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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열네번째(생미고개~까치고개)-白月山을 또 넘다! 본문

1대간 9정맥/금북정맥 종주기

[금북정맥]열네번째(생미고개~까치고개)-白月山을 또 넘다!

강/사/랑 2008. 3. 28. 17:58
 [금북정맥]열네번째(생미고개~까치고개)  

 


금북정맥(錦北正脈) 열네 번째 걸음은 96번 지방도가 지나는 생미고개에서 출발하여 백월산 너머 까치고개까지 17.5km 구간이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지난 주까지 걸었던 충청도 청양 땅을 벗어나 이제부터는 홍성 땅을 가로질러 걷게 된다.

지난 구간의 청양(靑陽)은 그 이름에서 말하듯 푸르고 햇살 밝은 고장임을 자랑한다. 그래서 이름처럼 칠갑산(七甲山), 백월산(白月山) 등 푸르고 밝은 산들에 둘러 싸여 있다. 높은 산이 있으면 깊은 골도 있다. 산 높고 골 깊으면 일교차(日較差) 크다. 큰 일교차는 과실의 맛을 깊게 만든다. 그래서 청양은 단맛 깊은 구기자와 매운맛 깊은 고추가 유명하다.

반면 홍성(洪城)은 '넓을 홍(洪)' 자를 쓰는 이름 그대로 들이 넓은 고장이다. 들 넓으니 특산물도 다르다. 이 고장 사람들은 넓은들에서 키우기 쉬운 딸기를 재배한다. 겨울에는 냉이를 심어서 이른 봄에 시장에 내 놓기도 한다. 들이 넓어 목장도 많다. 홍성 한우는 고기맛 아는 이들을 불러모은다.


고장 이름에 넓을 홍(洪)이 들어 있으니 금북정맥도 이 고장에서는 몸을 한껏 낮춘다. 키 낮춘 산맥은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나즈막한 구릉지대를 형성하여 길게 그 흐름을 이어 홍성을 통과한다.

그러나 정맥이란 큰 흐름이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닐진데, 당연히 이 지방에서도 한 차례 몸을 꿈틀 일으켜 세우기는 한다. 그 시작점이 '백월산(白月山)'이다. 산봉우리에 둥글고 흰 달이 매양 걸려 있어 백월산이라 불렀다.


우리 땅에는 같은 이름의 산이 많다. 가장 흔한 이름은 백운산(白雲山), 봉화산(烽火山), 깃대봉, 옥녀봉(玉女峰), 국사봉(國思峰) 등이다. 자연에 의지해 사는 사람살이의 모습은 특별할 것이 없다. 비슷한 산천에서 비슷한 사연과 모습으로 사는 것이 인간세이다. 그것이 같은 산이름이 많은 이유다.


금북정맥이 지나는 청양과 홍성에도 같은 이름의 산이 있다. 좀 전에 말했던 백월산이 바로 그 산이다. 백월산은 청양에도 있고 인근 고장인 홍성에도 있다. 


청양의 백월산은 높이 570미터의 산으로 보령과 청양의 경계를 이룬다. 예전에는 '월산(月山)'이라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비봉산(飛鳳山)'이라고도 불렀다 기록하고 있다. 청양 백월산은 금북정맥과 기맥이 갈라지는 중요한 분기점(分岐點)을 이룬다.


청양에서 백월산을 넘은 금북정맥이 들 넓은 홍성으로 접어들면 이곳에서도 같은 이름을 가진 산을 만나게 된다. 홍성의 '백월산'이다. 높이 393.6m로 청양 백월산보다는 약간 낮다. 하지만,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 있어 그 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 일부 지도에는 '일월산(日月山)'이라 표기가 되어 있는데, 아마도 '흰 白'자를 '날 日'자로 잘못 읽은 탓인 듯하다.


홍성 백월산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지만,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용봉산(龍鳳山)과 더불어 홍성의 병풍(屛風)을 이루고 있다. 홍성은 원래 '홍주(洪州)'였다. 이름에 '고을 주(州)'가 들어 있으니 옛 시절 지역 행정과 경제의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역 살림살이의 병풍을 이뤘으니 의미가 컸다.  그렇게 백월산과 용봉산은 홍성의 진산(鎭山)이 되었다.


전설에 이르기를 백월과 용봉에는 각기 장수(將帥)가 살고 있었다. 둘은 한 여성을 사이에 둔 연적(戀敵)이었다. 어느날 둘은 여성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돌싸움을 벌였다. 제각기 자기 산의 돌을 상대방을 향해 던진 것이다. 치열한 싸움의 결과 백월의 장수가 이겼다. 그리하여 용봉산은 돌이 가득한 악산(岳山)이 되었고 백월산은 흙이 풍성한 육산(肉山)이 되었다.

 

금북정맥 열네 번째 걸음은 이런 여러 이야기가 서린 홍성의 백월산을 넘게 된다.



白月山을 또 넘다!

구간 : 금북정맥 제 14구간(생미고개~까치고개)
거리 : 구간거리(17.5 km), 누적거리(185.7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8년 2월 9일. 흙의 날.
세부내용 :

생미고개(10:10) ~ 3.1운동 기념비 ~ 도재고개 ~ 교회묘역 ~ 오거리 ~ 홍광농장 ~ 미생물연구소 ~ 아홉골고개(11:35) ~ 열녀묘 ~ 갈마고개 ~ 포장도로 ~ 161.9봉/점심후 13:27 出 ~ 107봉 ~ 신성역(14:00) ~135봉 ~ 꽃조개고개(14:35) ~ 한용운선생동상 ~ 남산 ~ 수리고개 ~ 맞고개 ~ 철탑 3개 ~ 하고개(16:08) ~ 홍주 의병비 ~ 136.2봉 ~ 살포쟁이고개 ~ 281봉 ~ 전망대 ~ 330봉 ~ 헬기장 ~ 헬기장 ~ 백월산(17:30) ~ 팔각정 ~ 주차장 ~ 까치고개(18:20).

총 소요시간 8시간 10분.

 


2월 9일. 흙의 날. 일 주일만에 다시 금북길에 나섰다. 기상청에서는 중부지방과 충청지방에 눈소식을 전한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빠져 나오니 이미 길에 눈이 얇게 깔려 있다. 이 정도로 그쳐야 할텐데...

그러나 서해안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비봉, 화성쪽으로 내려 가는데, 점점 눈발이 강해지더니 서해대교 근처에 이르자 완전히 폭설 수준으로 퍼붇기 시작한다. 차들이 일제히 비상 깜빡이를 켜고 거북이 모드로 들어간다. 서해대교 높다란 교각이 눈발에 가려 뵈질 않는다.

"어떡한다? 서해대교 중간에 있는 행담도 휴게소로 빠져 차 돌려 집에 갈까? 오늘이 설날 연휴 끝무렵이라 귀경 차량들도 많이 밀릴텐데... 눈까지 이렇게 퍼부으니 산에도 못 가고 하루종일 길 위에 갇혀 있을 확률이 높은데... 어쩌나, 어쩌나??" 서해대교를 엉금엉금 지나면서 가느냐 마느냐로 한참을 갈등했다.

그러나 새벽같이 일어나 짐 챙겨 길 나선게 너무 아깝다. "일단 가는 데 까지 가 보자! 금북아, 지둘려!!"

 

 

용봉산과 백월산 장수의 싸움


우리 고장에 용봉산과 백월산이 있잖어. 저기 저 산 말여. 저 두 산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잖어. 저기 저 산 좀 봐. 두 산에 크고 재미있게 생긴 돌들이 참 많잖어.특히 용봉산에는 온통 돌이 뒤덮이다시피 했단 말여. 그리고 이 두 산 사이에 소향리라고 하는 마을이 있단 말여. 소향리는 백월산이 있는 홍성읍 소속이구 말여. 여기에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 옛날에 저 용봉산과 백월산에 장수가 각각 살고 있었다는구먼. 그런데 용봉산과 백월산 사이에 소향이라고 하는 아주 예쁜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는 거여. 이 두 장수가 소향 아가씨를 짝사랑했었대. 그런데 건너편 산에 있는 장수가 눈에 가시란 말여. '저놈만 없으면 소향 아가씨는 내 차지가 될 텐데!' 하고 말여. 두 장수는 서로 상대편 산에 있는 장수를 경계하며 눈치만 살피고 있었어. 그러다가 마침내 큰 싸움을 벌이게 되었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어. 자기 쪽 산에 있는 돌을 집어서 상대편 산 쪽으로 던지기 시작했어. "에잇 받아라 이놈아!" 두 장수는 상대편 장수를 쓰러뜨리기 위해 쉬지 않고 돌을 던졌어. 힘 센 장수들이 던지는 돌이니께 얼마나 정신없이 날아갔겠어? 아마도 쌩쌩 소리를 내며 포탄처럼 날아갔겠지. 그렇게 치열한 싸움을 벌인 것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러. 한 일주일 쯤은 싸운 모양이여. 점점 두 산에서 던지는 돌이 용봉산 쪽에 많이 쌓이기 시작했어. 백월산 장수가 돌을 더 많이 던졌기 때문이지. 마침내 치열하던 싸움이 끝났어. 백월산 장수가 싸움에서 이긴 거여. 그 덕분에 백월산에는 그 많던 돌들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는 거여. 하지만 용봉산에는 백월산 장수가 던진 돌들이 많이 쌓여서 기암괴석이 많게 되었다는구먼. 결국 두 산의 가운데 살았던 소향 아가씨는 백월산 장수의 차지가 된 거지. 그 바람에 홍성군 홍성읍과 홍성군 홍북면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던 소향리도 백월산이 있는 홍성읍의 차지가 되었구 말여.

생미/生米

오미(梧尾) 서남쪽의 마을을 성산(城山) 산양(山陽)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을에서 쌀이 잘 되고 땅이 기름져서 좋은 쌀을 생산하는 마을이라 생미라고 부른다.

하고개

황우고개라고 부르는데 옛날에 洪州牧使가 홍주읍내를 바라보기 위해 자주 올랐던 고개이며 홍주를 지나 서산으로 가는 행인들이 쉬면서 말과 소에게 풀을 먹이고 사람은 한숨 돌리는 고개라 하고개, 하우고개, 황우고개라고 부른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금북정맥 제 14구간 생미고개~까치고개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다행히 홍성 가까이 오자 눈이 그치고 해가 나기 시작한다. 광천나들목 나와 96번 도로타고 광천읍 방향으로 달리는데 길이 눈에 덮여 군데군데 얼어 있다.

이 길에서도 한참을 시간 소비를 한 후에야 지난 주 내려왔던 생미고개에 도착했다. 고개 너머 장곡면 농협창고 공터에 주차하고 다시 고개로 올라 산행을 시작했다.(10:10)

 

 

      

#  광천 가는 96번 도로가 지나는 생미고개. 

 

 

 

그런데 시작부터 들머리를 찾아 헤맸다. 여기는 표지기들이 전혀 없다. 일단 신동마을 표지석 뒤쪽 야산으로 올라가보았다. 잡풀을 헤치고 올라가니 잡풀 무성한 밭이 앞을 가로막았다.

잡풀을 헤치고 진행하는데 밭이 끝나자 더이상 길이 뵈질 않는다. 별수 없이 좌측 폐가 쪽으로 방향을 틀어 시멘트도로에 내려섰다. 생미고개에서 그냥 길 따라 가면 되는데 괜히 마루금 찾는다고 하다 생고생만 했다.

 

# 잡풀을 헤치고 나왔더니 바지에 도깨비들이 잔뜩 붙어 있다.

 

  

신동리로 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 길게 진행했다. 길이 눈에 덮혀 하얗게 빛난다. 잠시후 '장곡면 3.1운동 기념비'를 만났다.

 


# 눈덮인 하얀 길이 나름 운치가 있다.

 

 

 

# 장곡면 3.1운동 기념비.

 

 

 

# 이 땅 곳곳에 애국의 혼이 서려 있다.

 

 

다시 시멘트 도로 따라 진행했다. 잠시후 '도재고개'에 이르고, 시멘트 도로를 버리고 좌측 숲길로 들어갔다. 비포장 수렛길이 이어진다.

출입을 금하는 살벌한 문구가 적힌 광천교회 묘역을 지나고, 길게 진행하는데 군데군데 갈림길이 나타나지만 넓은 수렛길을 따르면 된다. 오늘 구간은 시작부터 산행이라기 보다는 들판으로 산책나온 기분이다. (10:47) 오거리에 도착했다.

 



#  자가용 경운기를 타고 설날 나들이 가시는 노부부. 흐뭇한 광경이다.

 

 

 

#  도재고개.

 

 

 

#  광천교회 묘역.

 

 

 

# 오거리.

 

 

조금 더 진행하여 '홍광농장'을 지나면 '파란색 둥근 건물이 있는 삼거리'를 만나고, 이곳에서 좌틀하여 길게 진행한다. 축사가 있는 갈림길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매지만 그냥 직진하여 언덕을 넘으면 된다. 언덕 위에는 빨간벽돌 주택이 있다.

잠시후 'T자형 삼거리'를 만나는데 포장 도로가 지나고 있다. 우틀하여 잠시 가면 '미생물 연구소'를 만나고 바로 앞에 사거리가 있다. 이곳에서 갑자기 앞을 분간하기 어렵게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침 사거리 우측에 빈 축사가 있길래 얼른 그쪽으로 대피했다.

 


# 둥근 건물이 있는 삼거리에서 좌틀.

 

 

 

# 축사를 지나 저 언덕을 넘어야 한다.

 

 

 

# 눈망울이 선한 누렁이. 산행이 아니라 들판을 걷다보니 이런 풍경도 보게 된다.

 

 

 

# 저 멀리 백월산이 보인다.

 

 

 

# T자형 삼거리에서 우틀.

 

 

 

# 미생물연구소를 지나는데,

 

 

 

# 갑자기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축사는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어 깨끗하고 냄새도 없다. 10여 분 눈을 피해 축사에서 휴식했다. 그 속에서 눈에 대한 대비를 했다. 배낭에서 고어자켓을 꺼내 입고 카메라에 뒤집어 씌울 비닐도 준비했다.

10여 분 앞이 안보이게 쏟아지던 눈발이 점차 가늘어졌다. 바깥에는 아직 눈이 내리고는 있지만 더이상 지체할 수 없어 그냥 출발했다. 다행히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눈이 그치고 햇살이 쨍쨍 비춘다. "이게 뭐야??? 호랑이 장가 가나??"

언덕을 넘어 마을을 지나자 시골에서 보기 드문 '삼층집'이 나타난다.  다시 언덕을 하나 더 넘자 '아홉골 고개'가 나타난다.(11:35)

 


# 설 쇠러 고향집에 온 젊은 부부는 애기에게 연날리기의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다.

 

 

 

# 언덕 위 옹벽에 누군가 길표시를 해 두었다.

 

 

 

# 눈 오는 설연휴에 그대는 혼자 뭐하시는고?

 

 

 

# 아홉골 고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아홉골고개엔 독립가옥과 버스정류소가 있다. '원천리 중원마을'이란 표지석도 서 있다. 사거리 우측 위에 고개 정상이 있고 제법 웅장한 마루금이 뒤로 이어지고 있다.


저기가 정맥 마루금인가? 그런데 독립가옥 바로 뒤에도 산줄기가 뒤로 이어지고 있다. 좌우 어느 쪽에도 표지기는 없다. 지난 주 같은 홀로산꾼인 백곰님이 이곳에서 들머리를 찾아 헤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때 자세히 듣질 않아서 어디로 가야할 지 잘 모르겠다.

좌측 고개 아래로 내려가서 들머리를 찾아야 하는데, 그냥 마을길 따라 직진하는 헛짓을 하고 말았다. 잠시 마을길 따라 내려가면서 이 아홉골이란 마을은 골짜기가 아홉개인가? 마을 이름 유래를 나름 짐작해 보며 몇몇 집 사이를 지나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지도 꺼내 확인해보니 마을 뒤 좌측 산줄기가 정맥길이다. 그곳 마을 뒤쪽 산마루에 작은 사당 하나가 서 있다. "저기가 열녀 난향의 묘인가?" 그 사당을 목표로 뒷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길도 잘못된 결정이었다. 그냥 마을길따라 계속 가다가 좌측으로 고개를 오르면 정맥과 합류하는데 엉뚱한 고생만 했다.

잡목을 헤치고 산마루에 올라서고 사당 앞에 갔는데 아무 현판도 표식도 없다. 아마도 이 마을의 산신각인 듯하다. 주변지형을 살피니 그 다음 능선이 정확한 정맥길인 것 같았다. 다시 무성한 잡목을 헤치고 긁히고 넘어져 가며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치고 올라 정확한 마루금에 합류했다.

오늘은 산같지도 않은 곳에서 두 번씩이나 길을 잃고 생고생을 했다. 온 몸에 달라붙은 먼지며, 도깨비 바늘 등을 털어내고 잠시 편안한 길 따라 진행했다. 축산농가가 있는 고개를 지나자 언덕 위에 '열녀 난향의 묘'가 있다.

 

 

# 정맥 마루금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산신각.

 

 

 

# 열녀 난향(烈女 蘭香)의 묘.

 

 

 

"난향(蘭香)이라면 기생의 이름인데?" 비문을 읽어 보니 과연 그렇다. 난향은 조선 숙종때 평양의 기생으로 평양감사와 정분을 나누었는데, 정인(情人)이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떠난 후 후임사또의 수청을 거절하고 우물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춘향전의 스토리와 비슷하다.


그런데 죽지않고 살아나서 서울까지 정인을 찾아 갔다. 정인은 이미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 홍주로 내려갔고, 다시 서울에서 홍주까지 걸어 찾아갔지만 님은 이미 세상을 떠났더라. 그래서 그의 무덤가에서 홀로 시묘살이를 하다가 그 무덤가에서 죽었더라... 뭐 이런 내용이다. 만남의 시간은 짧았지만 일생을 건 사랑얘기였다.

잠시 머리 숙여 난향의 넋을 위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멋진 소나무와 한 칸짜리 집이 있는 농장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자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마고개'에 도착한다.(12:18)

 


# 언덕 위의 한 칸짜리 집.

 

 

 

# 갈마고개.

 

 

 

갈마고개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명당이 있어 '갈매재', '말고개'라고 불렀다고도 하고, 역정(驛丁)이 있을 때 말이 목을 축이던 못이 있어서 얻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포장도로가 지나고 축산농가들이 자리하고 있다. 언덕을 올라서자 넓은 수렛길이 이어진다.

수렛길을 따르다 묘지 뒤에서 우측으로 꺾어 잠시 내려가면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개'를 지나고 그 뒤로 비로소 산 모습을 한 봉우리들이 나타난다. 도로를 건너 묘지 옆으로 올라 두 차례 밀어 올리고 아래로 잠시 내린 후 다시 한 차례 올려 '161.9봉'에 오른다.(12:55)

 


# 비로소 산모습을 한 산줄기가 나타난다.

 

 

 

# 161.9봉.

 

  

정상엔 삼각점이 있고 산 너머로 장항선 열차 지나는 소리와 21번 도로의 차량 달리는 소리가 씽씽 들린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하도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낮은 구릉지대만 지나다보니 이 정도의 산에서도 고도감이 느껴진다. 햇살 따스한 이 곳에서 마음에 점 하나 찍었다.

(13:27) 점심 마치고 출발하려는데, 해가 사라지고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으슬으슬 추워져서 얼른 속도를 냈다. 길고 편하게 내려 '벌목지'를 지나고 '송전탑'을 지나 '잡풀 무성한 헬기장'과 묘지를 지나 잠시 오르면 '107봉'이다.

아래로 내려 고개 좌측으로 마을길 따라 내려가는데 개 사육농가의 개들이 난리다. 잠시 후 장항선 철길이 지나는 '신성역'이 나타난다.(14:00)

 

신성역은 장항선의 작은 간이역으로 한적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철길을 지나 역사를 통과하고, 마을 한 가운데를 지나 뒷산으로 올라갔다. 여러 차례 구불구불 휘어지고 오르내린 후 한 차례 더 밀어 올려 '135봉'에 올라섰다.


 


# 이 넘의 울음 소리를 우리 고향에서는 "담배담배..."라고 표현했다.
 

 

 

 

# 신성역과 뒤쪽의 정맥 마루금.

 

 

 

#  작은 간이역인 신성역.

  

 


# 너무 착해 슬퍼 보이는 신성리의 강아지.

 

 

 

숲 너머로 꽃조개고개의 아파트와 모텔이 보인다. 이곳에서도 잠시 알바 한 후 우측으로 떨어져 내려 '마온아파트' 옹벽 위에 서면 '꽃조개고개'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신설도로와 '그리메'란 음식점, 만해 한용운 선생 동상과 그 뒤로 남산과 정맥줄기가 이어진다.

가파른 절개지를 내려 신설도로에 내려서고 잠시 좌측으로 가면 넓은 21번 도로가 지나는 '꽃조개고개'에 내려섰다.(14:35)

 


# 꽃조개고개의 마온아파트.

 

 

 

# 마루금을 잘라먹고 신설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 그리메란 음식점, 우측의 만해동상 뒤로 남산과 정맥줄기가 이어진다.

 

 

 

'꽃조개고개'는 이름이 참으로 예뻐서 뭔가 대단한 전설이나 유래 있을 법 하다. 하지만, 홍성문화원에서는 단지 이곳에 진달래가 많이 펴서 꽃동산을 이루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선 꽃을 보며 즐기던 고개라 꽃조개고개라 한다고 알려준다. "아닌데? 단순히 꽃동산이라서가 아니라 뭔가 있을텐데...."

차량통행이 뜸할 때를 기다려 얼른 도로 건너 절개지를 올라갔다. 그냥 절개지 옆 사면을 따라 남산으로 올라가면 빠를 것이지만 이곳에서 만해선생의 모습을 뵙지 않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메'란 음식점 마당을 지나면 만해 한용운 선생의 동상이 나온다. 만해 선생의 동상이 이곳에 세워져 있는 이유는 투철한 독립투사요 뛰어난 시인이었던 만해선생이 이 지방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 잠방굴이라는 곳에서 고종16년(1879) 8월 29일에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 투철한 민족정신의 상징인 만해선생님.

 

 

 

# 강인한 기상이 느껴진다.

 

 
만해 선생님의 얼굴 뵙고 잠시 묵념으로 그 뜻을 기리고 남산 오름에 들어섰다. 찾는 이가 많은지 남산오름은 잘 가꿔져 있다. 넓찍한 등로에 가파른 오름을 계단으로 정비해 두었다. 한차례 헉헉 소리나게 밀어 올려 남산 갈림길에 도착했다.

 

 

# 기상 좋은 소나무 숲길따라 위로 올라 갔다. 

 

 

 

# 남산 오름 중간에 넓은 묘역이 나타나 꽃조개 고개 일대를 돌아 본다.

 

 

 

남산 정상은 정맥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정상은 생략하고 갈림길에서 좌측길로 떨어져 내려가는데 눈이 많이 있어 아주 미끄럽다. 한참을 내려 묵은 고개에 도착하고, 다시 봉우리를 하나 넘고 아래로 길게 내려 가면 '수리고개'가 나타난다.

 


# 수리고개.
 

 

  

수리고개는 홍성읍 동리에서 구항면(龜項面) 마온리 수리너머로 가는 고개인데, 고개에 서낭당이 있었다 해서 '서낭당고개'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지금은 서낭당도 없고 사람의 왕래도 뜸하다. 고개 우측으론 신설도로인 홍성남부 우회도로가 건설중이고 정맥 아래를 관통하는 터널이 내려다 보일 뿐이다. 고개를 지나 '146봉'을 낑낑 넘고 포도밭을 지나자 시멘트도로가 지나는 '맞고개'에 이른다.(15:30)

 


# 이 길을 내려 포도밭을 지나면 맞고개에 이른다.

 

 

 

우측으로 잠시 가서 오름에 붙었다. 송전탑과 묘지들을 지나 낑낑 오르는데, 숫자를 750까지 세고서야 정상에 설 수 있다. 고도계에 205가 찍힌다.

 

정상 너머로 65번 철탑을 지나고 아래로 길게 떨어져 내렸다. 66번 철탑을 지나고 잠시 가자 깎아지른 절개지가 앞을 가로 막는다. 21번 도로가 지나는 '하고개'다. 고개 우측으로 홍성읍이 보이고 건너편 백월산이 위압적이다.(16:08)

 


# 오름 중간에 지나온 정맥길과 터널, 남산을 돌아 본다.

 

 

 

# 신설도로와 그 아래 21번 도로가 지나는 하고개.

 

  

대간 정맥 중 가장 흔한 고개 이름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고개'입니다. 하고개는 보통 '하우고개', '하오고개' 등으로도 불리는데, 고개가 높고 가팔라 사람이나 짐승들이 고개를 넘을 때 내는 헉헉 소리를 고개 이름에 갖다 붙인 경우다. 대간길, 한남길, 한북길 모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가파른 절개지를 내려 하고개에 내려 서고 이곳에서 끊어야 할지 계속 진행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백월산을 넘어 까치고개까지는 4.3KM를 더 가야 하는데, 그러자면 6시 30분쯤 되어서야 하산할 수 있다. 결국 막판엔 이마에 불을 밝혀야 한다는 얘기다.

어떡한다? GO? STOP?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승합차의 운전수가 날 보더니 웃으며 거수경례를 한다. 완전무장하고 산길 걷고 있는 모습이 대견해 보였나 보다. 거기에 자극받아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지금 차량 회수해서 고속도로 타 봐야 귀경차량들로 주차장이 되어 있을 거다!

차량 통행 뜸할 때를 틈타 재빨리 도로를 횡단했다. 맞은편 절개지를 치고 오른 후, 다시 작은 포장도로를 건너는데 '홍주 의병 기념비'가 서 있다. 홍성이 역사가 깊은 고장이라더니 우국충절의 역사 또한 깊다.

 


# 홍주의병 기념비.

 

  

이제부터 제대로 된 정맥길을 걷게 된다. 한차례 밀어 올려 삼각점이 있는 '136.2봉'에 오른 후, 잠시 진행하여 68번 송전탑을 지나고 서너 차례 오르내리면 '살포쟁이고개'에 이른다.(16:52)

 


# 몇 차례 오르내리고 쭈욱 밀어 올려야 백월산에 오르게 된다.

 

 

 

# 백월산 정상부의 돌탑이 선명하다.

 

 

 

# 살포쟁이고개.

 

 

 

살포쟁이고개는 옛날에 죄인이나 짐승들을 죽였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당산나무가 있고 허물어진 돌탑 흔적이 있다.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리는데 오름 중간에 하산하는 부부 산꾼을 만났다. 이 지역 사람들인데 백월산 정상을 보고 내려 오는 길이란다.

(17:13)'281봉'에 오른 후, 잠시 내렸다가 다시 빡세게 암릉구간을 치고 오르면 그 상단부에 '바위 전망대'가 있고 전방으로 조망이 훌륭하다.

 



# 전망대에서 지나온 정맥길을 돌아본다.

  

 

 

다시 한차례 더 올라 갈림길이 있는 '330봉'에 오르지만 아직 정상은 한참을 더 가야 한다. 잠시 내리면 '헬기장'이 나오고 한차례 위로 밀어 올리면 숲을 벗어나게 된다. 그곳에 정상으로 이어진 '시멘트 도로'와 '헬기장'이 있다. 다시 숲으로 들어가 한차례 올려 '백월산 정상'에 섰다.(17:30)

 


# 헬기장과 너머의 백월산 정상.

 

 

 

# 어느새 석양이 진다.

 

 

 

# 백월산 정상.

 

 

 

# 정상 너머의 산신각과 팔각정.

 

 

 

# 구항면쪽 파노라마. 서산에 기우는 해가 白月처럼 보인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사진을 볼 수 있음)  

 

 

 

# 홍성읍쪽 파노라마와 우측의 지나온 정맥길.(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사진을 볼 수 있음) 

 

 

 

# 정상석.

 

 

 

백월산 정상은 지금까지의 금북길 중 최고의 조망을 선사한다. 칠장산에서 이곳까지 이를 동안 이렇게 사방으로 툭 트인 조망을 보여 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아~~ 좋타!!!" 팔 벌려 크게 호흡하며 천지기운(天地氣運)을 받아 들였다. "흐흐흐으읍~~!!!"

백월산 정상엔 돌탑과 산불감시 카메라가 있고 홍성산우회에서 세운 정상석이 깔끔하다. 정상 너머엔 주차장이 있어 이 꼭대기까지 차량이 올라 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정상에서 내리면 강아지 머리 모양의 큰 바위가 있다. 누군가 그 앞에서 치성을 올린 흔적이 있다. 잠시 가면 산신각이 있지만 마음이 급해 아래에서 눈도장만 찍고 팔각정 쪽으로 갔다. 팔각정 뒤에는 코뿔소처럼 생긴 바위가 있고 그 너머로 하산길이 있다.

 


# 진돗개처럼 생긴 바위.

 

 

 

# 팔각정과 천제단.

 

 

 

# 코뿔소처럼 생긴 저 바위 뒤로 하산길이 이어진다.

 

 

 

# 하산길의 조망.

 

 

 

백월산 하산길은 급경사 내리막이다.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아주 미끄럽고 위험한데 마음이 급해 아이젠은 생략하고 그냥 진행했다.

엉금엉금 자세를 낮추고 내려 가는데, 무릎에 힘이 많이 들어가 시큰시큰했다. 길게 길게 내려가면 전방이 툭 트이며 주차장과 상가지역이 나타난다. 그대로 직진하여 작게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면 휴게소 식당이 나오고,'까치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18:20

 


# 아주 미끄럽고 위험하게 내려갔다. 중간에 정상을 돌아본다.

 

 

 

# 주차장과 식당들이 나온다.

 

 

 

# 까치고개. 도로 따라 다음 구간 들머리가 이어진다.

 

  

하고개에서 출발할 때 이마에 불 밝히고 내려 올 것을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둡기 전에 산행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해가 많이 길어진 덕분이다. 천지신명께 무사산행을 감사드리며 산행을 마쳤다.


오늘 구간은 처음엔 홍성이란 이름에 걸맞게 넓은 들판의 나즈막한 야산지대를 허위허위 걸었고, 막판엔 백월산에서 금북길 최고의 조망을 감상할 수 있는 구간이다. 무엇보다 역사의 고장인 홍성의 진면목과 충절의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어 의미가 깊었다. 과연 홍성은 넓고도 깊은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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