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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스물세번째(차갓재~저수재)-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본문

1대간 9정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스물세번째(차갓재~저수재)-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강/사/랑 2007. 6. 25. 19:37

 [백두대간]그 스물세번째(차갓재~저수재)

 

  

강/사/랑 부부가 백두대간 종주에 뛰어든 뒤 어느새 계절이 세 번 바뀌었다. 애초에 나는 낚시꾼 출신의 초보 산꾼이었다. 마눌 또한 산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아무 준비 없이 뛰어든 대간길이라 여러 우여곡절(迂餘曲折)이 많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시작한 그 산길이 백두대간이었다. 백두대간은 이 땅의 중심축이자 근본을 이루는 산줄기다. 당연히 높고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다. 그런 백두대간이니 어느 한 구간 쉽거나 만만한 구간이 있을 리 만무한 산길인 것이다.

 

세 번의 계절이 오고 갔지만, 우리의 대간길은 늘 위태롭다. 험난한 대간길에 초보 산꾼이 겁없이 뛰어든 터라 모든 조건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산행 경력이 일천(日淺)한 낚시꾼이 대간 속에 뛰어든 데다, 오르막에서는 술, 담배와 스트레스에 찌든 이 몸이 헥헥거리고, 내리막이나 암릉구간에서는 겁많은 마눌이 바둥거렸다. 따라서 우리의 산길은 항상 예상시간보다 한두 시간씩 오버되기 일쑤였다.

게다가 사진 찍고 기록하느라 하염없이 시간 잡아먹고, 경치 좋은 곳 나오면 눈에 마음에 담아 두느라 또 시간 지체가 하염없다. 그것이 우리가 이 백두대간 종주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애초에 백두대간에 뛰어들면서 '솔방솔방', '사부작사부작' 황소 걸음으로 진부령까지 걸어가 보자고 작정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산에서 펄펄 날아다니는 다른 대간꾼을 보노라면 어쩔 수 없이 주눅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솔방솔방 우리 산하(山河)를 두 발로 느끼면서 가슴에 품으면서 느낌 가지면서 걸어가자고 항상 스스로 다짐하며 격려하며 가긴 한다만...

이번 구간인 차갓재 ~ 저수재 구간은 거리가 짧아 편한 마음으로 준비했다. 마눌에게도 보너스 구간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미리 안심시켰다. "거리 짧으니 공짜와 마찬가지요. 걱정 말아요!"

그런데 12월 초에 전국적으로 내린 눈이 그만 딱 발목을 잡았다. 이 구간의 주요 포스트인 황장산(黃腸山)의 오름과 내림에 상당히 위험한 암릉구간이 있고 동계(冬季)엔 아주 위험하다는 선답자(先踏者)들의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곳 저곳 선답자들의 종주기를 20여 개 이상 읽어 봤는데, 동계에 그곳을 통과한 사람은 거의 없다. 혹 있다 해도 자세한 내용은 없고 "그냥 위험하고 아슬아슬하게 지나왔다"는 정도로만 나온다. 그 얘기 들은 마눌은 이 구간은 나중에 봄에 하고 다른 구간을 하든지 이번 주는 가지 말자고 야단이다.

"야 이 사람아! 이래서 쉬고 저래서 빠지면 대간은 언제 졸업할 건가? 그리고 쉽기만 하면 누가 대간을 못하겠나? 게다가 이 구간은 거리가 짧으니 암릉 구간만 잘 지나면 걱정없어요. 빨리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하늘재 산장에 들러 선녀님네랑 함께 저녁 먹고 놀다 오세!"

그러나...


백두대간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 대간이 얼치기 산꾼에게 그렇게 쉽게 품을 열어 주던가? 결과적으로 남들 일곱 여덟 시간만에 내달리는 차갓재 ~ 저수재 구간을 우리는 무려 열한 시간 이십 분이나 걸려서 마쳤고, 오늘도 변함없이 이마에 불 밝히고 칼바람 휘몰아치는 저수재 날머리에 내려서야 했다.

경제학 격언(格言)에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란 말이 있다. 모든 경제적 선택엔 그에 상응하는 기회비용(機會費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말은 서부 개척시대 어느 영리한 술집에서 일정 금액 이상의 술을 마시는 고객에게 점심을 공짜로 제공하던 데서 유래했다. 공짜로 점심을 주니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술값 속에 이미 점심값이 녹아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인 그레고리 맨큐(Gregory N. Mankiw)의 경제학 원리에도 이 말은 등장한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 "선택의 대가는 그것을 얻기 위해 포기한 그 무엇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보람 있는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그 마루금 순례의 의미를 얻고자 하면서 공짜를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 백두대간에 공짜란 말은 결단코 없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구간 : 백두대간 제 30,31 소구간(차갓재 ~ 벌재 ~ 저수재)
거리 : 구간거리(15.14 km), 누적거리(480.89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5년 12월 11일.
세부내용 : 안생달마을(07:00) ~ 배창골갈림길 ~ 작은차갓재 갈림길 ~ 송전탑갈림길 ~ 차갓재
(07:22) ~ 묘 ~ 816봉 ~ 작은차갓재(07:50) ~ 헬기장 ~ 무명봉 ~ 묏등바위 ~ 위험 로프구간 ~ 황장산(09:30) ~ 길주의 ~ 위험 로프구간 ~배창골갈림길 ~ 감투봉(10:09) ~ 위험 로프하산길 ~ 황장재(10:30) ~ 985봉(10:40) ~ 암릉길(미끄럽고 위험) ~ 무명봉(10:53) ~ 1004봉(11:48) ~ 치마바위(12:04) ~ 860봉 갈림(12:08) ~ 폐백이재(12:23) ~ 무명봉 ~ 전망대(12:40),점심식사(13:20) ~ 928봉 ~ 무명봉 ~ 헬기장(13:49) ~ 벌재(14:00) ~ 무명봉 ~ 임도(14:10) ~ 산불감시탑(14:48) ~ 823봉(14:55) ~ 750고지 갈림길(15:04) ~ 1020봉(15:50) ~ 무명봉 ~ 문봉재(16:07) ~ 무명봉 2 ~ 문복대(16:43) ~ 옥녀봉 ~ 전망대 ~ 무명재 ~ 무명봉 ~ 장구재(17:50) ~ 무명봉 ~ 저수재(18:20).

총 소요시간 11시간 20분.(접속구간 포함). 만보계 기준 36,000 걸음.


11월 3일. 지난 주에 대간길 다녀 왔으니 당연히 이번 주엔 회사든 집이든 행사가 있을 것이다. 토요일, 둘째형네와 같이 김장을 담궜다. 강한 맛을 좋아하는 우리집 전통대로 김장 배추에 강력한 향신료인 재피가루 듬뿍 뿌려 매운 고춧가루와 버무렸다.

김장한 기념으로 형님과 부어라 마셔라 한 후유증으로 일요일 오전엔 내도록 뒹굴뒹굴 했다. 일요일 오후. 안되겠다 싶어 마눌이랑 강아지 앞세우고 동네에 있는 수리산을 한바퀴 돌았다. 수리산은 한남정맥의 한 구간이고 안양, 안산, 산본에 걸쳐 있어 동네산 치고는 꽤 규모가 있는 편이다. 관모봉, 태을봉, 칼바위능선, 토끼봉, 슬기봉, 감투봉 거쳐 산본 3단지 체육공원쪽으로 내려오며 산본을 C 자 형태로 돌아 오면 족히 네다섯 시간 걸리는 거리다.

이날 수리산엔 눈이 등로에 수북히 쌓였고 찬바람이 상당히 매서웠다. 출발이 늦었던 탓에 막판 한시간 정도는 등불도 없이 야간산행을 했다. 이제는 하다하다 동네 산에서도 야간산행을 한다. 마눌은 하산길에 몇 번이나 미끌어져서 엉덩이에 멍이 퍼렇게 들었다.


12월9일. 금요일. 지난 주에 대간에 못들어 갔으니 이번 주는 반드시 대간길에 나서야 한다.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마눌 거실에 산행짐을 전부 늘어놓고 준비는 해 두었는데, 아침에 헬스장에 갔다 온 이후에 감기가 갑자기 걸렸다면서 머리가 너무 아프단다. 일단 저녁 먹고 봅시다. 저녁 식사하고 씻고 나오는데 갈수록 머리가 더 아프고 힘이 들어 못가겠다고 죽는 시늉이다.

황장산 암릉 구간에 대한 공포 때문에 짐짓 생긴 병이다 싶어 화가 벌컥 났다. 꼭 시험 전날 배가 아픈 학생처럼... 화를 내어 보지만 아프다는 사람을 끌고 갈 수도 없고...

이번 주도 대간에 못 간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서 말도 하기 싫다. 밤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토요일날 느지막이 일어 났더니 마눌 내 눈치를 살피며 간밤에 푹 잤더니 좀 괜찮아졌다면서 오후에 더 괜찮아지면 출발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아픈 사람에게 약은 못 사줄 망정 대간 못간다고 화만 낸다고 오히려 공격이다.

이거야 원! 대간병(대간 품속에 2주 이상 못 들어가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고질병) 때문에 쫌생이 남편이 되버렸네...

12월 10일, 토요일 오후. 남들은 주말의 명화 보며 가족끼리 편안히 쉴 시각에 우리는 고생보따리 둘러메고 손에는 침낭에, 하산해서 갈아 입을 옷보따리 바리바리 들고 집을 나섰다. 영동, 중부내륙 고속도로 내달려 괴산휴게소에 도착하니 11시다. 의자 젖히고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황장산/黃腸山

경상북도 문경시 동로면(東魯面)의 북부에 있는 산. 높이는 1,077m이다. 월악산국립공원 동남단에 있는 산으로, 조선 말기까지 작성산(鵲城山)이라 불렀고, 《대동지지(大東地志)》 《예천군읍지》 등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왕의 정원이라 하여 황정산(皇廷山)이라고도 하였으며 지금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인 1680년(숙종 6) 대미산(大美山:1,115m)을 주령으로 하는 이 일대가 봉산(封山:나라에서 궁전·재궁·선박 등에 필요한 목재를 얻기 위하여 나무를 심고 가꾸기에 적당한 지역을 선정하여 국가가 직접 관리·보호하는 산)으로 지정된 데서 산이름이 유래하였으며, 그 이유로 황장봉산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그 표지석인 황장산 봉산표석(경북문화재자료 227)이 인근의 명전리 마을 입구에 서 있다. 대원군이 이 산의 황장목을 베어 경복궁을 지었다고도 전해진다.

벌재/伐峙, 伐嶺

단양군 대강면과 문경군 동로면을 연결하는 고갯길이다. 해발고도가 640m 정도로 죽령보다는 평탄한 길이어서 신라의 적성 진출로로 주목되기도 하였다. 동로면 적성리나 단양의 옛지명인 적성은 모두 벌재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적성은 바로 벌재의 漢譯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단양읍 벌천리의 속칭이 벌내이고 벌내는 벌천리 앞을 흐르는 하천의 이름이기도 하다. 고개의 이름도 이것에서 유래되어 벌령, 벌치, 벌재라 하였고 이것이 고개 양쪽의 마을의 지명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저수재/低首嶺

경북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의 경계가 되는 지점으로 경북과 충북의 道界 이다. 지금의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험난한 산속의 오솔길로서 경사가 아주 급하였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다니는 길손들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는 고개하는 뜻에서 저수령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옛날에는 이곳에서 은풍곡까지의 길이 피난길로도 많이 이용되어 왔는데 그 당시에는 이 고개를 넘는 외적들은 모두 목이 잘려 죽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저수령은 927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편도 1차선의 포장도로로 충북과 서울,강원 지방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관광 및 산업도로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30,31소구간 차갓재 ~ 벌재 ~ 저수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알람소리에 눈을 뜨니 4시 30분. 다시 30여 분 침낭 속에서 미적대다 5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기온을 체크해보니 영하 2도이다. 어라~ 오늘 최저 기온이 영하 11도이고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던데? 휴게소에서 밥 먹고 양치하고 버리고 서둘러 출발했다.

'문경새재 IC'를 빠져나와 지그재그 형태로 세 번 유턴하여 문경읍내를 거쳐 '901번 지방도' 타고 한참을 달리니 차 앞으로 작은 불덩이 네 개가 지나간다. 급히 속도를 떨어뜨리니 너구리 두 마리가 아침 먹이 구하러 나왔는지 도로를 가로질러 가고 있다.

다시 한참을 달려 '갈평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접어 들어 진행하니 '하늘재'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다시 한참을 달려 '생달교'에서 좌측으로 접어들면 지지난 주 내려 온 '안생달마을'이 나온다. 한 쪽에 주차하고 어느새 다시 잠이 든 마눌을 깨웠다.

'한백주 양조장' 앞엔 그 댁에서 민박한 듯한 미니버스 한 대가 시동을 걸어 놓고 있고 산꾼들은 이미 대간속에 들어갔는지 두 사람만이 한백주를 사고 있다. 차 문을 열고 나오니 찬바람이 훅 하고 달려 든다. 기온을 체크하니 영하 11.5도. 아이구야!!! 갑갑해서 집에서 입지 않고 준비만 해온 고소용 내의를 꺼내 입고 안면보호대도 착용했다.

복장을 보면, 하의는 기능성 사각팬티, 고소용 내의, 무릎 엉덩이 패치된 동계바지. 상의는 파워스트레치 집티, 같은 재질의 조끼, 폴라 자켓과 그 위에 방풍 자켓을 입었다.

미적대느라 출발이 늦어 서둘러 등산화 신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데, 산에서 커다란 백구 한마리가 내려온다. 대간꾼 따라다니기로 유명한 안생달의 백구이다. 강아지라면 끔뻑 죽는 마눌, 백구를 부르니 이 녀석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 마냥 옆에 와서 들어 눕고 비비고 야단이다.


안 된다, 너 따라오면 큰일난다. 따라 나서려고 하는 배구를 집으로 들여 보낸 후 고생보따리 둘러메고 이마에 불 밝히고 서둘러 출발했다.(07:00).

         

# 쨍하게 기온 낮은 안생달 마을.

 

 

'안산다리'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우측은 아마도 배창골로 해서 황장산 우측으로 올라 가는 길인듯 하고, 대간길은 '좌측'으로 올라가야 한다.

넓은 길을 조금 오르자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마눌은 무턱대고 넓은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빽! 그 쪽 아니다, 그 쪽은 '작은 차갓재'로 가는 길이다.

좌측으로 접어 들자 길은 이내 가파른 오름으로 변한다. 등로엔 눈이 많이 쌓여 있는데 아직은 걷기 힘든 정도는 아니다. 한참을 오르자 다시 좌측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길이다.

 

송전탑 좌측으로 가는 길이려니 짐작만 하고 우측길로 가파르게 올라갔다. 지지난 주 내려 올때는 길이 험하고 가팔라 무척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심리적 영향 탓이었는지 그다지 힘들지만은 않다. 다시 송전탑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조금 올라가자 백두대장군과 지리여장군이 서 있는 '차갓재'가 나타난다.(07:22)

         

# 차갓재. 이내 날이 밝아 등불을 껐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하니 워터백의 호스가 완전히 얼어 붙어 마실 수가 없다. 이럴 것을 대비해서 호스를 네오플랜 케이스로 감았는데 추운 날씨 앞엔 허사다. 애써 메고 온 2.5리터의 물이 짐만 되려나 보다. 그래도 나중에 혹시나 싶어 물을 버리지는 못했다.

차갓재에서 작은 차갓재로 가는 길은 '816봉'을 가파르게 올랐다가 내려야 한다. 마루금에 들어서자 차가운 바람이 옷속을 파고 든다. 눈이 쌓여 있는 등로는 상당히 미끄러워서 스틱으로 지탱해야 했다. 마눌은 벌써 내리막에서 헤매기 시작한다.

                      

# 작은 차갓재 가는 길의 816봉 오름.

 

 

                      

# 작은 차갓재. 07:50

  

 

         

# 작은 차갓재에서 조금 오르자 눈에 덮인 헬기장이 나온다.

 

 

         

# 마눌은 하얀 눈위에 자기 이름을 남긴다.

 

 

지도상 작은 차갓재에서 황장산까지는 1시간을 예상하고 있는데, 해발고도를 400m나 올려야 하므로 상당히 끙끙대야 한다.

차가운 바람이 좌측 단양쪽에서 우측 문경쪽으로 능선을 타고 올라와 마루금을 걷고 있는 대간꾼의 반쪽을 칼날같이 공격한다. 바람을 맞는 왼쪽 볼이 얼얼하다. 오른쪽 볼은 이제 막 올라 온 햇살을 받아 그런대로 견딜만한데... 반쪽은 따뜻하고 반쪽은 차갑기만 하니, 이러다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아수라 백작이 되는 건 아닌지?

                      

# 미끄러운 암릉길을 조심조심 올라야 한다.

 

 

         

# 첫 번째 전망대에서 올려다 본 황장산.

 

 

         

# 아래로 안생달 마을과 멀리 지난 구간의 대미산이 조망된다. 대미(黛眉)는 검푸른 눈썹을 의미한다. 이름처럼 검푸른 눈썹같이 생겼나? 잘 모르겠다.

 

 

                      

# 두 번째 전망대. 좌측으로  우리가 가야 할 묏등바위가 보인다.

 

 

                      

# 줌인하면 이렇다.

 

 

조망이 좋은 전망대 두 개를 지나 가파르게 낑낑 오르니 잡목에 둘러싸인 암봉에 오른다. 대간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90도 꺾여서 다시 올라간다.

         

# 황장산 정상부.

 

 

이내 세 개의 로프가 매달려 있는 '암봉'에 도착했다. 아마도 이곳이 '묏등바위'인 듯하다. 첫 번째 시련이다. 긴장한 빛이 역력한 마눌을 먼저 올려 보냈다. 내가 먼저 올라가서 보조자일로 끌어 올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랬다가는 바위 실력이 평생 늘지 않을 것 같아 마눌을 먼저 올려 보내고 만에 하나 미끌어지면 아래에서 바로 받는다는 생각이었다.

암벽은 아직 얼음 코팅이 되지는 않았지만, 눈이 군데군데 얼어 있고 중간지점은 발 디딜 곳이 전혀 없다. 반쯤 올라가던 마눌은 "어머 어머"하며 바둥거리기만 한다. "발끝으로 바위를 찍어요. 그리고 틈을 찾아봐라!" "안돼, 안돼!"하면서 잡고있던 줄을 맨 오른쪽 줄로 옮겨 시도해 보더니 다시 맨 왼쪽 줄로 옮겨 본다. 하지만 줄이 문제인가?

계속 바둥거리기만 해서 더 두고 보다가는 손에 힘이 떨어져서 큰일 날 수도 있겠다. 할 수 없이 내가 맨 오른쪽 줄을 잡고 올라가 한 손으론 줄을 잡고 한손으론 마눌 발을 받쳐서 지지대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먼저 밀어 올리고 나도 따라 올라갔다.

아이구! 그렇게 겁만 많아 가지고 어떡하겠나? 걸을 땐 흘리지 않은 땀을 바위 하나 오르며 흠뻑 흘렸다.

                      

# 바위 중간에 매달려 꼼짝 못하는 마눌.

 

 

묏등바위 위에는 찬바람이 휘몰아 치고 있다. 조금 오르자 이내 다시 '암릉 구간'이 나타났다. 부봉 지나 탄항산 가는 길의 바위 횡단 구간과 흡사한 곳이다. 바위 사면을 횡단하게끔 로프가 매어져 있고 바로 아래는 아찔한 낭떠러지다.


못 지나갈 정도로 힘들지는 않지만 좀 더 얼어 붙어 미끄러울 때는 정말 위험할 것 같다. 먼저 지나가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지만 워낙 조심조심 건너 오는 바람에 오늘도 시간만 하염없이 지나간다.

                      

# 로프 암릉 구간. 미끄러지면 큰일 나겠다.

 

 

완만한 길을 잠시 오르자 햇살이 가득한 '황장산' 정상이다. 1,077.3m(09:30). 안생달에서 2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벌써 시간 지체가 심하다. 40분 이상 오버했다.

황장산 정상엔 '헬기장'이 눈에 덮혀 있고 노란 뱃속을 가진 산이란 이름표를 단 정상석이 햇살에 몸을 따스히 덥히고 있다.

황장산의 이름은 원래 '작성산(鵲城山)'이었다고 한다. 산경표나 대동여지도에도 작성산으로 적혀 있다. 황장산 북동쪽의 문안골에 지금도 작성산성의 암문이 남아있다고 하니 아마도 성의 축성이나 까치와 관련한 전설이나 유래가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자료를 찾아 보니 이 산이 황장산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조선 숙종 조에 봉산(封山) 제도를 도입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왕실에서 일체의 벌목과 개간을 금하는 봉산(封山)으로 정하면서부터 작성산이라는 이름이 황장산으로 바뀌게 되었고 왕실의 관곽(棺槨)재와 궁궐 건축에 쓰일 황장목(黃腸木)을 확보하기 위해 지정한 황장봉산(黃腸封山)이라는 보통명사가 '황장산'으로 고유명사화한 것이란다.

그런데 황장봉산으로 지정된 곳은 사실은 이곳 뿐이 아니라 전국에 수십 곳이 더 있다. 어쨌던 황장산이란 이름에 걸맞는 소나무도 안 보이고 작성산이란 이름값을 할 까치도 안보이니 그냥 유래가 그러려니만 한다.

물은 다 얼어버렸는데 다행히 1.5리터 정도 챙겨온 이온 음료는 성분이 달라서인지 아직 얼지 않아 목을 축일 수 있다. 황장산 정상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좌측은 투구봉 가는 길이고 대간길은 '우측'으로 가야 한다.

         

# 황장산 정상.

 

 

         

# 정상엔 헬기장이 있다.

 

 

황장산에서는 가파르게 내려 배창골 갈림길(안생달마을로 내려가는)을 지나 다시 감투봉을 올랐다가 아주 위험한 감투봉 내리막을 통과해야 황장재에 도달할 수 있다.

가파르고 위험한 암릉길을 이내 만났다. 다시 한번 로프를 옆구리에 매단 암릉을 만나 조심조심 통과하고 잔설로 얼어 있는 바위 날등도 조심조심 건너갔다.

'감투봉'에서 안생달에서 본 미니버스를 타고 온 단체 산행객 중 부부 한 쌍을 만났다. 아마 두 분이 제일 후미조인 듯하다.

                       

# 또 한번 바위 옆구리에 매달려 지났다.

 

 

                      

# 감투봉을 향해 바위 날등을 타고 갔다.

 

 

                   

# 이 녀석은 속이 노란 놈일까?

 

 

         

# 황장산.

 

 

                      

# 바위만 만나면 바둥바둥 거린다.

 

 

                      

# 문제의 감투봉 하산길. 이곳에서 길이 두 갈래 나뉜다.

 

 

문제의 '감투봉 하산길'이다. 지도나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없었는데, 길이 두 갈래 갈라져 있고 양쪽 다 표지기들이 붙어 있다. 지도에는 직진하게 되어 있지만, 산에서 만난 부부 두 분은 선두조에게서 좌측으로 가는 것이 좀 덜 위험하다는 연락이 왔다면서 '우회로'로 내려 간다. 직진길로 가 보니 까마득하게 로프가 매달려 있어 겁 먹게 만들어 우리도 두 분을 따라 우회로로 들어섰다.

그러나 우회로 역시 눈이 얼어 붙어 있고 경사가 급해 내려 가기가 장난이 아니다. 당연히 마눌은 한걸음 한걸음 거의 눈밭에 주저 앉다시피 하며 내려 간다. 또다시 하염없이 시간은 흐르고...

아이젠을 할까 고민을 해 보지만, 무릎에 부담갈 것을 생각해서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진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겨우 '황장재'로 내려섰다.(10:30). 또다시 30분 오버.

         

# 우회로로 내려가는 산꾼 부부.

 

 

                       

# 거의 주저앉아 내려간다.

 

 

                      

# 아주 미끄럽고 경사가 급하다.

 

 

                      

# 직진길과 합류. 사진으로는 별로이지만 아주 가파르고 위험한 곳이었다.

 

 

         

# 대간길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고사목.

 

 

         

# 선답자의 산행기에 늘 등장하던 "부딪히면 열라 아파요"라고 씌여 있던 글씨는 지워졌고, 우리 동무인 해리님이 우리를 응원의 글귀를 남겼다.

 

 

         

# 황장재.

 

 

         

# 이곳에도 해리님!

 

 

황장재를 출발해 '985봉'을 넘었다. 다시 '무명봉' 하나와 '암릉길'을 지나 '1004봉'을 치고 올랐다가 '치마바위'를 지났다. 그리고 가파르게 내려서 '폐백이재'에 이르렀다.

                      

# 985봉을 치고 올라야 한다.

 

 

                      

# 우리가 우회하여 내려온 감투봉의 가파른 내리막. 무시무시하다.

 

 

                      

# 전망바위.

 

 

         

# 전망바위에서 돌아본 감투봉, 황장산과 저 멀리 대미산.

 

 

         

# 뾰족한 모습이 특징적이어서 어디서든 구별이 쉬운 천주봉.

 

 

         

# 985봉 정상부.

 

 

                      

# 아래를 내려 보자 천길 낭떠러지다.

 

 

         

# 가야 할 대간길.

 

 

                      

# 또다시 만난 암릉길. 평상시엔 쉬운 곳인 듯 밧줄이 없는데 동계엔 얼어 붙어 힘이 든다.

 

 

                      

# 천길 낭떠러지로 된 암릉길이 이어진다.

 

 

                      

# 아예 기어서 올라 간다.

 

 

                      

# 바위틈 사이로 낑낑 올라 가기도 한다.

 

 

                      

# 1004봉 정상에 우뚝 선 황장목. 멀리서 볼 때는 멋져 보였는데 가까이 오니 잡목에 가려 좋은 그림이 안나온다.

 

 

                      

# 1004봉을 둘러 싸고 있는 치마폭.(치마바위)

 

 

                      

# 가야 할 대간길. 저 산 너머에 벌재가 있고 그 다음 산이 문복대 전 1020봉인 듯하다.

 

 

황장재에서 벌재 가는 길의 985봉, 1004봉, 치마바위 구간은 오르내림이 심하고 암릉길이 얼어 있어 힘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전망은 너무나 좋은 곳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햇살이 강렬해져서 추위도 한결 덜해졌다. 이곳 저곳 사진 찍고 기록하고 경치 구경하느라 시간이 또다시 하염없이 지체된다. 마눌은 시간이 너무 지체된다고 빨리 가자고 성화가 대단하다.

"야 이 사람아! 우리가 죽기 전에 이 경치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뭘 그리 서두르나? 천천히 구경하고 가세. 이 아름다운 산천을 눈에 마음에 가득 담아 보시게! 게다가 이곳이 '1004봉' 아닌가? 천사가 있을지도 모른다네."

경치에 빠져 등로를 벗어나 절벽 끝에 서 있는데. 한 무리의 등산객이 나타난다. 안내산악회에서 백두대간을 남진하는 사람들이다. "많이도 왔네... 우리도 그만 가세!" 같은 팀인듯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고 당연히 길 양보하는 법은 없다.

                      

# 고사목의 위용과 생명의 푸르름을 동시에 갖고 있는 소나무.

 

 

         

# 치마바위의 넓은 치마폭.

 

 

         

# 860봉 갈림길.

 

 

                      

# 폐백이재.  

 

 

치마바위를 지나 폐백이재까지 길게 내려 갔다. 중간에 '860봉 갈림길'이 나오고 대간길은 여기서 '우측'으로 90도 꺾여 내려 간다.


갈림길에는 단체 산악회 남진팀의 후발대인 듯 대여섯 분이 담배를 피우고 쉬고 있다. 몇 시에 출발했냐길래 안생달에서 7시에 출발했다고 했더니 그동안 뭘 했냐구 웃는다. 헉헉대고 쉬엄쉬엄하고 경치구경하며 왔다고 해줬다. "우리는 산 타는 실력은 없지만 대간 속에서 담배를 피지는 않습니다!"


고도를 200여 미터 내려야 하므로 가파르게 내려갔다. 동로면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폐백이재'를 지났다.(12:23). 둘산악회는 이곳에도 친절하게 안내판을 붙여 두었다.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어 온다. 내려 왔으니 다시 올라야 겠지! 무명봉 하나를 넘고 다시 가파르게 낑낑 올라갔다. 바람은 차갑고 오름은 아주 가파르다. '923봉 전망대' 위에서 사람 소리가 들린다. 낑낑 올라 갔더니 이미 떠나고 없다. 마눌은 배 고프다고 난리다. "그래, 여기서 점심 먹세!"(12:40)

         

# 조망이 끝내준다.

 

 

                      

#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아이고, 추버라~~

 

 

         

# 새벽에 휴게소에서 넣어 온 보온병 물이 미지근해졌다. 라면을 익혀 먹는 것이 아니라 불려 먹어야 했다. 그래도 차지 않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 오늘 우리는 비상시를 대비해서 옷을 많이 챙겨 오느라 막걸리 대신 미니병에 든 오가피주를 가져 왔다. 나중에  얼마나 후회스럽던지... 역시 산에서는 막걸리를 먹어야 힘이 난다. 물처럼 쉽게 얼지도 않을테고...

 

 

점심 후 13:20에 출발했다. 시간 지체가 이렇게 심하니 큰일이다. 벌재 가는 길은 당연히 단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명봉 하나를 넘고 암릉길을 계속 가다가 '928봉'을 넘어 우측으로 꺾여 내려갔다. 해발고도를 300m나 내려야 하니 당연히 길은 아주 가파르게 길다. 중간에 두 분의 산객을 만났다. 안생달에서 본 미니버스팀의 후미조인 듯하다.

눈에 덮인 헬기장이 나오고 이후는 벌재까지 계속 내리막인데 아주 가파르고 위험하다. 눈이 조금만 더 온다면 통행이 어려울 것 같다. 스틱으로 땅을 찍으며 조심조심 내려갔다. 당연히 마눌은 엉금엉금.

                      

# 벌재 전 헬기장. 뒤로 가야 할 대간 길

 

 

         

# 벌재. 저 도수로가 선답자인 이송면님이 옷 입은 채 물장구 쳤다는 도수로인 듯하다.

 

 

         

# 동로면 적성리 방향.

 

 

'벌재'엔 안생달에서 본 미니버스가 서 있고 감투봉에서 만났던 부부가 막 출발하고 있다. 아마도 중간 지원을 하는 모양이다. 따뜻한 물이나 커피, 라면 등을 끓여 주고 있다. 우리는 자기 팀이 아니라고 물 한 잔 먹으라고 하질 않는다. 커피 한 잔 했으면 딱 좋으련만...

도로 건너 맞은편 금연이라고 붙여 둔 플래카드 옆으로 진입했다. '무명봉' 하나를 가파르게 올랐다 오른 만큼 그대로 내려가니 월악농장으로 가는 임도가 나온다. 도로 따라 올라와서 이곳으로 바로 진입해도 되게끔 되어 있다. "윽, 힘들어 죽겠는데 이곳으로 그냥 올 걸..." '문복대 안내판'이 서 있다.

         

# 문복대쪽 들머리.

 

 

 

         

# 월악농장 가는 임도.

 

 

         

# 동로면 돌목(석항리)의 문복대는 원래 운봉산이었다. 등등...

 

 

 

         

# 이제 이온음료 조차 얼어서 샤베트가 되어 버렸다. 마실 수 없어 손가락으로 주워 먹어야 했다. 엄청난 강추위다.

 

 

벌재에서 문복대,옥녀봉을 거쳐 저수재까지를 지도에서는 세 시간 정도 예상하고 있다. 부지런히 가면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둘러 대간속으로 들어가 보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문제다.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면서 823봉 오름이 너무나 힘이 들었다. 벌재까지 가파르게 내려 왔으니 다시 가파르게 오르는 것은 당연한데 숨이 가쁘고 발은 천근만근이다.

마눌은 오르막에서 펄펄 나는 체질인지라 씩씩하게 잘 올라 간다.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등로엔 칼날같은 찬바람만 가득하다. 목이 말라 미치겠는데 하나 남은 얼지 않은 물을 마눌이 가져 가 버려서 먹을 수가 없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힘겹게 올라서니 '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14:48)

                      

# 823봉 오름은 아주 가파르게 치고 올라야 한다.

 

 

                      

# 산불 감시탑. 밑이 열려 있어 비상시 비박장소로 쓸 수 있다.

 

 

산불감시탑에서 마눌을 만나 물을 받아 마시니 조금 살 것 같다. 다시 '823봉'까지 올랐다가 좌측으로 90도 꺾어져 '750고지'의 '월악농장 갈림길'로 가파르게 내려서야 한다. 이곳이 아마도 '돌목재'라고 하는 곳인가 보다.

                      

# 823봉 내리막.

 

 

         

# 월악농장 갈림길(돌목재). 해발고도 750m.

 

 

월악농장 갈림길에서 다시 '1020봉'을 향해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해발고도를 300여 미터 치고 올라야 하니 너무나 힘이 든다. 등로엔 갑자기 바람의 세기가 강해져 오는 것이 소백에 가까워 오는 것이 실감난다. 칼바람이 몰아쳐 체감온도는 더욱 떨어지고 미끄러운 눈길은 지친 몸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아침에 안생달에서 재보니 기온이 영하 11.5도였는데, 지금 이곳의 체감온도는 영하 2,30도는 족히 되리라 생각된다.

낑낑 죽을 힘을 다해 오르니 아무 특징없는 '1020봉'이다. 1020봉 입구에는 운수대통님의 표지기가 걸려 있다. "홀데모 운수대통"이라고 적혀 있다. 인쇄가 잘못된 표지기를 받았다고 하시더니... "홀데모란 홀로 데모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닐까? 혼자 실없이 웃어 본다.

         

# 1020봉 정상. 칼바람이 휘몰아 친다.

 

 

1020봉에서 내리자 작은 무명봉이 하나 나오고 그 너머로 급경사 내리막이 있는 '작은 재'가 하나 나온다. 지도에는 전혀 표시가되어 있지 않은 곳이다.

나 혼자 생각에 이곳이 혹시 '문봉재'가 아닐까 짐작한다. 지도나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문봉재가 바로 문복대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문복대에는 좌우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없는데 재라고 하는 것이 어폐가 있다는 생각이다.

         

# 이름 모를 재.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다. 혼자서 이곳이 문봉재가 아닐까 짐작만 한다.

 

 

문복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칼바람이 휘몰아쳐 체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오르내림이 반복되어 더욱 지치게 만든다. 오늘 나는 무릎과 엉덩이가 패치된 동계 바지를 입었다. 다른 곳은 땀이 발산되어 문제가 없는데, 패치된 부분은 땀이 발산되지 않고 그대로 얼어 붙어 무릎에 찬수건을 하나 갖다 댄 듯한 느낌이다.

안면보호대를 하고 귀덮게가 달린 동계모자를 써서 이중으로 귀를 덮었는데도 칼바람이 귓속을 파고 든다. "음, 겨울 산행 참으로 힘들다!" '무명봉 네 개'를 넘어 어렵게 어렵게 '문복대'에 도착했다.(16:43)

문복대는 지도상의 위치와 일치하지가 않는다. 실전 백두대간의 지도에는 해발 1,040m에 문복대가 있고 1,077m에 옥녀봉이 있다고 나오는데, 문복대 정상석엔 해발 1,074m 라고 적혀 있다. 실전 백두대간은 빠른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문복대 정상석은 누군가 앞으로 옮겨 놓았다고 하더니 제자리에 얌전히 잘 올려져 있다. 그러나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위치는 조금 애매하다. 일반적인 정상과는 달리 길쭉한 등로 중간의 한발짝 물러선 자리에 쌩뚱하게 올려져 있다.

그러나 조망은 너무나 좋아서 앞쪽으로 툭 트인 시야를 제공하고 한 쪽 옆엔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도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석양에 빛나는 문복대 정상석.

 

 

그나저나 시간 지체가 심해서 큰일이다. 오늘 구간은 보너스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오늘도 이마에 불 밝혀야 할 모양이다. 지도에는 저수재까지 1시간 20분 정도를 예상하고 있는데 결국 여섯 시를 넘겨야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무명봉' 하나를 넘고 '옥녀봉'이라고 추정되는 봉우리를 넘자 멀리 저수령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후는 저수령까지 길고 먼 내리막의 연속인데 등로가 꽁꽁 얼어 있어 걷기가 아주 힘이 들었다. 아이젠을 차 볼까 생각했지만 무릎 걱정과 바쁜 마음에 그냥 가기로 했다.

오로지 스틱에만 의존하고 되도록이면 등로 옆의 밟지 않은 새눈을 밟으며 급하게 내려갔다. 한참을 정신없이 내려왔을까? 눈 밑에 숨어 있는 얼음을 밟았는지 순간적으로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엉덩이와 오른손을 동시에 짚으며 내동뎅이 쳐졌는데 오른 손목에서 "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뼈 부러지는 소리인줄 알았다.

몇 초 간을 정신을 못 차리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뭐가 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간신히 일어나 몸에 묻은 눈을 털어내고 이곳저곳 만져 보지만 부러진 곳은 없다. 엉덩이를 만져봐도 아프지를 않고 뻑하는 소리가 났던 손목도 멀쩡하다. 허허 그것 참!


마눌은 자고 일어나면 아플 것이라고 걱정을 하지만, 일단 지금 멀쩡하니 신기했다. 엉덩이 살이 많아 완충작용을 했나? - 뒷날 자고 나도 손목은 멀쩡했다. 다만 오른쪽 엉덩이만 조금 아팠다.

"조심하자. 이왕 늦은 것 쉬엄쉬엄 가자!" 더욱 조심하며 내려가자니 당연히 또 시간이 지체된다. '전망대'에 도착하고 누군가 커다란 헝겊 표지기에 저수령 1시간이라고 적어 두었다. "윽!! 지도에는 이곳에서 저수령까지 45분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저수령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빤히 보이는데 1시간이나 더 가야 된다고 한다. 다시 한참을 내려 가자니 좁고 가파른 갈림길이 있는 '재'가 하나 나온다. 이곳도 지도에는 없는 곳이다.

재를 지나 무명봉 하나를 넘어 갔다. 눈길이라 길이 잘 보이기는 하지만 얼어 있는 곳을 분간하기가 어려워 각자 이마 등불을 밝혔다. 아이젠은 끝까지 하지 않고 가 보기로 했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내려가자 구 저수령인 '장구재'에 도착한다.(17:50)

         

# 장구재. 홀대모님들의 흔적이 있다.

 

 

이왕 늦은 것 장구재에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장구재에서 홀대모님들의 흔적을 촬영하는데 카메라 배터리가 다 떨어져 버린다. 추운 날씨가 카메라를 돌게 만들어 버리는 모양이다. 보통 배터리를 한번 끼우고 오면 아무리 사진을 많이 찍어도 하루종일 사용할 수가 있는데, 오늘은 이미 두 번이나 예비 배터리로 갈았지만 벌써 완전히 방전이 되버린 것이다.


게다가 오늘 내내 카메라 역시 계속 오작동을 일으켜 세팅해둔 기능이 제멋대로 변했다. 나중에 집에서 사진을 다운받아 보니 사진이 모두 별로였다. 엄청난 강추위가 카메라를 오작동 시킨 듯하다. 

대강택시에 전화해서 30분 뒤에 만나기로 하고 간식도 먹었다. 충분히 쉬고 다시 무명봉을 치고 올라 갔다. 10여 분 가파르게 올랐다가 다시 엄청나게 미끄러운 길을 내려서 저수재까지 가야 한다. 미끄러운 하산길을 마눌이 엄청 힘들어해서 가다가 돌아서서 마눌 기다리고를 반복했다.

 

군에서 사용하는 PP선이 등로에 깔려 있어 잘못 밟으면 나뒹굴기 일쑤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듯이 묵묵히 걷다 보면 날머리는 나오기 마련이다. '저수령'. (18:20).

8시간 거리를 무려 11시간 20분이나 걸려서 도착했다. 황장산 암릉 구간에서 시간 지체가 심했고, 1004봉 주변의 경치가 너무 좋아 또 한참을 머물렀으며 문복재 오름에서 내가 헤맸고, 이후 미끄러운 내리막에서 아이젠 없이 내려 오느라 마냥 늘어진 탓이다. "허허 참! 이 놈의 솔방솔방 산행은 진부령에 내려 설 때까지 변함없으려나...?"


저수재엔 무시무시한 칼바람이 휘몰아 치고 있다. 소백산 정상에서 맞은 칼바람과 난형난제다. 택시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데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다. 저수령 표지석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바람을 피했다.

"아하! 저수재는 올라가기 가팔라 고개를 숙이고 올라 저수재도 아니고, 외적의 목을 전부 베어서 저수재도 아니고, 칼바람 때문에 저절로 목이 움추려 들고 고개가 숙여져서 저수령(低首嶺)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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