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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38(오서산/烏棲山)-다산(茶山)과 오서산 호랑이!! 본문
그곳에는 몇 칸 되는 절이 하나 있었는데, 한 승려(僧侶)가 그곳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게 혼자 있는 까닭을 물었더니 그는 말하기를 “작년에 호랑이가 중을 해치자 중들이 모두 떠나가 버렸습니다.”하였다. 내가 다시,“당신은 호랑이가 무섭지 않소?”하고 물으니 그는 대답하기를 “전에 호랑이가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온 적이 있었는데, 그 어미가 새끼들에게 나무를 휘어잡게 하면서 희롱하고 있기에 내가 그 새끼를 칭찬해 주었더니 호랑이는 기뻐하며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무섭지 않습니다.”하였다. 이날은 해가 졌으므로 그만두고 다음 날 일찍이 산의 정상(頂上)에 오르려 하는데, 신공(申公)이 호랑이가 무섭다고 사양하였다. 그러자 중이 말하기를 “나와 함께 가시면 아무 해가 없을 것입니다.” 하여 드디어 그와 함께 그 정상에 올라가니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 막힌 것이 없었다.
신공(申公)은 그 동물의 꼬리를 보았다고 하는데, 나는 보지 못하였다. 돌아와 생각하니 나는 이인(異人)을 만난 것이다. 그는 홀로 높은 산, 깊은 골짜기에 살면서 거처를 옮기지 않으며, 갑자기 맹수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더구나 호랑이를 타일러 보냈으니 마음속에 도술(道術)을 간직한 사람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어찌 태백(太白) 호승(胡僧)처럼 종적을 감추고 신분을 숨기면서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모두 알 수 없는 일이기에 드디어 기(記)를 짓는다. 余自扶餘還之數日 申進士過余 言烏棲之勝 且曰 今霜葉正妍 過一兩日衰矣 余方飯 則趣鞴馬徹食 遂與申公至烏棲之下 皆下馬執筇杖 歷巑岏 披蒙茸 至上頭有僧院數間 止一乞士守之 詢之 曰前年虎害僧 僧盡去 曰汝不怕虎乎 曰曩者虎與其三子至 令子攀木而母戲之 吾譽其子 虎悅而去 是以無恐也 是日觀日入 厥明將登絶頂 申公以虎辭 乞士曰與我去無害 遂與之偕 登其 眼力所及 蓋無所障矣 還至院少歇 將下山 乞士曰須與我偕矣 昨日偶然不値虎耳 旣至麓 有物從松林中樸簌作聲 乞士則笑呵呵 緩其聲曰爾可去矣 吾今從其逝也 申公見其尾 余未之見 歸而思之 吾遇異人矣 彼其孑然處高山深谷之中而不遷 猝然遇猛獸而不懼 且爲之儆戒以遣之者 非其中有道術挾持者 能然乎哉 安知非如太白胡僧之類 藏其蹤韜其光而處于是者哉 皆不可知也 遂爲記. [與猶堂全書 中 游烏棲山記] 여유당(與猶堂)은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선생의 당호(堂號)이다. 다산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당대 최고의 대표적 지성(知性)이었다. 다산의 학문적 업적이나 사상은 너무나 탁월하여 일일이 거론하기가 어려울 일이다. 다산은 청년기에 운명처럼 조우한 천주학(天主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했다. 그 유배 기간이 다산에게는 자신의 학문과 사상을 연마하고 집대성할 기회였다. 그리하여 유례를 찾기 어려운 방대한 저술활동을 하였고 그 결과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라는 학문적 성과를 남겼다. 윗글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문집(文集) 십사 권의 기(記) 중 하나인 유오서산기(游烏棲山記)의 내용이다. 오서산 산행기인 셈이다. 그의 나이 34세 때인 1795년 정조 19년에 쓴 글이다. 그해 정월에 사간원 사간(司諫院 司諫)과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제수되었고 2월에 병조참의(兵曹參議), 3월에 우부승지(右副承旨)에 제수되었다. 매월 관직이 바뀌는 변화를 겪었는데, 7월에 청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 입국사건으로 충청도 금정(金井) 찰방(察訪)으로 좌천되는 대변혁(大變革)에 직면하고 만다. 찰방(察訪)은 지방의 역참(驛站)을 관리하던 하급 관리이다. 우부승지는 왕명의 출납을 보던 승정원에서 형조의 일을 보았다. 지금의 대통령 법무비서 쯤 된다. 정 3품인 우부승지에서 종 6품으로의 급전낙하이니 실로 대단한 좌천이다. 34세면 결기 강할 나이이다. 좌천(左遷)은 파직(罷職)보다 더한 수모일 수 있다. 다산은 지방 좌천의 복잡한 심사를 오서산 산행으로 달랜 모양이다. 진사(進士) 신종수(申宗洙)와 함께 늦가을 단풍이 막바지에 이른 계절에 오서산을 올라 호랑이와 이인(異人)으로 여겨지는 승려를 만났다. 유오서산기는 그 산행의 기록이다. 예전에 호랑이는 한반도에서 흔하게 마주쳐지는 맹수(猛獸)였다. 일제강점기에 멸종되기 전 이 땅 곳곳의 심산유곡에 자기만의 왕국을 꾸미고 살았다. 실록(實錄)의 기록에도 무려 732회나 등장하니 조선 호랑이의 존재와 위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금정(金井)은 홍주(洪州) 즉 지금의 홍성을 말한다. 오서산은 홍성의 관내에 있는 산이다. 그 높이가 789.9m로 천 미터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산이고 그 품 역시 대단히 넓은 산은 아니지만, 바닷가에 면한 충청도 내포 지방(內浦 地方)의 넓은 평야 지대에 우뚝 솟아있어 남다른 위용을 보이는 산이다. 호랑이 한 마리가 새끼를 키워내기 위한 영역은 400㎢ 내외라고 한다. 현재 홍성군의 넓이가 443.97㎢이니 지방의 군(郡) 하나에 호랑이 한 마리 왕 노릇하기 딱 알맞은 넓이다. 게다가 오서산은 비단강(錦江) 북쪽의 울타리를 형성하며 충청지방의 뼈대를 이루는 금북정맥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2008년 금북정맥 종주를 하면서 이 오서산의 어깨까지 오른 적이 있다. 금북정맥이 오서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약간 벗어난 금자봉에서 방향을 꺾어 북진하는 바람에 정상 구경은 못 했지만 그 품을 느끼기엔 충분하였다. 그때의 오서산은 숲 좋고 골짜기 다양하였다. 그 품에 호랑이 한 마리쯤 품기에 넉넉해 보였다. 그 오서산 호랑이를 다산 선생이 만난 것이다. 게다가 호랑이 정도는 별로 무서워하지 않고 의사소통을 하는 이인(異人)까지 함께 만난 것이다. 그러면서 호랑이와 함께 살며 태백호승(太白胡僧)처럼 종적을 감추고 신분을 숨긴 이인과의 만남을 의미깊게 느끼고 있다. 아마도 그 자신 뜻을 잃고 이 먼 지방의 보잘것없는 직책으로 좌천되었지만, 저 오서산 호랑이와 이인처럼 종적을 감추고 신분을 숨긴 채 권토중래(捲土重來)할 날을 꿈꾸었지 않나 싶다. 그리하여 나중에 그는 조선 후기 최고의 지성이 되었다.
다산(茶山)과 오서산 호랑이!!
광성주차장 ~ 용문암 ~ 계곡길 ~ 내원사 앞 임도 ~ 임도/시산제 ~ 내원사 앞 임도 ~ 휴양림갈림길 ~ 명대계곡갈림길 ~ 오서산 정상 ~ 헬기장 ~ 오서전망대 ~ 임도 ~ 쉰질바위 ~ 내원사 앞 임도 ~ 계곡길 ~ 광성주차장
하지만 정상은 정맥길에서 약간 빗겨나 있어 2008년 금북정맥 종주할 때는 정상에는 서보지 못했다. 오랜만에 산꾼들 만나 술 한 잔 나누는 재미와 오서산 정상에 오르는 즐거움이 함께 하는 것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얼른 짐 꾸려 오서산을 향해 길을 나섰다. 오서산/烏棲山 충청남도 보령시의 청소면과 청라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보령시와 홍성군의 경계를 이루기도 한다. 높이는 790m로, 금북정맥의 최고봉이다. 오서산자연휴양림이 이곳에 조성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오서산(烏棲山)이 기록되어 있고, 광천(廣川)의 근원이 둘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오서산이라는 내용도 수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오서산이 결성현과 경계를 형성하고 산의 남쪽으로는 현재의 청라면에 해당하는 청라동(靑蘿洞)이 위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서라는 이름은 예로부터 이 산에 까마귀와 까치가 많이 살아 까마귀[烏]의 보금자리[棲]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였다. '해동지도', '1872년 지방지도', '팔도군현지도' 등에 오서산(烏棲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광여도', '여지도서', '조선지도'에서는 오서산(烏栖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상에 서면 서해안 풍경이 시원하게 보여 서해의 등대라고도 불렀다. 장항선 광천역에서 가까워 철도산행지로도 알려져 있다. <이곳저곳>
#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남하하다가 젓갈로 유명한 광천읍으로 나갔다. 다시 96번 지방도 타고 장곡면을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 전방으로 오서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 오서산은 충청 내포지방에서 가장 높게 우뚝 솟은 산이다. 바닷가의 평원에 저 혼자 우뚝하니 근방 어디서나 눈에 들어온다. # 노을빛 물든 산허리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 정상부를 땡겨보니 아직 잔설이 많이 남아있다. # 모임 장소인 장곡면 광성주차장에 도착했다. # 먼저 도착한 산 동무들은 이미 전작(前酌)이 도도하여 다들 취기 가득하다. # 주차장 곁 잔디밭에 집 한 채 세웠다. # 그리고 나도 주연에 동참하여 오랜만의 만남을 함께 즐거워하였다. # 긴 밤이었다. 많이 마셨다. 같은 산길 걷는 오랜 동무들이라 거리낌이 없던 탓이다. 숙취로 쓰린 속을 해장국으로 달랬다. # 그리고 짐 챙겨 시산제 지내러 오서산을 오른다. # 주차장에서 오서산 정상부가 바로 올려다 보인다. # 다들 먼저 출발하여 솔숲님, 달총각과 함께 후발대로 나섰다. # 내원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 임도길 넓어 한가로운 길이다. 오손도손 담소 나누며 오르막을 올랐다. # 용문암 입구에서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좌측은 오서산을 휘감는 임도이고 우측은 계곡으로 오르는 내원사 계곡길이다. 계곡길이 지름길이다. 선발대도 당연히 지름길로 갔으려니 했다. 그러므로 그 길을 택했다. # 용문사는 어느 시골 동네 농가 같은 분위기이다. # 계곡 입구에 용도를 알 수 없는 하얀 건물이 있다. 형태는 펜션처럼 생겼는데 간판이 없다. # 그곳에서 본격적인 계곡길이 시작된다. # 숲 사면에 잔설 많이 남아 있지만 땅속에서부터 봄 기운은 올라와 계곡은 물길이 이미 열렸다. # 된비알에 금세 땀이 흐른다. 겉옷 벗어 패킹했다. # 이 골짜기엔 용도를 알 길 없는 구조물이 많다. 생긴 것으로 보아 아마도 무속인의 제단이지 싶다. # 계곡은 맑고 깨끗하다. # 사람 손길 적으니 이끼 파랗게 돌을 덮었다. # 한차례 긴 된비알을 올라 임도에 복귀했다. # 내원사 갈림길이다. # 우측 사면에 쉰질바위가 올려다보인다. # 줌인해 보니 굉장히 규모가 큰 바위이다. 넓은 데크를 갖추고 있으니 저곳에서 시산제를 모시면 딱 알맞겠다. # 우측 산 마루금에 오서 전망대가 있다. # 임도가 그 전망대 아래를 가로지르고 있다. # 좌측 중앙에 오서산 정상이 올려다보인다. 이곳 임도에서 가파른 사면을 치고 오르면 저곳에 도착한다. 올려다보이는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 선발대에서 연락이 왔다. 그들은 처음부터 임도를 계속 따랐고 산구비 저 너머에 짐을 푼 모양이다. # 우리가 오른 계곡길은 임도와 많이 동떨어져 있다. 그들이 멈춘 곳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 임도 따라 하산하는 것이 아니라 산의 사면을 높게 치고 올라야 한다. 이 쓸데없는 헛질에 마음이 상했다. 그래서 나중에 합류했을 때 짜증을 좀 부렸다. 조망 좋고 영험해 보이는 곳을 두고 산 입구에서 시산제를 모신다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 오서산은 임도가 광범위하게 조성되어 있다. MTB 동호회에서 임도 라이딩에 나섰다. 가파른 눈길을 치고 오르는그 모습에 마음이 동했다. 허리 부상 이후 내 자전거들은 동면 중이다. # 힘들게 산허리를 두어 구비 넘나들어 시산제 장소에 합류했다. #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시산제가 끝나 있다. 임도가 가파른 데다 꽁꽁 얼어 있어 무거운 짐을 옮기기 힘들어 중간에 멈춘 모양이다. 사정이 있었을 것인데 내 혼자 생각으로 마음 상해했다. 후회된다. 그래도 쉰질바위에서의 시산제가 못내 아쉬웠다. 나중에 확인하니 정말 영험해 보이는 곳이어서 더욱 그랬다. 후발대끼리 사배 올려 한 해의 산길 무사함을 빌었다. # 정유년 시산 기념사진 남겼다. # 음복 후 모두 올라온 길로 하산하고 문경 달총각과 나 둘만 오서산 정상을 향했다. 나도 달총각도 오서산 정상은 아직 미상봉이다. 게다가 명색이 우리가 백두대간과 아홉 개의 정맥을 모두 답사한 산꾼인데, 시산제 모시고 정상을 생략할 수야 있나? 그리하여 우리 둘만 정상을 향해 따로 길을 잡았다. 우리가 넘어왔던 이 길은 아직 흰눈 가득한 한겨울이다. # 꽤 먼 길을 넘어 왔다가 다시 넘어 간다. # 산모퉁이 돌아가는 곳에 조망이 트이는 조망처가 나온다. # 오서산도 산의 기운이 손바닥 오무린 가운데로 모이는 형상이다. # 그 산기운 모이는 곳에 내원사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명산의 사찰들은 대부분 저런 명당에 자리 잡았다. # 얼어붙은 임도 길게 걸어 내원사 앞 임도에 복귀했다. # 이곳에서 계곡의 사면을 1.4km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정상부에 오를 수 있다. # 그 지름길을 택했다. 시작부터 가파른 경사가 앞을 가로막는다. # 달총각과 알고 지낸 지도 어언 십사오 년이 되어간다. 처음 보았을 때 얼굴에 솜털 뽀송한 앳된 청년이더니 이제는 오래된 총각이 되었다. 세월 참 무상타! # 이 오르막은 응달이라 잔설이 아직 가득하다. 가파른 경사에 눈까지 있으니 발걸음 내딛기가 쉽지 않다. # 숨소리 거칠고 등판에 땀 흥건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상황을 늘 즐기는 사람들이다. # 한 삼십여 분 거친 숨 내쉬며 올라 능선 갈림길에 도착했다. # 이 능선 따라 공덕고개 방향으로 내려가면 금북정맥 갈림길이 나온다. 금북정맥은 오서산 정상을 살짝 비껴 어깨 쯤에서 방향을 틀어 내려 간다. 10여 년 전 금북정맥할 때 지났던 길이다. # 정상 마루금까지는 아직 좀 더 올라야 한다. 그런데 이곳의 길은 아주 미끄러운 빙판길이다. 우리는 오늘 눈길에 대한 대비가 없다. 봄이 왔으려니 했다. # 아이젠 없어도 스틱만 있으면 이 정도의 눈길은 무난하다. 한데 달총각은 스틱을 준비하지 않았다. 내 스틱 하나 빌려 주었다. 그 역시 예전에 다리 부상으로 119 헬기 타 본 사람이다. 다시 다치면 큰일 난다. # 달총각 덕분에 내 산행 사진을 남길 수 있다. # 한 호흡만에 정상부 마루금에 도착했다. 가픈 숨소리 한바탕 내뱉었다. # 능선 저쪽애 정상이 있다. # 오서산은 억새가 유명한 산이다. 지난 해의 억새가 아직 남아 있다. 오서산은 바람 많은 산이다. 바람에 시달려 머리털은 다 떨어져 나가고 몸통만 굳건히 남았다. # 요즘 우리나라는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에 하늘빛이 회색인 날이 허다하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최소한 산에서는 깨끗한 조망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철 흐릿한 조망이 대부분이다. 발 아래 광성리 쪽 조망이 흐릿하다. # 억새 절정일 때 오면 볼만하겠다. # 아쉬우나마 눈 밝게 뜨고 조망을 감상한다. # 드문드문 산객들이 보인다. 정상을 찍고 다시 돌아 오서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 우리는 정상 방향으로 능선 마루금을 따랐다. # 명대계곡 갈림길. 오서산 휴양림 옆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 오서산 정상으로 이르는 길이 길게 누워있다. 오르내림 없이 편안한 길이다. # 쉬엄쉬엄 산책하듯 걸었다. # 빛바랜 억새빛과 달총각의 빨간 옷 색깔이 잘 어울린다. # 오늘 산행 구간 중 이 길의 느낌이 가장 좋았다. # 솔방솔방 마루금을 편하게 걸어 정상에 도착했다. # 우리가 지나온 길이 뒤에 길게 누워있다. # 줌인해보니 넓은 데크로 된 오서전망대가 보인다. # 커다란 정상석이 서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유명산의 정상석들은 서로 크기 경쟁을 하는 듯하다. 우리나라 지자체의 단체장들은 거대한 비석, 거대한 솥단지, 거대한 집무실 등을 사랑한다. 그런다고 그대들 업적이 거대해지는 것은 아니다. # 예전에 만들었을 소박한 정상석은 한쪽에 밀려나 있다. 내 생각으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 정상 너머로는 헬기장과 통신시설을 갖춘 무인산불감시 시설이 보인다. 저길로 가면 성연리로 내려가고 그 전에 갈라져서는 휴양림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오서전망대를 향했다. # 정상부의 등로는 햇볕에 땅이 녹아 질척한 진창이 되어 있다. # 임도가 구불구불 오서산을 휘감고 있다. 자전거로 저 임도 한바퀴 돌아도 좋을 코스이다. # 내원사골로 올라왔을 때 섰던 조망처에 다시 섰다. # 가야 할 방향의 조망. 저멀리 오서전망대의 모습이다. # 우측 아래로 쉰질바위가 내려다보인다. # 임도가 구불구불 층을 지어 쉰질바위로 향하고 있다. # 강하게 치받는 바람이 억새들을 산 위쪽으로 눕혔다. # 전문 찍사의 포즈. # 가을날 억새꽃 하얗게 피었을 때 이 길 걸으면 운치 있겠다. 야영짐 짊어지고 하룻밤 보낼 그 때를 기약해 본다. # 오서전망대 방향으로. # 내원사 거쳐 쉰질바위에서 오르는 임도가 이곳까지 이어져 있다. # 헬기장을 지나고. # 오서전망대에서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중간에 암릉이 있다. # 줌인해보니 구름다리가 그 암릉을 연결하고 있다. # 지나온 오서산의 능선. 오서산은 정상부에 오르기까지가 힘들지 막상 정상부는 오르내림 적은 평탄한 모습의 산이다. # 이곳에도 정상석이 하나 서있다. # 미세먼지 약간 옅어졌다. # 쉰질바위와 그 아래 우리가 하룻밤 묵었던 광성주차장이 보인다. # 저 능선을 따라 금북정맥이 이어진다. 오서산은 임도가 잘 정비된 산이다. # 오서전망대가 아주 소란스럽다. # 어느 산악회에서 온 사람들이 단체로 점프샷을 찍고 있다. 타이밍이 잘 안맞는지 뛰고 또 뛴다. 그들과 일행이 아닌 사람도 몇몇 있었는데 좀 거슬렸겠다. # 오서산 억새의 진면목은 이곳 오서전망대 주변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다. # 이렇게만 보면 정선 민둥산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산의 사면을 따라 발달한 억새 군락. 그 사면을 거슬러 오르는 바람과 그 바람 방향으로 몸을 눕힌 억새. 그리고 군데군데 반점처럼 자란 키 작은 소나무까지. # 멋진 풍광이다. 그 광경 하 좋아 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 # 오서산 전망대에 도착했다. # 이곳은 정상보다 더 유명한 곳이다. 일개 소대는 넉넉히 수용할 만한 넓은 데크가 있어 백패킹하는 사람들에겐 성지같은 곳이다. 여건 좋으니 널리 알려졌고 널리 알려지니 찾는 이 많다. 자연 비정상적인 사람들도 몰려든다. 그리하여 늘 이런저런 시빗거리가 많은 곳이다. # 사방으로 툭 트였으니 조망 훌륭하다. 저쪽은 소나무숲이 울창하다. 다산이 만났던 호랑이 한 마리쯤 숨어 있을 법하다. # 우측 멀리 금북정맥의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 오서산은 까마귀가 많이 살아 '까마귀 烏, 살 棲' 자를 써 오서산이라 불렀다. 까마귀 많이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까마귀 여러 마리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 사람들 다 내려가면 이곳 전망대가 그들의 쉼터가 되는 모양이다. 데크 이곳저곳 까마귀 깃털이 떨어져 있다. 그 깃털 하나 주워 기둥에 꽂고 설정샷을 찍어보았다. # 이쪽 사면은 아직 한겨울이다. 올해는 동계 설산 산행을 못했다. 겨울산은 산의 뼈대와 속살을 모두 보여준다. 겨울산의 저런 느낌을 나는 아주 좋아한다. # 활엽수는 모두 잎을 떨궜고 숲바닥은 눈에 덮혔다. 능선의 마루금에는 침엽수가 주로 자란다. 그리하여 산의 능선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바람 많이 불어 미세먼지가 좀 걷혔다. 그때에 맞춰 최대로 줌인하니 우리가 출발한 광성주차장이 뚜렸하다. 심지어 주차해둔 내 차의 모습도 보인다. # 우리가 시산제 장소로 넘어갔다가 다시 산행하기 위해 넘어왔던 임도도 뚜렸하다. # 장곡저수지와 죽전들도 이제는 구별이 가능하다. # 오서전망대에서의 조망은 아주 훌륭했다. 그 조망 감상하면서 오래 머물렀다. 주말에는 언제나 야영팀이 많을테니 평일 일정 마련해서 하룻밤 보내야겠다. 달빛 좋고 별빛 좋은 날을 골라야겠지. # 오래 쉰 후 오서전망대와 작별한다. # 저 팀은 사진 찍기를 참으로 좋아한다. # 젊어서 그런가? 사십은 넘어 보였는데?? 이 포즈 저포즈, 이 소리 저 소리... # 그 천진함이 부럽다. 사람은 너무 생각이 많고 꺼리는 것이 많으면 피곤한 법이다. # 단체팀은 정상 방향으로 가고 우리는 갈림길에서 임도를 택해 하산하였다. # 이곳 임도는 양지바르다. 그래서 벌써 해빙기가 시작되었다. 땅은 녹아 질척이고 사면은 풀어져 낙석이 군데군데 진행되고 있다. # 쉰질바위까지는 구불구불한 임도를 돌아 내려가야 한다. # 장곡저수지를 중심으로 죽전리, 가정리, 광성리, 화계리가 사방으로 위치한다. # 좌측 멀리로는 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읍이 보인다. # 임도 길게 돌아 쉰질바위에 도착했다. # 이곳에서 임도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곳이다. # 쉰질바위는 임도 아래로 데크따라 내려가야 한다. # 데크 전망대를 만들어 두었다. # 이곳 전망대의 조망도 훌륭하다. 정상까지 올라가기 싫으면 이곳에서 야영해도 좋을 듯하다. 오전에 우리가 선발대와 합류하기 위해 넘어갔던 임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 이곳에서 보니 우리가 얼마나 많이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왔는지 알수 있다. # 쉰질바위의 위용이 어마어마하다. 아래에도 데크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 와보니 새삼 시산제를 임도에서 지낸 일이 아쉽다. 이렇게 조망 좋고 신성한 기운 가득한 곳을 지나쳐버렸다니... # 바위 아래로 내려가니 암굴 하나가 나타난다. # 복신굴(福信窟)이다. 복신이 이 굴에서 숨어 지냈다는 전설이 정해진다. 복신은 승려 도침(道琛)과 함께 백제 부흥운동을 했던 장수이다. 부여풍(扶餘豐)을 왕으로 추대하고 유민들을 규합해 초기에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망하는 나라는 항상 외부 요인보다는 내부의 모순으로 망하기 마련이다. 지도자 세 명의 분열로 부흥운동은 실패하고 만다. 복신은 도침을 죽이고 실권을 잡은 후 부여풍마저 죽이려다 오히려 그에게 죽임을 당한다. # 복신이 오서산에서 죽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내분이 일어나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다시 풍왕이 복신을 죽였다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오서산 일대가 백제부흥운동의 근거지였으니 복신이 이 산에 올랐을 수는 있겠다. 굴은 크기가 작다. 한 사람 앉으면 딱 맞을 크기이다. 지금은 무속인들의 기도처인 모양이다. 제단에 산신령을 모시고 있다. # 굉장한 규모의 바위이다. 나라를 구할 정도의 인재 이야기 쯤은 품기에 충분한 바위이다. 그 바위 안고 기상을 받아본다. # 정상보다는 오히려 이곳이 오서산의 핵심일 수 있겠다. # 쉰질바위를 떠나 임도로 복귀했다. # 임도 두어 구비 돌아 내려가면 아침에 처음 올라 왔던 내원사 앞 삼거리에 도착한다. # 그 삼거리에서 올라왔던 계곡길을 따라 하산한다. # 길게 내려 펜션처럼 생겼던 건물 옆 등로 입구에 복귀했다. # 다시 소나무 숲길을 길게 내려가면, # 광성주차장에 복귀할 수 있다. # 오서전망대 쪽을 올려다본다. # 우리가 걸었던 정상부 마루금이 길게 허공 중에 누워있다. # 함께 시산 모임을 가졌던 산꾼들은 모두 떠나고 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 달총각과 나도 몸에 묻은 먼지 털어내고 오서산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각자의 서식지로 돌아갔다. # 전문 찍사인 달총각 덕분에 산행 사진 여러 장을 남길 수 있었다. 내 산행 경력에 참으로 드문 경우이다. 그렇게 오서산 시산 모임을 마무리했다. 오서산은 까마귀 많아 까마귀 집이란 이름을 얻은 산이다. 백제 문화의 중심지인 내포(內浦) 지방에 홀로 우뚝 솟아 그 위용이 남다른 산이기도 하다. 산악지역의 높고 깊은 산에 비할 바 못되지만, 해안가에 나름 너른 품과 깊은 골을 지니고 있어 호랑이 한 마리쯤은 넉넉히 품을 산이다. 그리하여 222년 전 다산(茶山)은 이 산에서 호랑이는 물론 그 호랑이와 교감하는 이인(異人)을 만났고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호랑이를 만났다는 짧고 간명한 산행기록이지만, 내 생각에는 뜻을 잃고 시골로 좌천된 자신의 처지를 와호장룡(臥虎藏龍)의 은신(隱身)으로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산(茶山) 정도면 뜻을 감추고 몸을 숨긴 호랑이로 충분하기에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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