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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산행]양자산/楊子山-다기망양(多岐亡羊)!! 본문

산이야기/일반 산행

[야영산행]양자산/楊子山-다기망양(多岐亡羊)!!

강/사/랑 2014. 3. 10. 17:24
 [야영산행]양자산/楊子山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는 기원전 770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의 550년을 말한다. 이는 기원전 770년 주(周)왕조가 천도(遷都)할 때부터 진시황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의 기간이다.

 

이때는 중국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시기여서 '철기(鐵器)의 도입'과 '상업의 발달'이 특히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보다는 '제자백가(諸子百家)'로 통칭되는 중국 사상이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화려하게 꽃핀 '사상 개화결실(思想 開花結實)'의 시대로 더욱 유명하다.

 

제자백가는 크게 유가(儒家), 도가(道家), 묵가(墨家), 음양가(陰陽家), 명가(名家), 종횡가(縱橫家), 법가(法家), 잡가(雜家), 농가(農家) 등 9유파로 나눈다.

 

그중에 대표는 역시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이다. '유가(儒家)'는 공자, 맹자로 대표되는 인(仁)의 사상으로 중국 역사의 통치 철학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반면, '도가(道家)'는 노자, 장자로 대표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노장사상(老莊思想)으로 기층 민중의 생활철학으로서 역할을 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초기 도가(道家)의 인물 중에 '양자(楊子)'가 있다. 양자는 본명이 '양주(楊朱)'이고 자는 '자거(子居)'인데 위(魏)나라 사람이다. 양자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쾌락주의를 주장하였다. "털 한 올을 뽑아 온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더라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拔一毛而利天下不爲 ; 모일발이리천하불위)"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른바 '일모불발(一毛不拔)'의 사상이다. 이러한 양자의 사상을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에 대비해 '위아설(爲我說)'이라 한다.

 

맹자는 이러한 양자의 이기주의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인간 본성의 선(善)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맹자에게 있어 자신의 털 한 올일지언정 양보할 수 없다는 양자의 주장이 옳게 보일리 없었다. 무릇 극단적인 이러한 사상은 대개 자신이 주장하는 절대적 가치를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위악(僞惡)'일 경우가 많은데, 맹자는 그것을 간과한 것이리라.

 

아니면 알고 있었지만 사회 참여적인 공맹의 유학과는 너무나 극단적으로 다른 양자의 사상이 환영받고 있는 당대의 현실을 깨우치기 위해 모른 척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양자가 주장한 절대적 이기주의와 쾌락주의는 자연주의, 즉 무위자연의 다른 표현이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양자는 나 이외의 것에 대하여 방해하거나 방해받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하였다. 쾌락(快樂)이란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며 이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양자와 관련된 유명한 고사성어가 있으니 바로 '다기망양(多岐亡羊)'이다. "갈림길이 많아 양을 잃어버렸다"는 말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로 갈려 진리를 찾기 어렵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고사이다. 고사의 출전은 '열자(列子)'인데 내용은 이렇다.

 

양자가 살고 있는 마을의 이웃집에서 양 한 마리가 달아났다. 그래서 그 집 사람들은 물론 양자네 집 하인들까지 동원되어 양을 찾아 나섰다. 하도 소란스러워서 양자가 물었다. "양 한 마리 찾는데 왜 그리 많은 사람이 나섰느냐?" 양자의 하인이 대답했다. "예, 양이 달아난 그쪽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모두들 지쳐서 돌아왔다. "그래, 양은 찾았느냐?" "갈림길이 하도 많아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양을 못 찾았단 말이냐?" "예, 갈림길에 또 갈림길이 있는지라 양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통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양자(楊子)는 우울한 얼굴로 그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한 현명한 제자가 선배를 찾아 가 사실을 말하고 스승인 양자가 침묵하는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그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큰길에는 갈림길이 하도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고, 학자는 다방면(多方面)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학문이란 원래 근본은 하나였는데 그 끝에 와서 이같이 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인 근본으로 되돌아가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시고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라네."

 

결국 '다기망양(多岐亡羊)'은 갈림길 같은 '곁가지에 빠져 자기의 본성을 잃어버린 세상'을 안타까워하는 양자의 사상이 들어있는 고사성어인 것이다.

 

경기도 여주(驪州) 산북면에는 '양자(楊子)'란 이름을 가진 산이 있다. 높이가 710.2m로 한수(漢水) 이남의 경기지방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이 산이 걸쳐 있는 강상면과 강하면의 고장인 양평(楊平)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어서 한수 이북에서 볼 때 항상 '버드나무 뒤로 보이는 산'이라 양자산(楊子山)이라 불렀다 한다.

 

다른 기록에는 옛 이름이 소를 닮아 '소산'이라 불렀다고도 하고 '꾀꼬리봉(鶯子峰)'과 부부여서 '각시봉'이라 불렀다고도 하는데, 여주군사(驪州郡史) 등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정확한 유래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鶯子(앵자)와 楊子(양자)라고 할 때 '아들 子'는 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공자, 맹자처럼 이름 뒤에 붙는 의미 없는 인칭 접미사이니 '꾀꼬리봉', '버들봉'이라 부르면 그 느낌이 더 좋으리란 생각이 든다.

 

양자산은 그 품속에 작은 잣숲 하나를 감추고 있어 눈 밝은 등짐꾼들이 소리소문없이 찾는 곳 중 하나이다. 갑오년 봄이 기지개를 켜는 삼월 초에 원래는 욕지도로 봄맞이 섬산행을 준비하였다가 회사일 때문에 원행(遠行)이 힘들어 진작부터 눈도장 찍어 두었던 양자산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봄을 찾으러 간 양자잣숲에는 뜻하지 않은 춘설(春雪)이 밤새 내렸고, 제법 많이 내린 봄눈이 평상시 사람들 왕래 적은 산길을 모두 감춰 버려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어야 했다. 그야말로 양자(楊子)의 다기망양(多岐亡羊)이었다. 다만 이 동네 양자의 산은 갈림길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눈에 덮여 구분이 어렵다는 점이 양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기는 하였다.




다기망양(多岐亡羊)!!


일시 : 2014년 3월 8,9일, 흙과 해의 날


우수 경칩이 모두 지났으니 대동강 물도 풀리고 개구리들도 땅을 박차고 나왔겠다. 해마다 첫봄이 시작되는 때가 오면 남도의 섬들이 그리워진다. 그중 하나가 통영에 있는 욕지도이다.

 

하지만 욕지도는 작년 봄에 짐을 모두 갖추고 길을 나섰다가 진주쯤에서 오래된 내 차가 퍼지는 바람에 배를 놓쳐 가질 못했다. 때문에 대안으로 통영에 있는 미륵산을 캄캄한 어둠을 뚫고 올라야 했었다. 미륵산 일출이 하 아름다워 욕지도를 못 간 아쉬움이 전혀 들지 않게 된 것은 반전의 기쁨이기는 하였다.

 

올해는 삼월이 되면 제일 첫 번째로 욕지도로 갈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통영에서 가는 배표를 확인하고 짐을 모두 꾸려 두었는데, 금요일에 회사 일이 많아 퇴근하니 자정이 다 되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새벽 일찍 일어날 자신도 5시간을 운전해 갈 자신도 없다.

 

그리하여 다시 욕지도는 뒤로 미루고 인근의 다른 대체지를 찾기로 했다. 그곳이 바로 양자산이다. 양자산은 집에서 1시간 거리이고 야영지도 주차장에서 무척 가까운 곳이다. 원행(遠行)이 아니라 하니 마눌도 부담이 적다고 기뻐한다.


하지만 뒷날 눈밭에서 서너 시간 헤매고 나서는 원망의 소리가 나오기는 하였다. 어쨌건 그것은 나중의 일이고 일단 출발할 때는 느긋하고 한가하였다. 양자산은 그런 곳이다.


양자산/楊子山

높이는 710.2m이다. 여주시 산북면과 강하면, 강상면 사이에 앵자봉과 연맥을이루며 329번 도로의 왼쪽에 높이 솟아 있다. 산세가 부드럽고 수도권과 근접해 있어 오래전부터 주말산행 코스로 잘 알려진 산이다. 양자산의 이름은 들판에 버드나무가 즐비하다는 뜻인 양평(楊平)과 무관하지 않다. 이 산은 양평에서 남한강 건너로 항상 버드나무와 함께 보였기 때문이다. 양자산은 소처럼 생겼다해서 '소산'이라고도 한다. 앵자봉 북서쪽 골짜기 일원은 소미라 불리기도 한다. 소(牛)와 뫼(山)의 합성이이다. 소뫼가 소미로 불리다가 한문으로 우산리(牛山里)로 바뀐 것이다. 앵자봉은 꾀꼬리가 알을 품고 있는 산세라 하여 꾀꼬리봉으로 불리다가 한자로 표기할 때 앵자봉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옛날에는 각시봉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웃한 양자산이 신랑산으로 보고 두 산을 부부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가 함께 오르면 부부금실이 좋아진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현재 각시봉은 앵자봉이 아닌 양자산 남동릉 상의 693봉으로 옮겨가 붙어 있다.
양자산과 앵자봉은 수도권에서 당일코스로 인기 있다. 하남시 검단산 동쪽 경안천 건너 10~20km 거리로,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경우 버스를 한 번만 갈아타면 닿는다. 한 번 정도 갈아타는 곳일수록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남아있기 마련이다. 산중에 위험요소가 거의 없고, 안내푯말이 설치돼 있어 초심자나 가족단위로 찾아보기에 적합한 산이다. 산행은 성덕리쪽에서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나 코스가 짧은 편이고. 최근 양평군에서 개척한 능선 종주코스가 있는데 양자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뻗어나간 10km의 장쾌한 능선길이다. 이 코스는 남한강변에서부터 올라가는데 4시간, 내려오는데 3시간 30분이 걸린다. 따라서 오를 때 보다는 남한강을 조망하며 내려가는 코스가 산행의 묘미를 더 즐길수 있다. 양자산은 각시봉 밑의 전망이 일품이고, 705 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길이 좋고 정상은 진달래가 많다. 등산기점은 하품리 버스 승차장 동편 영명사 안내 푯말이 있는 큰길을 따라 안두렁이 마을을 지나 영명사에 가서 샘이 있는 우측 능선으로 오르면 된다. 

 

<이곳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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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산, 앵자봉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집 나선지 한 시간여 만에 양자산 아래에 도착하였다. 마을끝까지 자동차로 올라 갈 수 있다. 중간에 비포장길이기는 하지만 무난하였다. 한겨울 눈이 많이 왔을 때는 올라 오기 어려운 모양이다.

 

 

 

# 공터 한 쪽에 주차하고 등짐 챙겨 출발한다.

 

 

 

# 양자산정에서 흘러 내린 물이 계곡을 이뤄 아래로 흐르고 있다. 갈수기라 물이 적다.

 

 

 

# 전원주택들이 곳곳에 지어지고 있다. 골짜기가 풍요로와 보이지 않은데 무얼 먹고 사나?

 

 

 

# 계곡따라 위로 오른다.

 

 

 

# 저 멀리 봉우리가 우뚝하다.

 

 

 

# 양자산에 대해 미리 얻은 정보가 제한적이었다. 다만 정상이 힘들지 않고 가깝다고 나와 있어 저 봉우리가 정상인 줄 알았다. 때문에 뒷날 고생을 좀 했다.

 

 

 

 

# 골따라 계속 올라 간다. 이곳은 포스트 중 하나이다.

 

 

 

# 산마루금을 땡겨보니 하얀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 햇살 좋은 곳에 묘역을 만들었다.

 

 

 

# 잣숲들의 초입엔 이런 낙엽송숲이 종종 있더라.

 

 

 

 

# 잣숲에 도착했다. 아주 가깝다. 한 15분 정도 걸었나?

 

 

 

# 이곳 역시 예전 화전민 거주지를 이전시키고 조림한 곳이다.

 

 

 

# 마을이 있던 곳이니 당연히 근처에 계곡이 있다. 갈수기인데도 물이 끊기지 않고 흐른다. 물은 맑고 차갑다.

 

 

 

# 그리 넓지 않은 잣숲이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 산 초입에서 만난 사람인데 홀로 야영을 들어 왔다. 이곳은 전화가 터지지 않아 전화하러 내려 갔었다고 한다. 그만큼 가까운 곳이다.

 

 

 

# 싸이트는 풍부하다. 적당한 곳을 찾아 본다.

 

 

 

# 이 잣숲에는 선객이 이미 두 동의 헝겊집을 지어 두었다. 그런데 저 아래에 있는 텐트는 집만 지어져 있고 사람은 없다. 아마도 설영한지 몇일 된 모양이다.

 

 

 

# 아직은 오염되지 않고 사람들 손을 덜 탄 곳이다. 잣숲 바닥도 깨끗하고 불피운 흔적은 딱 한 곳이 있다. 다만 누군가 굴을 구워 먹었는지 굴껍질을 계곡에 잔뜩 버려 놓았다. 굴껍질이 전부 온전한 것이 버린지 오래되지 않은 모양이다. 야영오면서 부피 나가고 쓰레기 생기는 굴같은 것을 왜 가지고 올까?

 

 

 

# 적당한 곳에 하룻밤 묵어 갈 헝겊집을 하나 세웠다.

 

 

 

# 바닥이 고르고 푹신하다.

 

 

 

# 그런데 이 잣숲의 상부에는 원주민이 한 가구 살고 있다.

 

 

 

# 통나무와 황토흙으로 귀틀집을 일궜는데, 원래 이 마을 사람이라 한다. 화전 소개정책때 마을을 떠났다가 아들 건강때문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자연속에 터전을 마련했다 한다. 결국 이곳은 사유지라는 얘긴데, 주인에게 인사하고 허락맡으러 갔더니 외출하고 없었다. 우리보다 먼저 들어 온 이의 말에 의하면 케이블 TV '나는 자연인이다'란 프로에도 나왔다고 한다. 그 프로는 열심히 보는 것 중 하나이니 우리가 보았었을 수도 있겠다.

 

 

 

# 고로쇠 수액을 받고 있다. 저런 수입으로 생활을 하시나 보다.

 

 

 

# 이곳은 다른 잣숲에 비해 아담한 넓이를 가졌다. 전체적으로 8,9단 정도의 계단식으로 되어 있고, 주인이 가까이 있어서인지 다른 잣숲같은 난장판은 면하였다.

 

 

 

# 간만에 멋진 잣숲에서의 호젓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 한가하고 고요하기도 하다. 좋다!

 

 

 

# 짐 내려 빈 배낭은 커버 씌워 옹이에 걸어 두니 딱 알맞다. 

 

 

 

# 집에서 물을 6리터를 준비해 왔지만 혹시나 싶어 계곡으로 내려가 탕파에 물을 채웠다. 저대로 끓이면 밤에는 보온용도로 아침에는 양치물이나 식수로 쓸 수 있다.

 

 

 

# 오늘 이 잣숲은 너무나 고요하다.

 

 

 

# 헝겊집 속에 앉아 있으니 세상 시름이 모두 사라진다.

 

 

 

# 그 한적함을 느긋하게 즐겨본다.

 

 

 

# 막걸리 한 잔 해 줘야 풍류가 더해진다.

 

 

 

# 안주는 이번에도 연어회를 준비했다.

 

 

 

# 한잔씩 나누는 동안 땅거미가 찾아 든다.

 

 

 

# 이왕 시작한 김에 이른 저녁밥을 준비한다.

 

 

 

# 막걸리 한 잔 씩 더 하고.

 

 

 

# 참으로 맛나다. 한 병에 천원짜리 막걸리가 주는 기쁨이 값어치를 셀 수 없을 지경이다. 내가 막걸리를 사랑함이 이와 같다.

 

 

 

# 차가운 회로 안주했으니 이번에는 뜨끈한 부대찌개로 속을 데운다.

 

 

 

# 주연을 모두 마쳤어도 아직 밤은 덜 찾아 왔다. 평소에 퇴근이 늦어 저녁식사가 거의 10시에 가까운데 오늘은 빨라도 너무 빠르다.

 

 

 

# 아랫집에서는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이런 곳에서는 보통 같이 술 한 잔 나누는데,간만에 맞은 고요함을 깨기 싫어 인사만 하고 각자의 평화를 지켜주기로 했다.

 

 

 

# MSR 텐트가 참 이쁘다.

 

 

 

 

# 우리는 나즈막히 음악도 듣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며 잣숲의 평화를 누렸다.

 

 

 

# 날씨도 춥지 않고 밤을 보내기에 딱 적당하다.

 

 

 

# 계곡에 가까워 골바람이 간혹 넘어 오기는 하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다.

 

 

 

#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반달이기는 하나 달빛도 밝다. 참으로 좋은 밤이다.

 

 

 

 

둘이서 도란도란 얘기 나누다가 아홉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같으면 퇴근도 안했을 시각이다. 바닥이 고르고 푹신하여 잠자리도 아주 편안하다. 탕파에 물 꿇여 침낭 안에 넣었더니 온기가 훈훈하다.

 

한 잠 푹 자고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11시 반이다. 집에서는 초저녁인 셈이다. 다시 한 잠 더 자고 일어 났는데 아직 1시밖에 되지 않았다. 소변 보고 하늘을 올려다 보니 별도 달도 모두 사라졌다. 벌써 들어갔나?

 

다시 텐트로 들어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마눌이 깨우며 비가 오는 것 같다고 한다. 밤중에 달빛이 훤하고 별들이 총총했는데 무슨 비소식인가? 바람 소리이니 걱정 말고 더 자시게! 하지만 분명히 비소리라고 살펴보라 한다. 텐트 문을 열고 내다보니, 어머나? 비가 아니고 눈이 내리고 있다.

 

마눌 얘기로는 일기예보에서 눈비소식을 전하더란다. 그래, 잘 되었네. 마지막 눈 구경이나 하세. 하지만 그건 내일 얘기이고 더 주무시게!

 

까무룩 다시 잠이 들었나? 그러다 잠이 깨어 바깥 동정을 살피는데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며 텐트가 흔들린다. 놀래서 나가보니 타프가 무너져있다. 타프에 눈이 많이 쌓여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팩이 빠진 것이다. 때문에 눈무더기가 쏟아지고 기둥으로 세워 둔 스틱이 쓰러진 것이다.

 

얼른 뛰어 나가 타프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팩 튼튼히 박아 타프를 다시 고쳐 세웠다. "원, 별이 그렇게 총총하더니 이게 무슨 일이람?" 한바탕 소동을 치른 후 다시 침낭속에 파고 들어 잠을 다시 청했다. 잠은 이미 평소보다 두 배 이상 잤지만 아직 아침은 멀었다.

 

 

 

# 하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더니 자도자도 아침이 오질 않는다. 아홉시에 자서 일곱 시에 일어났으니 무려 열 시간을 잤다. 평소 다섯 시간 정도 잠을 자는 편이니 꼭 두 배를 잤다.텐트 문을 열고 나와보니 밤새 눈이 많이 내려 잣숲은 설국이 되어 있다.

 

 

 

# 이런 느닷없는 눈세상은 또 색다른 경험이다.

 

 

 

# 저 댁 부자는 간밤에 귀가하더니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다.

 

 

 

# 눈이 너무 많이 쌓여 타프가 무너졌었다. 새벽에 눈을 두번이나 털어 내어야 했다.

 

 

 

# 한 50mm 정도 쌓였나 보다.

 

 

 

# 자연인 부자는 아침 일찍부터 하산한다. 때문에 인사 나눌 기회가 없었다.

 

 

 

# 맨 아랫쪽에 있는 텐트 주인은 계속 부재중이다.

 

 

 

# 그렇지않아도 고요한 잣숲이 눈까지 내려 더욱 적막하다.

 

 

 

# 부지런한 자연인은 새벽같이 일어나 길을 쓸어 두었다.

 

 

 

 

# 눈덮인 잣숲 구경을 마치고 다시 헝겊집으로 돌아 왔다.

 

 

 

# 아침 끓이고 막걸리도 한 잔 마신다.

 

 

 

# 후식으로 따끈한 커피도 한 잔! 저 티타늄 컵은 이중 구조라 뜨거운 차를 마셔도 입술 데일 염려가 없다.

 

 

 

 

# 아침 햇살이 눈덮인 잣숲을 찾아왔다.

 

 

 

 

# 아침 먹은 후 느긋하게 게으름 좀 피다가 짐을 꾸렸다.

 

 

 

# 저 댁은 잣숲에서의 휴식이 목적인 모양이다. 우리야 산꾼이니 양자산 정상을 다녀 올 생각이다.

 

 

 

 

# 자연인의 귀틀집을 잠시 구경하고.

 

 

 

# 하룻밤 편안한 휴식을 제공해 준 잣숲을 떠난다.

 

 

 

# 눈길이 미끄럽다. 하지만 아직 아이젠은 하지 않았다.

 

 

 

# 참으로 멋진 곳이다. 오래 오염되지 않고 그 모습대로 남아 있길 바랄 뿐이다.

 

 

 

# 계곡을 따라 올라가기로 했다. 눈 덮인 등로가 위로 이어져 있고, 일부 지도정규 등산로는 아니지만 길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마눌은 하산하여 짐을 차에 갖다 두고 간편한 차림으로 좋은 등로를 따라 오르자고 했지만, 내가 고집 피워 그냥 야영지에서 치고 오르는 걸로 하였다.

 

 

 

# 일단 초입부는 등로도 확연하고 표지기도 하나 매달려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저 표지기는 산꾼의 것이 아니라 한전에서 송전탑과 관련하여 매단 것이다.

 

 

 

# 조금 오르자 경사가 급해져서 아이젠을 착용해야 했다.

 

 

 

야영지를 떠날 때는 뚜렸하던 등로가 곧 희미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곳은 평소에 사람들 왕래가 드문 곳인데다 간밤에 내린 눈에 덮여 길을 분간할 수가 없다. 지도 꺼내 보지만 간단한 개념도라 지금은 소용이 없다.

 

스마트폰에서 오룩스맵을 작동시켜 현위치를 파악하고 길을 찾아 본다. 지도 확인하니 우측 사면을 치고 올라 능선에 오르기만 하면 될 듯하다. 정상까지는 그 사면을 따라 계속 올라 가면 될 듯하고.


마눌은 아래에서 기다리라 하고 혼자 우측 사면으로 치고 오른다. 처음에는 완만하던 경사가 곧 급경사로 바뀌는데, 눈이 많이 쌓여 미끄럽고 위험하다. 나 혼자는 어떻게 올라 갈 수 있겠는데, 마눌은 무리일 듯하다. 결국 원위치. 그런데 내려오는 길이 더 위험하다.

 

계곡으로 복귀해서 이번에는 계곡을 건너가 보기로 한다. 사람 흔적 없는 계곡을 건너니 위로 올라 가는 희미한 길이 눈에 들어 온다. "옳타. 이 길로 올라 가 보자!" 잠시 후 계곡은 다시 양 갈래로 갈리고 길은 다시 없어진다. "이런! 이게 뭐야!"

 

정신차리고 오룩스맵을 정치(定置)하여 주변과 매칭시켜 보니 좌측으로 올라가면 길은 나타나지만 송전탑과 관련된 임도라 구불구불 산을 휘감는 곳이고, 중앙의 사면을 치고 오르면 정상 바로 우측에 있는 709.5봉으로 오를 수  있어 보인다.

 

평상시 눈이 없을 때는 길찾는 데 크게 문제가 없을 곳이지만, 눈에 덮여 길이 모두 사라져 버리니 이런 낭패를 당하게 된다. 양자의 고사에 갈림길이 너무 많아 양을 잃어버리는 다기망양(多岐亡羊)이란 말이 나오는데, 오늘 이곳 양자에서는 눈에 덮여 길이 사라져버려 양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 한 30여 분 넘게 길 찾느라 헤맸나보다. 계곡 합수점에서 중앙 능선을 따라 치고 오른다.

 

 

 

# 곧바로 급경사 오르막이 이어진다.

 

 

 

# 그런데 간밤에 내린 눈이 습기가 아주 많은 습설이었나 보다. 한 발자욱에 바로 발바닥에 스노우볼이 커다랗게 매달린다.

 

 

 

# 서너 걸음 걷고 발 털어내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 갈수록 경사는 급해지고 찬바람이 아주 강하게 휘몰아치고 있다. 바람이 너무 강해서 쌓인 눈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 암릉 구간도 나타난다.

 

 

 

# 무거운 박배낭을 메고 급경사를 치고 오르자니 숨이 턱턱 차 오른다.

 

 

 

# 그런데 문제는 경사도 무게도 아닌 신발 바닥이다.

 

 

 

# 물기 머금은 눈이 야구공만하게 뭉쳐져 발바닥에 들러 붙는다. 순식간에 키가 10cm는 커져 버린다.

 

 

 

# 서너 걸음 걷고 털어내고 다시 서너 걸음 걷고 털어내고를 반복하자니 짜증이 밀려 든다.

 

 

 

# 개념도에는 금방인 것처럼 보이더니 709.5봉 오르는 능선은 여러차례 계단식으로 치고 오르게 만든다. 야영지에서 정상까지 가까운 것으로 예상하고 이것저것 짐을 너무 많이 챙겼더니 무게의 압박도 대단하다. 이래저래 오늘 예상 못한 고생을 많이 한다.

 

 

 

# 꽤 고생을 한 이후에 드디어 능선 마루금에 올라 서게 된다.

 

 

 

# 야영지를 출발해서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마눌에게는 30여 분이면 도착하리라 했는데 거짓말장이가 되어버렸다.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어 줘야했다.

 

 

         

# 일단 마루금에 오르면 이후는 편안하다. 하품리에 있는 양자산 들머리를 출발하면 이 능선을 따라 올라오게 된다.

 

 

 

# 조금 진행하면 갈림길이 있는 709.5봉이 나온다.

 

 

 

# 하품리에서 올라오는 능선길과 백자리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곳이다. 백자리로 내려가면 각시봉이 나오고 그 아래에 영명사가 있다.

 

 

 

# 백자리 방향에 넓은 헬기장이 있다.

 

 

 

# 스노우볼, 정말 귀찮게 만든다. 발 털기 귀찮아 아이젠을 벗어 버렸다.

 

 

 

# 잠시 내리면 안부에 갈림길이 나온다.

 

 

 

# 성덕리 갈림길이다.

 

 

 

# 그 오르막 위에 앙자산 정상이 있다.

 

 

 

# 정말 힘들게 올라왔다. 정확히 두 시간이 걸렸다. 정상석엔 709.5m라 적혀 있다. 인터넷에 널려 있는 산악 정보에도 709.5m로 나온다. 하지만 지리원 지도에는 710.2m로 나오니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 이 산의 자락이 펼쳐있는 3개의 시군이름이 모두 적혀 있다.

 

 

 

# 정면 너머로 이 산과 부부관계라고 하는 앵자봉이 건너다보인다. 애초에 저곳까지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아나 콩콩! 오늘은 꿈도 못 꿀 일이다.

 

 

 

# 꾀꼬리가 알을 품은 형상이라는데 무얼 보고 그렇게 판단하였을꼬? 지금은 알 대신 여주쪽과 광주쪽에 골프장을 두 개나 품고 있다. 하지만 앵자봉은 천주교 성지인 천진암을 품고 있는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 정상석 뒷쪽으로는 양평쪽 조망이 장쾌하다.

 

 

 

# 양자고개 거쳐 성덕리로 내려가는 산줄기가 우측에 펼쳐 있다.

 

 

 

 

# 좌측엔 남한강과 그 속에 떠 있는 대하섬이 보인다. 저 멀리 우뚝한 것은 화야산인가?

 

 

 

# 우측 뒷쪽으로는 용문산이 우뚝하다.

 

 

 

# 중앙 뒷쪽으로는 유명산과 소구니산이 보인다.

 

 

 

# 중앙의 산은 매봉산인가? 뒷쪽의 산줄기는 중미산과 통방산일 것이다.

 

 

 

# 그 전방의 조망이 훌륭하여 파노라마로 펼쳐 보았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정말 예상 외로 힘들게 올라 온 양자산의 정상이다.

 

 

 

# 막걸리 한 잔 아니 마실 수가 없다. 잔 꺼내기 귀찮아 그냥 병나발을 불었다. 원래 저렇게 막가는 술꾼은 아닌데...

 

 

 

# 캬아~ 좋쿠나!

 

 

 

# 정상에서 오래 쉬었다. 앵자봉 다녀 오는 것을 포기하니 편안하다. 느긋하게 조망 감상에 빠져 본다. 용문산과 장군봉의 모습이 빼어나다.

 

 

 

# 가로로 흐르는 남한강의 물빛이 짙다.

 

 

 

 

# 오래 쉰 후 앵자봉 방향으로 출발한다.

 

 

 

# 잠시 편안하게 가는가 싶더니,

 

 

 

# 전망봉 입구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떨어진다.

 

 

 

# 바짝 긴장한다.

 

 

 

# 체력 좋아 오름막은 잘 타는데 급경사 내리막에서는 아직 많이 조심스러워 한다.

 

 

 

# 조망이 참 훌륭한 산이다.

 

 

 

# 잠시 진행하면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 강하면 동오리로 가는 길이다.

 

 

 

# 우리는 앵자봉을 전방에 두고 계속 하산이다.

 

 

 

# 좌측 아래 멀리로 어제 올라 갈때 지났던 간이화장실이 보인다.

 

 

 

# 내리막은 편안하다. 마눌 말대로 했으면 차에 짐을 실어 두고 간편한 차림으로 이 능선을 따라 정상을 향했을 터이다.

 

 

 

# 그랬으면 고생 전혀없이 콧노래 부르며 정상을 다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재미는 덜했을 것이고...

 

 

 

# 자작나무 너머로 지나온 정상부를 올려다 본다.

 

 

 

 

# 저 송전탑 뒷쪽 능선을 따라 치고 올랐다. 옆에서 보니 경사가 가파른 것이 고생한 이유를 알겠다.

 

 

 

# 이곳에도 급경사 내리막이 나타난다.

 

 

 

 

# 주어재까지 계속 내려가야 하니 로프구간이 연달아 나타난다.

 

 

 

# 기상 좋은 소나무의 기를 받아 본다.

 

 

 

 

# 하산길도 생각보다 멀다. 계단식으로 급경사가 반복된다.

 

 

 

# 산책하듯 가벼운 산이라 얘기했는데 의외로 고생을 시켜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

 

 

 

# 중간에 갈림길이 나타나 또한번 헷갈렸다.

 

 

 

 

# 삼각점이 있는 354.7봉을 넘어 내린다.

 

 

 

# 그 내리막 아래에 드디어 주어재가 나온다.

 

 

 

# 정상에서 2.4km거리였다. 개념도에는 30분 거리라 적혀 있는데 이곳엔 1시간 15분 거리라 적혀 있다. 우리는 1시간 5분 걸렸다.

 

 

 

# 고개를 넘어가면 양평 강하면으로 넘어 간다.

 

 

 

# 우리는 하품리로 하산.

 

 

 

# 바로 아래에 앵자봉을 휘어 감는 임도가 나타난다.

 

 

 

# 저 앵자봉 자락에 옛 주어사지가 있나 보다.

 

 

 

# 편안한 임도를 따라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차를 세워 둔 곳이 나온다.

 

  

양자산은 애초에 마눌의 주장대로 야영지에서 하산하여 짐을 차에 실어 두고 주어재를 통해 정상을 향했다면 정말 산책하듯 편안하게 다녀 올 수 있는 산이다.

 

하지만, 짐을 차에 싣는 순간 다시 산을 오를 마음이 생기겠는가? 또, 산꾼들이 빈몸으로 산에 오르는 모양도 어색하고 해서 그냥 등짐 진 채로 산을 올랐다가 중간에 길을 잃어 큰 곤욕을 치렀다. 평상시 사람들 왕래 적어 희미한 길이 밤새 내린 눈에 덮여 완전히 사라진 까닭이다.

 

그야말로 '다기망양(多岐亡羊)'인데 하필 그 장소가 '양자(楊子)'의 산이어서 그 고사의 주인공과 일치하는 것은 놀라운 인연이었다. 이래저래 양자산은 기억에 오래 남을 산이다. 무엇보다 그 품속에 숨겨 두고 있는 작은 잣숲의 아름다움은 참으로 훌륭하였다. 다만, 그 숲이 제발 무분별한 인간들의 침투를 피해 오래오래 간직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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