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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잔차이야기]두 바퀴로 남한산성 오르기 본문
남한산성은 역사의 현장이고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현실의 남한산성은 한양 남쪽 유흥문화의 요지(要地)다. 산성에 올라가면 각종 음식점들이 주야로 성업 중이다. 다만, 지리적 여건 때문에 외견상 늘 한적한 편이기는 했다. 따라서 술 먹고 고스톱 치며 놀기에 적당하였다. 신나게 먹고 마시고 놀다 나오면 하늘에 총총한 별빛도 볼 수 있고 오월이면 아찔한 아까시꽃 향기에 흠뻑 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 없이 놀다 나오면서도 왠지 찜찜한 맘을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역사를 조금 아는 자의 자기검열이었다. 깊이 있게 아는 자였으면 애초에 경건함 안고 절제하였겠지만 나는 그런 정도의 역사 인식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일단은 즐겁게 취하였다. 다만 은성했던 자리 파하고 산성 광장에 서면 문득 바람 한 줄기 스치듯 희미한 역사 인식이 고개를 들기는 하였다. 조금 아는 자의 슬픔이다. 그래서 산성에서의 흥청망청 후엔 늘 가슴 한쪽 죄책감의 쇠뭉치 하나 묵직하였다. 내 이런 죄책감의 뿌리는 이 산성의 아픈 역사에 근거하고 있다. 지금 내가 음주가무(飮酒歌舞)로 흥청망청하고 있는 이곳이 병자호란(丙子胡亂)의 참화가 덮친 역사의 현장이고, 임금이 오랑캐 발아래 무릎 꿇고 항복을 했던 '삼전도(三田渡)의 치욕(恥辱)'을 겪은 아픈 역사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외적의 침입에 취약하였다. 오랜 세월 국력 약했고 보완할 능력도 의지도 박약했다. 그것은 온전히 통치 세력들의 무능 탓이고 그들의 약자 근성 탓이었다. 그래도 모두가 무능하지만은 않아서 때에 따라 군사를 키우기도 하고 요지요지에 성을 쌓아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도 했다. 한반도는 산악이 발달한 땅이다. 그리하여 적을 막기 위한 성 역시 산성(山城)이 발달했다. 원래 산은 험하고 가팔라 약간의 성곽만 두르면 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용이했다. 그 결과 적의 대병(大兵)이 침입하면 우리 옛사람들은 들을 비우고 산성으로 올라갔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산성이 발달한 이유이고 지금도 전국 곳곳에 산성의 유적이 산재한 사연이다. 세월 흘러 문명의 나라 세워지고 전쟁의 기억도 오래되었다. 이제 산성은 더이상 적의 침공에 대비하지 않는다. 쓸모 사라지니 성벽은 허물어지고 우물은 메워졌다. 그리고 경치 좋고 한적한 곳곳의 산성에는 하나둘 음식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문명 발달한 현재 우리나라 산성들은 모두 음식점들에게 점령당해 버렸다. 부산의 금정산성이 그렇고, 청주의 상당산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돌아보면 우리 조상님들께서 후손들이 오늘날 이렇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 그 고통과 치욕을 참으셨나 보다. 그래서 우리 후손들은 조상님들이 적들과 치열하게 싸우던 이 산성에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 음식도 먹고, 술도 먹고, 고스톱도 치면서.
그러나 가끔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고 잘 노는 바로 이곳에서,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조국을 살리고자 피 흘리고 쓰러져간 우리 조상님들이 계셨음을!
이 남한산성에서도 1636년 병자년 겨울에 청나라 뙤놈들 10만 대군에게 포위된 채, 아름답게 죽자는 척화파(斥和派)와 치욕을 참고 후일을 도모하자는 주화파(主和派)가 47일 동안 적과 싸우는 한편, 칼날보다 서슬 푸르게 서로 맞섰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결국은 임금이 무릎 꿇고 항복을 하는 치욕을 겪었음을 또한 알아야 한다.
오랜 시간이 흘러 돌아볼 때, 척화의 칼을 들었던 김상헌도, 주화의 붓을 들었던 최명길도 모두 옳았음을, 그들 모두 애국자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그들 모두 사전에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지 못한 잘못이 있음도...
이 좋은 봄날! 남한산성에서 닭볶음탕에 쏘주 한잔 마시고 고스톱 한판에 가무음곡을 즐기다가도 문득, 아! 이곳이 우리 민족의 쓰라린 역사가 있는 곳이구나! 우리 조상님들이 이곳에서 피를 흘리고 싸우셨구나! 힘이 지배하는 국제관계에서 국력을 키우지 않으면 자주든 민족이든 인권이든 모두 헛소리이구나!
이런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알려 줘야 한다. 병자호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그래야 이곳에서 피 흘린 우리 조상님들에게 조금이나마 면목이 서는 일일 것이다.
2009년 4월 26일. 남한산성 오르는 길고 가파른 비탈길을 자전거 타고 쎄가 빠지게 밀어 올려 수어장대 기둥 붙잡고 문득 해 본 생각이다.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산성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한산주에 주장성(일명 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남한산성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기록은 없으나 조선『세종실록지리지』에 일장산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갖춘 것은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고 난 인조 2년(1624)이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그 뒤 계속적인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동·서·남문루와 장대·돈대·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 있다. 이곳에는 백제 전기의 유적이 많이 있어 일찍부터 백제 온조왕 때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남한산성은 각종 시설이 잘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이 잘 된 곳으로 손꼽힌다. 이 산성의 주변 지역에는 백제(百濟) 초기의 유적이 많이 분포되어 있어서, 일찍부터 온조왕대(溫祚王代)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13년(673)에 한산주(漢山州)에 주장성 (晝長城, 일명 일장성(日長城))을 쌓았는데, 둘레가 4,360보로서 현재 남한산성이 위치한 곳이라고 믿어져 내려온다. 고려시대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으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에 일장산성(日長山城)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둘레가 3,993보이고, 성내에는 군자고(軍資庫)가 있고, 우물이 7개인데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또한 성내에 논과 밭이 124결(結)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이 현재의 모습으로 대대적인 개수를 본 것은 후금(後金)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李适)의 난을 겪고 난 1624년(인조(仁祖)2)이다. 인조는 총융사(摠戎使) 이서(李曙)에게 축성할 것을 명하여, 2년 뒤에 둘레 6,297보·여장(女墻) 1,897개·옹성(甕城) 3개·성랑(城廊) 115개·문 4개·암문 16개·우물 80개·샘 45개 등을 만들고 광주읍의 치소(治所)를 산성 내로 옮겼다. 이때의 공사에는 각성(覺性)을 도총섭(都摠攝)으로 삼아 팔도의 승군을 사역하였으며, 보호를 위하여 장경사(長慶寺)를 비롯한 7개의 사찰이 새로 건립되었으나, 장경사만이 현존한다. 그 뒤 순조(純祖) 때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시설이 정비되어, 우리 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을 완비한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처음 축성의 목적을 대변해 주듯이 유사시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이 73칸 반의 규모이고, 하궐(下闕)이 154칸이나 되었다. 1798년(정조(正祖)22) 한남루(漢南樓)를 세우고 1624년에 세운 객관(客館)인 인화관(人和館)을 1829년(순조(純祖) 29)에 수리하였다. 관해(官해)로는 좌승당(左勝堂)·일장각(日長閣)·수어청(守禦廳)·제승헌(制勝軒)을 비롯하여, 비장청(碑將廳), 교련관청(敎鍊官廳)·기패관청(旗牌官廳) 등의 군사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종각(鐘閣)·마구(馬廐)·뇌옥(牢獄)·온조왕묘(溫祚王廟)·성황단(城隍壇)·여단(여壇) 등이 이루어졌고, 승도청(僧徒廳)을 두어 승군을 총괄하였다. 남한산성의 수어(守禦)는 처음에 총융청(摠戎廳)이 맡았다가 성이 완성되면서 수어청(守禦廳)이 따로 설치되었다.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수어사인 이시백(李時白)은 서성을, 총융대장(摠戎大將) 이서(李曙)는 북성, 호위대장(扈衛大將) 구굉(具宏)은 남성, 도감대장(都監大將) 신경진(申景縝)은 동성 망월대, 원두표(元斗杓)는 북문을 지켰다. 그러나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수항단(三田渡受降檀)으로 나가 항복하였으나, 그 뒤 계속적인 수축을 하여 경영되었다.
# 극심한 봄 가뭄에 온나라가 먼지가 풀풀 나던 참이라 주말에 비가 내려도 싫지만은 않다. 다만 비 때문에 정맥길 못가고 토요일 내내 TV 리모컨 들고 뒹굴었다. 그래서 마눌 교회간 일요일, 자전거 먼지 털고 쫄바지 꺼내 입고 집을 나선다. 목적지는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그 오르막이 멀고도 험해 잔차 타는 사람들 사이에선 쉬지 않고 오르느냐? 못 오르느냐?로 그 기량을 재는 척도로 활용되는 곳이다.
# 집을 나와 의왕, 평촌 거쳐 청계산 너머 판교로 가는 23번 도로에 올라 탄다. 서울 구치소에서 청계산의 하오고개까지는 2km가 넘는 긴 고갯길이 이어지는데, 설상가상으로 도로공사 중이어서 갓길이 없다. 이럴 때는 아예 한 차선을 완전히 물고 올라 가야 안전하다.
# 그런데 그나마 하오고개 근처에는 대규모로 공사가 진행 중이라 신도로로 올라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구도로로 벗어나는데 이곳도 역시 공사 중이다.
# 이 도로는 구 국도로서 옛날엔 차량 통행이 아주 많던 곳이다. 강원도 쪽으로 놀러갈 때 이 길을 많이 이용했었다.
# 하오고개 긴 오르막을 헉헉대며 올라가면 정상 부근에 간이쉼터가 있다. 새 도로가 건설되기 전에 저 쉼터는 아주 유명한 휴게소 역할을 했다. 지금은 뒤에 있는 공동묘지에 온 사람들이나, 청계산 등산객들, 어쩌다 지나가는 길손들 만이 가끔 쉬었다 가는 곳이 되어 버렸다.
# 하오고개 정상. 이곳부터는 성남시이다.
# 새 도로가 생기면서 엄청난 절개지가 덩달아 생겨났다. 저 절개지와 새 도로는 광교~청계 연계 종주를 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지금은 도로 확장 공사 때문에 차단막을 해 놓아 도로가 뵈질 않는다.
# 청계산 들머리이다. 뒷쪽에 국사봉이 보인다. 나는 이제부터 신나는 다운힐을 즐긴다.
# 운중지. 옛날엔 저곳에서 낚시도 했는데 지금은 낚시금지이다.
# 한국정신문화원을 끼고 신나는 내리막이 길게 이어진다.
# 이곳에서 판교까지는 멋진 느티나무 터널이 길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지금은 신 도로공사와 판교 신도시 건설을 하면서 대부분 훼손되고 일부만 남아 있다.
# 판교 로또라 불리워지던 판교 신도시로 들어선다.
# 메타세콰이어 길을 지나면 분당 신도시로 들어선다.
# 하오고개를 넘는데 뚜벅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제 해리님과 '아자여'잔차 동호인들과 같이 철원으로 라이딩을 갔는데, 어제 오늘 계속 비가 와서 잔차는 차에서 꺼내 보지도 못하고 그냥 철수하고 사당동에 모여 점심을 먹고 있다는 거다. 그러나 난 이미 성남시계로 들어서는 바람에 사당동엔 가기 힘들어 그냥 인사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분당을 들어와 성남쪽으로 올라가는데 좌측아래로 탄천이 보이네? 에이~ 남한산성은 다음에 가고 방향을 틀어 사당동으로 가보자! 탄천 자전거도로를 타고 양재동까지 가고, 거기서 과천까지 달렸다가 다시 남태령 고개 넘으면 사당이다! 멀긴 하지만 사당으로 GO! GO! 도로에서 탄천 자전거도로로 내려선다.
# 분당과 탄천.
# 물살이 일렁거리고 풍덩거리는 소리가 들려 봤더니,
# 잉어떼가 집단으로 소상 중이다. 이맘 때가 잉어의 산란기라 잉어들이 상류로 집단 소상한 거다.
# 비 그친 휴일이라 탄천엔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 제2 롯데월드 건설 때문에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서울공항. 그 너머로 관악산이 보인다. 그런데 소변 보느라 잠시 쉬면서 뚜벅에게 전화해 보니 이미 점심 끝내고 모두 헤어졌단다. 에이그~ 한 발 늦었다! 그럼 다시 남한산성을 향해 빠꾸 오라잇!!!
# 다시 도로로 올라 서서 성남 시내로 들어 선다. 태평역 사거리에서 계속 직진하면 남한산성에 갈 수 있다.
# 태평역에서 남한산성 입구까지는 길고 긴 오르막이다. 성남이란 도시가 원래 산비탈에 무계획적으로 들어선 도시인지라 도로가 좁고 가파르기로 악명 높다. 길게 길게 올라 산성역을 지나고 오르막을 한차례 찐하게 오르면 산성입구 갈림길에 도착한다.
#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남한산성 업힐이 시작된다.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시원찮은 잔차꾼의 종아리를 팍팍하게 만든다. 3.5km를 이렇게 올라야 한다. 갓길이 없고 1차선이라 차들과 같이 올라야 한다. 차들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대형차들은 그냥 밀어 부친다.
# 힘들기도 했지만 버스가 밀어 부쳐 1차로 휴식을 취한다.
# 아래로 성남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하남으로 이어지는 345번 도로.
# 가파른 비탈길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오르막에서 내뿜는 차량의 매연이 또다른 장애물로 다가온다. 어쩔 수 없이 또 한차례 휴식을 한다.
# 그렇게 3차례 휴식을 취한 후에야 산성터널 입구에 도착한다. 남한산성 업힐은 정말 힘든 구간이다. 어찌나 힘이 들던지 쌧바닥이 땅에 끌릴 지경이다. 숨은 턱에 차오르고... 이곳을 쉬지 않고 한 번에 치고 오르는 사람들은 정말 엔진이 빵빵한 사람들이다. 우측 산길로 넘어도 되지만 그냥 터널을 통과해 버린다.
# 터널을 지나 잠시 아래로 내리면 산성주차장과 중앙 로터리가 나온다. 로터리는 연등으로 장식 되어 있다.
# 가운데 로터리에서 북쪽으로 북문까지 올라서 성벽을 따라 서문, 수어장대를 거쳐 한바퀴 돌 예정이다.
# 내 잔차야! 남한산성 업힐하느라 고생했다! 산성내 음식점 단지에서는 가무음곡의 소리가 요란하고, 여인들의 하이소프라노 웃음소리가 낭자하다.
# 안내도.
# 이러이러 했더란다.
# 음식점 단지를 벗어나 잠시 오르면 북문이 나타난다.
# 1*1 기어비로도 힘들어 오름 막판에 잔차에서 내려 끌바로 올라오면 성벽이 길게 이어지고 평탄한 길이 나타난다.
# 산책로로 그만이다.
# 성벽과 그림이 된 산객들.
# 성벽 따라 좌측으로 꺾어 잠시 가면 서문이 나타난다.
# 서문에서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오늘 예보에는 비소식은 전혀 없었는데? 얼른 잔차 타고 출발하는데 공터에서 막걸리를 팔고 있다. 아이고, 반갑다! 한 잔 달래서 맛나게 먹는다. 막걸리 한 잔에 피로가 확 풀리는 기분이다. 그런데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진다.
# 공터에서 잠시만 오르면 좌측에 수어장대가 나타난다.
#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전시의 작전 지휘본부가 되는 셈이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직접 이곳에서 지휘를 했다고 한다. 수어장대 기둥 껴안으니 400년 전 전장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 수어장대 앞에 있는 소나무. 100년 세월을 보냈단다.
# 성벽 위에 서면 서울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 한강과 남산이 건너다 보인다. 남한산성이 서울의 방어진지 역할을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 오락가락하는 빗방울 때문에 얼른 철수하기로 한다. 산성터널을 지나 한차례 다운힐을 내려 쏘다보면 잠시 우측으로 트인 곳이 나온다.
# 강남 일대가 내려다보인다.
# 여기서도 남산이 보인다.
# 올라올 때 숨이 턱에 차서 쌔가 빠지게 고생하며 올라 온 남한 산성 오르막. 내려갈 때는 비행기로 변신하여 내려간다. 혹시나 정말 비행기로 변신하여 날라버릴까 염려되어 제동하느라 신경이 바짝 곤두 선다. 그래도 남한산성 다운힐, 정말 신나는 라이딩 구간이다. 쎄가 빠지게 고생한 만큼 이런 재미도 있어야지. 성남시내에 내려 와서도 올라갈 때와는 반대로 태평역 사거리까지는 내도록 내리막이라 씽씽 날아 자동차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 사진은 모란역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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