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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산행]계관산(鷄冠山) 언저리-잣숲에 휘날린 연분홍 치마!! 본문

산이야기/일반 산행

[야영산행]계관산(鷄冠山) 언저리-잣숲에 휘날린 연분홍 치마!!

강/사/랑 2014. 2. 17. 17:28

[야영산행]계관산(鷄冠山) 언저리


  
제각기 저 혼자서 이 땅의 산줄기를 누비고 다니던 홀로 산꾼들이 산악회 모임까지는 아니고, 느슨한 형태의 모임을 만들어 산행정보도 주고받으며 가끔 만나 술 한 잔 나누기도 한 것이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처음 보았을 때 꼬맹이였던 아이들이 다 큰 처자가 되어 대학생이 되었다고도 하고,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있다고도 한다. 또 사십 대가 주축이던 모임이 이제는 사십 대는 찾아보기도 어렵거니와 어쩌다 있더라도 막내로 귀여움받는 실정이니 세월이 흐르기는 흐른 모양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무음곡(歌舞音曲)을 참으로 좋아한다. 어느 모임이든지 술 한 잔 거나하게 들어가면 꼭 노래 한 소절이 뒤를 따르기 마련이고 마이크 한 번 잡으면 쉬 놓기 싫어함은 물론이요, 안 나오면 처들어간다고 남들에게 노래를 강요하기도 한다.

 

우리 홀로 산꾼들도 그러하여 어쩌다 모임이 생겨 밤을 같이 보내거나 야영산행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술 한잔 뒤에는 노래 한 소절이 등장하게 된다. 그 자리에 반드시 불려지는 노래가 있으니 바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되는 '봄날은 간다'란 노래이다.

 

일명 '홀산의 교가(校歌)'라 칭송되는 이 노래는 작고한 가수 '백설희(白雪姬)'가 부른 노래로 1953년에 전시(戰時)의 대구에서 발표된 노래이다. 작곡은 박시춘, 작사는 손로원이 했는데, 이 비장미(悲壯美) 넘치는 노랫말은 작사가 손로원이 화재로 인하여 연분홍 치마를 입은 어머니의 사진이 불에 타는 모습을 보고 가사를 지었다 한다.

 

몇 해 전 어느 잡지사에서 100명의 시인(詩人)을 대상으로 설문을 하였더니 가장 좋아하는 애창곡으로 바로 이 "봄날은 간다"를 꼽았다고 한다. 2위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뽑혔고.

 

경쾌하거나 구성진 정통 트롯트가 아니고 멜로디 라인 살아있는 발라드도 아닌 이 오래된 노래가 애창곡 1위로 뽑힌 사실이 놀라운데, 아무래도 시인들이라 시적 운율이 살아 있는 가사가 큰 몫을 한 듯하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와 한숨 쉬듯 토해내어 지는 비장미가 또 다른 요인인 듯하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이 노랫말을 가만히 읊조려 보면 고려가요 '가시리'와 소월(素月)의 '진달래꽃'이 연상되어 진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엇디 살라 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이 두 시는 율격(律格) 면에서 서민적이면서 여백미가 느껴지는 3음보(音步)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우리 민족 옛노래의 기본 율격을 따른 것이라 친근하고 쉽게 읽혀지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용 면에서 이별의 정한(情恨)을 노래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애잔한 비장미가 묘한 끌림을 느끼게 만든다.

 

봄날은 간다 역시 3음보의 율격과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노랫말을 갖추고 있어 이 두 작품과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하겠다. 그리하여 60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로 손꼽힘은 물론이요, 조용필, 최백호, 장사익, 한영애, 주현미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끊임없이 리메이크해서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홀로 산꾼들이 '교가'로 이 노래를 선정하고 시도 때도 없이 애창함은 대한민국 대표 시인들에 못지않은 감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요, 대한민국 대표 가수들에 지지 않는 노래 선택의 안목을 가졌음을 나타낸다 하겠다.

 

자화자찬이 지나쳤지만, 우리 홀로 산꾼들의 동계 야영모임이 계관산(鷄冠山) 언저리의 잣숲에서 있었는데, 어김없이 이날도 노래 몇 소절이 등장했고 당연히 연분홍 치마는 잣숲 곳곳에서 휘날리게 되었다더라.

 

다만 이 노래는 음주 전이나 음주 중에는 맛이 잘 나지 않고 대취(大醉)한 후에 불러야 진정한 맛이 나는 노래인데, 한가지 흠은 대취한 산꾼들이 노래 가사를 까먹기 일쑤라 연분홍 치마만 밤새 휘날리고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로는 도대체 나가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잣숲에 휘날린 연분홍 치마!!


일시 : 2014년 2월 15, 16일. 흙과 해의 날.

 

해마다 겨울이면 홀로 산꾼들 사이에 눈밭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콧구멍에 찬바람 넣는 일이 상례화되곤 한다. 올해 역시 그러하여서 사발통문이 돌아 장소며 날짜 등등이 교환되더니 최종적으로 계관산 언저리가 낙점되었다.

 

계관산은 몽가북계나 화악지맥의 주요 산으로 용틀임하듯 구불구불 휘어지는 마루금의 방화선이 인상적인 산이다.  마눌과 둘이서 어느 여름날에 그 진면목을 충분히 느낀 산인데, 이 산은 북배산 가는 길 중간에 보물같은 잣숲 하나를 숨기고 있다.

 

그 잣숲은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장소이지만, 언제나 마루금에 집착하는 홀로 산꾼들은 잘 모르는 장소라 내가 앞장을 서야 한다.

 

그리하여 갑오년 2월 주말에 야영짐 꾸려 마눌과 함께 집을 나선 후 집앞에 있는 석수역에서 오랜 산동무인 뚜벅을 픽업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안성에 있는 팔광아우도 동참하겠다 연락이 와서 그도 함께 픽업해서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봄날은 간다

 

몇 년 전 시인 100명에게 애창곡을 물었더니 '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박시춘 작곡)를 가장 많이 꼽았다. 계간(季刊) '시인세계'의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 조사에서였다. 대중가요가 시인들의 애송시(愛誦詩) 대접을 받은 셈이다. 천양희 시인은 "이 노래만 부르면 왜 목이 멜까"라고 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라는 첫 구절을 부를 땐 아무렇지도 않더니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따라 울던' 이 대목을 부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슬픈 무엇이 느껴졌고 눈물이 나려고 했다."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을 단 시도 많다. '이렇게 다 주어버려라/ 꽃들 지고 있다/(…)/ 지상에 더 많은 천벌이 있어야겠다/ 봄날은 간다.' 고은은 봄날의 허무 속에서 퇴폐와 탐미를 찾았다. 안도현은 '꽃잎과 꽃잎 사이 아무도 모르게/ 봄날은 가고 있었다'고 탄식했다. 29세에 요절한 기형도는 '봄날이 가면 그뿐/ 숙취는 몇 장 지전(紙錢) 속에서 구겨지는데'라는 시를 남기고 생의 봄날에 떠났다. 

 

'봄날은 간다'를 패러디한 시도 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누구에게도 그런 알뜰한 맹세를 한 적은 없지만 봄날은 간다/ 시들시들 내 생의 봄날은 간다'(정일근). '낯선 도시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당신은 남고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이승훈). 

 

5일 떠난 원로 가수 백설희의 대표곡 '봄날은 간다'는 1953년 대구에서 유성기 음반으로 발표됐다. 화사한 봄날에 어울리는 밝은 봄노래의 정형(定型)을 벗어던졌다. 너무 환해서 더욱 슬픈 봄날의 역설이 전쟁에 시달린 사람들의 한 맺힌 내면 풍경을 보여줬기에 이내 공감을 샀다. 백설희는 낭랑하면서도 체념한 목소리로 알뜰한 맹세가 실없는 기약이 돼 슬픔에 젖은 여심(女心)을 표현했다. 

 

'봄날은 간다'는 이미자 배호 조용필 나훈아 장사익 한영애 등등이 제각각 음색으로 부른 불후의 명곡이다.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도 줬다. 25현(絃) 가야금 연주가 정민아는 지난달 이 노래를 주제로 한 연주회를 열었다. 같은 이름의 영화와 연극도 나왔다. 영화에선 남자가 변심한 여자에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며 울먹였다. 백설희는 갔어도 노래 '봄날은 간다'를 향한 한국인의 사랑은 결코 변치 않을 것이다. / 박해현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계관산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계관산은 춘천에 인접한 산이라 집에서 거리가 멀다. 춘천고속도로를 타고 북상하다가 강촌나들목으로 나간 후 북한강변을 따라 다시 올라 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춘천 가는 길은 나들이객들 때문에 정체가 심하다. 내비양 시키는 대로 이곳저곳을 돌아 정체를 회피한 후 강촌나들목까지 왔다. 이후 덕두원리쪽으로 방향을 틀어 길게 올라 가면 오늘의 목적지가 나타난다. 

 

 

 

# 송어회가 먹고 싶어서 중간에 배가 많이 고팠지만 점심을 건너 뛰고 이 집을 찾았다. 

 

 

 

# 바알간 송어의 속살. 예전 낚싯꾼 시절 평창이나 동강 등에서 참 많이도 낚아서 회를 즐겼던 물고기이다.

 

 

 

# 오랜만에 잔을 부딪쳐 본다. 1대간 9정맥 모두 끝내고 나니 같이 산행할 일이 줄어서 그렇다. 송어회맛 좋고, 술맛도 좋은데 오늘 이 횟집 안주인의 심기는 영 좋지 않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들어 올 때부터 뚱한 표정이더니 나중에는 시비까지 붙어 보자는 태도이다. 내일 하산하여 뒷풀이를 이 집에서 하기로 했는데 취소해야겠다.

 

 

 

# 밥배, 술배 모두 채운 후 짐을 챙겨 산행길에 나섰다.

 

 

 

# 마을길이 끝나는 곳에서 숲으로 스며든다.

 

 

 

# 영동지방은 지금 130년 만의 폭설로 난리가 났다는데, 이 동네는 영 딴판이다.

 

 

 

# 다리부상 때문에 4개월 넘게 산행다운 산행은 못하고 지냈다. 오랜만에 무거운 박배낭을 메고 왔더니 호흡이 금세 가프고 다리가 팍팍해져 온다.

 

 

 

# 마눌은 젊은 친구들의 보조에 뒤쳐지지 않는다.

 

 

 

# 눈 없는 겨울 산길이 영 생경하다.

 

 

 

# 여름엔 폭포가 장관인 곳인데, 지금은 모두 꽁꽁 얼어 붙어 있다.

 

 

 

# 다만 얼음 아래로 여전히 콸콸 흐르기는 한다.

 

 

 

# 가평 일대의 잣숲은 모두 6, 70년대 화전민을 소개하고 조성한 곳이다. 옛 화전민들의 집터가 중간중간 나타난다.

 

 

 

# 숲을 벗어나서 골짜기 가장자리로 오른다.

 

 

 

# 조만간 대관령이나 마장터로 눈밭 야영하러 가야겠다.

 

 

 

 

# 임도를 만났다.

 

 

 

# 나중에 자전거 타고 이 임도를 한바퀴 돌아 볼 작정이다.

 

 

 

# 잣숲에 도착했다.

 

 

 

# 다행히 오늘 이 잣숲의 손님은 우리 외에는 없다. 

 

 

 

# 얼른 집부터 한 채 뚝딱 지어 둔다.

 

 

                                  

# 숲바닥이 꽁꽁 얼어 있어서 잣숲 특유의 푹신한 촉감은 없다. 연인산은 숲 바닥이 겨울에도 얼지 않고 푹신한 장점이 있다. 다른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 각자 집 지어 놓고 다시 모여서 술자리를 본다.

 

 

 

# 고기 구워 한 병, 어묵탕 끓여 다시 한 병, 문어 숙회 잘라 다시 한 병...

 

 

 

# 술잔이 돌고 또 돈다.

 

 

 

# 그러는 사이에 잣숲에 밤이 찾아 왔다.

 

 

 

# 2진의 도착이 예상보다 훨씬 늦다. 이러다간 2진 오기 전에 만취하겠다.

 

 

 

# 밤이 상당히 깊은 연후에야 2진 네 분이 도착했다. 비로소 성원이 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잣숲 만찬이 시작된다.

 

 

 

# 각자의 배낭에서 참으로 다양한 먹을 거리와 마실 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 1대간 9정맥을 끝낸 후 1년 넘게 야영 위주로 산행을 진행했다. 매번 야영할 때마다 포식을 하게 되니 나름 산을 열심히 다녔지만 살이 자꾸만 오른다.

 

 

 

작년 연초 마장터 야영 산행 이후 근 1년 만의 떼 야영인가보다. 그러니 할 말 많고 주고 받을 잔 많다. 오후 다섯시 무렵부터 시작된 술자리가 자정이 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이 잣숲엔 우리만 있으니 좀 소란스러워도 괜찮을 듯하다. 술이 거나해지자 자연스례 노래 몇 소절이 따라 나온다. 그런데 가득 차 오른 술기운이 기억력을 갉아 먹은 탓인지 아니면 노래방 기계가 가사 기억력을 없애버린 탓인지 모든 노래가 끝까지 이어지질 못한다.

 

급기야 늘상 입에 달고 살던 홀산교가조차 완창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하여 잣숲 곳곳에 연분홍치마가 걸려 휘날리기만 하지 청노새 짤랑대는 신작로는 고사하고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까지도 나가질 못한다.

 

그 덕분에 오늘은 연분홍치마 휘날리고도 눈물 머금을 일이 없다. 이 노래를 감정 실어 완창하자면 언제나 눈물 한 방울 눈가에 맺히기 마련인데...

 

술 기운 도도해 텐트로 스며들어 피곤한 몸을 눕혔는데 우리가 자리를 뜬 이후에도 꽤 오래 술잔은 돌고 연분홍치마도 휘날렸던 모양이다. 탕파에 물 꿇여 마눌 침낭 속에 넣어 주고 나도 하나 품에 품었더니 따스하고 좋다. 이내 잠이 들었다.

 

 

 

# 따스하게 잘 잤다. 기온은 낮았지만 바람이 없어 포근하였다.

 

 

 

# 잣숲의 아침은 늘 상쾌하다.

 

 

 

# 팔광과 우리를 제외하고 모두 타프로 밤을 보냈는데, 다들 따스하게 숙면한 모양이다.

 

 

 

# 잣숲에서의 야영은 쭉쭉 뻗은 기상 때문에 중독성이 강하다.

 

 

 

잣숲에서의 상쾌한 아침을 만끽하고 있는데, 간밤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함께 야영을 하지 못한 장산님 부부가 간편한 당일 산행차림으로 잣숲을 찾아 왔다.

 

다들 깜짝 놀랐다. 반갑기도 하고. 특히나 마눌의 경우 장산댁과 꼭 야영을 같이 해 보고 싶어 했는데, 간밤에 못 온다는 소식에 많이 서운했던 참이라 더욱 그러하다. 

 

 

 

 

# 느긋하게 아침 끓여 먹고 자리를 정리했다.

 

 

 

# 잣숲을 떠나기 전에 기념사진 한 장 남겼다.

 

 

 

# 아침 햇살 강해 디테일이 날라갔다.

 

 

 

# 원래 계획은 그냥 하산할 팀과 계관산 산행 할 팀으로 팀을 나눠서 계관 정상을 밟을 사람들을 올려 보낼 작정이었는데, 오랜만의 모임이라 팀 나누기가 여의치 않다. 결국 모두 하산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 하룻밤 편안한 휴식을 허락해 준 잣숲에 작별한다.

 

 

 

# 임도로 복귀하여 돌아보니 저멀리 북배산이 보인다.

 

 

 

# 북배산은 아직 미답이다. 다음에 몽가북계 마루금을 이어서 야영짐 지고 한번 걸어 봐야겠다.

 

 

 

# 왔던 길 그대로 하산이다.

 

 

 

# 이곳의 임도는 계관과 북배의 산자락을 길게 타원형으로 한바퀴 휘감고 있다. 잣숲을 찾지 못해 저 임도에서 두 번이나 잠을 잔 사람도 있다...

 

 

 

# 하산길은 금방이다.

 

 

 

# 인간세로 복귀했다.

 

 

 

# 이후 늘상 그렇듯 청평검문소 앞 단골 매운탕집으로 이동하여 얼큰한 매운탕으로 뒷풀이를 했다. 벌써 몇 년째 가평 쪽 야영할 때마다 찾는 단골이라 주인의 배려가 각별하다. 다만 이 날 매운탕 재료는 생물이 아니고 냉동이라 맛이 덜했다. 워낙 오랜 낚싯꾼의 입맛이라 민감하다. 한마디 하려다가 그냥 참았다.

 

 

 

그렇게 홀로 산꾼들의 갑오년 첫 동계 야영을 마쳤다. 눈폭탄 쏟아진 영동지방과는 달리 영서는 겨울 가뭄이 극심해 눈 구경 제대로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오랫만의 잣숲 야영이 참으로 싱그럽고 즐거웠다.

 

오랜 산동무들과 함께 입맞춰 부른 연분홍치마도 나풀나풀 어여쁘고 곱기도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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