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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40(금수산/錦繡山)-정명(正名)과 명실상부(名實相符)!! 본문

산이야기/100대 명산

[100대 명산]40(금수산/錦繡山)-정명(正名)과 명실상부(名實相符)!!

강/사/랑 2017. 5. 15. 11:47

[100대 명산]40(금수산/錦繡山)



어지러운 세상이다. 뭘 하고 있는지 뭘 하자는 것인지 알쏭달쏭하였던 불통(不通)의 어느 여성을 최고 권좌(權座)에서 끌어내린 것이 두어 달 전 일이다. 그녀는 종북 정당을 해산하였고 공무원연금을 개혁하였으며 비리 언론인을 구속했다.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고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했다. 그리고 개성공단을 폐쇄하여 북한의 자금줄을 막았다.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소통하지 않았다.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족도 멀리하고 측근도 멀리했다. 청와대의 많은 방에서 그녀는 철저히 혼자였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녀에게 피해를 입었다 생각한 무리들이 일제히 이빨을 드러내고 덤벼들 때 그녀는 홀로 그들 앞에 서야 했다.


그들은 무리(衆)였다. 떼로 덤볐다. 갑자기 투사(鬪士)로 변한 언론의 탈을 쓴 나팔수 언론, 거리로 뛰쳐나갈 기회만 보던 촛불 든 무리, 국민을 입에 달고 살되 내 편만 국민으로 여기는 정치권,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의 등에 칼을 꽂은 여당, 철저히 정치화한 검찰, 세상 흐름 따라 변하는 고무줄 잣대의 헌재와 법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쳐 이룬 일이었다.

 

이들이 왜 갑자기 하나로 뭉쳤는지는 조금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밝혀질 일이다. 그들은 합심하여 그 여성을 마녀로 만들었고 죄를 뒤집어 씌웠으며 드디어는 그 직위에서 끌어내렸다. 모든 일이 전광석화처럼 벌어졌다.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된 일이었다.


아무튼,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형식상 치러진 선거 결과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 그 정부를 구성할 인물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이미 대충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그것은 그 집단의 지난 행보(行步)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그리고 사람이 늘 예전 방식, 예전 생각, 예전 행동과 동일할 것이다고 단정하면 어떤 발전이 있으며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그리고 새로운 출발이란 늘 큰 기대감을 내포하는 법이라 그들이 국가 운영의 권력을 잡았으니 이제는 투쟁보다는 '합리'로 파괴보다는 '건설'로 반대보다는 '수행'으로 방향 잡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권력자에 대한 기대는 늘 실망의 다른 얼굴일 따름이다. 그들이 정권 정점 가까이 끌어모아 국민에게 공개한 인물들은 그들이 끌어내린 전 정권의 인물들과 이름표만 바꿔 달았을 뿐 차별성이 전혀 없다. 여전히 그들은 부자이고 위장 전입했으며 세금탈루하였고 병역기피에 논문 표절, 심지어 음주운전에 허위 혼인신고까지 한 인물들이다.

 

입으로 아무리 서민과 민중, 정의와 진보를 외쳐도 권력 주변에 꼬이는 인물들은 늘 가진 자였고, 국가와 민족을 이마에 붙이고 피눈물을 토해도 살찌는 것은 언제나 그와 그의 가족들이었다.

 

이것은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엘리트 집단의 한계이고 민낯이다. 이런 정도의 사회 지도층 인사밖에 키워내지 못한 현 상황이 우리 민족의 불행이고 국민들이 겪을 고통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우리에게 국가 정책 입안 세력다운, 각 부처 수행 장관다운 인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국가 정책을 입안하고 바른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어 나가자면 리더라고 내세운 인물이 그 자리에 앉을 사람다워야 하는 것이다.

 

"君君 臣臣 父父 子子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공자 말씀하시길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름다워야 한다고 하였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아비가 아비답지 못할 때 근본이 흔들리게 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할 때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법이다.

 

제자 자로(子路)가 묻기를 정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必也 正名乎.(반드시 정명해야 한다.)"

 

정명(正名)은 '다움'을 말한다. 이름을 바르게 함을 말한다. 세상이 가지는 인륜상(人倫上)의 모든 이름과 제도상(制度上)의 모든 이름이 실제에 부합하도록 해야 함을 말한다.

 

'다움'이란 명(名)과 실(實)이 서로 딱 맞아 떨어져 증표가 들어맞듯 부합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명실상부(名實相符)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이다.

 

공자 이후 동양권 세계에서는 바른 이름의 중요성이 널리 강조되었다. 실질에 부합하는 바른 이름을 가져야 명실상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실질과 부합하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고쳐 지었다.

 

우리 조상님들도 그 점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퇴계 이황(退溪 李滉)'은 일생 동안 실(實)에 부합하는 바른 이름의 중요성을 실행으로 실천하고 가르쳤다.

 

명종(明宗) 원년 퇴계는 벼슬에서 물러나 안동 도산(陶山)으로 낙향하였다. 도산에는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토계(兎溪)라는 냇물이 있었다. 선생은 이 냇가 동암(東巖)에 양진암(養眞菴)을 짓고 냇물의 이름을 '퇴계(退溪)'로 고쳤다. 벼슬을 물러나 토계 시냇가로 낙향한 자신의 모습과 부합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아호(雅號)도 퇴계(退溪)로 고쳐 지었다.


그리고 5년 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지었다. 세 칸짜리 작은 집이지만 산을 상징하는 언덕과 연꽃 핀 연못까지 갖추고 그 모두에 적합한 이름을 부여하였다. '암서헌(巖栖軒)', '완락재(玩樂齋)', '정우당(淨友塘)' 등이 그 이름이다. 모두 그 모습과 쓰임새에 적합한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

 

퇴계의 정명(正名) 사랑은 주변에만 머문 것이 아니다. 지방관으로 부임하여 현지의 산천(山川)을 만났을 때, 그 산천이 실질에 적합한 이름을 가지지 못했다 생각되면 기꺼이 그 이름을 바르게 고쳤다.

 

'거창 수승대(居昌 搜勝臺)'는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영남 제일의 동천(洞天)이다. 이곳은 암반 위를 흐르는 계류와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옛 시절 이곳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다. 이곳에서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들이 수심에 차서 송별하는 곳이어서 '수송대(愁送臺)'라 불렀다. 절경의 산천에 '근심 수(愁)'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았다. 선생이 '기제수승대(寄題搜勝臺)'란 시로 이곳의 풍경을 예찬한 뒤부터 '수승대(搜勝臺)'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

 

'대미산(大美山)'은 경북 문경에 있는 산이다. 이름처럼 크게 아름다운 산으로 백두대간 문경 구간의 주요 산이다. 원래는 산 정상부에 눈썹만큼의 봉우리가 돋아 있어 '눈썹 미(眉)'가 들어간 '대미산(黛眉山)'이라 불렀다. 선생 보시기에 검푸른 눈썹이란 이름으로 남을 산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크게 아름다운(大美) 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금수산(錦繡山)'은 옛 청풍군의 주산이다. 원래 이름은 흔한 이름인 '백운산(白雲山)', 혹은 정상에 흰 바위가 있어 '백암산(白岩山)'이었다. 단양 군수 시절 퇴계(退溪)는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몹시 아름다운 이곳의 가을 경치에 감탄하여 금수산(錦繡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모두 퇴계 선생이 바른 이름 즉, 정명(正名)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알게 하는 일화들이다. 이 일화들처럼 선생은 일생 명(名)과 실(實)이 서로 딱 맞아 떨어져 명실상부하도록 노력하셨다. 그리하여 명(名)이 실(實)에 부합하지 못하면 적극적으로 그 명(名)을 바꾸었다.

 

이번에 최고 권력자 자리에 앉은 이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實)이 명(名)에 부합치 않는 인물들을 그 자리에 앉혔다. 그 자신 전 정권의 똑같은 행태에 대해 목소리 높혀 비판하고 투쟁한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인 것이다.

 

원래 세상은 명실이 상부 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그 방향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그 집단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이제 그가 할 일은 분명하다. 실(實)을 바꿀 생각은 없으니 그 실(實)의 격(格)에 맞는 명(名)을 새로이 하는 것이다.


"탈세, 위장 전입 및 자식 이중국적이지만, 외교는 할 부(部)의 장관", "음주운전하고 위장 혼인신고하였지만, 법을 집행할 부(部)의 장관", "석박사 논문은 표절하였지만, 교육을 책임질 부(部)의 장관", "농지법을 위반하고 통진당은 합헌이고 경찰 네 명을 치어 죽인 사람에게 사형선고한 것을 사죄하지만, 헌법을 지킬 헌재소장" 등등으로...

 

금수산(錦繡山)은 청풍호반을 바라보고 있는 산이다. 높이 1,016m로 하늘 높이 우뚝한 산이다. 옛 청풍군의 주산으로 지금은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와 단양군 적성면 상리에 걸쳐 있다. 제천에서 바라보는 금수산은 정상부가 하얀 암봉으로 이뤄진 골산(骨山)이다. 반면 단양에서 보면 수풀 우거진 육산(肉山)의 모습이다.

 

따라서 옛 제천 사람들은 '백암(白岩)'이라 불렀다. 퇴계 선생은 단양군수를 지냈다. 관할 고을 순찰하면서 바라본 금수산은 가을 단풍 곱게 든 비단 같은 화려의 산이었을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산은 명과 실이 상부하지 않는 부조화(不調和)였다. 그리하여 산 이름 바꿔 명과 실을 상부하게 하였다.

 

금수산 산행 중 퇴계 선생이 바꿨다는 산 이름의 유래를 들으며 생각의 날개가 시공(時空)을 초월하였다. 세상 돌아가는 꼴 어지러워 그냥 주저리주저리 넋두리해 보았다. 입맛 쓰다!


 

정명(正名)과 명실상부(名實相符)!!


일시 : 2017년 5월 6, 7일. 흙과 해의 날.
세부내용 :

 

상학주차장 ~ 소나무 성황당 ~ 1,2코스 갈림길 ~ 남근석공원 ~ 옹달샘 ~ 살개바위 ~ 망덕봉 갈림길 ~ 전망대 ~ 금수산 정상/야영 ~ 서팽이고개 ~ 들뫼고개 ~ 금수산삼거리 ~ 임도 ~ 상학주차장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는 5월이다. 곳곳에 꽃향기 가득하고 날씨 온화하다. 어느 산 정상에 헝겊집 한 채 올리고 달 구경 하기 딱 좋은 계절인 것이다.


그동안 내 마눌은 저홀로 세상 고민 많아 산길 들길에 격조하였다. 간혹 삼남길이나 둘레길 같은 트래킹에 동행하기도 했지만, 늘 이런 저런 고민에 걱정에 출발까지 이르기 참으로 어려웠다. 


이제 날씨 따뜻하고 꽃향기 좋은 계절이니 마눌의 걱정도 많이 누그러들 때 되었다. 그리하여 넌즈시 예전에 둘이 함께 하였던 100대 명산 야영산행을 제안하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여러가지 걱정이 대두되지만 그래도 그 강도가 현저히 낮아졌다.


다만 산행거리 멀지 않고 너무 가팔라 험하지 않은 곳,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망이 훌륭한 산, 산행 후 맛난 뒷풀이를 할 수 있는 산행지가 그녀의 요구사항이다. 그리하여 선택된 산이 금수산이다.


금수산은 코스 선택만 잘하면 두 시간 이내의 산행으로 정상에 도착할 수 있고 청풍호 쪽 조망도 시원한 곳이다. 집에서 접근 거리도 두 시간 이내라 여러모로 마눌의 요구사항에 적합하였다. 그렇게 선택한 금수산을 목표로 5월 황금 연휴의 막바지 주말에 짐 꾸려 마눌과 함께 집을 나섰다. 


금수산/錦繡山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赤城面)에 있는 산. 높이는 1,015m이다. 멀리서 보면 산능선이 마치 미녀가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미녀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월악산국립공원의 북단에 위치하며 주봉(主峰)은 암봉(巖峰)으로 되어 있다. 단양읍 북쪽으로 38km 떨어진 국망봉(國望峰:1,421m)·연화봉(蓮花峰:1,394m)·도솔봉(兜率峰:1,314m) 등과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소백산맥의 기부를 이루며, 남쪽 계곡으로 남한강이 감입곡류한다. 원래는 백암산(白岩山)이라 하던 것을 퇴계 이황(李滉)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산이 아름다운 것을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다”고 하며 금수산이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산기슭에는 푸른 숲이 우거져 있는데, 봄에는 철쭉, 여름에는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아름다워서 북벽·온달산성·다리안산·칠성암·일광굴·죽령폭포·구봉팔문과 함께 제2의 단양팔경로 꼽으며, 연중 관광객이 많다. 계곡에는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얼음골이 있고 산중턱에는 가뭄이나 장마에도 수량이 일정한 용소와 매년 3, 4월경 주민들이 산신제를 지내는 제단이 있다. 충주댐 건설로 청풍호반을 조성하면서 생긴 금수산 5부 능선 상의 구불구불한 도로는 청풍문화재단지가 위치한 물태리로부터 제천시까지 약 10km까지 이어지는데, 갖은 기암괴석과 함께 청풍호반의 물이 드리워져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나 있다. 또한 인근에는 사극 드라마의 해상 촬영지가 있고 매년 10월이면 감골단풍축제가 열려 관광객이 찾는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금수산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금수산은 충북 제천과 단양을 경계하는 산이다. 산행 기점 역시 제천 쪽과 단양 쪽으로 대별된다. 제천 수산면 상천리에서 올라 가는 코스가 일반적인 당일 산행의 기점이다. 상천리 코스는 암릉이 발달한 곳이고 청풍호 방향의 조망이 열려 있어 인기가 높다. 다만 암릉길이라 난이도가 있는 편이다. 


다음으로 단양 적성면 상리 쪽도 많이 찾는 코스인데 이곳은 상천리에 비해 코스가 짧은 편인 반면 숲길이라 산행 도중의 조망은 없다. 내 마눌은 이번 산행이 꼭 1년 만의 야영산행이다. 무게 부담이나 체력 약화 때문에 걱정이 많다. 때문에 우리는 단양쪽 상리 코스를 선택했다. 두 개의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려 단양군 적성면 상리에 있는 상학주차장을 찾았다.




# 금수산은 암릉미가 뛰어난 산이다.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반 산악회 사람들에겐 인기가 별로 없는 산인 듯하다. 주말 오후인데 단양 상리에 있는 상학주차장은 차량 없이 텅텅 비었다.




# 상학주차장은 조망 좋은 넓은 주차장과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 단양 쪽에서 올려다보는 금수산은 나무에 가린 육산(肉山)의 모습이다. 하지만 실제 금수산은 암릉길이 많은 전형적인 골산(骨山)이다. 다만 단양에서 보는 모습과 제천에서 보는 모습이 달라 보는 곳의 시각에 따라 육산과 골산으로 인식될 뿐이다. 세상사 원래 그렇지 않은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보는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 산행코스는 우측 남근석 공원과 살개바위를 거치는 절골을 따라 정상에 올랐다가 서팽이고개와 들뫼고개 거쳐 좌측으로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




# 주차장을 벗어나자 철쭉 만발한 꽃길이 열려있다.




# 경사 점점 급해지는 상학마을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 마을 입구에 멋진 당산소나무가 두 그루 있다. 아마도 부부 소나무 인 듯하다.




# 좌측 소나무는 가지가 두 개로 벌어진 당당한 자태의 소나무이다.




# 우측 소나무는 한 줄기로 구불구불 용트림하며 하늘로 솟아 있다.




# 두 소나무 사이에 당집이 모셔져 있다. 뭔가 사연이 있을 듯한데 기록은 없고 물어 볼만한 마을 주민을 만나지도 못했다.




# 전원주택과 펜션 여러 채가 있는 마을을 지나간다. 일부 펜션은 문을 닫았다. 아마도 금수산 자체에 찾는 이 적은 탓도 있고 제천 쪽에 비해 이곳 단양 쪽이 덜 알려진 탓도 있을 것이다.




# 길가 밭 두둑에 두릅 새순이 올라 오고 있다. 이미 한 차례 수확을 하고 다시 올라 오는 순인 듯하다.



# 한 차례 땀 흘리며 올랐는데 마을 끝나는 지점에 1, 2코스 갈림길이 있고 작은 주차장이 있다. 정보가 있는 사람들은 이곳까지 차를 몰고 올라와서 산행을 시작한다. 우리는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한 차례 오름짓 한 걸음이 아깝지 않다.




# 이곳 갈림길에서 본격적인 단양 상리코스의 들머리가 열리는 셈이다. 금수산임을 알리는 빗돌과 산행 안내판이 서 있다. 벌써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 봄날에 단풍잎 붉게 물들인 단풍나무 옆 들머리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햇살 강렬하다.




# 그곳 산자락에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글이 적혀 있다. 소로우는 미국의 사상가이자 문학자이다. 하버드 출신으로 교육자로 활동하다 38세 때이던 1845년 월든 호숫가의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자연주의 생활을 하였다. 그때의 기록이 '월든(Walden)'이고 생태주의적 삶의 지침서가 된 책이다. "자발적이고 후회없는 삶"을 얻고자 그는 숲으로 들어갔다.




# '자발적이고 후회없는 삶'까지는 잘 모르겠고 우리는 그냥 대자연 속에 동화되고자 산정(山頂)으로 향한다.




# 정상까지는 2.2km 남았다.




# 시원한 숲 그늘 안으로 들어오니 숨쉬기가 한결 낫다.




# 하지만 마눌은 1년 만의 야영 산행이라 대형배낭이 가하는 무게 부담 때문에 시작부터 힘들어 했다.




# 험한 산길 꽃 사이로 우리는 걸어 올라 간다.





# 한 굽이 돌아 올라가면 벤치 있는 쉼터가 있다. 시가 적힌 나무 현판이 몇 개 걸려 있어 잠시 감상하였다.




# 등로 좌측으로 지름길이 열려 있다. 우리는 그냥 넓은 길 따라 갔다.




# 아직까지는정상부가 올려다 보인다.




# 잠시 올라가자 민망한 모양의 장승이 서있다.




# 남근석(男根石) 공원이라 적어 두고 나무와 돌로 남근을 만들어 세워 두었다. 앞의 저 돌 무더기는 여근(女根)인가 보다.




# 적어 두기를 이 산이 원래 음기(陰氣)가 강하여 남근을 세워 음기를 다스리고자 하였다 한다. 음기를 다스리고자 남근석을 세웠다면 좀 더 세련되고 상징적으로 하면 될 일이다. 저렇게 노골적이고 조잡하게 만들 이유는 없었다. 근래 들어 전국 곳곳에 저런 남근석 공원이나 쉼터를 만들어 둔 곳이 눈에 띈다. 그런데 한결같이 남근이라고 만들어 둔 것이 조잡하고 노골적인 모양이다. 원래 기운이란 것은 상징적인 것이다. 상징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노골적이어서는 상상력을 끌어낼 수 없다. 자기 아들 딸과 손자 손녀에게 저런 노골적이고 조악한 조형물을 편안히 보여줄 수 있겠는가? 그냥 남근을 연상시킬 만한 상징적 조형을 하면 될 일이다. 안타깝다.




# 산악회로 보이는 여러 명의 중년 남녀가 산행을 마치고 내려 온다. 그중 여성회원의 첫 마디. "어머! 회장님 것이 여기 서 있네요~ 호호호 ~" 천박하다. 천박한 조형물과 천박한 구경꾼의 조합이로다.




# 그들의 천박한 음담패설을 더 듣기 싫어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 "통제", "제한" 따위의 단어가 적혀 있으니 이곳이 국공파 위수 구역이 분명하구나.




# 아마도 우측에 설금 전망대가 있나 보다. 등짐 무거운 우리는 그냥 패스.




# 숲 향기 좋다.




# 등로 좌측에 샘터가 있다.




# 올봄 가뭄이 얼마나 극심한지 샘터는 바싹 말라 있다. 습기 사라진 그곳에 언제 물이 흘렀는지 알 길 없다.




# 위쪽으로 갈수록 경사는 급해진다. 어깨에 가해지는 배낭의 무게 때문에 마눌은 많이 힘겨워 한다.





# 멸종 위기종인 왕제비꽃을 이곳 금수산에 복원하고자 하는 모양이다. 전기 철책을 둘러 접근을 막고 있다. 제비꽃은 종류가 참으로 많기도 하다.




# 그 위쪽에 있는 샘터도 물기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 가뭄에 말랐지만 샘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인근이 지도에 표시된 옛 절터인 모양이다. 그 쯤에서 간편한 차림의 산객 둘이 우리를 앞서 올라 간다.




# 봄 야생화들이 숲 곳곳에 피어 있다. 벌깨덩굴. 우리나라 산지 곳곳에 자생하는 야생초이다. 깻잎을 닮은 잎과 얼룩무늬 혀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앙증맞은 꽃이다.




# 줄딸기.




# 피나물. 여름매미꽃, 혹은 노랑매미꽃이라고도 부른다. 이름이 나물이니 나물로 먹기는 한다. 다만 독성이 있어 이른 봄 새순을 흐르는 물에 오래 우려낸 후 조리하여야 한다.




# 매화말발도리. 이 넘은 꽃이 매화를 닮아 이런 이름을 얻었다. 주로 바위를 의지해 자란다. 꽃이 예쁘지만 열매를 말려 아토피나 가려움증 등 피부 질환의 약재로 쓴다.




# 인가목조팝나무. 깊은 산 수풀 속에서 잘 자라는 넘이다. 꽃이 우산처럼 모여 피는 산형과(傘型科)이다. 목상산(木常山)이라 불리는 뿌리와 촉칠(蜀漆)이라 부르는 줄기를 말려 감기와 가래의 약으로 썼다.




# 내 마눌은 작년 욕지도 야영산행 이후 1년 만의 야영산행이다. 무거운 등짐이란 것이 우리 현대인에겐 익숙할 수 없는 무게감이다. 그녀는 양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무게 때문에 많이 힘겨워 했다.





# 저기 등로가에 쉬어 가기 좋은 바위가 있으니 짐 내리고 잠시 쉬어 가세!




# 오랜만의 무게 부담에 힘겨워 하는 마눌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힘들어 하면서도 묵묵히 오름을 오르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다. 몇 번만 더 반복하면 옛 컨디션 되찾을 것이오!




# 휴식 후 다시 길을 나선다. 이내 가파른 너덜길이 앞을 가로막는다.




# 흔들리는 바위 위에서 힘겹게 균형 잡아 가며 위로 오른다. 




# 가파른 오르막과 배낭 무게 때문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 하지만, 다시 그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한 걸음 두 걸음 오르다 보면 능선 마루금에 올라 설 수 있을 것이다.




# 힘겨운 오르막 뒤에 샘물을 만났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샘물이다.




# 앞선 두 곳의 샘터와는 달리 가뭄 속에서도 물이 졸졸 흐르고 있다. 하지만 불순물이 많아 먹자면 거름망으로 걸러내고 끓여 먹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물을 충분히 준비했기 때문에 그냥 구경만 하였다.




# 샘터 위쪽 바위 위에 돌 하나를 세워 보았다. 이 산에 성(盛)하다는 음기를 누르고자 하였다.




# 물이 마르지 않는 샘이 있음은 그 산의 자랑이다.




# 이 쪽 사면은 샘물이 마르지 않은 것처럼 습기가 많은 곳이다. 습한 곳을 좋아하는 고비와 관중 같은 양치 식물이 많다.




#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앞을 막는다.




# 이 쯤에서 마눌은 급격한 체력 난조를 보였다.




# 가파른 경사에 한 걸음 한 걸음 힘겨워하였다.




# 하지만 그 힘겨운 한 걸음이 쌓여 드디어는 능선에 올라 서게 된다.



# 이곳은 제천 상천주차장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능선 갈림길이다.




# 상천주차장은 망덕봉을 거쳐 가는 길과 그 전에 있는 얼음골재 갈림길 따라 어댕이골로 내려가는 길 두 곳이 있다.




# 갈림길 너머에 제천 쪽 전망대가 있다.




# 전망대는 훌륭한 조망을 가진 곳이다. 하지만 엄청난 강풍이 휘몰아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바람은 청풍호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인데 모든 것을 얼게 만드는 차가운 바람이다. 단양쪽 사면과 이곳 제천쪽 사면의 바람은 극과 극이다.




# 상천리 쪽 사면으로 조망이 열려 있다.




# 망덕봉이다. 저곳을 거쳐 가면 꽤 위험한 암릉길이 기다리고 있다.




# 망덕봉 능선 뒤로 신선봉이 보인다.




# 900봉, 신선봉, 학봉, 저승봉으로 이어지는 날카로운 암릉길이 멀리 보인다.




# 찬바람 강해 오래 머물수가 없다. 곧바로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절터에서 우리를 앞질렀던 당일 산객이 벌써 정상을 찍고 하산 중이다.




# 다시 가파른 오르막과 계단길이 기다리고 있다.




# 우측 너머로 금수산 정상이 보인다. 계단을 한 차례 더 밀어 올려야 한다.




# 몸을 휘청이게 만드는 찬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그 바람 맞으며 정상을 향한다.




# 고도 높아 기온 낮은 곳이니 이제서야 철쭉이 피기 시작한다.




# 북단양의 석회석 광산이 건너다 보인다.




# 하늘을 배경으로 세워진 계단길을 따라 정상을 오른다. 이런 하얀 암릉의 모습 때문에 백암산(白岩山)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름 짓기 좋아했던 퇴계선생께서 단풍 든 이 산의 모습을 보고 금수산(錦繡山)이라 개명하셨다. 아마도 백암이라 부른 이들은 제천에서 올려다 보았을 것이고 퇴계선생은 단양에서 보았을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산이 흰 바위산이 되기도 하고 수놓은 비단산이 되기도 한다.




# 마지막 계단길 올라 정상에 도착했다. 짧지만 힘든 코스였다.




# 금수산 정상은 하얗고 뾰족한 바위가 솟아 있는 곳이다. 그 바위를 나무 데크로 감싸 속세인들 머물기 편하게 만들었다.




# 소나무 한 그루 정상의 바위 틈에 뿌리를 내렸다. 양분 부족하고 찬바람 강하니 넉넉하게 자라지는 못했다. 




# 정상부는 찬바람이 너무나 강했다. 이곳의 바람은 그냥 찬바람이 아니라 체온을 순식간에 빼앗아 가는 저체온 유발 바람이었다. 그래서 정상 뒤쪽 공간에 머물기로 했다. 하지만 혹시나 해서 해질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 우모복 꺼내 입고 해 지기를 기다리며 정상의 조망을 즐겼다. 앞쪽의 망덕봉 능선과 뒤에 있는 신선봉에서 저승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 신선봉 뒤에 있는 능선은 작성산과 동산이다.




# 찬바람 강했지만 대기 중의 미세먼지는 날려 보내지 못했다. 조망이 깨끗하지 않다.




# 제천 수산면의 인간세와 청풍호.




# 저곳 신선봉에도 좋은 조망처가 많다.




# 작성산.




# 정상의 암봉은 하얀색이다. 그리하여 옛 이름은 백암산(白岩山)이었다.




# 정말 대단한 소나무이다. 정상 흰 바위 틈에 뿌리 내려 긴 세월을 이겨냈다.




# 노을 질때 맞춰 정상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 정상을 휘몰아치는 찬바람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었다.






# 이윽고 노을 지기 시작했다.




# 단양 시내가 보인다. 단양은 석회석 광산이 많다.





# 찬바람 강했지만 오래 정상에 서서 노을을 구경하였다.











# 미세먼지 때문에 깨끗한 석양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감탄사 나올만한 노을이었다.




# 해 넘어간 후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온몸이 꽁꽁 얼었다.




# 단양 대강막걸리를 먹고 싶었는데 금수산 주변의 가게에는 대강막걸리가 없었다. 대신 주인이 권하는 단고을 막걸리를 마셨다. 제법 맛이 괜찮은 편이었다.




# 바람소리 밤새 어마무시하게 들렸지만 우리가 자리한 곳은 바람이 비껴가는 곳이라 안온하였다. 편안하게 하룻밤 잘 보냈다. 새벽에 소변 보러 나왔다가 별구경도 실컷 했다.




# 새벽 일찍 눈을 떴다. 일출 보러 정상에 섰다. 밤새 휘몰아치던 바람은 아침이 되어도 그칠 줄 모른다.




# 동쪽 방향으로는 나무 때문에 조망이 가렸다. 그 쪽으로  하늘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 시작했지만 시각이 너무 일렀다. 




# 잠시 몸 녹이러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깜짝 놀라 밖으로 나와보니 벌써 해가 솟아 있다. 이런~~




# 곧 정상석도 햇볕을 받기 시작한다.






# 순식간에 지나버린 일출이었다. 빠알갛게 솟아 오르는 일출은 놓쳤지만 그 햇빛 받아 빛나는 산하 구경은 하였다.





# 너의 강인한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노라.




# 최대한 서둘러 주변 정리를 하였다. 느긋하게 휴식을 즐길 여건은 안되는 곳인 탓이다. 내 사진도 한 장 남겼다.




# 금수산의 상징인 정상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과 기를 받아 보았다. 내 안에도 그 생명력과 기 충만하기를!




# 하룻밤 머뭄을 허락해준 정상에 감사하고 다시 속세로 향했다.




# 처음 계획을 세울 때는 망덕봉 거쳐 상천리로 내려 가는 것을 생각했지만, 차량 회수 문제와 오랜만에 야영짐을 진 마눌 체력때문에 원점회귀를 결정했다. 대신 올라 올 때와는 반대로 좌측 서팽이고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 잠시 가자 제천 상천리 쪽으로 열린 전망대가 나온다.





# 이곳에서 청풍호와는 작별하였다.




# 청풍호 방향으로 내리막이 가팔라 처음에는 길을 잠시 의심했다.




# 그러나 곧 산의 사면으로 진행하게 한다.






# 내리막 중간에 앉아있는 동물을 연상케하는 바위가 있다. 




# 그 아랫쪽에 거대한 입석(立石)하나 우뚝하다.




# 굳이 인공으로 조악한 남근석을 세울 필요가 없다. 이 거대한 바위가 바로 남근석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일이 직설적이어서는 깊이가 없는 법이다. 은근한 비유나 은유로 묘사할 때 공감도가 높아진다.




# 내가 명명한 남근석 앞으로 긴 계단이 이어진다.




# 곧 능선 갈림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단양 상학과 제천 상천으로 길을 갈라진다. 지도에는 이곳을 서팽이고개라 적어 두고 있다. 이 고개는 달리 서피고개라고도 하는 모양인데 정확한 유래는 찾지 못했다.




# 우리는 차량 회수를 위해 단양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 곧 바위 전망대를 만났다.





# 단양 쪽으로 툭 트인 조망을 보여 주는 곳이다.




# 상학 마을이 발 아래 펼쳐진다. 적성저수지의 물빛이 푸르다.




# 가까이 땡겨보니 주차장에 세워둔 내 자동차가 보인다.




# 적성면 일대를 몽리 면적(蒙利 面積)으로 하는 적성소류지.




# 금수산에서 좌측으로 흘러내리는 산줄기. 중계탑이 있는 802봉이 보인다. 네이버 지도에는 알봉이라 적혀 있다.





# 우측 전방 단양의 산줄기들. 크게 높지는 않지만, 올록볼록 엠보싱을 이루고 있다. 석회암 지대여서 그럴 것이다.




# 산세가 참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게 생겼다.




# 조망 좋은 곳이라 나도 사진 한 장 남겼다.




# 그 전망대 절벽 지대에 쇠물푸레나무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다. 쇠물푸레나무는 목질이 단단하여 건축재나 가구재로 사용된다. 나무껍질은 진피(秦皮)라 하며 이질, 장염 등에 약용한다.




# 전망대 아래로 나무계단길이 이어진다.




# 그 계단 아래 금낭화가 무리지어 피었다.




# 한 쪽 그늘진 곳에는 당개지치가 보라색 자태를 뽐낸다. 이 넘은 봄철 새순을 데쳐 나물로 무쳐 먹는다.




# 홀아비 꽃대도 나란히 피었다. 한 개의 꽃대에 꽃이 단 하나만 피어 홀아비라는 이름을 얻었다.




# 연분홍 철쭉 만발한 그늘로 진행한다. 지금 이 동네 숲속엔 꽃향기 가득하다.





# 가파르고 길게 아래로 내겨 간다.




# 그러다 산중턱을 가로지르는 임도를 만났다. 




# 하지만 곧 임도를 벗어나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 아래쪽 숲에는 산나물이 제법 많이 있다.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눈에 쉽게 띈다. 두릅, 취나물을 한줌씩 얻었다. 다래 덩쿨도 무성하다. 덩쿨에 매달린 다래꽃 자태 곱다.




# 길게 내려 숲을 벗어났다.




# 이곳 상학리는 전원주택 마을이 되었다.




# 기존에 전원주택이 많이 있는데, 다시 짓는 곳도 있다.




# 전원마을을 통과하여 어제 올라가며 만났던 갈림길에 도착했다.




# 그 아래에 있는 성황당의 소나무도 다시 만났다. 오랜 시간을 살아낸 소나무의 껍질에 세월이 묻어 있다.




# 상학주차장에 복귀했다. 우리 내려 오자 한 무리의 산악회가 도착하여 일제히 산으로 올라갔다. 




# 짐 정리한 후 금수산 정상을 다시 올려다 보았다. 저 정상에서의 하룻밤이 오붓하였고 즐거웠다.




# 이후 단양 나들목 근처에 있는 오랜 단골집에 들러 흑염소전골을 먹었다. 소원하였던 대강막걸리 맛도 보았다. 음식 맛도 여전하고 막걸리 맛도 변함없었다. 그렇게 마눌에게 약속하였던 세 가지 중 마지막 맛 기행까지 완성하였다.



금수산은 바라보는 곳의 위치에 육산(肉山)이기도 하고 골산(骨山)이기도 한 산이다. 산의 서북쪽인 제천에서 바라 보는 모습은 하얀 바위가 발달한 골산이다. 그래서 제천사람들은 이 산을 백암산(白岩山)이라 불렀다. 

 

퇴계(退溪)선생은 단양군수를 지냈다. 그 시절 단양에서 금수산을 바라보니 이름과는 달리 흰바위는 보이지 않고 비단에 수 놓듯 예쁜 단풍이 절정이었다. 그리하여 산 이름을 금수(錦繡)라 바꿔 불렀다.

 

백암이 금수로 바뀐 내막이다. 퇴계선생이라는 명성 높은 대학자가 지었으니 이름의 무게감이 달랐을 것이고 비교적 흔한 백암이라는 이름보다 수 놓은 비단이라는 화려한 이름에 대한 끌림도 있었을 것이니 이후 금수산이라는 이름이 자연 대세가 되었다.

 

이 글은 그렇게 개명된 금수산 산정에서 하룻밤 보낸 소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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