시 내려 가자.
갈림길 계곡으로 다시 돌아와 좌측 계곡으로 조금 올라 가보는데 길이 아주 험하고 지지난 주 내려 온 기억이 더더욱 없다. 아니다, 다시 아까 그 길로 가자! 이거, 어째 아침부터 알바를 시작하는데? 한참을 올라 가보니 밀재가는 길 이정목이 나오고 이 길이 맞다.
길 따라 오질 않고 계곡으로 올라오는 바람에 월영대에서 이정표를 지나친 탓이다. 그래도 빨리 결정하여서 10여 분 알바로 그친 게 다행이다.
# 월영대 지나 좌측으로 갈라지는 계곡. 저 빨간 리본은 누가 붙여 놓았을까? 저 리본 때문에 잠시 알바하였다.

# 밀재 가는 길의 떡바위. 떡처럼 생기지는 않았는데? 
# 사기골 갈림길. 
# 사기골부터는 산죽밭이 계속 이어지는데 바닥에 사금파리가 많이 있다. 이 골짜기의 이름이 왜 사기골인지 알 듯하다. 
09:16. '밀재'에 도착했다. 돌마당에서 1시간 41분 걸렸다. 이렇게 접속 구간이 있는 곳은 왠지 억울한 느낌이 든다. 지금쯤이면 대야산을 넘어 서야 할 시각인데...
밀재엔 2주일 만에 같은 장소에 다시 섰다. 이제부터가 백두대간길이다. 가 보자! 그 유명한 대야산으로! 대야산은 한자로 '큰 大', '그런가(어조사) 耶' 자를 사용한다. '야(耶)' 자가 의문 어조사이니 해석하면 "큰 산이야? 큰 산인가?" 뭐 이렇게 해석돼나?
# 밀재. 백두대간의 주요 포스트인데 자동차 다니는 고개가 아니라 산 꼭대기에 있는 고개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스쳐지나는 백두대간 산꾼들만 이 고개를 만난다. 우리는 이곳에서 용추계곡으로 탈출했지만... 밀재라는 이름은 예전 이 고개 주변으로 나무가 빽빽하고 울창하여 그렇게 불렀다는데 정확하지는 않다. 
밀재에서 대야산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오름의 연속이다. 지도에서는 50분을 예상한다. 돌마당 심사장님이 준 대야산 지도에는 '고래바위'가 제일 먼저 나온다고 하는데, 힘들어 그냥 지나쳤다. 어느새 강한 햇살이 숲 사이로 뚫고 들어와 땀방울이 맺히게 만든다.
# 고래바위인가? 큰 바위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산길을 오르고, 
# 로프가 매여있는 암반을 통과하니, 
# 대문바위와 코끼리바위가 나온다. 
# 그곳에서 대야산에서 좌측으로 뻗어나간 중대봉이 조망된다. 
# 대간길은 대문바위 사이로 이어진다. 
# 대문 통과 후 돌아본 모습. 
# 대야산으로 짐작했지만 올라보니 前 암봉이었던 곳이 조망된다. 
# 조금 올라가자 거대한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바위 아래엔 제법 넓은 공간이 있어 비박도 가능할 듯하다. 
# 큰 바위 옆엔 이런 바위 통로가 있어 멋진 광경을 연출해 준다. 
대야산 정산에 이르는 길은 '바위지대'의 연속이다. 자연히 전망이 아주 좋아 자꾸만 발길을 멈추게 한다. 로프를 붙들고 바위 사면을 올라가는데 뭔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둘러 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그냥 올라갔다.
계속 이어지는 암릉길을 로프를 붙잡고 올라가니 이번에는 좌측으로 우회하여 아래로 떨어지는 길이 나온다. 대간길은 '중대봉' 방향으로 가는 듯하다 유턴하여 다시 오름으로 이어진다. 아래에서 조망할 때 대야산 정상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봉우리를 오르자 정상은 뒤쪽으로 물러 나 있다.
다시 내려 갔다가 오르기를 두 번 해야 '대야산' 정상이다.(10:20)
# 전망대에서 올려다 본 대야산. 정상은 가운데 봉 뒤쪽이다. 
# 내려다 보면 남근(男根)을 연상케 하는 바위가 보인다. 
# 정상 부근에서도 이렇게 밧줄 붙들고 두 번 오르내려야. 
# 대야산 정상에 이른다. 
대야산 정상에 도착하여 숨을 고르기도 전에 허리춤을 보니 만보계가 없다. 암릉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로프타고 오를 때 뭔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때 흘린 모양이다. 가격이야 별로 비싸지 않은 것이지만, 처음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할 때 부터 함께 해 오던 것이고 당장 오늘 구간 거리 계산에 문제가 생긴다.
마눌더러 잠시 기다리라 하고 혼자 왔던 길을 더듬어 내려 가 보았다. 암릉 시작 부분까지 도로 가서 샅샅이 찾아보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뵈질 않았다. 한참을 찾다가 그만 포기했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든다. 잘 가거라! 만보계야! 내 너하고 진부령에 같이 내려 서려고 했는데 이렇게 영결을 하고 말았구나! 오호 통재라! 조침문(弔針文)의 한 구절로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대야산으로 복귀했다. 만보계를 찾느라 25분이나 허비해 버렸다.
# 대야산 정상은 조망이 아주 좋다. 
# 지난 구간의 조항산인 듯. 
# 두부모를 잘라 쌓아 놓은 듯한 암봉들. 
# 가야 할 대간길. 촛대봉과 곰넘이봉 너머로 희양산의 하얀 직벽이 조망된다. 
# 버리미기재에서 넘어 온 922번 지방도가 대간길에서 갈라져 나가는 막장봉과 투구봉 자락의 제수리재로 넘어 간다. 
# 대야산 정상엔 구조지점을 알리는 양철 안내판이 작은 소나무에 매달려 있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 상채기를 내고 있다. 이걸 그냥 두고 볼 마눌이 아니다. 얼른 떼어내서 이정목 나무기둥 아래에 묶어 두었다.

# 하산길을 알리는 표지기. 피아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무심코 표지기를 따라 내려가다가 이 길이 아닌가베! 다시 올라와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니 대간길이 이어진다. 
# 그 유명한 대야산 직벽 하산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사진 상으로는 별로인 듯하지만 실제는 무시무시한 90도의 직벽이다. 대야산 하산길에 있는 이 직벽은 백두대간 전체 구간 중 가장 위험한 곳이다. 그동안 이 구간에서 추락사고 같은 각종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하였다. 
# 직벽 하강 전 신발끈을 다시 묶으며 마음을 가다듬는 마눌. 이곳은 최소한 이런 마음가짐이 필요한 곳이다. 
대야산 하산 직벽 구간은 선답자들의 종주기에 하도 무섭게 표현되어 있어 시작하기도 전에 잔뜩 주눅이 들어 버렸다. 특히 마눌은 평소 하산이나 암릉 구간에서 힘들어했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혼자서 신발끈을 다시 묶고 각오도 다지며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번 가보자! 화이팅이다!"
'첫 번째 직벽'에서 내가 먼저 줄을 잡고 내려 갔다. 약 10여m 쯤 되는 직벽인데, 암벽에 물기와 진흙이 묻어 있어서 발을 디딜 곳이 마땅치 않다.
대학 1학년 때 잠시 몸 담았던 산악부 시절 황매산 암벽에서 선배들에게 기합 받아가며 배웠던 암벽등반 기술을 떠 올려도 보고, 홀대모 이송면님이 종주기에서 알려 주신대로 "아무리 미끄러운 바위에도 발 디딜 곳을 찾아 발끝으로 바위면에 서면 된다." 발끝으로 바위면을 찍어 보지만, 신발이 낡아서 그런가 바위면에 물기가 많아서 그런가 계속 미끄러지기만 한다.
몇 번 바둥거리다 겨우 내려 서서 올려 보니 마눌 창백한 표정으로 줄을 만지작거리기만 한다. 걱정 말고 내려와라! 내가 아래에서 받쳐 줄테니!
반쯤 내려 오던 마눌, 발이 계속 미끄러지기만 하자 줄에 매달려 바둥거리기만 한다. 할 수 없이 다시 올라가 한쪽 손으로 발을 받쳐서 겨우 데리고 내려 왔다.
# 첫 번째 직벽. 바둥거리기는 했지만 일단 통과. 
곧이어 두 번째 직벽이 시작되는데 자동적으로 한숨이 나온다. 크게 쉼호흡 한 번 하고 줄에 매달려 내려 가는데 바위면에 웬 물기가 그렇게 많은지 발디딤이 전혀 안된다.
어찌어찌 내려서서 떨고 있는 마눌에게 격려의 말을 하고 빨리 내려 오라고 재촉했다. 또다시 중간에 대롱대롱 매달린 마눌, 도와달라고 애원한다. 계속 도와주기만 하다가는 앞으로 다른 곳에서도 문제가 될 것 같아 혼자 힘으로 해보라고 야멸차게 말해 줬다.
"나, 어떡해,어떡해?" "괜찮소, 손으로만 매달리지 말고 발끝으로 바위면을 찍어요." "어떡해,어떡해?" "잘!" "뭐라고요?" "열심히!" "지금 장난칠 때예요?" "장난 아니다. 손에 힘 꽉 주고 발끝으로 디딜 곳 찾아서 조금씩 내려오시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잡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지켜보니 바위에 부딪치고 미끄러지고 하면서도 혼자 힘으로 어찌어찌 내려는 왔다. 내려오자마자 원망을 하고 난리가 아니지만, 덕분에 혼자 힘으로 잘 내려 오지 않았느냐고 말해 주고 다시 세 번째 직벽으로 다가 갔다.
# 두 번째 직벽에서 대롱대롱 매달린 마눌. 
그렇게 아둥바둥 네 개의 직벽을 위험스럽게 내려와서야 직벽 구간은 끝이 난다. 바위면에 부딪치고 미끄러지느라 마눌은 옷이 흙투성이고 무릎이며 옆구리며 금방 멍이 시퍼렇게 들어 있다.
괜찮다, 괜찮다! 격려하고 다시 촛대재를 향해 출발했다. 직벽 구간에서 너무 지체를 하여 마음이 급해졌다. 한편으론 무사히 직벽 구간을 내려 온 것이 너무 다행이다 싶다. 이후로 촛대재까지는 긴 내리막의 연속이다.
# 내리막 중간중간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길이 젖어 미끄럽다. 
# 어느새 빨간 단풍이 물든 나무가 중간중간에 보인다. 
# 산부추꽃. 
# 용담. 
긴내리막을 한참 내려서니 '촛대재'에 도착했다.(12:00) 촛대재는 용추계곡 피아골에서 건너편 괴산의 상관평으로 이어지는 길이 가로 지른다. 10여 명의 젊은이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가 대야산까지 얼마나 걸리겠냐고 질문한다. 모습을 보니 아는 사람들끼리 뒷동산 가는 기분으로 올라 왔나 보다. 절반 정도는 등산화도 아닌 운동화나 스니커즈 차림이다. 그 상태로는 올라가기 힘드니까 피아골로 내려가면 대야산 정상 가는 갈림길로 갈 수 있으니 그쪽으로 가시든지 아니면 용추계곡에서 놀다 가라고 얘기해주고 우리는 촛대봉으로 출발했다.
촛대봉 오르는 길엔 또 한번 로프가 설치된 암벽 구간이 등장하고 올라서자 힘들게 내려 온 대야산 하산길이 한눈에 들어 온다. 아이구야, 우리가 저 절벽을 내려왔구나!
10여 분 힘들게 올라가니 풀이라곤 하나도 없고 봉분은 거의 닳아 없어진 묘지가 있는 '촛대봉'에 도착한다.(12:13)
# 무시무시한 대야산 하산길. 마눌, 다시 한번 놀랜다. 저 길로 내려왔다니! 
# 촛대봉 정상. 
불란치재로 내려가는 내리막은 편안하기만 한데, 마눌은 대야산 직벽에서 너무 무리를 했는지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한다. 마눌 스틱 하나가 고장이어서 한 개만 짚고 내려 오려니 무릎에 더 무리가 가는 듯하여 내 스틱 한 쪽을 마눌에게 주었다.스틱을 하나만 짚으려니 절름발이처럼 걸음걸이가 영 어색하다.
20여 분 걸려 '불란치재'에 도착했다. 버리미기재가 생기기 전 불란치재가 주 통행로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사람들의 왕래는 끊어지고 잡풀만 무성하다.
불란치재는 그 이름이 주는 어감이 아주 좋다. 불란서와는 당연히 아무 상관이 없을테고 난초와 관련된 유래가 있을라나? 자료를 찾아 보지만 알 수가 없다.
# 잡풀이 무성한 불란치재. 
# 둘산악회에서 힘내라고 격려해 준다. 
불란치재에서 한숨 돌리고 다시 곰넘이봉을 향해 올라 갔다. 대야산 구간이 힘이 드는 것은 대야산 하산길의 직벽이 무시무시한 탓도 있지만, 하산길 너머에 촛대봉 뿐만 아니라 곰넘이봉이 떡하니 앞을 가로막고 있어 쉽게 그 끝을 보여 주지 않기 때문이다.
불란치재에서 가파른 봉우리 하나를 오르고 긴 안부 하나를 통과하고 다시 가파르게 오르자 '폐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 지나 다시 오르자 바위전망대가 나오고 곧바로 미륵바위에 도착했다.
# 미륵바위 오르는 길에 설치된 로프. 바위에 쓸려 끊어질 듯 위험해 보였다. 이미 수 차례 끊어져서 다시 이은 듯 묶은 자국이 두껍게 있다. 상당한 높이의 직벽이었고 위가 전혀 보이질 않으니 위험을 알 수 없어서 로프가 끊어진다면 심각한 부상이 우려된다. 바위에 설치된 로프는 항상 힘껏 당겨보고 올라야 하겠다. "혹시 뒤에 오시는 분들 조심하십시오." 
# 전망대엔 잘 생긴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고, 벌바위마을이 조망된다. 
# 전망대와 뒤쪽의 곰넘이봉. 
# 미륵바위(13:00). 특이한 모양이다. 머리 깎은 미륵 부처님 형상을 하고 있다. 
# 가야 할 곰넘이봉. 
'미륵바위'를 지나 가파른 오름을 차고 오르자 '곰넘이봉'에 이른다.(13:15) 곰과 관련된 전설이 있을 법 한데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다시 암봉 하나를 지나고 로프가 설치된 바위 내리막을 지난다.
# 로프가 설치된 바위 내리막. 
# 버리미기재는 쉽게 모습을 보이질 않고 다시 암봉 하나가 앞을 가로 막는다. 
바위 암봉을 넘어긴 내리막을 한참을 내려가자 차량 통행이 많은 '버리미기재'에 이른다.(14:10). 아침에 벌바위에서 출발한 지 7시간 가까이 걸렸다. 중간에 만보계 찾느라 시간을 지체하고 대야산 하산 직벽에서 시간 지체가 많았다.
지도에는 전나무 숲 지대를 지나야 버리미기재가 나온다는데, 정작 전나무 숲은 도로를 따라 길 양쪽에 조금씩만 횡으로 있을 뿐이다. 버리미기재엔 시원한 계곡이 있어 휴식처로 그만이다. 여름철 야영지로도 적당할 듯하다. 물가에 자리 펴고 점심식사를 했다.
오늘도 돌마당 심사장님에게 배운 감식초 막걸리를 준비해 왔다. 지난 주 일요일 대간길에 못가고 산본의 수리산에서 5시간여 종주를 하면서 막걸리와 감식초를 섞어 먹어 봤는데 상당히 시원하고 맛있었다.
마침 촛대봉에서 만났던 대간꾼 두 분이 오시길래 한 잔씩 권했더니 맛있어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두 분은 오늘 새벽에 늘재에서 출발했는데 여기서 끊는다고 한다. 우리는 오늘 은치재까지 가 볼랍니다 하니 마눌은 펄쩍 뛰고, 막판에 어두워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며 두 분은 일행을 찾아 갔다.
마눌은 무릎이 아프고 지금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여기서 그만 끊고 다음에 오자고 계속 죽는 소리를 한다. "여기서 끊으면 이화령까지는 또 한번 중간에 끊어야 하니 좀 무리가 되더라도 은티재까지 한번 가보세. 가다가 어두워지면 이마에 불 켜면 되고, 또 내일 쉬는 날이니 늦게 끝나더라도 여유가 있잖소? 마눌, 힘내고 한번 가 봅시다!" (14:40)
# 물이 흐르고 시원한 버리미기재 계곡. 
# 왕복 2차선 포장도로 버리미기재. 
# 장성봉쪽 들머리. 
장성봉 오르는 길은 시작부터 가파른 오름이 이어지고 등로엔 낙엽이 많이 깔려 있어 미끄러워 오르기가 어렵다. 힘겹게 등로를 오르는데 발길에 애기 주먹만한 수정 하나가 걸린다. 주워보니 파손되어 가치가 없긴 하지만 육각으로 각이진 매끈한 수정이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 장성봉에 수정 광산이 있었다 한다.
# 암봉이 중간중간 나온다. 
# 태풍에 쓰러진 듯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뿌리채 뽑혀 누워있다. 나무의 규모로 보아 수 백년은 된 나무인 듯한데... 
# 한참 오르자 비박굴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 비박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장성봉 오르는 길은 길고 힘들어 여러가지로 괘방령 너머에 있는 가성산 오름과 비슷하다. 정상인 듯하면 아니고 또 저기가 정상인 듯하면 그곳도 아니다.
그동안 대간길을 해 오면서 몇몇 산들이 오르는데 유별난 인내를 요구했다. 노치부락의 수정봉, 중재 너머 월경산, 소사마을의 거창삼도봉, 괘방령의 가성산, 소백산의 선달산 등이 그렇다.
모두들 그날 구간의 중간에 위치해 있어 체력이 떨어질 무렵에 만났고 보통 1시간에서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몇몇은 결정적으로 정상인 듯하다가 아닌 것이 반복되면서 사람의 진을 빼 놓는다는 것이다.
이곳 장성봉도 마찬가지여서 계속 사람의 진을 빼더니 마지막에는 대간길이 배배 꼬여 올라가는 느낌이다. 좌측 능선을 타고 힘겹게 올라 온 대간길이 우측으로 사면을 따라 진행하더니, 다시 우측 능선에서 산마루금을 따라 좌측으로 이어진다.
옻나무골로 빠지는 길인지 갈림길도 지나고, 진이 쏙 빠진 다음에야 '장성봉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16:04). 1시간 10분 예상거리인데 14분 초과했다.
# 장성봉 정상. 정상석의 글씨가 호쾌하다. 정상석 앞엔 네모난 바위가 무덤 상석처럼 놓여 있다. 
장성봉 정상에서 간식 먹고 충분히 쉬었다. 출발하기 앞서 인쇄해 온 최중교님의 종주기를 잠깐 읽어보니. "이곳 장성봉 정상에서 대간길은 주의를 해야겠다. 사전정보가 없다면 십중팔구 장성봉 정상석 뒤로 펼쳐진 길을 따르리라. 실상은 애기암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라는디???? 대간길은 장성봉 정상 3-4m 직전 좌측비탈길(리본이 많이 붙음)로 내려서야 한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현지 상황은 정상석 뒤쪽으로 표지 리본이 많이 붙어 있다. 그래도 평소 상세한 내용 기술로 유명한 분의 종주기이니 따라야지. 정상 3~4m 직전에 가 보니 '이정목'이 서 있고 좌측은 버리미기재, 우측은 절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최중교님은 좌측으로 가랬는데... 정상 방향이 아니고 입구 방향에서 좌측이라는 말인가? 그 방향에서 봐도 절말 방향인데? 절말은 막장봉에서 갈라지는데? 또 그 방향으로는 표지기도 없다.
도대체 종 잡을 수가 없다.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는데...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단은 표지기따라 가 보기로 하고 표지기가 많이 붙어있는 정상석 뒤로 진입했다.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은 급격한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다행히 계속 표지기도 붙어 있다.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오자 길은 왼쪽 계곡 방향으로 꺾여 들어간다. 왜 이러지? 골짜기를 가로지른 등로는 이번엔 옆 능선으로 올라가게 이어진다. 불안하고 급한 마음에 헉헉 단숨에 뛰어 오르니 이곳 역시 장성봉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결국 장성봉 입구에서 절말 방향으로 나 있는 길이 능선을 따라 가는 지름길이고, 정상석 뒤쪽으로 나있는 길은 먼 길을 우회하여 다시 합류하는 길이다. 많은 선답자들이 이곳에서 헷갈렸다. 그 결과 정상석 뒤쪽으로 새로운 길이 개척되어 표지기가 이어져 있고, 오히려 대간길엔 표지기가 없이 헷갈리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20여 분 또 낭비하고 악휘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비탈을 오르자 절말, 막장봉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정상에는 산신령들이 바둑을 두는 곳인지 돌무더기가 의자처럼 놓여 있다. 이후 안부로 급하게 떨어져 내렸다. 마눌은 대야산 하산길에 너무 무리를 했는지 내리막에서는 계속 힘들어 한다. 안부를 지나 다시 가파르게 치고 올라야 '827봉'에 오르게 된다.
중간중간에 너무 지체를 많이 해서 마음만 급해서인지 너무 힘이 들었다. 헉헉 숨이 턱에 차고 아무 생각도 없다. 가파른 바위 암봉을 스틱에 의지해서 힘겹게 오르는데 뭔가 눈앞을 휙하고 지나간다. 화들짝 놀라 쳐다보니 독사다. 바위에서 몸을 말리고 있다가 나 때문에 놀라 이동하는 모양이다.
바위 중간에서 벌어진 일이라 녀석과 내 얼굴과의 거리가 불과 10cm 밖에 안된다. 다행히 어린 놈이라 제풀에 놀라 녀석이 도망을 치는 바람에 얼굴을 물리는 불상사는 피했다. 연속 종주를 하던 누군가는 눈두덩이를 독사에게 물렸다는데 아마도 나 하고 같은 상황에서 공격을 당한 듯하다. 어이구, 십년감수했네! 스틱으로 녀석을 멀찌감치 던져버리고 바위 구간을 다 오르니 '827봉'이다.(17:14)
# 827봉 정상 입구 바위지대. 
# 가야 할 대간길. 어느새 조금씩 어둑어둑해진다. 
827봉을 지나는 대간길은 평탄한 편이라 속도를 내어 본다. 마눌은 무릎 때문에 자꾸 뒤쳐지지만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니 마음이 급해져서 발걸음이 자꾸만 빨라졌다.
한참 가자 '바위전망대'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삿갓을 엎어 놓은 듯한 시묘산이 조망된다. 부모님 시묘살이를 정성껏 한 효자의 전설이 있을 법 하다. 시묘산은 남원 봉황산 옆의 속금산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둘 다 대간길 좌측에 위치하면서 군더더기 없이 피라미드 모양으로 솟아 있는 모양이 그러하다.
'809봉'엔 너럭바위가 놓여있고 다시 정신없이 내달려 '787봉'도 지나쳤다. 마눌과 대화 한마디 없이 마음만 급해져서 내달리다가 쌍곡리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있는 '공터'를 지나고 '바위전망대'에 올라서야 한숨을 돌렸다.
# 노을이 붉게 불타올라 예쁘긴 한데 어두워질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지도에서는 이곳에서 은티재까지를 50분으로 표시해 두었는데 완전히 엉터리다. 두 시간은 족히 되는 거리인데... 지도를 믿고 시간 계획을 잡았다가 여기서부터 낭패를 보게 되었다.
해가 져서 어느새 등로엔 어둠이 가득한데 산마루금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이마에 불을 밝히지 않아도 웬만큼 갈만하였다. 한참을 불 없이 가다가 마눌이 불안해 해서 이마에 불 밝혀 매달아 주고 내 이마에도 불을 밝혔다.
50여 분 힘들게 오르내려 이정목이 세워져 있는 '갈림길'에 도착했다.(18:56). 악휘봉 갈림길로 짐작해보고 이정목을 살펴보는데, 어랍쇼? 은티마을 1시간이라고 기록되어 있네? 그럼, 여기가 은티재인가? 그럼 악휘봉 삼거리는 어느새 지나왔나? 지도에서 은티재까지를 50분 거리라고 했으니 여기가 은티재가 맞는 모양이다. 간식 먹고 한숨돌리며 의외로 쉽게 끝난 것을 자축하고 연풍택시에 전화해서 1시간뒤에 만나기로 약속도 정해두었다.
은티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려다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은티재에는 입산금지 방책이 둘러 쳐 있고 팻말도 즐비하다던데? 지도를 다시 꺼내들고 차분히 살펴보니 여긴 은티재가 아니라 '악휘봉 삼거리'가 분명하다. 빨리 끝냈으면 하는 바램이 오기(誤記)된 지도상 시간만 믿고 여길 은티재로 착각하고 스스로 그렇게 믿어버린 것이다.
아이구 지도가 틀렸다면 얼마나 더 가야 하나? 최중교님 종주기에 보니 앞으로 한 시간 정도는 더 가야 한다. 마눌, 실망스럽겠지만 좀 더 가자!
# 은티재로 착각하게 만든 악휘봉 삼거리.

악휘봉 삼거리에서는 820봉, 암릉길, 722봉과 암반지대를 지나야만 은티재에 도달할 수 있다. 어두운 산길을 이마 등불에 의지하여 오르내리려니 아주 힘이 든다. 게다가 끝난 것으로 착각까지 했으니 그 실망감이란...
암봉길에서는 슬링줄에 의지하여 올랐다가 다시 내려야 하고 바위를 붙들고 힘들어하며 낑낑 오르내려야 했다. 불안해하는 마눌을 위해 산행가를 불러주며 격려도 하였다.
"하루의 산행을 시작하세. 빠알간 배낭을 등에 메고 저기 저 산을 향하여 끊임없이 올라가세." 이렇게 되는 노랫말을, "하루의 산행을 끝마치세. 빠알간 배낭을 등에 메고 저기 은티재를 향하여 끊임없이 내려가세." 이렇게 바꿔 불러 주었다.
어두운 안부를 지나고 가는 로프가 매달려 있는 암봉을 조심스레 올라가니 '722봉'이다. 722봉은 전망이 좋아 멀리 마을의 불빛이 선명하다. 그런데, 어? 넓고 큰 '암반 슬랩 지대'가 나타난다.
이 슬랩 지대는 선답자들의 종주기에는 별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던 곳이다. 조진대님, 초록부부님, 산사자님, 대명님, 황달연님, 이송면님 어느 분의 종주기에도 언급이 없어서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다만 최중교님의 종주기에 암반 슬랩 지대에서 앉아서 조심스레 내려갔다고 한 줄만 언급되어 있었다.
마눌에게 뒤만 따라 오라하고 앉은 걸음으로 조심스레 암반 슬랩 지대를 내려오니 그걸로 끝이 아니고 또다시 두 번째 암반 슬랩 지대가 나타난다. 이마에 밝힌 불빛으로 주변을 둘러봐도 우회길은 없고 다시 엉덩이를 바위 면에 붙이고 조심조심 내려섰다.
두 번째 슬랩을 내려오자, 어렵쇼? 다시 암반 슬랩이 나타나는데 위쪽의 두 개와는 그 크기와 경사가 비교가 안 된다. 도저히 바위를 타고서는 내려갈 수가 없다. 좌우를 열심히 찾아보지만 그 어느 곳에도 길이나 표지기는 보이지 않는다.
암반 한가운데 있는 나무에 표지기가 달랑 한 개가 달려 있는데 이 슬랩을 타고 내려가라는 의미인 듯한데 도저히 야간에 아무 확보 장치 없이 이 암반을 내려간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암반 좌측 숲을 비춰보지만 길이나 표지기는 안보이고 그나마 우측으로 내려가기가 좀 더 쉬워 보여서 일단 내려 가 보았다. 아,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인지!!!!
우측은 계곡 방향인데 막상 내려가 보니 정글 지대다. 바닥은 너덜지대인데 바위들이 고정되어 있질 않고 흔들리거나 바위 사이의 틈새에 발이 끼이기가 일쑤다. 몇 년을 쌓였는지 낙엽이 무릎 높이까지 쌓여 있고 덩굴 때문에 진행하기 힘이 든다.
암반에서 내려와 버려서 다시 암반으로 돌아가기도 힘들고 일단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 공포에 빠진 마눌을 달래랴, 얼굴에 휘감기는 덩굴 떼어내랴, 흔들리는 바위 위에서 중심 잡으랴 나 역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헤드램프 불빛 속에 뿌연 먼지가 가득하다.
마눌이 악~ 하고 소리쳐서 달려가 보니 낙엽이 깊어 아래를 못 보는 탓에 바위 틈새에 발이 끼어 허벅지까지 낙엽에 덮여 바둥대고 있다. 발목을 잡아 빼내 주고는, "안 되겠다. 당신은 여기 바위 위에 좀 앉아 있어라. 내가 길을 찾아 볼 테니." 마눌은 119에 전화를 하자고 하지만 휴대폰 불통 지역이라 연락 불가!
물 한 모금 마시고 정신을 차리고 주변 지형지물을 살펴보니 우측으로는 골짜기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올라가야 되는데, 아무래도 길이 나올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일단 좌측으로 수풀을 헤치고 계속 나아 가 보았다. 나뭇가지에 긁히고 자빠져가며 한참을 진행하니 불빛에 지금까지와는 달리 붉은 흙바닥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 이쪽이야! 바위 몇 개를 넘어서니, 세상에!!! 아래쪽으로 잘 나 있는 대간길이 불빛에 모습을 드러낸다.
심 봤다!!! 마눌에게 다시 돌아가 손잡고 찾은 길로 돌아오니 허허허 헛웃음만 나온다. '좌측'으로 조금만 더 뒤져보면 찾을 수 있는 길이었는데, 오른쪽 길을 선택해서 이 고생을 하다니... 무려 1시간 이상을 그 골짜기에서 헤맸나 보다.
바위 위에 주저앉아 서로 쳐다보니 몰골이 가관이다. 머리며 옷이며 먼지를 뒤집어써 허옇고 땀에 절어 꾀죄죄하다. "수고했소. 마눌! 정신 차리고 일단 은티재까지 빨리 가자!"
편안한 산길 따라 허위허위 내려오니 목책과 경고문이 붙어 있는 '은티재'가 나타난다.(21:10). 참으로 어렵게 어렵게 왔구나! 은티재여! 마눌에게 고생했다고 격려해주니 다시는 야간산행하지 말자고 당부한다. 두 구간 연속 야간 산행에다 길을 잃고 헤매게 해서 미안한 마음에 알았다고 다짐해주고 손 한번 꽉 잡아주었다.
다행히 전화가 연결되어서 연풍 택시를 은티마을로 와 달라고 하고 대간길에서 탈출했다. 은티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편안한 길이다. 이미 파김치로 지쳐버린 우리는 빨리 내려가서 쉬고 싶은 생각뿐이다.
한참을 걸어 내려오니 사과 과수원이 나타나고 나무마다 족히 100여 개는 됨직한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배가 너무 고파 하나 따 먹었으면 좋으련만 저만큼 키운 농부의 정성을 어찌 훔치리오? 입맛만 다시며 내려오는데, 길가에 떨어져 생채기가 난 사과가 하나 보인다. 얼른 줏어서 길가 계곡물에 씻어서 상한 부분 베어내고 한입 물었다. 음~~~ 너무나 맛있다.
은티마을은 사과 농사와 고추 농사를 많이 짓는 모양이다. 과수원길을 내려와 논밭 사이로 나 있는 농로를 따라 쭈욱 내려오니 고요히 잠 속에 빠져 있는 은티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계곡에서 대충 손도 씻고 먼지도 털어내니 조금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22:05분에 불 꺼진 은티마을 구판장에 도착했다. 구판장 앞엔 아름드리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남근석은 지쳐서 멀리서 짐작만 했다. 넓은 공터가 있다. 아마도 버스가 여기서 회차하는 모양이다. 연풍 택시에 전화를 하니 이제야 출발을 하겠단다. 지쳐 죽겠는데 택시까지 이 모양이다.
다시 30분을 기다려 택시 타고 버리미기재 지나 벌바위 돌마당식당에 도착하였다. 심사장님 내외는 퇴근해 버렸고 청년 한 사람이 지키고 있는데, 식사는 어렵단다. 돌마당에 주차해둔 차 몰고 가은으로 와서 야식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 택시 기다리며 은티마을 구판장 앞에 누워 올려다 본 보름달. 
무지무지 힘들었던 구간이었다. 무려 14시간 30분을 산 속에 있었다. 돌아보니 중간중간 지체 요인이 많이 있었고 빠른 판단으로 회피할 수도 있었는데, 고생길로 일부러 찾아 들어 간 느낌이다.
밀재 오름길에서 10여 분 알바, 대야산에서 만보계 찾느라 25분 지체, 대야산 직벽 하산길에서 지체, 장성봉 정상에서 15분 지체, 악휘봉 갈림길을 은티재로 착각하여 20여분 지체, 결정적으로 은티재 전 슬랩지대에서 1시간 지체해버렸다. 게다가 대간길 접근로가 밀재로 오르면서 1시간 40분, 은티마을로 내려 오면서 1시간이니...
그래도 용추계곡, 대야산의 절경을 원없이 감상했고, 엄청난 부담으로 압박하던 대야산 직벽 구간을 무사히 마쳤다는 성취감과 기쁨은 크다. 음~~ 다음 구간은 희양산 출입을 막는 봉암사 스님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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