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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열일곱번째(2)(주릿재~빈계재)-백이, 숙제를 만나다! 본문

1대간 9정맥/호남정맥종주기

[호남정맥]열일곱번째(2)(주릿재~빈계재)-백이, 숙제를 만나다!

강/사/랑 2010. 11. 25. 16:16
 [호남정맥]열일곱번째(2)(주릿재~빈계재)

  

고대 중국은 신화 속의 인물인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제외하면 하(夏), 은(殷), 주(周),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진(秦), 한(漢)... 등의 순서대로 왕조(王朝)가 흥망(興亡)하면서 이어졌다.

 

하(夏)왕조는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실질적인 출발이라 여겨 중국을 화하(華夏)로 부를 정도로 중시하였다. 하지만, 그 존재 유무가 유물이나 유적 등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지는 않았다. 전설 상의 국가인 셈이다.


반면, 따로 상(商)이라고도 부르는 은(殷)나라는 유적지인 은허(殷墟)의 발견으로 그 실재성(實在性)이 증명되었다. 그러므로 은나라는 증명되어진 중국 역사의 진정한 출발이다. 물론 역사라는 것이 반드시 과학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찌되었건 28대를 이어오던 은나라가 방탕한 주왕(紂王) 대에 이르러 '달기(妲己)'라는 나라를 기울게 할 미인, 즉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출현과 맞물려 그야말로 기울어지고 있을 때, 은나라 서쪽 변방의 고죽국(孤竹國) 군주에게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란 아들이 있었다.

 

옛날 중국사람들은 자식 이름을 참 간단하게 지어서 큰아들은 '伯(맏 백)', 둘째 아들은 '仲(버금 중)', 셋째 아들은 '叔(아재비 숙)'자를 넣어서 불렀다. 우리식으로 하면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 쯤 된다. 공자의 자는 중니(仲尼)이고 그의 아버지 이름은 숙량흘(叔梁紇)이다. 이름만 들어도 공자는 둘째, 그 아버지는 셋째 아들임을 알 수 있다.

 

결국, 백이가 첫째이고 숙제가 셋째인데, 그 아버지가 숙제를 왕으로 세우라 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숙제가 큰형 백이에게 왕위를 사양하자 백이는 아버지의 명을 어길 수 없다 하고 다른 나라로 달아나 버렸다. 그러자 숙제 역시 옳지 않다 하고 왕위를 버리고 형을 따라 달아났고, 신하들은 둘째인 중자(仲子)를 군주로 세워야 했다. 

 

그 후 백이와 숙제는 서쪽에 있는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몸을 의탁하기 위해 주나라에 갔다. 이르러 보니 문왕 서백(西伯)은 죽고 문왕의 아들인 무왕(武王)이 왕위를 물려 받고 있었다. 주나라 무왕은 야심이 큰 인물이었다. 그는 국운이 기운 은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제후국이 천자국을 정벌하겠다 하니 올곧은 선비인 백이 숙제가 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있겠는가? 정벌 길에 나선 무왕의 말고삐를 붙잡고 간언(諫言)하였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아직 장사도 지내지 않았는데, 전쟁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은 효(孝)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나라는 은나라의 신하 국가이다. 어찌 신하가 임금을 주살하려는 것을 인(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에 주 무왕이 대노하여 둘을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무왕의 군사(軍師)인 강태공(姜太公)이 이들의 의로움을 높이 사 죽음은 면하였다. 마침내 포악한 은나라의 주왕(紂王)이 무왕에 의해 죽고 은나라가 망하여 천하가 주나라의 것이 되었다.


하지만,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의롭지 못한 주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고, 그 나라의 곡식도 먹을 수 없다며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살다 굶어 죽게 된다.

 

이후 백이와 숙제는 충절(忠節)의 대명사로서 청사(靑史)에 길이 남아 뒷사람들의 사표(師表)로 오래오래 숭상받아 오게 되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지조나 절개 정도는 헌신짝처럼 가벼이 여기고 이 당에서 저 당으로 다시 다른 당으로 당적 바꾸기를 밥 먹듯 하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과는 너무나 비교가 되는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유별난 구석이 있는 나라다. 어떤 사상이라고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교조적이고 극단적이 된다. 백이숙제의 충절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옛사람 대부분은 세상 사람 전부가 그러했듯이 백이 숙제를 본받자 하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성삼문(成三問) 같은 사상의 끝판왕이 있었다.


성삼문은 사육신(死六臣)의 대표적 인물이다. 사육신은 신 권력 수양대군에 대항하여 죽음으로 단종을 지키고자 한 인물이다. 성삼문에게 있어 수양산의 고사리도 주나라의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조차 먹지 않았어야 진정한 지조였다고 주장했다. 그야말로 지조(志操)의 극단이었다. 당연히 그 자신 수양대군의 온갖 회유에도 목숨 바쳐 지조를 지켰음은 물론이다. 

 

우리 옛사람들의 그런 지조에 대한 숭상함은 민간에도 널리 펴져 있어 이 땅의 이곳저곳 산 이름에도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백이산(伯夷山)'이다.

 

백이산은 강원도 정선, 전라도 임실과 낙안, 경상도 함안 등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 산들이 대부분 고사리가 많이 자생하는 산이라는 점이다. 우리 선조들은 고사리가 많이 나는 땅을 보면 자연히 지조의 상징인 백이, 숙제를 떠올리게 되고 그 땅에 백이산이란 이름을 지어 부름으로써 그 지조를 배우고자 하였다.

 

호남정맥(湖南正脈)이 끝자락을 향해 마지막 힘을 내어 불끈불끈 솟아 오르며 맥을 이어가는 벌교읍 낙안(樂安)에 고사리 많이 나는 산 하나가 우뚝하니 그 이름이 '백이산'이다.

 

백이산 꼭대기에 서면 그 옛날 물산이 풍부하여 호남 인근에 힘 꽤나 쓴다는 건달들은 다 모여서 이 동네에서는 주먹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던 벌교읍과, 넓은 평야와 그를 오롯이 둘러싸고 있는 5산들로 인해 살기 좋은 고장으로 옛날부터 번성하여 지금도 그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낙안읍성 등 사방팔방 훌륭한 조망을 볼 수 있다.

 

조망 사통팔달한 산정에 서니 마음 역시 사통팔달한다. 백이산정(伯夷山頂)에서의 생각은 자연 지조(志操)와 절개(節槪)로 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백이와 숙제에게로 달려간다. 현세는 지조 사라진 경박한 시절이다. 바람 부는 백이산정(伯夷山頂)에서 가슴에 손 한 번 올려 스스로를 돌아 본다. 이름 없는 우리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에게 지조란 무엇인가? 어찌 살아야 절개 지키고 살았다 할까? 어려운 일이다.



백이, 숙제를 만나다!


구간 : 호남정맥 제 17구간(오도재~주릿재~빈계치)
거리 : 구간거리(26.4km), 누적거리(361.3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0년 11월 20, 21일. 흙과 해의 날.
세부내용 : 오도재(08:00) ~ 335.5봉 ~ 파청치(09:20) ~ 방장산 사거리 ~ 방장산(10:15) ~ 481봉 ~ 이드
리재 ~ 배거리재 ~ 주월산(11:25)/점심 및 휴식 후 12:50出 ~ 412봉 ~ 무남이재 ~ 광대코재(14:10) ~ 암릉 ~ 565봉 ~ 571봉/고흥기맥 분기점 ~ 모암재 ~ 존제산(16:05)/휴식 후 16:50 出 ~ 주릿(18:00)/쇠실쉼터 소나무 아래에서 1박.

 

주릿재(09:40) ~ 425봉 ~ 포장도로 ~ 485봉(10:20) ~ 무명봉 ~ 경작지 ~ 임도 ~ 갈림길 길주의 ~ 고사리농장 ~ 임도 ~ 415봉 ~ 석거리재(11:50)/휴게소 점심 후 12:40 出 ~ 355봉 ~ 채석장 ~ 518봉 ~ 백이산(14:10)/휴식 후 14:55 出  ~ 빈계치(15:25)

 

총 소요시간 15시간 45분.

 


11월 21일. 해의 날. 간밤의 은성한 술자리를 파하고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얼마전 새로 장만한 오르틱 투펙 쉘터를 뒤집어 쓰고 필드 테스트를 했다.

 

새벽 두 시경 목 말라 눈을 떴는데 쉘터 내부에 결로가 상당하다. 홑겹으로 구성된 데다가 두툼한 극한지용 침낭으로 무장해 안밖의 기온차가 심해서 어느 정도 결로를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건 좀 심하다.

 

배낭에서 휴지 찾아서 대충 닦아 내고 다시 잠을 청했다. 하지만 두어 시간 후 일어나 보니 결로가 어찌나 심하던지 아예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준이다. 텐트는 물론이고 스틱을 이용한 타프까지도 금지하는 지리산 같은 국공파 출몰지역에서 사용하려고 구입했는데, 아무래도 실패한 아이템인 듯하다.

 

이왕 젖은 것 한참을 게기다 물이 뚝뚝 떨어져 도저히 더 참지 못하고 짐 정리 해서 밖으로 나와보니 바깥은 온통 뿌연 안개 세상이다. 아마도 이렇게 습도 높은 외기가 결로를 더 심하게 만들었나 보다. 느긋하게 짐 정리 하고 아침 끓여 먹은 후 화장까지 마치고 이틀 동안 신세 진 쇠실쉼터를 떠났다.


 

백이산/伯夷山

 

벌교읍과 승주군 경계에 있는 명산으로 높이는 582m이다. 옛날에는 낙성일대가 바다로 이 산봉우리에 배를 맨 자국이 있어 배이산 또는 백이산이라 불렀다 하며 산49번지의 당산에는 4백여년 된 고목이 있는데 잎이 일제히 피면 풍년을 예측하고 잎이 부재하면 흉년이 든다는 설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 산에서 고사리가 많이 나서 고대 중국 은(殷)나라의 마지막 충신인 백이 숙제의 고사에서 그 이름이 연유했다고도 한다.

 

낙안읍성/樂安邑城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東內里)·서내리·남내리에 걸쳐 있는 조선시대 성곽 유적. 사적 제302호. 축조연대 미상. 둘레 1,384m, 높이 4m, 너비 3∼4m. 현재 성벽과 동 ·서 ·남 문지(門址), 옹성(壅城) 등이 남아 있다. 고려 후기에 왜구가 자주 침입하자, 1397년(태조 6) 절제사(節制使) 김빈길(金贇吉)이 흙으로 읍성을 쌓았다. 《세종실록》에는 1424년 9월부터 토축의 읍성을 석축으로 쌓으면서 본래보다 넓혀서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성 안에는 우물 2개 ·연못 2개가 있었으며, 해자(垓字)는 파지 않았고, 문의 보호시설인 옹성은 그 후에 설치하였다. 낮은 구릉을 포함한 평지에 동서 방향으로 긴 직사각형이며, 체성(體城)의 축조나 적대를 구비한 점에서 조선 전기의 양식이다. 동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옹성은 남 ·서문터에서만 흔적을 볼 수 있다. 성곽은 커다란 자연석으로 쌓고, 돌과 돌 사이에는 작은돌로 쐐기박음을 했지만 아직도 견고하다. 남문터는 마을 안 골목길에 있는데, 네모진 바위를 3단으로 쌓아올린 성문벽이 길가에 그대로 남아 있다. 성 안에는 1536년(중종 31)에 지은 객사(客舍)가 온전히 남아 있고, 대성전(大成殿) 등 9채나 되는 향교가 보존되어 있다. 장군 임경업(林慶業)이 15세 때 하룻밤에 쌓았다는 전설이 있으나, 《여지승람(輿地勝覽)》에 낙안성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임경업 축조설은 믿을 수 없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호남정맥 제 17-2 구간 주릿재~빈계치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쇠실 쉼터를 떠나 잠시 2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좌틀하여 어제 산행의 출발지였던 오도치를 다시 넘었다. 고개를 넘자마자 세상은 온통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안개 세상이 되어 버린다. 아마도 보성강과 보성댐의 영향으로 안개가 많이 발생하는가 보다.

 

보성 율어면을 구불구불 통과했다. 안개가 너무 심해 조심조심 주의를 기울이며 운전을 해야 했다. 율어면을 벗어나 구불구불 주릿재를 치고 오르자 비로소 안개에서 벗어 나게 된다. 

 

 

# 이틀간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해 준 쇠실 쉼터.

 

 

 # 주릿재. 넓은 정자와 깨끗한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 벌교는 소설 태백산맥의 고장이다. 나는 태백산맥의 내용과 작가의 사상에 동의할 수 없다.

 

 

주릿재는 율어면과 벌교읍 사이를 이어주는 고개다. 고갯길이 마치 줄을 꼬아 놓은 것처럼 구부러져 있어 주렛재, 혹은 주릿재로 불리웠다. 벌교읍, 존제산, 율어면, 주릿재 등이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무대라 주릿재 정상에는 작은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안내판과 돌에 글을 새겨 태백산맥 문학비라고 적어 두었다.

 

공원엔 정자와 화장실이 갖춰져 있어 어젯밤 이곳에서 야영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정자 위에 올라서면 율어면 쪽으로 조망이 트이는데 운무가 짙게 깔려 있어 율어는 시방 구름 나라다. 주릿재 소공원에서 이런저런 경치 구경하며 오래 시간을 보내고 느지막이 짐 꾸려 하루의 산길 걷기에 나섰다. 09:40.

 

 

# 주릿재 정자에서 바라본 율어면쪽 조망. 저 안개속 율어면을 거쳐 이 곳에 올라 왔다.

 

 

 

# 파노라마로 펼쳐본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어제 지나온 존제산.

 

 

 

# 땡겨 보고.

 

 

 

현지에서 자면서 이렇게 출발이 늦은 것도 또 처음이다. 남들 같으면 벌써 너댓 시간 산행을 했을 시간이지만, 뚜벅이나 나나 참 느긋한 사람들이다.

 

주릿재 벌교쪽 내리막 초입에 마지막 단풍잎이 붉게 타는 나무 한 그루 있고 그 뒤로 등로가 열려 있다. 한차례 밀어 올려 고갯마루에 올라선 후 전방으로 툭 트인 벌목지 우측 상단으로 진행했다. 이 길은 좀 전 주릿재 정자에서 보이던 그 길이다.

 

주릿재에서 와는 조금 다른 각도의 조망을 구경하며 산의 정상부를 좌측으로 휘감는데, 이 산은 425봉이지만 정상은 생략하게 되어 있고 아래로 길게 내려가면 갑자기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오잉? 이게 뭐야!

 

 

# 주릿재 들머리.

 

 

 

# 단풍나무 뒤로 올라 갔다.

 

 

 

# 벌목지 상단을 치고 오른다.

 

 

 

# 존제산이 건너다 보인다.

 

 

 

# 율어쪽 안개나라.

 

 

 

# 땡겨 보니 제법 그림이 나온다.

 

 

 

# 425봉은 우회하게 되어 있다.

 

 

 

# 존제산과 율어면, 425봉을 한 눈에 본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편백숲을 따라 길게 내려갔다.

 

 

 

# 갑자기 도로가 앞에 나타난다.

 

 

 

지도 확인하니 이 도로는 주릿재에서 반룡리로 넘어가는 도로이다. 이 길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425봉은 생략하고 그냥 이쪽으로 오는 건데... 아깝다!

 

포장도로 절개지를 치고 올라 편백숲을 따라 급경사 오르막을 밀어 올린다. 코가 땅에 닿게 가팔라 힘겹게 애를 써야 했다. 낑낑 위로 올려 봉우리에 오르지만  정상은 뒤로 물러나 앉아 있고 잠시 더 올려 '485봉'에 올라섰다. 10:20

 

 

# 도로 절개지를 치고 오른다.

 

 

 

# 편백숲 사이로 가파르게 오른다.

 

 

 

# 485봉.

 

 

정상에는 준희님의 정상 이름표가 달려 있는데 485.5봉이라 적혀 있다. '사람과 산'지도에도 485.5봉으로 적혀 있는데 정작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485봉으로 되어 있다.

 

전방에 벌목되어진 봉우리와 산줄기가 우측으로 뻗어 있고 그 너머로 백이산이 우뚝하다. 잠시 조망 감상하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아래로 급하게 조금 내린 후 길고 완만하게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른다. 이윽고 정상에서 우틀하여 내리다가 경작지를 만나 우회하여 맞은 편 산으로 올라 갔다. 곧 넓은 임도를 만난다.

 

 

# 485봉의 조망. 앞의 벌목된 봉과 다음 봉을 넘어야 한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저멀리 백이산이 보인다. 

 

 

 

# 봉우리를 넘고 내리면 경작지를 만난다. 

 

 

 

# 곧 넓은 임도를 만난다.

 

 

 

햇살 좋은 임도를 만나 잠시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에 동백꽃이 피어 있어 그 넘 구경하다가 무심코 직진하였다. 어디선가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 나타나 꼬리를 흔드길래 그 넘과 놀고 있는데, 농장에서 일하시던 주민이 정맥길은 이곳이 아니고 갈림길에서 우측길로 완전히 꺾어 가야 한단다. 그 얘기 듣고 보니 선답자들의 산행기에서 이곳을 길주의 구간으로 표시해 뒀던 것이 생각난다. 하마트면 한참 알바할 뻔 했다.

 

고사리 재배 지역이라고 적혀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완전히 꺾어 농장 안으로 들어갔다. 농장 길이 꺾이는 부분에 하얀 조립식 주택이 하나 서 있다. 그 집에 가니 지하수를 퍼 올린다는 물맛이 일품이다. 집 앞으로 툭 트인 조망 역시 멋진 곳이다.

 

시원한 물로 목 축인 뚜벅이 좋은 경치 보더니 막걸리가 땡기는지 한잔 하고 가자는 걸 조금 더 가서 점심 먹으며 먹자 하고 길을 재촉하였다.

 

 

# 갈림길에서 무심코 직진했다.

 

 

 

# 따뜻한 남쪽나라라 동백꽃이 벌써 피었다.

 

 

 

# 호기심 많은 강아지. 아저씨 뭐해요? 하는 것 같다.

 

 

 

# 우측길로 올라와 급하게 꺾어 농장 안으로 들어 가야 한다.

 

 

 

# 기가 막힌 곳에 위치한 고사리 농장.

 

 

 

# 지하수 물맛이 아주 좋다.

 

 

 

# 농장에서 바라 본 조망.

 

 

 

# 백이산.

 

 

 # 농장 산허리의 농로로 진행해서 저 산줄기들을 타야 한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경치가 참 좋은 곳에 살고 있다.

 

 

# 이렇게 아랫마을을 굽어 보고 사는 재미도 있겠다.

 

 

 

# 백이산 뿐 아니라 이 지역 일대는 이렇게 모두 고사리 농사를 짓고 있다.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고사리 농사 지어 돈도 벌고, 세상 사람들에게 지조와 절개의 의미도 가르치니 이 농장주의 삶도 괜찮다 싶다.

 

 

 

농장을 나와 산허리를 휘감는 넓은 농장 도로를 따라 길게 진행하다가 맞은편 숲을 치고 올라 마루금에 오른다. 이후의 길도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온순한 길이 이어진다. 이대로 편하게 보내 줄려나 했지만, 정맥이 마냥 그럴 수는 없는 법,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르라고 한다. '415봉'이다.

 

좀 전의 경치 좋은 농장에서 막걸리 못 먹고 지나온 뚜벅은 술이 많이 땡기는지 배낭 내리고 이곳에서 판을 벌리자 한다. 아냐, 저기 내려 가면 석거리재에 휴게소가 있으니 거기서 먹세!

 

다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더 넘고 아래로 급하게 떨어져 내리니 앞으로 조망이 툭 트이며 석거리재와 맞은편 백이산이 앞에 나타난다. 길게 내려 '석거리재'에 도착한다. 11:50

 

 

# 농장길을 따라 진행했다.

 

 

 

# 그러다 숲으로 치고 오르고,

 

 

 

# 콧노래 절로 나오는 좋은 길이 이어진다.

 

 

 

# 415봉. 행님, 술 먹고 갑시다! 아닐세, 조금만 더 가세!

 

 

 

# 앞이 트이며 석거리재와 백이산이 나타난다.

 

 

 

# 석거리재 좌측의 순천시 송광면 외서리쪽 풍광. 그림이 예쁘다.

 

 

 

# 낙안에서 석거리재로 올라오는 도로. 뒤쪽에 백이산이 우뚝하다.

 

 

 

# 아이고, 저길 올라야 한다고?

 

 

 

# 석거리재와 백이산 일대를 넓게 본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순천 외서와 낙안을 잇는 석거리재. 27번 도로가 지난다.

 

 

석거리재는 순천시 외서면과 낙안면을 잇는 27번 국도가 지나는 고갯길이다. 옛이름이 ‘섶거리재’라고 하고 한자로는 ‘신거치(薪巨峙)’로 불렀다는데, '섶 薪' 자를 써는 걸로 봐서 옛날 백이산에 땔나무가 풍부했나 보다. 섶은 땔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석거리재는 국도가 지나는 고갯길이라 주유소와 휴게소가 있다. 휴게소엔 식당이 딸려 있다. 음식 맛이 알려 졌는지 손님이 꽉 차 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오는데 정갈하고 맛도 괜찮다. 막걸리 한 잔씩 곁들여 맛나게 먹고 커피까지 한 잔 마신 후 느긋하게 휴식 타가 12:40에 다시 길을 나섰다.

 

 

# 석거리재 휴게소.

 

 

 

# 길 건너 백이산 들머리.

 

 

 

# 음식이 깔끔하고 맛나다.

 

 

 

# 산행 출발이 워낙 늦어 산 두어 개 넘었을 뿐인데, 벌써 점심 나절이 되었다.

 

 

 

# 밥 먹고 느긋하게 휴식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배 부르고 술 부르고 커피까지 마셨더니 졸음이 밀려 와 길 떠나기 싫다. 오늘 우리 산길은 정맥 산행이 아니라 만고강산 유람이다.

 

도로 건너 들머리에 올라서자 곧바로 억새밭이 나타난다. 가파른 억새밭을 치고 올라 봉우리에 올라 선 이후 계단식으로 세 차례나 밀어 올리는데 식후라 발이 천근만근이고 눈꺼풀이 내려 앉는다. 네 번째 봉우리를 올라서면 눈앞에 거대한 채석장이 나타난다.

 

 

 

# 억새밭 사면을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 석거리재 휴게소 일대.

 

 

 

# 엄청난 규모의 채석장.

 

 

 

# 산 하나를 박살 낼 기세다.

 

 

 

#  떨어지면 뼈도 못추리겠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채석장 규모가 엄청나다. 백두대간 추풍령에 금산이란 산이 있는데, 그 산을 채석장이 파고 들어서 산 전체가 껍데기만 남아 있지만 이곳 역시 그에 못지 않게 굉장한 규모로 파 먹었다. 그리고 주변 정리가 덜 되어서 하절기 장마철엔 토사 유출이나 붕괴의 우려까지 있어 보인다.

 

채석장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내리며 진행하다가 채석장과 헤어진다. 본격적인 백이산 오르막이 시작된다. 점점 경사가 급해지더니 급기야 땅에 엎어지게 가팔라진다. 숨이 턱에 차고 다리가 팍팍해져 온다.

 

게다가 남도 땅이라 기온 낮은 수도권과는 달리 기온이 높고 햇살 뜨거워 체온이 마구마구 올라 간다.  그렇게 힘들게 밀어 올려 백이산 전위봉인 '518봉'에 올라서게 된다.

 

 

# 채석장과 멀어지면서 본격적인 백이산 오름이 시작된다.

 

 

 

# 전위봉인 518봉과 백이산. 햇살이 뜨겁다.

 

 

백이, 숙제가 형제이니 이 산은 숙제산인가? 518봉과 백이산의 정상부는 수목이 사라진 억새밭이라 사방 조망이 좋고 저멀리 채석장과 석거리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전위봉을 지나 아래로 잠시 내렸다가 다시 가파르게 한차례 밀어 올리는데, 안부에서 650걸음을 세고서 '백이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14:10

 

 

# 백이산 정상부.

 

 

 

# 뚜벅은 벌써 백이산을 오르고 있다.

 

 

 

 

# 몇 해 전 백이산에 산불이 났었다더니 정상부는 온통 억새밭이다.

 

 

 

# 먼저 올라간 뚜벅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 전위봉인 518봉.

 

 

 

# 채석장과 석거리재, 그리고 지나온 정맥길.

 

 

# 순천시 외서면 일대.

 

 

 

# 널찍한 정상부엔 까만 정상석이 서 있다.

 

 

백이산 정상은 넓은 잔디밭으로 되어 있고 햇살 따스해 마구 뒹굴고 싶을 정도로 휴식 취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막힌 데 없이 사방 팔방으로 굉장한 조망을 보여주는 곳이지만, 오늘은 박무가 짙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좌측방의 순천시 외서면 일대와 우측의 낙안면 일대, 그리고 가야 할 빈계재, 고동산 일대가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이래 멋진 곳을 두고 어찌 그냥 가리오! 배낭 내리고 훌렁 벗어 던지고 오랜만에 멋진 거풍을 한번 즐겼다. 천지기운(天地氣運)!

 

또 이런 좋은 조망처에 왔으니 당연히 막걸리 한 잔 나눠야지. 먼저 천지신명께 한 잔 권하고, 절개와 지조의 상징 백이 숙제에게 경의도 표하고 우리도 한잔씩 시원하게 들이킨다. 조우타!

 

 

 

# 햇살 강렬하다.

 

 

 

#  낙안면 일대.

 

 

  

# 가야 할 정맥길. 빈계재와 그 너머의 고동산.

 

  

# 빈계재의 편백숲과 고동산.

 

  

# 고동산을 땡겨 본다.

 

  

# 평화로와 보이는 낙안벌판과 그 뒤를 둘러 싸고있는 금전산과 오봉산.

 

  

#  백이산 정상의 360도 파노라마.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지나온 정맥길.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정상부와 너머의 낙안 일대.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좌측의 순천시 외서면 일대.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낙안면 일대의 파노라마.(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우측 낙성리쪽으로 흘러 내리는 산줄기.


  

 

# 이 동네는 아직 가을이다.

 

 

 

# 채석장.

 

  

#  넓게...(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억새가 햇살에 하얗게 부서지고 있다.

 

 

 

# 낙안읍성을 땡겨 본다. 낙안읍성은 원모습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다.

  

 

# 이래 좋은 조망을 만났으니 당연히 한 잔 해야 한다.

 

  

 

정상에서 오래오래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백이산에서 빈계재까지는 긴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시절 늦은 남도땅이라 아직 가을 냄새가 폴폴 나는 아름다운 길이 길게 이어진다.

 

가을 냄새에 취해 긴 내리막을 내리자니 한때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TV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제주도로 유배 가는 장면에 나오던 그 억새밭길 같은 느낌이 난다. 멋진 가을 산길에 취해 콧노래 흥얼거리다 보니 오늘 구간의 종착지인 '빈계재'에 내려서게 된다. 15:25

 

 

# 이제 빈계재까지는 길게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 그런데 그 하산길이 너무나 아름답다.

 

 

 

# 장금이가,

 

  

# 제주도로 유배 갈 때 장면이 생각난다.

 

 

 

 

  

# 구불구불 예쁜 억새길이 길게 이어진다.

 

 

 

# 백이산을 돌아보고,

 

  

# 여럿이 다시 한번 놀러 오고 싶은 곳이다.

 

 

 

# 오늘은,

 

 

 

# 뚜벅이,

 

 

 

# 장금이라네!

 

 

 

# 돌아 본 백이산이 기묘한 모습을 보여 준다.

 

 

 

 

 

 

 

 

# 쾌청한 날이었다면 정말 좋은 그림을 얻을 수 있었을텐데...

 

 

 

 

# 이 먼 남도 땅은 아직 가을이다.

 

 

 

# 빈계재의 편백숲.

 

 

 

# 순천 이서와 낙안을 잇는 빈계재.

 

 

 

# 빈계재엔 계곡이 있다. 여름엔 목욕도 가능하겠다.

 

 

워낙 늦게 산행을 시작했고 중간중간 휴식도 길어서 남들 같으면 조계산 넘어 접치까지 한 구간을 완전히 마쳤을 시각에 겨우 빈계재에 도착했다. 뭐, 애초에 만고강산으로 남아 있는 정맥길 가자고 작정을 한 터라 아쉽거나 걱정되는 일은 없다.

 

쿨하게 몸에 묻은 먼지 털어내고 이틀간의 호남길을 이곳에서 정리했다. 그리고 바가지 씌울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는 낙안택시 타고 주릿재로 복귀하여 차를 회수했다.

 

 

# 주릿재. 다음번에 이곳에서 야영하기로 작정했다.

 

 

 

# 아침엔 안개나라 이더니 조금은 조망을 허락한다.

 

 

 

이후 머나먼 귀경길을 나섰다. 늦가을 여행과 시제 등으로 전국의 고속도로는 몸살을 앓고 있지만 우리는 똑똑한 스마트 폰의 길안내 덕에 한 차례도 밀리지 않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 열일곱 번째 호남길은 걸음 빠른 사람들 같으면 하루에 해치울 거리를 이틀에 걸쳐 놀며놀며 마치기는 했지만, 낙동졸업 이후 처음으로 동무와 함께 산길을 걷고 정겹게 술잔을 나눌 수 있어서 아주 즐겁게 보낸 이틀이었다.

 

뚜버기!

함께 걸은 산길 즐거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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