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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열아홉번째(두월리고개~송치)-또 한번 계절은 바뀌고! 본문

1대간 9정맥/호남정맥종주기

[호남정맥]열아홉번째(두월리고개~송치)-또 한번 계절은 바뀌고!

강/사/랑 2011. 4. 4. 17:01
 [호남정맥]열아홉번째(두월리고개~송치)



산(山)은 사계절 다른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다. 춘색(春色), 하록(夏綠), 추풍(秋豊), 동수(冬秀)하니 봄엔 꽃향기 가득하고 여름은 신록 푸르다. 가을에는 온산이 풍요롭고 겨울은 벌거벗어 오히려 빼어나다. 네 개의 계절이 네 개의 얼굴울 가진 것이다.


제각각 다양한 얼굴의 표현 중 나는 겨울 산의 빼어남에 종종 감동 받는다. 겨울산은 단순하다. 그리하여 겨울 산은 빼어나다. 그리고 독특한 매력(魅力)을 가졌다. 그의 매력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강렬함'이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다.


수은주(水銀柱) 기록 영하 15도, 체감온도 영하 25도의 소백산(小白山) 같은 겨울 산의 정상에 서노라면, 제일 먼저 칼끝으로 쑤시듯이 온몸을 찌르는 칼날 같은 겨울바람에 휘청이게 되고, 다음은 시퍼렇게 얼어 쨍하게 푸른 하늘빛에 압도당하게 된다.

 

잠시 시선을 주변으로 돌리면 그제서야 모든 것을 털어내고 알몸 그대로를 노출하고 있는 우리 산하(山河)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에서 비로소 강렬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 시퍼런 날것의 강렬함으로 겨울 산은 오히려 생생하다.

 

시간은 힘이 세다. 그렇게 강렬했던 겨울 산도 시간 너머로 물러갔다. 이제 산하는 색과 향을 뽐낼 시기다. 스스로 몸을 덥혀 봄빛을 색칠해 나가는 4월의 산하(山河)에는 긴긴 겨울 동안 죽은 듯 보였으나 결코 죽지 않고 생명의 기운을 다독였던 풀꽃과 나무들이 다투듯 꽃잎을 펼쳐 내고 있다.

 

이 시기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은 하얀 눈 속에서 노란 꽃잎을 밀어내는 봄의 전령사 '복수초(福壽草)'다. 복수초는 차가운 흰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그 강인함 때문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지만,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고고함 역시 가지고 있다. 때문에 만나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이른 봄 정맥길에 나설 때면 복수초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만발이지만,  몇 년 전 한북정맥 죽엽산(竹葉山) 근처에서 보고는 아직 미상봉(未相逢)이다.

 

복수초 다음으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이라면 '생강나무'를 들 수 있다. 생강나무는 복수초와 달리 전국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아직 삭막한 겨울 풍경이 남아 있는 메마른 숲속에서 노란 자태와 풍성한 향기를 뿜어내 지친 산꾼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는 봄꽃이다.

 

생강나무란 이름은 부러진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생강(生薑)이 향신료(香辛料)는 물론이고 한약재로도 쓰이듯이 생강나무 역시 나무껍질이 어혈(瘀血)이나 산후조리(産後調理)에 효과가 있어 삼첩풍(三鉆風)이란 한약재로 쓰인다.

 

나무 중에 생강나무가 있다면 야생화 중에는 '얼레지'가 봄을 알리는 전령사(傳令使)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얼레지는 백합과의 다년초이다. 아직 마른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는 초봄의 숲 바닥을 뚫고 얼룩덜룩 무늬가 있는 잎을 밀어 올린 후 한 줄기 꽃대를 올리고, 이후 보랏빛의 수줍으면서도 날렵한 꽃잎을 펼쳐 낸다.

 

얼레지의 꽃잎은 처음에는 수줍은 듯 꽃잎을 오무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여섯 개의 꽃잎을 뒤로 발랑 뒤집어 속살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는데, 그제서야 꽃잎의 안쪽에 짙은 보라색으로 'W' 자가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얼레지의 꽃말은 '바람난 여인', 혹은 '질투'라고 한다.

 

수줍은 듯 꽃잎을 오무려 피워내다 급기야는 제 열정을 이기지 못해 부끄럼도 잊고 속살을 드러내고 정인(情人)을 유혹하는 바람난 여인의 열정(熱情)을 보여주는 듯하여 은근 재미가 있는 꽃이다.

 

이 얼레지는 이질, 구토 등의 약재로도 쓰이고 구황작물(救荒作物)로도 쓰여 잎을 데쳐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뿌리는 말렸다가 전분을 우려내어 묵을 만들기도 한다. 다만 독성이 있어 물에 충분히 우려내어 먹어야 하고 특히 흰색 얼레지는 그 독성이 강하다고 한다.

 

얼레지란 이름은 얼룩덜룩한 잎의 얼룩에서 유래된 듯하다. '얼룩이'가 '얼러기', '얼러지', '얼레지' 등으로 변천된 듯하나 정확한 정설인지 구분하기에는 나의 능력 밖이다.

 

강/사/랑의 호남길은 지난 1월 눈길 헤치느라 체력 고갈이 심해 온전히 이어 가지 못하고, 이틀 연속 탈출을 한 끝에 오성산 넘어 두월리 두모마을로 내려선 이후 내내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러다 봄꽃들이 그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 4월에야 겨우 산길로 들어서서 다음 구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번 호남길에서는 겨우내 발목을 잡던 눈길이 사라진 것도 좋지만, 생강나무꽃의 노란 자태와 얼레지의 보랏빛에 눈이 정화되어 더욱 좋았던 산행길이었다.


이른 봄 호남정맥의 산길에는 그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들이 서로 경쟁하듯 고개를 내밀고 있어 그 꽃향기에 취한 듯 황홀하였다. 다만, 겨우내 운동 부족과 체중 증가로 체력이 더욱 저질로 변해 구간 내내 헉헉 낑낑거리느라 동행한 뚜벅에게 미안했던 점이 옥의 티였다! 



또 한번 계절은 바뀌고!


구간 : 호남정맥 제 19구간(두월리고개~송치)
거리 : 구간거리(16km), 누적거리(404.8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1년 4월 2일. 흙의 날.
세부내용 : 두모마을(08:10) ~ 두월리고개(08:20) ~ 474봉 ~ 한방이재 ~ 유치산(09:10) ~ 닭재 ~ 유치산
 녹차밭/막걸리 휴식 ~ 버들재(10:50) ~ 589봉 ~ 413.2봉 ~ 노고치(11:50) ~ 과수원정상/ 점심 후 13:10 출발 ~ 611봉 ~ 622봉 ~ 이정목 갈림봉 ~ 문유산 갈림봉(14:25) ~ 613봉 ~ 도목목장 임도(14:55) ~ 바랑산 전 임도(15:27) ~ 바랑산(16:15)/막걸리 휴식 ~ 송치(17:50).

 

총 소요시간 9시간 40분.



4월 1일 쇠의 날. 퇴근해서 먹고 씻고 짐 꾸려 집을 나섰다. 오랜만의 호남길이라 엘리베이터 앞에서 배웅하는 마눌 눈빛이 부드럽다.

 

산본역에서 호남 동지인 뚜벅을 픽업하는데 전철역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휘청휘청한다. 짐을 트렁크에 넣고 차안으로 들어서자 술냄새가 진동한다. 금요일이라고 벌써 몇 잔 들이킨 모양이다. 으이구~~

 

곧장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잠시 가다가 신갈인터체인지에서 경부로, 천안논산으로, 호남으로 다시 순천 가는 고속도로로 몇 차례 갈아 탔다. 내내 졸음과 전쟁을 치르며 순천에 진입, 승주읍을 지나 두월리로 접근했다.

 

어디 마땅히 하룻밤 쉴만한 정자를 찾고자 하지만, 웬일인지 뵈지를 않아 부득이 접치까지 고갯길을 올라가 조계산 등산로 입구 주차장 한 켠에 집 한 채를 뚝딱 지었다. 시각은 새로 한 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유치산/酉峙山
 
전남 순천시 주암면에 있는 산. 높이는 530.2m. 유치산은 호남정맥구간으로 종주코스 산꾼들의 발걸음이 잦은 길목이다. 오성산에서 유치산까지의 대등길은 평범한 길이다. 노고치에서 630봉까지 오르는 길은 진달래 꽃길이므로 볼철 진달래가 만발하면 이 길을 걸어간다. 
유치 마을에서 닭재고개까지 가는 길은 올라가면서 길이 갈리고 애매해져 그냥 올라가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무심코 올라가다간 큰 코 다친다. 이 등산로는 잡목과 조릿대군락으로 덮여서 분명치 않고 찔레나무 명감덩굴 등이 뒤엉켜 아무데고 헤쳐 나간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고 찔레꽃이 필 때만 찔레꽃 향기맡으러 내림길로만 이용해야한다.

 

두월리/斗月里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에 있는 리(里)이다. 오성산 동쪽자락에 위치하며, 대부분 산지이다. 남쪽으로는 두월천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동흥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두모(드므실, 듬실), 따슨개미(온동), 신작롯가상(노변구굴, 음지끝) 등이 있다. 두모는 두메 산골에 있다 하여 붙여졌으며, 따슨개미는 양지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작롯가상은 신작로 가쪽 응달진 산 끝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송치재/松峙  

 

1910년 이전까지 이용된 광양시의 교통로로,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죽림리의 호암마을과 직동마을을 이어주던 고개이다. 1950년에 일어난 6.25 전쟁의 격전지 중 하나이기도 했던 이 고갯길은 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송치재라는 이름은 이곳에 소나무가 많아 불리게 된 것으로, 솔치재라고도 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호남정맥 제 19 구간 두월리고개~ 송치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접치는 승주와 주암을 잇는 22번 도로가 지나고 도로 아래로는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차량 소음이 심한 곳이다. 하지만 새벽 2시에 이곳을 지나는 차량은 별로 없는지라 하룻밤 묵기에는 별 상관이 없다.

 

초저녁에 마신 술이 다 깬 뚜버기가 그냥 잘 리는 없다. 둘이서 막걸리 두어 병 비우고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가 새벽 세 시가 넘어서야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 접치 길 가 한 켠에 집 한 채 짓고 하룻밤 유했다.

 

  

목요일 저녁 회사 회식이라 술이 과했고 금요일 퇴근 후 네 시간 반 동안 운전해서 순천으로 내려왔다. 막걸리 한 통 비우고 딱 세 시간 잠잤지만,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는 부지런한 차들 때문에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오늘 산행은 송치까지만 가면 되니 천천히 하세!" 마눌이 준비해 준 콩나물 해장국으로 느긋하게 아침 끓여 먹고 짐 챙겨 접치를 떠났다.

 

접치에서 승주 쪽으로 고개를 내려가다 보면 좌측으로 두월리 가는 샛길이 나타나고 구불구불 좁은 농로를 따라 올라 두모마을을 지난다. 그런데 두모마을부터는 아주 좁은 농로가 구불구불 2km정도 이어져 있어 낯선 외지인이 운전하기에는 아주 위험하다.


운전면허 시험볼 때 코스 진행하듯 조심조심 기어서 오르다 보면 지난 1월 눈길에 지쳐 탈출했던 두월리 고개 아래 가족 묘역에 도착하게 된다.

 

 

# 평온동산이란 표석이 서 있는 가족 묘역. 그 한 쪽에 주차했다.

 

  

08:10. 짐 챙겨 3개월 만의 호남길을 출발했다. 가족 묘역인 평온동산 좌측으로 오르다 편백숲을 치고 오르면 지난 1월 멈췄던 희미한 옛고개인 '두월리고개'에 복귀하게 된다. 08:20

 

 

# 좌측 골로 오르다 편백숲을 치고 오른다.

 

 

# 하얀 눈으로 뒤덮혔던 대지엔 쑥이 쑥쑥 올라와 있다.

 

 

# 골을 따라 오르다 좌측 사면으로 치고 오른다.

 

 

# 무려 3개월 만에 정맥길에 복귀했다.

 

  

지난 1월 이 두월리 고개에서 탈출했으니 3개월 만에 다시 이곳에 서게 되었다. 그때는 하얀 눈으로 뒤덮혀 걷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바싹 마른 숲바닥에서 먼지가 풀풀 올라와 아랫도리가 금세 하얀 먼지로 코팅이 된다.

 

정맥 능선을 따라 한차례 꾸준히 오르면 '474봉'에 오르게 된다. 온몸에 땀이 돌아 겉옷을 모두 벗고 짚티 한 장만 입고 산행을 했다.

 

살짝 내렸다가 같은 높이의 봉우리를 두 개 연달아 넘었다. 두 번째 봉우리에 있는 바위에 우측으로 내려가라고 화살표가 그려져 있고 표지기도 하나 매달려 있다. 지도 확인하니 유치마을로 내려가는 지름길인 듯하지만, 누가 어떤 목적으로 저 화살표를 그렸는지는 알 수 없다.

 

바로 아래에 작은 고개가 하나 나타나 지도 확인하니 '한방이재'가 이곳이다. 다시 봉우리 두어 개를 넘고 한차례 밀어 올리면 '유치산'에 오를 수 있다. 09:10

 

 

# 남녘 땅이라 기온이 높아 겉옷은 모두 벗어야 했다.

   

# 정맥길 우측으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저길 따라 내려가면 유치마을에 이르게 된다.

 

  

# 한방이재.

 

  

# 오늘 호남정맥의 대세는 노란 생강나무다.

 

  

 

# 꽃향기가 강렬하다.


 

 

# 숲바닥엔 사초가 벌써 피어 올랐다.

 

 

# 유치산 오르다 잠시 트인 곳이 나와 돌아보면 지난 구간의 조계산과 오성산이 건너다보인다.

 

 

# 한차례 길게 밀어 올리면.

 

 

# 유치산에 오르게 된다.

 

 

# 정상석은 뱃바위에 뺏기고 삼각점만 설치되어 있다.

 

 

# 전방으로 뱃바위와 닭봉이 보인다.

 

 

# 땡겨보니 닭봉 우측 사면에 녹차밭이 보인다. 그렇다면...

 

  

유치산은 '닭 유(酉)' 자와 '고개 치(峙)' 자를 쓰는데, 아래에 있는 닭재에서 이름을 얻은 듯하다. 아마도 유치산은 닭의 몸통, 닭재는 목, 뱃바위는 머리, 닭봉은 닭벼슬쯤 되지 않나 짐작해 본다.

 

유치산에서 아래로 깊게 떨어져 내리지만, 그냥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두어 번 볼록거린 후 '닭재'에 도착하게 된다. 닭재는 유흥리 유치마을과 죽정리를 이어주는 고갯길이다. 지금은 인적이 끊어졌지만, 예전에는 왕래가 잦았을 법한 제법 넓은 고개와 이정표가 서 있다.

 

정맥길은 이곳에서 직진하여 뱃바위와 닭봉을 오르고 우틀하여 버들재로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측으로 내려가 녹차밭을 구경하고 버들재로 직행하기로 했다.

 

우측으로 잠시 내려가면 대밭으로 들어가게 되고 잠시 대나무밭 속을 걷다가 밖으로 나가면 임도가 나타나는데, 이 임도는 관리 안 한 지 오래인지 가시덤불이 길을 점령해 있다. 스틱 앞세워 가시덤불을 헤치고 진행했다. 몸 이곳저곳이 가시에 찔려 아야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시간 지체도 심해 능선을 오르나 이곳으로 가나 소요시간은 똑같다.

 

겨우겨우 가시덤불을 다 헤치고 고개를 치고 오르면 전방으로 조망이 툭 트이며 산 사면을 점령한 넓은 녹차밭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그 경치가 칭찬할 만하다.

 

 

# 닭재.

 

 

# 가시덤불 헤치느라 악전고투한 끝에 고개를 길게 올라가면,

 

 

# 눈 앞에 넓은 녹차밭이 펼쳐진다.

 

 

# 겨우내 마른 녹차잎이 단풍 든 듯해 보인다.

 

 

# 뱃바위.

 

 

 

# 녹차밭을 가로지른다.

 

 

 

# 녹차농원 관리소를 지나 돌아보니 저 멀리 조계산이 보인다.

 


# 허위허위~

 

 

# 눈밭을 헤치며 지났던 조계산과 오성산.

 

 

# 조계산.

 

 

# 엄청 힘이 들었던 오성산.

 

 

#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어찌 그냥 지나치리오. 자리 깔고 경치 구경하며 느긋하게 막걸릿잔을 나눈다.

 

 

경치 좋은 녹차밭 상단에서 배낭 내리고 조망 감상과 더불어 막걸리 잔치를 벌였다. 자리에 앉아서도 넓은 녹차밭은 물론이고 멀리 조계산과 오성산 등 지나온 정맥길이 한 눈에 들어오니 느긋하게 경치 구경하기 딱 좋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 녹차 농장은 자는 듯 고요하여 오래오래 휴식하며 조망 감상하였다. 그러다 졸음이 몰려올 즈음 짐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그러나 좋은 일이 있으면 다시 어려운 일도 있기 마련. 닭재에서 처음 내려올 때처럼 가시덤불 가득한 임도가 앞을 가로막는다. 다시 아야아야 소리를 질러 가며 가시덤불을 헤쳐야 했다. 10여 분 다시 악전고투하다가 넓은 임도가 있는 마루금에 오르게 되고 잠시 진행하면 정맥길에 복귀하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버들재'다. 10:50

 

 

# 아야아야~

 

 

# 길이란 게 이래야지...

 

 

 # 버들재.

 

 

#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잠시 편한 등로를 따르다가 한 차례 길게 치고 올랐다. 너무 오래 쉬어서 노곤해진 몸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계단식으로 서너 차례 고도 높이며 길게 치고 오르면 '589봉'에 오르게 된니다. 곧 잠시 내렸다가 살짝 올리더니 이내 올라온 고도를 모두 까먹게 깊게 떨어져 내린다.

 

그것도 그냥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볼록거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깊고 깊게 떨어져 내리다가 한차례 볼록 솟아서 삼각점이 있는 '413.2봉'을 지나고 다시 아래로 내리면 앞이 툭 트이며 과수원이 나타난다. 전방에 노고치와 가야 할 611봉이 우뚝 앞을 가로막는다.

 

10여 분 주저앉아 경치 구경을 하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가면 월등면 갈평리와 승주읍 도정리를 잇는 857번 지방도가 지나는 '노고치'에 내려서게 된다. 11:50

 

 

# 가파른 오르막을 길게 올라갔다.

 

 

# 오래 쉬었더니 몸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 꽃향기 진동하여 가까이 가보니,

 

 

# 매화밭이 나타난다.

 

 

# 삼각점이 있는 413.2봉.

 

 

# 노고치와 611봉.

 

 

# 587번 도로가 지나는 노고치.

 

 

  

햇살 강렬한 노고치를 건너 맞은편 농장 입구로 진입했다. 농장 출입문엔 쇠사슬이 늘어져 있고 "등산객 출입금지"라고 적혀 있지만, 안쪽의 농장은 퇴락하여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농장 안으로 들어가 도로를 따라 위로 길게 올라 가다가 과수원 사면을 치고 올라 농장 과수원 상단으로 올라섰다. 정맥은 농장 끝에서 숲으로 이어지며 611봉을 향한다. 이곳에서 자리 깔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 출입금지 표지판 좌측으로 돌아 올라 갔다.

 

 

# 돌아보면 지나온 정맥길이 보인다.

 

 

# 농장 안 도로를 따라 길게 올라갔다.

 

 

 

# 과수원 정상에서 돌아보니 툭 트인 조망을 보여 준다.

 

  

 

# 넓게 펼쳐 본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배 고프고 힘 딸려 이곳에서 점심상을 펼쳤다.

 

 

# 맞은편 산자락의 광경이 오묘하다.

 

  

뚜벅과 함께 하는 산길은 언제나 막걸리가 풍성하여서 점심 먹으며 주고 받은 술잔에 알딸딸한 술기운이 돈다. 오래 쉬며 막걸리 잔 나누다가 13:10에 짐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가파른 오르막이 길게 이어지며 고도를 200이나 올려야 하는데, 점심 식사 직후라 오르막 오르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한바탕 낑낑거리며 치고 올라 '611봉'에 올라섰다. 조망없는 정상엔 '점토봉'이란 지도에 없는 이름표가 걸려 있다. 13:30

 

 

# 힘겹게 오른 611봉.

 

  

정상을 지나 잠시 내렸다 편하게 가다가 위로 오르면 작은 성터가 있는 봉우리가 나오는데, 이곳도 지도에 없는 '성터봉'이란 작은 이름표를 달고 있다. 봉우리 주위를 둘러보니 인공으로 축성한 흔적이 보이지만, 그 규모가 성이라기보다는 봉수대가 더 어울릴 듯한 규모다.

 

잠시 내렸다가 우측으로 휘감으며 고도를 높여가다가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리면 '이정목이 있는 갈림봉'이 나타난다. 이정목에는 "노고치 3km, 바랑산 5.3km, 문유산 0.1km"라고 적혀 있다. 그리하여 이곳이 문유산 갈림봉인가 잠시 착각을 하게 되지만 저 거리는 엉터리여서 문유산은 한참을 더 가야 한다.

 

큰 오르내림 없이 길게 진행하다가 한차례 올리면 드디어 '문유산 갈림봉'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비로소 문유산까지가 0.1km 정도 될 것 같다.

 

 

# 성터봉.

 

 

# 정상 주위는 축성의 흔적이 있다.

 

 

# 이정목 있는 갈림봉. 좌틀하여 간다.

 

 

# 문유산 갈림봉의 이정표.

 

  

문유산은 우틀이고 정맥길은 직진이다. 직전의 이정목있는 봉우리에서 오륙 백미터 쯤 왔나 보다. 이후의 산길은 전혀 호남답지 않은 산세가 길게 이어져서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게 만든다. 호남정맥의 산길은 대부분 오르내림이 심하고 한시도 평탄한 길을 허락치 않는 걸로 유명한데, 이 곳의 길은 그저 평안한 따름이라 참으로 의외다. 


그러다 한차례 오르면 '613봉'이고 다시 길고 완만하게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도목목장 임도'에 도착하게 된다. 14:55. 임도를 만났으니 임도파는 당연히 임도를 따르게 되고 정맥 좌측 산허리를 휘감는 임도를 따라 길게 진행했다. 30여 분 임도를 따르는데 길게 가다가 한순간 앞이 트이더니 전방으로 군장마을과 그 뒤쪽의 바랑산이 우뚝 솟아 앞을 가로 막는다.

 

바랑산은 군장마을 뒤쪽은 단코스이나 아주 가팔라 보이고 정맥 마루금과 이어진 능선 오르막은 길게 좌측으로 휘감는 형상이다. 기분같아서는 군장마을로 내려가서 가파른 단코스를 따르고 싶지만 그쪽에 등로가 있는지 확신을 할 수가 없어 계속 임도를 따르다 정맥을 가로지르는 고개에 이르게 된다. 15:27

 

 

# 도목목장 임도.

 

 

# 임도를 길게 따르다 앞이 트이며 바랑산을 마주하게 된다.

 

 

# 바랑산 정상의 산불감시초소.

 

  

# 바랑산과 군장마을 일대를 파노라마로 펼쳐본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바랑산 일대는 대부분의 산허리를 벌목해 두었고 바랑산 오름은 능선 마루금을 길게 좌측으로 휘감게 되어 있다.

 

 

# 건물 우측 고개에서 바랑산 오름이 시작된다.

 

  

고개 우측에 임도가 산으로 올라가고 있고 임도를 잠시 따르다 좌측 사면을 가파르게 치고 올라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이후는 긴 능선 마루금을 따라 계속 고도를 높이며 진행하는데, 저질 체력의 산꾼에게는 꽤 힘이 드는 구간이다.

 

천천히 호흡조절하며 길게 밀어 올려 '바랑산' 정상에 이른다., 사방 툭 트인 바랑산 정상엔 찬바람이 가득해서 순식간에 한기가 들어 오래 머물 수가 없다. 바랑산이 아니라 바람산인가? 16:15

 

 

# 바랑산 정상.산불초소가 두 개나 있다.

 

 

#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오래 머물수가 없다.

  

 

# 지나온 산길.

 

 

# 송치재 너머 가야 할 산길.

 

 

# 송치재에 있는 어느 종교단체의 수련원 건물을 땡겨 본다.

 

  

오늘 구간의 마지막 포스트에 도착했으니 그냥 갈 수 없지! 정상엔 바람이 너무 강해 머물지 못하고 정상 바로 아래 바람 타지 않는 곳에 짐 내리고 마지막 남은 막걸리로 정상주를 나눴다. 참으로 뚜벅과 나의 호남길은 '산길 걷기 위해 막걸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산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다.

 

한참을 휴식 타가 짐 꾸려 송치로 향했다. 급경사 내리막을 한차례 길게 떨어져 내린 후 고도를 낮추며 길고 길게 내려가는데, 정맥길이 언제나 그렇듯 그냥 내려 가는 것이 아니라 두어 차례 올록볼록 솟아 올리는 것은 잊지 않는다.

 

그런데 바랑산 하산길은 온통 얼레지 꽃밭이다. 사실 오늘 구간은 전체가 모두 얼레지 군락이 산재해 있었지만 대부분의 군락지가 아직 초봄이라 얼레지 잎만 메마른 낙엽더미를 뚫고 올라와 얼룩덜룩할 뿐 꽃구경은 할 수 없었는데, 바랑산 하산길에 접어들자 곧바로 보랏빛 꽃잎을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다. 이곳만 유독 햇살이 드는 양지녘도 아닌데 왜그런 지는 알 수 없다.

 

긴 하산길 끝자락에 한차례 올리는 봉우리를 넘고 송치터널 위를 지나자 끝까지 그냥 보내지를 않고 봉우리 하나를 더 넘으라고 한다. 아이고~ 헉헉대며 봉우리에 올라서자 익산 사는 파산적이 이 먼 순천 땅까지 응원차 왔다가 이 봉우리로 마중을 나와 있다.

 

반갑게 인사하고 봉우리를 내리는데 아주 가파른 급경사 내리막이 나타나 조심조심 로프 잡고 내려갔다. 곧 연수원이 있는 '송치고개'에 도착하게 된다. 17:20

 

  

# 오늘 구간의 숲바닥은 온통 얼레지 밭인데, 대부분 잎만 고개를 내밀고 있고 꽃구경은 할 수 없었지만, 이곳 바랑산 하산길에만 유독 얼레지꽃이 보랓빛 꽃잎을 내밀고 있다.

 

 

# 아직은 바람이 덜 난 상태다.

 

 

 # 노각나무. 차나무과여서 꽃이 차꽃과 비슷하지만 껍질은 자작나무처럼 벗겨져 나간다. 수피가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사용하고 목재는 가구용으로 쓰임이 많지만, 정작 관절염이나 간질환 등에 약효가 뛰어나다고 한다.

 

 

# 마지막까지 그냥 못 보내 주겠다는데 힘들게 오른 봉우리에 익산 파산적이 마중을 나와 있다.

 

 

# 다음 구간 가야 할 산하를 내다보고...

 

 

# 급경사 내리막을 길게 내려갔다.

 

 

# 연수원이 있는 송치.

 

 

# 산 아래로 터널이 뚫려 고갯길은 한산하다.

 

 

# 파산적의 차로 편안하게 우리 차를 회수했다.

 

  

이 계절 숲바닥은 메마른 낙엽과 봄 가뭄에 바짝 마른 흙들이 부서져 먼지가 풀풀 날리는 상황이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다 보니 아랫도리가 온통 누런 흙먼지 투성이다. 모자 벗어 대충 몸을 털어 내고 파산적의 택배서비스로 두모마을에 세워둔 우리 차를 회수하러 갔다.

 

역시나 아침에 우리가 좁은 농로에서 헤매었듯이 한참 버벅거리다 무사히 차를 회수하기는 했지만, 이후의 행보를 두고 한참 고민하였다. 원래 계획은 하루 더 산행을 해서 몇 구간 남지 않은 호남정맥 마무리를 쉽게 하자는 생각이었고, 익산 산친구가 응원까지 온 상황이라 같이 순천의 맛난 먹거리도 즐겨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일기예보에서 내일 순천지방에 비 예보를 하고 있고, 진주 사는 객꾼이 방사성 비 맞지 말고 넘어 오라고 뚜벅을 계속 유혹하고 있다. 게다가 나는 초등학교 동창회가 예정되어 있어 간밤에 내려 올 때부터 내내 신경이 쓰이던 참이라 호남길은 '여기까지!'를 외치고 함께 진주로 넘어갔다.

 

한 사람은 37년 만에 동창들을 만나러, 다른 사람은 매양 같이 산길 걷는 산 친구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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