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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산행]화악 삼일리/華岳 三逸里-편안함으로 수고로움을 대비하다! 본문
'이일대로(以逸待勞)'란 고사성어가 있다. '써 이(以)', '편안할 일(逸)', '기다릴 대(待)', '수고할 로(勞)' 자를 쓴다. 직역하면 '편안함으로써 수고로운 자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 36계 가운데 승전계(勝戰計)에 속하는 네 번째 계책이다. 원문(原文)에는 이렇게 나온다. '困敵之勢 不以戰 損剛益柔(곤적지세 불이전 손강익유 ; 적의 기세를 피곤하게 만들고 싸우지 않는다. 강한 것을 덜어 부드러운 것을 보탠다.)' 이 계책은 손자(孫子) 군쟁편(軍爭篇)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以近待遠 以佚待勞 以飽待飢 此治力者也(이근대원 이일대로 이포대기 차치력자야 ; 가까운 곳에서 먼 길을 오는 적을 기다리고, 편안한 자세로 적이 피로해지기를 기다리며, 배불리 먹고 나서 적이 배 고프기를 기다리니, 이것이 힘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이일대로'는 편안히 쉬면서 피로한 적을 기다리는 계책(計策)이다. 휴식하며 힘을 비축(備蓄)하였다가 적이 피로하여 지쳤을 때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인류 전쟁사 중 상당수의 주요 전투에서 이런 이일대로(以逸待勞)의 계책이 승패를 좌우하였다. 그들이 모두 손자병법을 공부하지는 않았겠지만, 전쟁의 원리는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통하는 바 있었을 것이다. 일(逸)은 '편안할 일', '달아날 일'이다. 용례로는 '안일(安逸)', '일탈(逸脫)' 등이 있다. '안일(安逸)'은 편안하고 한가함을 말한다. 지금이야 부정적 의미로 쓰이지만 원래는 한가한 휴식을 의미했다. '일탈(逸脫)'은 빗나가고 벗어남을 뜻한다. 이일대로(以逸待勞)에서는 '편안할 일'로 쓰였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에는 '삼일리(三逸里)'란 마을이 있다. 화악산(華岳山) 자락에 위치한 산골 마을이다. 삼일리란 지명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등 '삼현(三賢)'이 은거한 곳이라 '삼일(三逸)'이라 불렀다 전해진다. 매월당(梅月堂)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한 생육신(生六臣)이다. 생후 8개월에 글의 뜻을 알았고 다섯 살 때 세종대왕 앞에서 글을 지었던 천재였다. 하지만 불의한 세상과 타협치 못하여 책을 불사른 후 머리를 깎고 천하를 떠돌았다. 그의 천하주유(天下周遊) 발걸음이 이곳 화천에도 닿은 모양이다. 매월당 외에 이현(二賢)은 누구인지 자료를 찾아보니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과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이다. 곡운(谷雲) 김수증(金壽增)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병자호란때 삼학사(三學士)인 김상헌(金尙憲)의 손자이다. 젊어서부터 산수(山水)를 좋아하여 금강산 등 여러 곳을 유람하였는데, 말년에 화천 사탄(史呑)으로 은거하여 농수정사(籠水精舍)를 짓고 그곳을 곡운구곡(谷雲九曲)이라 불렀다. 사탄은 사내의 옛이름이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은 곡운(谷雲)의 조카이다. 뛰어난 문장과 탁월한 식견을 가졌지만 그 역시 산수(山水) 사랑이 남달랐다. 아무래도 집안 내력인 모양이다. 삼연도 벼슬을 마치고 63세 때 곡운(谷雲)에 우거하며 곡구정사(谷口精舍)를 짓고 말년을 마무리했다. 이렇듯 삼현(三賢)이 티끌 많은 세상을 버리고 은거했던 화천의 삼일리는 화악산(華岳山)을 둘렀으니 산 뛰어나고 곡운구곡(谷雲九曲) 굽이치니 물 좋은 곳이다. 빼어난 산과 맑은 물을 갖췄으니 신선되고자 하였던 옛 선현들 숨기에 알맞았다. 선현에야 비길 바 못되지만 한적한 오지 좋아하는 나 같은 홀로 산꾼이 관심가지기에 또한 적합하였다. 하지만 화천이란 곳이 워낙 멀리 있고 산수(山水)보다는 군부대로 이미지 각인 된 곳이라 가까이 할 기회는 드물었다. 예전 한북정맥 종주할 때와 인근 몇몇 산길 걸을 때 잠시 스쳐지났을 뿐이다. 그러던 차에 홀로 산꾼 몇몇이 그곳 어느 계곡으로 더위 피해 하룻밤 숨어든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들려온다. 삼일리(三逸里)는 편안하게 숨어 있을 만한 고장이다. 삼현(三賢)이 안일(安逸)했을 정도로 한적하고 경치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 계곡은 깊이 숨어 이일대로(以逸待勞)하기 좋은 곳이다. 이일대로(以逸待勞)는 전쟁의 계책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스스로 전쟁을 할 일은 없다. 때문에 편안함으로 수고로운 적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편안함으로 각자의 다음 수고로움을 대비하면 될 일이다. 그러면 손강익유(損剛益柔)하여 세상사 곤란(困難)의 강함은 덜어내고 부드러움은 보탤수 있을 것이다. 그 편안함을 찾아 화천으로 길을 잡았다. 팔월 장마가 막바지에 이르고 불볕 더위 기승을 부릴 때 이야기이다. 편안함으로 수고로움을 대비하다! 일시 : 2017년 8월 5, 6일. 흙과 해의 날.
올해 장마는 유난히 길고 소란하다. 어찌된 것이 매 주말마다 비를 몰고 오니 그렇다. 4주 연속 주말이면 비가 쏟아졌다. 야영 산행 들어간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산행 못해 근질거리던 참에 홀로 산꾼 몇몇이 화악산 어느 골짜기로 스며든다는 소식이 들렸다. 얼른 동참하겠노라 문자 날리고 짐을 챙겼다. 이번 길은 홀로다. 계곡으로 들어가면 사내들 웃통 벗고 물에 뛰어들 일 당연하다. 마눌에겐 어울리지 않는 자리인 것이다. 막상 더워 움직이기 싫으면서도 홀로 남겨져 약간 서운해 하는 마눌과 작별하고 길을 나섰다. 휴가철이라 고속도로는 곳곳이 정체이다. 게다가 서울을 벗어나기도 전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다. 순식간에 고속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한다. 화천은 먼 곳이다. 폭우와 정체와 먼 거리에 시달리며 오래 운전하였다. 덕분에 오후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동무들은 오전 일찍 도착하여 탁족(濯足)하였을 것이고 이미 취기(醉氣)도 도도할 것이다.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오후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으로 오는 길은 백운계곡 거쳐 광덕고개를 넘는 길이었다. 백운계곡과 광덕계곡에는 더위를 피해온 피서객들로 넘쳐났다. 우리의 목적지는 삼현이 은거했던 삼일계곡에서도 벗어난 곳이다. 삼일계곡에도 사람들 넘쳐나는 까닭이다. # 계곡의 최상류이니 피서객 없고 한가한다. 계곡을 찾아 올라가니 그곳 커다란 바위 그늘에 동무들이 앉아 있다. # 거대한 너럭바위가 자리한 곳이다. 전체적으로 바위가 경사진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 최상류이니 물 맑고 차갑다. # 우선 신발 벗고 그 차가운 계류(溪流)에 탁족(濯足)하였다. 계곡물이 얼음처럼 차갑다. 지난 주 삼남길 걸으며 무리하였는지 검지 발톱에 피멍이 들었다. # 해 넘어가니 굳이 그늘에 숨어 있을 일 없다. 새 사람 온 기념으로 너럭바위에 새로운 전을 펼쳤다. # 아침부터 시작해서 하루종일 달렸을 이 사람들은 신참 입곡(入谷) 기념으로 다시 제대로 달려볼 작정인 모양이다. 술 마실 생각에 절로 파안대소(破顔大笑)이다! # 선 음주 후 인사! 일단 한 잔 돌린 후 안부는 묻기로 했다. # 처가가 제주도인 이는 이번에 제주 특산 한치를 준비했다. 살짝 데쳐 초장에 찍으니 달고 부드럽다. 빈속에 마신 술 한 잔과 잘 어울린다. # 압력 밥솥에는 날아다니는 산닭이 맛나게 익고 있다. 술 좋고 안주 좋고 무엇보다 물소리 바람소리 좋으니 술이 절로 넘어 간다. 정신없이 몇 잔 서둘러 마셨다. # 계곡의 밤은 빠르다. 술맛, 계곡맛에 취해 있다가 문득 정신 차리니 이미 어두워졌다. 그렇다고 걱정할 일은 없다. 술은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여름 밤은 충분히 길다. 이윽고 토요일에도 근무해야 하는 동무까지 합류하여 성원을 이루었다. # 성원이 되었으므로 다시 술자리를 정비해야 한다. 술은 종류별로 안주도 재정비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마셨다. # 산꾼들 얘기야 늘 산 이야기가 주(主)다. 이 자리에 참석 안하신 분이 간다는 히말라야와 이 자리에 있는 분이 곧 갈 JMT가 주 메뉴였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나이인 지라 건강과 가족이야기가 나오더니 똥꼬와 그 주변 이야기도 안줏감으로 등장한다. 어떤 이야기가 나오든 무슨 상관이랴. 술맛 좋고 계곡맛 좋으면 그만이로다! # 취기가 한계에 이를 무렵 달걀 열 개가 한꺼번에 스크램블로 변했다. 식객들의 희망은 계란 프라이였는데 요리사의 취기가 스크램블을 만들었다. 술이 취하면 이상하게 식욕이 동한다. 저 많은 달걀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 # 그렇게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기다 문득 고개을 드니 화악산 마루금에 보름달이 걸렸다. 휴대폰 사진이라 화질 흐리고 노이즈 자글자글하지만 그날의 정취를 느끼고자 버리지 않았다. # 거의 자정까지 마신 모양이다. 취기 올라 더 마시기 힘들 무렵 자리를 정리했다. 우리가 있던 곳은 경사가 있어 집 짓기는 어려운 곳이다. 먼저 온 동무들은 아랫쪽 계곡에 자리잡았고 후발대로 온 우리는 길 가에 집을 지었다. 아침에 보니 계곡에 빈 평상이 여럿 있다. 낮에야 주민들이 돈을 받을 것이지만 밤에 집 지었다가 아침 일찍 허물면 뭐라 할 사람 없다. # 동무들은 이곳 계곡 가에 집을 지었다. JMT 계획한 이는 아침 일찍 짐 챙겨 훈련하러 떠나고 나는 집 철거하여 계곡에 있는 동무들과 합류했다. # 요즘 같은 염천의 계절에는 계곡이 최고이다. 예전엔 아무리 더워도 산길 들길 누비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다. # 아랫쪽 평상에도 자리 잡은 이들이 있다. # 계곡을 가로질러 그늘막까지 설치한 것을 보니 자릿세로 돈 꽤나 주었겠다. # 까치박달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자작나무과인 까치박달은 껍질을 채취해 정신불안이나 방광염의 약재로 쓴다. 한방에서는 소과천금유(小果天金楡)라고 부른다. # 국물 있는 음식 끓여 해장하고 주변 산책 좀 하다가 계곡에 풍덩 뛰어들었다. # 물은 자연에게도 인간에게도 근원(根源)의 대상이다. 그것은 우리가 태아 시절 엄마의 양수 속에서 자란 탓이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어리나 드나 물에만 들어가면 동심(童心)으로 돌아간다. # 계곡물이 아주 차갑다. 하지만 이 염천에 이런 호사 자주 누릴 일 아니니 오래 놀았다. # 이 분은 간밤에 심하게 달려 자중 중이시다. # 그래도 해장 한 잔 하셔야지! 무릇 술은 술로 푸는 법! # 권하시는 분과 외면하시는 분. # 마시고 싶어도 마시지 못하는 분은 결국 고개를 떨군다. 이렇게 저렇게 희희낙락하며 재미나게 놀았다. # 계곡 아랫쪽은 넓은 반석으로 되어 있다. 쉬기 좋은 곳이니 마을 주민들이 선점하여 장사에 활용하고 있다. # 소낙비 한 차례 지나갔다. 홀라당 벗고 물에 들어가 있으니 비가 두렵지 않다. 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젖은 자는 비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 반나절 물놀이 하며 놀다가 짐을 챙겼다. 갈 길 멀고 휴가철 교통 정체가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 이 깊은 골짜기에도 어찌어찌 알고 다들 찾아 온다. 그래도 이곳은 삼일리 계곡 본류보다는 많이 한적하다. 이후 사창리로 가서 점심 먹고 헤어졌다. 군사 지역인 사창리는 웬만한 도시처럼 발달해 있었다. 그런데 사창리에 도착하는 순간 엄청난 더위가 다시 엄습하였다. 햇살이 어찌나 따가운지 시가지를 잠깐 걸었는데 뒷통수와 등짝이 따가웠다. 좀 전에 있었던 계곡과는 몇 배 이상의 기온차가 나는 듯하다. 계곡에서 1박 2일간 몸을 얼려 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등짝 익을 날씨다. 손자(孫子)의 삼십육계 중 네 번째 계책은 '이일대로(以逸待勞)'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편안한 휴식을 가짐으로 다음에 닥칠 수고로움을 대비하자는 말이다. 이 여름 우리는 화악산 자락 어느 계곡에서 편안히 이일대로(以逸待勞)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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