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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열일곱번째(1)(오도재~주릿재~빈계재)-비열한 무기, 지뢰! 본문

1대간 9정맥/호남정맥종주기

[호남정맥]열일곱번째(1)(오도재~주릿재~빈계재)-비열한 무기, 지뢰!

강/사/랑 2010. 11. 22. 09:35
 [호남정맥]열일곱번째(1)(오도재~주릿재~빈계재)


  

며칠 전 외신(外信)들은 영국 왕실의 결혼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주인공은 윌리엄 왕자였다. 우리로 치면 왕세손인 윌리엄은 8년간 사귀어온 동갑내기 케이트 미들턴과 내년에 결혼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외신의 주관심은 약혼녀인 케이트가 끼고 있는 사파이어 반지에 쏠렸다. 그 반지는 윌리엄 왕자의 어머니인 비운(悲運)의 황태자비 '다이애나'가 끼고 있던 반지였다.

 

다이애나는 1997년 8월 31일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어이없게도 파파라치의 추격을 피하려다 발생한 교통사고였다. 당시 그녀는 연인이었던 이집트 재벌 2세와 함께 있었다.


생전의 그녀는 특별한 지위와 아름다운 외모, 불행했던 결혼 생활 등으로 엄청난 관심과 무수한 가십의 발생처이자 희생자였다. 그러한 세상의 관심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녀와 찰스 황태자의 혼외정사나 연인관계, 그들의 불행한 결혼 생활의 결말 등에만 관심을 쏟아내었지 실상 그녀가 역사상 가장 비인도적이고 비열한 무기 중 하나인 '지뢰'의 제거와 지뢰 피해자의 구호에 열과 성을 다했던 사실은 모르고 있다.

 

다이애나가 지뢰의 폐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녀가 앙골라에서 지뢰로 신체를 잃은 아이를 만나고서 부터라고 한다. 앙골라는 오랜 내전으로 엄청난 양의 지뢰가 뿌려져 있는데, 피해자는 대부분 죄 없는 어린이들이었다. 그들의 참혹한 현실을 목격한 다이애나는 전 세계에 지뢰의 비인도적이고 무자비한 폐해를 알리고자 하였고 지뢰의 제거에 앞장섰던 것이다.

 

원래 지뢰는 인류의 전쟁사(戰爭史)를 같이 해온 역사가 아주 오래된 무기다. 지뢰는 근본적으로 방어를 위한 무기인데, 고대 성벽 주위에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뿌려둔 마름쇠에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겠다.

 

이후 화약의 발명으로 중국에서는 15세기 무렵 명나라 때 실전에 사용되었으며, 유럽에서도 요새의 방어무기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근대전에서 지뢰가 크게 이용된 것은 러·일 전쟁 이후이고 제1차 세계대전 이래 보편화되었다.

 

지뢰는 간편한 구조와 값싼 제작비로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어 근대 이후 대부분 국가에서 집중적으로 개발되고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지뢰는 적에 의해 발견이 되더라도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 절차가 복잡하고 위험하며 상당한 시간이 소모된다. 무엇보다 전투원들에게 심리적 영향을 주는 효과가 아주 크다.

 

특히 발목 지뢰의 경우 그로 인해 부상을 당한 전투원은 물론이고 구호를 위한 여러 명의 전투력을 동시에 소모시키는 효과까지 노릴 수 있어 아직도 전 세계 여러 곳에서 무분별하게 살포되고 있다.

 

그러나 지뢰는 한번 살포가 이뤄지면 막상 전투가 끝나더라도 완전한 제거가 어렵고 어느 지역에 어느 만큼의 지뢰가 묻혀 있는지 알기가 어려워 그 피해가 영속성(永續性)을 갖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그 피해가 전투원들이 아니라 민간인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집중된다는 점에서 비열하고 비인도적인 무기로 비난을 받고 있다.

 

현재 전 세계 60여 개 국(國)에 약 1억 1천만 개(혹은 2억 개 이상)의 지뢰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위치와 살포된 양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자금과 노력 또한 턱없이 부족하여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죄 없는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DMZ는 물론이고 국토의 내륙 곳곳에도 군부대 주둔지 외곽에 그 정확한 수량을 알 수 없는 지뢰 매설지가 산재해 있다.


전 세계에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호전적(好戰的)인 적을 마주하고 있는 DMZ야 그 특수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또, 우리나라에 매설된 지뢰의 대부분이 오래전 6.25전쟁 당시 매설된 것이라고 해도 그 이후 우리 국민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내륙 곳곳에 지뢰를 매설한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뢰의 피해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군에서 불용 지뢰의 제거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지만, 지금도 매년 10여 명 이상의 지뢰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는 점에서 볼 때 좀 더 적극적인 대책의 마련과 시행이 절실하다 할 것이다.

 

우리네 종주 산꾼들이야 우리 땅 곳곳을 누비고 다니니 마루금에 위치한 군부대 만나기 예사이고 지금은 철수해서 비어 있지만, 과거에 지뢰를 매설해두어 위험이 남아 있는 지역을 지나야 하는 일도 종종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낙동정맥의 천성산 일대와 호남정맥의 존제산이다. 두 곳 모두 과거 공군부대가 위치해 있던 곳이고 지금은 둘 다 군부대가 철수해서 비어 있다. 하지만, 과거에 지뢰를 매설한 곳이라 접근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다.

 

물론 둘 다 지뢰 제거 작업을 했고 정말 위험한 지역은 철조망으로 차단을 해 두어 실제적인 위험은 적다 하지만, 아직도 간간이 그곳을 지나던 산꾼들이 노출된 지뢰를 발견한 경우도 있다 하니 그 위험성은 언제나 상존한다 하겠다.

 

강/사/랑의 호남길 열일곱 번째 길은 지뢰지대로 유명한 존제산을 지나게 된다. 존제산은 고려 충렬왕이 이름 지어준 유서 깊은 산이고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무대 중 한 곳이라 아름다운 문자향(文字香)이 나야 할 곳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역사를 오랫동안 좌우해 온 이데올로기의 화약 냄새가 더 강한 곳이다.

 

노을 지는 존제산을 넘으며 지뢰지대 철조망 앞에 서서 저 멀리 여자만 바다를 바라보았다. 노을빛 구름 피어나듯 상념이 꼬리를 물었다. 지뢰에서 출발한 생각의 꼬리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다이애나 황태자 비가 앙골라에서 지뢰에 발목이 절단된 어린이의 죄 없는 눈망울을 보며 느꼈을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녀가 나와 동갑내기여서일까?

 

어느새 세월이 흘러 그녀의 아들이 결혼하게 되고 약혼녀를 발표하는데, 가볍기 이를 데 없는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윌리엄과 그 약혼녀의 사상이나 살아온 행적 등은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녀가 끼고 있는 사파이어 반지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한 일이다.

 

윌리엄 왕자와 미래의 왕자비여! 그 반지 팔아서 그대 어머니가 생전에 열과 성을 다해 이루고자 했던 지뢰 제거 사업에 쾌척한다면 지하의 다이애나가 얼마나 기뻐할꼬? 아니면 최소한 그 반지를 끼었던 그 여인의 스캔들에만 관심이 있는 저급한 세상을 향해 그녀의 삶이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열려 있었음을 알릴 수 있도록 바르게 살고 또 그 뜻을 이어야 할 일이라오! 



 비열한 무기, 지뢰!

 


구간 : 호남정맥 제 17구간(오도재~주릿재~빈계치)
거리 : 구간거리(26.4km), 누적거리(361.3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0년 11월 20, 21일. 흙과 해의 날.
세부내용 : 오도재(08:00) ~ 335.5봉 ~ 파청치(09:20) ~ 방장산 사거리 ~ 방장산(10:15) ~ 481봉 ~ 이드
리재 ~ 배거리재 ~ 주월산(11:25)/점심 및 휴식 후 12:50出 ~ 412봉 ~ 무남이재 ~광대코재(14:10) ~ 암릉 ~ 565봉 ~ 571봉/고흥기맥 분기점 ~ 모암재 ~ 존제산(16:05)/휴식 후 16:50 出 ~ 주릿(18:00)/쇠실쉼터 소나무 아래에서 1박.

 

주릿재(09:40) ~ 425봉 ~ 포장도로 ~ 485봉(10:20) ~ 무명봉 ~ 경작지 ~ 임도 ~ 갈림길 길주의 ~ 고사리농장 ~ 임도 ~ 415봉 ~ 석거리재(11:50)/휴게소 점심 후 12:40 出 ~ 355봉 ~ 채석장 ~ 518봉 ~ 백이산(14:10)/휴식 후 14:55 出  ~ 빈계치(15:25)

 

총 소요시간 15시간 45분.

 
11월 19일. 쇠의 날.
오랫동안 멈춰 있던 호남정맥 길에 나서기로 했다. 이번 호남길엔 낙동 동지인 뚜벅이 동행하기로 했다. 그동안 호남정맥은 오로지 혼자서 외롭지만 꿋꿋이 걸어 왔는데, 지난번 금남정맥 길을 둘이서 같이 걸은 이후 오랜만에 동무랑 같이 산길 걷는 재미에 맛을 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남아 있는 호남길을 외망포구까지 같이 걸어가기로 의기투합한 까닭이다.

 

금욜 퇴근하고 짐 챙겨 산본역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퇴근길에 한 잔 얼큰해져 나타난 뚜벅을 픽업해서 머나먼 호남길에 나섰다. 주말 영동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는 당연히 정체 중이니 비장의 무기인 39번 국도 타기를 통해 막힌 곳을 우회했다.


여러 개의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광주, 화순을 거쳐 보성 땅에 도착. 전에 봐 두었던 2번 국도에 있는 쇠실 쉼터에 도착하니 시각은 이미 새벽 1시를 훌쩍 넘었다.



 

존제산/尊帝山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산. 높이는  703m이다. 성벽처럼 웅장하게 솟구쳐 있는 벌교의 진산이다. 해발 704m로 군내에서 웅치면 제암산에 이어 두번째 높은 산으로서 해발 300m 이상의 고지가 무려 65㎢나 되어 가장 넓은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남·북의 이데올로기가 빚어낸 비극의 현장으로 유명한 산이며, 소설 태백산맥의 중심무대로 외지에 더 알려진 존제산 자락을 작가 조정래는 그의 소설<태백산맥>을 통해「그만 그만한 높이의 산들이 줄기를 뻗고 그 줄기들이 겹쳐지고 이어지면서 원을 이루어 가고 있다. 그건 산들이 손에 손을 맞잡은 강강술래 춤이거나 어떤 성스러운 것들을 받들어 올리고자 하는 산들의 어깨 동무였다.」 고 존제산의 산세를 역사적인 사실과 연관지어 풀이하고 있다. 존제산은 고려 충렬왕(忠烈王)이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또한 이 산은 불교와 연관된 지명이 많은 산이다. 존제산 북쪽 유신리의 갓바위 윗등에 염주를 목에 건 불상모양의 바위, 부처님이 하느님과 만나던 곳이라는 천치(天峙), 죽으면 한 줌의 흙이 된다는 뜻의 진토재, 승려들이 모여 문장을 자랑하던 곳이라는 석거리재 등은 모두 동쪽 기슭에 있었던 신라 고찰인 징광사와 관련된 지명들이다. 벌교읍, 조성면, 율어면에 둘러싸인 존제산의 능선은 거의 밋밋하게 높이가 계속되고 정상에 오르면 멀리 무등산, 모후산, 백운산 그리고 여자만과 고흥반도가 한눈에 들어 온다. 존제산은 뛰어난 산세와 많은 설화가 깃들어 있는 호남 명산이지만, 정상에 군사시설물과 주 능선상에 한국통신 중계소가 들어서 있어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때문에 벌교읍과 율어면을 잇는 818번 지방도로상의 고개인 주릿재에서 정상까지 약 6㎞ 구간이 비포장도로가 뚫려 있기는 하지만, 2㎞ 지점에 위치한 백림농장까지 밖에 오를 수 없다. 결국 백림농장에서 동쪽으로 벌교읍내와 남해바다를 내려다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산이다. 소설 태백산맥은 8.15해방이후 6.25전쟁까지 민중의 고난사를 적나라하게 조명한 소설로서 그 무대가 보성군 벌교읍시내와 존제산 일원인데, 소설속의 무대였던 현부자네 고가, 양조장, 남도여관, 홍교, 벌교고막등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현부자네 고가에서 출발하여 홍교를 거쳐 존제산에 올라 주릿재까지 답사를 하자면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역사를 반추해 볼 수 있을 뿐만아니라, 소설속의 주인공들이 금방 뛰어 나올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현재도 국내외 문학도들과 관광객들의 탐방이 줄을 잇고 있다.

 

벌교읍(筏橋邑) 

 

전라남도 보성군 남동부에 있는 읍. 북·동쪽은 순천시, 서쪽은 율어면(栗於面)과 조성면(鳥城面), 남쪽은 고흥군에 접한다. 백제 때는 낙안군(樂安郡)의 일부였으며, 고려시대 낙안현으로 개칭하였다. 1915년 벌교면으로 개칭하고, 1937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동쪽에 제석산(帝釋山:563m), 북쪽에 백이산(伯夷山:584m), 서쪽에 존제산(尊帝山:704m), 남쪽에 병풍산(屛風山:500m) 등 소백산맥의 지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동부에 벌교천이 남류하면서 넓은 낙안분지(樂安盆地)를 형성하였으며, 하천의 하구에 시가지가 펼쳐진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 주곡작물 외에 목화·참깨 등의 특용작물과 오이·딸기 등 원예작물의 재배가 활발하다. 순천만(順天灣) 연안의 개펄에서는 낙지와 꼬막 등이 잡히고, 소금도 생산된다. 벌교읍을 기점으로 광주·고흥·장흥·순천을 연결하는 국도가 통하며, 경전선(慶全線) 철도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다. 문화재로는 벌교홍교(筏橋虹橋:보물 304), 주사선연도(舟師宣宴圖) 등 신여량장군유품(申汝樑將軍遺品:전남유형문화재 147), 벌교 도마교 및 석비(逃馬橋-石碑:전남유형문화재 173), 벌교 고읍리 은행나무(전남기념물 147), 취송정(翠松亭:전남문화재자료 136), 보성 벌교리 성지(城址), 용연사(龍淵寺), 보성 전동리(典洞里) 성지, 징광사지(澄光寺址), 보성 척령리(尺嶺里) 선사유적, 보성 마동리(馬洞里) 성지, 마동리 지석묘군, 보성 장좌리(長佐里) 지석묘군, 오충각(五忠閣) 등이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호남정맥 제 17 구간 오도치~주릿재~빈계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쇠실 쉼터는 벌교와 보성을 잇는 2번 국도상에 있는 휴게소인데, 밤 늦어 불 꺼지고 인적 없이 조용하다. 휴게소 한 쪽에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공터가 있고 딱 텐트 두 동 칠만한 공간이 허락된다. 얼른 차에서 던지기 텐트 가져와 휙 던져 집 한 채를 5초 만에 짓고 마눌이 챙겨 준 어묵탕 끓이고 막걸리 잔부터 우선 한 잔씩 나눴다.

 

캬~ 5시간 가까이 운전하고 내려와서 피곤한 몸에 막걸리가 들어가니 온몸이 녹작지근해지는 것이 내일 산행은 별로 생각이 없고 술만 땡긴다. 이봐, 뚜벅! 한 잔 더 채워봐봐!

 

 

# 먼 호남지방의 휴게소 한켠에 집 한 채 짓고 산친구와 술잔을 나눈다. 달빛이 밝아 새벽인데도 사방이 훤하다.

 

 

 

# 사실 산행 재미도 좋지만 이 재미가 더 좋다. 술만 보면 뚜버기 입가에 웃음이 돈다.ㅎㅎ

 

 

 

막걸리 두어 통 비우고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다 각자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긴 운전에 많이 피곤하였던지 뚜벅의 코 고는 소리 요란했지만 느끼지 못하고 푹 잤다.

 

잠을 서너 시간 밖에 못 잤지만 푹신한 솔갈비 위에서 자서 그런가? 전혀 피곤한 줄 모르고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다. 느긋하게 아침 끓여 먹고 화장 마치고 쇠실쉼터를 나서 오늘 산행의 출발지인 오도치로 달려갔다.


2번 국도 타고 벌교 쪽으로 가다가 득량과 겸백을 잇는 545번 지방도를 타고 구불구불 고갯길을 올라가는데, 정맥길 너머 득량쪽에서 구름들이 넘어오고 있다. 어허! 오늘 조망 구경하기는 틀렸구나!

 

 

# 휴게소 뒷쪽에 이런 소나무 공터가 있어 우리같은 나그네들이 하룻밤 묵어 가기에 그만이다.

 

 

# 쇠실쉼터. 뒷쪽으로 그럭재와 오도치를 잇는 호남정맥이 지나고 있다.

 

  

# 고개의 형상이 기러기를 닮아 기러기재로 불리다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그럭재가 건너다보인다.

 

  

# 오도치. 득량면과 겸백면을 이어준다.

 

 

오도치란 이름은 방장산에서 흘러내리는 산세가 다섯 마리 돼지가 내려오는 것 같다 하여 오돗재로 불리던 곳이다. 나중에 한자로 음차 되어 현재의 오도치가 되었다. 다섯 마리 돼지가 내려오는 모습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다섯 마리 돼지는 볼 수 없지만, 오늘은 다섯 마리 말이 내달리듯 찬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지난 가을 알밤으로 가득 차 엄청나게 무거운 배낭 메고 내려왔었는데, 벌써 이렇게 찬바람 가득하다니... 세월의 흐름이 너무 빨라 정신 차리기가 힘들다.

 

지난 가을 공사하느라 대형 차량들이 끊임없이 드나들던 오도치엔 오늘은 공사를 하지 않고 조용하다. 고개 한 켠 공터에 주차하고 짐 챙겨 길을 나섰다. 08:00

 

 

# 오도치 들머리.

 

  

# 보성군에서 안내 지도를 잘 설치해 두었다.

 

 

보성군에서 설치한 안내판 뒤로 들머리가 열려 있다. 낙엽 깔린 계단길을 오르면 곧바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는데 이곳의 숲은 모두 편백숲이다. 가파르게 올라 지도상 246봉을 넘고 다시 잔봉을 하나 넘은 후 한 차례 위로 치고 오르면 '335.5봉'에 올라서게 된다.

 

335.5봉엔 삼각점이 있고 지도에 없는 국사봉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다. 좌틀하여 급경사 내리막을 내리다 길고 완만하게 내려가면 안부 사거리가 나오고 벌목지 오르막 능선을 오르게 된다.


잠시 후 펜스가 나타나 펜스를 따라 오르다 우측으로 휘어 진행한다. 곧 아래로 내려 안부사거리를 지난다. 곧바로 지도상 314봉을 넘고 아래로 내려가면 넓은 임도가 지나는 '파청재'에 이르게 된다. 09:20.

 

 

# 넓은 임도가 지나는 파청재.

 

  

# 전차도 지날 만한 넓은 임도에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국립지리원 지도에는 좀 전의 안부사거리를 파청재라고 표시해 두었는데, 보성군에서 세운 임도의 이정목에는 이곳을 파청재라고 적어 두었다. 아마도 새로운 임도를 내면서 옛길 대신 새 길에다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아직 기온은 차지만 햇살이 피어오르고 있어 겉옷을 벗고 물도 한 모금 마시며 10여 분 정비를 했다. 방장산까지는 2.4km 거리다.

 

다시 짐 챙겨 길을 나섰다. 이곳 역시 널찍한 임도가 위로 길게 이어지고 있고 군데군데 포장까지 되어 있다. 다만 길은 좋은데 경사가 점점 급해져 만만치 않은데 급기야 코가 땅에 닿게 경사가 급해지기까지 한다.


그렇게 가파르게 오르면 이정목이 있는 '방장산 사거리'가 나타나고 뒤로 득량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박무가 짙게 끼어 명쾌한 조망은 볼 수 없다. 오늘 하루 종일 이러면 큰일이구나!

 

곧 싱그러운 숲 냄새 좋은 편백숲을 따라 오르면 다시 사거리가 나오고 '약수터 사거리'란 이정목이 서 있다. 그런데 좌측 수남마을 쪽에 표지기들이 아주 많이 매달려 있다. 잠시 지도 보며 지형을 살피게 만들지만, 정맥길은 그냥 정상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르면 된다.

 

이후 또 한차례 전망이 트이는 능선길에 오른다. 짙은 박무 때문에 희미한 조망뿐이고 계속 위로 밀어 올리면 '방장산 정상'에 이른다. 10:15. 

 

 

# 넓지만 가파른 오르막이 길게 이어진다.

 


# 경사가 상당하여 헉헉 소리가 난다.

 

 

# 철 모르는 녀석이 계절을 잊고 피어 났다.

 

  

# 정상의 방송 송신소 때문에 도로가 좋다.

 

  

# 방장산 사거리란 이정목이 서 있는 갈림길.

 

  

# 편백숲의 향기가 아주 좋다.

  

 

# 약수터 사거리. 좌측으로 많은 표지기가 매달려 있지만 정맥은 직진.

 

 

# 씨앗을 날리고 있는 엉겅퀴.

 

  

# 길은 좋지만,

 

  

# 경사는 장난이 아니다.

 

  

# 득량 앞바다가 보이지만 짙은 박무 때문에 하루 종일 좋은 조망은 못 본다.

 

 

# 아이고, 멀다!

 

  

# 방장산 정상. KBS송신소가 있다.

 

  

# 성의가 별로 없어 보이는 쉼터.

  

 

방장산 정상엔 KBS 방송 중계소가 있고 아담한 정상석과 삼각점, 그리고 성의 없이 만든 듯한 쉼터가 있다. 맑은 날이었다면 좋은 조망처이겠는데, 오늘은 박무 때문에 답답하기만 하다. 잠시 한숨 돌린 후 이내 길을 나섰다.

 

이후로는 계단식으로 깊게 내려가는데 올라올 때와는 달리 완만하여 걷기에 좋다. 등로 역시 푹신한 솔갈비가 깔여 있어 나처럼 무릎 좋지 않은 산꾼에겐 그만이다.

 

길게 내려 고도를 130이나 까먹고 '이드리재'에 도착했다. 옛날 어느 무당이 이 고개가 내(川)가 되어 흐를 것이다고 예언을 하여 '이냇고개'라 부른 곳이다. 이냇고개를 한자로 음차하여 '이천치'가 되었는데, 다시 세월이 흘러 '이드리재'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희미한 옛 고개가 참 복잡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주월산까지 올라가야 한다. 내려올 때처럼 계단식으로 완만하게 오른다. 두어 차례 계단을 오르다 봉우리 하나를 넘고 다시 치고 오르는 초입에 희미한 옛 고개가 나타난다. 여기가 배거리재인가 했는데, 한 번 더 계단식으로 올라야 '배거리재'가 나온다.

 

배거리재는 배가 걸렸다는 뜻인 듯한데, 자료를 찾아보니 옛 전설에 이 고개 밑까지 바닷물이 밀려와 이곳에 배를 대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한다. 그러나 고개는 고개이되 잘록한 고개가 아니라 오르막에 위치한 고갯길이다. 고개 너머로 주월산이 올려다보이고 제법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넓은 활공장이 있는 '주월산정'에 오르게 된다. 11:25

 

 

# 주월산까지는 2.9km를 더 가야 한다.

 

  

# 햇살이 피어오르면서 기온이 올라 옷을 가볍게 했다.

 

 

# 희미한 옛고개인 이드리재.

 

  

# 주월산이 올려다보인다.

 

  

# 산의 형상이 배의 밑바닥처럼 둥글넙적하다. 주월산은 '배 舟', '넘을 越' 자를 써는데, 옛날 큰 물이 들어 이 산으로 배가 넘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산의 형상이 배의 밑바닥처럼 둥글넙적해서 얻은 이름인 듯하다.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배 舟' 자를 착각해서 '붉을 丹' 자로 적어 '단월산'이라 적어 두었다.

 

 

# 오르막에 위치한 배거리재.

 

        

# 널찍한 주월산정.

 

        

# 활공장이 있다.

 

         

# 지나온 방장산 줄기.

 

        

# 방장산을 땡겨 본다.

  


# 지나온 정맥길을 넓게 펼쳤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축구를 해도 될 것 같은 주월산정.

  

       

# 오도재에서 10여 km 거리다.

 

        

# 햇살 따스하고 사방 트여 좋은 곳이지만 박무가 짙어 조망 나쁜 것이 옥의 티다.

  

       

# 가야 할 정맥길. 무남이재로 오르는 길과 그 너머로 존제산이 보인다.

 

        

# 무남이재 길과 고속도로 공사장.

 

        

# 지뢰밭으로 유명한 존제산을 땡겨본다.

 

        

# 조성면 일대의 인간세가 내려다보인다.

  

       

# 조성면의 대곡제. 이 고장은 들이 넓은 곳이라 저수지가 많다.

 

        

# 벌교의 들판과 산들. 저 산 뒤로 순천만이 있다.

 

        

# 제석산 암봉이 제법 요란하다.

  

       

# 날 맑으면 득량 바다를 굽어보며 즐길 수 있었을 텐데...

  

       

# 햇살 따스한 활공장에서 점심상을 펼쳤다.

  

       

# 산중만찬이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다.

 

        

# 마눌표 유부초밥.

 

        

# 뚜가 준비해 온 과메기.

 

        

# 직접 이렇게 안주를 싸 주기도 한다. 흐미...

 

        

# 여수産 망둥어 무침. 여수에서는 망둥어를 문절구라 부른다.

 


# 흐뭇하지요? 한 잔 술이면 만사 오케이!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내 발이여!

 


햇살 따스한 주월산 정상에서 배낭 내리고 점심상을 펼쳤다. 낙동 동지들끼리 모였으니 막걸리 회포는 뻔할 뻔 자로다! 배낭 속에서 막걸리가 여러 병 나오고 안주도 이것저것 구색을 갖춰 골고루 쏟아진다.

 

형님, 아우 하면서 권커니 작커니 술잔이 돌고 도는데 아무래도 오늘 남은 산길은 술길이 되겠구나! 기분 좋게 마신 술이 만사를 너그럽고 편안하게 만들어 버려 남은 길은 그냥 급할 것이 없어져 버리고 "이 산맥이 어디 가냐? 우리네 인생이 당장 끝나기를 하냐? 쉬엄쉬엄 놀면서 가세!" 가 되어 버린다.

 

오래 술잔을 나누며 긴 만찬을 즐기고 나서도 따스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 버리기 아까워 아랫도리 벗어 거풍도 한 판씩 즐겼다. 그래도 그냥 가기 싫어 신발 벗고 한참을 휴식했다. 무려 1시간 30분 넘게 주월산 정상에서 머물다 다시 길을 나섰다. 12:50 출발!

 

편안한 등로를 따르는데 전방으로 성벽 두 개가 우뚝 솟은 듯 산줄기 두 개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정맥은 무남이 고개로 깊게 떨어져 내렸다가 광대코재로 쎄가 빠지게 올리고, 다시 천치재로 떨어졌다가 존재산을 다시 쎄게 밀어 올려야 한다. 오늘 구간 최대 난코스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술 취한 몸으로 저 산을 어찌 넘을꼬??

 

아래로 잠시 내리면 패러 글라이더들이 휴식처로 만들어 둔 비닐하우스와 화장실이 있고 넓은 임도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우측 숲으로 들어가 잠시 내려가면 전망이 트이면서 사람 기를 죽이는 광대코재의 성벽 같은 산세가 앞에 나타난다. 길게 내려 가면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따르면 '무남이재'에 이른다.

 

 

# 주월산 정상.

 

 

# 오랜 휴식과 주연으로 시방 기분 최고 상태다.

 

  

# 일단은 가 보세! 만고강산~ 유람할제~

 


# 햐~ 이런 동네도 공 치는 데를 만들어 두었네?

 

 

# 여기 또 철 모르는 넘이 있다.

 

 

# 화장실과 비닐하우스가 있는 임도를 만났다.

 

  

# 임도를 버리고 숲으로.

 

 

# 두 개의 성벽 같은 산줄기가 앞을 떡 가로막고 있다. 아이고~ 저길 어찌 오를꼬?

 

 

# 그래도 가야쥐~

 

 

# 길게 내려 임도를 만났다.

 

  

# 무남이재.

 

 

# 이곳에서 광대코재까지 쎄가 빠지게 밀어 올려야 한다.

 

  

주월산은 전후로 모두 물과 배와 관련된 전설과 이름을 가지고 있다. 무남이재는 옛날 득량바다에 해일이 일어 이 고개까지 바닷물이 넘쳐 '물넘은재'라 불렀다가 세월이 흘러 무남이재로 불린 곳이다.

 

우리 앞길도 물 넘듯, 술 넘어가듯 술술 잘 넘어갔으면 좋으련만, 이곳에서 광대코재까지는 고도를 150m, 거리로는 1km를 곧장 밀어 올려야 한다. 가파른 오르막에 달라붙어 위로 치고 오르는데, 길은 계단식으로 점점 가팔라지며 대여섯 차례 밀어 올리게 만들더니 급기야 코가 땅에 닿게 가팔라진다.

 

하얀 로프가 설치된 오르막을 죽을똥살똥 밀어 올리는데 문자 메시지가 띵똥 울린다. "광대코재, 고생 좀 할 겁니다.ㅋㅋㅋ<발신 두루님>"  이런~

 

진을 쏙 빼고서야 하늘이 바로 올려다뵈는 마루금에 올라섰다. 이곳이 철쭉꽃으로 유명한 '초암산 갈림길'이다. T자로 만나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론 초암산 방향이고 우틀하여 조금 오르면 '광대코재'에 올라서게 된다. 14:10.

 

 

# 한 차례 진을 쏙 빼 놓았던 광대코재 오름.

 

 

# 초암산 갈림길.

 

  

# 광대코재에 올라서 돌아보면 지나온 주월산과 방장산이 보인다.

 

  

# 멀리서 볼 때는 존제산이 광대코재 바로 뒤더니 막상 광대코재로 올라오니 저 뒤로 물러 나 앉아있다.

 

  

# 지뢰밭 존제산.

 

  

# 저쪽 방송송신소 앞으로 가야 한다.

 

  

# 지나온 주월산 자락의 골프장.

 


# 광대코재의 360도 파노라마.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정맥의 오른쪽. 조성면 일대.(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정맥의 좌측. 율어면 일대.(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저쪽 무남이재까지 처 박았다가 다시 존제산을 치고 올라야 하는구나!

 

 

# 주월산을 출발한 임도가 정맥의 옆구리를 휘감는다.

 

 

# 모암재로 오르는 도로. 현재 공사 중이다.

 

 

# 몇 주 전쯤 왔으면 단풍이 괜찮았겠다.

 

 

# 임도는 모암재까지 쭉 이어진다.

 

  

10여 분 경치 구경하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완만한 능선을 따르다 암릉 구간을 만나 오르내리다 전망 좋은 봉우리에 올라서는데, 전방에 우뚝한 존제산을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

 

봉우리에서 길게 내려 철쭉 군락을 지난다. 선답자들이 이곳에서 길을 막아서는 철쭉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는 얘길 들었지만, 오늘은 등로 확보가 잘 되어 있어 걱정이 없다. 철쭉 군락을 따라 길게 진행하며 오르내린다.


전체적으로는 고도를 낮춰가는 형상이고, 그러다 한차례 올려 전망이 좋은 '565봉'에 올라서게 된다. 다시 아래로 조금 내렸다 길게 진행하며 오르면 '571봉'에 오른다. 이 봉우리는 고흥지맥 분기봉이다. 

 

 

# 565봉 봉우리에 먼저 올라선 낙동 동지.

 

  

# 봉우리에서의 지나온 길 파노라마. 우측 광대코재, 좌측으로 주월산과 방장산.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저 임도를 자전거 타고 순례해도 좋을 것 같다.

 

  

# 아직 몇 차례 더 오르내려야 한다.

 

  

# 가야 할 길의 파노라마. 철쭉과 잣나무 숲이 공존한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봉우리에서 저 철쭉길로 지나는 산꾼을 찍으면 그림이 나오겠다 싶어 한참을 기다리는데, 도대체 사람이 나타나질 않는다.

 

  

# 기다리다 지쳐 아래로 내려가 보니 잣나무 숲 한쪽에 장렬히 전사해 있다.



# 571봉. 고흥지맥 분기점이다.

 

 

# 등로 곁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 아직 가을 냄새가 남아 있다.

 

 

 

# 571봉. 삼각점이 있다.

 


# 그곳에 갈림길이 있다.

 

 

# 우측 길은 고흥지맥이고 정맥은 좌틀하여 떨어져 내린다.

 


# 가야 할 존제산이 우뚝하다.

 

  

571봉에서 좌틀하여 모암재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곧장 아래로 길게 내려가면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지나 숲으로 다시 들어 간다. 잠시 후 대규모 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암재'에 내려서게 된다. 15:15

 

                               

# 모암재까지는 노출된 등로를 따라 길게 내려간다.

 

 

#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고개는 천치재라고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기록되어 있던데 '사람과 산' 지도에는 모암재로 적혀 있다. 국립지리원의 지도에는 고개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고 보성군의 자료에도 언급이 없다.

 

대규모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현장을 가로질러 맞은편 숲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존제산까지는 고도를 무려 250m나 올려야 한다. 곧바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더니 계단식으로 꾸준히 밀어 올리게 만드는데, 앞서 광대코재 오르막에서 너무 기운을 쏟아서 그런가? 상당히 힘이 많이 든다.

 

그래도 한걸음 두걸음 보태서 길게 올라 정상부에 이르고 지뢰지대임을 알리는 경고판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2007년에 군에서 지뢰 제거 작업을 해서 그 이전에 호남정맥을 한 사람들은 존제산을 통과하지 못하고 생략해야만 했다. 지뢰 제거 작업을 했다지만 아주 완벽하지는 않아서 누군가 이곳을 지나며 땅 위로 노출된 발목지뢰 사진을 올려 둔 걸 봤던 지라 상당히 긴장이 된다.

 

일단 등로만 벗어나지 않으면 안전하리라 생각하고 집중하여 등로를 오르면 교통호들을 지나게 되고 다시 철조망 지대를 통과해서 '존제산'에 올라서게 된다. 16:05.

 

                               

# 공사 현장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 고도 250을 올려야 하는지라 상당히 힘을 쏟아야 했다.

 

        

# 고흥지맥 분기봉에서 광대코재에 이르는 정맥길.

 

        

# 철조망을 통과했다.

 

         

# 힘겹게 정상에 올랐다.

 

         

# 발목 관리에 신경이 바짝 쓰인다.

 

  

애초에 오도치를 출발하면서 석거리재까지는 가기로 작정을 했었다. 하지만, 주월산에서 점심 먹으며 따스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에 마음이 빼앗겨 너무 오랫동안 노는 바람에 석거리재는 물 건너가고 주릿재에서 멈추기로 했다. 일정이 그러하니 서두를 일 없어 존제산에서 배낭 내리고 또다시 막걸리 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느긋한 일정에 더욱 느긋한 마음으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다가 정상에서 오래 머문 후 다시 길을 나섰다. 16:50.

 

 

# 선답자들이 낙서를 많이 해 두었던 하얀 나무, 가까이 가 보니 군부대에서 세운 군견의 비목(碑木)이었다.

 

  

# 존제산 정상부에 위치한 군부대. 지금은 철수하여 비어 있다.

 

  

# 넓게 펼쳐 보는데 이곳도 철쭉 밭이라 봄이면 제법 볼만 하겠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철쭉밭을 지나 군부대 쪽으로 접근하면 철조망이 2중 3중으로 설치되어 있는데, 산꾼들이 다니면서 지나갈 수 있게 구멍을 뚫어 두었다. 그러나 한 곳에는 군부대에서 다시 원형 철조망을 설치해 두어 통과하는데 한참을 애를 써야 했다.

 

곧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오래 전 군에서 사용하던 막사는 비운 지 오래 되었는지 퇴락하여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군부대를 지나 도로에 나섰다. 좌측 위로 도로가 이어지며 정상부에 군부대가 또 있는데, 그곳은 지금도 군이 주둔하고 있는지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제부터는 도로를 따라 길게 진행한다. 정상에서 오래 쉬었더니 벌써 존제산 어깨 쪽으로 해가 기울고 있다. 도로를 따라 구불구불 내려가다 보면 커다란 안테나와 건물이 있는 방송사 시설이 있는 668봉 좌측 앞으로 지나게 된다. 이윽고 구불구불한 도로를 길고도 길게 내려간다.

 

금방 끝날 것 같았던 도로가 정말 길게도 이어진다. 30분을 넘게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맞은 편에서 코란도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올라온다. 안에는 군인들이 타고 있다.

 

내려가는 차가 아니고 올라오는 차가 있네? 내려가는 차라면 좀 얻어 탈텐데... 아쉬워하며 다시 10여 분 넘게 터덜터덜 내려가자니 좀 전에 올라갔던 차가 다시 내려오고 있다. 혹시나 하며 손을 들었더니 이내 세워 준다. 벌교에서 영외 거주를 하고 있는 부사관이란다.

 

코란도 짐칸에 배낭 맨 채로 올라타고 고갯길을 다시 달려 아래로 내려갔다. 우리가 이미 4~50분을 걸어 내려왔음에도 자동차로 아주 한참을 더 내려오고서야 주릿재에 도착할 수 있다. 18:00

 

마침 그 군인이 벌교까지 간다길래 계속 벌교까지 동행하게 되는데, 젊은 군인이라 그런지 운전이 거의 카레이싱 수준이다. 주릿재에서 벌교까지 5분여 만에 휙 도착했다.

 

 

# 군부대 입구를 막아 둔 철조망 지대.

 

  

# 군이 이미 철수한 부대 안을 통과했다. 막사 규모로 봐서 규모가 큰 부대가 주둔했었나 보다.

 

 

# 이제부터는 긴 도로 트래킹이 시작된다.

  

 

# 개 짖는 소리 요란하다.

  

 

# 하도 오래 쉬었더니 벌써 일몰이 시작된다.

 

 

  

# 이 먼 후방지대에 지뢰를 매설한 이유가 무얼까? 하긴 이곳도 바로 해안가이니 군사적으로는 후방이 아니라 접경지역인 셈이다.

 

 

# 어느새 달도 떠 오른다.

  

 

# 젊은 군인 덕분에 벌교까지 한 방에 도착했다.

 

 

# 벌교에 왔으니 꼬막 맛을 봐야지.

 

  

벌교읍은 자그마한 시골 소읍이다. 하지만 꼬막이 유명하니 꼬막 맛을 보기로 했다. 마침 친절한 부부가 운영하는 꼬막집을 발견하였다. 적당량 삶아 달래서 미리 시장을 봐둔 내일 일용할 양식들과 함께 짊어지고 택시 불러 오도치로 복귀했다.

 

택시 안에서 기사에게 왜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고 하는지 물었다. 그의 말은 자유당 시대에 이 고장에 주먹들이 많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나중에 자료 확인해보니 벌교 주먹의 역사는 그보다 더 오래되어서 옛날 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옛날에 벌교는 제주의 말총을 비롯한 물산들이 드나들던 주요 교역처였고 따라서 돈이 많이 도는 융성한 동네였단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돈 냄새 맡고 모여드는 인근 호남지방의 건달들이 많을 수밖에 없어서 벌교에서는 돈 자랑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뚜버기나 나나 애초에 주먹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라 주먹 낼일 없이 가볍게 오도치에서 차를 회수했다.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타가 어젯밤 신세를 졌던 쇠실 쉼터로 다시 달려가서 소나무 아래에 잠자리를 꾸몄다. 그리고 오랫동안 술잔 주고받으며 산꾼의 정을 나누다가 밤이 늦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 오늘은 뚜버기의 오르가미 쉘터를 설치했다.

 

 

# 막걸리 한 순배 도니 뚜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돈다.

 

 

# 벌교 꼬막. 색다른 별미다.

 

 

# 마눌표 쭈꾸미 불고기.

 

 

# 동무가 있으니 정맥길이 이래 재미있다. 앞으로 홀로 가는 정맥길은 고민 좀 해 봐야겠다.

 

 

# 지리산 같은 국공파 출몰지역에 쓰려고 장만한 오르틱 투펙 쉘터. 이날 처음으로 필드 테스트를 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환기구를 모두 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결로가 어찌나 심하던지 침낭이 다 젖어 버렸다. 아이고! 돈 아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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