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그 서른번째(원방재~백봉령) 
왜인(倭人) 고토 분지로(小藤 文次郞)에 의해 확립된 우리 땅 산맥 분류 대신 우리 전통 지리관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는 개념이 산악인 사이에 일반화된 이후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 멀고도 험한 여정(旅程)에 몸을 내던졌다. 대학 산악부나 일반 산악회의 단체종주, 서너 명으로 구성된 팀종주, 단독종주, 연속종주, 구간종주, 안내종주 등등...
그동안 1년 넘게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진행해 오면서 대간 속에서 참 다양한 형태의 종주자들을 만났다. 홀로 산더미 같은 등짐을 짊어진 연속종주 산꾼에서부터 부부나 친구끼리, 혹은 산악회 단위의 그룹까지...
그들은 모두 나름의 이유와 여건에 맞춘 여러 형태의 종주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저마다의 여건과 사연이 있는 방식이니 제각각 그만큼의 장단점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기꺼이 감수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백두대간의 종주길에서 만났던 여러 종류의 산꾼들이 취하는 다양한 종주 방식 중에서 이것은 정말 아니다 싶고 나하고는 체질상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수십 명이 단체를 이뤄 관광버스 몇 대로 몰려다니는 방식이다. 단체로 가는 안내 산행의 경우 적은 비용으로 대간에 접근할 수 있고, 가이드가 있으니 따로 구간 공부가 필요 없는 등 장점이 많은 방식이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새벽 한두 시 경에 산행을 시작해서 캄캄한 어둠 속에 앞사람 발뒤꿈치만 보며 끙끙 내달리다 점심 무렵이면 이미 그날 구간을 종료해 버린다. 물론 산행 일정을 진행하는 입장에서 인원 관리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지만...
안내 산행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단체 산행의 특성상 준비가 덜 된 이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으니 기본(基本)이 부족한 이들이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개중엔 산에서 담배 피운 후 꽁초를 마구 버리고, (작년 여름 어느 구간에선 단체산행객들이 지나간 자리에 동일한 담배 꽁초가 약 30분 간격으로 계속 버려져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쉴 때마다 한 대씩 피웠다는 말이다. 가물어 온 산하가 바짝 마른 산방기간에 산악회 뺏지 단 몇 사람이 둘러서서 담배 피우는 것을 본 적도 많다.) 다른 사람 배려 없이 마구 고함지르고 좁은 등로를 점령하고 심지어 정상에 둘러앉아 밥 먹느라 정상석 사진 찍을 기회마저 주지 않기도 한다.
무엇보다 밤중에 그렇게 내달려서 도대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낄까 싶은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결국, 그들에게 이 백두대간은 체력 단련이나 대간 종주라는 남들 하지 않는 어떤 도전의 대상일 뿐이란 느낌이다.
백두대간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고, 제각각 그 이름은 어떤 연유로 갖게 되었으며, 그 산자락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 뭐 이런 것은 관심 밖인 것이다. 물론 안내산악회 모두가 그러하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고, 홀로 대간꾼 중에 산에서 담배 피우고 쓰레기 버리는 사람 없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홀로 산을 다닐 수 없는 사정도 있을 수 있고, 단체 산행을 하면서 얻는 장점 역시 얼마든지 많다는 사실도 잘 알지만, 다만 내가 추구하는 산행 방식과는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애초에 단체 산행은 관심 밖이지만, 그런저런 이유 때문에 되도록이면 야간 산행은 하지 말고, 봐야 될 것은 다 보고, 느껴야 할 것은 다 느끼면서 마눌과 둘이서 솔방솔방 백두대간 종주를 하자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스스로 제일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밤중에 아무 생각 없이 내달리기'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순간이 왔다. 댓재 너머 백봉령에서 일이다.
 앓던 이 빼다!

구간 : 백두대간 제 42 소구간 일부(원방재 ~ 백봉령) 거리 : 구간거리(10.09 km), 누적거리(617.76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6년 6월 3일. 세부내용 : 백봉령(18:40) ~ 전망대(18:48) ~ 무명봉1,2 ~ 832봉 ~ 하얀차돌/무명봉(19:37) ~ 987.2봉/공터(19:58) ~ 전망대(20:11) ~ 잡목지대 ~ 1022봉(20:37) ~ 소나무 쉼터 ~ 전망대(21:05) ~ 원방재(21:20) ~ 임도 통해 부수베리 가목1교까지 탈출(30분).
총 소요시간 2시간 40분(접속 30분 미포함). 만보계 기준 17,990보.
백두대간 여러 구간들 중 어느 한 구간 만만한 구간이 없지만, 이곳 댓재~백봉령 구간은 우리에겐 '마(魔)의 구간'으로 남아 있었다.
댓재 ~ 백봉령 구간은 29.1km로 백두대간 구간 중 길이가 가장 길 뿐만 아니라 두타산, 청옥산, 고적대, 갈미봉, 상월산 등 높은 봉우리들이 줄줄이 나타나고, 무엇보다 전 구간을 걸쳐 모든 봉우리들이 올라간 만큼 반드시 그대로 떨어져 내려 그 기막힌 오르내림으로 사람의 진을 빼놓는 구간이다.
2월 26일 댓재에 내려 선 이후,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밀어 닥쳐 두 달 정도 대간길을 이어가지 못하다가 4월 23일에야 백봉령을 바라보며 댓재를 출발했었다. 그 전날 삼척 찜질방에서 잠 한숨 못 자고, 새벽부터 삼척 택시기사에게 바가지 쓰고 짜증나기도 하고...
게다가 마눌이 출발 두 시간 만에 컨디션 난조로 고구나 종주를 포기하고 댓재로 원위치 해버리고, 나는 원방재에서 강풍과 폭우를 만나 산행을 중단하고 탈출해야만 했었다.
그래서 우리처럼 부부 대간꾼인 '해리 님'에게 부탁해서 두 분 가실 때 마눌도 같이 그 구간을 진행하고, 나는 원방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머지 구간을 같이 하기로 했다. 그러면 산행 후 차량 회수도 쉬우니 산행 후 동해에서 뒤풀이도 하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같이 가기로 약속한 5월엔 꼭 주말이면 비가 쏟아져서 대간길을 방해한다. 몇 주를 그냥 허비했다. 그러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회사 행사가 있어 내가 같이 산행 시작할 수도 없는 6월 첫 주말에 강행하기로 했다.
6월 2일 쇠의 날 오후. 해리 님 부부와 마눌 세 사람은 댓재를 향해 출발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혼자서 집을 지키는 날이다. 마눌도 없겠다 신나게 술 한 잔하고 찐하게 놀면서 해방감을 만끽했으면 좋으련만, 마침 임플란트를 해 넣는 수술을 받은 직후라 조신하게 집을 지켜야 했다.
아깝다!!!

백봉령/百福嶺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에 '白茯嶺'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백복령(780m)은 42번 국도가 포장되면서 위치가 변경되었다. 20여 년 전의 지도에는 백복령(百伏嶺, 백복은 온갖 것이 수그린다는 뜻이다)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85년에 간행된 三陟郡誌에는 '백복령(百福嶺, 옛 명칭은 希福峴, 일명 白茯, 또는 白鳳이라고도 하는데...(중략)... 높고 험악하여 해발 922m이다' 라고 되어 있다. 어쨌던 백두대간보전회는 어감에도 좋지않은 '백복령'보다는 주민 정서에도 좋고 <택리지>에 근거가 있는 흰봉황의 뜻인 백봉령(白鳳嶺)으로 부르기를 홍보하고 있다. 백봉령의 이정표에 '780m'라는 높이는 42번 국도가 새로 포장되면서 정정된 것이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42 소구간 일부, 원방재 ~ 백봉령 개념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2006년 6월 3일 흙의 날. 이 날은 회사 주최 가요제가 있는 날이다. 모두들 어디에 그 끼를 숨겨 놓고 있었는지 대단한 재주들을 발휘했다. 나도 옛날엔 한 끼 한다는 소리 많이 들었는데... ^^*
부천에서 행사 마치고 수고한 직원들 밥 한 그릇 사 먹이고 나니까 이미 오후 3시다. 토요일 오후라 영동고속도로가 많이 막힐텐데 걱정이다. 교통 정보 확인하니 영동고속도로는 이미 트래픽이 시작되었다.
# 부천에서 신호대기하는데 아파트 공사장 담벼락에 이런 시가 붙어 있다. 저런 감성을 가진 회사가 지은 집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든다. '폴 발레리'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 겠다!"

부천에서 외곽순환도로에 차를 올려 내쳐 하남까지 내 달리다, 중부고속도로로 갈아타고 호법분기점까지 내려갔다. 호법에서 다시 영동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잠시 진행하니 여주 부근에서 막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2~30분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다시 속도를 회복하여 달렸다. 마음이 급해 요리조리 곡예 운전에 과속운전에 위험천만하게 내달렸다.
일단 6시까지 백봉령에 도착해 보자는 생각이다. 원래 계획은 해리님 부부, 마눌, 새벽에 합류한 용또산님 등 네 사람은 토욜날 산행을 마치고 나는 뒷날 일욜날에 동해시 서학동에서 임도 타고 원방재로 올라가서 자투리 구간을 마무리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늘 산행 마치고 나면 모두들 동해에 내려가서 뒷풀이를 해야 할 것이고, 아침 일찍 나 혼자 산으로 들어가서 짜투리 산행을 한다는 것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6시까지만 백봉령에 도착한다면 백봉령에서 남진하여 원방재로 내려가다가 원방재 근처에서 북진하는 팀들과 만날 수 있겠다는 계산이다.
원주를 벗어나자 차량이 줄어들어 마음껏 속도를 올릴 수 있고, 강릉에서 동해고속도로로 갈아 타고 옥계나들목까지 비행기 모드로 날아갔다. 그러나 옥계에서 백봉령 올라가는 길은 꼬불꼬불 구절양장이라 속도를 낼 수가 없어 결국 6시 30분이 되어서야 백봉령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 2개월 만에 다시 찾은 백봉령.

# 백봉령 쉼터에 주차하고... 
백봉령에 주차하고 잠시 고민했다. '실전 백두대간'에서는 원방재~백봉령구간을 3시간 25분 걸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 6시 30분이니까 10시가 되어서야 원방재에 내려 설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부수베리로 탈출하는데 1시간이 걸리니까 결국 11시가 되어야 산행을 마치고 합류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어떡하나? 그냥 책 보고 기다리다가 나 혼자 내일 아침에 산행을 할까, 아니면 늦게 끝날 것 각오하고 그냥 강행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구간이 짧으니까 빠른 걸음으로 내달려 보자. 내 비록 산 타는 실력은 없지만 이 정도 거리는 뛰면서 갈 수 있을 거다.
물 한 병만 들고 뛸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대간길인데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보따리 챙겨 둘러메고 백봉령 들머리로 들어 섰다. 18:40
# 백봉령 날머리이자 오늘은 들머리.

숲으로 들어가면 순하게 시작되다가 곧바로 경사가 급해진다. 통나무 계단길을 한바탕 치고 올라가니 '무명봉 전망대'가 나온다. 18:48
나무로 목책을 만들어 두었고 벤치가 만들어져 있다. 돌아보니 석회석 채취를 위해 산을 완전히 깍아 먹어버린 자병산의 흉물스런 모습이 건너다보인다. 목책의 난간에 누군가 "멧돼지 잡아 주세요" 라고 적어 두었다. 멧돼지 때문에 곤욕을 치른 사람이 있나보다.
# 첫 번째 전망대

# 자병산. 생활의 편의냐 자연보호냐의 딜레마를 보여 주고 있다. 
전망대를 나와 길게 내려갔다. 다시 작은 오르내림을 두 번하여 무명봉 두 개를 지나고, 한바탕 올라갔다. 잠시 후 '832봉'을 오른다.
832봉을 내렸다가 우측으로 꺾여 길게 올라 무명봉을 오른다. 마음이 급하다. 씩씩대며 길게 올라 '무명봉'을 지나자 내리막은 통나무 계단으로 이뤄져 있다. 길게 길게 계단을 뛰어 내려 가는데 맞은 편에서 사람소리가 들린다.
숲속에 숨어 있다가 놀래켜 줄까 생각하지만, 이미 그들도 내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해리님 부부, 용또산님, 마눌과 계단에서 반갑게 해후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몸 상태 확인하니 모두들 건강하고 씽씽해 보인다. 마눌은 맨날 퉁명스런 남편하고 둘이서만 대간길을 진행해 오다가 처음으로 다른 이들과 같이 산행해서인지 기분이 많이 업되어 있다. 힘들고 어려운 구간을 함께 하면서 그 고통 함께 나눈 산꾼들의 끈끈한 情 앞에 가슴을 연 모양이다.
힘들고 긴 구간을 걸어온 그들은 오히려 원방재까지 남진해야 할 나를 걱정한다. 하긴 그들은 어쨌든 무리이고 난 홀로이니...
앞으로 빡쎈 오름 두 개와 작은 오름 두 개만 남아 있다고 얘기해 주고, 댓재에 있는 소주한잔님 택배해서 동해에 가 있고, 마눌은 부수베리 임도 철망으로 막아 둔 곳까지 원방재에서 탈출하는 날 데리러 오라고 말해주었다.
해리님은 빨라야 10시에 그곳까지 올 수 있을 거라 하고 나는 9시 30분이면 충분하니 그 시각까지 오라고 해주고 서로 남으로 북으로 갈라졌다. 19:25. 광량이 부족한 숲속이라 사진이 흔들려서 대간길 첫 조우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다.
통나무 계단길을 길게 내려 안부에 이르고 다시 길게 올라가니 이정목이 서 있다. 백봉령에서 2.4km를 왔고, 앞으로 원방재까지 4.69km를 더 가야 한다. 4.69km면 2시간 30분은 더 가야 할 텐데... 그렇다면 10시가 넘는구나...
# 이정목의 기록으로는 아직 4.69km를 더 가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숲속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오고 있다. 일단 등불 꺼내서 이마에 달고 아직 불은 켜지 않고 갔다. 한바탕 길게 치고 올라가니 '하얀 차돌이 있는 무명봉'이 나온다. 19:37
차돌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 기록에는 없는 모양이다. 잠시 내렸다가 다시 가파르게 낑낑 올라가니 '삼각점과 공터가 있는 무명봉'이 나온다. 19:58
# 1022봉 공터로 착각한 987.2봉, 어느새 어두워져서 플래쉬를 터뜨려야 사진이 찍힌다.

공터가 있다면 1022봉인데... 지도 확인해보니 1022봉 전에 전망대와 잡목지대가 나온다는데 아직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고도계 확인해보니 1,000m를 가리키고 있지만 출발할때 셋팅을 하지 않아서 그 높이를 믿을 수가 없다. 이곳이 1022봉이면 참 좋겠다, 그렇다면 한 번의 오르막과 이후 줄곧 내리막만 남았으니...
공터를 벗어나 숲속으로 들어가며 이마 등불을 켰다. 여름이 되어가면서 해가 길어져서 이렇게 늦게까지 산행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가파르게 길게 내려 가다가 다시 마루금을 길게 간다. 그러다 다시 돌계단을 끝도 없이 내리게 된다. 무릎때문에 평소에 내리막, 특히 계단길은 극도로 조심하며 스틱에 의지하여 내려가는데, 오늘은 그냥 막 내 달려 버렸다.
한참 달려가자 우측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우측길로 가 보니 한순간 앞이 툭 트이며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20:11
# 바위전망대에서 올려다 본 1022봉의 위용.

전망대가 이제서야 나온다면 좀 전의 봉우리는 1022봉이 아니라 '987.2봉'이다. 그러면 그렇지 대간이 어떻게 만만하게 끝을 보여 줄 것인가?
전망대에서는 찬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 준다. 고개 드니 전방에 1022봉이 떡 버티고 서 있다. 아이구야 저 높이를 올라 가야 하는구나!!! 우측 군대마을 쪽에서 간헐적으로 빵빵 총소리가 들린다. 그 쪽에 군부대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누군가 밀렵을 하고 있나?
전망대를 벗어나자 다시 대간길과 합루하고, 다시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987.2봉에서 고도를 100m 넘게 까먹은 후에야 안부에 도달했다.
안부에서 1022봉을 향해 오르는 길은 아주 가파른 오름이다. 지금까지 계속 뛰다시피해서 달려왔는데 이곳에서는 속도가 뚝 떨어져서 엉금엉금 기다시피해서 올라갔다. 캄캄한 숲속에 오로지 내 숨소리만 헉헉 헉헉 울리는데, 갑자기 좌측 숲속에서 컹컹 하는 짐승 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아마도 고라니나 노루의 울음소리인 듯하지만 신경이 많이 쓰였다.
한번 짐승의 소리에 신경이 쓰이고 난 뒤부터는 여러 소리들이 들려 오기 시작한다. 작은 짐승들이 숲속을 내 달리는 소리, 컹컹 하는 고라니의 울음소리, 멧돼지인 듯 씨익씨익 하는 콧김소리 등등...
순간순간 등골이 오싹해진다. 내 다시는 홀로 야간 산행을 하지 않으리! 도대체 뭐 볼 게 있나? 느낄 게 있나? 무서운 생각에 기분만 나쁘고...
일부러 내 호흡소리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헉헉 낑낑 올라가니 드디어 '헬기장'이 있는 '1022봉'에 도착한다. 20:37
# 지도에 공터로 표기된 1022봉의 헬기장.

물 한 모금 마시고 한숨 돌렸다. 우측에서는 아직도 간헐적으로 총소리가 들린다. 밀렵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정목엔 백봉령에서 5km를 왔고, 아직 원방재까지 2.09km를 더 가야 한다고 나와 있다. 그렇다면 아직 1시간은 더 가야 되는데... 뛰자 뛰어!!!
1022봉 내림은 통나무계단이 끝도 없이 나온다. 정말 징그럽게 긴 내리막이다. 댓재 ~ 백봉령 구간의 특징인 올라가면 무조건 내려간다는 원칙에 충실한 내리막이다.
이곳에서도 무릎 무시하고 막 뛰어 내렸다. 고도를 850까지 떨어뜨려서야 안부에 도착하고 이제부터는 마루금을 오르내린다. 잠시 후 굵은 노송이 두 그루 서 있고 표지기들이 많이 나부끼고 있는 쉼터에 도달한다. 20:55
소나무 한번 어루만지고 다시 아래로 내려 고도를 830까지 떨어뜨렸다가 다시 오름으로 변해 870m 까지 올라가자 고사목이 쓰러져 있는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도 표지기들이 많이 있다. 다시 길게 내려가자 동해쪽으로 바라보는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21:05.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우측 전방에 시커먼 산이 하나 버티고 서 있어 겁이 덜컥 난다. 아니, 아직 산을 하나 더 넘어야 한단 말이야? 전망대를 나와 길게 아주 길게 내려 가다가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아까 본 그 산을 다시 넘어야 한단 말인가? 이거 죽갔구만!!!
캄캄하게 어두워 주변 판단이 안되는 지라 겁을 잔뜩 먹고 오르막을 오르는데 금방 다시 내리막으로 변하더니 길고 끝없이 내리막이 이어진다. 아이고, 다행이다. 그 산은 아마도 지난 번에 비 맞으며 내려온 상월산인가 보다!!! 뛰자, 뛰어!!!
배낭 앞에 매단 카메라가 좌우로 덜렁덜렁 흔들려 손으로 움켜 쥐고 뛰다 보니, 표지기가 엄청나게 많이 달려 있고 골짜기처럼 옴폭하게 파여 있는 '원방재'에 이른다. 21:20.
백봉령에서 2시간 40분 걸렸다. 지도에서는 3시간 25분을 예상했으니 45분을 단축한 셈이다. 하긴 본 것이 별로 없으니...
# 두 달 만에 다시 찾은 원방재.

원방재는 옛적에 정선 도전리 사람들이 삼척으로 소금 팔러 넘어 다니던 요긴한 길목이었다고 한다. 바닷가에 사는 삼척사람에게 산속에 사는 정선사람들이 소금을 팔았다는 사실이 의아하지만 소금 생산이 서남해에서 이뤄지니 그럴 수도 있겠다.
결국 이곳에서 동해쪽 서학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는 얘긴데... 어두운 산길을 확실치 않은 길따라 내려 가기가 뭐해서 지난번 탈출하면서 한번 지나가 본 부수베리 쪽 임도로 탈출로를 잡았다.
임도로 나오자 주변이 밝아져서 한결 시야가 좋아지기는 했지만, 물소리, 바람소리, 짐승들 소리가 뒤섞혀 오히려 기분은 더 이상하다. 뛰자, 뛰어!!!
어릴 때 하교길에 친구들과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면, 보자기로 둘둘 말아 등에 동여 맨 책 보따리는 좌우로 덜렁덜렁 흔들리고, 빈 양은도시락 속에서는 반찬통과 젓가락이 딸그락딸그락 춤을 추고, 필통 속에서는 몽당연필들이 짤그락짤그락 난리가 아니었다. 세월이 40년 가까이 흐른 오늘은 등에선 배낭이 덜렁덜렁 흔들리고 앞에 매단 카메라와 지도가 좌우로 춤을 춘다.
한참을 내 달려 차단기로 임도를 막아 둔 곳을 지나고 다시 포장 비포장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달려 내려오자 저 멀리 철망으로 인도를 차단해 둔 곳이 나온다. 그런데, 길 옆의 감시초소에서 밝은 불빛 하나가 이쪽으로 비추고 있다.
반갑다, 마눌! 날 기다리고 있었구나! 그런데 가까이 다가 가니 갑자기 불빛이 사라져 버리네? 이런~~ 내 이마 등불이 감시초소의 유리창에 반사된 것이었구나!!!
이곳까지 차가 들어 올 수 있으니까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다. 갑자기 맥이 탁 풀려서 뛰는 걸 멈추고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 휴대폰 불통지역이라 전화 해 볼 수도 없고...
한참을 걸어 내려가서 뜨문뜨문 있는 민가들을 지난다. 민가의 개들이 난리발광을 해서 다시 속도를 내었다. 지난 번에 보았지만 이곳의 몇몇 집들은 참 탐나게 지어져 있다. 멋진 산과 멋진 계곡이 동시에 있어 여름 피서지로도 그만이다.
지난 번에 탈출할 때 1시간 걸렸던 거리를 30분 만에 뛰어내려 '부수베리'의 '가목1교'라는 다리가 있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21:50.
# 힘겹게 도착한 부수베리 삼거리.

이곳에서 마눌과 통화가 이뤄졌는데, 댓재로 해리님 차 회수하러 갔다가 돌아오면서 길을 잘못 든 모양이다. 배낭 벗어두고 다리 위에 앉아 쉬는데 갑자기 한기가 들면서 피로가 몰려든다. 윈드 브레이크 꺼내서 입고 처음으로 간식을 먹으니 조금 나아진다.
다리 아래에서 동네 주민들이 불 피워 놓고 천렵을 하고 있어서 잠시 구경하였다. 다리 위에 철퍼덕 주저 앉아 쉬고 있는데 차량 불빛 두 개가 다가온다.
해리님 부부, 용또산님, 마눌과 반갑게 해후하였다. 다른 구간을 진행하던 동료산꾼인 소주한잔님은 집에 급한 일이 있어 먼저 출발했다 한다. 백봉령 넘어 동해시로 내려가서 묵호항에 들어서니 시각이 이미 11시가 훨씬 넘었다.
일단 불 켜진 횟집에 들어가서 물회와 쐬주 한 잔으로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찜질방으로 이동해서 샤워하고 잠을 청했다.
# 오늘은 홀로가 아닌 넷이서 대간길을 걸었다.

# 오징어 물회. 기대한 만큼 맛은... 
지난번 처음 댓재 구간 하면서 삼척 찜질방에서 잠을 한숨도 못 자고 고생했었는데, 이곳 찜질방은 규모도 작고 다들 피곤해서인지 소음에 아랑곳 않고 잘들 잤다. 찜질방에서 아침을 먹자는 것을 내가 고집을 피워 바닷가로 이동했다.
묵호항 지나 어달리 쪽으로 가는데 바닷가에 위치한 허름한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 저런 집이 더 맛난 법이다, 저곳에 가 보자!
예상대로 곰치국이 정말 시원하고 맛있다. 이 곰치국 한 그릇으로 어제 별로였던 물회 맛이 완전히 만회되었다. 오랜 세월 뱃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해 온 할머니의 노하우가 녹아 든 손맛인가 보다.
식사 후 해리님 내외는 주변 구경 좀 더 하시다 대명님 택배하고 귀경하시겠다 하고 용또산님과 우리는 차 막히기 전에 귀가하기로 하고 출발했다.
# 얼큰하고 속이 확 풀리는 어달리 곰치국.

# 식당의 담벼락에 눈을 부릅 뜬 달마대사가 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直指人心 見性成佛(직지인심 견성성불)' 김천 직지사의 사명(寺名)이 이 구절에서 나왔다. 
# 이 동네 식당들은 동해시에서 간판을 새로 달아 준 모양이다. 우리가 곰치국을 맛있게 먹은 할머니 식당은 '바다집'이다. 
# 식당 앞의 바다 풍경. 이곳은 예전에 갯지렁이 달아 싸구려 막릴대로 던져 넣어도 놀래미가 곧잘 나오곤 했던 곳이다. 낚시꾼 시절 자주 찾았던 곳이다. 
# 이름 없는 백사장엔 홀로 낚시 삼매에 빠진 태공이 있다. 몇 년 전엔 나도 저런 모습이었다. 
# 고운 해당화가 백사장 한 켠에 피어 있다. 
비록 밤중에 아무 볼 것도 없고, 느낄 것도 없는 야간 달리기로 땜빵 산행을 했지만, 계속해서 대간길 발목을 잡으며 앓던 이처럼 남아 있던 댓재 ~ 백봉령 구간을 마쳤다. 또, 해리님 부부, 용또산님 덕분에 마눌도 무사히 이 어려운 구간을 마쳐서 너무나 시원하다.
이젠 다시 마눌과 나란히 대간길을 이어 나가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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