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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산행]불발현/佛發峴 - 산냄시, 나물냄시, 사람냄시!! 본문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칙에 따라 물은 산을 넘지 않고 산은 물과 함께 흐른다. 그리하여 큰 강은 큰 산에서 발원하여 함께 어울려 흘러간다. 산길과 물길의 조화(調和)이다. 한강(漢江)은 한반도 남녘땅 제1의 강이다. 제1의 강이니 산줄기 따르지 않을 수 없다. 한강은 두 개의 커다란 산줄기를 거느린다. '한남정맥(漢南正脈)'과 '한북정맥(漢北正脈)'이다. 태백산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강은 남북으로 두 개의 긴 산줄기 즉 한남과 한북을 병풍 삼아 한반도를 가로질러 흐르다 서해로 잠긴다. 두 개의 정맥을 거느렸건만 한강은 거기에 만족하지 못한 모양이다. 다시 백두대간 두로봉에서 동서로 길게 누운 산줄기 하나를 분기한다. 이른바 '한강기맥(漢江岐脈)'이다. 이 땅의 산맥은 대간에서 출발하여 정맥으로 갈라지고 다시 여러 기맥으로 분기한다. 기맥은 대간이나 정맥보다는 약하지만 이 땅의 뼈대를 이루는 산줄기다. 그러므로 기맥 역시 물줄기와 조화를 이루며 흘러내린다. 그 과정에서 강이 산을 경계하는가 하면 산이 강을 경계하기도 한다. 한강기맥 역시 산과 강의 조화와 경계를 함께 한다. 그리하여 한강기맥은 북한강과 남한강의 수계(水界)를 이뤄 강을 두 줄기로 나눈다. 강을 두 줄기로 나누는 곳이라 이름하여 '두물머리'라 하였는데, 그곳이 기맥의 종착점이다. 그곳에 이를 동안 기맥은 오대산, 계방산, 용문산, 유명산 등 강원과 경기의 주요 산들을 이어 달린다. 모두 도상거리 160km에 이르는 산줄기이고 아직까지 원시림 남아있는 오지(澳地)의 험산(險山)이 즐비하다. 인간은 자연에 의지하여 산다. 산과 강이 조화를 이루며 흘러가는 그 기슭에 인간은 터전을 이룬다. 그리하여 강을 만나면 나루를 만들거나 다리를 놓아 건너고 산을 만나면 길과 고개를 만들어 산을 넘는다. 한강기맥 역시 그러하다. 여러 길과 고개가 산맥의 흐름에 의지한다. 기맥이 오대산의 고산준령을 넘고 첫 번째로 만나는 고개는 운두령(雲頭嶺)이다. 구름이 고개 마루에 걸려 있다는 뜻이다. 운두령을 지난 기맥은 다시 서쪽으로 흐르는데, 보래봉 외에 이름을 얻지 못한 천 미터급의 무명봉을 열댓 개 솟구친 후 골짜기가 산으로 깊이 들어온 곳에 인간들이 남북으로 오갈 수 있는 고개 하나를 허락한다. 이름하여 '불발현(佛發峴)'이다. 고개라고 하지만 높이가 1,052m이니 어지간한 산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고도를 가진 고산준령(高山峻嶺)이다. 남으로 흥정계곡을 흘러내리고 북으로는 자운계곡을 흐르게 한다. 골짜기가 양쪽으로 깊숙이 산에 들어오는 곳이라 오랜 옛날부터 인간의 길이 고개를 만들어 산맥을 넘나들었다. 옛이야기에 전하기를 진한(辰韓)의 마지막 왕이라고도 하고 맥국(貊國)의 마지막 왕이라고도 하는 태기왕이 신라군에 쫓겨 이 고개를 넘어 태기산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그때 왕이 말하기를 불을 밝히라 명하여 '불바래기' 혹은 '불발현'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 불발현의 유래이다. 밤에 이동하였으면 당연히 시키지 않아도 불을 밝혔을 것이고 낮에 숲이 어두웠어도 그랬을 것인데, 굳이 불을 밝히라 명령했다는 전설은 이름 유래로는 재미도 개연성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디서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이 어설픈 전설은 마땅한 유래의 대안이 없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만 한다.
길이 모이자 쉼터도 필요했다. 따라서 넓은 광장 만들고 운치 있는 정자도 만들었다. 쉼터 생기니 간간이 쉬어가는 사람들 모여들게 된다. 임도 보수 공사하러 나온 일꾼, 산나물 캐러 온 주민, 좋은 임도 즐기러 온 MTB 라이더, 한강기맥 산줄기 타는 산꾼 등등... 우리 홀로 산꾼 중에도 한강기맥을 마친 이들이 많으니 이 불발현은 이미 알려져 있던 곳이고 긴 산길 종주하는 대신 간간이 산속에서 쉬고 싶을 때 모임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그런 모임이 그동안 두어 차례 있었는데 나는 여러 사정으로 인연이 닿지 못했었다. 그러다 짧은 봄이 끝나가는 정유년 5월 어느 늦은 봄날에 불발현에서 하룻밤 보내보자는 사발통문이 홀로 산꾼 사이에 돌았다. 사오 년 전부터 봄이 되면 한강기맥 종주를 준비하는 것이 내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여러 기맥이나 지맥 중 마지막 남은 오지랄 수 있는 한강기맥은 꼭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강기맥은 진드기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초봄 진드기가 활동하기 이전에 기맥의 진드기 출몰지역을 통과해야 했다. 그것이 내가 해마다 봄이면 한강기맥을 계획한 이유인데,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실행에 옮기질 못했다. 그리하여 한강기맥의 산과 고개는 늘 지도의 그림으로만 만나고 도상(圖上)으로만 걸었다. 불발현 역시 그러하여서 이름과 위치는 항상 입에 익었지만, 아직 미상봉(未相逢)이었기 때문에 이번 모임에 선뜻 참여 의사를 밝히게 되었다. 오랜만에 동무들 만나는 기쁨도 기대하는 바였고. 다만 이런 모임이면 늘 브레이크 없이 오가는 술잔이 걱정되기는 한다. 언제나 그렇듯 적당히 마시도록 노력해야지 다짐은 한다만...
산냄시, 나물냄시, 사람냄시!! 일시 : 2017년 5월 20, 21일. 흙과 해의 날.
지난 초봄 오서산 모임 이후 두어 달 만의 모임이다. 그동안 오래 산과 멀어져 있던 마눌을 다시 산으로 이끌어 몇몇 산정에서 함께 별빛 구경 달빛 구경을 하였다. 하지만 마눌은 이번 모임에 선뜻 나서기가 꺼려지는 모양이다. 꽤 오래 산과 떨어져 있던 터라 아직은 준비가 부족하다 여기는 듯하다. 그리하여 이번 모임에는 나 혼자 참석하기로 하고 짐을 꾸렸다. 가는 봄이 아쉬운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동해 쪽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곳곳이 정체다. 영동고속도로에서 오래 지체하다가 춘천고속도로로 갈아 탔다. 잠시 달리다 고속도로 빠져나와 횡성을 통과한다. 태기산을 전방 우측에 두고 엄청나게 긴 고개를 두 개나 넘었다. 아주 높은 고개를 구불구불 올라가니 그곳에 넓은 고원지대가 있다. 창촌이다. 시간을 많이 소모한 이후 목적지에 도착했다.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불발현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도로가 끝나는 곳에 우리 일행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그곳에 주차하고 짐을 챙겼다. # 차단기를 지나 임도에 진입했다. 25kg 배낭이 허리와 어깨에 부담을 준다. # 잠시 올라가자 화장실을 갖춘 쉼터가 나온다. # 산모퉁이를 서너 개 휘감아 올라갔다. 이내 숨이 턱에 차오른다. 그때 저쪽 산모퉁이에서 등짐 진 산꾼들이 내려온다. 무심코 사진을 찍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우리 동무들이다. 어째 저 멀리서부터 술 냄새가 풍기더라니... # O2님, 호박씨님, 경란님 그리고 뚜벅이다. 이분들은 금요일에 들어왔다가 야영하고 하산하는 길이다. 모두 내일 가정 행사가 있다 한다. 간밤에, 그리고 오늘 온종일 얼마나 달렸는지 모두의 배낭 위에 술 귀신 올라타 있다. 그 무게에 다들 휘청휘청 춤추듯 내려온다. # 두 여성분은 초면이지만, O2님과 뚜벅은 참 오랜 동무이다. 그들과 즐거이 술 한 잔 하고 싶었는데 서로 길이 엇갈렸다. 많이 아쉽다. # 잠시 환담 후 그들과 작별하였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그들의 발걸음이 허위허위 혹은 휘청휘청 이런 부사에 어울린다. # 사람은 옆모습이 가장 멋있고 뒷모습이 가장 슬픈 법이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내려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문득 쓸쓸하다. 그들이 돌아보는 내 뒷모습도 그럴 것이다. 각자의 뒷모습을 남긴 채 그들은 산과 만난 후 내려가고 나는 만나러 올라간다. 가만 생각하면 산은 그 자리에 의구(依舊)하고 사람만 바뀌는 것이다. 당나라 사람 유희이(劉希夷)는 이렇게 노래했다. 古人無復洛城東 今人還對落花風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고인무부낙성동 금인환대낙화풍 연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 ; 옛 사람 한 번 가면 낙양성 동쪽으로 다시 못 오고, 지금 사람들이 바람에 지는 꽃 보나니, 해마다 피는 꽃은 똑같은 그 꽃이건만, 해마다 꽃구경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로다.) # 동무들과 아쉬운 작별을 뒤로 하고 다시 임도를 오른다. # 백두대간트레일이라 적힌 이정목을 만난다. 백두대간트레일은 산림청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조성한 숲길이다. 그 백두대간트레일 중 홍천 구간이 이곳 불발현 임도를 따라 이어지는 모양이다. 자료를 보니 홍천군 내면 광원리 월둔교에서 내면 자운리 불발현 정상까지 약 44km를 총 5개 구간으로 구분하고 있다. # 임도 바로 곁에 물소리 시원한 계곡이 있다. 정상에서 10여 분 거리에도 물을 구할 수 있는 계곡이 있다고 한다. # 긴 오르막이다. 이 임도는 전체 거리가 5km 넘는 길이다. 쉽지 않은 거리이다. # 바람 좋은 곳에 서낭당으로 보이는 나무와 바위 그리고 흰종이 끼운 금줄이 있다. # 제법 경건한 마음으로 기원을 올렸는데, 실상 이곳은 서낭당이 아니었다. 뒷날 내려오면서 들으니 오늘 오전 산림청에서 무슨 행사를 했는데, 그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이 소원을 적은 종이를 매단 것이란다. 결국 내가 마냥 엉뚱한 짓을 한 것은 아닌 셈이다. # 배낭 무게가 어깨를 파고들어 휴식이 필요했다. 임도 꺾이는 곳에 양지 바른 잔디밭이 있길래 들어가서 막 배낭을 내리려다 발밑을 보고 기겁을 했다. 내 발 바로 앞에 1m는 넘어 보이는 커다란 독사 한 마리가 햇살에 몸을 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걸음만 더 내디뎠으면 밟을 뻔 했다. # 놀란 마음 진정시킨 후 다시 두어 굽이 모퉁이를 더 돌다 바람 좋은 곳에서 짐을 내렸다. # 다시 짐 짊어지고 모퉁이를 한 굽이 돌자 멋진 금강송 몇 그루 서 있는 곳에 벤치 쉼터가 있다. 한 모퉁이만 돌면 배낭 내리기 좋고 뱀 걱정 없는 이렇게 좋은 쉼터가 바로 앞에 있는 줄 모르고 미리 멈추고 말았다. 세상 일이 원래 그렇다. 한 걸음만 더 가면 결실을 볼 수 있는데, 그 고비를 참지 못하고 포기하는 순간이 많다. # 오르막 도중에 제대로 된 쉼터를 만났다. # 넓은 잔디밭과 비바람 피할 정자까지 갖춘 곳이다. # 그 곁에 고추나무꽃 예쁘게 피어 있다. 고추나무는 잎과 꽃이 고추와 비슷해서 얻은 이름이다. 어린 순은 진짜 고추순처럼 나물로도 먹는다. # 고추나무는 하얀 꽃이 예쁘고 향이 강하다. 노란 나비 한 마리 그 꿀에 취해 있다. 쉽게 볼 수 없는 무늬라 자료 찾아보니 '수풀알락팔랑나비'이다. 강원 이북의 밝은 산중이나 임도 주변에서 관찰되는 종이라 한다. 그런데 자료에 등장하는 나비의 촬영지가 바로 이곳 불발현 임도이다. 아마 이곳이 녀석의 주 활동 무대인 모양이다. # 백두대간트레일 안내판이 서 있다. # 지도 우측에 나와 있는 을수골에 여름 야영지로 기막힌 곳이 있다. 올 여름에 꼭 한 번 가봐야겠다. # 임도가 바깥으로 휘는 곳에 조망이 트인 곳이 있다. 저멀리 한강기맥의 산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 가운데 우뚝한 산이 계방산이다. 좌측의 산은 아마도 호령봉이지 싶다. # 다시 몇 굽이 돌자 수목 너머로 불발현인 듯한 잘록이가 보인다. # 좌측 봉우리는 한강기맥 중 이름 없이 높이로만 기록된 1215봉이지 싶다. 저곳에서 흥정산으로 산줄기가 이어진다. # 다시 한 굽이 더 돌면 좀 전에 본 잘록이가 불발현이 확실함을 알 수 있다. # 우측으로 휘감아 오르자 드디어 불발현이 모습을 드러낸다. # 두 시간 가까이 걸린 모양이다. 불발현에는 세 곳의 임도가 모인다. 사진과 지도에서 본 그 모습 대로이다. # 긴 임도가 다시 좌우로 갈린다. # 한 쪽에는 산림청에서 설치한 산악기상관측장비가 있다. # 불발현에는 살신모정(殺身母情)이라 부르는 슬픈 사연이 있다. 제주도로 이사 갔던 여성이 딸과 함께 친정을 찾았다가 눈보라를 만나 딸만 살리고 본인은 동사한 안타까운 모정의 이야기이다. 그녀가 친정을 찾은 이유는 친정에 진 빚 10만원을 갚기 위해서라고 한다. # 장곡현 방향에는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 있는 산길이 구목령으로 가는 한강기맥 길이다. #임도의 중요성이야 일러 무삼하리요마는 그렇다고 개설자의 이름과 감독관의 이름을 돌에 새겨 후대에 남길 정도의 일은 아닌 듯하다. # 술 좋아하는 이 산꾼들은 집도 짓지 않고 술잔 돌리기에 여념이 없다. # 오전에 도착한 서울 팀과 나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안성팀이 이미 많았던 전작으로 불콰해진 얼굴로 반겨준다. 서울팀은 이모임의 주최자인 산냄시님, 두루님, 박꾼님, 안성팀은 대방님과 팔광님이다. # 반가운 인사와 후래자삼배(後來者三杯)의 의식을 먼저 치렀다. 이후 모두 모인 것을 계기로 각자 머물 집을 지었다. # 땀에 젖은 옷 갈아 입고 본격적인 산상 만찬을 시작했다. 뚜벅의 친구인 박꾼님을 처음 만났다. 그이가 나를 위해 끝까지 사수한 두릅이 나를 반긴다. 알싸한 두릅향이 입 안에 강렬한 자극을 남긴다. # 삼겹살의 단짝인 곰취. # 박꾼님은 처가가 제주란다. 처가에서 보내 준 도미를 준비해 오셨다. 의외로 산나물과 잘 어울렸다. # 안성팀은 오늘도 안성막걸리 지참을 잊지 않았다. # 먹을 것 마실 것 넘치는 만찬장이다. 무엇보다 산나물의 향긋한 향이 있으니 과히 최고라 할만하다. # 권커니작커니 하는 도중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 수풀에 가려 뛰어난 조망과 불 타는 노을을 보여주지는 못 하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한 눈호사이다. # 산속의 밤은 빠르다. 금세 캄캄한 어둠의 나라가 찾아왔다. 그렇지만 우리의 만찬은 끝날 줄 모른다. # 밤에 우는 산새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다. 하늘의 별은 많고도 많다. 그 별의 수 만큼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특히 이 밤에 제일 많이 들은 말은 "히말라야"라는 단어였다. 앞으로 또 얼마나 그 말을 들어야 할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 취기 오른 사람은 텐트 속으로 들어가 한 잠 자고 나왔다. 그때까지도 술잔은 오고 갔다. 그 다음 사람이 취기에 못 이겨 들어갔어도 주연(酒宴)은 계속되었다. 나도 정말 엄청나게 마셨다. 두세 달 먹을 술을 하루에 다 먹은 듯하다. 나중에 취기 못 이겨 텐트 속으로 들어 갔는데 언제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없다. # 부지런한 아침 새소리 때문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하지만 간밤 길게 달린 뒤라 쉬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 했다. 오래 미적거리다 텐트 밖으로 나왔다. #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간밤에 그렇게 마시고도 아침부터 술잔을 잡는다. 나는 한 모금 마시니 하늘이 노래져 그만 두었다. # 간밤의 주연이 너무 은성했던 모양이다. 안성팀에 부상자가 발생했다. 본인은 뭔가 나물을 잘못 먹은 듯하다고 했지만, 우리가 볼 때는 술 탓이다. 본인은 아직까지 술 때문에 아팠던 적이 없다고 강변한다. 허나 그 역시 세월을 빗겨 가지는 못 한다. 이제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 아니 지난 것이다. 조심해야 할 일이다. 아무튼 부상자 때문에 안성팀은 일찍 하산하기로 했다. # 어제 오늘 누군가의 뒷모습을 자꾸 보게 된다. 조심해서 내려 가시고 부상자 잘 보살피시게! 다음에 또 보세! # 아침 먹고 주변 정리했다. 대형 배낭은 수풀 속에 감춰두고 간편한 차림으로 산에 들었다. # 이 동네는 산나물이 많은 곳이다. 조금씩 구경이나 하자 했다. # 불발현 숲속은 온통 산죽과 속새 군락이다. # 속새는 줄기가 기둥 모양으로 가지를 치지 않아 마치 가는 대나무처럼 생긴 식물이다. 습지를 좋아하는 양치식물로 제주도와 강원 이북의 산지에서 자란다. 예전 낙동정맥 종주할 때 보니 경북 고산지에도 많이 자라고 있었다. # 숲 그늘 좋다. 한강기맥 등로를 따라 길게 올라갔다. # 이 시기의 숲은 숲 위 하늘도 숲 바닥 땅도 모두 연초록이다. # 나는 원래 산나물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 예전에 취와 개미취, 박쥐나물 등을 배웠고, 재작년에 곰취와 곤드레를 배웠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동무들에게 다시 배워야 했다. 이 숲에는 취와 참나물이 많다. 일단 오늘은 그 둘만 배웠다. 재미있는 것은 취에 신경 쓰면 취만 보이고 참나물에 신경 쓰면 참나물만 보인다는 것이다. # 어제까지 곰취와 동의나물 구별이 되지 않던 이 분도 취, 참나물, 곰취 등을 구별해서 잘도 딴다. # 내년 봄에는 한강기맥을 걸을 수 있으려나? # 참나물 향이 정말 좋다. 간밤 숙취 때문에 머리가 흔들려 어지러웠지만 참취, 참나물 구별하는 재미에 곧 잊었다. # 숲을 한참 헤매다 배고파 숲 바닥에 점심상 펼쳤다. # 김치와 삼겹살 남은 것 잘라 넣고 참나물과 취나물 쭉쭉 찢어 볶음밥을 만들었다. 오전 내내 속이 뒤집혀 계속 구역질을 했는데 이 볶음밥 먹고 나니 씻은 듯 나았다. # 다들 적당한 양을 맛보기로 취한 후 산을 내려왔다. # 키 큰 졸방제비꽃이 숲바닥에 가득하다. # 불발현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없는 동안에 임도 수리하는 이들이 찾아 왔다. 이 지역 사람들인데 사투리가 심해 거의 이북사람 말투이다. 정자에서 점심 먹은 후 장곡현 쪽으로 임도 수리하러 갔다. # 우리도 짐 정리했다. 이제 이곳 불발현을 떠날 시각이다. # 정자에 앉아 기념 촬영을 했다. # 길고 찐한 불발현에서의 일박 이일이었다. 그런데 이 분들 포즈가 예전 성룡 영화에 나오는 소화자 같은 분위기이다. # 편안한 하룻밤을 허락해 준 불발현에 작별하고 속세로 길을 잡았다. # 산냄시님 왈 ; 저것이 한강기맥 계방산이여! # 올라 올 때 실컷 보았습니다. # 임도엔 뙤약볕 강렬하게 내려 쬐고 있다. # 저 계방산은 한강기맥으로 한 번, 100대 명산 순례로 또 한 번은 찾아야 할 산이다. # 박꾼님은 이번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뚜벅과 같은 직장 동료인데 첫 만남이지만 오랜 친구처럼 공감대가 많았다. # 자운 임도 중간에 있는 쉼터를 다시 만났다. 그 그늘에 잠시 쉬었다. 간밤 전투에 내상이 심했던 두 분은 딱 5초 만에 코를 골았다. 신기한 모습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쉬 잠 들지 못하는 나에게는 절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 자운 임도는 5.2km 거리의 긴 임도이다. 내려 가는 길도 결코 짧고 쉽지 않다. # 이 쉼터는 어제 오늘 한 번도 앉아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어제는 직전 맨땅에 쉬었고 오늘은 뙤약볕 강렬했기 때문이다. # 내가 서낭당인 줄 알았던 이 금줄이 어제 산림청 행사에서 아이들이 소망을 적어 매단 것이란 것을 직접 구경했던 이 분들 덕분에 알게 되었다. # 긴 임도이다. 입 꼭 닫고 침묵하며 걸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동무들과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걸었다. # 거의 다 내려온 지점에 있는 계곡으로 내려 갔다. # 얼음같이 찬 계곡물에 세수하고 등목했다. 등에 물이 닿을 때마다 진저리가 쳐진다. 그래도 그 시원함이 좋아 비명 질러가며 등목을 즐겼다. # 조금 더 내려 임도와 숲을 벗어났다. # 그렇게 길고 진했던 불발현의 야영 모임을 마감했다. 이후 서석 어느 곳에 있는 막국수 집에서 뒤풀이한 후 두 팀으로 나눠 각자의 서식지로 돌아갔다. # 불발현 산나물은 우리집에서 무침이 되기도 하고 쌈나물이 되기도 했다. # 이렇게 삼겹살 조금 구워 산나물에 싸먹으니 신선한 산냄시가 입안 가득 차오른다. 나는 원래 산나물을 구별할 줄도 모르고 즐기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특히 백두대간과 9정맥 종주할 때는 자연에 대한 일종의 청교도적 소명의식 같은 것이 있어 산속의 풀포기 또는 돌멩이 하나 건드리지 말자는 의식이 강했다. 그러나 세월 흘러 1대간 9정맥 모두 마치고 동무들과 한두 차례 야영하면서 나물 이름 배우고 한두 입 먹으며 나물 맛을 배워 보니 신선한 나물 향에 점점 매료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많은 양을 채취해서 자연이나 원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수준이 아니라면 한 번 맛 볼 정도의 채취는 무방한 일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오랜 산동무들과 산 속에서 야영하며 술잔 주고받는 재미가 쏠쏠하니 이런 모임을 사양치 못하겠다. 그리하여 술보다는 산냄시, 나물냄시와 함께 사람냄시에 취하여 보는 것도 마음껏 아름다운 일이었다. 그러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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