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그 스물두번째(하늘재~차갓재) 
'똘레랑스(Tolerance)'란 프랑스 말이 있다. 우리 말로 하면 '관용(寬容)'쯤으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몇 해 전 '홍세화'라는 사람이 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라는 책에서 소개되어 다시금 화제가 되었던 말이다.
그는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프랑스로 망명하여 빠리에서 택시기사로 일했고 그 경험을 책으로 남겼다. 그 책 속에 프랑스의 정신인 톨레랑스의 의미가 잘 설명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정서는 '정(情)'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이 흐르는 사회를 곧잘 강조한다. 반면 프랑스는 '똘레랑스'가 기저(基底)에 흐르고 있는 사회다.
프랑스 공원의 잔디밭에는 "출입금지" 팻말 대신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고 한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금지의 말보다는 잔디밭을 존중함으로써 스스로 존중받으라는 말로 대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프랑스 사회 전반에 내재되어 있는 똘레랑스는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尊重)'을 뜻한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적극적인 용인(容認)의 자세'가 바로 똘레랑스라 할 수 있다.
아마도 현시점에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 '똘레랑스'의 정신이고, 가장 시급하게 갖춰야 할 국민의식이 '관용'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흔히 '다르다'란 말과 '틀리다'란 말을 혼동하여 쓰곤 한다. 누군가 나와 다른 의견과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 "당신은 나와 틀려!"라고 내뱉곤 한다. "당신은 나와 생각이 달라."라고 표현해야 하는 데도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금세 죽일 놈이 되어 버리고 타도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린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TV에 나와 토론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토론은 기본적으로 상대방 의견의 경청(傾聽)이 우선이다. 먼저 상대의 의견을 경청한 후 내 의견을 발표하고 논리적 공방을 거친 후 결론에 접근하는 것이 토론의 프로세스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런 전통이 없다. 우리는 토론보다는 주장, 공격, 훈계에 익숙하다. 토론을 한답시고 마주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가는 이내 전쟁이 시작된다.
그들이 만드는 풍경은 언제나 동일하다. 토론의 기본인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인정(認定)은 금세 사라져 버리고,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공격성이 곧장 주를 이룬다. 결국 토론이 아닌 전투(戰鬪)의 시작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 성과 때문에 시끄럽다. 공격한 쪽은 MBC의 PD 수첩이다. 이 프로의 편향성이나 여론 왜곡, 조작 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황교수의 연구 성과에 대한 고발은 또 다른 문제이다.
황교수는 매스컴과 정치 권력에 의해 과도하게 영웅이 된 인물이다. 그는 유전자 조작 기술로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영웅에 대한 공격은 맹목적 추종자나 기술에 대한 희망에 부풀었던 환자의 입장에서는 모욕에 다름없다. 그들은 다시 집단을 이뤘다. 공격 대상은 그들의 영웅을 공격한 MBC다. 그 결과 해당 방송국에 대한 광고가 모두 떨어져 나갔다.
온 나라가 두 쪽으로 갈려 갈등하니 파란 기와집에 계신 분이 끼어들었다. 그는 방송국의 편이었다. 그의 집권 이래 방송은 상당 부분 그의 수족(手足)이 되었다. 매스컴은 권력자가 제일 먼저 길들이고 싶어 하는 대상이다. 충견(忠犬)에 대한 구조는 주인의 의무다. 그는 네티즌들이 '관용(寬容)'의 정신이 없는 것 같다고 코멘트하였다.
기가 찰 노릇이다. "허~ 참! 그러시는 댁은요?" "현시점 이 땅 모든 갈등(葛藤)의 원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세대간, 계층간, 지역간 대결 구도, 하다못해 대학은 서울대와 비서울대, 기업은 삼성대 비삼성, 신문은 조중동과 기타 신문, 서울에서도 강남과 비강남... 등 사회 전부를 편 가르고 적대감이 생기게 만든 사람들이 누군데...
관용이라는 것은 원래 나와 다른, 나의 非지지자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언제나 편을 갈라 자기편만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들에게 관용을 베풀라고 한다. 그들처럼 내 편에게 잘못하면 관용이 없는 것이고 다른 편에게 잘못하면 정의를 세우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은 전형적인 '불관용 - 앵똘레랑스(Intolerance)'의 태도이다.
하긴 똘레랑스의 전통이 확립된 사회라는 프랑스 조차도 최근 북아프리카 출신 이슬람 젊은이들의 차량 방화 폭동이 전국을 뒤흔들며 자신들이 그토록 내세우던 관용의 정신에 먹칠하는 것을 보면 '똘레랑스'라는 것이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기는 하다. 너나 할 것 없이 참으로 어려운 세상이다.
나는 지금 백두대간 종주 중이다. 나의 백두대간 스물두 번째 도전은 하늘재에서 출발하여 차갓재에 이르는 구간이다. 구간 거리 20여 KM로 약 열 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월악의 울퉁불퉁한 산세 살아 있는 곳이라 산행 내내 훌륭한 경치와 빼어난 산세를 즐길 수 있었다.
마눌과 둘이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종일 여러 산을 꾸준히 오르내렸다. 포암산을 넘은 후 수십 개의 봉우리를 차례로 넘고 퇴계 선생 크게 아름다운 산이라 이름 지은 대미산을 넘어 차갓재로 향했다.
그곳 내리막에서 우리는 독특한 자세로 자라는 나무 두 그루를 보았다. 수피(樹皮) 매끄럽고 하얀 나무와 거친 피부의 침엽수가 서로 몸을 꼭 기댄 채 하늘로 솟은 모습이었다. 공존(共存)이었다. 이질적 존재의 함께함이었다. 그 모습 보니 문득 '똘레랑스(寬容)'란 말이 떠올랐다.
요즘 우리 사회의 폭발 직전의 갈등상황과 그것을 바라보는 내 답답한 심정이 나무 두 그루의 공존을 보고 곧장 똘레랑스를 연상시켰던 것이다. 내 주요 관심 사항이기도 하였고.
관용은 정말 현시점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사상이다. 우리 사회 지도층은 물론이고 전 국민 모두가 한번 쯤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덕목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은 쉽지만, 그 실천은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관용하고자 하면 우선 내가 손해를 보아야 하고 내가 싫어하는 인물과 일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사실은 나도 이게 잘 안된다. 싫어하는 이와 그들의 행적을 인정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나역시 아직은 한참 멀었다...

똘레랑스(Tolerance), 관용(寬容)! 
구간 : 백두대간 제 29 소구간(하늘재 ~ 차갓재) 거리 : 구간거리(20.02 km), 누적거리(465.75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5년 11월 26일. 세부내용 : 하늘재(07:14) ~ 하늘샘 ~ 전망바위(07:38) ~ 포암산(08:27) ~ 미륵리 갈림길 ~ 838봉(08:40) ~ 미륵리 갈림길(08:57) ~ 무명봉 3개 ~ 관음재 ~ 백두산 이정표(09:28) ~ 만수봉 갈림길(09:44) ~ 938.3봉 ~ 884봉 전망대(10:04) ~ 897봉 ~ 809봉 ~ 전망대 ~ 844봉 ~ 전망대 ~ 잡목지대 ~ 너덜지대 ~ 1032봉(12:20),꾀꼬리봉 갈림길 ~ 점심식사 후 출발(13:15) ~ 1034봉 ~ 1062봉(13:40) ~ 잡목지대 ~ 가짜 부리기재(14:05) ~ 부리기재(14:17) ~ 대미산(15:04) ~ 눈물샘(15:25) ~ 1051봉,문수봉 갈림길(15:35) ~ 헬기장(15:35) ~ 낙엽송지대 ~ 새목재(16:02) ~ 920봉(16:30) ~ 급경사 ~ 981봉(16:53) ~ 923봉 ~ 폐전봇대, 묘지2기 ~ 송전탑 ~ 차갓재(17:50) ~ 안생달마을(18:02).
총 소요시간 10시간 48분.(접속구간 포함). 만보계 기준 39,000 걸음.
11월 12일. 이화령 ~ 하늘재 구간 다녀온 후 그 주엔 다시 회사 행사와 고향에서 시제가 있어 또다시 한 주를 건너 뛰어야 했다. 대간 다녀 오면 꼭 무슨 일이 생겨 한 주 쉬어야 하니, 이래 가지고 언제 강원도 길에 들어 서겠나? 그래도 마침 회사 행사가 계룡산에서 있어 갑사에서 금잔디 고개까지 산냄새는 맡을 수 있었다.
11월25일. 금요일. 한 주를 쉬었으니 이번 주는 반드시 대간에 들어 가야 되는데 비상근무란다. 12시에 업무 마감하고 퇴근하여 씻고 준비하여 출발하니 이미 새벽 1시 30분이다. 두 개의 고속도로를 냅다 밟아 괴산 휴게소에 들어서니 3시다. 조금이라도 눈 붙여야겠다, 빨리 자자!
알람소리에 눈을 뜨니 5시 30분이다. 두 시간 정도 잤나? 마음은 침낭 밖으로 나가야지 하면서도 몸은 계속 침낭 속을 파고 들기만 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먼저 일어나라고 서로 미루다가 '같이 일어나기'해서 동시에 침낭을 박차고 나갔다.
차 밖으로 나오니 찬바람이 훅~ 하고 달려든다. 온도계를 보니 영하 1.5도다. 옷 하나 더 껴입고 먹고 씻고, 가보자 하늘재로!

포암산/布岩山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962m이다. 백두대간의 주능선상에 있으며 월악산 국립공원의 가장 남쪽에 속한다. 옛날에는 이 산을 베바우산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반듯한 암벽이 키대로 늘어서 있어 거대한 베 조각을 이어 붙여놓은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희고 우뚝 솟은 바위가 삼대 즉, 지릅같이 보여서 麻骨山이라고 불렸다는 기록도 전해오고 있다. 만수계곡에서 들어가면 쌍봉의 육산처럼 보이지만 문경시 쪽에서 보면 암봉으로 보인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고 산세가 험하여 삼국시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다. 이 산 밑 고개인 하늘재는 신라시대부터 사용한 옛고개로 북방의 문화를 영남지방에 전해주던 관문이었고 지금도 성벽이 남아 있다
대미산/大美山
경북 문경읍 동로면에 위치하고 있는 산. 높이는 1,115m. 백두대간이 설악·오대·소백산을 지나서 죽령을 만들고 도솔봉(1,314m)을 지나 벌재를 만들고 다시 황장산(1,077m)을 일으키며 달려 이곳 대미산을 지나서 하늘재, 문경새재, 이화령을 두고 희양산, 속리산을 지나 멀리 백두대간의 발길을 지리산으로 돌리고 있는 곳에 아주 점잖게 편안하게 앉아 있는 대미산. 대미산은 원래 '黛眉山'으로 쓰였는데 퇴계 이황 선생이 '大美山'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멀리 소백산이 보이고 주흘, 조령, 백화, 희양, 속리산까지 보이는 시원한 전망과 산들의 모임이 좋은 곳으로 돼지골, 심마골과 충북쪽에 있는 용하구곡이 이름을 떨치고 있다. 옛날 문경새재가 있기 전에는 길이 대미산 바로 아래의 여우목과 계립령(하늘재)을 지나서 한양으로 갔다고 한다. 지금도 계립령 길을 따라 석탑과 석불이 있으며 산성이 남아 있어 사학자들의 역사연구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며, 옛길 옆에 남아 있는 석탑·석불은 무심한 나그네의 발길에 역사를 느끼게 해준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29소구간 하늘재 ~ 차갓재 개념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 IC 빠져나와 우회전, 다시 행촌삼거리에서 우회전해서 3번 국도 갈아타고 이화령터널을 지난다. 그런데 터널을 빠져 나가니 도로비를 달라고 하네? 국도에 웬 도로비? 민자 터널이어서 그렇단다. 옜소, 여기 1,300원.
엘지주유소 지나 오른쪽으로 나가서 도로 밑으로 통과 다시 우회전하여 문경읍을 관통해서 901번 지방도 타고 한참을 달리니 하늘재 방향 이정표가 나온다. 좌측으로 접어 들어 바로 다시 좌측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여기인 듯하여 좌회전하여 한참을 가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마침 부지런한 몇 분이 벌써 일 나오셔서 불을 피우고 계시길래 하늘재를 물으니 돌아나가서 조금 더 올라간 후 좌회전 하란다.
차 돌려 입구로 나가 다시 조금만 올라가니 좌측으로 하늘재를 알리는 돌비석이 보이고 한참 올라 가니 음~ 이제야 안면이 있는 길이 나온다.
문경읍 관음리. 이름답게 하늘재 오르는 길목 곳곳에 사찰이 보이고 도요지도 군데군데 있다. 뿌리 깊은 동네 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언덕을 올라가자 계립령 유허비가 나오고 서리를 하얗게 뒤집어 쓰고 있는 하늘재산장이 정겹게 서 있다.
하늘재 산장에 주차하고 간단히 몸 풀고 고생보따리 둘러멨다. 겨울산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옷가지며 방풍의며 이것저것 챙겼더니 배낭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간단한 메모 적어서 문틈에 끼우고 출발하려는데, 눈에 익은 흰색 승용차가 들어서고 하늘재 선녀님이 내린다. 오늘 단체 손님 예약이 있어 일찍 나왔다 한다. 나중 차갓재로 픽업 부탁드리고 우리는 출발했다. 벌써 7시14분이다.
# 하늘재 산장에서 바라 본 포암산. 어느새 날이 밝았다. 출발이 늦어 큰일이다. 
# 하늘재 산장. 우리 대간꾼들의 쉼터이다. 
하늘재. 우리나라 고개 중 가장 먼저 열린 곳이다. 자비(慈悲)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의 이름을 가진 관음리에서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어 57억 년 후에 세상에 출현하여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의 이름을 가진 미륵리로 넘어가는 길이니, 결국 하늘재는 현세에서 내세로 넘어가는 고개인 셈이다.
도로 포장이 되어있는 문경 관음리 쪽과는 달리 괴산 미륵리로 넘어가는 길은 아늑한 비포장 숲길이다. 이름이 가진 의미와 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하여 예사롭지가 않다. 빨간 모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급한 마음에 우측으로 급히 들머리로 들어 섰다.
잠시 오르니 폐타이어로 마감을 해 둔 '배수로'가 나오고 우측으로 능선을 타고 오르게 된다. 출발이 늦어 마음이 급해서 서두르느라 '하늘샘'을 지나쳐 버렸다. 한참 헉헉대며 올라가다 마눌더러 하늘샘 봤냐고 물으니 대답은 마찬가지. 대간길의 모든 샘물은 다 맛 보자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지나치다니... 그래도 오늘 구간엔 대미산 눈물샘이 또 있으니 빨리 가자!
# 관음세상에서 미륵세상으로 넘어가는 하늘재. 대간 들머리는 우측. 
# 성터를 따라 오르던 대간길은 좌측으로 꺾여 이내 가파르게 오른다. 광량 부족하여 사진이 흔들렸다. 
# 이내 길이 가팔라지고 암릉 구간이 나온다. 
가파른 돌길을 헉헉대며 오르자니 어느새 땀이 온몸에 가득하고, 파워 스트레치 티셔츠 한 장만 남기고 조끼와 자켓은 벗어서 배낭에 집어 넣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지 시작 단계인데 벌써 아킬레스건과 종아리가 땡기기 시작한다.
가파르게 한참을 오르니 너럭바위가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해는 이미 솟아 올라 있고 건너편으로 지난 구간의 탄항산과 주흘산이 조망된다.
# 포암산 오름의 전망바위와 기암. 
# 지난 구간의 탄항산과 주흘산이 조망된다. 
전망대를 지나 다시 한참을 오르니 드디어 능선 마루금에 이르고 포암산 3km, 하늘재 1km라고 적힌 '이정목'이 있다. 대간길은 우측으로 능선 마루금을 따라 진행된다. 마루금에는 능선을 타고 오른 찬바람이 휘몰아치지만 옷 꺼내기가 귀찮아 그냥 갔다.
20여 분 마루금을 따라 오르다 포암산을 두르고 있는 암벽지대를 만난다. 이곳이 멀리서 봤을 때 베를 짜서 둘러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잠시 오르면 '암반슬랩지대'가 나오고 쇠줄과 로프가 매달려 있다.
서리가 바위표면에 얇게 깔려 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조심조심 슬랩지대를 통과해 7, 8분 오르니 햇살이 반짝이는 '포암산 정상'이다. 해발 525m인 하늘재에서 962m인 포암산까지 올랐으니 해발고도를 437m나 높였다.(08:27)
# 산기슭을 치고 올라 능선의 마루금과 합류했다.

# 포암산의 이름을 얻게 만든 하얀 석벽. 
# 정상부 로프 구간. 
# 하얀 서리가 깔린 포암산 정상. 
포암산 정상엔 햇볕이 서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고 돌탑과 대포알을 닮은 정상석이 있다. 누군가 이 정상석을 만든 사람이 포암산의 '베 布'자에서 '대포 砲'자를 연상했는가 보다. 햇살이 피어올라 정상은 아늑한데 어느새 개스가 가득해서 조망은 제로이다. 물 마시고 아픈 발목도 주무르고 충분히 쉰 후 838봉을 향해 출발했다.
정상석 뒤쪽으로 잡목숲 사이로 대간길은 이어지고 뒤쪽에 838봉이 지척에 보인다. 등로엔 서리가 하얗게 내려 있고 햇살이 내려 비취는 곳은 서리가 녹아 미끄럽다. 잠깐 안부로 내려섰다가 조금 올라 '838봉'이다. 이를 보고 포암산이 두 개로 혹은 하나로 보인다고 하는 모양이다.
# 서리 내린 등로와 가야 할 838봉. 
# 키 낮은 산죽길이 이어진다. 
# 전망대에서 바라 본 가야 할 대간길. 
이어 길고 급한 내리막이 쭈욱 이어지며 포암산 오르며 힘들게 차고 올랐던 고도를 다 까 먹게 생겼다. 긴 내리막 끝에 '미륵리 갈림길'이 나오고 아래쪽으로도 리본이 몇 개 붙어 있다. 이곳의 등로는 낙엽이 깔린 편안한 길이다. 낙엽이 젖고 잘게 부서져있어 미끄럽질 않아 걷기가 좋다.
'무명봉'을 하나 오르고 (09:10), 대간길은 이곳을 기점으로 북동진하는데 지도와 영 매치가 안 된다. 실전 백두대간에서 예상하는 시간과 맞지도 않고 주변 지형지물과 일치하지도 않는 것 같다. 일단 주요 포스트인 1032봉까지 가 보기로 했다.
편안한 등로를 오르내려 '무명봉 세 개'를 지나고 백두산과 지리산으로 방향 표시를 해둔 '이정목'을 만난다. 백두산과 거리가 얼마이고 지리산과 거리가 얼마이다 라고 기록해 뒀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정목 아래엔 홀대모님들의 흔적이 있다.
# 미륵리 갈림길. 
# 억수리 갈림길 이정목(09:04). 아직 억수리 갈림길은 나올 때가 아닌데... 뭔가 착오가 있는 듯. 
# 낙엽이 젖고 부서져 미끄럽질 않아 편안한 길. 
# 백두산 이정목. 포암산에서 2.2km 거리. 
# 홀대모님들의 흔적. 이 두 분은 나중에 죽령에서 조우하셨다고... 
다시 가파르게 내렸다가 전방의 봉우리를 타고 오르게 된다. 아이구 힘들다 할 때쯤 대간길은 산의 사면을 따라 우회하여 바람이 쌩쌩 부는 안부에 오르고 '만수봉 갈림길'이란 사거리가 나온다.
포암산, 억수리, 대미산, 만수봉으로 갈라진다고 표시되어 있다. 실전 백두대간에서는 포암산에서 이곳까지 50분을 예상했는데, 우리는 1시간 15분이 걸렸다. 지도가 잘못되었는지, 우리가 너무 느린 건지? 딴에는 제법 속도를 낸다고 달려왔는데... # 만수봉 갈림길. 
바람이 너무 추워 금방 대미산 방향으로 이동했다. 등로는 곧바로 가파르게 오름을 치고 올라야 하고, 숨이 턱에 찰 때 쯤해서 '938.3봉'으로 추정되는 무명봉에 오르고 동쪽으로 계속 진행했다.
(10:04). '전망대'에 오르지만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고 개스가 가득 차서 전망은 전혀 없다. 기온도 급격하게 내려간다.
# 884봉 전망대. 
# 지나온 대간길, 멀리 포암산이 보인다. 뒤쪽의 산은 하늘재 건너 탄항산쯤 되려나 보다. 
전망대에서 휴식 취하고 있는데 단체 산행객들이 나타났다. 어라! 이 사람들 지난 이화령~하늘재 구간에서 만났던 대구팀이다. 포암산 오를 때 우리 뒤쪽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곳에서 만났다.
이후 1032봉까지는 길고 지루하게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897봉', '809봉', '844봉' 등 지도에 표시된 봉우리만도 세 개다. 어느덧 아침 먹은 에너지가 고갈되어 지친 몸을 이끌고, 지도상 1시간 30분을 예상하고 있는 긴 길을 진행했다. 날씨조차 어둡고 기온이 내려가 춥다.
대구팀 외에도 두 분의 대간꾼을 만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진행했다. 암릉 구간을 오르내려 '844봉 전망대'에 도착했다. 개스 탓에 전망은 별로이다. 잠시 숨만 돌리고 갔다.
# 대구팀 선두조. 
# 가야 할 대간길. 
# 산누에나방의 고치. 같은 구간 대명님의 사진에도 나온다. 
# 844봉 전망대. 역광 속의 마눌. 
# 백두대간의 멋진 옆구리. 
844봉 전망대를 지나 잠시 안부로 내렸다가 다시 가파른 암봉을 차고 올라야 한다. 암봉 중간에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이 나온다. 마눌은 우회길이 있다고 그쪽으로 가겠다 한다. 그러라고 하고 암봉을 붙잡고 올랐다가 다시 암봉를 타고 내린다. 만만치 않은 길이라 마눌 올라오지 않은 게 잘했다 싶은데 마눌이 보이질 않는다.
산에서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별 수 있나?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큰소리로 부르니 저 아래쪽에서 대답이 들린다. 하산길로 내려가고 있는 듯하다. 다시 돌아 오라고 하고 한참 기다리니 그제서야 나타난다. "이 사람아! 잔머리는 않되는 거요. 정석대로 갑시다. 그리고 길이 이상하다 싶으면 멈춰 서야지, 계속가면 어떡하나?"
다시 진행하니 이번에는 '로프 하산길'이 나온다. 암릉의 사면을 따라 비스듬하게 줄을 잡고 내려가면 되는데, 줄이 팽팽하지 않고 느슨하게 매여 있어 마눌은 중간에서 바둥대기만 하고 내려 오질 못한다. 겁이 어찌나 많은지 로프구간이나 내리막에서는 매 번 이렇게 헤맨다. 등산학교에 보내 기초적인 암벽공부라도 시켜야 될려나?
# 로프 하산 구간. 대구 산꾼. 
이후 1032봉까지는 길고 힘든 구간이다. 잡목지대 사이로 난 길을 헉헉대며 오른다. 에너지가 고갈되어선지 갈수록 다리는 무거워지고 숨은 턱에 찬다.
오름을 한참을 올라 정상인 듯 보이는 곳을 올랐지만 아쉽게도 정상은 아니고 마루금을 따라 계속 진행하다가 다시 차고 올라야 한다. 지도상에 '너덜지대'라고 표시되어 있는 무너진 '성터'를 지나 죽을 힘을 다해 오르니 '1032봉'이다.(12:20).
# 무너진 성터를 따라 힘들게 오른다. 
# 빈틈 없이 짜맞춘 성벽. 돌을 다루는 기술이 마추비추의 성벽에 못지 않을 듯. 
# 반가운 둘산악회의 표지기와 오늘 처음 만난 원주멋쟁이님의 표지기. 
# 표언복교수의 표지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누군가 주워서 나뭇가지에 끼워뒀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꾀꼬리봉'으로 갈라진다. 꾀꼬리봉은 이름이 참 재미있다. 1032봉을 지나 잠시 진행해 보지만 너무 힘들어 더 이상은 무리다. 마루금 안쪽으로 조금 내려가서 낙엽 푹신하고 햇볕 따뜻한 곳에 자리 깔고 점심상을 차렸다. 오늘은 그동안 먹던 삼각김밥 대신 보온도시락에 밥을 담아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도시락을 기대했지만 밥을 담은 지 12시간이 넘어서인지 미지근할 따름이다. 그래도 차가운 김밥보다는 훨씬 낫다.
막걸리 따서 사방에 고수레 하고 그 만큼의 감식초 섞어 돌마당 심사장님에게 배운 감식초 칵테일을 만들었다. 마침 지나가는 분들이 계셔서 한 잔씩 권해 드렸더니 맛있게 드신다. 사이 사이 지나는 세 분에게 막걸리 권해드리고 나도 먹고 허허하하 했더니 점심시간이 길어져 한 시간이나 소비해 버렸다. 큰일났다, 빨리 가자!(13:15)
# 산상만찬. 
점심 먹고 1시간이나 푹 쉰 후 다음 포스트인 부리기재를 향해 출발했다. 잡목지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다시 가파르게 올라 가는데 식사 직후라 그런지 영 힘이 많이 든다. '1034봉'을 지나 힘들게 올라서니 삼각점이 있는 '1062봉'이다.(13:40). 1,000m가 넘는 산이지만 이름도 얻지 못하고 볼품없이 있는 것이 안쓰럽다.
1062봉에서 한숨 돌리고 부리기재를 향해 나섰다. 이후 대간길은 길고 가파르게 계속 내려갔다. 또 얼마나 올라 가려고 이렇게 계속 내려가는가? 고개 들어 앞을 보니 멀리 대미산이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다.
길게 내려 좌우로 내려가는 길이 선명한 재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곳은 부리기재가 아니다.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선답자들의 종주기에 '가짜 부리기재'로 나온다.
가짜 부리기재에서 무명봉 하나를 더 넘고 10여 분 더 가야 '부리기재'다.(14:17) 표언복 교수는 1062봉에서 45분을 예상했는데 우리는 1시간이 걸렸다. 허허~ 참!
# 잡목숲 사이 1062봉 가는 길. 
# 삼각점만 있는 1062봉. 
# 1062봉 앞에 모습을 드러낸 대미산. 
# 고개의 느낌이 훨씬 더 나는 가짜 부리기재. 
# 부리기재. 도깨비님이 이곳을 지나면서 글씨를 짙게 덧칠했다는데 벌써 희미해졌다. 
대미산 오르는 길은 가파르거나 험하지는 않지만, 길고 멀어 지친 나는 여전히 힘이 들었다. 다른 때 같으면 이 시간쯤이면 체력이 다시 회복되는데, 오늘은 계속 힘들기만 하고 회복이 되질 않는다. 반면 마눌은 요즘 동네 친구들과 수리산 산행을 계속 해 오더니 오늘은 컨디션이 계속 좋다. 지금쯤 무릎이 아프다고 해야 할 시간인데, 끄떡없다면서 휭 내달려 버린다. 혼자서 40여 분 낑낑대며 대미산을 차고 오른다. 평소에 운동 좀 해야지! 오늘도 생각만 하면서... 술 줄여야지! 역시 생각만 하면서...
까마귀 한마리 이런 내 모습을 보곤 가까이 다가와 까악까악 기분 나쁘게 울어댄다. 저리 가! 이놈아! 침 세 번 뱉어 재수 없는 걸 방지하고. 헉헉 오르니 벌써 도착한 마눌 남진하는 산꾼 두 분과 사과를 나눠 먹고 있다.(15:04)
# 대미산 정상도 쉽게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 몇 단계 거치게 만든다. 
# 대미산 정상. 넓찍한 공터가 있다. 정상석 글씨를 멋지게 전각하였다. 
'대미산'은 원래 한자로 '黛眉山'으로 표기되었다는데, 이퇴계 선생이 지금의 '大美山'으로 바꿨다고 한다. 한자 지식이 전혀 없지는 않는데, '黛'자는 처음 보는 것이다. 옥편에 찾아보니 '눈썹먹 대, 산 검푸를 대'라고 적혀 있다. 활용 예로는 綠黛(녹대 ; 푸른 눈썹먹 혹은 여름 산의 푸른 모양)가 있다.
결국 대미산이 짙은 눈썹처럼 길고 단아하고 짙푸른 산이란 뜻인가 보다. 퇴계 선생이 알고 일부러 바꾼 것인지 실수로 바꾼 것인지는 몰라도 원래 이름이 훨씬 의미있고 정감이 간다.
대미산 정상에서는 정면과 좌측으로 길이 갈라지고 표지기도 양쪽 다 붙어 있다. 가야 할 대간길은 '좌측'이고 정면으로 가는 길은 '여우목고개'에 이르는 길이다. 여우목고개는 여우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고도 하고 고개가 여우목처럼 생겨서 얻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여우목고개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이라 동절기에 상당히 미끄럽고 위험하다고 하늘재산장 나무꾼이 알려 주셨는데, 철수할 때 넘다보니 가톨릭성지가 있었다.
# 대미산 정면으로 나가서 여우목고개로 가는 1040봉과 1039봉. 대간길로 착각하기 쉽고 산세가 아주 보기 좋다. 
오늘 구간은 비교적 쉽다고 예상해서 출발도 늦었고 중간에 너무 푹 쉬는 바람에 이제부터는 마음이 급해진다. 어두워지기 전에 안생달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대미산에서 눈물샘으로 가는 길은 편안하고 쉬운 내리막이다. 10여 분 편안하게 걸어 내려 '눈물샘 갈림길'에 도착했다. 눈물샘은 이곳에서 70m 아래에 있다고 한다.
눈물샘은 눈썹 닮은 대미산 눈썹 아래에서 솟아나 눈물샘이란 이름을 얻었다. 아침에 하늘샘을 모르고 지나쳐 버렸기에 눈물샘은 꼭 맛보자고 했는데, 중간에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다녀 오려면 15분 정도는 깨질 것 같은데, 오늘은 그냥 가고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눈물 없는 이 세상. 대미산 눈물샘의 눈물 한 그릇 마시고 날 위해서 만이 아니라 남을 위해 울 줄도 아는 인간다운 감성을 얻고자 했는데, 아무래도 당분간은 계속 냉혹한 소시민으로 계속 살아야 하는가 보다.
# 눈물샘 가는 길. 
눈물샘 갈림길을 지나 길고 완만하게 오르자 '문수봉 갈림길'이 나온다.(15:35). 이정목은 황장산까지 4시간을 예상하고 있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급하게 꺾이자 바로 잘 가꿔진 '헬기장'이 나온다.
이곳이 초은님이 지난 번에 만났다는 29살 순천 처자가 홀로 일시 종주하면서 야영한 곳이다.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도 파고 들지 않는 것이 야영하기에는 딱인 곳이다. 마눌에게 일시 종주하는 아가씨 얘기를 해줬더니 혀를 내두른다.
아늑한 헬기장을 보고 그 아가씨의 용기와 의지를 생각하자 가슴 속 저 아래에서 나도 한번 일시 종주에 도전해 보자는 욕망이 꿈틀꿈틀 일어난다. 음~~ 안된다. 낚시는 언제 할려고....
# 문수봉 갈림길. 바로 우측에 헬기장이 있다. 
'헬기장'을 지나 새목재까지는 끝없이 긴 내리막이다. 1,051m에서 826.4m까지 내려가야 하니 220여m 가량 해발고도를 낮춰 내려가야 한다.
밤새 얼었던 등로가 햇살에 녹아 질척거려 아주 미끄럽다. 한순간 발목이 삐끗 젖혀지며 오른쪽 발목이 무지 아프다. 진흙을 듬뿍 뒤집어 쓰고 있는 바위를 밟아 발목이 젖혀진 모양이다. 심하게 젖혀지진 않았는지 좀 주물렀더니 금방 괜찮아진다.
조심조심 내리막을 내려오자 '낙엽송 지대'가 나타난다. 낙엽송은 성장이 빨라 우리나라 조림사업 초창기에 집중적으로 심어졌다. 그러나 빨리 자라는 만큼 목재가 물러 경제성이 없고 뿌리가 얕아 강풍이나 산사태 등에 약해서 뿌리채 뽑히기가 일쑤다.
몇 해 전 강원도 지방의 홍수 피해가 뿌리채 뽑힌 낙엽송이 계곡이나 다리를 가로막아 물길이 막혀 더욱 심해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곳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중간중간에 뿌리채 뽑혀 대간길을 가로막고 있는 낙엽송이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니 나무 아래를 통과하자면 자연히 허리를 숙이고 대간을 향해 절을 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 연출된다.
나중엔 가지를 벌리고 누워 대간길을 가로막고 있는 사스레나무 사이도 지나야 한다. 허리 숙여 지나면서 산신령님 저 지나갑니다! 속으로 인사하고 가다보니 '새목재'에 이른다.(16:02)
# 낙엽송 군락지. 
# 새목재. 우측으로 생달리, 좌측으로 명전리로 탈출 가능하다. 
이제 차갓재 까지는 920봉, 981봉, 923봉 등 세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실전 백두대간에서는 아직도 1시간 50분이나 남았다고 예상했다. 그럼 결국 막판엔 다시 이마에 등불 밝혀야 할 모양이다.
920봉을 향해 완만한 오름을 오르는데, 등로 우측에 서로 종류가 다른 아름드리 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몸을 붙이고 자라고 있다. 한 그루는 소나무 계통이고, 한 그루는 호두나무처럼 매끈한 피부를 가졌는데 종류는 알 수 없다.
숲이 생성되어가는 과정에서 나무들은 종류별로 혹은 같은 종끼리도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인 끝에 현재의 식생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현재도 서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서로 종류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나란히 똑같은 몸집과 높이로 사이좋게 몸을 붙인 채 살아가고 있다. 뿌리 쪽은 아예 서로 엉켜 합체가 된 듯하다.
서로 대등한 힘의 균형이 이뤄져서 이렇게 자란 건지, 관용없는 우리 사회의 썩은 인간들을 향해 똘레랑스의 의미를 전해주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이날 내내 '똘레랑스'란 단어가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920봉'을 넘어 잠시 안부로 내렸다가 대간길은 981봉을 향해 급하게 치고 올라 간다. 지도에도 이 구간을 '급경사 지역'으로 표시해 두었다. 체력 남은 마눌은 앞서 가버리고 나도 마지막 힘을 끌어 올려보았다. '981봉'은 2단으로 되어 있다. 봉우리 하나가 나타나 정상인가 열심히 올라 가 보지만, 정상은 그 너머에 다시 솟아 있다. (16:53) '981봉'에 도착했다.
# 서로 몸을 붙이고 사이좋게 자란 나무들. 어느 한쪽으로 힘의 균형이 깨지지 않고 오랜 세월 공존하였다. 
# 잡목숲 사이로 완만하게 오르다 갑자기 경사가 급해진다. 
# 찬바람 가득한 981봉. 
981봉에서 다시 가파르게 내려갔다. 잠시 진행하자 백두대간 '남한 구간 중간지점 안내판'이 나온다. 포항 셀파산장의 측정거리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우리는 소백 두 구간을 이미 마쳤으니 절반에서 좀 더 진행한 셈이다. 부지런히 걸어 걸어 진부령 표지석을 껴안아야 할텐데...
# 백두대간 중간지점 안내판. 
머리 뒤쪽이 따뜻해져서 돌아보니 지나온 봉우리 마루금 너머로 오늘의 태양이 마지막 빛을 모아 비춰주며 넘어가고 있다. 마눌은 저거 안찍어요? 물어보지만 급하다 빨리 가자!
'923봉'을 지나면서 차갓재까지는 45분 동안 길게 이어지는 하산길이다. 잘 가꿔진 낙엽송지대를 통해 등로는 길게 내려가고 아픈 다리를 참고 속도를 높였다. 이미 등로엔 어둑어둑 어둠이 깔려 오지만 일단 차갓재까지 등불없이 가 보기로 했다. 둘이서 말도 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니 양지바른 완만한 내리막에 '묘지' 두 기가 나타나고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콘크리트 폐 전봇대가 나타난다.
다시 언덕 하나를 넘어 한참 가니 거대한 '송전탑'이 나타났다. 송전탑 오른쪽으로 표지기가 잔뜩 붙어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쪽으로 하산한 모양이다. 그러나 진짜 차갓재는 여기서 조금 더 진행해야 한다.
작은 언덕 하나를 넘어 가자 '백두대장군'과 '지리여장군'이 주렁주렁 매달린 표지기를 끈으로 묶어 서로 연결하고 있다. 드디어 '차갓재'이다.(17:50). 하늘재에서 10시간 36분 걸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솔방솔방 걸음걸이였다.
# 차갓재 장승과 백두대간 중간 표지석. 
이제부터는 안생달 마을로 탈출해야 한다. 사위는 완전히 어두워져서 할수 없이 각기 이마에 등불 달고 하산했다. 등불이 밝으니 어두운 산속이 전혀 두렵지 않다.
잠시 내려오니 송전탑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고 한참을 내려가도 마을 불빛이 보이질 않는다. 마눌의 걱정소리는 높아지는데 불빛은 보이지 않고 길은 험하고 가파르게 아래로 이어졌다.
이거 다음 번에 이 길로 올라 가려면 장난이 아니겠는데? 속리 구간 갈령에서 갈령삼거리로 올라가는 구간과 흡사하다는 생각이다. 10여 분 내려가니 드디어 멀리 마을의 불빛이 보이고 길도 넓어졌다. 다리를 지나 마을로 들어서자 하늘재 나무꾼이 막 도착하여 차문을 열어준다. 안생달 마을. (18:02)
# 다시 찾은 하늘재 산장. 
하늘재 산장엔 단체 손님들로 왁자지끌하고 마침 한쪽에 남은 자리가 있어 짐 풀고 식사를 했다. 지난 번에는 닭백숙이더니 오늘은 닭개장이다. 메뉴 선택을 맘대로 못하게 했다고 하늘재선녀 제육볶음도 한 접시, 생배추잎도 한 접시 주었다. 정신없이 먹어 치우고 모든 그릇의 바닥을 확인하고 나니 이제야 주변 사물이 눈에 들어 온다. 사람이 이렇게 일차적이서는 안 돼는데...
바람벽 빈자리에 이름 하나 남기고 하늘재 산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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