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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열여덟번째(빈계재~두월리고개)-탈출의 달인! 본문

1대간 9정맥/호남정맥종주기

[호남정맥]열여덟번째(빈계재~두월리고개)-탈출의 달인!

강/사/랑 2011. 1. 10. 10:08
 [호남정맥]열여덟번째(빈계재~두월리고개)

  

백두대간 종주할 때 이야기이니 벌써 5~6년 전 일이다. 2006년 첫 일출(日出)을 태백산(太白山)에서 맞이해 보자는 생각에 얼음 코팅되어 있는 구절양장 주실령을 시속 1~2km 속도로 엉금엉금 기어서 겨우 넘어 태백산 입구 도래기재에 도착한 것이 1월 1일 새벽이었다.


차 밖으로 나오니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쨍하게 추운 날씨에 절로 온 몸이 움추려 들었다. 매서운 겨울 날씨에 바짝 긴장한 마눌 달래 안심시킨 후 새벽같이 서둘러 대간속으로 스며 들었다.

 

그날 태백은 온통 눈세상이었다. 구룡봉 넘을 때 이미 발목 깊이의 눈이 길을 더디게 만들더니 신선봉을 넘자 종아리를 넘어 섰다. 차돌배기를 넘어 깃대배기봉에 이르렀을 때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눈보라까지 일더니, 등로에 쌓인 눈은 이미 종아리를 넘어 깊은 곳은 허벅지까지 차 올랐다.

 

아무도 지나지 않은 심설(深雪)을 러셀하면서 지나자니 체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판단력까지 희미해져 위치 파악이 전혀 되지 않았다. 눈보라를 뚫고 어찌어찌 부쇠봉에 도착해서 겨우 한숨을 돌렸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심설 산행에 조난의 공포로 바짝 쫄아 있는 마눌을 달래서 하단 지나 얼음판 오르막을 엉금엉금 기어 천제단에 올라 섰다. 칡흑같이 어두운 태백 정상엔 고삐 풀린 말처럼 사나운 눈보라가 휘몰아 치고 있었다.

 

마눌은 그래도 한번 와봤던 곳이고 여차하면 망경사나 유일사로 대피하면 된다는 사실을 아니 한결 안심하는 눈치였다. 조난의 공포를 이겨내고 태백 정상에 서서 막걸리 한 잔 산신령께 바치고 우리도 한 잔씩 나누니 비로소 생기가 돌면서 이젠 살았구나 싶었다.

 

이후로도 두어 시간 더 눈길을 헤맨 뒤에야 화방재에 내려서는데, 시각은 이미 22시 30분을 넘고 있었다. 우리를 기다리다 걱정이 된 춘양택시 정재범기사님이 산속까지 우리를 마중오는 해프닝도 있었다. 아침 6시쯤에 도래기재를 출발했으니 무려 16시간 30분간이나 눈속을 헤맨 셈이다.

 

심설 산행이 얼마나 어렵고 힘 들며 시간 지체도 많은지 뼈저리게 실감한 하루였다. 이후는 가능하면 눈이 많이 왔을 때는 장거리 겨울 산행은 지양하는 편이었다. 그 후 금북정맥과 낙동정맥을 겨울철에 걸었지만, 다행히 큰 눈을 만날 일은 없어서 백두대간할 때 같은 위험한 경우는 피할 수 있었다.

 

그래도 돌아보면 그때는 현역 대간꾼이라 정신도 투철하고 체력도 좋았는지 비록 눈길 헤치느라 시간 지체는 심했지만 그렇게 오래 걸었음에도 탈진하거나 못 걷겠다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유달리 눈 많이 오고 한파주의보 자주 발령되는 올 겨울에 눈 잦기로 유명한 호남길에서 심설을 헤치고 가야 할 일이 생기는데, 이 건 뭐 산행의 즐거움이 아니라 눈길 헤치느라 탈진하여 엉금엉금 기어야 하는 고행길이 되어 버렸다.

 

결국 첫날엔 계획된 접치까지 가지 못하고 굴목재 전 임도에서 남강리 저동마을까지 7km이상을 걸어 탈출해야 했고, 뒷날도 노고재는 고사하고 오성산 넘어 이름도 없는 두월리 고개에서 두월리 두모마을로 또다시 탈출을 하고 말았다.

 

그동안 대간과 여러 정맥산행을 하면서 시간이 지체되어 밤중에 불 밝히고 걷다 날머리에 내려선 일은 부지기수이지만, 중간에 멈춰버린 경우는 거의 없었고, 그나마 이틀 연속 길 없는 곳 더듬어 탈출하기는 또 처음이다. 이러다 탈출계(脫出界)의 달인(達人)이 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TV 개그 프로에 온갖 종류의 달인을 소재로 웃기는 코너가 있듯이 정맥산행 중 탈출계의 달인이 될까 걱정이 된다. "16년 동안 1대간 9정맥을 하면서 항상 탈출만 전문으로 하시는 탈출의 달인 빠삐용 강/사/랑님을 소개합니다!!!" 뭐, 이런 식으로...

 

 


탈출의 달인!


구간 : 호남정맥 제 18구간(빈계재~두월리고개)
거리 : 구간거리(27.5km), 누적거리(388.8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1년 1월 8, 9일. 흙과 해의 날.
세부내용 :

빈계재(10:40) ~ 482봉 ~ 519봉 ~ 511.2봉(12:10) ~ 556봉(12:40) 점심 후 14:20 出 ~ 607봉 ~ 고동재 ~ 고동산(15:00) ~ SK기지국 ~ 651봉 ~ 696봉 ~ 장안치(16:50) ~ 700.8봉(17:15) ~ 굴목재전 임도(17:35) ~ 저동마을로 탈출(19:10).

 

선암사주차장(06:40) ~ 선암사 ~ 대각사 ~ 절터(08:30) ~ 조계산(09:25)/20분 휴식 ~ 장박골갈림길 ~ 542봉 ~ 396봉 ~ 접치(11:00) ~ 묘지/휴식 후 11:50 出 ~ 돌탑 ~ 오성산(13:00) ~ 두모고개(13:45) ~ 391봉/ 점심 후 15:10 出 ~ 두월리 고개(15:15) ~ 두모마을로 탈출(15:50).

 

총 소요시간 17시간 40분.


1월 8일 흙의 날. 혼자서 솔방솔방 다니던 호남길을 낙동 동지인 뚜벅과 같이 마무리하기로 하고 짝을 맞춰 호남길 나서는 두 번째 길이다. 지난 해 11월 말에 빈계재에 내려선 이후 각자 연말연시 이런저런 바쁜 일정들이 겹쳐 날 잡기 어렵다가 해를 넘기고 나서야 겨우 일정을 맞췄다.

 

그나마 뚜버기가 금욜날엔 약속이 있다 해서 토욜 새벽에 만나 출발하기로 했는데, 나 역시 사무실에서 회식이 갑자기 잡혀 어차피 금욜 저녁 출발은 어렵다.

 

금요일 퇴근하고 내 20년 단골집인 안양 명학역 앞의 허름한 횟집으로 이동해서 회식을 했다. 그런데 간만에 맛있는 회를 먹어서 그런가 젊은 직원들이 발동이 걸려 2차, 3차로 이어진 술자리가 새벽 1시가 넘어서도 끝날 줄을 모른다. 결국,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3차에서 멈추고 집에 들어와 씻고 자리에 누으니 시각은 이미 2시를 넘었다.

 

겨우 두 시간 눈 붙이고 일어나 먹고 씻고 짐 챙겼다. 산본역에서 택시 타고 달려온 뚜버기 픽업해서 상기 어두운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음... 지금 음주 측정하면 적발되겠다...

 

영동, 경부, 천안 논산, 호남, 익산 포항, 남원 순천, 국도, 순천행 고속도로를 부지런히 갈아 타고 달리고 달려 빈계재에 도착하니 시각은 어느덧 10시 30분이 넘었다.

 

 

고동산/高東山

 

낙안면과 송광면에 걸쳐있는 고동산은 잘 알려진 산은 아니다. 높이는 709m로 되어 있지만 이미 이 지역이 상당히 높은 고도이기 때문에 도보로는 조금만 오르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벌교에서 낙안읍성을 찾아가 선암사 쪽으로 계속 가면 오른쪽에 금전산이 있고 계속 오르막길을 올라 고개 넘어 왼편으로 낙안면 수정리 동네로 가는 길이 있다. 비좁은 자동차 도로지만 계속 가다보면 산 너머 송광면으로 이어진다. 수정리 동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쳐다보면 오른쪽으로 송신탑이 보이는 산이 고동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남쪽 멀리 백이산의 뾰족한 봉우리가 선명하고 북쪽으로 조계산 장군봉이 뾰족하게 서 있다. 다시 둘러보면 동남쪽에 금전산, 그 밑에 제석산, 그리고 남서쪽에는 백이산이 뾰족한 삼각형 봉우리를 자랑하고 있다.

 

조계산/曹溪山

 

전남 순천시 승주읍, 송광면, 주암면에 위치한다. 높이는 884.3m이다. 조계산은 백두대간 호남정맥에 속한 한 봉우리이다. 산세가 부드럽고 아늑하고 산속의 깊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며, 만수봉과 모후산이 송광사 일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전국 3대사찰의 하나인 송광사와 고찰인 선암사가 주능선을 중심으로 동서에 자리하고 선암사 계곡을 흐르는 동부계곡은 이사천으로 남부계곡은 보성강으로 흘러들게 된다. 선암사 둘레에는 월출봉, 장군봉, 깃대봉, 일월석 등이 줄지어 솟아있다. 조계산 산행은 송광사나 선암사 어느쪽에서 시작해도 비슷한 시간에 다양한 코스를 즐길 수 있다. 산세가 험하지 않고 평탄한 길이 많아 연인끼리 또는 가족단위 소풍코스로도 알맞다. 봄맞이 산행지로 3월에 가장 많이 찾으며, 가을산행으로는 남녁에 위치해 있어 단풍이 늦게 들므로 10-11월에 인기있다. 예로부터 소강남(小江南)이라 부른 명산으로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폭포·약수 등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불교 사적지가 많으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79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 선정 100 명산에 선정되었다.

 

오성산/五聖山

 

순천시 승주읍, 주암면 두모마을에 있다. 높이는 606.2m 이다. 오성산에는 형제바위, 다섯무사가 공부하였다는 공부굴, 상제가 빠져 죽었다는 사제굴이 있으며 중턱에는 절터가 있다. 훈련장으로 사용하던 터 안에 금동말이 있었는데 말머리를 중국쪽으로 돌려 놓으면 중국에 가뭄이 든다는 전설이 있으며 말구시란 곳에 말발자국이 박혀있다. 대장봉, 솔봉, 안장봉, 구석박골의 지명이 있으며 기원을 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약수가 흐른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호남정맥 제 18 구간 빈계재~노고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호남길 가는 고속도로에서 만난 여명.

 

 

 

# 고속도로 터널 지나며 이런 장난도 해 본다.

 

 

 

# 요근래 호남지방엔 폭설이 잦다. 남도로 내려갈수록 눈 덮인 산하 풍경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 해를 넘기고서야 다시 서는 빈계재.

 

 

 

# 억새꽃 구경하며 내려왔던 백이산 방향 날머리.

 

 

지난 가을에 백이산 지나 내려섰던 빈계재에 겨울이 깊어서야 다시 서게 되었다 그때 이곳 편백숲에서 하룻밤 야영하자고 했었는데, 날 추워지고 출발까지 늦으니 야영할 일 없어져 버렸다. 들머리 입구 공터에 주차하고 짐 챙겨 길을 나섰다. 10:40.

 

편백숲 사이로 치고 오르는데 오늘 날씨가 너무 추워 얼른 체온이 오르지 않는다. 기온 체크하니 영하 16도다. 흐미~ 추븐거~~ 편백숲길을 계단식으로 치고 오르면 농장에서 설치한 철조망을 만난다. 그 철조망을 따라 길게 진행한다.

 

등로엔 지난 주에 내린 눈이 수북한데 고라니, 멧돼지 외에는 지난 흔적이 없어 인간으로는 우리가 첫걸음을 하는 셈이다. 길게 올려 '482봉'을 넘고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봉우리를 치고 오른다.


오늘 이 구간의 눈 상태는 아이젠을 하기도 안 하기도 애매한 정도의 적설량이라 일단 그냥 아이젠 없이 진행하였다. 내가 신고 있는 국산 캠프라인 등산화는 바닥창이 릿지앳지창이라 암릉길에는 그 진가를 발휘하지만, 이런 눈길에서는 취약해서 계속 미끄러지며 진행하느라 힘이 많이 든다.

 

길게 올려 '519봉'에 올라 돌아보니 백이산, 존제산 등 지나온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 오고 좌측 전방으로 모후산이 흰눈을 쓰고 멀리서 빛나고 있다.

 

한참 경치 구경하다가 아래로 내렸다. 다시 잔봉 서너개를 꾸준히 넘는다. 눈길이 미끄러워 평소보다 훨씬 힘이 많이 들고 시간지체도 심하다. 게다가 요즘 같은 동절기엔 수낭을 사용할  수 없어 날진병에 물을 넣어 다니는데, 목마를 때마다 배낭을 벗어야 하기 때문에 귀찮아 그냥 참고 말아서 평소 물 소비량이 많은 나같은 사람은 더욱 힘이 든다.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고 길게 가다가 치고 오르면 '511.2봉'에 올라 서게 된다. 12:10.

 

 

# 쨍하게 추운 날씨다. 기온은 영하 16도를 가리키고 있다.

 

  

# 쭉쭉 뻗은 편백숲 사이로 올라간다.

 

 

# 걸음 느린 나 때문에 고생이 더 많은 산동무.

 

 

# 지난 가을 이 편백숲에서 하룻밤 머물자고 했었는데...

 

  

# 편백숲을 넓게 본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농장에서 설치한 철조망을 따라 진행한다.

 

 

#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 연달아 나타난다.

  

 

# 좌측 멀리 흰 설산이 보여서,

  

 

# 땡겨 보았더니 모후산이다.

 

  

# 거대한 독수리 두 마리가 날아와 머리 위를 선회한다.

 

  

# high high!!!

 

  

# 그 기상이 빼어나다.

 

  

# 배낭 내리기 귀찮아 물 대신 그냥 눈을 먹었다.

 

  

# 돌아보면 지난 가을에 지나온 존제산이 보인다.

  

 

# 양지 바른 곳은 눈이 녹고 없다.

  

 

# 지나온 산줄기.

 

  

# 고사리 많은 백이산.

 

  

# 그 뒤에 있는 존제산.

 

  

# 돌아본 광경을 넓게 파노라마. 이곳에서 저 멀리 존제산까지 빈계재, 석거리재, 주릿재 세 개의 고개가 정맥을 가로 지르고 있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낙안들과 멀리 바다가 보인다.

 

  

# 고흥 앞바다를 땡겨본다.

 

  

# 우측 전방으론 고동산이 보이고,

 

  

# 고동산 정상부.

  

 

# 저만치 앞서가는 산동무.

  

 

# 언제나 홀로 산길 걷다가 동무 있으니 든든하다.

 

  

# 낙안의 다섯 봉우리 중 하나인 금전산.

  

 

# 가까이...

  

 

# 하얀 눈밭에 핑크빛 얼룩이 곳곳에 있어 궁금했는데 자세히 보니 청미래 열매가 눈을 붉게 물들였다.

 

  

# 511.2봉.

 

  

 

다시 잔봉 두어 개를 넘고 한차례 길게 오르면 '556봉'에 이른다. 뱃속에서 거지들이 배고프다 아우성이라 등로 한 켠에 자리 깔고 점심상을 펼쳤다. 12:40

 

                   

# 호남길 산상만찬.

 

  

# 과매기와 문어 숙회.

  

 

# 어묵탕도 준비하고!

 

  

# 이 재미가 없으면 산길 어찌 다닐꼬?

  

 

뚜벅과 나의 산길에 있어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인 점심 만찬은 오늘도 풍성하고 느긋하여서 주거니 받거니 술잔 오가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 보니 하염없이 시간이 흐른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무려 1시간 40분이나 점심을 즐긴 후 느지막이 짐 챙겨 자리를 털고 일어 났다. 이렇게 점심시간으로 시간을 많이 잡아 먹어서 오늘 어둡기 전에 산에서 내려가기는 틀렸구나!

 

살짝 올라 봉우리에 오르니 저 멀리 고동산이 우뚝하고 잔봉 두어 개를 넘고 눈 덮인 '임도'를 만난다. 이곳이 고동재인가 잠시 헷갈렸지만 고동재는 잠시 더 진행하여 만나는 넓은 사거리의 임도다.

 

 

# 저멀리 고동산의 모습이 보인다.

 

 

# 땡겨보니 정상에 통신탑이 서 있다.

 

  

# 잔봉 두어 개를 넘고,

  

# 임도를 만나고,

 

  

# 잠시 더 진행하면,

  

 

# 넓은 임도가 지나는 고동재에 이른다.

  

 

# 좌우로 수정마을과 장안마을을 이어주는 임도 사거리다.

 

 

고동산은 직진길로 1.1km 거리다. 넓은 임도가 산정상을 향해 뻗어 있는데, 단순히 치고 오르는 형상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3단으로 치고 올라야 한다. 넓지만 경사가 제법 가파른 임도길을 따라 올라갔다. 사방이 노출된 억새밭이라 찬바람이 강하게 몰아치고 있어 만만하게 오를 수 있는 길은 아니다. 게다가 눈까지 쌓여있어 미끄러운 경사길을 치고 오르기가 무척 힘이 든다.

 

다만 사방 조망이 트인 곳이라 경치 하나 멋지게 펼쳐지는 것이 위안거리는 된다. 15:00. 찬바람 강하게 몰아치는 '고동산'정상에 오른다.

 

 

# 고동산까지는 1.1km 거리다.

 

 

# 3단으로 치고 올라야 한다.

 

  

# 등로가 노출되어 있어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오고 있다.

 

 

  

 

# 바람 강하고 미끄러운 경사길이라 만만치 않은 오름이다.

 

 

 

  

# 아직 두 계단 더 남았다.

  

 

# 좌측 멀리 조계산이 건너다보인다.

 

  

# 이번 구간의 주요 포스트인 조계산을 땡겨 본다.

 

  

# 고동산에서 조계산에 이르는 정맥길을 넓게 펼쳐 본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하얀 눈길을 따른다.

 

 

 

# 지나온 길과 가야 할 길을 한 화면에 담았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고동산 정상.

 

  

# 찬바람 휘몰아쳐 시베리아 벌판이다.

 

 

# 하지만 같이 산길 걷는 동무가 있어 든든하다.

  

 

# 우측으로 낙안들과 금전산이 건너다보인다.

 

  

# 낙안벌을 땡겨본다.

 

  

# 정상 우측의 파노라마.(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고동산 정상엔 산불감시초소와 통신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고 일대의 산이 키 작은 철쭉과 억새밭으로 되어 있어 사방으로 조망이 훌륭하다. 지나온 빈계재 방향의 정맥길은 물론이고 우측 낙안, 벌교쪽의 산하와 인간세. 좌측 송광면 쪽의 산하들, 그리고 가야 할 조계산 방향의 정맥길이 한바퀴 빙 돌아 한눈에 들어 온다.

 

그 놀라운 조망에 가슴이 뻥 뚫리고 감탄사 절로 나오지만, 그보다 무섭게 휘몰아치는 찬바람 때문에 오래 경치 감상할 여건이 못 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잠시 정상에 머물며 경치 구경 타가 이내 출발하여 조계산으로 향한다.

 

역시나 사방이 툭 트인 임도를 따라 바람을 뚫고 길게 내려갔다. 점차 눈의 양이 많아지고 길 또한 미끄러워 왼종일 귀찮아 미루며 버텨오던 눈길 채비를 드디어 하게 된다.

 

  

#  저멀리 조계산을 향해 고고!   

 

 

# 조계산까지 6.6km이니 3시간쯤 걸리겠구나!

 

 

# 찬바람 강하게 휘몰아치고 있다.

 

 

 

# 눈이 점점 많아져 스패츠와 아이젠으로 중무장했다.

 

  

길게 내려 헬기장을 지나고 SK기지국 우측으로 치고 올라 봉우리 두어 개를 넘었다. 그러다 봉우리 하나를 다시 넘으려는데 좌측 아래에 임도 하나가 산 허리를 휘감고 있다. 임도를 만났으니 저 임도가 어디로 향하는지 탐사해 봐야겠다 하고 나는 임도를 따르고 뚜벅은 그대로 마루금을 따라 봉우리를 넘기로 했다.

 

새하얀 눈으로 덮힌 임도는 넓고 완만해 보기엔 너무나 좋은데, 짐승조차 지난 흔적이 없는 새길이라 눈길을 러셀하며 지나야해서 산길 걷기보다 오히려 힘이 더 들었다. 게다가 가면 갈수록 아래 쪽으로 향하면서 정맥길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지려고 한다.

 

아이고, 이대로 가서는 안 되겠다. 다시 정맥으로 복귀하자! 결국, 임도를 버리고 우측 숲으로 치고 올라 정맥길을 향해 산의 사면을 치고 올랐다. 그런데 웬걸? 숲속은 온통 잡목으로 가득하고 벌목한 후 방치된 잔해물이 가득해 이내 숲속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눈에 파묻혀 숨어 있다가 막상 숲에 들어간 후 맞딱드려 오도가도 못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좀 편한 길을 찾으려다 영판 어려운 길로 들어섰으니 누굴 원망하리오!

 

죽을똥 살똥 허덕대며 혼자 눈구덩이, 잡목숲, 페목 더미 속에서 헤엄치다가 어찌어찌해서 겨우 숲을 벗어나 마루금에 복귀하지만, 이미 정신은 황폐해지고 육신은 지쳐 버렸다.

  

 

# SK 중계소를 지나 봉우리 하나를 넘었다.

 

 

# 산허리를 휘감는 임도를 만나 결정적 패착을 두게 된다.

 

 

# 정말 바보같은 짓을 겪은 후 탈진한 채로 마루금에 복귀했다.

 

 

겨우 정신을 추스리고 아래로 내리면 눈에 덮혀 분간이 어려운 '장안치'를 지나고, 한차례 길게 올려 '700.8봉'에 오른다. 나무로 만든 안내판이 있는 정상을 지나 다시 작게 봉우리 하나를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705봉'에 이르게 된다.

 

일부 지도에는 이 봉우리를 '깃대봉'이라 적어 두었다. 이후 눈 덮여 미끄러운 내리막을 길게 내려가면 '임도 사거리'에 이른다. 17:35.

 

 

# 숲너머로 700.8봉이 우뚝하다.

 

  

# 조망이 없는 700.8봉.

 

  

# 정상석 대신 이름표를 달고 있다.

 

 

# 바로 뒤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705봉이 나타난다.

 

  

# 길게 내려 임도사거리에 이른다.

 

  

임도사거리는 차도 만큼이나 넓은 자갈길인데, 눈에 고립된 트럭을 트랙터가 견인해 우측 낙안 방향으로 내려 가고 있다.

 

홀로 눈밭에서 헤매느라 헤어졌던 뚜버기님을 이곳에서 다시 만나 임도 한 켠에서 자리 깔고 막걸리 상을 새로이 펼쳤다. 좀 전에 눈 덮인 숲속에서 혼자 얼마나 난리 부르스를 쳤는 지를 안주로 막걸리 한 잔씩 나누는데, 산속의 밤은 빨리도 찾아와서 금세 주위가 어둑어어둑해지며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애초에 야간산행은 생각치 않았는데 점심식사를 너무 오래 즐겼고 임도 탐방하다 홀로 숲속에서 30여 분 알바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두세 시간 이마에 불 밝히고 야간산행을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뚜버기 보기에 홀로 알바하느라 체력 떨어진 내 상태가 앞으로 두세 시간 더 산길 걷기에는 무리로 보였는지 이 쯤에서 멈추고 탈출하자고 한다.

 

이때까지 우리는 이 임도가 굴목재인줄 알았고 지도 확인하니 1시간 정도만 계곡으로 내려가면 선암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조계산을 캄캄한 밤중에 넘기보다는 내일 날 밝을 때 넘기로 하고 짐 챙겨 임도를 따라 선암사를 향해 탈출을 감행했다. 에이~ 이럴줄 알았으면 아까 그 트랙터를 얻어 타는 건데...

 

 

# 굴목재로 착각한 임도를 따라 탈출했다.

 

  

임도를 따라 두어 차례 산허리를 휘감자 이내 주위는 캄캄해지는데, 백두대간 박달령에서 주실령 방향으로 탈출하는 임도를 쏙 빼닮은 이 임도는 가도가도 끝이 없고 목적했던 선암사는 커녕 인가의 불빛조차 보이질 않는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1시간 30분 간이나 헤맨 후에야 겨우 인가의 불빛을 만나지만, 그 조차도 얼마나 더 가야 마을에 내려설 수 있을지 알 수가 없게 산길은 계속 불빛과는 딴 방향으로 구불거리기만 한다. 그러다 산길이 또 한번 휘감기 시작하는 지점에 정면 멀리 마을 불빛이 보이는데, 눈밭에 찍힌 고라니 발자욱이 임도를 벗어나 그 마을 불빛을 향해 내려가고 있다.

 

"좋아, 짐승들도 길 없는 곳을 걷지는 않았을테니 저 고라니 발자욱을 따라 가자! 고라니 갔으니 인간도 갈 수 있겠지!" 그렇게 고라니 자취를 따라 길게 내리막을 치고 내려가다가 계곡을 건너고 밭을 가로지르자 드디어 마을에 내려서게 된다.


불빛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 불 켜진 집에 찾아 들어 마을 이름을 묻고 택시를 요청하니 아닌 밤중에 산적같은 두 산꾼을 본 마을 분들이 깜짝 놀란다.

 

아마도 소설 태백산맥에 나온 빨치산들도 그 옛날 우리처럼 이렇게 밤중에 마을에 들러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 조정래 작가의 역사 인식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이념의 한계를 떠나 한겨울 얼어붙은 산속에서 처절하게 투쟁한 빨치산들의 심정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마을 주민들은 꽁꽁 언 몸으로 어둔 밤길 걸어 찾아든 산적들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따끈한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이게 해 주시더니 인근 택시도 불러 준다. 감사! 감사!

 

그런데 문제는 이 마을이 선암사쪽 마을이 아니라 남강리 저동마을이란다. 결국 우리가 탈출했던 그 임도 고개가 굴목재가 아니라 굴목재는 작은 봉우리 하나를 더 넘어야 나오고, 그 굴목재에서 선암사까지는 긴 거리가 아니지만 임도에서 이곳 저동마을까지는 무려 7km나 되는 거리였던 것이다. 이렇게 멀리 탈출해야 했다면 차라리 조계산을 그냥 넘는게 백 번 나을뻔 했다.

 

  

# 끝날 것 같지 않은 임도를 버리고 저 고라니 발자욱을 따라 마을로 향했다.

 

  

# 저동마을 주민께서 불쌍한 두 산적에게 배푼 보시.

 

  

저동마을의 인심이 담긴 따끈한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이고 택시를 이용하여 빈계재에 세워둔 차를 회수했다. 그리고 택시기사가 추천해 준 승주의 기사식당에서 늦은 저녁으로 허기를 달랜 후, 면소재지보다 약간 더 큰 듯한 승주읍을 뒤져 허름한 모텔에 여장을 풀었다.

 

아, 힘든 하루였다...

 

 

# 택시기사가 알려준 승주읍의 기사식당. 음식이 깔끔하고 맛났다.

 

 

다음날 새벽 4시 쯤 일찍 일어나 아침 간단히 끓여 먹고 짐 챙겨 모텔을 나섰다. 인적 없는 새벽길을 4km 정도 달려 선암사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어두운 새벽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고 있다.

 

어제 눈밭에서 걷느라 힘이 많이 들었는데 오늘 또 눈이 오냐? 심란한 마음 정리하고 짐 챙겨 선암사 주차장을 떠나 절 경내로 들어 섰다. 06:40.

 

유명한 선암사 구름다리는 어두워서 눈 짐작만 하고 선암사 경내로 들어섰다. 하지만 조계산 올라가는 등로를 찾지 못해 한참을 절 경내에서 헤매다가 마침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나오는 스님께 길을 물어 겨우 들머리를 찾았다.

 

 

# 정상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예상된다.

 

 

# 눈 내리는 선암사의 새벽. 

 

 

선암사 좌측에 있는 등로를 따라 오르다 대각사에 이르게 되고 그곳에서 다시 길을 찾지 못해 잠시 헤매다 역시 좌측에 있는 등로를 발견하고 본격적인 오르막에 몸을 맡겼다.

 

두어 차례 가파른 돌길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 동안 어둠이 걷히고 더불어 눈발도 잦아 들어 겉옷 벗어 배낭에 팩킹하고 등불도 집어 넣었다. 옛 절터가 있던 흔적을 지나 본격적인 비탈길을 만나 헉헉 낑낑 밀어 올리는데, 위를 보니 누군가 저 위에서 나를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다.

 

먼저 올라간 뚜버기님이 나를 기다리나 싶어 숨소리 거칠게 밀어 올려 그곳엘 갔는데, 어렵소? 아무도 없네? 뚜버기가 기다리다 먼저 올라갔나? 다시 한차례 가파른 비탈길을 힘들게 밀어 올리니 '옛 절터와 얼어붙은 샘터'가 나타난다. 08:30.

 

 

# 들머리를 찾지 못해 두 차례나 알바를 했다.

 

 

  

# 날이 밝아 오면서 눈발도 그친다.

 

 

# 절터도 지나고,

 

 

# 눈이 많아 미끄럽다.

 

 

 

 

# 옛 절터와 샘물이 있는 공터에 도착.

 

  

# 샘은 강추위에 얼어 붙었다.

 

 

그런데 아까 나를 내려보고 있던 사람이 뚜버기가 아니란다. 뚜벅은 나보다 앞서 이곳으로 올라 왔고 그 중간에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우리 외에는 오른 사람이 없었으니 등산객은 아니다. 누굴까? 누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을까? 그 옛날 이 골짜기에서 허망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목숨 걸고 투쟁하다 눈꽃처럼 스러진 젊은 빨치산이었을까?

 

신기한 경험을 뒤로 하고 다시 정상을 향해 길을 나섰다. 이후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정상까지 쉼 없이 이어진다. 어제 눈밭에서 알바하고 다시 탈출하느라 어두운 산길 길게 걸으면서 떨어진 체력이 회복이 되질 않았는지 너무나 힘이 많이 들었다.

 

그야말로 엉금엉금 기어서 정상으로 향하는데, 같이 출발한 뚜버기님보다 2, 30분은 더 늦게서야  겨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09:25.  '조계산 정상'.

 

 

# 정말 힘들게 도착한 조계산 정상.

 

 

# 뚜벅은 찬바람 강하게 부는 정상에서 나를 30분간이나 기다렸다.

 

  

# 막걸리 한 잔 해야쥐... 국태민안도 빌어 보고...

  

 

힘들게 도착한 조계산 정상에서 막걸리 한 잔 진설하고 천지신명께 국태민안을 빌어 보고 음복으로 지친 몸도 달랬다. 그러나 워낙 찬바람이 강하게 불고 기온이 낮아 오래 있지를 못하고 길을 나서야 했다. 어차피 눈보라와 짙은 박무로 조망이 없어 오래 있을 이유도 없다네!

 

급경사 내리막을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진행하는데, 바람이 좌에서 우로 강하게 불어 몸이 휘청휘청 한다. 그러다 안부를 지니고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르다 좌측으로 우회하여 봉우리 하나를 오른다. 정상부엔 이정목이 있는 갈림길이 나타난. '869봉'이다.

 

이후는 계단식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조계산 정상까지 오르면서 올렸던 고도를 모두다 까먹게 깊고 깊게 떨어져 내린다. 긴 내리막 중간에 '542봉'과 '396봉'을 만나지만, 다행히도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모두 우회하게 되어 있다.


이런 산길이라면 어젯밤 탈출하지 않고 그냥 진행하는게 나을 뻔 했다. 휴일날 조계산 산행에 나선 일반 산객들을 무수히 지나치면서 길고 길게 내려 '접치'에 도착했니다. 11:00.

 

 

# 눈보라와 박무 때문에 정상에서의 조망은 없다.

 

  

# 맑은 날 다시 한번 와 볼 수 있으려나?

 

  

# 바람이 강해 눈꽃이 다 날라 갔다.

 

  

# 조계산 하산길은 다행히도 우회로가 많다.

 

 

 

# 갈림길이 있는 869봉.

 

  

# 눈 덮인 산죽밭을 길게 진행했다.

 

  

# 조계산은 시방 눈세상이다.

 

  

# 가지에 쌓인 눈들이 바람에 쓸려 여러 형상을 보여준다.

 

 

  

 

# 휴일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많다.

 

 

  

# 오늘 구간 최대의 난관인 오성산이 건너다 보인다.

 

  

# 오성산은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도 힘든 산이었다고 많이 기록되어 있다.

 

  

# 산객들의 차가 많이 주차되어 있는 접치..

 

  

# 3.5km를 내려 왔고, 다시 오성산까지 1.5km를 올라야 한다.

 

  

# 조계산의 앞뒤로 천년고찰 선암사와 송광사가 위치해 있다.

  

 

# 두월 육교 아래로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접치엔 휴일을 즐기러 나온 등산객들의 차량이 많이 주차되어 있다. 한참 등산객이 많이 몰리는 시절엔 이곳 접치 두월 육교 위에 세워둔 차량들을 상대로 한 도난사건이 많은 모양이지만, 오늘같이 춥고 바람 많이 부는 날엔 도둑들도 겨울잠을 자는 지 인적이 없다.

 

호남고속도로가 지나는 육교를 건너 맞은편 오성산 산자락에 접어 든다. 들머리 입구에 양지 바른 묘지가 있다. 먼저 도착한 뚜벅은 이미 배낭을 내리고 막걸리병을 흔들고 있다. 또다시 이곳에서 긴 휴식을 갖는다.

 

  

# 오성산 들머리.

 

  

#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휴식을 취했다.

 

  

# 아마 우리처럼 느긋하게 정맥길 가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다시 50여 분 긴 휴식을 취한 후 짐을 챙겨 오성산 오름에 몸을 맡긴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오성산 오름이 죽음이더라는 문구가 단골로 등장하더니 과연 오성산 오름은 명불허전이라 시작부터 그 경사도가 장난이 아니다.

 

사정 봐주지 않고 가파른 오르막이 앞을 가로막더니 계단식으로 점점 경사를 높여가며 가팔라진다. 중간중간 로프를 설치해 두어 도움과 함께 기가 질리게 만든다.

 

어제 눈밭에서 헤맨 후유증이 되살아 나는 지 점점 가팔라지는 경사에 살찐 산꾼의 저질 체력은 급격한 방전을 보이며 급기야 경사를 극복하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접치에서 오성산 정상까지는 고도 600을 고스란히 올려야 하는데, 이렇게 체력이 떨어져서 어떻게 올라가는고?

 

헉헉~ 낑낑대며 겨우겨우 고도를 400쯤 밀어 올렸나? 돌탑이 설치되어 있는  암반지대가 나타나며 겨우 하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다시 두어 차례 더 계단식으로 치고 오르자 드디어 하늘이 뻥 뚫리며 묘지가 있는 공터가 나타나더니 바로 뒤에 '오성산 정상'이 모습을 보인다. 13:00.

 

 

# 경사가 점점 가팔라지며 로프구간이 중간중간 나타난다.

 

 

#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엉금엉금 기어 오르게 된다. 

 

 

# 돌탑이 있는 곳. 아직 고도 200여 m를 더 올려야 한다.

 

  

# 오성산 정상. 정말 힘들게 올라 왔다.

  

 

# 정맥 좌측의 주암면 갈마리 일대.

  

 

# 조계산 뒤쪽에 위치한 모후산을 땡겨본다.

 

 

# 가야 할 정맥길, 저 멀리 유치산이 보인다.

 

 

# 유치산 너머 정맥길이 확 꺾이게 되는 배바위와 희야산 갈림봉이 보인다.

 

 

 

# 인간세도 눈밭이다.

 

 

 

오성산 정상은 사방으로 툭 트인 멋진 조망을 보여 주는 곳이지만, 너무나 지친 뒤라 경치 구경도 별무감동이다. 이렇게 지쳐서 오늘 계획한 노고치까지 어떻게 가나?

 

먼저 출발한 뚜벅을 따라 오성산정을 떠난다. 오성산은 오를 때 군더더기 없이 가파른 경사를 보여 주더니 내리막 역시 급경사 내리막으로 앞을 가로막는다. 아이젠을 눈밭에 박고 스틱으로 몸을 지탱해 보지만 경사가 워낙 급해 죽~죽~ 아래로 그냥 밀려 내려간다.

 

오성산 오르며 풀린 다리가 내리며 버티고 용 쓰느라 더욱 휘청휘청 한다. 겨우겨우 중심 잡아 가며 길게 아래로 내려 힘들게 올렸던 고도를 모두 까먹고 정맥을 가로지르는 고갯길이 있는 '두모고개'에 도착하게 된다. 13:45. 

 

 

# 가야 할 정맥길.

 

  

# 두모고개.

 

  

두모고개는 꽤 넓은 고갯길이 있지만 좌측면이 목책으로 가로막혀 있고 개인사유지란 팻말을 달고 있다. 고개를 지나 다시 봉우리 하나를 낑낑 밀어 올려 '391봉'을 지나고 다시 봉우리 하나를 오르니 '401봉'이다.

 

봉우리 한 켠 바람 적은 곳에 먼저 도착한 뚜벅기님이 점심 준비를 하고 있다. 짐 벗어 던지고 일단 막걸리 한 잔으로 갈증을 달래니 쬐끔 정신이 돌아 오는데,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아이고~ 더이상 못 가것네~~" 다.

 

 

# 어제 오늘 체력이 방전되어버린 나 때문에 고생이 많은 산동무.

 

  

막걸리 곁들여 점심 끓여 먹고 나니 정신이 돌아와 이제 좀 갈만하다 싶은데, 내 몸상태를 걱정한 뚜버기는 이쯤에서 탈출하자고 강력히 권한다. 잠시 고민 타가 정맥길을 좀 더 가보기로 하고 봉우리 하나를 넘으니 희미한 옛 고개가 나온다. 지도를 확인하니 우측 아래에 인간세의 흔적이 보인다.

 

애초에 계획했던 노고치로의 미련이 강하게 남아 계속 미적미적거리는데, 내 상태가 걱정이었던 뚜벅의 강력한 권유에 이번 호남길은 이곳에서 그만하기로 했다. 결국 이틀 연속 계획대로 진행을 못하고 중간탈출울 하게 되었다.

 

희미한 옛 고갯길을 더듬어 아래로 내리면 편백나무숲을 지나게 되고 곧 넓은 임도와 편백조림지를 만난다.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 2~3km 계속 걸어 내려 가노라니 20여 가구 옹기종기 모여 사는 인간세가 모습을 나타내는데 '두월리 두모마을'이다.

 

 

 

# 희미한 옛 고개를 만나 이곳에서 스톱하기로 했다.

 

  

# 정맥 우측으로 10여 분 내려서니 넓은 임도와 조림지가 나타난다.

 

  

# 정말 힘들었던 오성산.

 

  

# 임도를 따라 길고길게 내려갔다. 이틀간 임도길을 원없이 걸었다.

 

  

두모마을에서 어제 이용했던 택시를 다시 불러 선암사에 세워둔 차를 회수했다. 이틀 연속 예정된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서 차를 부르니 택시기사님도 의아해 하는 눈치다. 요즘들어 날씨 때문인지 살기가 어려운 탓인지 호남정맥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어 영업에 지장이 많다는 말을 한다. 대신 우리가 이틀 연속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이용해 주니 조금 위안은 될 법하지만 남 부끄러워 말은 못하고...

 

이번 호남길은 극심한 추위와 눈길 헤치느라 고생이 심했다. 나 혼자 눈밭에서 알바하느라 또 체력소모가 많았다. 무엇보다 요근래 갑자기 많이 불어난 체중과 운동부족으로 기본체력마저 저하되어 결국 이틀 연속 중간 탈출을 하고 말았다. 이러다 정말 탈출의 달인이 되는 거나 아닌지 우려된다. 일단 체중부터 조절한 후 다시 호남길에 들어야 할 모양이다.

 

선암사에 들러 주차장에 짐 내려 두고, 유명한 승선교(昇仙橋)가 보고 싶어 선암사로 향하는데, 입구 매표소에서 입장을 저지한다. 승선교 사진만 찍고 온다고 해도 무조건 입장료를 내어야 들여보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거~ 참~

 

결국 승선교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차 몰고 길고 긴 귀경길을 올라 파란만장했던 호남 열여덟 번째 길을 마무리했다. 아~참~ 힘들었다!!!

 

 

# 선암사는 이러이러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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