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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6코스/쇠소깍외돌개 올레-서복이 돌아간 포구!! 본문

길이야기/제주 올레길

[제주올레길]6코스/쇠소깍외돌개 올레-서복이 돌아간 포구!!

강/사/랑 2014. 10. 10. 20:00
 [제주올레길]6코스 - 쇠소깍외돌개 올레

 

 

'서복(徐福)'은 고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 시대의 방사(方士)이다. 방사란 신선의 술법(術法)을 닦는 사람을 말한다. 흔한 말로 도사쯤 되겠다.

 

TV를 보면 계룡산이나 태백산 등 높은 산기슭에 움막을 짓고 살면서 도 닦는다고 요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생활 한복을 입고 있다. 기삿거리에 목마른 PD들이 너도나도 산으로 계곡으로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서는 이 방송 저 방송 마구 출연시키는 통에 일부는 제법 탤런트 같은 냄새를 풍기는 이도 있다.

 

서복도 그 시절 그렇게 세상에 이름을 얻은 이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원래는 제(齊)나라 사람이었다. 제나라는 강태공의 영지(領地)이다. 지금의 산동성 일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제환공(桓公)이 춘추패자(春秋覇者)가 되었을 때는 중원을 호령하는 주도국이었으나, 기원전 221년에 진시황에게 멸망당했다.

 

서복이 어떻게 진나라의 방사가 되었고 진시황의 총애를 받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사기(史記)에 "齊人徐市等上書, 言海中有三神山 名曰蓬萊方丈瀛洲仙人居之. 請得齋戒 與童男女求之. 於是遣徐市發童男女數千人 入海求仙人(제나라 사람 서복 등이 상소하기를 저 멀리 바다 건너 삼신산 즉 봉래, 방장, 영주산에 신선이 살고 있으니 동남동녀 수천 명을 데리고 가서 모셔 오겠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서불은 서복의 다른 이름이다.

 

이후 서복은 기원전 219년과 220년 사이에 불로초(不老草)를 찾기 위한 두 번에 걸친 대장정을 떠난다. 서복의 원정대는 육십 척의 배와 오천 명의 일행, 삼천 명의 동남동녀(童男童女)를 대동한 대규모였다. 이런 대규모 원정대를 편성하자면 엄청난 인원과 자원의 동원으로 막대한 국고가 소모되었을 것이다.

 

서복의 원정 흔적은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에까지 이어지지만, 두 번째 원정인 기원전 210년 진황도를 떠난 서복은 다시는 진나라로 귀국하지 않았다. 진시황의 처벌이 두려워 잠적하고 만 것이다.

 

이를 보아 서복은 천하를 통일한 황제의 자부심과 최고 권력을 영원히 유지시키고 싶어 하는 권력자의 욕심을 자극해서 허황되고 달콤한 말로 아부하여 자신의 이익을 탐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전형적인 사기꾼의 모습이자 행태이다.

 

불로초를 찾기 위한 서복의 발길은 우리나라 남해안 곳곳에 전설로 남아 있다. 남해 상주 양아리, 거제 해금강 우제봉, 소매물도 등대섬의 글씽이강정, 제주 정방폭포 등에 '서복과차(徐福過此)' 혹은 '서불과지(徐市過之)'란 글씨가 금석문으로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옛부터 서복과차 혹은 서불과지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왔는데, 오랜 세월이 흘러 글씨가 비바람에 씻겨 사라지거나 태풍에 훼손되어 글씨가 남아 있지는 않다고 한다. 전설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제주의 경우 서복이 정방폭포에 남겼다는 '서불과차'란 글씨 때문에 '서귀포(西歸浦)'란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하니 그 영향력이 수천 년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서귀포란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란 뜻이다.

 

현재 서귀포시에서는 정방폭포 곁에 서복전시관을 만들어 서복과의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나날이 증가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겨냥한 포석일 것이다. 거제나 남해 역시 수백억의 예산을 들여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자체들이 하나같이 중국 관광객의 주머니를 노리고 주체성 없는 얄팍한 상술을 부리고 있어 영 입맛이 쓰다.

 

따지고 보면 최고 권력자의 욕심을 자극해 막대한 국고를 낭비하게 한 사기꾼에 불과한 인물인데, 무엇을 전시하고 기념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물론 해당 지자체에서야 자기 고장이 서복이 불로초를 찾아 올 정도로 살기 좋은 이상향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겠지만... 

 

그나저나 서복은 여러 가지로 문제적 인물이다. 불로초를 찾으러 왔으면 열심히 약초나 찾을 것이지 이곳저곳 가는 곳마다 바위에 낙서를 남겼으니 말이다. 요즘 대한민국은 소급입법이나 피해자 자력구제 같은 초법적인 일들이 빈발하니 이천이백 년 전 일이지만 서복에게 자연보호법 위반으로 벌금을 매길 수도 있겠다.

 

 


서복이 돌아간 포구!!


구간 : 제주 올레길 6코스(쇠소깍~외돌개)
거리 : 구간거리(14km), 누적거리(175.3km, 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4년  9월 26, 27일. 쇠와 흙의 날.
세부내용 : 쇠소깍 ~ 생이돌 ~ 제지기오름 ~ 보목포구 ~ 구두미포구 ~ 소천지 ~ 보목하수처리장 ~ 검은여쉼터 ~ 소정방폭포
 ~ 제주올레사무국 ~ 정방폭포 ~ 서귀포항 ~ 천지연폭포 ~ 삼매봉 ~ 외돌개.


  

제주 올레 세 번째 출정의 마지막 날이다. 이번 코스는 서귀포 시내를 통과하는 구간이다. 서귀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단에 있는 도시이고, 그만큼 가장 따뜻한 고장이다.

 

수려한 자연환경과 빼어난 관광지가 많아 사시사철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같이 조용한 것 좋아하고 관광분위기를 싫어하는 올레꾼에게는 아주 마땅치 않은 장면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소란스러운 곳은 최대한 빨리 스쳐지나 갈 작정을 하고 짐을 정리했다.


 

이중섭과 서귀포 

 

1916에 태어나고 1956에 사망했다. 한국 근대서양화의 대표 화가. 주요 작품으로는 〈서귀포의 환상(1951)〉,〈물고기와 노는 세 어린이(1953)〉,〈황소(1954~1954)〉,〈달과 까마귀(1954)〉등이 있다. 호는 대향(大鄕). 이중섭이 제주도 서귀포로 피난 온 때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경이었다. 이중섭이 일본 여자인 이남덕[본명 야마모토 마사코]과 결혼해서 북한 지역인 원산에서 살다가 피난길에 나선 것은 1950년 12월 10일로 그때까지 그린 작품을 고향에 있는 어머니께 맡기고, 그리다 만 풍경화 한 점을 들고 피난길에 올랐다. 이때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 조카 이영진과 함께 원산항을 출발하여 3일 후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한 달 정도 어려운 생활을 하던 이중섭 가족은 조카 이영진이 먼저 와 있던 제주도로 들어왔다. 이중섭 가족이 서귀포에 도착해 머문 곳은 알자리 동산으로, 이 마을 반장이던 송태주·김순복[2012년 현재 이중섭 거주지 거주] 부부가 이중섭 가족에게 4.6㎡[약1.4평] 정도의 방을 하나 내주었다. 이중섭 가족은 이곳에서 피난민 배급품과 고구마로 연명했고, 이러운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이중섭은 「서귀포의 환상」 등 많은 명작들을 남기고 1951년 12월 경 부산으로 떠났다. 이중섭의 서귀포 시대는 불과 11개월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개의 대표작을 남기고 있다. 서귀포로 피난을 와 얼마 되지 않아 그린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의 풍경화들은 인상주의 화풍의 평범한 그림으로서 이후 통영 시대의 풍경화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서귀포에서 자주 대했던 섬·게·물고기·아이들·귤이라는 소재는 이후 이중섭의 유화나 담배를 싼 종이에 그린 은지화에 자주 등장하면서 이중섭의 대표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특히 이중섭의 서귀포 시대의 소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게였다. 배가 고파 게를 많이 잡아 먹다보니, 그것이 미안하여 게를 그리게 되었다는 화가의 말은 곧, 게를 관찰 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음을 의미한다. 제주도를 떠난 이후 그린 「그리운 제주도 풍경」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게의 모습은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가장 활력 있는 소재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중섭이 가족의 사랑을 더욱 심도 있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마지막 행복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던 서귀포 시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다·아이들·게·물고기 등의 소재들은 은지화에서도 하나가 되어 서로 뒤엉켜 있다. 서귀포에서 더욱 친숙해진 이 소재들은 이중섭 그림의 강한 모티브로서 작용했다. 결국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생애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서귀포 시대와 관련한 이중섭의 그림들은 따뜻하고, 해학적이고, 즐겁고, 포근한 사랑으로 표현됐다. 이중섭의 작품 중에서 서귀포 시대와 그 이후의 그림들이 전쟁이라는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이상세계로 보이는 것은 아마도 전쟁 기임에도 불구하고 서귀포에서 느낄 수 있었던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또 이중섭은 서귀포 시대에 초상화 4점을 그렸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이웃 주민 세 사람과 집주인 송태주다. 이중섭은 원산에 있을 때 어머니가 그려달라고 해도 다음으로 미루었을 정도로 초상화 그리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나 이중섭은 이웃 주민과 집주인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마당에 쌓아 놓은 땔감 위에 전쟁터에서 사망한 세 사람의 증명사진을 올려놓고 초상화를 그려 주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주 올레길 6코스 쇠소깍외돌개 올레 개념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5코스를 마치면서 곧장 6코스를 이었다.

 

 

 

# 쇠소깍은 전형적인 관광지의 모습이다. 시각이 늦어 소란스러움이 많이 줄었지만 이곳저곳 음악소리 요란하고 조심성 없는 웃음소리 낭자하다.

 

 

 

# 효돈천이 쇠소깍을 이루고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 쇠소깍의 소란함을 피해 6코스를 미리 진행했다. 나중 밤중에 다시 이곳으로 와보니 아침 일찍 일어나기만 하면 이곳에 여럿 있는 데크에서 야영해도 될 것 같았다. 밤이 되니 관광객 모두 떠나고 장사집들도 초저녁부터 철시하여 완전히 적막강산으로 변했다.

 

 

 

# 해안길을 잠시 따르면 하효항이 나온다.

 

 

 

# 하효항은 굉장히 크게 조성되어 있지만 의외로 한산하였다.  드나드는 배도 낚싯배 몇척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항구 서쪽 끝에 넓은 광장이 있고 몽골텐트 형식의 그늘막이 서있다. 그곳에 야영자리를 잡고 날이 어두워지길 기다렸다. 사람 왕래도 드물고 무엇보다 화장실을 갖추고 있어 야영지로 알맞았다.

 

 

 

# 그늘막이 밤이슬을 막아 주고 뒷언덕이 바람을 막아 주어 의외로 아늑하였다.

 

 

 

# 집 지어 두고 화장실에 들러 가볍게 씻었다.  마침 준비했던 개스가 간당간당해서 하효항 인근을 뒤졌는데, 하나 있는 슈퍼가 일찍 문을 닫아버렸다. 개스 구입하고 식수도 구할 겸해서 쇠소깍으로 다시 내려 갔다. 그런데 오후에 시장판처럼 떠들석하던 쇠소깍이 인적 끊어지고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그 곳에 있는 편의점은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큰일이다. 개스 떨어지면 곤란한데...  주변이 너무나 고요하길래 그곳 화장실에서 번개처럼 찬물 한 바가지 뒤집어 썼다. 개운한 기분으로 돌아 오면서 불켜진 팬션과 식당 서너곳에 들러 개스를 팔 수 있냐 물었는데, 모두 팔것은 없댄다. 생쌀 씹을 각오하고 돌아와서 하효항 뒤에 있는 팬션 한 곳을 마지막으로 들렀는데 다행히 개스 하나를 구할 수 있다.

 

 

 

 

# 오후에 효돈 하나로마트에서 싱싱한 고등어와 우도땅콩막걸리를 구입했다. 땅콩막걸리는 정말 오랜만이다.

 

 

 

# 제주흑돼지는 김치찌개에 들어 갔다.

 

 

 

# 바람 걱정과 주변 방해없이 편안한 밤을 보냈다.

 

 

 

# 눈 비비고 밖으로 나오니 하효항이 아침노을에 물들기 시작한다.

 

 

 

# 얼른 카메라 챙겨 방파제로 달려 갔다.

 

 

 

# 가는 동안에 벌써 일출이 많이 진행되었다.

 

 

 

# 천지를 붉게 물들이는 태양의 정기를 마음껏 마셨다.

 

 

 

# 아마도 올해 마지막 보는 제주의 일출일 것이다.

 

 

 

 

 

# 아침 바닷바람을 맞으며 오래 그 광경을 즐겼다.

 

 

 

# 지귀도는 마라도와 그 생김새가 비슷하다.

 

 

 

# 아침 끓여 먹고 짐 챙겨 떠날 준비를 한다. 항구 한 쪽에 있는 해녀사무실 건물의 그늘이 정말 좋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끊임없이 불어 주고 있다. 그늘 바깥의 제주 햇살은 아침부터 한여름 뙤약볕이다.

 

 

 

# 9시 20분쯤 길을 나섰다. 항구 우측 언덕 위로 길이 휘감아 오르게 되어 있다.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정자와 체육시설이 있다. 이곳도 간밤에 야영후보지로 생각했으나 길가에 있어 포기했다. 아침에 보니 지나는 차보다 일찍 운동나온 할머니들이 많아 야영지로 불합격이다.

 

 

 

# 잠시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온다. 자동차길은 우측으로 우회하고 올레길은 직진이다.

 

 

 

# 그곳에도 푹신한 잔디밭과 정자들이 있다. 이곳은 한적해서 야영지로 아주 알맞다.

 

 

 

# 하효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 해안길을 잠시 더 가면 '생이돌'이 나온다. '생이'는 새의 제주말이다. 새들이 저곳에서 쉬어간다고 해서 생이돌라 부른다.

 

 

 

# 생이돌에서는 하효항이 건너다 보인다.

 

 

 

# 밤새 파도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이곳 생이돌의 파도소리였다. 생이돌은 난바다의 파도가 곧바로 부딛치는 곳이다.

 

 

 

 

# 바람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강하게 부는 곳인지 벼랑에 자란 나무들이 바람 방향으로 빗질한 듯 가지런히 누워있다. 그 너머로는 한라산이 우뚝하다.

 

 

 

# 올겨울에 한라산 눈구경하러 올 계획을 세워 보아야겠다.

 

 

 

 

# 전복내장 쏟아 놓은 것 같은가?

 

 

 

# 생이들을 떠나 다시 진행한다.

 

 

 

# 섶섬이 점점 가까워진다. 섶은 땔나무를 말한다. 나뭇단처럼 생겨 그런 이름을 얻었나 했더니 이 섬의 옛이름이 숲이 우거져 '슾섬', 한자로 '森島'라 불렀는데, 나중에 변음되어 '섶섬'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섶섬이 건너다 보이는 쉼터에서 한숨 돌렸다.

 

 

 

# 섶섬은 짙푸른 난대림의 보고이다. 예전엔 조릿대가 밀생했다는데, 지금은 녹나무, 아왜나무, 호자나무, 북가시나무 등이 우점하고 있다. 바다낚시 포인트로도 유명하단다.

 

 

 

# 보목동 포구 우측에 제지기 오름이 보인다. 저곳을 올라야 한다.

 

 

 

# 제지기 오름도 정면으로 치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 우측으로 돌아 가서 그곳에서 오르게 되어 있다.

 

 

 

# 오름에 들어서자 비로소 햇볕을 피할 수 있다.

 

 

 

# '쌓을 저(貯)'자가 쓰였다. 낟가리를 쌓아 둔 모양이란다. 그렇다면 앞바다에 있는 섶섬 역시 숲섬에서 변음된 것이 아니라 '섶'에서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 나무계단길이 위로 이어진다.

 

 

 

# 상단부에서는 서귀포 일대와 한라산이 올려다 보인다.

 

 

 

# 오늘은 하루종일 한라산 구경을 실컷 한다.

 

 

 

# 지나온 올레길의 모습이다. 하효항, 쇠소깍, 저멀리 남원항구까지 보인다.

 

 

 

# 정상은 봉긋한 잔디밭이다.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다.

 

 

 

# 바다쪽으로 작게 조망이 트였다. 저멀리 문섬이 보인다.

 

 

 

# 문섬은 민둥섬이라 '믠섬'이라 불렀다. 한자로는 '대머리 禿' 자를 써 '독도(禿島)'이다. 한자음 그대로는 '문도(文島)' 적었는데, 왜인들이 모기가 많은 섬이라고 '모기 蚊'을 써서 '문도(蚊島)'라 불렀다. 낚시 포인트로 유명하고 다이빙 하는 이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다. 뒷쪽의 섬은 범섬이다. 

 

 

 

# 서귀포 시가지가 건너다 보인다.

 

 

 

# 섶섬은 정면이 이곳에서 제대로 보인다.

 

 

 

# 보목포구.

 

 

 

# 체육시설 좌측으로 내려간다.

 

 

 

# 서귀포지역에 아주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식물이다. 잎이 뻥튀기한 곰취 느낌이 난다. 꽃도 곰취와 아주 유사하다. 다만 잎이 곰취보다 두껍고 기름지다. 또 곰취잎은 가장자리 끝에 작은 톱니바퀴처럼 갈래져 있는데 이 넘은 그렇지 않다.

 

 

 

# 파초일엽도 광범위하게 자라고 있다.

 

 

 

# 계단길을 따라 길게 내려 간다.

 

 

 

# 포구앞 도로에 내려 섰다. 남은 거리는 11km이다.

 

 

 

# 보목포구.

 

 

 

# 마을 안길로 들어가 상효천을 건넌다. 밀물과 함께 숭어 치어들이 떼를 지어 천을 따라 올라 오고 있다. 그물질 한 번이면 매운탕잔치를 벌이겠다.

 

 

 

# 포구와 마을을 벗어나 언덕을 치고 오른다.

 

 

 

# 그 언덕위에 비닐하우스로 만든 작은 가게가 있다.

 

 

 

# 비닐하우스로 한 서너평 남짓한 작은 가게를 꾸몄는데, 바람 시원하고 조망 좋은 곳이다.

 

 

 

# 앞이 툭 트였다.

 

 

 

 

# 쉰 중후반의 아주머니가 쉰다리를 마시고 가란다. 

 

 

 

# 이것이 쉰다리이다. 제주 특산의 음료이다. 뭍의 감주(甘酒), 즉 식혜와 비슷한 것이다. 다만 이곳의 쉰다리는 누룩을 넣어서 약간의 알콜이 들어있는 것이 다르다.  쉰다리는 예전 제주사람들이 쉰 밥을 이용해서 만든 술이다. 쉬어서 버리기 아까운 밥에다가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것이다. 약간 시큼하면서도 단맛이 난다.

 

 

 

# 쉰다리 외에도 감귤과 제주 갈옷 등을 팔고 있었다. 이 작은 가게를 꾸며 준 남편은 올해 초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그 말씀을 하면서 눈에 눈물이 맺힌다. 한참을 같이 사는 얘기, 주변 얘기 등을 나눴다.

 

 

 

# 감귤도 사서 같이 나눠 먹고 쉬다가 한 무리의 단체 올레꾼이 오길래 우리가 호객행위를 해서 가게에 들어 오게 하고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 햇볕 가려진 숲길로 들어간다.

 

 

 

# 잠시 후 언덕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 그곳에는 할머니 한 분이 역시 비슷한 가게를 열고 계신다.

 

 

 

# 작은 체육공원을 지난다.

 

 

 

# 이 동네에도 감태 수확이 한창이다.

 

 

 

# 두 섬이 붙었다 떨어졌다하면서 길잡이를 한다.

 

 

 

# 해안도로 한 켠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다.

 

 

 

# 가까이 가보니 프리 마켓이 열리고 있다. 서귀포 인근에 자리잡은 젊은 예술가나 공인들이 각자 만든 공예품들을 벼룩시장을 열어 팔고 있다. 토요일 이른 시각이라 막 시장이 준비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 작은 음악회를 열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 잠시 구경하다가 해안으로 향한 계단길을 올라 간다.

 

 

 

# 작은 공원에 섶섬과 구두미 일대를 조망하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 공원 우측 끝에 소천지 가는 길이란 팻말이 붙어있다.

 

 

 

# 그늘 짙은 상록수 숲속을 걸어 간다.

 

 

 

# 그 중간 좌측 아래에 소천지가 있다.

 

 

 

# 용암 굳은 암석들의 모양이 백두산 천지를 닮았다고 소천지라 부른다고 나와 있다. 약간 억지스러워 보여 한바탕 웃었다.

 

 

 

# 이 데크에서 야영하면 파도소리는 실컷 듣겠다.

 

 

 

# 소천지를 떠나 다시 숲길을 걷다가 이내 노출된 해안으로 다시 나왔다.

 

 

 

# 소천지를 멀리서 다시 본다.

 

 

 

# 계단길로 올라 간다.

 

 

 

# 그곳에 보목하수처리장이 있다. 하수처리장 안으로 들어가서 좌측을 휘감아 나간다.

 

 

 

# 다시 해안길로 진행한다. 전방의 건물은 국궁장이다. 과녁은 바다 건너 좌측 해안에 있었다.

 

 

 

# 이 구간은 그늘이 없어 뜨거운 햇살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걸어야 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무더웠다.

 

 

 

# 인공폭포가 조성되어 있다.

 

 

 

# 검은여에서 좌측으로 꺾어 내륙을 향했다. 제주 칼호텔이 해안을 가로막고 있어 우회해야 하는 곳이다. 칼호텔 후문을 지나 시내 안으로 들어 갔다. 후문 경비와 인사하고 잠시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 시내를 통과한다. 많이 뜨겁고 힘들었다.

 

 

 

# 다시 칼호텔 정문으로 해서 바닷가로 향했다.

 

 

 

# 바다를 다시 만났다.

 

 

 

# 그곳에 소정방폭포가 있다. 이름에 소정방이란 말이 들어 있어 당나라 장수 소정방과 관련이 있나 했는데,  그와는 무관하고 작은(小) 정방폭포라는 뜻이라 한다.

 

 

 

# 정방폭포처럼 폭포물이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곳이다. 종편 예능프로인 남남북녀를 보니 양준혁 커플이 이 소정방폭포에서 장수한답시고 우의 입고 폭포물을 맞는 장면이 나오더라.

 

 

 

# 폭포물은 이 바다로 곧장 떨어진다. 그 앞바다에 가두리 한 척이 떠 있다.

 

 

 

# 소정방폭포 윗쪽에 올레인증소가 있다. 인증소가 있는 이곳은 올레사무국이다. 올레길 아이디어를 낸 서모씨란 분이 이곳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그늘 찾아 안으로 들어가니 그 분은 없고 다른 직원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물 한 잔 얻어 마시고 그늘 신세 한참 지다가 길을 나섰다.

 

 

 

# 넓은 정원처럼 꾸며진 곳을 지난다.

 

 

 

# 그 정원 끝에 주차장이 나온다.

 

 

 

# 정방폭포 주차장이다. 폭포를 보러 온 관광객들이 아주 많다.

 

 

 

# 폭포를 보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난 원래 이런 자연 생태환경에 울타리 치고 돈을 받는 것에 거부감이 많다. 게다가 관광객들의 소음이 귀에 거슬려 얼른 그곳을 떠났다. 예전에 여러차례 보기도 했고...

 

 

 

# 그 윗쪽에 중국식 패루가 있는 서복기념관이 있다.

 

 

 

# 정방폭포는 그림으로만 보았다.

 

 

 

# 어찌 서복전시관을 만들 생각을 했을꼬?

 

 

 

# 정방폭포는 저 암벽 우측에 있다. 소리 우렁차서 굳이 보지 않아도 충분하였다.

 

 

 

# 전시관을 통과하여 정문으로 나갔다.

 

 

 

# 서귀포음식특화거리가 나왔다. 이곳은 전부 단체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집들이다. 때문에 음식이 부실하기 쉽다.  원래 부둣가의 이름 없는 식당이 훨씬 음식맛이 좋은 법인데 너무 허기가 져서 그냥 이곳에서 먹기로 했다.

 

 

 

# 그중에 가장 작고 단체 관광객 없는 집으로 들어갔다. 오분자기는 없고 전복뚝배기를 시켰는데 왠만은 하였다.

 

 

 

# 점심 먹고, 그 집에서 오래 쉬었다. 항구로 내려가는 길은 거리공원이 잘 꾸며져 있다.

 

 

 

 

# 서귀포여객터미널을 지난다.

 

 

 

# 서귀포 항구 앞 거리를 휘감는데 우리가 기대했던 오래된 음식점들이 몇개 눈에 들어 왔다. 아쉽다. 저런 곳에서 먹었어야 하는데...

 

 

 

# 마눌은 이번 올레길 첫날부터 발바닥에 물집 너댓 개를 달았다. 그 발을 한 채 나흘 연속 무거운 짐 지고 걸었다. 물집 터뜨려 소독한 뒤 밴딩하는 것으로 버텼는데, 서서히 한계에 도달하는 듯했다. 서귀포항 어느 건물 그늘에서 상처 씻고 재정비를 했다. 항구를 벗어나면 올레길은 서홍천을 따라 북상하여 천지연 폭포를 들렀다가 돌아 나오게 되어 있다. 그곳 역시 정방폭포처럼 입장료 받는 곳이고 관광객 넘치는 곳이다. 우리는 천지연폭포는 패스하고 칠십리교를 건너 곧장 남하하는 길을 택했다.

 

 

 

# 칠십리 야외공연장을 지나 아래로 내려간다.

 

 

 

# 항구 입구에 있는 새섬으로 들어 가는 새연교가 보인다.

 

 

 

# 새연교 못 미쳐 올레길은 차로를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간다.

 

 

 

# 구불구불 고갯길을 크게 휘감아 돌아 올라가는 길이다. 꽤 힘이 들었다. 

 

 

 

# 고갯길을 치고 올라가면 커다란 공원이 나타난다. 그냥 도로 따라 가도 되고 공원을 한바퀴 돌아도 되는 곳이다. 우리는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 넓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다. 이름이 칠십리공원이다.

 

 

 

# 공원 너머로 구름 모자 쓴 한라산이 건너다보인다.

 

 

 

# 공원안으로 깊이 들어가자 전망데크가 나온다. 그곳에서는 천지연폭포가 조망된다.

 

 

 

# 굳이 그곳에 가지 않아도 이렇게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 신혼여행때 와보고 처음이다. TV를 보니 한복 입히고 사진 찍어 주는 사람이 아직 있더라.

 

 

 

# 그 전망데크에서 폭포 건너다 보며 오래 쉬었다.

 

 

 

# 다시 도로에 합류해서 삼매봉을 향해 올라간다. 공사하는 레미콘들이 입구를 막고 있어서 자칫 지나칠 뻔 했다.

 

 

 

# 방송중계소 방향으로 올라가면 된다.

 

 

 

# 삼매봉은 제법 길게 올라간다.

 

 

 

# 길게 능선으로 오르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꺾어 올라가는 형태이다.

 

 

 

# 뙤약볕에 정수리가 따갑다.

 

 

 

# 그곳에 전망데크가 있다.

 

 

 

# 한라산을 조망한다.

 

 

 

# 월드컵 경기장 근처에 있는 고근산이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고장 서귀포. 뭍은 가을이 한창인데 이곳은 아직 한여름이다.

 

 

 

# 다시 한호흡 올라가면 삼매봉 정상에 도착한다. 시멘트 정자가 있다.

 

 

 

# 정자에서 이곳저곳 조망 구경하다가 마무리를 위해 출발한다. 삼매봉에서 외돌개까지는 제법 깊게 떨어져 내린다.

 

 

 

# 외돌개 입구 도로에 떨어진다.

 

 

 

# 이곳도 관광지라 관광객들로 붐빈다.

 

 

 

# 바닷가 입구에 6코스 종료 인증소가 있다.

 

 

 

# 문섬이 건너다보인다.

 

 

 

# 외돌개 바닷가로 내려 가는 중턱에 넓은 공원이 있고 작은 매점이 하나 있다. 그곳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마셨다.

 

 

 

# 7코스 가는 길을 확인했다. 내년 봄쯤 올 수 있으려나?

 

 

 

# 그렇게 사일간의 올레길 순례를 모두 마치고 택시 타고 서귀포 올레시장으로 향했다. 먼저 시장 근처에 있는 목욕탕에 들러 사일간의 묵은 때를 씻었다. 깨끗이 씻고 새옷으로 갈아 입은 후 이중섭거리를 구경했다.

 

 

 

# 전쟁때 이곳으로 피난와서 생활했던 이중섭을 기념한다는 이 거리는 명성과는 달리 볼 것이 별로 없었다.

 

 

 

# 시간이 있었다면 이중섭이 살았던 집이라도 찾아보련만 일정이 빡빡하니 대충 훑어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 서귀포 올레 시장도 구경했다.

 

 

 

# 시장을 상당히 깔끔하게 단장해 두었지만 특별한 먹거리나 구경거리는 없었다.

 

 

 

# 시장 가운데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둔 것은 특색있었다.

 

 

 

# 이번에도 우리는 오메기떡을 구입했다. 저 사람들은 하루종일 둘러 앉아 떡만 빗고 있었다.

 

 

 

# 인터넷에서 적극 추천한 순대국밥집을 찾았다. 내 입에는 잘 맞았는데 마눌은 별로였던 모양이다.

 

 

 

# 이후 경남호텔 앞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서귀포에서 제주 가는 것보다 더 빨리 김포에 도착하고 다시 전철 타고 서울로 이동, 그 곳에서 자동차 찾아 집으로 귀가했다. 집에 들어서니 아직 12시가 못 되었다.

 

 

 

그렇게 나흘간의 행군으로 제주 올레길 세번째 출정을 마무리했다. 이로써 제주올레길 총 10개 코스를 걸었고, 처음 세운 원칙대로 내내 무거운 박배낭에 야영하면서 진행했다.

 

이번 올레길 출정은 첫날부터 너무 무리한 진행을 하는 바람에 둘 다 부상을 당했고, 그 몸으로 사일간의 계획된 코스 전부를 걷느라 많이 힘들어 하며 전 구간을 걸어야 했다.

 

특히 마눌은 이번 세 번째 출정이 정말 힘들었던지 다녀와서도 여러차례 불만을 표한다. 그녀 생각에는 이런 고집스런 방식의 올레길 순례가 미련한 일이라 여겨지나 보다. 그래서 남들처럼 간편한 차림과 게스트하우스 같은 숙박시설 이용을 강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올레길 전부를 두 발로 걷는다는 것 외에 제주 해안을 따라 제주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곳에서 우리도 집 한 채 지었다 허물었다 하면서 제주의 속살을 느껴보자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하여 앞으로도 우리의 올레길 걷는 방식은 이와 같으리라는 것을 그녀도 알고 나도 안다.

 

다만 세상에 '무조건'이나 '절대적'이라는 말처럼 폭력적인 수사(修辭)는 없는 법이니 상황에 따라 약간의 융통성이야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할 것이니 너무 걱정은 마시라고 어깨 두드려 주는 것으로 달래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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