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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일곱번째(차령고개~곡두고개)-車嶺의 대나무숲! 본문

1대간 9정맥/금북정맥 종주기

[금북정맥]일곱번째(차령고개~곡두고개)-車嶺의 대나무숲!

강/사/랑 2007. 12. 8. 22:40
 [금북정맥]일곱번째(차령고개~곡두고개)

 


예로부터 대나무는 '松竹(송죽)'으로 불리며 소나무와 함께 '절개(節槪)'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것은 대나무가 겨울에도 푸른 잎을 떨구지 않고 곧게 자라 하늘을 향하고, 속을 비우나 올곧게 사철 푸른 모양이 군자(君子)의 풍모(風貌)와 닮았다고 여겨진 탓이다.

그래서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志操)를 지키는 선비를 '대쪽 같다'는 말로 표현하곤 했다. 인물평에 있어 대쪽같다는 표현은 최고의 헌사(獻辭)였다. 뒤늦게 대통령 선거판에 삼세판이라 하고 뛰어든 某씨도 한때는 '대쪽'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진짜 기상(氣像)이 대쪽인지 말로만 대쪽이고 속이 텅 빈 대나무인지는 훗날 역사가 평가할 일이겠지만...

강/사/랑이 어릴 때 자란 고향 '진주(晉州)'는 대나무가 많은 고장이었다. 진주의 상징 남강에는 옛날부터 강변 양쪽으로 대밭이 강물보다 더 푸른 빛으로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때 문학개론 교수님이 첫 수업시간에, "진주 대밭! 남강의 날개!..."  이렇게 시작되는 자신의 자작시(自作詩)를 들려주시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자란 고향 마을도 온통 대밭에 푹 파묻혀 있었다. 멀리서 보면 인가(人家)는 전혀 보이지 않고 푸른 대밭만 보이는 동네였다. 20여호의 작은 동네라 대나무숲에 온전히 안긴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향 떠난 지 20년이 넘은 지금은 대밭이 모두 베어지고 황량하고 볼품없는 동네로 변해버렸다. 그 많던 대밭이 무슨 이유로 모두 베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 소유의 대나무밭은 우리 6남매 중 누군가의 등록금으로 팔려 나간 것은 확실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대나무가 '벼과(科) 대나무아과(亞科)의 상록 목본'이라고 나와 있다. 대나무가 벼와 같은 과(科)라는 것이 의외다. 그 얘기 듣고 가만히 살펴보면 댓잎이 벼의 잎과 같은 칼날 모양으로 생겼음을 알 수 있다.


대나무는 그 끈질긴 생명력으로도 유명하다. 이차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가 사라졌을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대나무요, 월남전에서 고엽제 살포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은 것이 바로 대나무라고 한다.

실제로 어릴 때 강 건너에 있는 대밭에서 대뿌리들이 강바닥을 건너 건너편 강기슭에 새로운 대밭을 형성하는 것도 많이 봤고, 아스팔트를 뚫고 대나무가 자라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그런 푸르디 푸른, 절개와 기상의 상징인 대나무의 북방한계선이 바로 '차령(車嶺)'이다. 옛날 학창시절 지리 시간에 열심히 외운 기억이 난다. 대나무란 놈은 본래 따뜻한 기운을 좋아한다. 열대와 아열대, 그리고 온대지방에 널리 분포하며 자란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대나무가 자라는 여건은 제한적이다.


원래 우리나라는 온대지방으로 분류되었다. 온대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최한월(最寒月) 평균기온이 -3도 이상 18도 이하인 기후를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미 아열대 기후로 접어들었다는 연구나 주장도 많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연평균 기온이 상승한 까닭이다.


온대로 분류될때 우리나라 대나무의 북방한계선은 차령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곧 수정되어져야 할 것 같다. 지구의 온난화가 가속되어서 지난 100년 동안 대나무의 북방한계선이 50~100km 상승되었다는 연구가 있기 때문이다.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은 북한산 자락에서도 푸른 대밭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공식적인 대나무의 북방한계선은 차령이다. 우리나라가 온대를 벗어나 아열대로 진입했다는 누적된 데이터가 아직은 적은 탓이다.


따라서 대나무의 북방한계선을 북상시켜느냐 마느냐는 아직 일부 과학자들의 영역이지 우리 일상에서 뚜렷이 구분되거나 논쟁의 주제가 되지는 못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에게 대나무는 생태의 대상이기보다는 의미의 대상일 따름이다. 그리하여 한강 변에 대밭이 생기든 사쿠라가 대쪽 이미지를 뒤집어 쓰든 우리에게 대나무는 사철 푸른 그 절개와 구부러진 데 없이 쭉쭉 뻗은 곧은 지조(志操)의 상징으로 더 의미를 가진다.


감동받기 좋아하고 의미 두기 좋아하는 우리네 평범한 소시민들은 대나무가 가진 올곧은 덕목(德目)을 본받고자 애쓰고 주위에 전파하고 후학들에게 가르치면 될 일이다. 다만 스스로 절개있고 지조있게 살아가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실행(實行)은 언제나 어려운 법이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車嶺의 대나무숲!!


구간 : 금북정맥 제 7구간(차령고개~곡두고개)
거리 : 구간거리(10.9 km), 누적거리(87.9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7년 11월 17일. 흙의 날.
세부내용 :

차령고개(11:05) ~ 송전탑 봉우리(11:30) ~ 헬기장/망배단 ~ 임도 ~ 남근석 ~ 봉수산(11:50) ~ 임도 ~ 송전탑2(12:05) ~ 인제원고개/이수원고개(12:11) ~ 375봉 ~ 430봉(12:48) ~ 430봉/점심후 13:35 출발 ~ 임도 ~ 장(석지골)고개(13:50) ~ 372봉 ~ 개치고개(14:45) ~ 420.9봉(15:15) ~ 옛고개(15:35) ~ 480봉(16:00) ~ 426봉(16:20) ~ 헬기장/440봉(16:50) ~ 곡두고개(17:15) ~ 곡두터널로 탈출(17:30).

총 소요시간 6시간 25분. 만보계 기준 26,800보.

 

11월 17일. 흙의 날. 일기예보에서는 오후 늦게 비가 조금 내리고 기온이 급강하할 거라고 예보하였다. "오늘 까딱하면 비 내리는 밤에 산길 걷게 생겼구만..."

마눌이 태워주는 차 타고 군포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전철 타고 남하하여 천안역에 도착했다. 버스가 있다고 하는데 그 넘 기다리다가는 오늘 안에 들머리 들어서기는 틀렸다. 역 앞에서 택시 타고 차령으로 향했다.


연세가 지긋한 택시기사는 시국 상황에서부터 세상 사는 얘기까지 입담이 보통이 아니다. 옛날 차령고개는 터널이 생기기 전에 워낙 구절양장이라 고개를 넘자면 하루가 다 갈 지경이었단다. 당시 천안사람들은 전라도 땅에서 쌀을 조달했는데 털털거리는 GMC 트럭에 쌀을 가득 싣고 차령을 넘자면 거의 기어가는 수준으로 고개를 넘어야 했다. 그때 도둑들이 산모퉁이에 잠복해 있다가 트럭에 올라타서 쌀가마니를 굴러 떨어뜨려 훔쳐 가는 게 다반사였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그만큼 차령고개가 높고 험했다는 말이다.

옛날 삼남과 중앙을 이어주던 차령고개는 이제 터널이 뚫려 광덕산 등산 가는 사람들이나 우리 같은 정맥꾼들만 넘나드는 한가한 고개가 되어 버렸다. 개발에 밀린 그러나 그 때문에 오히려 한적하고 살기 좋게 변한 마을들을 지나 구불구불 고갯길을 올라 지난번에 내려섰던 차령고개 정상에 올라섰다.


택시비는 22,000원이 나왔다. 지난번 전의까지 20,000원 받은 그 택시기사가 바가지 씌운 것이다.

 

차령/車嶺


높이 240 m. 예산 남동쪽 11 km, 공주 북서쪽 22 km 지점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차유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차령산맥을 넘는 고개로 양장로(羊腸路)를 이루며, 남금강(南錦江)의 지류인 유구천(維鳩川)과 북서류하는 무한천(無限川)이 이곳에서 발원하며, 두 하천의 분수령이 된다.

쌍령산/雙領山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와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 무학리에 걸처있는 산. 높이는 360m 되는 산인데 높은 고개가 쌍으로 되어 있고 조선시대 때 공주 이남에 있는 여러 고을의 조세와 진상물품이 모두 이 고개를 통하여 서울과 아산의 貢稅浦로 운반되었다. 조선시대 때 烽燧臺가 있어서 남쪽으로는 공주시 고등산 봉수와 북쪽으로는 천안시 대학산 봉수에 응하였던 곳이다. 조선시대 문종 때 의적 안수가 이 곳을 지나는 조세와 봉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며 백성들의 호응을 크게 받았으나 끝내는 유의신에게 잡혀 죽으며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 한마디 남긴 말은 "벼슬아치가 딱한게 아니라 벼슬아치에 따르는 그 벼슬아치가 딱하다."라는 苦言은 그를 의적이라고 호칭하게 하는 좋은 苦言이다.
조선시대 때는 한양에 오르는 큰 길이었고 敬天의 상여가 지날 때 양반의 교자도 멈추고 상여에게 예를 올려야 했던 고개가 쌍령고개다. 광덕의 호도나무의 地質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중들이 이곳에서만 호랑이를 두려워 했다 하는데 이곳엔 중만 해치는 호랑이가 있었다 한다. 가파른 쌍 고개가 있다 해서 쌍령산이라 부른다.

인저원/仁儲院

차령고개와 쌍령(雙領)고개 아래에 자리한 마을인데 조선시대 때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던 仁儲院이 있었다. 인저원 또는 인지원, 뒷말, 뒷골이라고도 부른다.

문천리 오직이 고개

섭밭말 위쪽으로 올라가서 광덕면과의 경계. 서해안에 사는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이 고개가 있는데 한 선비가 번번히 과거에 낙방하여 그의 홀어머니가 머리를 깎아서 노자돈을 마련해 주자 그는 이것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오직이고개에 앉아 결심하기를 과거에 떨어지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 오직 이 고개는 다시는 넘지않겠다고 해서 이름이 오직이고개가 되었다.

꼭두재, 곡두티

주막거리 북쪽에 있는 높은 고개.늦은목 고개 위쪽 꼭대기가 되는데 주막거리에서 천원군 광덕면 안심터로 넘어가는 고개다. 고개가 높은 곳에 있다 해서 꼭두재 또는 곡두티라 부른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금북정맥 제 7구간 차령고개~곡두고개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다시 찾은 차령고개.

 

 

 

이 고개는 公州에서 天安으로 통하는 市界로서 호남지방에서 한양으로 넘나드는 三南大路의 가장 큰 고개로 이름나 있었다. 근래에 와서는 강진에서 천안까지 국도 23호선중에서 가장 높은 고개로 알려져 있다. 산의 높이가 360M나 되고 고개 양쪽의 산봉우리가 雙으로 솟아있어 옛날에는 이 고개를 雙嶺고개라고 불렀다.
- 차령휴게소 안내판.

 


      

# 공사가 중단된 차령휴게소.

 

 

 

휴게소 마당에서 스트레칭하고 출발하면서 기록하려고 펜을 찾으니 펜이 없다. 펜과 메모지를 항상 카메라 가방에 넣어 두는데, 지난번 카메라 수리 맡기면서 가방을 모두 비웠다가 다시 채워 넣지 않은 모양이다.

항상 산행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는 편이라 그냥 출발할 수가 없다. 공사하다가 중단한 차령휴게소를 샅샅이 뒤지며 혹시나 버린 볼펜이나 연필이 없나 찾아 헤맸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고 그 흔한 몽당연필 하나 없다.

 

휴게소 좌측 뒷편에 펜션이 있어 혹시나 연필 하나 얻을 수 있을까 가보지만 개들만 컹컹 짖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고~ 오늘은 그냥 기억력에 의존해 보자! (11:05). 휴게소 우측 계단으로 올라갔다. 연필 찾느라 30분을 허비했다.

 


      

# 휴게소 우측 대밭 옆으로 올라갔다.

 

 

 

오늘 구간의 들머리는 차령휴게소 대밭을 끼고 올라간다. 대나무의 북방한계선이 바로 이곳 차령인데, 이 휴게소를 만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대나무밭을 만들었을까? 그랬다면 나름대로 지리적 상식이 있는 사람이고 격을 갖출줄 아는 사람이다. 햇살 따스한 대밭에서 오랜만에 댓잎 서걱대는 소리를 듣는다.

  


                          

# 차령의 푸른 대나무밭.

 

 

 

      

# 그 옆엔 빨간 단풍이 마지막 빛을 발하고 있다.

 

 

 

곧바로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은 계곡으로 가는 길이고 정맥은 우측길로 가야 한다. 시작부터 아주 가파르게 올라 부친다. 가파른 등로엔 낙엽이 가득한데 전부 참나무 낙엽이라 기름지고 미끄럽다. 얼마 가지 않아 종아리가 팍팍 당긴다.

낑낑대며 한차례 밀어 올리면, (11:30)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에 올라선다. 정상엔 해병대에서 만든 삼각점이 있다. 바로 뒤에 임도가 이어지고 그 좌측 뒤에 '헬기장'이 있다.

 


                          

# 시작부터 가파르게 밀어 올린다. 

  

 

                          

#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

 

 

                          

# 넓은 임도가 이어진다.

 

  

      

# 넓은 헬기장.

 

  

      

# 망배단.

 

  

      

# 지난 구간의 정맥길.

  

 

      

#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다. 정맥은 송전선로를 따라야 한다.

 

 

       

# 옛차령고개 옆에 새롭게 뚫린 차령터널로 가는 23번 도로.

 

 

 

헬기장은 규모가 아주 크고 한쪽에 '신년(新年) 해맞이 면민안녕기원비/망배단(面民安寧祈願碑/望拜壇)'이 있다. 새해에 이곳에서 제를 올리는 모양이다.

뒤쪽엔 삼각점이 있고 송전 선로가 가야 할 정맥길과 나란히 이어지고 있다. 다시 임도에 내려 서는데 서너 명의 사람들이 임도 보수작업을 하고 있다. 완전무장한 내 모습에 무장공비 보듯 힐끗 거리길래 인사하고 혹시 연필 남는것 있냐고 물으니 딱 한마디로 대답한다. "없슈!"

임도를 따라 가도 될 것 같은데, 표지기들은 숲속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잠시 위로 올라가자 등로가에 큰 바위 두 개가 나오는데 선답자의 산행기엔 '남근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11:45)

 


      

# 남근석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곳.

 

  

                          

# 옆모습은 쬐끔 비슷해 보이나? 아닌데??

 

 

 

조금 더 낑낑 오르면 묘지가 나오고 그 위에 '봉수산' 정상이 있다.(11:50). 정상엔 허물어진 성터인지 봉수대의 흔적인지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봉수대가 있었나? '鳳首山'인지 '烽燧山'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음 구간 각흘고개에 있는 봉수산은 한자로 '鳳首山'인데...


나중에 자료 확인하니 봉수대가 있던 봉수산(烽燧山)이 맞다.


 

 

                          

# 진짜 철 모르는 놈. 봉수산 무덤가에 꽃을 피워 올린 할미꽃.

 

  

      

# 봉수산 정상.

 

  

      

# 허물어진 봉수대 흔적이 있다.

 

 

 

정상에서 성을 넘어 무심코 직진하면 알바를 하게 된다. 정맥길은 정상에서 도로 뒤로 물러나와 묘지에서 정상에서 봐 우측으로 떨어져 내려야 한다. 봉수산 내리막은 가파르고 미끄럽다. 길게 내려 임도와 다시 만나고, 바로 좌측의 '두번째 송전탑'으로 올라갔다.(12:05).


송전탑 아래에 서면 인제원고개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와 그 곁에 있는 골프장이 내려다보인다. 다시 아래로 길게 내려 '인제원고개'에 내려섰다.

  

      

# 공주 방향 조망.

  

 

      

# 계절의 끝을 잡고...

 

  

                          

# 두 번째 송전탑으로 올라간다.

 

       

#  인제원고개에서 개치고개로 이어지는 375봉, 430봉.

 

  

      

# 고속도로 좌우에 골프장이 조성되어 있다.

 

  

      

# 공놀이 재밌습니까?

 

  

                          

# 인제원고개.

 

 

 

인제원고개는 골프장 철망이 좌측을 막고 있고 우측으로 임도가 휘감아 내려간다. 이곳을 '이수원고개'라고 적은 산행기나 개념도도 있다. 조선시대 때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던 인저원(仁儲院)이 있던 마을이라 인제원고개가 된 듯한데 이수원이라 부르는 연유는 알 수 없다.

절개지를 올라 길고 가파르고 미끄럽게 올라갔다. 몇 번이나 낙엽에 미끌려 미끄링을 했다. 눈길보다 오히려 오르기가 더 힘들다.

낑낑~ 팍팍한 종아리 끌고 봉우리 하나를 오르지만 정상은 아니다. 계단식으로 몇 번 가파르게 오르면 세 번째 봉우리가 정상이다. '430봉'이다.(12:48)

 

                           

# 가파르고 미끄러워 계속 헛발질을 했다.

 

 

 

한숨 돌리고 잠시 아래로 내려 전방의 송전탑3을 향해 가는데, 마루금 우측 사면의 오목한 곳에 누군가 텐트와 파라솔로 집을 지어 두었다. 주변 온 산의 사면에 나뭇가지로 울타리도 만들어 두었다. 무얼 하는 사람일까?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를 올라 우측으로 꺾어 임도를 따르고 바로 숲으로 들어가 '묘지가 있는 봉우리'에 오른다. (13:05) 이곳에서 배낭 벗고 마음에 점 하나를 찍었다.

 


      

# 누군가 이 산속에 집 한 채를 지어 두었다.

 

 

 

체온이 식으며 금방 한기가 들어 30분 만에 점심을 마치고, 묘지 앞에서 좌틀하여 출발했다. 모처럼 편하게 진행하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어 으슬으슬 추워진다. 체온을 올리기 위해 속도를 올렸다. 잠시 후 전방에 '임도'가 나타나는데 곧장 임도를 가로질러 직진으로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임도는 우측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한참 진행하다가 좌틀한다. 다시 잠시 가다가 갈림길이 나와 좌측길로 갔다. 잠시후 좌측으로 트인 곳이 나오는데 송전탑에서 한 바퀴 휘감아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편하게 내려 가다 보면 묘지가 나오고, 그 뒤에 '장고개(석지골고개)'가 나온다.(13:50)


                          

# 임도를 만나 곧장 가로지른다.

  

 

      

# 한 바퀴 휘감아 내려 왔다. 공주시 정안면 태성리 방향.

  

 

      

# 장고개(석지골고개)

 

  

      

# 윗개치 마을 농가 마당에선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고개 좌우로 작은 마을들이 있다. 우측 천안 쪽엔 석지골이 좌측 공주 쪽엔 윗개치마을이 숲 너머로 조망된다. 금북자락에서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눈물나게 정겹다.

다시 가파르게 올라 '372봉'을 넘었다. 이후 고만고만하게 오르내리다가 한차례 밀어 올려보면 아래에 안부가 하나 나와 개치고개인가? 생각했는데 '개치고개'는 '323봉'을 넘어야 나타난다.(14:45)

 

                           

# 잎을 모두 떨궈 흰줄기가 더욱 돋보이는 자작나무 군락.

 

  

      

# 안부에서 지나온 정맥길을 돌아본다. 

 

  

      

# 개치고개.

 

  

      

# 개치고개 좌측 아래는 깎아지른 채석장이다.

 

 

 

개치고개 좌측 아래는 깎아지른 채석장이다. 야간에 저쪽으로 내려간다고 길 택했다가는 아주 가는 수가 있겠다. 정안면 쪽에 있는 개치란 마을때문에 이 고개는 이름을 얻었다.

이제부터는 찐하게 밀어 올려야 한다. 420.9봉은 323봉을 넘으며 숲 너머로 봤는데 그 위용이 만만치 않다. 개치고개에서 고도를 140m나 올려야 한다.

가파르고 미끄러워 미끄러지고 자빠지고 하면서 낑낑 올라 갔다. 낙엽 때문에 오르막 오르기가 너무 어렵다. 종아리가 터질 것 같다. 아주 힘들게 삼각점이 있는 '420.9봉'에 오른다.(15:15)


이후 계속 오르내린다. 오늘 구간 확실하게 오르내린다. 한차례 밀어 올려 보면 전방에 고개와 봉우리 하나가 숲 너머로 버티고 서 있다. 480봉이다. (15:35). 개념도상 '안부사거리'로 표시된 '묵은고개'에 도착했다.


      

# 두텁고 기름진 참나무 잎이 발목을 덮게 깔려 너무 미끄럽다.

 

  

                          

# 420.9봉.

 

       

# 우측 숲 아래에 하얀 교회 건물이 햇빛에 빛나고 있다.


 

      

# 더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 숲.

 

  

                          

# 숲 너머로 480봉이 떡 버티고 섰다.

 

  

      

# 480봉 전 안부에 있는 묵은고개.

 

 

 

고개를 지나면 바로 뒤에 양지바른 묘지가 나오고, 그 뒤로 480봉 오르막이 시작된다. 묘지 위에 서면 지나온 정맥길에 한눈에 조망된다.


다시 빡세게 밀어 올려야 한다. 오늘 구간 정말 힘이 든다. 기름진 참나무 낙엽 때문에 도무지 속도가 안난다. 다시 고도를 140이나 올려야 한다.

한참 밀어 올리는데 좌측 사면은 온통 산불 피해 지역이다. 오래전 일인 듯한데 아직도 보기 흉물스럽고 스치면 옷에 숯검뎅이 묻어 난다. 그러나 산불피해 때문에 낙엽이 적어 올라 가기는 한결 낫다. (16:00). '480봉 정상'에 오른다.


 
                          

# 묘지를 지나 480봉 오름이 시작된다.

 

  

      

# 480봉 우측 사면의 낙락장송.

 

  

# 묘지 위의 조망.  저 멀리 송전탑에서 우측 끝으로(420.9봉) 다시 중앙으로 내려 왔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음.) 

  

       

# 불탄 나무가 있는 480봉 정상.

 

 

 

이후 길게 내려 가는데 곧바로 '능선 갈림길'이 나오고, 능선을 버리고 좌측으로 떨어져 내려야 한다. 백곰님의 표지기가 펄럭이고 있다.

계속해서 서너 차례 능선갈림길이 나와 우로 좌로 꺾어야 하지만 표지기들이 좋아 걱정이 없다. 다만 야간엔 주의가 필요할 것 같다.

 

안부에서 한 차례 올려 '426봉'에 오른다.(16:20). 아래로 내려 '묵은 고개'를 지나고 다시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렸다. 계속 미끄러져 휘청거려야 하는데, 가만 살펴보니 스틱의 바스킷에 낙엽이 뭉쳐 스틱이 땅에 박히지 못하고 낙엽 위에 떠있으니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바스킷을 제거했더니 스틱이 팍팍 박혀 한결 오르기가 낫다. 대신 얼마안가 낙엽들이 꼬치 꿰듯 줄줄이 꿰여 먼지털이개처럼 변했다.

(16:50)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 오른다. 곡두고개 전에 있는 '490봉'이겠지? 그러나 고도계를 확인해보니 '440봉'이다. 지도에도 헬기장은 440봉에 설치되어 있다. 아이구야~ 490봉을 또 하나 넘어야 하는구나!!


      

# 첫 번째 능선 갈림길. 좌로 떨어진다.

 

#  헬기장이 있는 440봉.

 

  

      

# 숲 너머로 엄청난 봉우리 하나가 떡 버티고 있다. 저걸 또 넘어야 한다고??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다. 헬기장을 나와 아래로 길게 내려가는데 좌측 전방에 무시무시하게 높은 산 하나가 떡 버티고 있다. 저게 490봉인가 보다!! 아이구, 큰일 났다!!

묵은 고개를 하나 지나고(이 고개가 아마도 '늦은목고개'인가 보다) 봉우리 하나를 넘는데 380이 찍힌다. 다시 길게 아래로 내려가면 큰 고개가 하나 나온다.(17:15)

어라? 웬 고개? 벌써 곡두고개가 나올 리가 없는데? 지도에는 분명히 490봉을 넘어야 곡두고개가 나오는데? 490봉을 넘지도 않았는데 곡두고개가 나올 리가 없는데? 지도상으로는 전방의 저 위압적인 봉우리가 490봉인데? 저걸 넘자면 이마에 불 밝히고 곡두고개에 내려서야 할 것 같은데?

 

혼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는데 마눌에게서 전화가 온다. 지금 산본에는 비가 많이 온다고 괜찮냐고 묻는다. 비오고 어두워지니 그만 탈출하란다.

다음 번에 이 고개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일단 마눌 말대로 탈출하기로 했다. 고개 좌측으로 방향 잡고 내려가는데 아래에서 비포장 임도가 올라오고 있다. 조금 더 내려가니 터널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 고개가 '곡두고개'가 맞다.어떻게 된 일일까? 지도가 잘못되었나? 아님 내가 490봉을 넘었는데 몰랐나?

 


      

# 곡두고개.

  

 

      

# 아래에는 곡두터널이 지나고 있다. 공주 주막거리 방향.

 

  

      

# 곡두터널로 내려왔다.

 

 

 

어쨌든 한참을 내려 곡두터널 앞으로 내려섰다.(17:30) 곡두터널은 천안과 공주를 잇는 629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차량통행이 자주 있기는 하지만 대중교통은 없다.

몇 차례 시도 끝에 중년 남녀가 타고 있는 SUV차량을 얻어 탔다. 한참 이런저런 얘기하고 가다가 운전하시는 남자분이 혹시 차 안에 무슨 냄새가 나지 않냐고 묻는다. 당연히 내 몸에서 땀냄새가 많이 날거라 미안타고 내 땀냄새가 너무 심하죠? 했더니 자기가 지금 음주운전 중이라고 술냄새 나지 않냐고 묻는 것이다.

허걱????
그때부터 바짝 쫄아서 택시를 탈 수 있는 아무 곳이나 세워주기를 기대하는데, 그분 꿋꿋하게 천안 외곽까지 태워다 주신다. 덕분에 잘 오긴 했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왔다.

이번 구간은 애초에 출발이 너무 늦었고 미끄러운 낙엽 때문에 진행이 늦어 곡두고개에서 멈췄다. 마침 마눌이 전화를 주지 않았다면 '553봉'을 '490봉'으로 착각하고 계속 진행했을테고 그랬다면 꼼짝없이 갈재고개 내지는 각흘고개까지 어두운 밤길을 걸어야 할 뻔 했다.

그나저나 각흘고개까진 남은 구간이 애매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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