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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정맥]세번째 걸음(싸리재~오항동고개)-만고강산(萬古江山)! 본문

1대간 9정맥/금남정맥 종주기

[금남정맥]세번째 걸음(싸리재~오항동고개)-만고강산(萬古江山)!

강/사/랑 2012. 4. 2. 21:52
 [금남정맥]세번째 걸음(싸리재~오항동고개)

  

금남정맥(錦南正脈)은 전라도와 충청도를 아우르는 산맥이다. 그 흐름 도중에 전라도 진안의 운장산(雲長山)을 넘어 피암목재로 내리고 완주 경계의 장군봉(將軍峰)을 넘어 다시 싸리재로 가라 앉는다. 이후 신선봉(神仙峰)으로 솟아 오르며 충청도 땅으로 접어든다. 충청도의 초입에는 대둔산(大芚山)이라는 명산이 높이 솟아 있다. 높이 오르기 위해서는 한 숨 돌려야 한다. 그 한숨 돌리는 높다란 길목에 좁고 한가로운 '백령고개'가 있다.

 

백령고개는 '잣 백(栢)' 자를 써서 '잣고개'라고도 부르는데,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의 청구도(靑丘圖)에는 '백자령(栢子嶺)'으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탄현(炭峴)'으로 나와 있다.

 

이 땅에는 탄현(炭峴)이란 이름의 고개가 흔하다. '숯 탄(炭)'가 들어 있어 숯고개라 부르는 고개다. 따라서 탄현은 흔히 숯가마가 있어 그렇게 불렀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숯가마와 관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숯'은 '솔'의 변음이다. 우리말 '솔'은 '높다'란 뜻을 가졌다. 즉 숯고개는 솔고개에서 변음된 말이다. 그러므로 숯고개란 까마득히 높은 고개를 부르는 일반 명사이다. 솔고개가 숯고개로 변음되었고 다시 한역(漢譯)되어 탄현이 된 것이다. 금남정맥의 이 고개도 까마득히 높은 고개이니 그런 과정을 겪었을 가능성 높다.


한편, 백령(栢嶺) 고개라 부른 것은 잣나무가 많아 잣고개라 부른 것이 나중에 한역된 것이다. 금남정맥 산줄기 걷다 백령 고개 주변 지형을 살펴보니 잣나무 많고 침엽수 은성하다. 박정희 시대에 산림녹화하면서 인공 조림이 있었을 것이지만, 예전에도 잣나무 많았을 곳이다.

 

우리 땅은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이다. 금남정맥은 한반도의 서쪽에 위치한 산맥이다. 서저(西低)하는 곳에 있지만, 이 산맥은 의외로 높고 험하다. 백령고개는 그 의외의 고산준령(高山峻嶺)인 금남정맥을 넘는 구절양장(九折羊腸)의 옛 고개이고 호남과 충청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要衝地)였다. 따라서 예로부터 그 중요성이 높아 숱한 전투의 기록은 물론, 아직도 옛 성터가 남아 있어 그 역사성을 웅변하고 있다.

 

'백령성터'는 그 기원이 백제 시대로 올라 간다. 의자왕 20년인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했을 때, 충신 흥수(興首)는 '백마강'과 '탄현'을 목숨 걸고 지킬 것을 간언(諫言)하였다. 하지만, 무도한 왕과 간신들에 의해 묵살되고 결국 백제는 멸망하게 되는데, 그 때 말한 탄현이 바로 잣고개이다.


소수의 병사만 남아 지키고 있던 백령성은 사비성(泗沘城)으로 향하던 신라군에게 함락되었다. 백제 멸망하고 다시 여러 전쟁이 이 성을 거쳤다. 그리고 세월 흘러 성벽은 허물어지고 석축과 옹벽만 일부 남아 있다. 성벽의 형태와 산성내에서 발견된 백제 시대 기와 파편이나 토기편이 이 산성이 백제 시대 성임을 말해주는데, 성의 지형적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백제 지배층의 무지를 대변하듯 성의 둘레가 200여m에 불과한 소규모 성이다. 성의 형태는 산의 정상부를 휘감은 '테뫼식 산성'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산지가 많은 지형에 적합하게 산성(山城)이 발달하였는데, 산성은 그 축조형태(築造形態)에 따라 테뫼식, 포곡식(包谷式), 복합식(複合式)으로 구분한다.

 

'테뫼식'은 산정식(山頂式)이라고도 한다.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성을 축조한 것으로 초기의 소규모 산성들이 주류를 이룬다. 보통 험준한 산 위에 위치해 있으므로 방어에 유리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소규모이고 식량, 특히 식수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장기간 포위당하면 버티기가 쉽지 않은 단점도 있다. 뫼를 중심으로 테를 두르듯 둘러싸서 성을 쌓았다 하여 테뫼식이라 부른다.

 

'포곡식'은 계곡(谷)을 감싸서(包) 축성된 것을 말하며, 성안의 가장 높은 곳에는 장대(將臺)를 만들어 사방을 내려다볼 수 있게도 하였고 평평한 지형에는 군창같은 건물을 짓기도 했다. 성벽은 대개 견고한 석축을 이용하였고, 산 정상부에서 계곡의 아래쪽까지 포용한 형태로 규모가 테뫼식보다 크다. 보다 후기의 산성들에서 나타나는 형식이다.

 

'복합식(複合式)' 산성은 산복식(山腹式), 사면식(斜面式)이라고도 부르는데, 테뫼식과 포곡식이 결합해서 이루어진 복합 형식으로 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모두 포함하는 형태로 규모가 가장 크게 축성되었다. 도성(都城) 같은 경우에 그 규모로 인해 복합식의 형태로 축성을 하게 된다.

 

금북정맥 종주 중에 만난 백암산(白巖山) 기슭의 백령성터는 둘레가 200m 정도에 불과하고 봉우리 정상에 위치해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의 형태다. 그 규모가 너무 작아 주둔 인원이 기십 명을 넘기 어려워 보이고 우물터나 주거지역의 흔적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아 장기 주둔용이라기보다는 전선의 첨병(尖兵) 역할이나 봉수(烽燧) 역할이 적합해 보였다.

 

실제로 오늘 구간의 출발지였던 싸리재에 태평봉수대(太平烽燧臺)가 위치해 있는 걸로 봐서 그곳과 서로 교신을 하지 않았나 짐작이 되고 발굴 당시 봉수대의 흔적이 나타나기도 한 모양이다.

 

백제 시대에 축성되어진 이 성(城)은 나중에 후삼국의 견훤(甄萱)이 완산(完山)에 도읍을 정하고 도읍 방어를 위해 이 산성의 아래에 있는 남이면 대양리에 경양현(景陽縣)을 설치한 후 이 성을 다시 고쳐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한국전쟁 당시 2,500여 명의 목숨이 스러진 육백고지 전투가 이 지역에서 벌어졌으니 역사의 유전(流轉)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하겠다.

 

오랜 세월 흘러 허물어진 성터와 찾는 이 없는 조형물로만 남은 백령고개엔 잣고개란 이름과는 달리 전승탑 지으며 조경용으로 심은 몇 그루 잣나무만 서 있고 고삐 풀린 야생마의 질주 같은 강렬한 찬바람만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간간이 여행 중에 스쳐가는 몇몇 사람들 만이 휴식을 위해 고개 위에 머물렀다가 간이 포장마차에서 파는 초라한 몇 가지 물건에 관심을 보이거나 건강차 한 잔 사먹고 떠나는 것이 전부라 면면히 이어져 온 잣고개의 역사는 이제 색이 바래지고 있을 뿐이다.

 

금남정맥 종주 중인 강/사/랑 일행 역시 잣고개 한 쪽에 헝겊집 짓고 하룻밤 묵으며 잣고개의 역사를 되새겨 보려고 했으나 미친 듯 몰아치는 찬바람에 쫓겨 고개 아래 민박집으로 밀려나야만 했다. 역시 고개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곳인가 보다. 

 

 

만고강산(萬古江山)!


구간 : 금남정맥 제 3구간(싸리재~오항동고개)
거리 : 구간거리(22.6 km), 누적거리(45.4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2년 3월 31일. 4월 1일. 흙과 해의 날.
세부내용 : 싸리재(09:20) ~ 봉수대갈림길 ~ 태평봉수대/긴 휴식 ~ 무릉리갈림길 ~ 786.6봉
 ~ 산죽밭 ~ 720봉/암봉 전망대 ~ 산죽밭 ~ 신선봉(12:30) ~ 게목재/점심 후 13:55出 ~ 713.5봉/선야봉분기점 ~ 암봉 ~ 헬기장 ~ 백암산/육백고지(15:50) ~ 헬기장 ~ 독수리봉(16:20) ~ 갈림봉 ~ 신설 임도 ~ 백령성터 ~ 백령고개(17:20)// 민박집에서 다시 1박.

백령고개(08:55) ~ 이동통신중계소 ~ 473봉 ~ 바람골산/622.7봉(10:30)/ 휴식 후 11:15 出 ~ 식장지맥 분기점 ~ 헬기장 ~ 인대산 ~ 헬기장/작은인대산(12:10)/휴식 후 13:15 出 ~ 임도 ~ 오항고개(14:10)

            
총 소요시간 13시간 15분.


 

2012년 3월 30일. 쇠의 날. 작년 7월 이후 무려 9개월 만에 다시 금남종주대가 소집되었다. 작년의 소집이 10개월 만이었으니 우리 종주대의 금남길은 딱 1년에 1회 출정을 하는 셈이다. 정말 대단한 팀이다. 그래도 와해되지 않고 마음 급하거나 애달아 먼저 내빼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용하다.

 

시간 여유 있는 사람들은 금요일 오후에 미리 출발하고 나처럼 퇴근이 늦은 사람은 밤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다. 나름 일찍 서두른다고 했지만, 잔차 타고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니 7시 30분이다. 부랴부랴 산행짐 챙기고 마눌이 챙겨주는 이런저런 먹거리 둘러메고 약속 장소인 석수역에 도착하니 5분 늦은 9시 5분이다.

 

금남 동지인 뚜벅과 지원조로 합류한 두루님은 이미 전작으로 약간 취기가 돈 상태로 대기하고 있고, 다른 대원들은 이미 현장에 집결해 있다는 소식이다.

 

다만 집결 장소가 우리들의 특급호텔인 피암목재가 아니고 백령고개 아래 완주군 운주면의 어느 민박집이라는데, 피암목재는 진입을 못하게 입구가 봉쇄되어 있고 백령고개는 찬바람이 너무나 거세게 불고 있어 텐트를 칠 수가 없는 상태인 모양이다.

 

두 동지 픽업해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출발해 경부, 천안논산, 호남, 대전외곽,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거쳐 금산 추부 거쳐 3시간을 꼬박 달린 후에야 백령고개 아래 민박집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방문 열고 들어서니 한낮에 도착한 이들부터 대여섯 시간 넘게 달린 후라 얼굴들이 술 익는 저녁마다 타는 저녁놀인데, 우리 도착을 핑계로 이곳저곳에서 막걸리 병이 쏟아져 나오고 반가운 인사로 술잔이 돌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종주대에는 안성의 대방님이 금강기맥을 하기 위해 합류를 한 지라 특유의 독한 안성막걸리를 두 박스나 챙겨 왔고 시작부터 끝까지 그 안성막걸리를 다른 이들에게 먹이기 위한 술 권하는 사회가 이어졌다. 안성막걸리 피해서 요리조리 페인팅을 하다가 두 시쯤 이불 속으로 슬라이딩했는데, 몇몇 이들은 새로 네 시까지 술잔 돌리며 불 꺼진 창을 찾았대나 어쨌대나?


 

백암산/白巖山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에 있다. 높이는 654m이다. 백암산을 처음 오르는 사람들은 두 번 놀란다. 뜻밖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한국전쟁 때 이 산에서 숨진 2400 여명의 전사자 수에 놀란다. 백암산은 금남정맥 줄기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옛날에는 깊은 산중으로 이름 난 곳이어서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았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포장도로가 이 산줄기를 넘어가고 있고 이 산의 서쪽 선야봉과의 사이에 남이 휴양림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특히 백암산의 매부리봉은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이 백암산 원 줄기의 북쪽 끝봉을 서암산이라고 하는 바 이 북편의 서암산 쪽에서 보면 매부리봉의 날카로운 바위가 마치 매의 부리처럼 서쪽의 하늘로 내밀고 있어 신기하다. 이 매의 부리는 공중에 떠있는 셈이다. 이 매부리봉 외에도 주릉 일대의 바위등성이는 주로 서쪽 휴양림 골짜기 쪽으로 천길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고 거기에 노송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또 주봉의 동북 편 아래 골짜기 높은 곳에 ‘큰굴’이라는 큰 바위굴이 구경거리다. 1950년 한국전쟁 때에 많은 사람들이 모숨을 잃은 참상의 현장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굴의 넓이가 20여 평에 이르고 비가 내린 뒤면 굴 앞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구슬을 엮어서 쳐놓은 발처럼 보여 신기하다. 백암산 산행은 승전탑이 있는 배티재에서 백암리 고개까지 금남정맥이기 때문에 더욱 더 뜻있는 산행이 될 수도 있다.


인대산/印大山

 

금남정맥에 자리잡고 있는 인대산은 산의 모습(산상)이 좋다. 북쪽의 백마산에서 보면 인대산이 산상이 좋은 운장산의 모습과 비슷하다. 기와지붕처럼 보이고 우람하며 동서 양 편에 솟아있는 작은 인대산 큰 인대산 두 봉우리가 뚜렷하다. 인대산은 금남정맥이 거쳐가는 산이다. 백암산에서 달려 온 산줄기가 인대산 옆구리를 치고 작은 인대산을 지나 서낭당재(오항재)를 건너간다. ‘인대산의 옆구리를 친다.’고 한 것은 금남정맥이 인대산에 오르자마자 작은 인대산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화살 끝을 이루고 인대산이 그 화살 끝이 되기 때문이다. 높이가 666m로 제법 높기 때문에 조망이 매우 좋다. 특히 대둔산과 천등산의 조망은 멋이 있고 신비스러운 느낌도 든다. 인대산의 남쪽과 동쪽 그리고 청동마을이 있는 북쪽으로 삼면을 건지실 골짜기가 싸고도는 것이다. 이 골짜기는 매우 깊고 깨끗하며 조용하다. 이 건지실 골짜기는 대전 3대 하천의 하나인 유등천의 발원지다. 인대산에는 훌륭한 절터가 있다. 깊이 들어앉은 절터여서 속세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여러 층의 석축 절터로 오래 된 감나무가 여남은 그루가 남아있다. 가을에는 주인 없는 이 감나무의 감이 온 골짜기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이 절터의 약수가 만병을 낫게 한다는 소문이 있다. 가르메골에는 느티나무가 많고 작은 인대산(서봉)에서 가르메골로 내민 산등성이에 단풍나무도 많다. 쓸쓸한 절터, 노랗게 물드는 느티나무, 빨갛게 물드는 단풍 거기에 빨간 감, 인대산은 가을에 좋다. 인대산은 동서로 100여 m 되는 평정봉이다.

 

백령성/栢嶺城

 

남이면 건천리와 역평리 선치산(仙治山)의 동쪽에 있으며, 둘레가 약 200m에 이르는 백제의 테뫼식 산성(山城)이다. 이곳은 금산군 제원면과 추부면을 통하여 영동/옥천에 이르는 전략상 요충지이다. 김정호(金正浩)의 『청구도(靑丘圖)』에는 백자령(栢子嶺)으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탄현(炭峴)으로 나와있다. 금산군의 외곽성(外廓城)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쪽을 제외한 동, 남, 북쪽은 거의 허물어졌다. 서쪽 벽의 남은 상태를 보면 바깥쪽 벽의 높이는 5.8m~6.9m 이고 안쪽 벽은 2.3m~3m이며, 성벽의 너비는 4m에 이른다. 성내에서는 백제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등이 발견되며, 산봉우리에는 봉수대(烽燧臺)가 있어 진악산(進樂山)의 관앙불봉(觀仰佛峰)의 봉수와 서로 교신하였다. 특히 견훤(甄萱)이 완산(完山)에 도읍을 정하고 도읍 방어를 위해 이 산성의 아래에 있는 남이면 대양리에 경양현(景陽縣)을 설치하고 백령성을 다시 고쳐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금남정맥 제 3구간 싸리재~오항동고개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이번 종주길에 이틀 밤을 묵은 민박집.

 

 

 

# 계곡이 휘감아 도는 높은 뼝대로 둘러싸인 곳에 위치해 있다.

 

 

 

밤새 술 먹고 노래 불러 잠 못 자게 만든 이 사람들이 뭐가 이쁘다고 오늘도 묵묵히 아침 챙겨 멕이는 세리님의 헌신 덕분에 든든히 아침 먹고 짐 챙겨 백령고개로 모두들 향했다.

 

백령고개에 차 두 대 주차해 놓고 나머지 두 대에 분승해서 출발지인 싸리재로 향했다. 한데, 싸리재가 얼마나 오지에 위치해 있는지 현장에서 30여 분 넘게 운전을 해야만 그야말로 구절양장의 임도길을 타이어 타는 냄새 맡으며 거슬러 올라 고개 정상에 이를 수 있었다.

 

 

 

# 오늘 구간의 종착점인 백령고개.

 

 

 

# 싸리재까지는 산 넘고 물 건너 오래오래 달려야 했다.

 

 

 

# 싸리재 고개 정상은 시절이 해빙기라 얼었던 땅이 녹으며 진창이 되어 있다. 게다가 진안 쪽으로는 그 정도가 심해 차량통행이 불가능하였다.

 

 

 

싸리재는 접근하기가 정말 어려운 곳이다. 홀로 산꾼에서 떼 산꾼으로 변신한 우리 종주대는 이곳에서 세 갈래로 팀을 나누게 된다. 한 사람은 금강기맥하러 남쪽으로, 한 사람은 지원조하러 현장에, 나머지 여섯 사람은 떼를 지어 금남으로 스며들었다.

 

한차례 올려 봉우리에 오르지만, 곧장 다시 가파르게 치고 오르게 되어 있다. 시작부터 모두들 헉헉 소리가 난무하고 그렇게 밀어 올려 능선 갈림길에 올라서는데, 이곳이 '봉수대 삼거리'다.

 

평소 같으면 정맥에서 벗어나 있는 저런 봉우리들은 가차없이 패스를 하게 되지만, 오늘은 지원조로 참석한 두루님의 강력한 권유와 그로 인한 후환이 두려워 모두들 자연스럽게 봉수대로 향했다. 우틀하여 잠시 오르면 곧 봉수대에 이르게 되는데, 두루님의 강권이 이유가 있어 위에 올라서니 사통팔달의 장쾌한 조망이 어느 한 곳 막힘 없이 시원하다.

 

아마도 대간, 정맥 중 손에 꼽을 만한 훌륭한 조망처가 아닐까 생각되어지는 것이 금남정맥의 장쾌한 흐름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고, 진안고원의 여러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손에 잡힐 듯 눈 앞에 펼쳐진다. 운장산, 연석산, 복두봉, 구봉산, 명도봉, 장군봉 등등...

 

봉수대 정상에서 오래오래 조망 감상하다가 바람 없는 한 켠에서 배낭 내리고 조망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씩 나눴다. 산행 시작한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막걸리 잔이 도니 오늘 또 얼마나 마시려나? 

 

 

 

# 기맥꾼은 남쪽으로,

 

 

 

# 정맥꾼은 북쪽으로 스며든다.

 

 

 

# 한차례 올려 봉우리에 오른 후,

 

 

 

# 곧장 가파르게 치고 오른다. 찬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고 있다.

 

 

 

# 한차례 쎄빠지게 올려 능선 갈림길에 이른다.

 

 

 

# 태평봉수대는 정맥에서 우측으로 약간 벗어나 있다.

 

 

 

# 탄현, 즉 숯고개와 연결되었다고 하니 백령성과 전달 체계를 갖추었다는 얘기다.

 

 

 

# 봉수대 정상은 조망이 아주아주 멋지다.

 

 

 

# 진안군 주천면의 긴 회랑 너머에 운장산이 우뚝하다.

 

 

 

# 운장서봉, 중봉, 동봉.

 

 

 

# 진안 주천면의 인간세.

 

 

 

# 가야 할 정맥길, 저 멀리 대둔산의 모습이 보이고,

 

 

 

# 대둔을 땡겨본다.

 

 

 

# 몇 해 전 가을에 올랐던 구봉산. 하늘로 오르는 징검다리 같다.

 

 

 

# 용담호의 은빛 물결.

 

 

 

# 작년에 걸어서 탈출했던 진안쪽 싸리재.

 

 

 

# 진안 방향으로 넓게 펼쳐본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가야 할 방향으로,(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쩌그가 구봉산이여!

 

 

 

# 쩌그는 명도봉인가? 학다리 고등핵교 선후배들의 뒷모습이 정겹다.

 

 

 

# 작년에 지났던 장군봉. 굉장히 위험했는데 이렇게 보니 자그만하다.

 

 

 

# 맨 뒷쪽에 있는 연석산.

 

 

 

# 진안고원의 山群들!

 

 

 

# 참으로 멋지다. 구봉산을 가까이.

 

 

 

# 명도봉 역시.

 

 

 

# 대두니!

 

 

 

# 이렇게 멋진 조망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

 

 

 

# 좀 전에 올랐던 운주면 방면의 싸리재.

 

 

 

# 구절양장.

 

 

 

막걸리 한 순배 돌린 후 짐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봉수대 갈림길로 복귀하고 깊게 떨어진 후 잠시 진행하면 '벤치가 있는 전망대'가 나타나고, 곧 다시 깊게 떨어져 내린다. 처음 싸리재에서 오를 때 보다 훨씬 더 많이 떨어지게 되어 있어 오늘 산행길이 영 불안하다. 안부에 이르자 습지가 길게 이어진다.

 

잠시 진행하여 무릉리 갈림길이 있는 고개에 이르자 누군가 앞길을 가로막고 불심검문을 하고 있다. 두루님이다. 혼자 고갯길에 있기 심심하였는지 막걸리 짊어지고 이곳까지 올라와서는 만고강산 산꾼들을 검문하고 있다. "호~ 불어보시오! 술 냄새가 안 나는구만, 한 잔 해야 쓰것소!"

 

도시의 불심검문은 술을 먹었는지 검사하는데 반해 이곳 산속에서의 검문은 술을 안 먹었는지를 검문한다. 그리하여 막걸리 마신지 20여 분 만에 또 막걸리 파티가 벌어진다. 오늘, 우얄꼬?

 

 

# 벤치가 있는 전망대.

 

 

 

# 곳곳에 전망대가 즐비하다.

 

 

 

# 깊게 떨어져 안부 고개에 이르는데, 앞을 가로막는 이가 있다.

 

 

 

# 술 냄새가 안 나는구만, 한 잔 받어!

 

 

 

하하~껄껄~ 재미있게 막걸릿잔 돌리다가 나중을 기약하고 검문자는 고개로 돌아가고 정맥꾼들은 맞은편 산길로 올라갔다. 곧 또다시 가파르게 치고 올라야 하는데, 좀 전에 마신 막걸리들이 꺼억꺼억 넘어온다. 아이고, 힘들어라~

 

두루님 검문으로 인해 모두들 아침부터 맛이 가기 시작해서 가파른 오르막에서 헉헉대느라 난리다. 가파르고 길게 치고 올라 능선 갈림길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좌틀하여 다시 봉우리를 올리면 '786.6봉'에 이르게 된다.

 

이 봉우리 역시 조망이 아주 좋다. 등로 곳곳에 좌측으로 멋진 조망처가 나타나서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이후 정상을 지나고도 떨어지지 않고 잠시 평탄하게 진행하라 한다. 처음 시작부터 가파르게 오르내리길래 걱정이 아주 많았는데, 감사하게도 마루금을 따라 비교적 평탄하게 진행하게 된다.

 

키 높이 산죽밭이 연달아 나타나더니 잠시 아래로 내리는 듯하다가 잔잔하게 오르내리며 길게 진행한다. 그러다가 한차례 올려 전망대가 있는 암봉에 올라섰다. 이 봉우리는 좌우 모두 전망대가 있어 전북 완주의 운주면과 진안 주천면일대가 모두 눈에 들어온다.

 

이 마루금이 두 지방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평탄하고 길게 진행하다가 뾰족한 봉우리를 치고 오른 후 조금 내리더니 곧 길게 치고 오르라고 한다. 키 높이의 산죽밭이 계속 나타나서 산죽잎으로 얼굴을 때려 아야아야 소리를 연속으로 내게 되고 그렇게 소리 지르며 치고 오르면 '신선봉'에 이르게 된다. 12:30

 

이곳부터 금남정맥은 충청도 땅으로 접어든다. 정상에서 좌틀하여 떨어져 내리면 '게목재'에 도착한다. '무릉원 갈림길'이란 이정목이 서 있다. 이곳에서 바람 없는 곳을 찾아 짐 내리고 점심상을 펼쳤다.

 

 

# 무릉리 갈림길.

 

 

 

# 곧 가파르게 치고 오른다.

 

 

# 오늘 구간은 산죽밭이 많이 나타난다.

 

 

# 높이가 딱 사람 키 높이라 매우 번거롭다.

 

 

 

# 중간중간 암봉 전망대가 많다.

 

 

 

# 지나온 정맥길, 봉수대와 싸리재.

 

 

 

# 태평봉수대를 땡겨본다.

 

 

 

# 싸리재도,

 

 

 

# 운장산.

 

 

 

# 독야청청한 낙락장송.

  

 

                                  

# 깊은 오르내림은 없어도 꾸준히 오르내린다.

 

 

 

# 간혹 우횟길이 있어 행복하다.

 

 

 

# 이런 길은 너무 감사하다.

 

 

 

 

# 산첩첩,

 

 

 

# 우측으로 트인 조망처를 만나고,

 

 

 

# 파노라마로 펼쳐본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욕 보십니다!

 

 

 

# 한차례 꾸준히 올려,

 

 

 

# 신선봉에 오른다.

 

 

 

 

# 아래로 깊게 떨어뜨려 게목재에 이르고,

 

 

 

 # 이곳에서 마음에 점 하나 찍는다.

 

 

 

우리 금남 종주대가 처음 결성된 것이 재작년이니 3년 만에 겨우 세 구간을 했을 뿐인데, 연례행사로 진행되는 이 종주대가 모이기도 어렵거니와 모여서 산길 들어가서 하는 행동 역시 언제나 만고강산이다. 오늘도 점심상을 포함해서 이미 세 번의 막걸리 잔돌림이 있었다.

 

우짜든동 일단 산속에서 먹는 막걸리는 언제나 맛나기 마련이라 오늘도 각자의 배낭 속에서 연속으로 막걸리 병이 쏟아져 나오고, 권커니작커니도 연속으로 이어진다. "그래, 이래 산길 가는 것도 또 재미일세! 만고강산 유람할제, 삼신산이 어디메뇨?"

 

오래오래 퍼질러 앉아 산속 만찬을 즐기다가 살짝이 일어나 게목재 너머 바람 좋은 곳에서 아래 위로 옷을 열어 젖혀 거풍 한번 즐겼더니 금세 온 몸이 뽀송뽀송해진다. 덤으로 한기는 으슬으슬... 모두들 술기운 살짜쿵 돌 무렵 짐 꾸려 다시 길을 나서기로 하니 무려 1시간 25분이나 만찬을 즐겼구나!

 

고개 한편에서 점심을 먹었으니 곧바로 오르막을 치고 올라야 하는데, 밥 먹고 곧바로 치고 오르려고 하니 엄청 힘이 든다. 그렇게 봉우리 넘은 후 곧바로 오른 만큼 떨어져 내리게 되고 곧 다시 위로 치고 올라 봉우리를 넘는가 했더니 또 그만큼 떨어지라고 한다. 하이고, 왜 이러냐?

 

이후는 날등의 암릉길을 진행하는데, 오후 들어 찬바람이 더욱 강하게 불어 으슬으슬 추워진다. 그렇게 가다가 한차례 치고 올라 '713.5봉' 인 선야봉 갈림봉에 도착했다. 

 

 

 

# 713.5봉.

 

 

 

# 좌측 너머로 선야봉이 우뚝하다.

 

 

 

좌우 모두 표지기들이 매달려 있는데, 좌측길은 선야봉 가는 길이고 정맥은 우측길이다. 잠시 진행하다가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 숲 너머로 백암산이 우뚝하다. 전방의 바위 암봉을 넘어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린 후, 봉우리를 또 오르니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길이 정맥길이다.

 

바로 아래에 이정목이 있다. 갈림길로 접어들어 정상을 넘고 이후는 대여섯 개의 봉우리를 연달아 넘는다. 하나를 넘을 때마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봉우리 하나를 제대로 넘어 내리면 갈림길이 나오고, 바로 뒤에 '헬기장'이 나타난다. 이후 암릉길을 계단식으로 가파르게 치고 올라 '육백고지'라고 불리는 '백암산'에 이르게 된다. 15:50

 

 

 

# 꾸준히 오르내리게 된다.

 

 

 

# 부부 산꾼.

 

 

 

# 지나온 정맥길을 넓게 펼쳐서,(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암릉길이 길게 이어진다. 좌측으로 선야봉이 보인다.

 

 

 

# 숲 너머에 우뚝한 백암산.

 

 

 

# 갈림길.

 

 

 

# 백암산까지는아직 봉우리 몇 개를 더 넘어야 하는구나!

 

 

 

# 아이고, 힘들다!

 

 

 

# 저어기가 백암산이구나!

 

 

 

# 아직도냐?

 

 

 

# 종주산꾼들의 심정이 묻어나는 대간돌이님의 한마디!

 

 

 

# 우측으로 충청도 금산군 남이면의 인간세.

 

 

 

# 또 아래로 내린다. 참으로 오르내림이 많다. 다만 깊게 오르내리지 않아 감사할 따름이다.

 

 

 

# 갈림길도 꾸준히 나타나고,

 

 

 

# 헬기장에 도착.

 

 

 

# 지나온 정맥길, 중앙의 선야봉 갈림봉을 중심으로 좌측은 정맥길, 우측은 선야봉 가는 길.

 

 

# 암봉도 여럿 넘는다.

 

 

 

# 암봉은 대부분 멋진 조망을 보여준다.

 

 

 # 정맥을 줌심으로 넓게 펼쳐본다. 울끈불끈한 산맥의 흐름이 장쾌하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드디어 육백고지에 오르게 된다.

 

 

 

점심 이후에 여섯 명의 종주대가 자연스레 세 팀으로 나뉘어 진행하게 된다. 이 쯤이면 막걸리 잔 돌리자는 소리가 들릴 때쯤 되었다 싶지만, 찬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고 있어 오래 기다리기가 어렵다. 일단 독수리봉까지 가서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이내 다시 길을 나섰다.

 

오후 들어 찬바람이 더욱 강해지는데, 순간순간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강풍이 불기도 한다.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한차례 올리면 지도에 기록되어 있는 헬기장이 나타난다. 이곳 역시 바람이 강해 머물 수가 없다. 다시 독수리봉을 향해 고고!

 

잠시 내렸다가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암릉길이 길게 이어져 평소에도 조심스럽겠는데, 오늘은 강풍이 불고 있어 아주 조심스럽다. 강풍에 휘말리면 아찔하게 위험할 수도 있어서 조심해야 하고, 그렇게 찐하게 밀어 올려 '독수리봉'에 이른다. 16:20

 

 

#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헬기장.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고 있다.

 

 

 

# 독수리봉.

 

 

# 소나무가 우뚝한 암봉이다.

 

 

 

# 지나온 육백고지와 정맥길의 흐름.

 

 

# 땡겨보니 저 멀리 운장산이 보인다.

 

 

# 바람 강하게 부니 조심조심.

 

 

 

# 독수리봉 정상.

 

 

 

# 지나온 길을 파노라마로,(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우측 아래에 백령고개가 보인다.

 

 

# 음.. 오늘은 저기까지만 가면 된다.

 

 

 

# 찬바람 강하게 부는 독수리봉.

 

 

독수리봉은 사방 막힘 없는 바위 암봉이라 찬바람이 지금까지 중에 가장 강하게 불고 있는 곳이다. 잠시 머물러 주변 조망 감상하는 동안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덜덜 떨려오기 시작한다. 당연히 이곳에서 후발대를 기다릴 수가 없다.

 

암봉 주변을 이곳저곳 찾아보지만 마땅히 바람 피하며 막걸리 한 잔 나눌 장소가 없다. 그래도 암봉 한 켠 오목한 곳에 모여 앉아 뒷사람들을 기다려 보기로 하는데, 10여 분 후 나타난 파키라의 말에 의하면 후발대는 한참 더 기다려야 할 것 같고, 이곳은 주변 여건이 너무 나빠 일단은 백령고개까지 가보기로 했다.

 

암릉길을 지나 봉우리 두 개를 연달아 넘은 후 두 번째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급격하게 떨어져 내리게 된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나?

 

길게 내려 고도를 충분히 떨어뜨렸다 싶을때 지도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임도를 만나게 되는데, 이 임도는 최근에 건설 중인 듯 잔 자갈로 뒤덮혀 있고 정맥을 가로질러 좌측 아래로 휘감아 떨어져 내린다. 임도를 가로질러 맞은편 숲으로 올라가면 넓은 '헬기장'을 지나게 되고 한차례 올리면 '백령성터'에 도착한다.

 

 

# 멋진 포즈의 찍사.

 

 

# 지나와서 돌아보니 왜 이름이 독수리봉인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 날등을 지난 후 봉우리 두 개를 연달아 넘어야 한다.

 

 

# 봉우리 하나 넘고,

 

 

# 두 번째 봉우리에서 우틀하여 떨어진다.

 

 

# 가야 할 헬기장, 백령성터, 백령고개.

 

 

# 깊게 떨어져 내리고,

 

 

# 독수리봉을 올려도 보고,

 

 

# 날씨 좋을 때면 저 곳에서 조망 감상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

 

 

# 지도에 없는 신설 임도를 만났다.

 

 

# 헬기장.

 

 

# 한차례 올리면 백령성터이다.

 

 

 

 

백령성터는 오래 전 발굴 작업을 거친 후 다시 방치되어 있어 이곳저곳 거칠게 허물어져 가고 있다. 이 지역이 우리 역사의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때, 지금처럼 잊혀진 채 방치할 것이 아니라 잘 정비해서 후손들에게 역사적 교훈으로 남겨야 할 듯 싶다.

 

잠시 허물어진 성터를 돌아본 이후 아래로 내리면 육백고지 전승탑이 나오고 그 아래에 '백령고개'가 있어 나름 사연 많은 오늘 구간의 산행을 마치게 된다. 17:20

 

 

# 육백고지 전승탑.

 

 

# 이러저러 하였더라.

 

 

# 백령고개.

 

 

# 백령고개에서 만난 한백회 분들.

 

 

# 같은 종주꾼으로,

 

 

# 인연이 이어짐을 기념하며 기록으로 남겼다.

 

 

백령고개에 내려서서 몸에 묻은 먼지 털어내니 아침에 출발한 싸리재에서 부터 꼭 여덟 시간이 걸렸다. 느릿한 걸음, 최소 세 번은 예상되는 술자리, 한번 술자리 벌리면 한 시간은 기본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열 시간 정도는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의외로 선방한 편이다.

 

예상대로 술자리는 세 번을 채웠지만 점심 이후에 찬바람이 너무 강해 몸에 열을 내기 위해 속도를 낸 점과, 독수리봉 주변에서 마땅히 전을 펼칠 공간을 발견 못해 마지막 술자리를 생략한 점 등이 작용한 결과다. 어쨌건 우리 만고강산 종주대의 평소 산행 행태를 생각할 때 획기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백령고개 한 켠 정자에 앉아 후미조 기다리고 있는데, 일단의 산객들이 백령고개에 내려선다. 이래저래 통성명 끝에 같은 정맥꾼이라는 동질감은 물론 서로서로 알만한 이력들을 소유하고 있다. 이 한백회 분들과 잠시의 인연을 나눈 후 그분들은 택시로 우리는 승용차로 싸리고개에 세워둔 차를 회수하러 갔다. 또 일부는 기맥하러 가서 예상 외로 시간 지체가 심해진 대방님 택배하러 가고.

 

싸리재는 정맥길에서 유래를 찾기 어렵게 심심산골에 위치해 있어 길고 길게 차를 달리고 구불구불 오래도 고갯길을 올려야 오를 수 있고, 차 회수한 이후에도 역시 오래 운전해서 어젯밤 묵었던 민박집으로 다시 집결했다.

 

원래 계획은 백령고개에서 야영을 하려고 했지만, 오늘도 백령고개에는 미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어 야영은 불가능하다. 덕분에 노숙하기 좋아하는 만고강산 종주대는 어울리지 않게 이틀 연속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 호사도 누리고 따스한 방바닥에 등을 지지는 기쁨 역시 누릴 수 있었다.

 

다만 어젯밤 너무 심하게 달린 이후라 오늘은 몇 순배의 막걸리가 돈 이후 하나 둘 자리에 쓰러지는 것이 어제와는 다른 그림이다.

 

 

# 이틀 연속 묵은 민박집.

 

 

바쁠 것 없는 일정이라 느지막이 일어나 해장국 끓여 먹고 짐 챙겨 백령고개로 향했다. 오늘 우리 종주대는 어제와는 달리 한 사람이 줄어들고, 기맥꾼은 어제 고생한 것이 징그러워 산행을 종료하는 바람에 조금 단촐해졌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백령고개 한쪽에 주차하고 들머리로 스며드는데, 남은 이들이 그 차들을 오항동 고개로 갖다 두기로 하는 바람에 나중에 차 회수할 번거로움은 없다. 08:55. 백령고개를 출발.

 

 

# 산행조, 택배조, 귀가조로 구분.

 

 

 

# 백령고개 들머리로 스며든다.

 

 

백령고개 도로 입간판 뒤로 오르면 곧 이동통신 중계소를 만난다. 한차례 올려 능선마루금에 오르고 이후는 평탄하게 진행한다. 구불구불 길게 진행하다가 한차례 위로 올리고 우틀하여 깊게 떨어지는데, 당연하게도 전방에 산이 우뚝 솟아 있다. 안부에 이른 후 곧바로 가파르게 치고 오른다. 480걸음을 센 후 능선갈림길에 도착하게 된다.

 

좌틀하여 잠시 오르면 '473봉'에 이른다. 좌측에 전망대가 있다. 그 너머로 대둔산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잠시 한숨 돌리며 조망 감상을 하다가 우틀하여 떨어진다. 우짤라꼬 그러는지 깊게도 떨어진다.

 

그러다 곧바로 치고 오르라고 하더니 500여 걸음 걸은 이후 봉우리를 오르지만, 또 곧바로 떨어지라고 한다. 에휴~ 한차례 내렸다가 이내 코가 땅에 닿게 가파르게 밀어 올려야 해서 모두들 헉헉 가픈 숨소리가 합창으로 들리고 그렇게 힘들게 오르지만 금세 또 내려가야 한다.

 

이후 3단의 계단식으로 다시 치고 올라야 해서 다리가 팍팍하게 땡기는데, 능선 갈림길에 억지로 올라선 이후 좌틀하여 한차례 올려야 비로소 '622.7봉'에 이르게 된다. 10:30

 

 

# 시작은 완만한 오르내림이라 편하다.

 

 

# 그러나 곧 본색을 드러낸다.

 

 

# 사면을 따라 아래로 내리면 곧 앞에 산이 가로막는다.

 

 

# 공짜가 있나?

 

 

# 473봉.

 

 

# 전망대가 있어 멀리 대둔을 조망할 수 있다.

 

 

 

# 큰 바윗덩어리인 대둔산.

 

 

# 아이고, 얼마나 오르내려야 너에게 갈 수 있나?

 

 

# 뒷모습이 뱌그라님을 닮은 아담한 체구의 정맥꾼이 우리 팀을 앞질러 간다.

 

 

# 가파른 오르막이 앞을 가로막고,

 

 

# 모두들 헉헉, 낑낑 힘겨운 합창 소리 요란하다.

 

 

# 그렇게 오른 622.7봉.

 

 

622.7봉은 지도에 없는 바람골산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다. 조금 내리면 바람 없고 낙엽 푹신한 곳이 나타나 당연히 이곳에서 짐 내리고 막걸리 잔을 돌린다. 만고강산~~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 잔 돌리다가 11:15에 짐 꾸려 다시 길을 나섰다. 이 동네는 토양의 산성화가 심해서 그런지 지난 가을의 낙엽들이 전혀 썩거나 부서지지 않아 가을 풍경 그대로를 보여 준다. 와샥와샥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한차례 밀어 올리면 '식장지맥 분기봉'이 나타나고, 정맥은 좌측 길인데 숲 너머로 인대산이 우뚝하다.

 

좌틀하여 아래로 내렸다가 우측으로 휘감아 오르는 형상이다.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깊어 걱정이 크다. 잔봉 서너 개를 넘은 후 우틀하여 다시 잔봉을 넘으면 인대산 오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인대산은 군더더기 없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산이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오르막을 치고 오르는데, 8부 능선쯤에 좌측으로 우회하는 샛길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누구랄 것 없이 모두들 한마음으로 우회로에 진입했다. 다만 걱정이 택배조하시는 두루님이 아마도 저 인대산 갈림길쯤에서 어제처럼 검문검색을 위해 진을 치고 있을 거란 예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능선 마루금에 올라선 이후 고함쳐 보니 위에서 잠복해 있던 두루님이 낭패한 목소리로 달려 내려오신다. "인대산 빼 먹으면 무효야!" "어차피 인대산 정상은 정맥길에서 벗어나 있으니 유효입니다요!"

 

잠시 진행하다가 2단으로 치고 오르면 조망 좋고 넓은 헬기장이 나타나 그곳에서 짐 내리고 막걸리 전을 펼쳤다.

 

 

# 1차 산상 파~리.

 

 

#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어 봄이 왔건만, 이 동네 숲바닥은 여전히 가을이다. 발목이 빠질 정도의 낙엽이 수북히 깔려 있어 걷기가 불편하다.

 

 

# 대간돌이님, 은근히 재미있는 분이다. 나도 처음 대간할 때 정맥은 절대로 안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정맥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오...

 

 

# 숲 너머에 인대산이 우뚝하다.

 

 

# 인대산 갈림길에서 잠복 근무하시던 두루님이 낭패해서 달려 내려오신다. 무효야, 무효!

 

 

# 햇살 좋은 헬기장. 작은 인대산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다.

 



# 헬기장은 조망이 좋아서 가야 할 대둔산이 바로 눈앞이다.

 

 


# 작년 가을 저 대둔에서 사람 구경, 단풍 구경, 산그리매 구경 실컷 했었다.

 


 

# 인대산, 뾰족한 봉우리다.

 

 

# 자,자, 이 막걸리 한 잔이 바로 유효올시다!

 

 

한 시간 넘게 2차 산상 만찬을 즐긴 후 느긋하게 짐 꾸려 길을 다시 나섰다. 갈길 바쁘지 않으니 그야말로 만고강산 산행으로 콧노래 흥얼흥얼 하면서 천천히 산길을 걷는다.

 

헬기장을 나서 바로 가파르게 떨어져 내린 후 잔봉을 하나 넘고, 다시 가파르게 봉우리를 치고 올랐다가 떨어져 내리면 정맥을 가로지르는 포장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이 도로는 정맥의 품에 푹 파묻혀 있는 오항리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이고 정맥은 전방의 산을 하나 더 넘어라고 하는데, 모두들 그냥 도로를 따르고 있다.

 

도로는 산의 우측으로 휘돌아 내려가게 된다. 우측에 넓은 광산이 위치해 있고 중금속이 녹은 옥빛 저수지가 외양 만은 예쁘게 빛나고 있다. 잠시 도로를 따라 돌아 내려가면 오늘 구간의 종착지인 '오항동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14:10.

 

 

# 오항리로 들어가는 포장도로.

 

 

# 구불구불 남이면으로 넘어가는 635번 지방도.

 

 

# 오항동고개.

 

 

# 춘경정이란 옥호를 달고 있다. 곧 농사가 시작되는 봄이니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오항동고개는 남이면과 진산면을 잇는 635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고개 정상에는 아담한 정자가 하나 있어 오가는 나그네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 정자에 짐 내리고 온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이틀 간의 만고강산 종주를 마무리했다.

 

우리 만고강산 종주대의 금남정맥은 종주꾼들 사이에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느림보 종주대이다. 정맥 산행길이 연례행사로 진행되는 팀이라 그렇다. 그리하여 일 년에 한 구간씩 진행을 해서 조약봉을 출발한 지 삼년이나 지났지만, 이제 겨우 이곳 오항동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다들 1대간 9정맥의 졸업이 가까운 몸들이고, 몇 구간 남지 않은 낙남정맥 졸업하고 이곳에 집중한다면 올 가을 안에는 졸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긴 하다. 아, 물론 이 팀의 느긋한 만고강산 본능이 어떤 결과를 불러 올 지는 두고 볼 일이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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