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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종주 자전거길]영산강자전거길-영산포 홍어 본문

잔차이야기/4대강종주자전거길

[4대강종주 자전거길]영산강자전거길-영산포 홍어

강/사/랑 2012. 9. 20. 11:11
[4대강종주 자전거길]영산강자전거길

   

그 이상하고 충격적인 음식을 처음 접한 것은 내가 학교 졸업하고 첫 직장을 잡았을 때이니, 그때가 아마도 서울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86년도인가 보다.

 

당시 입사한 회사는 종로에 본사가 있었다. 입사 직후 신입사원 환영회를 한다고 사장이 직접 압구정에 있는 대형 한정식집에서 파티를 열어 줬었다. 그 집은 한복 입은 예쁜 여성들이 살갑게 서빙을 하고 최고급의 음식들이 끝도 없이 제공되는 대단한 요릿집이었다. 시골에서 서울로 갓 올라온 깡 촌놈의 눈에는 산해진미(山海珍味)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진 느낌이었다.

 

그때 난생처음 보는 음식이 한 접시 나왔고 사장이 아주 맛있는 음식이라며 직접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에 넣어 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나름 감격해 하며 한 입 베어 문 순간! 이런~ 제기랄~ 눈에서 코에서 입에서 불이 나며 헛바람이 핑핑 나오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대로 화장실로 뛰어가 다 토하고 말았다.

 

화장실에서 입을 씻고 가글을 하고 난리를 쳐 봤지만, 입에서는 오래된 시골 화장실에서 날 법한 냄새가 가득하고 혀가 마비되는 듯 얼얼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한참 뒤 벌게진 얼굴로 방으로 돌아가니 사장 曰, "야, 이 촌놈아~ 그 맛난 걸 못 먹어 토하냐?"

 

그때 시골 촌놈의 얼을 쏙 빼놓았던 그 이상한 음식이 바로 '홍어 요리'이다. 홍어는 전라도의 대표 음식으로 그 독특한 향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없어서 못 먹는 최고의 기호식품이다. 하지만, 첫 만남이 너무 강렬해서였는지 나는 영 친해지지가 않는다. 

 

그동안 이런저런 모임에서 수십 차례 홍어를 먹을 기회가 있었지만, 아무리 맛난 집이라고 소문난 곳이거나 정통 원조라고 알려진 곳의 요리도 억지로 숨을 참으며 두어 점 먹어 볼 뿐 도대체 그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왜 이 고약한 음식을 그렇게들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는 나에겐 영원히 친숙불가(親熟不可)의 음식이다.

 

하지만 전라도 사람들에게 홍어는 단순히 고향 음식의 범주를 뛰어넘는 특별한 아우라를 가진 존재이고 그 자체로 지역 정체성(正體性)의 상징으로 승화된 음식이다. 부패 직전의 고약하고 강렬한 냄새를 맛나게 인식하는 미각 구조를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어릴 때부터 그 맛에 익숙한 이들에겐 오히려 그 고약함이 감칠맛인 모양이다.


전라도를 대표하는 이 홍어는 흑산도(黑山島)가 주 생산지이고 그 지역의 홍어를 최고로 친다. 하지만, 어족자원의 고갈로 어획량이 감소하고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지금은 칠레나 아르헨티나 등 남미 지방에서 수입한 홍어를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가격에서는 흑산産과 엄청난 차이가 있는 모양이지만, 유통되는 대부분의 홍어는 수입산이다.

 

홍어의 주생산지가 흑산이라면 유통지는 영산포(榮山浦)가 원조(元祖)이다. 시절이 변해 홍어의 산지가 흑산이 아니라 남미로 변했다고 하지만, 변함없이 홍어의 집결지로 유명한 곳은 나주(羅州)의 영산포 나룻가이다. 

 

영산포는 담양의 용소골에서 발원한 영산강(榮山江)이 담양, 광주를 거쳐 나주벌판을 적신 후 무안, 목포로 굽이쳐 달리며 그 몸피를 마음껏 불리는 나주시 영산동 일대에 위치해 있는 하항(河港)이다.

 

역사적으로는 조선 초 나주평야의 미곡(米穀)을 서울로 운송하기 위한 영산창(榮山倉)이 설치되면서 조운(漕運)의 중심으로 역할 하였다. 그러나 중종 조(中宗 朝)에 이르러 영광의 법성창으로 조운이 옮겨지면서 활력을 잃고 퇴락하게 되었다. 그 후 일제 시대에 목포가 개항되고 일본인 미곡상들이 전라도의 미곡을 일본으로 수탈하는 과정에서 다시 크게 번영하였다.

 

이후 1960년대까지 주변의 산물(産物)이 오고 가는 수운(水運)의 중심으로 역할을 수행하다 철도와 도로의 건설로 물류의 중심이 이동하게 되고, 토사의 퇴적으로 하상(河床)이 높아져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영산포는 항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대신 홍어의 집산지로서 그 역할을 변화시켰다. 그리하여 포구 거리마다 홍어집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은성(殷盛)했던 옛 영화를 추억하는 사람들과 알싸한 홍어 맛을 찾는 사람들로 다시 붐비는 관광지로 재탄생하였다.

 

영산포가 홍어로 유명하게 된 것은 흑산에서 잡혀 신안이나 목포에서 배에 실린 홍어들이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 영산포에 이를 때쯤 맛이 익어서 그렇게 되었다 전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이야기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재밌는 인과관계를 연결시킨 것이지 사실과는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아마도 포구가 번성할 당시 돈과 사람이 몰려드니 자연스럽게 각종 음식점이 들어서게 되고, 그중에서 전라도에서 가장 유명한 홍어집들도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닌가 짐작해 본다.

 

그 유래야 어떠하건 홍어 먹을 줄 모르는 강/사/랑이 국토 종주와 4대강 자전거길 종주의 마지막 걸음으로 영산강 종주를 하면서 들린 영산포구엔 4대강 사업으로 물길은 다시 깊어지고 배가 다닐 정도로 넓어졌지만, 물류 끊어져 포구는 한적하기만 한데 알싸한 홍어의 향기만 포구 가득 진동하고 있었다!


 

 

영산포 홍어!

 

구간 : 금강종주자전거길 (담양댐 ~ 영산강하구둑)
거리 : 구간거리(133km), 실거리(147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2년 9월 19일. 물의 날.
세부내용 :

담양읍(05:00) ~ 담양댐 인증센터(05:40) ~ 금월교 ~ 메타세쿼이어 인증센터(06:10) ~ 양각지구 ~ 대나무숲 인증센터 ~ 첨단지구 ~ 광주인포메이션센터 ~ 승촌보(10:57) ~ 영산포(12:30) ~ 죽산보(13:20) ~ 동강지구 ~ 느러지전망대인증센터(14:50) ~ 몽탄교 ~ 무영대교 ~ 남창대교 ~ 영산강하구둑(17:30).

 

 

내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선뜻 휴가를 떠날 수 없는 것은 작년이나 올해나 매한가지이다. 올해 역시 직원들 휴가 모두 끝날 때까지 휴가를 못 가고 미루다가 더이상 미루다가는 휴가를 못 가겠다 싶어 9월 셋째 주를 맞아 드디어 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휴가 시작되는 날에 벌초가 예정되어 있어 부득이 휴가를 벌초 일정과 맞춰야만 했다. 그래서 15일 토요일에 고향 진주에서 벌초를 하고 그 길로 담양으로 이동해서 영산강 종주를 가기로 한다. 마눌에게는 내가 영산강 종주를 하는 동안 강아지하고 인근 호남지방의 명승지를 구경하라고 하고 오후 늦게 목포에서 만날 약속도 하고...

 

14일, 금요일 저녁 퇴근해서 짐 꾸리고 자동차에는 자전거 캐리어도 매달아 만반의 준비를 마쳤는데, 방송 속보에서 대형 태풍 볼라벤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데?? 간만에 휴가 좀 떠나려고 했더니 하늘이 도와주질 않는구나!"

 

강력한 바람을 동반한 대형 태풍 올라온다는데 휴가가 웬 말이냐?  할 수 없이 자동차에 매단 자전거와 캐리어를 도로 분리해서 집에 원위치시켜 두고 그냥 벌초 준비만 해서 고향으로 내려갔다.

 

 

영산강/榮山江


영산강은 전라남도 담양군의 가마골 용소에서 발원하여 황해로 흘러가는 강이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의 젖줄로서 담양군을 지나 광주광역시, 나주시, 함평군, 영암군, 목포시를 지나 황해로 흐른다. 황룡강과 광주천이 광주광역시에서 합류하고 지석천이 나주에서 함평천, 고막원천등이 함평에서 합류한다. 길이는 115.5Km이며 유역면적은 3,371㎢이다. '영산'이라는 영산강 지명의 유래는 나주의 영산창(지금의 영산포)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영산창이 언급되고 고려 시대부터 이 곳에서 조창이 생겨 인근 전라도 등의 전세를 여기에 모았다가 해상으로 서울로 운반했다고 한다. 또한 흑산도 사람들이 육지로 나와서 영산포에 살아서 영산현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흑산면 영산도와 그 해역을 영산포라고 부른다. 이렇게 볼때 영산이라는 지명은 흑산도에서 옮겨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다른 설들로는 영산포 영산동에 효부였던 영산 신씨를 기리는 영산사때문에 바뀌었다는 설, 영산서원에 관련되어서 유래됐다는 것이 있다.

 

(이곳저곳)

(사진은 모두 스마트폰 버전임.)

 

 

 

# 국토종주 및 4대강 자전거길 완주.  

 

 

 

# 영산강 자전거길. 133km(담양댐~영산강하구둑), 실제 달린 거리 147km.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벌초 끝내고 진주에서 하룻밤 묵었는데 저녁부터 비가 내리고 바람이 일기 시작하길래 뒷날 오전 일찍 귀경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이틀 간은 온 나라가 강력한 바람과 비를 동반한 볼라벤의 영향권 아래 놓이고 집에서 하릴없이 창밖만 내다보고 말았다...

 

그러다 빠른 접근만큼 빠른 퇴각을 해 버린 성질 급한 태풍이 물러가고 날씨가 다시 쾌청해지길래 애초에 계획했던 영산강 종주를 마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태풍 와서 비가 많이 왔을 텐데 강물이 범람하면 어쩌냐고 걱정이 태산인 마눌을 잘 달래 두고 집을 나서 광주행 KTX에 잔차 싣고 밤 열차 여행을 떠난다. 음악 들으며 책 좀 읽다 보니 어느새 광주에 도착하게 되고 다시 담양으로 가야 하므로 잔차는 분해한 그대로 들고 플랫폼을 나섰다.

   

 

 

# 담양행 버스는 광주역 후문에서 탈 수 있기 때문에 광주역 위의 긴 회랑을 걸어 가야 한다.

 

 

 

광주역 후문으로 내려가자 버스정류소가 나오고 담양행 버스는 311번이 간다는 메모가 매직펜 글씨로 적혀 있다. 인적 뜸하고 차량 흐름도 뜸한 정류소에서 20여 분 기다리는데, 도저히 버스가 나타나질 않았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보니 아마 시각이 늦어 버스가 끊긴 듯하단다. "에공~~ 우짤꼬?"

 

마침 택시 하나가 접근하길래 손 들어 담양까지 요금을 물어본다. 4, 50대로 되어 보이는 기사는 몇 년 전에 2만 원에 갔으니 지금은 이만삼천 원은 받아야겠단다. 그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 오케이 하고 탑승하고 담양에 있는 찜질방을 부탁하니 담양 사람이 아니냐며 깜짝 놀란다. 그러더니 잔차 여행하는 나그네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요금을 올리려고 은근히 10년 전에 만팔천원이었다는 둥, 기름값이 비싸다는 둥 너스레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NO! 약속한 금액대로 갑시다!

 

고속도로 통해 한 이십여 분 만에 담양에 도착하게 되고 고속도로 나들목 바로 앞에 경찰서가 보이더니 그 바로 뒤에 큰 찜질방이 있다.

 

그런데 이 찜질방은 자전거를 보관해 줄 수 없고 바로 앞에 있는 경찰서에 가면 자전거를 맡아주니 그리로 가라고 한다. 오잉? 경찰서에 자전거를 맡긴다구?

 

반신반의하며 경찰서에 가보니 경찰서 정문은 닫혀 있는데, 과연 위병소에서 근무를 서던 의경이 호출받고 나와서는 자전거를 맡아 준다. 하지만 찜질방 주인에 대한 불만이 많아서 자기들이 보관하면 될 것을 경찰에게 떠넘긴다고 투덜거린다.

 

그동안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여러 도시를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경찰서에 자전거를 맡기게 하는 곳은 또 처음인데, 한편으론 가장 강력한 도난방지책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긴 한다. 경찰에겐 미안하지만...

 

다시 찜질방으로 돌아와 평일 날 텅 빈 찜질방에서 모처럼 코 고는 소리 들을 일 없이 편안한 숙면을 취한다. 두어 시간 짧지만 달콤한 숙면 이후 시원한 샤워로 몸을 씻고 찜질방을 나선다.

 

경찰서에 들러 자전거를 찾고 찜질방 근처 해장국집에서 아침 먹은 후, 편의점에서 간식도 준비해서는 담양댐을 향해 어두운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05:00

 

죽향대로를 따라 동북쪽으로 북상하는데 태풍이 쏟아내고 간 물 흔적이 길 이곳저곳에 남아 있고 물기 가득 머금은 짙은 안개가 가득해 금세 온 몸이 척척해져 버린다.

 

그러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시작되는 학동사거리가 나와 이곳에서 강을 건너는데, 강변 자전거 도로로 내려가는 길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었다. 결국 다리 우측 풀숲을 헤치고 아래로 내려가니 물기 가득한 자전거 도로가 나온다. 비로소 그곳에서 담양댐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곳의 자전거 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아 자전거가 달리기에 무척 난감하다. 

 

비포장도로가 끝나자 이번에는 우레탄으로 포장된 자전거도로가 나타난다. 이 우레탄 재질의 자전거도로는 잘못 시공될 경우 물기를 머금으면 부풀어 오르면서 들뜨게 되고 그곳에 자전거 바퀴가 휘감겨 속도를 떨어뜨리게 되는 수가 많다. 이곳의 우레탄 도로가 딱 그 모양이다.

 

저렇게 부풀어 오른 곳은 조그만 충격에도 박리가 되어 분리돼 떨어져 나가버리기 때문에 얼마 있지 않아 도로가 누더기처럼 변해버리게 될 것이다.

 

이곳 역시 제대로 공사 감리가 이뤄지지 않은 실패한 자전거도로의 한 예가 되겠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4대강 사업에 이런 부실공사가 곳곳에 나타나는데 여타 관심 없는 공사에는 오죽할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참 많이도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여건 나쁜 자전거 도로를 길게 달려 간다.

 

 

   

# 물기 머금은 우레탄 도로 때문에 예상시간보다 훨씬 늦게 담양댐 아래 대성교에 도착하였다.

 

 

 

# 영산강에는 보가 승촌보, 죽산보 두 개뿐이다.

 

 

   

영산강 자전거길은 이곳 대성교에서 출발하게 된다. 대성교 앞에 있는 인증센터에 들러 인증도장을 찍으려고 하는데 아뿔싸! 인증수첩을 집에 두고 와 버렸다. 결국 A4 용지에 각 인증센터를  기록하고 그곳에 임시로 인증도장을 찍기로 한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한 숨 돌린 후 5시 40분에 대성교를 출발한다.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담양으로 향하는데 이미 날은 희뿌옅게 밝아 오고 안개도 서서히 걷혀 가지만 아직 공기는 눅눅하고 차갑다. 역시나 불편한 자전거도로를 길게 달려 가면 좀전에 지나왔던 금월교가 나오고 그 다리를 건너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의 인증센터가 나온다.

   

 

 

# 이 인증센터는 자전거도로에서 벗어나 있어 잠시 찾아 헤매었다.

 

   

 

# 담양 메타세쿼이어길. 자전거는 통행금지이다.

 

 

 

# 담양의 명물이라 상징적으로 인증센터를 만든 듯 하다.

 

 

 

# 빛이 부족한 곳에서는 쥐약인 스마트폰 사진이라 화질이 영 구리게 나온다.

 

 

   

# 메타세쿼이아길을 벗어나 자전거 도로로 복귀하고 학동사거리를 다시 만나는데 이곳의 자전거도로는 다시 비포장으로 변한다. 아니, 도심지에 가까운 자전거도로를 포장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그래서 이곳부터  추성로를 따라 담양읍내로 그냥 들어 가고 읍내를 가로질러 영산강 가로 향하기로 한다. 추성로 역시 메타세쿼이어가 가로수이다.  

 

 

 

# 담양교에서 영산강 좌안으로 달려 가면 양각지구가 나온다.

 

 

 

# 담양의 영산강변을 달려 가는데 짙은 안개 너머로 아침해가 솟아 오르고 있다.  이곳도 메타세쿼이어가 배경이 되어 준다.

 

 

 

# 4대강 중에 영산강이 가장 오염도가 심한 편이어서 전남의 지자체 장들은 영산강의 4대강 사업을 반대하지 않았다는데 이번에 영산강을 직접 달려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담양에서 광주에 이르는 강변에는 축사들이 수십 곳 이어져 있고 가축 분뇨의 악취 때문에 버프로 얼굴을 감싸고 달려야 했다. 달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영산강 본류는 준설과 수량 증가로 인해 물이 많이 맑아지기는 했지만, 강변에 나래비 선 축사에서 충분히 정화되지 않은 가축분뇨들이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고 있고 그 배출구 주변은 다시 물빛이 검게 변해가고 있다. 이 상태라면 다시 얼마되지 않아 영산강은 옛날처럼 오염도가 올라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저 축사들의 분뇨 처리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

 

 

 

# 악취 때문에 얼굴을 파묻고 달리느라 전방 주시가 잠시 소홀했는데 갑자기 펑!  하더니 앞바퀴에서 바람이 쉬쉬쉭 새기 시작한다. 강둑에 공사하느라 땅을 파헤쳐 두었는데 그곳의 작은 돌무더기를 정확히 밟아버려 튜브가 찢어져 버렸다. 이런~ 오늘도 펑크를 피해 가지 못하는구나!

 

 

   

# 항상 준비해 다니는 펑크 패취로 수리를 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얼마를 달렸을까? 승차감이 이상해서 바퀴를 피니 이런~ 앞 바퀴가 다시 납작하게 주저 앉아 있다. 얼른 내려서 바퀴 분리한 후 살펴보니 좀전에 펑크가 날 때 튜브만 상한 것이 아니라 타이어까지 같이 찢어졌고 그 구멍으로 튜브가 밀려나와 다시 펑크가 나 버리고 말았나 보다. 튜브야 펑크 패취를 이용해 때우면 되지만 단단한 타이어는 때울 방법이 없는데 어떡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빗물 튀는 걸 막으려고 PVC 재질의 화일로 만든 빗물 커버를 작고 둥글게 잘라내어 타이어 안쪽에 덧대고 튜브를 장착하 급한대로 응급조처는 된 듯하다. 하지만 두 번의 펑크로 인하여 아까운 시간을 두 시간이나 소모하고 말았다.

 

   

 

# 봉산면의 강변을 달려 내려가는데, 담양의 또하나 상징이랄 수 있는 대나무가 식재되어 있다.

 

 

 

# 그 끝자락에 대나무숲 인증센터가 나온다. 대나무숲은 없다.

 

 

 

# 영산강 하구둑까지는 아직 103km를 더 가야 한다.

 

   

 

# 어느듯 담양을 벗어나 광주로 접어 들게 되고 저멀리 지산동 일대의 아파트단지와 지아대교의 특이한 모습이 나타난다.

 

 

   

# 광주 첨단지구와 첨단대교. 다리는 별로 첨단스럽지 않게 지어져 있다.

 

   

 

# 강은 어느곳이나 넓은 친수공간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평일인데도 축구시합에 열중인 사람들이 많다.

 

 

 

# 넓은 잔디밭이 싱그러운 어등대교 주변의 둔치.

 

   

 

# 광주시내를 가로지르는 영산강변을 따라 길게 내려가면 영산강 자전거길 안내센터가 나온다.

 

 

 

# 안내센터로 올라가 화장실도 이용하고 바람도 맞으며 휴식했다. 넓은 강변에 홀로 주차되어 있는 내 잔차.

 

 

 

# 영산강에 수량이 많아지면서 대도시에 인접한 곳도 강의 폭이 넉넉해 졌다. 광주천 합수부, 상무대교, 서창지구, 황룡강 합수부 등을 지나 길게 내려간다.

 

 

 

# 그러다 승촌보를 만나게 된다.

 

 

 

# 승촌보의 구조물은 백제의 금관을 형상화했나 싶었는데 기록을 읽어보니 나주지방의 특산인 쌀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 하류로 갈수록 점점 품이 넓어지는 영산강.

 

 

   

# 승촌보를 건너 승촌보 물문화관으로 올라 갔다. 3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시원한 바람 맞으며 오래 휴식했다. 건너편에 나주 금성산성이 건너다보인다.

 

 

 

# 승촌보 아래로는 나주가 이어진다. 그런데 이곳부터 강렬한 맞바람이 앞을 가로막아 도저히 속도가 나질 않는다. 처음 시작인 담양, 광주에서도 바람은 맞바람이었지만 나주에서부터는 아예 페달링을 멈추면 맞바람으로 자전거가 곧 멈춰 버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앞을 가로 막는다.

 

 

 

# 나주대교 앞에는 이런 작은 섬도 있다. 맞바람 때문에 이곳에 있는 정자에서 또 오래 휴식했다.

 

 

 

# 나주시내를 따라 내려가다가 영산대교에 이르게 된다.

 

 

 

# 이곳이 바로 이 강으로 하여금 영산강이란 이름을 얻게 만든 영산포이다. 영산포는 나주평야의 미곡을 한양으로 조운하던 조창으로 출발해서 일본놈들이 쌀을 수탈해 가던 미곡 반출항으로, 다시 호남지방의 주요 내륙항구로 역할하다가 세월 흐르고 대체교통의 발달과 하상 퇴적으로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제 4대강 사업을 통해 다시 물길이 깊고 넓어졌지만 물길 이용법을 잊어버린 세월 탓에 옛 영화를 다시 찾을 길이 요원해 보인다.

 

 

 

# 우리나라 유일의 내륙 등대가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건재하다.

 

 

 

# 포구를 드나들던 물류는 사라졌지만 영산포는 홍어라는 먹거리 특산품으로 다시 살아났다. 강둑에 서 있는데, 홍어를 삶는지 콤콤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난 홍어 못 먹어요~~~

 

   

 

# 영산포에서 오래 휴식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여전히 강력한 맞바람은 앞을 가로 막고, 그 바람에 맞서느라 종아리가 팍팍하게 땡긴다. 넓다란 나주평야.

 

 

   

# 나주 죽산보에 도착했다. 죽산보는 매점도 휴식터도 없다. 공사하는 이들의 막사에 가서 물을 얻었다.

 

 

   

# 죽산보에서 한참을 쉰 후 다시 맞바람을 뚫고 내려가면 영산강 황포돛배 나루터가 나온다. 옛날 1박 2일에서 강호동 멤버들이 돛배 타고 문제풀이 하던 곳이다.

 

 

 

# 좌측 산 언덕 위에는 나주 영상테마파크가 있는데 아마도 드라마 촬영지인가 보다.

 

   

 

# 길을 내기 힘든 곳은 나무데크로 자전거길을 만들어 두었다. 저런 정성이 있으면서 왜 군데군데 비포장길을 남겨 두었을까?

   

 

 

# 동강지구란 이름이 나와서 이곳도 영월 동강처럼 강 이름을 동강이라 부르는가? 생각했는데, 이 지역이 동강면이라 그렇다 한다. 동강교.

 

 

 

 

# 이제 자전거길은 양파의 고장 무안으로 접어든다.

 

 

 

#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 동강 곡천리에서 절벽으로 길이 막혀 좌측으로 우회하게 되어 있다.

 

 

 

# 마을 안으로 들어가 구불구불 돌다가 긴 고갯길을 올라 갔다.

 

 

 

# 한차례 쎄가 빠지게 밀어 올려 느러지쉼터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 언덕 위에 인공 전망대를 만들어 두었다.

 

 

 

# 느러지 전망대.

 

 

 

# 전망대에 올라가면 전방으로 멋진 물굽이가 눈에 들어온다.

   

 

 

# 영산강이 몽탄 이산리와 동강 곡천리에 이르러 크게 물굽이를 휘감아 도는 곳이다. 느러지란 이름도 강물이 이곳에 이르러 그 흐름이 느려져서 얻은 이름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느러지 전망대에서 한참을 조망 구경하다가 다시 길을 나서는데, 비포장 내리막이 길게 나타나 자전거를 끌고가야 한다. 그러다 옥정리 마을 안으로 급하게 떨어져 내리게 된다.

 

 

 

# 그 끝에 몽탄대교가 나온다. 몽탄은 고려 태조 왕건이 꿈속에서 계시를 받고 이 곳에서 견훤군을 맞아 대승을 거뒀다는 일화에서 꿈 夢, 여울 灘이란 멋진 이름을 얻었다.

 

 

 

# 몽탄대교 위에서 바라본 영산강 하류.

 

   

 

# 몽탄대교를 건너 영산강의 우안으로 내려가는데, 이 즈음에서 강은 상포강과 영암천을 합류시키면서 그 몸피를 더욱 불리게 된다. 저 멀리 영암 월출산이 건너다보인다.

 

 

 

# 일로읍의 복룡리 일대를 달려 가는데, 길은 곧고 좋지만 맞바람이 강해 도저히 속도가 나질 않는다.

 

 

 

# 나룻배 한 척 동그마니 떠 있다.

 

 

   

의산리 단봉 마을쯤에 이르러 지류와 합수부를 휘감아 도는데 갑자기 길이 다시 비포장으로 변해 버린다. MTB라면 아무 문제 없이 달려 나갈 테지만, 바퀴 얇은 로드바이크인 데다 앞 타이어에 균열이 있는 상태라 고압으로 공기압을 채우지 못해 펑크에 아주 취약한 상태라 매우 조심스러워진다.

 

비포장이 짧은 구간이면 그냥 끌고 가든지 메고 가든지 할 텐데 꽤 긴 오르막과 굽이가 이어지고 있어 최대한 조심하며 바닥의 돌을 피해 가며 진행한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아무래도 펑크가 걱정돼서 잔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앞쪽에서 쉭쉭 하더니 타이어가 주저앉아 버린다.

 

아이구야~ 또 펑크구나!

 

오늘 벌써 세 번째 펑크이다. 그동안 십몇 년 동안 잔차 타고 여행을 다녔지만 이렇게 하루에 세 번씩이나 펑크가 난 것은 또 처음이다. 게다가 조금만 더 가면 종착지인 영산강 하구둑에 도착할 수 있는데 다 와가지고 펑크라니...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복잡한 심정이 교차한다. 무엇보다 6시 30분에 예매해 둔 KTX 열차 시각이 걱정이다. 애초에 다섯 시쯤 도착해서 싸우나도 하고 뒤풀이로 맛난 것도 사 먹을 작정이었는데, 이제는 열차 시각을 걱정해야 한다.

 

얼른 잔차에서 바퀴 분리해서 튜브를 꺼낸 다음 펑크난 곳을 찾고 사포로 주변을 곱게 밀어준다. 다음으로 패취와 본드로 펑크를 때운다. 그리고 타이어 점검해서 바퀴에 박혀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튜브를 다시 밀어 넣는다. 마지막으로 바람 빵빵하게 채운 후 바퀴를 잔차에 결합하면 끝.

 

아무리 서두른다고 하지만 순식간에 3, 40분 또 허비하고 말았다.

 

 

 

# 저멀리 무안과 영암을 잇는 무영대교가 보인다.

 

 

 

# 강한 맞바람에 저항하며 달려 가면 드디어 영산강 하구둑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 그러다 남창천에 있는 남창대교를 건너 간다. 목포 남악신도시의 건설현장.

   

 

 

# 잠시 더 달려가면 드디어 목적지인 하당의 황포돛배 선착장에 도착하게 된다.

 

   

 

# 건너편에 하구둑과 삼호대교가 보인다.

 

 

   

하굿둑 인증센터에서 마지막 도장을 찍고 영산강 종주와 4대강 완주 인증확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곳의 황포돛배 인증센터는 이번 태풍의 영향으로 평일인데도 임시휴장상태이다. 그래서 부스 안에 있는 연락함에 메모와 함께 오늘 하루의 인증도장 흔적을 남겨 둔다.

 

영산강 종주는 다른 강에 비해 133km 정도의 비교적 짧은 코스이다. 따라서 새벽에 일찍 출발하여 오후 이른 시각에 종주를 끝내고, 목포항에 들러 세발낙지에 자축의 막걸리 한 잔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출발부터 비포장 및 우레탄 도로 때문에 지체가 있었고, 종일 강력하게 불어대는 맞바람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세 번의 펑크로 인하여 두 시간 반이나 까먹었더니 오히려 다른 강보다 그 마감이 늦다.

 

4대강 종주를 모두 마친 기념 세러머니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 KTX 타러 목포역으로 빨리 가는 일이 제일 급하다. 마지막으로 영산호 한번 돌아보고는 인증센터를 떠나 뒷길 도로로 나갔다. 그리곤 잔차 분해해서 양손에 나눠 들고 택시를 기다린다.

 

10여 분 발 동동 굴리며 뛰어다닌 끝에 겨우 합승으로 택시에 올라타고 목포 시내를 구불구불 돌아 유달산 근처에 있는 목포역에 도착했다. 다행히 택시가 난폭운전에 가깝게 속도를 내 줘서 30여 분 여유시간을 확보했다.

 

목포역은 평일인데도 사람들로 붐벼서 화장실에서 씻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한쪽에서 한숨 돌린 후 플랫폼으로 나가는데 잔차를 본 역무원이 제지한다. 그렇게 분해를 한다고 해도 잔차는 열차에 들고 타는 것이 안 된다면서...

 

"이렇게 분리를 하면 여행용 가방보다 공간을 덜 차지하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지 않으냐? 그동안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길래 문제없는 줄 알았다. 문제가 되는 줄은 처음 알았네요."라고 했더니, "누구나 몰랐다. 처음이라고 말하지요"라고 비아냥거린다.

 

젊은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처음 듣는 소리이고 몰랐으니 몰랐다고 하는 거지! 한마디 더 쏘아주고 싶지만 일단 귀경하는 일이 우선이고 규정을 알 수 없으니 좋은 소리 한 마디 해주고 플랫폼으로 오른다.

 

이후 철도법의 수하물 휴대규정을 보니,

"제18조[객차내 휴대물의 금지와 제한]화약류 기타 위험발생의 우려가 있거나 객석 또는 통로를 차지할 물건이나 불결하거나 나쁜 냄새 등으로 인하여 동승자에게 불쾌감을 줄 동물 기타의 물건은 차내에 휴대할 수 없다. 여객은 각 변 길이의 합이 150cm 이상 또는 중량 25kg 이상의 기준을 초과하는 물품은 이를 휴대하고 승차할 수 없다." 라고 되어 있다.

 

자전거를 분리하면 한 변의 길이가 150cm에는 미치지 못하고, 내 잔차의 중량은 8kg의 경량 로드바이크이니 어느 경우에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휴대하여 승차가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물론 다른 규정에 접이식 외의 자전거는 휴대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자전거를 분해하면 일반 수하물로 취급되니 위의 규정에 적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객에게 비아냥거리는 역무원의 그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동안 오십몇 년간 유리알같이 투명하게 납세의 의무를 다해 자기들의 봉급을 주어 왔고, 올해에만 100만 원이 넘는 KTX 열차요금을 지불한 우수고객인데 말이지!!!

 

우옜거나 화물적재함에 잔차 적재하고 화장실에서 땀 닦아낸 다음 새 옷으로 갈아입고 음악 듣고 책 좀 보다가 광명역에 도착하여 귀가했다.  

 

 

 

# 이렇게 분리 적재하면 큰 문제 없다.

 

 

   

우여곡절(迂餘曲折)이 있었지만, 이로써 국토 종주와 4대강 자전거길 종주를 모두 마쳤다. 재미있는 길이고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강(江)은 중력의 힘으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막힌 곳은 몸을 돌려 굽이굽이 흘러 내리고, 그 곁의 자전거 길을 따라 내 잔차의 두 바퀴는 내 다리의 근육과 호흡의 힘으로 구부구불 강을 따라 흘렀다. 아름다운 흐름이었다. 좋았다.



<뱀발>   

MB정권의 4대강 사업은 그 시작 단계부터 격렬한 찬반논쟁의 소용돌이 속에 이뤄졌고, 사업이 모두 끝난 지금까지 그 논란(論難)이 이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이념적 국책사업이다.

 

'이념적(理念的) 국책사업'이란 막대한 국가 예산이 들어가고 정권의 명운이 걸릴 만큼 영향력이 큰 국책사업 중에서 그 사업 자체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적 이익의 잣대에 의해 재단되고 그 사업목적이 왜곡되어지는 사업을 통칭한다. 이 경우 과학적, 정책적 판단은 뒤로 밀려나 버리고 오로지 정파의 이익과 상대방의 몰락을 전제로 모든 판단과 주장이 수렴되어 버리게 된다.

 

4대강사업 역시 이런 프레임을 그대로 답습한 사업으로 UN이 정한 물 부족 국가라는 현실, 기후변화로 인하여 일상화된 가뭄과 게릴라성 및 국지화된 집중호우로 인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홍수피해, 오랜 세월 퇴적이 누적되어 높아진 하상으로 인한 강의 기능 상실, 그로 인한 수질 악화 등 과학적이고 현실적으로 시급하며 미래지향적인 목표는 진작에 사라져 버렸다. 


대신 이념에 따라 당리당략에 따라 무조건적인 반대와 상대를 향한 끝없는 증오심 등 더러운 정치의 분칠이 덕지덕지 칠해진 대한민국 현실 정치의 갈등(葛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반대가 심하고 망하기만 바라는 세력이 많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철두철미한 준비와 공사 진행, 한 치의 비리도 침범할 수 없는 공사 감독 및 감리는 물론이고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비상사태에 대비한 철저한 모니터링 등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러하듯 무책임한 공사 감독, 나눠먹기식 공사 수주, 부실공사 시비, 역행침식의 우려 같은 기술적 문제 등 여러 후진적 문제점들이 어김없이 불거지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관리해 왔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이제라도 4대강 사업 전반을 철저히 모니터링해서 부실공사의 흔적을 찾아내어 보강하고, 지류의 오염으로 인한 본류 재오염의 방지책을 마련하며 역행침식 등 사업으로 인한 부작용 등을 최소화하는 길을 찾아야 할 일이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정권은 유한하나, 저 푸른 강물은 영원히 이 땅을 적시며 면면히 흘러 우리 민족과 공존공영해야 할 무한한 우리의 자원이니까. 

 

서해 아라뱃길에서 출발해서 한강, 남한강, 새재, 낙동강을 이어 부산 을숙도에서 국토종주를 완성하고, 대청댐에서 신탄진, 세종시, 공주, 부여, 강경을 거쳐 군산하굿둑까지 금강을 이었으며, 담양댐을 출발하여 담양, 광주, 나주, 무안을 거쳐 목포의 영산강하굿둑까지 영산강을 종주함으로써 국토종주와 4대강 종주를 완성하면서 강/사/랑의 머리를 내내 떠나지 않았던 우리 강들에 대한 단상(斷想)이었다.

 

"그나저나 우리의 강들이 참으로 아름답습디다!"

"한 번쯤 가 보셔요들!"

"자동차로 가셔도 좋고, 자전거로 가시면 더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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