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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정맥]그 대단원(성동재~장명산)-隨處作主! 그리고 한북정맥 완주!! 본문

1대간 9정맥/한북정맥 종주기

[한북정맥]그 대단원(성동재~장명산)-隨處作主! 그리고 한북정맥 완주!!

강/사/랑 2007. 8. 5. 23:04
 [한북정맥]그 대단원(성동재~장명산)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서 발원(發源)해서 지리산까지 뻗어내려 한반도의 근간(根幹)을 형성하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은 한 개의 정간(正幹)과 열세 개의 정맥(正脈)으로 갈래쳐 우리 산하(山河)의 뼈대를 굳건히 한다.

그 열세 개의 정맥 중 북녘땅에 있는 네 개의 정맥을 제외하면 현재 우리가 걸을 수 있는 남녘의 정맥은 모두 아홉 개이다. 몸의 근간인 척추와 아홉 개의 뼈대인 셈이다.


이러한 백두대간과 아홉 정맥으로 이뤄진 우리 땅 산줄기의 기본 체계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산자분수령이란 '산길은 물길을 건너지 않고 물길은 산에서 갈라짐'을 말한다. 산과 물이 서로 비롯하고 구분하여 조응한다는 의미이니 자연히 산과 강은 함께 흐르게 된다.


이 땅의 큰강인 한강(漢江), 낙동강(洛東江), 금강(錦江), 섬진강(蟾津江) 등이 바로 그러하다. 이 강들과 아홉 개의 정맥은 백두대간에서 갈래쳐 나와 제각기 바다를 향해 함께 흘러내린다.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충실한 시작이고 흐름이다.


산자분수령하는 아홉 개의 정맥 중 제일 위쪽에 있는 것이 '한북정맥(漢北正脈)'이다. 한북정맥은 한수(漢水)의 이북 울타리를 이루는 산줄기이다. 그 시작은 백두대간 추가령(楸哥嶺)이다. 지금은 이북지역인 추가령에서 백두대간을 빠져나온 산맥은 백암산을 지나면서 분단의 휴전선을 넘고, 천 고지가 넘는 적근산(1,073m)과 대성산(1,175m)으로 이어진다.

 


대성산에서 내려온 산줄기는 실질적인 한북정맥의 출발지인 수피령에서 시작해서 광덕산(1,046m), 백운산(904m), 국망봉(1,168m), 강씨봉(830m), 운악산(945m), 도봉산(739m), 삼각산(837m)의 북서쪽을 지나며 기세를 올리다 노고산(487m), 고봉산(203m)에서 높이를 낮추고 파주 교하 장명산(102m)에서 곡릉천으로 잠기며 드디어 그 맥(脈)을 다한다.

그 한북정맥을 2006년 6월 25일 일요일에 수피령에서 첫 발걸음을 내 디뎠다.
그리고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강씨봉을 넘어 노채고개에 그해 10월 1일에 내려 섰다가 갑작스레 들이닥친 뜻하지 않은 질병으로 그 자리에 멈춰서야만 했다. 그때만 해도 이제 영영 정맥길엔 설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 질병이 워낙 무섭고 대응이 두려웠던 탓이다.

그러다 6개월 후인 2007년 4월 14일 큰 용기를 내서 마눌과 함께 노채고개에 다시 올라서서 한북정맥의 능선을 걷게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건강 회복하고 재활을 통해 심신을 다둑인 결과다.

 

물론 최대한 조심하면서, 하루에 너무 많은 거리를 걷지 않으면서 내가 백두대간을 시작하며 최초에 내세운 슬로건처럼 "솔방솔방 우리 山河 두 발로 느끼기"에 딱 맞게 솔방솔방 그러나 꾸준히 산길을 걸었다.

그리하여 드디어 이제 다시 이어 걷기 시작한 한북정맥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날에 이르렀다.

감사하게도!! 


隨處作主(수처작주)! 그리고 한북정맥 완주!!

구간 : 한북정맥 제 14구간(성동재~장명산)
거리 : 구간거리(12.5 km), 누적거리(178.1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7년 7월 8일, 해의 날
세부내용 :

성동고개(11:40) ~ 망경사 ~ 장사바위 ~ 알바 ~ 영천사 ~ 헬기장(12:26) ~ 배수지 ~ 중산고개(12:40) ~ 금정굴 발굴터 ~ 운동시설 있는 쉼터/점심 후 13:20에 出 ~ 큰마을 갈림길 ~ 돌탑 ~ 호곡중학교 ~ 현대아파트~ 대림아파트 정문 ~ 경의선 철길 ~ 일산 가구공단(13:50) ~ 대형 알바 ~ 목동삼거리(15:00) ~ 월드 메르디앙아파트 ~ 2단지 아파트/광진테크(15:25) ~ 삼거리 ~ 사거리 ~ 들꽃어린이집 ~ 56번 도로(15:37) ~ 성재암 임도/휴식 ~ 교하중학교 ~ 핑고개(16:18) ~ 공장 신축지 ~ 폐기물 처리장 ~ 장명산(16:40).

총 소요시간 5시간. 만보계 기준 19,600보.


7월 8일 해의 날. 창밖을 보니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다. 일기예보에서는 오늘 장마전선이 남해안으로 내려가고 날이 맑은 대신 아주 무더운 날씨가 될 것이라고 예보했다.

오늘은 지난 해 6월에 시작했던 한북정맥을 드디어 졸업하는 날이다. 다시는 걷지 못할 것 같았던 정맥길이었다. 그 길을 다시 이어 가서 나름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이 한북의 졸업을 임호빈님과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지난 번 도봉산 구간을 같이 마치고 솔고개에 내려 선 후 나는 두 번에 걸쳐 성동재까지 산길을 이었고, 호빈님은 오늘 솔고개에서 장명산까지 한 방에 해치우겠다는 계산이다. 보통 두 번에 나눠 종주하고 나의 경우엔 세 번에 나눠 하는 구간을 한 번에 하겠다면 상당한 무리가 될 터인데, 호빈님은 새벽 5시쯤 출발해서 해결하겠단다.

"그럼 나는 점심때 쯤 출발해서 느긋하게 가고 있을테니 어서 오시오. 중간에 도킹합시다!" 집에서 느긋하게 준비하고 있는데 중간중간 헷갈리는 곳이 많은 구간인지라 호빈님한테서 길 묻는 전화가 수시로 온다. 그런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5시에 출발하질 못했다한다. "
그래도 너무 서두러지 말고 천천히 오세요. 장명산에서 만납시다!!"



고봉산/高峰山

일산구 중산마을 뒷산으로 해발 208.6m 이다. 고양시 일산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옛부터 태미산으로 알려져 있는 산이다. 이곳 고봉산은 높은 산봉우리 또는 봉화를 올린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일산 2동과 고봉동의 경계가 되며 멀리서 볼 때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산은 꼭대기에 커다란 안테나가 있어 다른 산과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모습이다. 삼국시대의 기록인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유명한 산으로 한강유역 일대를 두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한 접전을 벌인 군사, 교통, 전략상의 요충지였다. 이 산에서는 이를 증명하듯 곳곳에서 삼국시대의 토기편이 발견되고 있다. 고봉산에는 소나무, 느티나무, 참나무, 밤나무 등이 서식하고 있어 늘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으며 산기슭에는 만경사, 영천사의 작은 사찰과 함께 정지운 묘, 홍이상 묘와 같은 문화재도 자리하고 있다. 이곳 고봉산에서 보면 고양시는 물론 파주, 개성, 강화, 인천, 김포, 서울, 수원 등을 볼 수 있어 이 곳의 중요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정상에는 고봉산 봉수대가 위치하고 있다. 옛 문헌에는 이곳에 고봉산성이 있어 봉수대가 설치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봉수대는 산 정상 봉우리를 중심으로 직사각형으로 석축을 쌓은 상태로 남아 있다. 석축의 총 둘레는 약 120m에 달하며 높이는 약 5m에 이르고 있다. 고봉 봉수대는 주변의 자연돌을 쌓아 만든 봉수대로 특별히 무너진 곳 없이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장명산/長命山

파주시 교하읍 오도리에 있다. 높이는 102m. 고양의 고봉산 서북맥 내령으로 와동산을 거쳐 끝머리 벌판 가운데로 우뚝 서 있는 이 산은 산아래 곡릉천(휴률강)이 흘러 경관이 아름다우며 이 산 주위로 전부 구절초가 자생, 주민들이 이를 많이 복용 수명이 연장되었다 하여 유래된 것이다.


곡릉천/曲陵川

경기도 양주시, 고양시, 파주시에 흐르는 하천. 한강 권역의 한강 수계에 속하며, 한강의 제1지류이다. 가둔천 또는 가돈천이라고도 부르며, 중류 지역인 고양시 부근에서는 심천이라 부르고, 파주시 조리읍 부근에서는 봉일천, 금촌동 남쪽에서는 금성진, 하류의 교하읍 부근에서는 방천이라 부른다. 오금천 합류지점부터 대자천 합류지점 사이는 신원천이라고도 불렀다. 양주시 챌봉(516m)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長興面 부곡리에서 지방2급하천이 시작되며, 고양시 덕양구 선유동을 지나 덕양구 奈遊洞·벽제동, 일산구 芝英洞, 파주시 조리읍의 경계지점에서 국가하천으로 바뀌고, 파주시 교하읍 오도리 북쪽에서 서쪽을 향해 흘러 한강으로 합류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한북정맥 제14구간 성동재~장명산 개념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외곽순환도로 타고 일산으로 나가 고봉산 근처까지 갔는데 지난 번에 멈춘 성동재를 쉽게 찾지 못했다. 고봉산은 정상에 군부대 안테나가 높게 솟아 있어 일산 근처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는데 막상 성동재를 찾지 못하겠으니...


고봉산 안테나를 바라보며 산을 완전히 한바퀴 돈 이후에야 겨우 성동재에 올라 설 수 있었다. 3~40분 이상을 헤맸나 보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 푼 후 성동재를 출발했다. (11:40). 가파른 시멘트 길을 잠시 올라 가면 고봉산 입구에 있는 '만경사'가 나타난다. 테이프로 틀어 둔 염불 소리를 들으며 시멘트 도로를 올라 가면 영천사와 장사바위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 만경사.

 

 

 

# 장사바위 갈림길.

 

 

 

갈림길에서 좌측 시멘트 도로로 가면 영천사로 가는 길이고, 우측 산길로 가면 장사바위로 가는 길이다. 고봉산은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접근 할 수 없으므로 우회를 해야 하는데, 양쪽 어느 쪽으로 가든지 길은 연결되어 있다. 그래도 선답자들이 대부분 장사바위쪽으로 갔다고 해서 나도 우측으로 길을 잡았다. 나중에 확인하니 좌측 영천사 쪽이 더 가까운 듯하였다.

우측으로 난 산길을 따라 가는데 평탄하게 산을 우측으로 휘감다가 위로 고도를 높이게 되어 있다. 한차례 위로 밀어 올리니 '수연약수터 갈림길'이 나오고, 다시 더 올라 서니 '장사바위'가 나온다.

물 한모금 마시고 한숨 돌리며 주변 지형을 살피니 좌측 정상에 군부대가 위치해 있고, 사방으로 갈림길이 많이 나 있다. 마침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오길래 다음 포스트인 헬기장 위치를 물었다. 자신이 온 쪽으로 쭈욱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산의 우측 사면으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길을 나섰다. 이것이 오늘 첫 알바의 시작이다.

습도가 높아 금방 온 몸이 땀에 흠뻑 젖는다. 계속 산의 사면을 길게 진행하는데 너무 많이 온다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일단은 계속 가 보기로 했다.

한참 후에야 군부대 정문이 나오고 그 아래에 삼거리 길이 있어 차량 이동포장마차와 등산용품들을 판매하는 노점들이 늘어 서 있다. 일요일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도 삼삼오오 많이 있다.

노점상들 뒤로 넓은 헬기장이 하나 있다. 음, 맞게 왔군! 헬기장 끝 내리막 나무에 표지기 하나 달고 아래로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다 보니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올라 오길래 다음 포스트인 중산배수지를 물었다. 잘못 왔단다. 오잉? 분명히 헬기장을 만났는데? 중산배수장은 한참을 돌아 가야 한단다. 그 쪽 방향에 헬기장이 하나 더 있고... 아이구야~~ 시작부터 알바다!!!!

산길을 다시 낑낑 올라가 잘못 단 표지기를 회수하고, 군부대 정문 앞 갈림길에 서니 고봉산 안내도가 서 있다. 그 안내도를 보니 내가 산을 완전히 한바퀴 휘감아 돌았음을 알 수 있다. 장사바위 지나서 우측 아래로 떨어져 내려야 하는데, 곧장 위쪽으로 산을 한바퀴 휘감아 돌아 버렸다. 그 아주머니가 거짓말 한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곳의 헬기장을 두고 먼 데 있는 엉뚱한 헬기장을 가르쳐 주었다.

아이구~ 이거 오늘 고봉산이 날 거부하는 구만!! 이 넘의 고봉산을 차로 한바퀴 돌고, 또 걸어서 한바퀴 도는구나!!!

 

 


# 만경사에서 출발해서 군부대 정문까지 완전히 산을 한바퀴 돌았다.

 

 

 

군부대쪽 윗길이 아니고 아래쪽 포장도로로 산의 좌측 사면을 다시 돌아 가니,'영천사'가 나온다. 영천사를 지나 한참을 더 가서야 비로소 정확한 '헬기장'을 만난다.(12:26)

 

 


# '隨處作主 立處皆眞(수처작주 개처입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文句) 중 하나다.

 

 

 

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이 되라.  지금 있는 그곳이 모두 참된 행복이다."

이 말을 좀 더 알기 쉽게 해석하면 "어디에 가건 자기 자신이 따라간다. 그러므로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자신의 자리이다."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임제(臨濟;?-867)스님의 말씀 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손꼽는 법문이다. 임제스님은 황벽 희운(黃蘗希運;?∼850)스님의 법을 이어서 임제종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조주 남화 사람으로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불교를 좋아하고, 출가한 후 제방에 다니면서 경론을 많이 탐구하였다. 특히 계율에 정통하였다. 뒷날 대명부의 홍화사로 옮겼다가 함통 8년 4월에 입적하였다. 우리나라 스님들의 법맥은 모두 임제스님의 법을 이어서 임제 후손이다. 부처님의 법의 산맥이 오랜 세월동안 흘러오면서 가끔씩 우뚝하게 높이 솟은 산이 있다. 마명의 산, 용수의 산, 달마의 산, 혜능의 산, 마조의 산, 임제의 산들이다. 그 중에서도 아마 사상적으로나 그 법의 영향력으로나 임제의 산이 가장 유별나고 높고 험하고 깊은 산이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어디를 가건 스스로의 주인이 되기는 어렵다. 여기 저기, 이 일 저 일 등등의 경계에 이끌려서 자신의 정신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어디를 가건 자신은 늘 따라다니고 있는데도 그렇다. 그래서 지금 있는 그곳이 바로 자신의 자리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렇게 해석해서 생활에 원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누구나 현재의 위치가 아닌 지금과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기를 바라고 꿈꾸는 것을 그만두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지금과는 다른 상황에 있으면 지금보다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다른 학교, 다른 직장, 다른 사람, 다른 업종을 늘 기웃거린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불만이 많은 사람, 무엇에나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디를 가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이 늘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고 싶은 곳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현재 자신이 있는 곳, 자신이 처한 상황 에서 좀 더 평화로워지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계에 팔려 다니지 말고 현재의 자신이 있는 이 순간 이 자리가 모든 것의 근원이며 중심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라는 말이다. 최상의 인생도 지금 바로 여기에 있고 행복도 평화도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뜻이다. 진리도 도도 극락도 화장세계도 역시 지금 바로 이곳이라는 사실이다

-무비스님 강론 中 

 

 


# 알바 끝에 정확히 찾은 헬기장.

 

 

 

# 헬기장에 서면 고봉산 정상이 곧바로 올려다 보인다.

 

 

 

고봉산은 일산지역 주민들의 산책로 구실을 하는 산으로서 평일에도 찾는 사람이 많아 등로가 산 곳곳에 얽히고 설켜 있다. 표지기도 전혀 없기 때문에 자칫 엉뚱한 길로 가기 십상이다.

헬기장에서 한숨 돌리고 배수지 방향으로 출발했다. 중간에 갈림길이 많아 많이 헷갈리는데 지역 등산객들이 많아 물어 가며 진행했다. 갈림길에서 배수지를 물으니 우측으로 가라고 한다. 좌측이 맞는 것 같은데? 다시 한번 속는 셈치고 지역 주민 말을 들었다.

잠시 진행하니 무명봉 하나가 나오고 우측 아래로 내려가야 배수지가 나온다. 또 엉뚱한 곳으로 나가는 듯하지만 일단 계속 가 보기로 하고 진행하니 '산악도로'가 나오고 전방에 '중산배수지'가 있다.

또 엉뚱한 곳으로 나왔다. 베수지 방향으로 가다가 '고봉정'을 찍고 중산고개로 내려가야 하는데 그냥 배수지까지 바로 내려 와 버렸다. 배수지에서 도로따라 아래로 잠시 내려 가니 '98번 도로'가 지나는 '중산고개'에 이른다.(12:40)

 

 
# 무명봉. 이 전에 좌측으로 고봉정을 향해 내려 가야 하는데, 지역주민 말 듣고 이곳을 넘었다.
이쪽으로 내려가도 시간 차이는 5분여 밖에 안 되기는 하지만...

  

 

# 주유소와 순두부 식당이 있는 중산고개.

 

 

 

고봉산에서 실컷 알바를 했다. 중산고개는 차량 통행이 아주 많은 곳이다. 뙤약볕 쨍쨍한 건널목에서 신호 기다려 도로를 건넜다. 도로 건너에 바로 금정굴 가는 곳임을 알리는 장승들이 서 있어 들머리 찾기는 쉽다. 위로 조금 올라가자 섬뜩한 풍경의 '금정굴 발굴 현장'이 나타난다.

금정굴은 우리 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6.25 전쟁 당시 9.28수복 후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양민학살을 한 곳이고, 어찌된 영문인지 신속한 발굴과 원인 규명, 희생자 파악이나 보상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우익 정권은 우익대로 좌파 정권은 그들대로 이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어 미적미적 미루고만 있는 것일 거다. 하긴 동족상잔의 끔찍한 전쟁 와중에 적과 아군이 뒤섞혀 누가 누구를 죽이는지도 모르고 누구를 죽여야 하는 지도 모르고 오로지 광기(狂氣)에 내몰려 방아쇠를 당긴 곳이 어디 한두 곳이겠는가?

분단으로 인해 온전히 전부를 이어가지 못하는 한북정맥의 마지막 구간에 이렇게 금정굴이 있어 아픈 역사를 일깨우는 것이 한북정맥 답다고 할 만하다. 게다가 나는 작년 6월 25일 그것도 일요일에 한북정맥을 시작했으니... 머리 숙여 불쌍한 원혼들의 명복을 빌고 다시 출발했다.

 

 
# 산 초입에 금정굴임을 알리는 조형물이 서 있다.

 

 

 

# 발굴은 현재 중단되고 며칠 전 위령제가 열렸나 보다.

 

 

 

# 우리 현대사에 이런 아픔이 있었다.

 

 

 

금정굴을 지나 잠시 더 진행하면 능선 공터에 도착한다. 공터 우측에는 골프 연습장이 있고, 공터엔 운동시설과 쉼터가 있다.

벤치에 앉아 배낭 벗고 마음에 점 하나를 찍는데, 옆에서 공치는 소리가 딱딱 빠르고 규칙적으로 들려 괜히 마음이 그 장단에 맞춰 급해진다. 그래서 20분 만에 밥 먹고 출발해 버렸다.(13:20)

쉼터를 나와 잠시 위로 오르면 철조망을 만나고 철조망을 따라 위로 몇 분 정도 오르면 '벤치가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으로 내려 가는 갈림길에 '큰마을'이라는 이정표가 매달려 있다. 좌틀하여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 '돌탑' 여러 개가 나오고 다시 더 내려가면 농장과 비닐하우스 가옥이 나온다.


농장 사이로 좀 더 내려가면 좌측에 붉은 벽돌로 지은 '호곡중학교'가 나오고 정면에 '현대아파트 단지'가 나타나 그곳으로 들어갔다.

직진하여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면 슈퍼가 나오는데, 선답자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아이스 바 하나씩을 사 먹었다는 곳이다. 슈퍼 앞에서 좌측으로 길 따라 가면 바로 대림아파트 단지와 연결되고 '정문'으로 나와 우측으로 길 따라 가야 한다.

잠시 도로따라 진행하면 '다리'가 하나 나오고 다리 아래엔 '경의선 철길'이 지나고 있다. 전방에 '일산가구공단'이 보인다.(13:50)


 


# 갈림길에서 큰마을 방향으로 좌틀한다.

 

 

 

# 돌탑들을 지난다.

 

 

 

# 호곡중학교를 지나 현대 아파트로 들어갔다.

 

 

 

# 일산 가구공단 앞 다리를 지나고,

 

 

 

# 다리 아래는 경의선 철길이 지나고 있다.

 

 

 

이 다리를 지나면 고양시 일산구에서 파주시 교하읍으로 넘어 가게 된다.

교하(交河)라는 지명은 한강과 임진강이 교차한다는 의미에서 연유한다. 교하 일원은 도봉산, 노고산, 장명산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13정맥의 하나인 한북정맥이 한강을 만나 다하는 용진처(龍盡處, 산맥의 끝으로 지기가 뭉친 곳)로, 의정부 쪽에서 발원한 곡릉천이 다시 그 중심부를 흘러 한강과 합수하니 가히 大江小川이 모여들고 그 사이에 기름진 들판이 천리에 걸쳐 펼쳐져 있어 예로부터 주목받아 왔다. 풍수가들에 따르면 여러 물이 만나 모여들면 그 안에 반드시 명당이 있고 그 물들은 재물을 상징한다고 한다. 한강의 물길이 옥대를 허리에 두른 듯 교하 일원을 有情하게 감싸 안고 흐르고 있으니 이곳이 경제적으로 부유를 약속받고 항간에서 통일수도 입지로까지 거론되는 것도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 이곳저곳

교하는 물길이 겹쳐지는 곳이다. 추가령에서 백두대간을 벗어난 한북정맥이 이곳 파주땅 교하에서 장명산을 마지막으로 솟아 올리고 그 맥을 다하니 드디어 한북의 끝자락에 들어 선 셈이다.

그러나 이곳부터는 개발로 인하여 산줄기의 맥이 모두 끊어져 버리고, 人間世 속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봉산을 끝으로 더이상 한북정맥 진행을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장명산 정상에서 만세 한번 크게 불러야 한북을 완주했다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인간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경의선 철길을 넘어 사거리 교차로에 서면 건너편에 '일산가구공단' 정문 아치가 보인다. 건널목 건너 가구 공단 안으로 들어갔다.

 

 


# 일산가구공단.

 

 

 

뙤약볕에 완전히 노출된 채 가구공단 안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선답자의 산행기에 '모드니에 가구점'에서 우틀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일단 모드니에 가구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계속 걸어 들어 가는데 모드니에 가구점이 나오질 않는다. 가구점 몇 군데 들어가서 물어 봐도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일단 끝까지 모드니에 가구점을 찾아 들어가 보기로 했다.

오늘 아무래도 내가 무언가에 홀린 듯하다. 아니면 한북졸업한다는 것에 너무 흥분해서 판단력이 상실되었든지... 고봉산에서도 몇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맸는데 좀 이상하다 싶으면 원위치해야 하지만, 계속 고집을 피우고 엉뚱한 길로 가게 된다. 이곳에서도 모드니에 가구점을 못 찾으면 원위치해서 다음 포스트를 찾아야 되는데, 계속 길따라 가 버리고 말았다.

안으로 계속 들어가자 가구점들이 대부분 폐업하고 일부에서는 건물 철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이곳이 택지지구로 개발되면서 가구점들이 폐업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모양이다. 모드니에 가구점도 폐업하거나 이전하여서 찾을 수가 없었나 보다. 그렇다면 돌아서 원위치 해야 하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계속 앞으로 가 버렸다.

가구점 골목을 완전히 벗어나자 번화한 도심지가 나온다. 가야 할 길에서 좌측으로 엄청나게 벗어나 버렸다. 일단 우측으로 도로따라 올라 가 보기로 했다. 버스나 택시가 지나가면 타고서 원위치라도 할텐데 승용차들만 씽씽 내 달린다.

뙤약볕 아래 땀을 너무 많이 흘리고 한시간여 헤맸더니 나중엔 머리 속이 텅 비는 듯하고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냥 북북동쪽만 생각하고 걸었다.

상세한 지도 대신 간단한 개념도만 들고 왔더니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느 길로 가는 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덥다 힘들다 그늘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니다. 그러다 저 멀리 아파트 공사장 한 가운데 삼거리가 나오고 이정표에 '목동삼거리'라고 적혀 있다. 15:00

 


# 안으로 들어가자 가구점들이 대부분 철거되었다.

 

 

 

# 어떻게 찾아 왔는 지도 모르게 온 목동삼거리.

 

 

 

10분이면 올 거리를 1시간 10분동안 헤맨 후에야 찾아 왔다. 산길을 걸어야 할 사람이 한낮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 위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패닉상태에 빠져 헤매고 있었다니...

삼거리 좌측 전방에 '월드 메르디앙 아파트단지'가 보인다. 아파트 단지 앞 버스 정류소에서 비로소 한시간 만에 그늘을 만났다. 배낭 벗고 물 한모금 마시고 정신을 수습했다. 아파트 단지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후문이 나오고 저 멀리 다음 포스트인 2단지 아파트가 보인다.

다시 길따라 길게 진행하는데 선답자의 산행기에 나오는 '대신교회', '생명의 교회'는 역시 철거 되어 버렸는지 나타나질 않는다. 이 지역은 개발이 계속 이뤄지고 있어서 선답자의 산행기에 나오는 가구점, 교회 등의 포스트는 가치가 없어져 버렸다.

대신 2단지 아파트 우측 담벼락에 위치한 '광진테크' 란 공장은 그대로 있다. 이 공장도 문을 닫았는지 큰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광진테크 우측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들어 가면 '임진강 장어구이' 안내판이 서 있고, 그 너머엔 공터와 숲길이 이어지고 'HID 설악개발'이란 팻말이 서 있다.

조금 더 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 들어가면 다시 '사거리'가 나온다. 직진하면 '들꽃 어린이집'을 만난다. 이후 임도 따라 계속 직진하면 아주 높은 도로 절개지 위에 서게 된다. '56번 도로'다.(15:37)

 

 


# 월드메르디앙 아파트. 안으로 그냥 들어가서 후문으로 나와도 된다.

 

 

 

# 대신교회와 생명의 교회는 철거 되어 버리고 2단지 앞 붉은 지붕의 광진테크만 남아 있다.

 

 

 

# 공터 지나 숲길로 들어 갔다.

 

 

 

# 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 임도를 만나 계속 직진한다.

  

 

 

# 56번 도로 절개지 위에 섰다.

 

 

 

56번 도로는 차량 통행이 아주 많기도 하고 절개지가 가파르고 높아 우회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지만 오늘 눈에 뵈는 게 없는 나는 그냥 횡단해 버리기로 하고 무성한 잡풀을 헤치고 가파른 절개지 아래로 내려갔다. 도로에 내려 서서 차량흐름이 끊긴 순간을 틈타 재빨리 도로를 횡단하고 건너편 절개지를 치고 올라갔다.

절개지 상단에 올라 서니 이곳저곳 긁히고 잡풀조각이 잔뜩 묻어 있다. 잡풀을 헤치고 나오면서 혹시나 발아래 뱀이 있지 않나 내심 걱정했다.

절개지 상단에는 '성재암' 안내판이 서 있다. 임도 따라 들어간다. 비로소 숲 그늘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 숲길은 아주 호젓하고 시원한 것이 그동안 뙤약볕 아래 고생한 보상을 해 주는 듯하다.

잠시 진행하면 임도가에 벤치가 있어 배낭 벗고 휴식을 취했다. 이곳에서 한 잠 자면서 임호빈님을 기다릴까 잠시 고민하지만, 일단 장명산을 빨리 보는 것이 먼저인 것 같아 10여 분 휴식 한 후 16:00에 출발했다.

 



# 절개지 상단엔 성재암 가는 임도길이 나 있다.

 

 

 

# 시원한 쉼터가 있어 한참을 휴식했다.

 

 

 

임도따라 계속 진행하면 고개가 나오고 '교하중학교'가 나타난다. 우측으로 진행하여 후문과 정문을 차례로 만난다. 군부대 담벼락을 따라 계속 진행하면 간혹 차들이 지나 가는 '핑고개'가 나온다.(16:18)


 


# 편안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 교하중학교 담벼락을 따라 간다.

 

 

 

# 꼬리조팝나무.

 

 

 

# 도라지.

 

 

 

# 오늘 유난히 의미가 느껴지는 무궁화.

 

 

 

# 무궁화는 그 이름이 끝이 없이 피어나는 꽃이라는 뜻이다. 하나의 꽃이 오래 가서 무궁화가 아니라 여러 꽃이 피고 지고를 오래오래 반복하여 다함이 없는 꽃, 무궁화( 無窮花)란 이름을 얻었다.

 

 

 

# 핑고개.

 

 

 

'핑고개'는 특이한 이름을 가졌다. 무슨 외국 지명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자료 찾아보니 핑고개는 한자로 '빙현(氷峴)'이다.


옛날 교하현 관아가 있을 당시 여름철에 얼음창고를 설치하였던 곳이어서 빙현이란 이름을 얻었는데, 그것이 핑고개로 변천되었다고 한다. '빙현 -> 빙고개 -> 핑고개'가 된 것이다. 그것 참~ 의외로 싱거운 내력을 가졌다. 얼음고개에 서니 얼음과자 한 조각 생각이 간절하다.

핑고개 버스정류소 옆에 아래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다. 공장지대 골목을 지나 구불구불 올라가니 신축공장 공사장이 나오고 그 뒤에 넓은 사막같은 광장이 있다.

이곳이 그 유명한 '폐기물 처리장'이다. 건축폐기물들을 수거해 골재로 재처리하는 곳이다.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작업이 한창이다. 골재로 만든 산이 우뚝 솟아 있다.

그 골재 산 너머에 작고 초라한 모습의 장명산이 오두커니 서 있다. 이럴수가!!!!!! 그렇게 오고 싶었던 산이건만 이렇게 작고 초라하게 서 있을 줄이야! 넓은 황무지를 지나 장명산 아래에 도달했다.
 

 

 


# 핑고개 버스정류소 옆 샛길로 들어 간다.

 

 

 

# 폐기물처리장 너머에 장명산이 서 있다.

 

 

 

# 넓은 훼손지를 지나 가야 한다.

 

 

 

# 건축폐기물 재처리 공장.

 

 

 

# 작고 초라한 모습의 장명산.

 

 

 

장명산은 남쪽 부분이 잘려 나가고 없다. 산 좌측으로 올라가면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고 숲을 벗어나자 드디어 장명산 정상이 나온다.(16:40)

장명산 정상에 올라 붉은 화생방 종을 몇 번 타종하여 한북정맥 종료를 알리고 천지신명께 감사 인사 올렸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장명산 정상에 섰군요!"

 

 


# 노란 원추리가 한북정맥 종주를 축하해 준다.

 

 

 

# 정맥종주 기념 플래카드 앞에서 자축했다.

 

 

 

# 졸업기념 표지기도 하나 달고!!!

 

 

 

# 정상 화생방 종을 몇 번 두들겨 종주 완료 신고를 했다.

 

 

 

# 장명산이 한북정맥 용진처(龍盡處) 임에 자격이 충분함을 증명하는 한반도 지형 물줄기가 눈 앞에 펼처진다.

 

 

 

# 챌봉에서 발원한 곡릉천은 이곳을 지나 한강으로 흘러 든다.

 

 

 

그렇게 한북정맥의 대단원의 마지막 발걸음을 찍었다. 다시는 정맥길에 나서지 못하리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사히 한북정맥 완주를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임호빈님은 아직 두 시간 밖 거리에 있다. 그동안 낮잠이나 좀 자야겠다. 정상 바로 아래 나무 그늘에 자리 깔고 잠을 청하는데, 모기떼가 얼마나 극성을 부리는지 견딜 수가 없다. 그래도 한 20여 분은 잤나 보다. 모기에게 수십 방 헌혈은 했지만...

 

 


# 골재산이 장명산 높이 만큼 솟아 올랐다.

 

 

 

# 이런 혼자놀기 장난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 모기에 물려 가며 20여 분 눈을 붙였다.

 

 

 

# 그렇게 2시간을 보내고 노을빛이 돌 무렵 저 멀리 모래 언덕에서 낯익은 산꾼이 어이~ 하며 올라온다.

 

 

 

# 마구 달려 온다.

 

 

 

# 한북정맥 종주 축하합니다!!

 

 

 

# 자축(自祝)의 타종식(打鐘式).

 

 

 

# 솔고개에서 부터 달려온 임호빈님.

 

 

 

# 사진 찍어주고 같이 축하할 사람 있어 뒤늦게 만세 한 번 부른다.

 

 

 

# 천지신명께 무사 종주에 대한 감사를 드렸다.

 

 

 

# 정말 정말 감사드리나이다!!!

 

 

 

# 땀이 송글송글한 호빈님!

 

 

 

# 한반도 지형 물줄기를 배경으로 강/사/랑도 한 컷.

 

 

 

# 저 江이 흘러 한강과 만나고 이어 임진강과 몸을 합한 후 서해로 흘러 간다. 저 멀리 노을 속에 오두지맥의 굳건한 등뼈가 보인다.

 

 

 

장명산 정상에서 임호빈님과 둘이서 조촐한 한북정맥 완주 기념 세러머니를 가진 후 곡릉천 쪽으로 하산했다. 자축의 막걸리도 한 잔씩 하고...

장명산은 남쪽 사면을 완전히 깍아 먹히고 훼손되어 산의 모습을 잃었지만, 북쪽 사면은 아직 산의 위용을 갖추고 있다.한자로 '長命山'으로 적는다. 목숨이 긴 장수하는 산이란 뜻이다. 옛날 조선시대에 아이를 갖지 못하는 한 아낙이 아이 갖기를 소원하여 장명산 중턱에 위치한 약수터에 올라가서 약수물에 밥을 지어 먹고 구절초 다린 물을 먹으면서 치성을 드린 후에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문이 한양까지 퍼지게 되어 아이를 갖지 못한 양반댁 부인들이 매년 음력 9월 9일에 장명산에 내려와서 약수물에 밥을 지어 먹고 구절초 다린 물을 먹어서 아이를 갖게 된 일이 많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또한 이곳 구절초를 다려 먹고 이 지역 주민들이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장명산은 제 몸에서 솟아 올린 약수와 제 몸에서 피운 구절초로 사람들에게 공덕을 배푼 어진 산이다. 그러니 비록 지금 한쪽 몸을 잃고 신음하고 있지만 끝까지 살아 남아 반드시 오래오래 그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리라 확신한다.

 

 


# 노을이 지는 곡릉천.

 

 

 

# 강물의 흐름은 유장하다.

 

 

 

# 저문 강물에 손 담궈 한북정맥 완주의 마침표를 찍었다.

 

 

 

# 천만 년 영원할 우리 山河여!!

 

 

 

# 오두산을 배경으로 붉게 타오르며 가라앉는 일몰.

 

 

자, 이제 한북을 마쳤으니 장차 어디로 가야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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