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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잔차 이야기]두 바퀴로 속초까지-髀肉之嘆!! 본문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강물이 생사(生死)가 명멸(明滅)하는 시간 속을 흐르면서 낡은 시간의 흔적을 물 위에 남기지 않듯이, 자전거를 저어갈 때 25,000분의 1 지도 위에 머리카락처럼 표기된 지방도, 우마차로, 소로, 임도, 등산로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몸 밖으로 흘러 나간다.
흘러 오고 흘러 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생사가 명멸하는 현재의 몸이다.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이 현재의 몸 속에서 합쳐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고, 가려는 몸과 가지 못하는 몸이 화해하는 저녁 무렵의 산 속 오르막길 위에서 자전거는 멈춘다. 그 나아감과 멈춤이 오직 한 몸의 일이어서, 자전거는 땅 위의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외롭고 새롭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純潔)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祝福)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 ‘신비'라는 말은 머뭇거려지지만, 기진한 삶 속에도 신비는 있다. 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마디에서, 기어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 김훈, 자전거 여행 프롤로그 -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등으로 침체한 한국 소설계를 강타한 탁월한 이야기꾼 '김훈' 작가는 시사 주간지 편집장을 하던 어느 날, 쉰이 넘은 나이에 '풍륜(風輪)'이라 이름 붙인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를 했다. 그리하여 몸을 움직여 바퀴를 굴리고 그 바퀴의 궤적으로 전국을 섭렵하였다. 몸의 흔적에도 이야기는 남는다. 하물며 작가의 움직임에 어찌 이야기가 없겠는가? 풍륜과 작가의 움직임 뒤에 '자전거 여행'이란 멋진 길 이야기가 탄생했다. 몸으로 나아간 길에 마음으로 이어진 글이 따라갔다. 그 글에서 김훈 작가는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모든 길은 몸속으로 흘러 왔다가 몸 밖으로 흘러간다"고 얘기했다.
세상의 길들이 몸으로 흘러와서 흘러간다? 정말 멋진 표현이다. 세상의 길에는 산 마루금으로 이어진 길도 있다. 두 발로 걸어서 이 땅의 모든 산줄기를 누비는 우리 산꾼들도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이 땅의 산길을 흘러 흘러다니는 것일 터이다. 나 역시 그렇게 흘러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큰 흐름을 잇고, 다시 한남정맥과 한북정맥, 금북정맥과 한남금북정맥의 흐름을 모두 두 발로 흘러다녔다. 그 긴 흐름 속에서 얻어 낸 것이 뭔지는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몸의 힘으로 그 산길을 저어 나갔다. 그 길의 끝에 김훈 작가처럼 이야기 한 소절 쯤은 남았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두 발로 산줄기의 흐름에 몸을 맡겨 흘러다니던 강/사/랑은, 한편으로 두 바퀴로 세상의 길들을 흘러 흘러다니는 것에도 푹 빠져 있었다. 자전거는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가장 순수한 이동 수단이다. 그 순수함에 끌리는 바 있어 두 발로 산길 걷는 틈틈이 바퀴 굴려 들길을 누볐던 것이다.
그리하여 접이식 철티비를 구입해서 차에 싣고 다니면서 산길과 들길을 달리기도 하고, 가까운 근교 나들이는 자전거로 이곳저곳 누비고 다니곤 했다. 그러다 약간의 돈을 투자해서 MTB를 구입한 후 출퇴근도 자전거로 하고 산길도 올라 가 보고, 서해안의 대부도, 제부도 등 바다 구경도 다녔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게 질병이란 손님이 나를 찾아왔다. 몸이 고장나니 몸을 움직여 하던 모든 일이 중단되었다. 산꾼으로 산길을 누비던 발길도 바퀴 굴려 들길 달리던 잔찻길도 더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주인의 몸이 병에 붙들리니 내 자전거도 활력을 잃고 베란다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1년여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많은 일을 겪은 후 몸도 마음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몸과마음에 힘이 생기니 다시 산길과 들길이 그리워졌다. 그리하여 조심스레 동네 주변부터 시작해서 산길을 걷기 시작했고 점점 범위를 넓혀 먼 곳의 산을 찾아 길을 나서기도 했다. 산길이 열리니 바퀴를 굴려 들길 달리던 옛 생각도 다시 일어났다. 바퀴는 원래 가벼운 레저 수단이 아니라 먼 곳으로의 이동수단이다. 두 발로 걷어 몸을 움직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동력을 가진 탁월한 교통 수단이다. 그러니 베란다에 발이 묶여 있는 자전거에 자주 눈길이 갔다. 눈길 잦아지니 마음도 일어난다. 그렇게 산길 걷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넘치는 자전거의 바퀴가 나를 결국 다시 길 위로 불러들였다. 베란다 한 켠에서 주인을 원망스레 바라만 보던 녀석을 갖고 나와 이곳저곳 나사도 조이고, 체인에 기름도 치고, 타이어에 바람도 채워주었다.
그렇게 두 바퀴로 세상의 모든 길을 몸속으로 받아들이고 흘러 내 보내면서, 강/사/랑의 길사랑은 다시 시작되었다. 김훈 작가의 말처럼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된 일이기에!
일시 : 2008년 9월 27, 28일 세부내용 : 군포시 ~ 인덕원 ~ 과천 ~ 양재동 ~ 수서IC ~ 올림픽공원 ~ 길동사거리 ~ 상일IC ~ 하남시청 ~ 팔당대교 ~ 6번 국도 ~ 양평행 옛길 ~ 6번 국도 복귀 ~ 양평 만남의광장 ~ 옥천교차로 ~ 44번 국도(홍천행) ~ 기분좋은휴게소 ~ 용문터널 ~ 용머리휴게소 ~ 클린턴휴게소 ~ 길옆 모텔에서 1박 모텔 출발 ~ 며느리재휴게소 ~ 홍천 ~ 연봉삼거리 우회전 ~ 홍천 만남의 광장 ~ 팜파스휴게소 ~ 신남 ~ 군축교 ~ 인제 ~ 한계삼거리 ~ 십이선녀탕휴게소 ~ 용대삼거리 ~ 진부령 갈림길 ~ 미시령 옛길 갈림길/자전거 펑크 ~ 미시령 점프 ~ 속초/자전거수리 ~ 속초해수욕장.
2008년 9월 27일. 천삼백 리 낙동정맥 종주를 함께 하던 낙동 동지들은 한 사람은 호남정맥으로 들어가고 다른 한 사람은 밤 따러 어느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애초엔 금남호남정맥을 하러 전북 장수로 내려가려고 짐을 챙겼다. 그러나 막상 짐을 챙기고 출발하려고 하니 토요일 트래픽이 시작된 고속도로를 3~4시간 운전해서 가려고 한다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내저어진다.
그때 베란다에서 툴툴거리고 있던 잔차녀 석이 같이 먼 길 가자고 추파(秋波)를 던진다. "주인님, 가을빛 물들어가는 강원도 산길 달려 보고 싶지 않으세요? 미시령 내리막 최고 속도로 날아내려 시속 70km 이상 찍어보고 싶지 않으세요? 속초 앞바다에 손 담가 세파에 찌든 시름을 씻어내고 싶지 않으세요?"
음... 너의 뜻이 그리하니 우리 같이 속초로 한번 내달려 보자!
# 두 바퀴의 궤적. 음... 국토를 거의 횡단했구나.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240km. 금호남정맥에서 급히 속초 자전거 여행으로 방향을 바꿔 채비를 차린다. 갈아 입을 옷 두 벌과 대형 카메라, 수리 도구 등을 챙기는 바람에 짐이 많아져서 자전거 배낭 대신 소형 등산배낭을 챙긴다.
보통 자전거 여행족들은 서울 북동쪽에서 출발을 하지만, 나는 산본 집에서 출발하니 일단 전체 거리가 더 멀어진다. 걱정이 태산인 마눌 안심시키고 집을 나선다. 12:00
# 이렇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니 20대로 보인단다. ^^*
요 며칠 갑자기 기온이 급강하해서 자전거 위에서 느끼는 바람이 차갑다. 타이즈를 긴 걸 입을까 고민하다가 7부로 입고 왔더니 종아리가 선득선득하다. 그러나 상의 안에는 이미 땀이 흥건하다. 의왕 거쳐 안양 평촌 우측으로 올라가 인덕원에 도착한다.
# 인덕원. 그 옛날 지방에서 서울로 갈 때 이곳에서 휴식을 하고 과천, 남태령 거쳐 서울로 갔다 한다.
인덕원서부터 과천까지는 꾸준한 오르막이 이어진다. 차량 통행도 많아 매연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곳이다. 과천 입구에서는 고속도로와 갈라지는 곳에서 6차선 도로의 1, 2차선을 타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하다. 차량 통행이 뜸할 때 얼른 2차선으로 들어가 신호 받고 냅다 달려 과천 시내로 진입한다.
#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 뒤로 관악산이 보인다.
과천 시내를 완전히 관통해서 남태령 입구까지 오고, 계속 직진해서 양재동 방향으로 진입한다. 경마장 삼거리를 지나고 화훼단지를 지나 오르막 하나를 밀어 올리면 양재동에 들어선다. 서울이다.
# 국가 공인 도박장 과천경마장. 말의 근육이 역동적이다.
# 양재 양곡도매시장 고개에 올라 서울로 들어선다.
차량 흐름을 뚫고 경부고속도로 아래를 지나 양재대로를 타고 달려간다. 내곡동 갈림길 지나고 대치, 일원동으로 갈라지는 길들도 지나고 계속 달려 수서IC를 지나 탄천교를 건넌다.
이곳부터는 도로 이름이 남부순환도로로 바뀐다. 송파, 오금 지나 올림픽 공원도 지난다. 한솔 오픈 국제 테니스대회 한다고 현수막이 요란하다.
올림픽공원 지나자 배가 너무 고프다. 길옆 식당에 들러 정말 성의 없는 참치덮밥으로 간신히 허기를 면한다. 은행에 들러 지갑도 보충하고 다시 도로에 올라선다. 둔촌동을 지나 길동사거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꾼다. 길동사거리에서 부터는 천호대로를 타고 상일나들목까지 내쳐 달려간다.
# 상일나들목. 광장히 위험하다.
상일나들목은 고속도로 진입구가 얽혀 있어 지나기가 위험하다. 잠시 후 하남시 경계에 들어선다. 하남 시청을 목표로 하남시를 관통하고, 좌회전하여 팔당대교로 접근한다. 집에서 이곳까지 3시간 40분이나 걸렸다. 중간에 밥 먹은 것 빼면 3시간쯤 걸렸나 보다. 결국 서울에서 출발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3시간 더 걸린 셈이다. 보통 서울에서 속초까지 가는 사람들은 이곳 팔당역까지 전철 타고 와서는 이곳을 출발 기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 이제 서울을 벗어나 하남시로 진입한다. 다른 도시로의 진입은 모두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 팔당대교.
팔당대교 진입로는 지하도를 지나는 길이라 바로 접근이 안 된다. 결국, 자전거를 들고 가드레일을 넘어가야 한다. 오르막을 길게 올라 팔당대교 위에 서면 한강이 시원하게 발아래 펼쳐진다. 가을 가뭄이 길어 수량은 적지만 그 푸르름은 저 멀리 북쪽에 잇닿아 푸른 하늘과 더불어 가슴 벅차하기에 충분하다.
한강아! 내 언젠가는 너의 그 긴 흐름을 따라 검룡소에서 서해바다까지 같이 흘러 보리라!
팔당대교를 건너 우측 램프 타고 돌아내려 양평 가는 6번 국도에 합류한다. 토요일 오후라 차량통행이 많다. 이 길 따라 무심코 가다가는 터널을 연달아 다섯 개나 지나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지나는 것은 지름길로 간다는 장점 하나를 제외하고는 단점투성이이다. 첫째, 차량들이 터널에서는 속도를 내고 시야가 좁아지므로 사고 위험이 아주 높다. 둘째, 터널 속은 갓길이 없고 울퉁불퉁한 배수로가 이어져 있어 지나기가 어렵다. 셋째, 통풍이 잘 안 돼 공기 오염이 심각하다. 넷째, 차량들이 달리며 내는 엄청난 굉음이 터널 속에 공명을 일으켜 정신 차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6번 국도를 타자마자 첫 번째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가 양평 가는 옛길로 우회하는 것이 좋다. 우횟길로 내려가면 작은 휴게소가 있어 그 곳에서 짐 풀고 간식 사 먹으며 30여 분 휴식을 취한다.
# 팔당대교 위에서 본 조망. 저 멀리 팔당댐이 보인다.
# 6번 국도. 직진하면 터널이고 우측 강변으로 우회한다.
# 그늘이 좋은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한다.
30여 분 꿀 같은 휴식을 취한 후 우측으로 한강을 끼고 북동진한다. 팔당댐을 지나고 다산유적지를 지나 구불구불 강변을 따르다가 다시 6번 도로에 합류해서 양수대교를 건넌다.
이곳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라 강폭이 넓고 시원한 풍광을 선사한다. 한참을 경치 구경하다가 다리를 건넌다.
# 햇살 좋은 강변을 따라 달린다.
# 팔당댐.
# 이곳에서 다시 6번 국도와 합류한다.
# 양수대교.
# 팔당호의 모습.
# 저 섬엔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6번 국도는 주말 정체가 심하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드라이브 코스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강변을 따라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내달리면 신이 날만 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네 자전거족들에겐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긴 용담대교를 지나 계속 강변 따라 진행하면 양평 만남의 광장 휴게소를 만난다. 어느덧 팔목이 저려오기 시작하고 똥꼬에도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여러 차례 자전거를 타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이고 근육이 자전거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라 몸 이곳저곳이 아프다고 난리이다.
# 양평 만남의 광장.
만남의 광장을 나와 약 500여m 길이의 오르막을 오른 후 남한강 프라자 휴게소를 지나고, 옥천교차로를 지나 옥천쉼터도 지난다. 옥천은 직장 동료의 고향이라 몇 번 와 본 적이 있는 곳이다. 냉면이 유명한 곳이다. 조금 더 진행하면 오빈교차로가 나오고 이곳에서 좌틀하면 홍천 가는 44번 도로로 갈아 타게 된다.
# 오빈교차로. 이곳에서 홍천으로 방향을 잡는다.
어느덧 시각이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고 주변이 어둑어둑해진다. 계절은 어느새 가을로 치달아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진다. 한차례 길게 밀어 올려 본격적으로 44번 도로를 타는데, 이후는 긴 고갯길이 연속으로 나타난다. 어디까지? 뒷날 속초까지! 내도록! 올랐다가? 내리고! 또 올랐다가? 내리고! ....
평소 차 타고 다닐 때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고갯길이 왜 이리 많은지... 낙동길에 다름없다. 그렇게 오르 내리다 기분 좋은 휴게소를 만난다. 아, 기분 좋다!
기분 좋게 휴식하고 또 쎄가 빠지게 오르내리다 용문터널을 지나고 다시 여기가 좋겠네 휴게소에 들러 휴식한다. 이 휴게소는 홍천강에 견지낚시 다닐 때 미끼인 구더기를 사러 자주 들러던 곳이다. 물 보충하고 아이스 바도 하나 사 먹고 다시 출발한다.
어느새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서 전조등, 후미등 밝히고 경광봉에 불 밝혀 번쩍번쩍하게 만들어 배낭에 매단다. 이 정도면 몇백미터 밖에서도 차들이 날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기온이 급강하한다.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얼굴도 버프로 감싸 보지만 추위가 계속 느껴진다.
불빛 하나 없는 산길을 낑낑 오르고 또 내리고를 계속 반복한다. 팔목은 저리고 똥꼬는 아프고 춥고 배도 고프다. 오늘 계획이 홍천까지 가서 찜질방을 찾아 하룻밤 쉬는 것인데, 아무래도 홍천까지 가기는 틀렸다. 준비없이 무계획적으로 속초까지 간다는 무모한 길을 나선 값을 톡톡히 치르나 보다. 대명콘도 갈림길이 있는 단월 오르막을 힘겹게 낑낑 오르는데 마눌에게서 전화가 온다. 여덟 시가 넘은 이 시각까지 숙소를 못 구하고 계속 잔차질하고 있다니까 걱정이 태산이다.
마눌과 전화하면서 보니까 고갯길 아래에 작은 상점이 있는데 단월고속버스 정류장이라 적혀 있다. 고속버스? 그럼 자전거를 실을 수 있겠다. 여기서 홍천까지 점프를 해버리자!
역주행해서 갈림길로 복귀하고 상점에 가서 시간표 확인하니 8시 30분 차가 있다. 버스표 사고 20여 분 기다리니 홍천행 고속버스가 도착한다. 그런데 버스기사가 자전거는 실을 수 없다고 못 타게 한다. 짐칸에 바퀴 분리해서 실으면 된다고 해도 못 타게 하더니 출발해 버린다.
금강고속! 잊지 않겠다!!
버스표 환불 받고 내 엉덩이 두들겨 격려한 후 다시 출발한다. 곧바로 긴 오르막을 넘고 다시 고개 하나를 더 넘자 길 반대쪽에 기사식당이 하나 보인다. 아이고,반갑다!!
길 건너 식당에 들어 섰더니 주인과 식사를 하고 있던 몇몇 손님이 내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랜다. 잔차 타고 속초까지 간다고 했더니 외계인 대하듯 한다. 허름한 식당이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청국장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비우고 반찬도 채소 종류는 완전히 비워버린다. 막걸리 한 잔 했으면 좋겠는데 아직 어두운 국도를 더 달려야 하는 지라 참기로 한다.
근처에 모텔이 있는지 물으니 조금만 더 가면 있단다. 언제나 그렇듯 시골 분들의 거리감각은 주관성이 너무 강해서, 조금만이라던 길은 고개를 두 개나 더 넘고서야 모텔을 보여 준다.
40,000원 달래던 모텔비를 5,000원 깎아 지불하고, 얼른 방 잡아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 푹 담근다. 아~~~ 좋타!!!!!!!!!!!!!!!!!!
# 모텔방 현관에 잔차를 세워 둔다.
요즘은 낙동길도 매번 야간 산행으로 마무리하고, 자전거 타고 속초 가는 길도 야간 주행으로 하루를 마친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피로감이 더 심하다.
오랜만에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했더니 팔목은 저리고 똥꼬는 아프고 허벅지 근육도 몸살 났다고 난리이다. '髀肉之嘆(비육지탄)' 이라는 고사성어가 절감된다. '비육지탄'은 삼국지의 영웅 유비와 관련된 고사이다. 유비가 누상촌에서 형제들과 도원결의를 하고 몸을 일으킨 후 세력을 잡아 나가다가 조조에게 대패하여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게 된다.
그러나 유비가 몸을 의지하고 있는 유표는 졸장부라 천하를 엿보는 그릇이 못 되었고, 유비는 겨우 객장(客將)으로서 신야(新野)라는 작은 성을 맡아가지고 있는데 지나지 않았다. 그때 유비의 나이는 이미 50줄에 들어서고 있었다. 어느날 유비는 유표와 함께 술을 마시다 화장실에서 자신의 허벅지에 살이 붙어있는 것을 알았다. 술자리로 돌아온 유비가 눈물을 흘리자, 유표가 이상히 여겨 무슨 일인지 물었다.
“저는 이제까지는 언제나 말안장에서 떠난 일이 없어 허벅다리 살이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말을 타지 않아 허벅지에 살이 붙어버렸습니다. 헛된 세월을 보내 이미 노년이 되려고 하는데 도대체 어느 때가 되어야 공업(功業)을 세울 수 있을는지 그걸 생각하니 슬퍼져서 눈물이 나오는군요.” 라고 울면서 대답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결국 비육지탄은 '보람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헛되이 세월만 보내는 것을 한탄함을 비유한 말' 이다. 물론 유비는 비육지탄을 딛고 다시 일어나 촉(蜀)을 세우고 삼국정립의 한 축으로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야 만다.
썰렁한 모텔에서 혼자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다 어느새 잠이 들었는지 눈 뜨니 이미 아침이다. 오랫랜의 장거리 여행으로 얼마나 지쳤는지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
간밤에 휴게소에서 준비한 간단한 먹거리로 아침을 때우고 다시 출발한다. 마눌에게는 아침에 일어나 보고 집으로 돌아가든지 하겠다고 했지만 그럴수야 있나? 다시 길 위로 나가 바퀴를 굴린다. 08:00
# 모텔 창밖을 내다보다 이 넘과 눈이 딱 마주쳤다.
# 하룻밤 피곤한 몸을 누인 다모아 모텔.
출발하자마자 길다란 오르막 하나가 앞을 가로 막는다. 어제 양평에서 홍천행 44번 도로를 탄 이후 평지는 거의 구경을 못했다.
무려 1.3km 길이의 긴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고 나면 홍천휴게소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을 만나 쎄가 빠지게 밀어 올리면 며느리재이다. 그리고 그 너머에 며느리재 터널이 보인다. 경광등 켜고 후미등도 켜고 터널로 진입한다.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차들 때문에 귀가 멀 지경이다.
# 긴 오르막이 앞을 가로 막는다.
# 며느리재 터널.
맞바람이 강하게 불어 속도가 전혀 나질 않는다. 참 고개가 많기도 하다. 오르고 내리고를 계속 반복한다. 양덕원을 지나 계속 내달려 드디어 홍천 시내에 진입하고, 중앙고속도로 갈림길을 지난다. 잠시 후 연봉삼거리에 도착, 우틀하여 인제 방향으로 접어든다.
# 중앙고속도로 홍천 나들목 갈림길.
속초까지는 108km가 남았단다. 아이구야~~~ 꾸준히 위로 밀어 올려 약 300여m를 올라간다. 이후 계속 10km를 달려 홍천 만남의 광장 휴게소를 지나고 다시 3km를 더 가서 구성포 교차로를 지난다. 여기서부터 길이 좁아지면서 공사 구간들이 나타나는데 공사 때문에 길이 좁아지면서 차들이 많이 밀린다.
차들이 밀린 우측 공사중 도로로 올라가 긴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그러나 우측 핸들 그립이 쏙 빠져버려서 길에 주저앉아 한참을 수리한 후 다시 출발한다. 1km는 넘을 듯한 긴 오르막을 치고 올랐다가 철정터널을 지나고, 팜파스 휴게소를 만나 한참을 휴식한다.
# 공사 중인 긴 오르막이 나타난다.
# 물길이 휘감아 도는 마을이 우측에 내려다보인다.
# 팜파스휴게소. 바이크족들이 보인다. 이날 수백 명은 만난 듯 하다.
이후는 힘들어서 기억도 잘 안난다. 뭐, 평지 이딴 말은 존재 하지 않는다. 그저 오르막을 오르고 또 내리막을 내리고 또 오르막을 쎄가 빠지게 오를 뿐이다. 그렇게 달려 두촌을 지나고 긴 고개 하나를 낑낑 올라선다. '거니고개'이다. 이곳부터 인제군이 시작된다.
# 가을이 익어가는 홍천 들녘.
# 거니고개부터 인제가 시작된다.
조각공원이 있는 휴게소를 지나고 다시 만남의 광장 휴게소를 지난다. 만남의 광장은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더라. 오르내림은 인제에 들어 섰어도 전혀 변함이 없고 계속 달려 낚시터로 유명한 소양호 신남리로 들어 선다. 좌측으로 소양호의 푸른 물결이 보이지만 가을 가뭄이 심해 수량은 적은 편이다. 고개 하나를 쎄가 빠지게 밀어 올리면 좌측에 38선 휴게소가 나온다.
이후 소양호를 끼고 계속 동북진한다. 긴 고개 하나를 낑낑 대며 오르다 배가 너무 고파 길 옆 버스 정류소에 앉아 간식을 먹는다. 약수로 유명한 남전리이다.
# 인제의 들녘.
# 소양호로 흘러드는 맑은 물.
# 붕어낚시로 유명한 소양호 신남권.
# 남전리 고개 중간에서 휴식을 취한다.
잠시 더 진행하면 긴 다리 하나가 나타난다. 인제대교이다. 우측으로 옛다리인 군축교가 보인다. 이 동네는 곳곳이 낚시하기 좋은 곳이다.
# 군축교, 좌측 산이 아미산이다.
다리를 지나자마자 긴 터널이 나와 재빨리 지나간다. 터널 너무 싫어!! 긴 내리막을 달려 내려가면 인제가 나타난다. 인제는 아파트며 종합운동장이며 제법 규모를 갖춘 동네이다.
계속 달려 합강정과 리빙스턴교를 지나고 소양강 상류인 임북천을 따라 계속 북상한다. 아무 생각없다. 그냥 달릴 뿐이다. 원통을 지나고 한계삼거리에 도착한다.
사진기 꺼내기도 귀찮아 그냥 통과한다. 우측 한계령 가는 길을 버리고 좌측 길로 달리는데, 이곳은 공사 구간이 길게 이어져 매우 위험하다. 편도 일차선이고 갓길마저 사라져 더욱 위험하다. 십이선녀탕 입구를 지나고 용대관광지를 지나 백담사 입구에 도착한다.
# 백담사 입구.
백담휴게소에서 소변 보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한다. 용대리 마을을 지나 북상하면 용대삼거리가 나온다. 좌틀하면 진부령이고 미시령은 직진이다. 인공폭포가 있는 매바위와 용바위를 지나 미시령을 향해 올라간다.
# 용대리.
# 용대삼거리.
# 매바위와 용바위.
# 미시령 오르막에 있는 선바위.
미시령 오르막에 있는 선바위를 지날 무렵 갑자기 자전거가 잘 나가질 않는다. 웬일일까? 내려서 확인하니, 이럴수가! 뒷바퀴가 펑크가 나서 폭삭 주저앉아 있다. 아, 속초를 눈앞에 두고 이게 무슨 일이람??
이럴 때를 대비해 항상 펑크 수리 도구를 갖고 다니는 지라 도로 갓길에 주저앉아 나름 수리를 시작한다. 그런데 일이 꼬일려고 그러는지 타이어를 벗기는 플라스틱 주걱이 그만 댕강 두 동강이 나고 만다. 타이어를 벗길 수가 없으니 펑크를 때울 수가 없다.
혼자서 한시간 여를 씨름했나 보다. 고치기를 포기하고 지나가는 차를 잡아보지만 아무도 세워주질 않는다. 자전거를 끌고 터덜터덜 미시령을 올라가는데 마침 갓길에 SUV 차량이 한 대 서 있다. 그리고 산에서 부부가 함께 내려온다. 생태연구하시는 분들이란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부탁을 드렸더니 흔쾌히 승낙을 해주시는데, 문제는 차량 안이 짐이 많아 비좁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른 앞뒤 바퀴 분리해서 프레임은 짐칸에 싣고 바퀴는 내가 안고 탄다.
미시령 옛길을 자전거 대신 자동차를 얻어 타고 구불구불 올라간다. 속초행의 하이라이트인 미시령이 뜻하지 않은 펑크 때문에 이렇게 허무하게 변하고 말았다. 미시령 정상에서 인증사진 한 장 찍고 속초 쪽으로 시속 60KM 이상 달려봐야 하는데...
고마운 분들께서 속초시내 자전거 수리점까지 친절하게 데려다 주셔서 무사히 자전거 수리를 마쳤다.
# 미시령 내리막을 자전거 대신 자동차로 내려 간다.
# 속초시내와 동해바다.
# 일요일에도 근무하는 속초에 있는 자전거포에서 무사히 수리를 마쳤다.
수리를 마치고 속초 시내를 달려 속초해수욕장으로 향한다. 10여 분 달려 속초 엑스포공원 지나 동해바다에 도착하여 긴 여정을 마감한다. 어느새 주위가 어둑어둑해지려고 한다.
먼 길 달려온 내 자전거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해주고 동해바다에 손 담가 혼자 만의 세러머니를 한다. "반갑다, 동해바다야!!!"
# 속초 엑스포공원.
# 먼길 달려와 준 내 자전거.
# 동해바다 갈매기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 아바이 마을로 가는 다리인가?
# 동해바다에 손을 담근다.
자전거 펑크 때문에 시간낭비가 많아 주변 경치 즐길 여가도 없이 얼른 고속터미널로 이동해서 차표를 끊는다. 고속버스 짐칸에 자전거 싣고 4시간여 달려 강남터미널에 도착했다. 걱정으로 이틀을 보낸 마눌 만나 자동차에 다시 자전거를 싣고 집으로 돌아오니 11시이다.
토요일 오전 11에 산본 집을 출발해서 뒷날 오후 5시에 속초에 도착했고, 자전거 속도계는 240KM를 가리키고 있다. 보통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200KM이내인 점을 감안하면 산본에서 출발하는 바람에 50KM정도 더 달린 셈이다. 다녀와서 자료 찾아보니 덕소까지 지하철로 이동해서 그곳에서 출발을 많이 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새벽에 출발한다면 하룻만에도 가능한 거리이다.
특별한 준비도, 사전 계획도 없이 무작정 나섰던 '두 바퀴로 속초까지' 여행이 그래도 큰 사고없이 마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감사합니다, 천지신명이시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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