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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산행]통방산/通方山-疎通의 山! 본문

산이야기/일반 산행

[야영산행]통방산/通方山-疎通의 山!

강/사/랑 2013. 6. 3. 17:41
 [야영산행]통방산/通方山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를 대변하는 대표적 명제(命題)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명제는 시대상(時代相)을 반영하고 집권세력의 정치철학이 되며 시대정신으로 역사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그래서 과거 이 땅의 모든 정권 담당자들은 자신들의 집권 철학이 응축된 명제를 정국 운영의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로 내세우자 하였다. 그것은 문민(文民), 국민(國民), 참여(參與), 실용(實用), 창조(創造) 등의 이름으로 세상에 발표되었다. 그들은 이들 명제를 기치(旗幟)로 내걸고 5년간의 나라 정책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들 명제는 어디까지나 집권세력의 정치적 의지이지 전체 국민의 집단적이고 자발적인 의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리하여 시간 흐른 후 돌아보면 그 명제들은 늘 그들만의 용어이자 그들 잔칫상의 고명이 되기 십상이었다.


시대정신이란 소수의 선동이나 조종으로 모이기 보다는 시장 가격을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손처럼 자연스럽게 집결되는 집단지성같은 개념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늘 정권 담당자들의 집권 명제와는 다른 시대의 명제들이 그 시대를 규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시대정신이라 불리는 그 명제는 정말로 그 시대가 요구하는 현실의 명제이고 보이지 않게 집결된 민의의 총합으로 나타나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 명제에 의해 해당 시대 집권세력의 평가는 역사적 가치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1948년 근대적 민주 공화정을 확립한 이후 우리는 '건국(建國)', '근대화(近代化)', '민주화(民主化)', '문민확립(文民確立)', '분권화(分權化)', '실사구시(實事求是)' 등의 시대의 명제를 역사에 기록하였다. 이 명제는 소수의 지도자에 의해 인도되어진 경우도 있고 전체 국민의 총화(總和)가 집결된 경우도 있다.


어쨌건 우리는 이들 단어만 들어도 어느 시대의 대표 명제인지 금방 알 수 있고 그 시절 우리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이들 명제 속에 그 시대의 정신이 온전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들 예처럼 이 시대에도 현재를 대변하는 명제는 존재한다. 그것은 직전 몇 개의 정권을 거치면서 가장 중요한 화두로 대두되었던 개념이며 지금도 가장 유효한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명제이다. 그것은 바로 '소통(疏通)'이다.

 

건국, 근대화, 민주화 등이 거시적 개념의 명제라면 소통은 지극히 미시적이고 관계적인 개념이다. 이런 소소한 명제가 한 시대가 아닌 여러 시대의 명제로 대두되고 있음은 이 소프트한 명제가 의외로 달성하기 어려운 난제(難題)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직전의 우리나라 두 정권은 마이너에서 기반한 세력이었다. 그들은 주류(主流)가 되자마자 이 세상의 중심을 자신들의 이념과 세력으로 채우고자 하였다. 통합, 미래, 발전 등은 그들의 단어가 아니었다. 일단 오래 그들을 지지했던 패거리들에게 이익을 줄 필요가 있었다.


그들에겐 국민의 이익보다는 자신들 정파(政派)의 이익이 우선이었다. 이른바 패거리 정치였다. 그렇게 끼리끼리 패거리를 작당한 채 보은(報恩)이니 지역(地域)이니 코드(code)니 하는 꽉 막힌 짓거리가 10년을 계속되었다. 기본적으로 패거리는 내부 결속에 집중하고 전체를 배격하게 된다. 자연히 그들 패거리의 집중과 불통은 지역, 세대, 계층을 넘어 사회 전반에 걸쳐 소통의 부재(不在)를 가져 오고 말았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하고 왜 소통이 개인 간은 물론이요, 조직이나 사회, 국가 전반에 꼭 필요한가를 알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통의 역설이다. 따라서 소통의 부재가 깊어질수록 소통이란 말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膾炙) 되는 것이다.

 

소통이란 사전적 의미로 "막히지 않고 잘 통하는 상태를 의미하거나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말한다. 결국 '잘 통(通)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인데, 잘 통한다는 말은 우선 상대에 대한 인정(認定)을 바탕으로 출발하여 서로의 공감대를 점점 더 넓혀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란 태생적으로 개별적인 존재이고, 자기중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이익(利益)을 언제나 앞세우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소통이 시대정신이요, 그 중요성이 얼마나 높은 지를 알면서도 실천은 언제나 난망(難望)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서로에게 소통을 요구만 하지 자신은 소통하고자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월 흐르고 정권 바뀌어도 사회 모든 분야에서 소통의 부재는 늘 한탄만 하는 대상이다.

 

소통이란 기본적으로 나를 버리고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를 인정하는 바탕을 갖추어야 하며, 물결이 동심원(同心圓)을 그리며 퍼져 나가듯 공감대(共感帶)를 넓혀 나갈 때 비로소 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를 버린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답답한 먹통 같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그 답답한 눈높이에서 바라본다는 것이 어찌 마음먹은 듯 수월할 것인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소통은 우리가 이 사회를 유지해 나가는 한 오래오래 가장 중요한 시대 정신(時代 精神)이 될 수밖에 없는 명제일 것이다.

 

경기 양평군 서종면에 '명달리(明達里)'란 동네가 있이다. '밝을 明', '통할 達' 자를 쓰고 있는데, 마을이 높은 산간지역에 있어 햇빛이 가장 먼저 도달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통할 達' 자를 쓰고 있는 명달리는 유명산에서 흘러내려 중미산을 거쳐 벽계천으로 잠기는 높다란 산줄기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간 동네이다.

 

그 산줄기 중 벽계천(碧溪川)에 잠기기 전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 바로 '통방산'이다. 통방산은 '통할 通, 모 方' 자를 써서 사방으로 잘 통하는 산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시나 명달리처럼 '通함'을 의미하는 소통의 이름을 가진 산이다.

 

2013년 6월 첫 주말. 근래 들어 멋진 야영지를 찾아 이곳저곳 잣나무숲을 찾아다니는 강/사/랑이 명달리를 출발하여 통방산, 삼태봉을 이어 가며 통방산정에 올라서게 되었다. 이름 그대로 사방통달하여 북으로는 벽계천 너머 고동산, 화야산, 곡달산으로, 동으로는 지난주에 다녀온 봉미산, 남으로는 중미산과 그 너머 유명산, 서로는 서종면 너머 북한강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통방(通方)의 산이었다.

 

하지만 산정의 통함과는 달리 통방산의 오름은 결코 쉬 통할 수 있는 산이 아니었다. 우선 우리는 출발부터 들머리를 찾지 못해 한 시간여 동네 주변에서 헤매어야 했다. 그 와중에 들머리를 발견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길은 근래 다닌 사람 전혀 없었던 길이었다. 따라서 중간중간 길이 끊어지고 수풀 우거져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가파르기가 코가 땅에 닿을 듯 아찔하여 어렵게어렵게 올라야 했다.

 

역시나 통(通)한다는 사실은 결코 쉽게 손에 쥘 수 없는 일이고, 그 출발점을 찾기 어려운 일이며, 그 과정이 험난할 수밖에 없는 지난(至難)한 일이었다. 그 단순명료하면서도 실천 어려운 소통의 개념을 통방산은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소통(疎通)의 山!

 

일시 : 2013년 6월 1, 2일. 흙과 해의 날.
산행코스 :

상산재 ~ 계곡길 ~ 능선마루금 ~ 송전철탑 ~ 이정목 ~ 통방산 ~ 이정목 ~ 암릉 ~ 680봉 ~ 갈림봉 ~ 삼태봉 ~ 명달숲속학교 ~ 명달리 ~ 묘각사 ~ 야영지/야영 ~ 임도 탐방 ~ 묘각사

 

이번 주 야영산행은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통방산이 목적지이다. 그동안 내도록 마눌과 둘이서만 산행을 다녔는데, 오랜 산동무인 해리님 내외가 이번 주는 함께 야영을 들어가자고 하신다.

 

금요일 늦게 퇴근하여 짐 꾸리고 나서 전화를 드리니 업무상 접대가 있어 새벽까지 술자리를 가져야 한단다. "그럼 내일 우리가 먼저 가서 통방산 산행을 하고 내려올 테니 그때 만나 함께 야영지로 들어갑시다! 어차피 이번 야영지는 통방산 자락이기는 하나 통방산을 완전히 내려와서 다시 임도 따라 들어가야 하니 그렇게 하는 것이 낫겠소이다!"

 

유월 첫날, 아침 먹고 짐 꾸려 집을 나선다. 평일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므로 내 자동차는 그야말로 주말용이다. 외곽순환도로 타고 가다가 중부로 갈아탄 후, 하남으로 빠져나간다. 하남 시내를 통과해서 팔당대교를 건너고, 북한강길 따라 동진해서 양수리 거쳐 서종면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구불구불 구절양장의 높다란 고개를 넘어가자 명달리가 나온다. 원래 계획은 통방산 좌측 끝인 상산재마을에서 아예 박배낭을 메고 통방산을 올랐다가 삼태봉 거쳐 명달리 소유골로 내려와서 야영지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통방산 오름과 삼태봉 내리막이 엄청나게 가파르다는 얘기를 해서 일단 산행은 간단한 당일 배낭으로 마치기로 했다.

 

지난주 봉미산 하산길에 엄청난 고생을 한지라 박배낭 메고 깎아지른 경사길 걸어갈 엄두가 나질 않은 탓이다. 또 이번 주는 이것저것 먹을 것과 야영 장비를 더 챙겨오는 바람에 아침에 집에서 무게를 재니 무려 삼십 킬로가 넘더라.

 

그런데 문제는 상산재 마을에 도착은 했는데 도저히 들머리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통방산/通方山

 

경기도 양평군의 서북부 서종면 명달리과 가평군 설악면 천안리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 높이는 650m이다. 광주산맥의 지맥에 솟은 산으로 좌우에 중미산, 화야산, 용문산이 있다. 통방산에 올라서면 "사면팔방 시야가 훤히 트여 잘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조선지지자료』 서중면 산명에 통방산이 명달리에 소재한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서쪽으로 벽계구곡이라 불리는 벽계천이 흐르고 북동쪽에는 청다락골, 서남쪽에는 삼각골이 있다. 화서 이항로 생가가 벽계구곡을 굽어보는 남향에 자리 잡고 있다. 벽계천은 일제강점기때 사기막천(沙器幕川)으로 불렸으나 1995년 벽계천으로 변경되었다.산행을 하려면 방일리에서 시작해 삼태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한우재로 내려가는 코스와, 서종초등학교 명달분교에서 시작해 계곡을 지나 삼태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567m봉과 일주암을 지나 노문리로 내려가는 코스가 있다. 정상에 서면 남쪽으로는 남한강, 남동쪽으로는 용문산, 서쪽으로는 운길산이 바라보인다. 찾아가려면 문호리에서 버스를 타고 명달리에서 내린다. 승용차로 가려면 구리시 교문 사거리에서 6번 국도를 타고 덕소, 팔당댐을 지나 양수교를 건넌 뒤 서종면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서종초등학교 명달분교까지 간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함.)



 

# 통방산 개념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상산재 마을은 높다란 통방산 아래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예전에야 화전민들이 모여 살았겠지만, 지금은 도회지 사는 여유 있는 이들의 주말주택들이 무리 지어 있다.

 

이곳저곳 들머리를 찾아 헤매다가 보니 상산재마을 아래 백운정사란 절 우측에 산 위로 올라가는 임도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옳다구나! 저곳인가 보다!

 

그 임도 따라 잠깐 올라가는데 갑자기 차 바닥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나며 차가 기우뚱한다. 얼른 차 세우고 내려보니 임도를 가로지르는 도수로가 있고 철망 뚜껑으로 덮어 두었는데, 누군가 그 철망을 훔쳐 가버려서 커다란 함정이 입을 벌리고 있다.

 

구멍이 오르막 경사가 끝나는 부분에 있어 차 안에서는 보이질 않는다. 다행히 차 바닥에 스크레치만 나고 큰 이상은 없어 다시 위로 올라간다. 그런데 오르막이 끝나는 부분을 통과하는 순간, 다시 차 바닥이 쿵~하며 차가 크게 흔들린다. 또한번  놀래서 내려보니 이번에는 구멍 정도가 아니라 아예 커다란 맨홀 뚜껑 두어 개의 넓이가 되는 구멍이 뚜껑도 없이 방치되어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구멍의 넓이가 바퀴 크기보다 훨씬 넓은데, 일단 좌측 바퀴가 그 구멍을 통과했다는 점이다. 놀래는 것은 나중이고 일단은 이 구멍에서 탈출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우선 안전을 위해 마눌은 차에서 내리게 하고 앞뒤로 조금씩 움직여 가며 겨우 구멍을 빠져나오기는 했다.

 

그리고는 차 바닥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좌측 아래 엔진오일 빠지는 곳 주변에 찌그러진 흔적이 보이기는 하는데, 일단 시동도 잘 걸리고 움직이는 데는 이상이 없어 보인다. 주변을 돌아보니 임도는 그곳에서 끝나버리고 더 갈 곳도 없다. 차 돌려서 조심조심 구멍을 피해 임도를 빠져나온다.

 

휴~ 시작부터 이게 웬 난리람??

 

 

# 마을 입구 버스정류소 부근에 차를 주차하고 짐 꾸려 일단 출발을 한다. 우측 산능선으로 올라야 하는데 들머리를 찾을 수가 없다. 

 

 

 

# 팬션과 주말주택이 있는 상산재마을길을 따라 길게 올라 간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고기 구워 먹고 있는 이들이 있어 물어보지만 등산로는 모르겠단다.

 

 

 

# 마을길이 끝나고 숲이 시작되는 곳까지 가보지만 길은 없다.

 

 

 

# 그곳에 있는 주말주택에 들러 등산로를 물으니 우측으로 가라고 한다. 그런데 그곳엔 벌목을 하고 그 잔해물을 방치해 두어 위로 올라 갈 수가 없다. 억지로 치고 올라 가려고 하다가 뻘에 발이 빠져 등산화가 흙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 우측으로 한참을 더 진행하여 넓은 공터를 지나자 산에서 내려오는 도랑 건너 숲속에 작은 등로가 보인다.

 

 

 

# 등산로 들머리 찾는데 무려 한시간 가까이 소모해 버렸다. 결국 이 동네를 통해서 통방산을 오르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얘기이다. 그 이유는 이내 알게 된다.

 

 

 

# 돼지 목욕탕이 군데군데 보인다. 요새 진드기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으니 얼른 자리를 피하자! 

 

 

 

# 아직은 등로가 뚜렷하지만,

 

 

 

# 곧 잡목들이 무성하게 자라 앞을 가로 막는다.

 

 

 

# 등로는 계곡을 따라 꾸준히 이어진다.

 

 

 

# 그러다 계곡이 끝나는 부분에서,

 

 

 

# 경사가 급속하게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 그래도 아직까지는 등로가 뚜렸하다.

 

 

 

# 그러다 길이 잘 안보인다 한다!

 

 

# 일단, 그 각도대로 꾸준히 올라 보세!

 

 

 

# 곧 엄청난 경사의 돌길이 눈앞에 나타난다.

 

 

 

# 경사는 급하고 돌은 흔들려 매우 미끄럽고 위험하다.

 

 

 

# 이 길을 박배낭을 메고 오르려고 했다고? 배낭 바꿔 메고 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가파른 경사에 길은 없고 선답자의 발자국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한다. 올라온 코스의 연장선을 염두에 두고 마루금을 목표로 꾸준히 올라 간다.

 

 

# 그러다 드디어 능선마루금에 올라 서게 된다. 마루금엔 바람이 시원하다. 마루금 좌우로 모두 산이 하나씩 우뚝하다. 어느 방향이 통방산 정상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스마트폰 꺼내 위치 확인하니 정상은 우측이다.

 

 

 

# 잠시 진행하자 송전철탑이 나타난다. 그래, 저 아래 상산재마을에서 올려다 보이던 철탑이 바로 이것이었어!

 

 

 

# 잠시 더 가자 갈림길이 나오고 이정목이 서 있다. 통방산 넘어 천안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 아마도 우리가 자동차 빠져 난리피우던 백운정사에서 좀 더 가면 있는 정곡사쪽에 정확한 들머리가 있는 모양이다. 정상까지 700미터가 남았단다. 하지만 이 거리는 엉터리다. 정상은 바로 곁이다.

 

 

 

# 한차례 살짝 꺾어 오르기만 하면 정상이다.

 

 

 

# 아휴~ 통방산 오르기 정말 힘들다!

 

 

 

# 소통의 출발이 그렇게 힘든 법이다.

 

 

 

# 남은 거리가 제각각이다.

 

 

 

# 명달리, 노문리 넘어 벽계구곡으로 이어지는 산첩첩이 눈에 들어 온다. 사방으로 통하는 통방이라고하나 정상은 수풀이 우거져 서쪽으로만 열려 있다. 정작 사방으로 통하는 봉우리는 다음 봉우리인 삼태봉 정상이다.

 

 

 

# 참, 깊은 산골이다.

 

 

 

# 그 곁의 산줄기를 따라 고압선이 이어지고 있다.

 

 

 

# 사방으로 通하는 산에 올랐으니 사방으로 잘 통하게 해 주십사고 천지신명께 빌어 본다. 이 불통의 시대에 또 하나의 불통으로 남지 말고 소통의 길을 열어 가기를!

 

 

 

# 정상 한 켠 그늘에 자리 깔고 막걸리 한 잔 나눈다. 등산객 있을 리 없는 산이니 마음껏 홀랑 벗고 거풍도 즐겨본다.

 

 

 

# 오래 휴식한 후 짐 챙겨 길을 나선다. 동쪽 멀리 산 7부 능선쯤에 궁궐같은 하얀 건물이 보인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통일교에서 운영하는 자신들의 박물관인 모양이다.

 

 

 

# 이정목을 다시 만난다. 역시나 천안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 바람 시원한 마루금을 길게 이어 간다.

 

 

 

# 그러다 위로 밀어 올리기 시작한다.

 

 

            

# 이내 경사가 급하게 바뀐다.

 

 

# 통방산은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닌데, 상당히 까다로운 산이다.

 

 

 

# 한차례 올리면 암봉 전망대가 나온다. 조망 좋은 곳만 만나면 천기기운을 받곤 한다.

 

 

 

# 전망대에 서면 지나온 산줄기가 눈에 들어 온다. 통방산과 뒷쪽에 송전탑, 그리고 595봉이 보인다.

 

 

 

# 우측 한 켠에 곡달산이 우뚝하다.

 

 

 

# 가평 천안리 일대의 인간세이다.

 

 

 

# 통일교 건물이 더 뚜렸하게 보인다. 통일교는 참 대단한 종교임에 틀림없다.

 

 

 

# 밧줄 타고 한차례 더 올리면,

 

 

 

# 다시 전망대이다. 북쪽의 산하가 정말로 장쾌하다. 그 모습을 파노라마로 담아 본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통하였느냐?

 

 

 

# 삼태봉 전위봉인 680봉은 정상석 대신 이정목이 서 있다. 처음엔 이 산이 삼태봉인 줄 알았다.

 

 

 

# 중미산까지 4.79km 거리이다. 보통 선어치고개에서 중미산을 오른 다음, 능선따라 북상하여 삼태봉과 통방산을 이어가는 마루금 종주를 한다.

 

 

 

# 아래로 내려 잠시 더 가자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 진짜 삼태봉이 여기 있단다.

 

 

# 우측길로 잠시 오르면 조망 훌륭한 삼태봉에 이르게 된다. 10여명 단체로 올라온 이들이 있다.

 

 

 

 

# 지나온 산줄기가 다른 각도로 보인다.

 

 

 

# 지나온 680봉이 쐐기처럼 뾰족하다.

 

 

 

# 삼태봉 정상엔 생을 다한 소나무 고목 한 그루가 아직도 위용을 간직한 채 주변을 지키고 있다.

 

 

 

 

 

# 전위봉, 통방산, 곡달산과 뒷쪽의 화야산 줄기까지 한 눈에 들어 온다.

 

 

 

# 통방산과는 달리 사방이 통하는 정상에서 오래 조망 구경하다가 명달리 방향으로 하산을 한다.

 

 

 

# 시작부터 경사가 엄청 가파르다.

 

 

 

# 계속 밧줄구간이 길게 이어진다.

 

 

 

# 박배낭 메고 오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 시작부터 끝까지 한치의 여유도 없이 계속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통방산 오름보다 나은 점은 가파르긴해도 등로가 뚜렸하다는 점이다. 통방산 오름에서는 길이 희미하고 자주 끊어져서 애를 먹었었다.

 

 

 

# 똑같은 각도로 가파르게 내리더니 쭉쭉 뻗은 잣숲에 이르러 그 각도가 조금 줄어 든다.

 

 

 

# 잣숲이 끝나자 숲을 벗어나게 된다. 이 산은 오르막도 내리막도 참으로 대단하다.

 

 

 

# 찔레꽃 향기 강렬하다.

 

 

 

# 통방산 오름과 달리 이곳에는 이런 안내판도 매달려 있다.

 

 

 

# 마을 안을 통과하여 내려간다

 

 

 

# 명달삼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해리님 내외와 조우하여 상산재에 세워 둔 우리차를 회수한다.

 

 

 

# 기다리는 동안 이런 장난도 해 보고...

 

 

 

# 묘각사.

 

 

 

# 비로소 박배낭으로 갈아 메고 야영지로 들어 간다.

 

 

 

# 편안한 임도이다.

 

 

 

# 처음 찾은 통방산 자락의 잣나무숲. 선객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차에 걸쳐 열댓 명이 무리 지어 온 팀이다.

 

 

 

# 이곳 역시 칠성급의 야영지이다.

 

 

 

# 넓은 공간과 풍부한 수량의 계곡을 갖추고 있고 가까운 접근로까지, 최고의 야영지이다.

 

 

 

# 얼른 각자의 집을 지어올린다.

 

 

 

# 이번에는 새로운 아이템을 하나 구비했다. 지난주 봉미산에서 모기와 벌레들 때문에 마눌이 기겁을 해서 옥사장네에서 모기장을 하나 내린 것이다. 백패킹용 모기장의 경우 보통 10만원이 훌쩍 넘어 가는데, 이 넘은 옛날 시골 대청마루에 설치하던 모기장, 즉 방장이다. 택배비 포함해서 2만원 주었다. 가격 착하고 성능 빵빵하고 전문 매쉬 스크린이 부럽지 않다.

 

 

# 네 명이 둘러 앉으니 딱 알맞다.

 

 

 

# 두 분이 쉬시는 동안,

 

 

 

# 우리는 곁의 계곡으로 내려가 시원하게 알탕하여 산행으로 흘린 땀을 씻어냈다. 그리고 새옷으로 갈아 입으니 기분이 날아 갈 듯 하다.

 

 

 

# 해리님,

 

 

 

# 세리님!

 

 

 

# 지난 겨울 마장터 야영 이후 오랫만에 같이 노숙을 한다.

 

 

 

# 잣숲의 향기가 싱그럽다.

 

 

 

# 잣숲은 원래 벌레가 잘 없는데, 모기장까지 둘렀으니 쾌적하게 쉴 수 있다.

 

 

 

# 

 

 

 

# 오늘은 마눌이 레시피에 신경을 좀 썼다. 두툼한 스테이크가 먹음직 하여 고기 안 먹는 나도 막걸리 안주로 몇 점 맛있게 먹었다. 다음엔 와인도 고민해 봐야겠다.

 

 

 

# 고기가 너무 많아 남겨야 했다. 코스트코의 위엄이다.

 

 

 

# 옆집도 우리처럼 모기장을 준비했다. 저쪽은 대형모기장이라 열댓 명이 모두 들어 가더라. 생일이라고 밤 새도록 시끄럽게 떠들고 놀더라.

 

 

 

# 반면 우리는 저녁 먹고 잠시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가 각자의 집으로 들어 갔다. 해리님은 어제의 숙취가 문제였고,우리는 오늘 다녀온 통방산의 경사가 부담이었다.

 

 

# 새벽 두세 시까지 오랫동안 시끄럽게 했다는데, 나는 눕자마자 잠이 들어서 전혀 방해되는 줄 몰랐다. 다만, 오랜만에 산동무하고 같이 술잔 나누느라 막걸리를 정량 이상으로 마셨더니 새벽에 속이 쓰리고 숙취가 좀 있었다. 그래봐야 막걸리 두어 병 먹은 건데... 숙취라니...

 

 

 

#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니 새벽의 속쓰림은 다 사라지고 멀쩡해 지더라. 그것이 잣숲의 위력이다.

 

 

 

# 밤새 놀았으니 아직 일어날 일 없을 것이다.

 

 

 

# 오늘 이 잣숲에 설치된 텐트만 열너댓 동은 된다.

 

 

 

# 잣숲의 아침은 언제나 상쾌하고 쾌적하다. 누가 깨우지 않아도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된다. 

 

 

 

# 우리도 간밤에 술 마셨으니 속풀이를 해야 한다.

 

 

 

 

# 아침 먹고 느긋하게 잣숲의 정취를 즐겨 본다.

 

 

 

# 이번에 새롭게 장만한 또 하나의 아이템. 씨투써밋의 IPOOD란 넘이다. 애플의 아이패드 이름을 차용한 이 넘은 그냥 우리말로 미니 부삽이다. 가벼운 강화알미늄으로 만든 건데 야영지 바닥을 고르거나 배수로 만들 때, 무엇보다 응가하고 땅에 파묻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접으면 휴대폰보다 작아진다. 무게도 가볍고.

 

 

 

# 두 사람은 평상시에도 언니 동생으로 잘 지낸다.

 

 

 

# 언 놈들이 나무 몸통에 쇠고리를 박아 두었다. 텐트 지지용이나 등 걸이용으로 박아 둔 모양인데 어찌나 깊게 박았는지 뺄 수가 없다. 나아쁜 넘들~

 

 

 

# 잣숲에 짐을 그대로 두고 임도 탐방에 나선다.

 

 

 

# 족도리꽃.

 

 

# 오늘의 대세는 이 국수나무이다. 꽃향기 강렬하더라.

 

 

 

# 천남성.

 

 

 

# 이 임도는 구불구불 중미산 언저리까지 이어진다.

 

 

 

# 이 임도 주변에 산나물이 많다고 해서 한 바퀴 길게 돌았는데, 두릅은 나무가 간간이 보이는데, 취나물이나 참나물은 전혀 뵈질 않는다. 대신 향이 강한 쑥이 지천이라 모두들 쑥 따기에 열중이다.쑥떡도 해 먹고 쑥 효소도 담궈 볼 참이다.

 

 

 

# 임도 탐방 후 야영지로 돌아와 짐 챙겨 숲을 떠난다. 옆집은 아직 꿈나라인 사람이 많다.

 

 

 

# 이 잣숲은 여러 면에서 장점이 많은 곳이다. 넓고 쾌적하며 계곡까지 좋으니... 다만 너무 속세와 가깝다는 점이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고, 때문에 산행과 바로 연결이 되지 않는 점 역시 단점이다. 우리 같은 종주산꾼 말고 야영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장점일 것이지만...

 

 

 

# 계곡이 참 좋은 곳이다. 여러 번 다시 찾을 것 같은 곳이다.

 

 

 

#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되어 있다.

 

 

 

# 다음을 기약하며 잣숲을 떠난다.

 

 

 

# 다른 때와는 달리 사진속에 인물들이 많다.

 

 

 

# 통방산 묘각사.

 

 

 

# 반야문. 저 문을 통과하면 반야의 세계인가 했더니, 고시공부하는 이들에게 분양된 고시촌이더라.

 

 

 

# 돌아오는 길에 양수리에 들러 매운탕집을 찾았다. 이 집은 전날 산행 들어가면서 발견한 집인데, 매운탕이 얼큰하고 칼칼한 것이 아주 맛나더라. 다만 청평검문소 미도횟집보다는 가격이 좀 쎄다.

 

 

 

# 아침에 임도 탐방할때 채취한 두릅을 잣숲에서 데쳤다가 매운탕집에서 막걸리 안주로 먹었다. 쌉싸름한 두릅향이 입안에 가득하다.

 

 

 

이번 통방산 잣나무숲 야영은 새로운 칠성급 야영지의 발견이라는 소득과 오랫만에 산동무 내외와 함께 한 야영이라 오고가는 술잔이 매우 흥겨웠었다. 

 

또, 이 척박한 불통의 시대에 햇볕 제일 먼저 통하는 명달리와 사방으로 통하는 소통의 산인 통방산정에서 '通함'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도 의미가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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