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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31(가리왕산/加里王山)-가리왕산, 狂風속에 홀로 서다!! 본문
가리왕산이 뜨겁다. 2018년 2월에 개최되는 평창동계올림픽 스키활강경기장을 가리왕산 중봉에 건설하게 됨에 따라 환경파괴 논란이 뒤늦게 불붙은 탓이다.
2011년, 동계올림픽 삼수 도전이라는 유래 없는 도전 끝에 유치 경쟁에 성공했을 때, 당사자인 강원도는 물론 전(全) 국가적 경사로 온 국민이 환호하였다. 하지만 준비과정에서 환경문제라는 복병이 발목을 잡았고, 개발과 보존이라는 전형적 갈등 공식이 전개되었다. 그 갈등의 한가운데에 가리왕산이 서 있다.
국제스키연맹(FIS) 규정에 의하면 알파인스키 활강경기장은 표고차(表高差)가 최하 800m에 슬로프 전장 3,000m, 평균 경사도 17도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은 현재 강원도에서 해발 1,420m인 가리왕산 중봉이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것이 조직위의 결론이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희귀산림자원의 보고로 산림청이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보호하고 있는 가리왕산을 훼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가리왕산은 우리나라 유일의 원시림이라 불릴 정도로 생태계가 우수한 곳인데, 단 3일의 경기를 위해 그 우수한 원시림을 파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대안으로 다른 지역을 제시했지만, 가리왕산은 안되고 그곳은 된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또, 이미 타 대회를 진행한 바 있는 전북 무주의 슬로프를 사용하자고 하지만 거리 때문에 곤란한 일이고, 표고차 400m인 지역에서 두 번 활강한 후 합산하는 방안을 제시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직위 측은 환경단체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출발지점을 당초의 중봉이 아닌 하봉으로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럼으로써 산림보호구역 편입 면적이 처음 계획인 78㏊에서 56㏊로 줄게 된다는 것이다. 또, 대회를 치른 후 훼손된 산림을 원상복구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역주민들이 원상복구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왕 개발한 것을 추후 잘 이용해서 지역발전에 이용하자는 주장이다. 이래저래 활강경기장을 둘러싼 관련 집단들의 갈등은 그야말로 칡뿌리 얽히듯 등나무 가지 설키듯 배배 꼬여 가고 있다.
전 지구인의 겨울 축제라는 동계올림픽이 그 준비과정에서 갈등공화국 대한민국의 또 다른 갈등 요인으로 불씨를 키워가고 있고, 그 중심에 서 있는 가리왕산이 이 바람 저 강풍에 맨몸으로 찬바람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난마(亂麻)처럼 얽힌 갈등의 찬바람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가리왕산은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회동리와 평창군 진부면과 북평면에 걸쳐 있는 명산이다. 그 높이가 1,561m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 함백산, 태백산, 오대산에 이어 남한에서 아홉 번째로 높은 산이다.
외형으로는 웅장한 육산(肉山)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으며, 자작나무, 구상나무, 마가목, 단풍나무 등 각종 수목이 원시림에 가까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특히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간다는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부터 국가의 관리를 받은 생태계의 보고이다.
가리왕산이라는 이름은 옛 맥국(貊國)의 갈왕(葛王)이 이곳에 피난하여 성을 쌓고 머물렀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전해진다. 맥국은 강원도 춘천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는 고대의 小國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등에 “春州本貊國(춘주는 본래 맥국이다.)"라는 기록이 전해지나, 사료의 부족으로 그 실체에 대한 판단은 힘든 모양이다.
따라서 맥국 왕가의 계보 등은 알려진 바가 없을 텐데 갈왕의 존재나 행적이 전해진다는 것이 약간 의아스럽기는 하다. 전설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터이지만 말이다.
다만 홀로 짐작하기를 '가리'란 볏단이나 나뭇단을 차곡차곡 쌓아 둔 더미를 가리키는 말이니, 육산인 가리왕산이 곡식 쌓아 둔 낟가리처럼 생겨 그렇게 불렀을 수도 있겠다 싶다.
가리왕산은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 중 두 번째에 이름을 올린 산이다. 강/사/랑이 100대 명산 순례에 나선 이후 맨 처음부터 등정을 계획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뒤로 미뤄지기만 하였다. 그 세월이 3년여이다.
하지만 뉴스에 가리왕산과 관련된 갈등 상황이 자주 등장하고, 산꾼들 사이에서도 가리왕산 개발을 막기 위한 반대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더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다 지난 유월부터 시작된 가리왕산의 벌목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더이상 미루다가는 원시림 상태의 가리왕산을 영영 볼 수 없겠다 싶어 부랴부랴 등짐 챙겨 길을 나섰다.
가리왕산, 狂風속에 홀로 서다!! 일시 : 2014년 10월 4,5일. 흙과 해의 날 상세정보 : 장구목이 ~ 이끼계곡 ~ 장구목이 임도 ~ 샘터 ~ 주목군락지 ~ 정상갈림길 ~ 가리왕산 상봉/야영 ~ 정상갈림길 ~ 중봉 ~ 갈림길 ~ 주목군락지 ~ 철조망 ~ 자작나무 군락지 ~ 오장동 임도 ~ 흐리목 삼거리 ~ 임도 ~ 장구목이 임도 갈림길 ~ 이끼계곡 ~ 장구목이.
10월 4일. 단풍 소식은 아직 이르다. 하지만 단풍과는 별개로 가리왕산을 찾기로 했다. 지난 3년간 매번 계획만 세우다 뒤로 미뤄왔던 가리왕산行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영동고속도로를 달려본다. 만종분기점을 지나고 원주, 횡성, 면온, 장평을 지난 후, 속사나들목을 통해 고속도로를 나간다. 이후 59번 국도를 타고 남하하여 두타산을 지나고, 북평면으로 접어 든다.
막동계곡, 장전계곡을 지나 고개 하나를 길게 내려 가니 파란 염수보관통이 있는 장구목이가 나온다. 멀다! 이 먼 거리가 그동안 가리왕산行을 가로 막았던 이유중 하나이다.
장구목이에는 작은 공터가 있어 산행 온 사람들의 차량이 십여대 주차되어 있다. 한 켠엔 도로관리용 창고와 염수통이 있고, 그 곁에 간이화장실이 있다.
우리도 한 켠에 주차하고 가볍게 몸 푼 후 짐 챙겨 길을 나섰다.
가리왕산/加里王山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장구목이. 맑은 계곡이 흐르고 있다.
# 산행 온 사람들의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다. 전부 당일 산행을 온 사람들이다.
# 들머리로 향하는데 정선시내버스가 막 도착한다. 그곳에서 박배낭 멘 두 사람이 하차한다. 동무들이 있구나!
# 오후 3시 10분경에 들머리를 통과했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4km쯤 되고 가벼운 차림으로는 2시간 반, 박배낭으로는 3시간쯤 예상한다. 급할 것 없으니 우리는 쉬엄쉬엄 갈 작정이다.
# 들머리에서 자작나무가 반겨 준다.
#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 천천히 워밍업하며 올라간다.
# 등로 좌측으로는 장구목이 계곡이 이어진다. 물소리가 시원하다.
# 중간중간 작은 폭포들이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 여름 같으면 발 담그고 마음껏 쉬고 싶은 곳이다.
# 원시림의 존재만 생각했는데 계곡이 아주 좋은 곳이다.
# 산 하층부의 단풍은 이제 막 시작하려는 단계이다.
# 버스 타고 온 산객이 우리를 앞질러 올라간다. 두 사람이 내리더니 일행이 아니라 제각각 온 모양이다.
# 오늘 가리왕산은 잔뜩 흐린 날씨이다. 숲속에는 대낮인데도 광량이 부족하다. 때문에 사진이 깨끗하지 못하다.
# 입구에서 지나쳤던 산객이 짐 내려 놓고 맨몸으로 다시 올라간다. 아마도 여성의 짐을 들어 주러 가는 모양이다.
# 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만난다. 이후 등로는 계곡 좌측으로 계속 이어진다.
# 여름에는 물이 콸콸 넘치겠다.
# 날씨 흐리고 습도 높아 숲바닥은 축축하다.
# 버스에서 내렸던 다른 한 사람도 우리를 추월하여 올라간다. 배낭이 단촐하다.
# 가리왕산은 올림픽 때문인지 예산을 투입하여 등로를 정비하고 있다.
# 이끼계곡을 만났다.
# 마치 보를 쌓아 둔 듯 바위들이 층층 쌓여 있고 오랜 세월 사람 손을 타지 않아 파란 이끼가 그 바위들에게 두터운 옷을 입혀 주었다.
# 이끼가 싱싱하다. 계곡이 살아 있는 것이다.
# 가리왕산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산이 아니고, 수도권에서 거리가 먼 데다 이 쪽 장구목이 코스는 반대편 휴양림 방향보다 찾는 이가 드물어 그럴 것이다. 결국 사람 손을 덜 타야 자연은 그 본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 이끼계곡에서 한참을 쉬다가 다시 출발했다.
# 이끼계곡은 계속 이어진다.
# 사진 찍느라, 구경하느라, 물에 발 담그느라 사람들이 올라 섰던 바위는 맨살이고, 사람 발길 닿지 않은 곳은 자연 그대로이다.
# 이제부터 계곡과는 멀어지고, 경사는 더욱 가팔라 진다.
# 양치식물인 관중 우거진 곳을 올라 간다.
# 시루떡을 쌓아 둔 듯한 바위가 등로곁에 있다.
# 맨 처음 우리를 앞서 갔던 이를 다시 만났다.
# 국립공원의 산들처럼 등로바닥에 돌을 박아 두었다.
# 빗방울이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 예보는 전혀 없었는데 이게 뭔일인가?
# 다행히 쏟아지는 비는 아니다. 경사가 급격하게 가팔라진다.
# 그 경사 끝에 장구목이 임도가 있다.
# 가리왕산 임도는 그 규모가 크다. MTB 동호인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나중에 MTB 갖고 와서 한 바퀴 돌아 봐야 겠다.
# 임도를 건너 오르막에 몸을 싣는다.
# 산의 상단부로 가는 구간이라 경사가 급하다.
# 등로 정비를 위한 장비나 표식들이 눈에 띈다.
# 고도가 높아지니 잎들도 단풍이 들었다.
# 급한 경사와 박배낭의 무게가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 위로 올라 갈수록 단풍 든 숲이 나타난다.
# 커다란 잣나무 한 그루 바위 위에 위태롭게 뿌리를 얹었다. 그 자세로 수십년을 살아 마침내는 바위와 한 몸이 되었다.
# 똑같은 복장의 중년여성 두 분이 이 늦은 시각에 하산을 하고 있다.
# 우리는 위로 위로!
# 주목군락지가 나타난다. 척박하고 경사 급한 곳에서 꿋꿋이 버텨왔다.
# 가리왕산 상층부의 나무들은 대부분 수령(樹齡)이 아주 오래된 것들이다. 몇백년은 되었음직한 노거수(老巨樹)들이 즐비하다.
# 비탈진 곳에 자리 잡는 바람에 뿌리 근처의 공백부분을 스스로 채워 넣었다.
# 주목들도 대부분 아름드리이다.
# 이 참나무도 수령이 몇백년은 훌쩍 넘은 듯 하다.
# 그 나무의 정기를 받아 본다.
# 가파른 경사길이 계속 이어져서 많이 힘들다.
# 상충부는 제법 단풍이 많이 들었다. 울긋불긋 단풍 구경에 힘든 것을 조금 잊게 된다.
# 힘들어서 간식 먹고 쉬었다. 기온도 내려 가고 있다. 바람막이를 꺼내 입어야 했다.
# 이른 단풍구경을 이곳에서 한다.
# 비탈진 사면에 뿌리를 내려 가지 뻗어 올리고 단풍 물들였다.
# 다시 올라 가자!
# 반가운 이정목이다.
# 600m 남았는데 50분이라고? 코웃음 쳤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정말 그렇게 걸렸다. 샘터에서 오래 쉬긴 했지만...
# 이 넘은 희한하게 죽은 나무 덩걸에 뿌리를 내렸다.
# 둥근 도넛같은 고사목.
# 오르막 4km 거리를 군더더기 없이 밀어 올리는 형태라 상당히 힘이 든다.
# 평소 산에서 날렵하게 오르는 편인 마눌은 이 날 막판에 꽤 힘들어 했다.
# 힘내시게! 거의 다 왔소!
# 한차례 낑낑 밀어 올리면 샘터갈림길이 나타난다.
#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10여 미터 거리에 샘터가 있다. 갈수기 임에도 물이 콸콸 꽤 잘 나오고 있다. 중간 오르막에서 10여명 단체로 하산하는 혼성팀을 만났었다. 이곳 샘터 상황을 물으니 한 남자가 샘이 말랐더라고 알려 준다. 그래서 계곡에서 물을 채울 생각을 했는데, 그 남자의 태도나 차림 등이 아무래도 미심쩍어 나중에 다른 하산팀에게 다시 물으니 물이 잘 나오고 있더란다. 결국 처음 그 남자는 샘터에 가 보지도 않고 엉터리 정보를 알려 준 것이다. 그의 말을 들었더라면 무거운 물을 지고 두시간 넘게 쌩고생을 할 뻔 했다. 뭘까? 왜 그랬을까?
# 이 샘터는 물은 잘 나오는데 받아 놓고 보니 약간의 침전물이 있다. 그냥 먹기는 어렵고 끓여 먹어야 겠다.
# 엄청난 굵기의 주목을 만났다. 주목은 생장이 더딘 나무이니 저 정도면 몇백 년은 거뜬히 넘었을 것이다.
# 거목으로 자란 주목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 이 산의 가치가 사회적 이슈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 울퉁불퉁한 몸매에서 세월의 연륜이 느껴진다.
# 대단한 산이다. 이 나무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온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 주목군락지를 지나자 정상부가 가까워지는데, 갑자기 짙은 연무가 숲을 뒤덮는다.
# 마지막 힘을 모아 능선 마루금에 올라 선다. 정상 갈림길이다.
#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중봉이고, 정상은 우틀하여 능선을 따른다.
# 능선 마루금에는 찬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 게다가 짙은 연무가 숲을 온통 뒤덮고 있다. 오르는 도중에 약하지만 비까지 내렸다. 아무래도 오늘 야간 날씨가 걱정이다.
# 마루금 일대는 철쭉과 진달래군락이다.
# 고사목들이 짙은 연무 속에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 마가목 군락도 눈에 띈다.
# 한차례 밀어 올리자 정상의 무인산불감시탑이 보인다.
# 드디어 정상이다. 장구목이에서 세시간 이십분쯤 걸렸다.
# 정상엔 연무가 짙고 찬바람 강하게 불고 있다.
# 장구목이에서 우리를 앞질러 간 두 사람 외에 또 한 사람이 먼저 설영을 해 두고 있다.
# 일단 정상석 인증부터 하고... 찬바람 강하고 기온 낮아 몸이 움추려 든다.
# 우리도 한 켠에 자리 잡고 집 한 채 지었다. 바람이 워낙 강해서 팩을 단단히 박아야 했다. 커다란 돌이 많길래 가이로프로 돌을 묶어 텐트 사면을 고정했다.
# 우리 옆집의 청년은 타프만 설치했다. 양 방향으로 노출되어 바람이 그냥 통과한다. 침낭이나 우모복 등으로 커버야 하겠지만 밤새 그의 안부가 걱정되었다. 오늘 이 산정에는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네 팀 다섯 명의 산꾼이 머물고 있다. 날씨 좋았으면 서로 모여서 막걸리 한 잔이라도 같이 나눴을텐데, 바람 강하고 기온 급강하하고 있어 다들 가벼운 인사정도만 나누고 자기집으로 들어 가버렸다.
# 바람때문에 집 짓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물티슈 목욕하고 새옷으로 갈아 입은 후 저녁상을 보았다.
# 굽고...
# 끓여서 막걸리 한 잔 마시니 맛나고 좋다.
# 저녁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밤이 깊어 갈수록 기온은 급강하하고 강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타프를 바람 방향으로 낮게 쳐서 바람이 텐트를 넘어 가게 만들었는데, 끝부분이 펄럭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밤새 말 달리듯 불어 재끼는 바람소리와 흔들리는 텐트소리를 들어야 했다. 새벽에 타프 떨리는 소리가 너무 강해서 나가 보니 돌에 묶어 두었던 고무줄이 마찰로 끊어져서 타프가 깃발처럼 흔들리고 있다. 얼른 새 스트링으로 교체했다. 수리 끝내고 살펴보니 옆집의 타프는 그야말로 폭풍우속 나룻배 같은 느낌이다. 그 청년의 안위가 걱정되어 가까이 가서 살펴 보았다. 홀로 가리왕산 야영을 올 정도면 배테랑일테지만 주변 환경이 워낙 나빴다. 가만이 살펴 보니 침낭속에 폭 파묻힌 채 잠 들어 있다. 안심하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그만큼 대단한 바람이었고, 엄청난 야영환경이었다.
# 길고 긴 밤이었다. 다른 산 같았으면 밤중에 바람이 많이 불다가도 보통 새벽녘에는 바람이 잦아 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아침까지도 바람이 가라 앉질 않는다.
# 대단한 산이고 대단한 바람이며 대단한 밤이었다. 갈등공화국 대한민국의 중심에서 갈등과 분열의 미친 광풍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가리왕산의 현실을 온몸으로 웅변하는 밤이었다.
# 일출 보러 밖으로 나왔다.
# 서로 간밤의 안부를 물었다. 고삐 풀린 말들이 마구 내달리듯 광기어린 바람 속에 보낸 하룻밤이었다. 경험 많은 사람들이라 다들 잘 견뎌냈다. 일출이 가까워져 바람은 어제 밤보다는 많이 잦아졌지만 그래도 아직 강하게 불고 기온은 엄청나게 낮다.
# 우리가 어제 올라 왔던 장구목이 방향이 동쪽이다. 그 방향으로 붉어지기 시작한다.
# 장전계곡 너머 박지산 방향 산들이 첩첩이다.
# 바람이 워낙 강하게 불고 있어 운해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 중왕산 너머 대화, 봉평 방면 조망이다.
# 가리왕산 주변은 강풍 휘몰아쳐 운해 모두 사라졌지만, 멀리 산하는 구름 이불을 덮고 있다.
# 동쪽으로 조금씩 빛이 열리기 시작한다.
# 일출을 기다리며 이십 여분 서 있었더니 우모복을 입었음에도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린다. 강풍이 체온을 급격하게 떨어뜨린 탓이다. 얼른 텐트로 돌아 가 침낭을 뒤집어 썼다.
# 잠깐 몸을 녹이고 나왔더니 어느새 해가 불쑥 밀고 올라 왔다.
# 그러더니 순식간에 쑥쑥 모습을 드러낸다.
# 다들 경건하게 이 아침의 일출을 맞이한다.
# 저마다의 소망을 빌고 있을 것이다.
# 나도 싱싱한 아침해의 정기를 듬뿍 받아 본다.
#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 온 사람들이 가리왕산 정상에서 함께 강풍에 맞서 밤을 보냈고, 다시 함께 서서 일출을 공유하였다.
# 다양한 색의 텐트들이 같은 햇살을 받고 있다.
# 해는 완전히 모습을 갖췄다.
# 그 햇살을 받아 가리왕산이 깨어 나고 있다.
# 주변 산하들도...
# 벅찬 감동에 다들 추위도 잊고 오래 그 자리에 서 있다.
# 가리왕산의 첫단풍들이 햇살을 받아 더욱 붉게 익어 간다.
# 저멀리 봉우리는 태기산인가 보다.
# 우측의 봉우리는 백석산인가?
# 그 봉우리 위로 구름 그림자 드리웠다.
# 아침 끓여 먹고 철수준비를 한다. 그렇게 매섭게 몰아치던 강풍도 해가 높아지면서 점점 가라 앉는다.
# 다들 떠나고 우리만 남아 느긋하게 짐 꾸린 후 조망감상을 했다.
# 마항치 너머 중왕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가리왕산에서 뻗어 나가고 있다. 가리왕산과 중왕산은 마항치를 중앙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왕字 돌림 산이다.
# 정상 헬기장인 듯.
# 중왕산 방면을 넓게 파노라마로 찍었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방향을 조금 오른쪽으로 틀어서...(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숙암리 방면 조망.(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기온 올라가면서 인간세에도 빛이 내린다.
# 숙암리 벗밭골의 인간세.
# 백석산.
# 그 일대 7부 능선으로 임도가 휘감고 있다. 가리왕산 일대는 임도가 많이 건설되어 있다.
# 산정상에서부터 서서히 단풍이 아래로 번지고 있다.
# 조망 감상 실컷 한 후 가리왕산정에서의 일정을 마무리 한다.
# 우리 외엔 아무도 없으니 이런 장난도 해보고...
# 정상 돌탑과 정상석에게도 작별한다.
# 정상석의 왕字는 '성할 旺'으로 적혀 있다. 가리왕산은 원래 '임금 王'을 쓰는 산이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 강점기에 일왕(日王)을 뜻하는 旺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인왕산이 그렇고 의왕시가 그렇다. 모두들 몇해 전에 원래의 임금 王이라는 이름자를 되찾았다.
# 나중에 저 중왕산과 가리왕산을 연계하는 산행을 해봐야겠다.
# 둘만의 자유를 마음껏 즐긴 후 상봉을 떠난다.
# 손 흔들어 가리왕산 상봉에게 작별하고.
# 중봉 방향으로 출발한다.
# 전방으로 중봉과 하봉이 보인다. 저곳이 문제의 스키활강장이 들어 설 곳이다.
# 상봉 고사목들이 바람 반대방향으로 가지를 뻗고있다.
# 지리산 상봉에도 저런 모양의 고사목들이 있다.
# 그곳에도 상봉, 중봉, 하봉이 있고...
# 어제 올라올 때는 강력한 바람과 운무 가득했었는데 오늘은 햇살 따스하다.
# 정상 갈림길에 도착했다. 좌측으로는 어제 올라 왔던 장구목이 코스이다.
# 오늘은 중봉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 가을냄새가 물씬 풍기는 길이다.
# 간밤과는 너무나 다른 따스함에 팔 벌려 그 햇살을 만끽한다.
# 콧노래 부르며 진행한다.
# 이곳도 역사 깊은 나무들이 많다.
# 숲이 이러하니 환경론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는다.
# 가리왕산은 참으로 대단한 곳임에 틀림없다. 보존해야 할 곳이기도 하고...
#
# 어제 올라 올 때와는 달리 아주 편안하게 진행한다.
# 길 좋은데다,
# 짐까지 가벼워졌으니 발걸음이 날아 갈 듯하다.
# 아름드리 노거수들이 속속 모습을 보여 준다.
# 그 모두를 만지고 안아 주며 오래오래 그 자리를 지켜주길 기원했다.
# 생명은 어디에서든 새로이 이어진다.
# 참 좋은 길이다.
# 잣나무 한 그루 아름드리로 자라 그늘을 만들고 있다.
# 그 잣향기 맡으며 쉬어 간다.
# 단풍 물든 가을길을 쉬엄쉬엄 가노라면,
# 중봉에 도착한다.
# 하산길에 살짝 솟아 있어 전혀 힘 들 일이 없다. 지리산 중봉과는 달리 조망이 전혀 없다.
# 숙암분교까지는 3시간 거리이다.
# 하봉은 생략하고 갈림길에서 숙암분교 방향으로 하산하였다.
# 이곳에서 비로소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한다.
# 주목군락이 다시 나타난다.
# 고사목이 저절로 탄화(炭化)가 된 것인지 누군가 불을 낸 것인지 알 수 없다.
# 울긋불긋한 가을 산길을 내려 간다.
# 연리목(連理木)을 만났다. 참나무 두 그루가 중간에서 몸을 합하였다.
# 한순간 경사가 많이 급해진다.
# 한차례 급하게 떨어 진 뒤 다시 평탄한 산죽밭을 이어 간다.
#
#
# 투구꽃.
# 자작나무숲을 만났다.
# 어떤 용도인 지 알 수 없는 철조망을 만나 그 곁으로 내려간다.
# 이 일대는 전부 자작나무 군락지이다.
#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그 하얀 자작숲을 넓게 파노라마로 찍었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자작나무숲 아래에 오장동 임도가 나온다.
# 초대형 트럭이 벌목한 나무를 산더미같이 싣고 지나 간다. 올림픽 활강경기장 공사하면서 벌목한 나무들이다. 환경단체에서 반대운동을 한다더니 아무런 행동은 없는 모양이고 벌목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갈등상황이면 어디든지 나타나는 그들은 이곳에서는 보이질 않는다. 정치적 이득이 별로 없든지, 그들이 믿고 따르는 누군가의 관심이 없든지, 아니면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없어서 일 것이다.
# 그곳에서 잠시 갈등하다가 임도를 따라 장구목이 임도까지 가기로 했다. 숙암분교로 내려 가면 차량회수할 일이 걱정이다.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아스팔트보다는 임도길이 나을 듯 해서 임도를 택하기로 했다.
# 이곳은 나중에 MTB로 한 바퀴, 다시 눈 내렸을 때 썰매 끌고 한 바퀴 돌아 볼 작정이다.
# 임도를 따라 북진한다.
# 호젓하고 좋은 숲길인데 벌목차량때문에 두어번 숲으로 밀려 나야 했다.
# 얘도 자작나무의 일종이다.
# 잠시 후 임도삼거리에 도착했다.
# 흐리목삼거리이다. 벌목차량들은 이곳에서 중앙길로 내려 가더라.
# 쯔쯔쯔...
# 우리는 계속 임도를 따라 장구목이로 향했다.
# 여기서부터는 정말 호젓하였다.
# 가을이 점점 익어가는 길이다.
# 노래 불러 가며 진행했다. 하지만 꽤 먼 거리였다. 오르내림도 좀 있는 편이다.
# 긴 임도行 끝에 장구목이 임도 갈림길에 도착했다.
# 어제 오후에 섰던 곳이다.
# 이제부터는 어제 올라 왔던 장구목이 계곡을 따라 하산한다.
# 급경사 계단길을 지나고,
# 돌길을 따라 가파르게 내려간다.
# 신구 등로가 갈라지는 곳을 지나,
# 이끼계곡에 도착했다.
#
# 어제 날씨 흐려 제대로 보지 못한 계곡을 오늘은 따스한 햇살 아래 실컷 구경한다.
# 여름이면 등목이라도 하고픈 곳이다.
# 파아란 이 이끼계곡이 영원히 그 자리에 있기를 기원해 본다.
# 다행인 것은 가리왕산으로는 단체산객들의 떼산행이 덜하여 그나마 사람들 손이 덜 탄다는 점이다.
# 물소리 시원하고 이끼 색 푸르러 한참을 그곳에서 감상하였다.
# 다시 하산.
# 숲바닥은 이미 가을이 깊다.
# 거제수나무도 자작나무의 일종이다. 그리하여 껍질이 자작처럼 저절로 벗겨진다.
# 길게 내려 계곡을 가로지르는 목제다리에 복귀했다.
# 하단부는 낙엽송 군락이다.
# 쌍폭포도 다시 보고,
# 편안하게 하산하다.
# 큰 힘 들이지 않고 장구목이로 복귀했다.
# 일요일임에도 등산객은 그리 많지 않다. 짐 내리고 다리 아래로 가서 땀을 씻어 냈다.
# 새옷으로 갈아 입고 깔끔한 기분으로 차 타고 숙암리로 가 보았다. 이 동네는 경기시설 사용후 환경 복원을 반대하고 있다. 이왕 개발한 것 그 개발 이익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낙후된 산골마을의 바램을 마냥 뭐라 할 수 만은 없다. 갈등 조정이란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이다.
# 숙암분교.
#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다섯시간 거리이다.
# 저멀리 계곡 안으로 중봉과 하봉이 보인다.
# 귀갓길에 진부에 들러 오래된 산채정식집에 들러 옛맛을 다시 보았다. 예전 그맛은 아니었다...
가리왕산은 몇해 전 100대 명산을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거론되어졌던 산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미뤄 오다가 활강경기장 건설을 위한 벌목소식을 듣고는 더이상 미룰 수 없어 부랴부랴 짐 꾸려 찾기로 했다.
더이상 미루다가는 가리왕산의 온전한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같은 불안감때문이다. 전지구인의 축제인 동계올림픽이라는 대행사의 준비와 수천년 우거져 숲을 이룬 원시림의 보존이라는 두 대의명분의 충돌 속에서 가리왕산은 갈등의 강풍속에 위태로이 흔들리고 있다.
그 산정에 올라 헝겊집 하나 짓고 가리왕산과 한마음 한몸으로 밤을 보내보니, 과연 가리왕산은 미친 광풍의 휘몰아침 앞에 맨 몸으로 맞닥뜨리고 있었다. 그 미친 바람의 방향이 어떤 결과를 보일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가운데 산은 저 혼자 추위앞에 떨고만 있었다.
가리왕산이여! 장차 너를 어이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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