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야영산행]귀목봉/鬼木峰-축귀발복(逐鬼發福)의 산(山). 귀목봉(鬼木峰)! 본문
가평(加平)은 산이 많은 고장이다. 이름을 가진 산만 세어도 칠팔십여 개에 이른다. 이렇게 산이 많은 고장의 이름에 '평평할 平' 자가 들어 있음은 아이러니다. 아마도 이 고장 이름을 지을 때 하도 산이 많으니 이름에나마 '평평할 平'을 넣어 평지(平地)를 꿈꾸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땅의 산은 아무 곳이나 무질서하게 솟아 있지 않다. 대부분 백두대간(白頭大幹)과 정맥(正脈), 그리고 기맥(岐脈)의 흐름에 맥(脈)을 같이 한다. 그것은 우리 인체의 혈관이 동맥, 정맥 그리고 모세혈관으로 갈래친 것과 같은 이치다. 가평의 많은 산은 모두 세 갈래의 흐름으로 군(郡)을 감싸고 있다. 그 첫째는 가평의 동쪽 울타리를 이루는 '화악지맥(華岳枝脈)'이다. 한북정맥 도마치봉에서 출발한 화악지맥은 석룡산과 경기 제1봉 화악산을 거쳐 몽덕, 가덕, 북배, 계관산을 거쳐 보납산 이후 북한강에 잠긴다. 두 번째는 '한북정맥(漢北正脈)'이다. 한북정맥은 국망봉, 강씨봉, 운악산 등 뛰어난 가평의 명산을 통과하여 서울의 도봉산으로 향한다. 세 번째 산줄기는 '명지지맥(明智枝脈)'이다. 한북정맥 강씨봉 자락 능선에서 갈래친 지맥은 귀목봉, 연인산, 대금산, 불기산을 넘어 호명산 이후 북한강에서 맥을 다한다. 이러한 가평의 산줄기 흐름 중 세 번째 명지지맥의 출발점에 있는 산이 '귀목봉(鬼木峰)'이다. 높이가 1,036m에 이르는 높은 산이나 원래는 이름이 없던 무명봉(無名峰)이었다. 좌우에 청계산(淸溪山)과 명지산(明智山)이란 명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사이에 끼인 듯 숨어 있어 그랬던 모양이다. 귀목(鬼木)이란 이름은 산 아래 귀목 마을이 있고 그 뒤에 귀목 고개가 있어 자연스레 귀목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전해진다. 귀목(鬼木)은 '귀신 귀(鬼)' 자를 쓴다. 귀신과 관련된 전설이 있나 찾아보았지만, 계곡길과 능선길이 모이는 곳이라 '길목'이라 부르다 변음되어 귀목이 되었다는 기록만 떠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길목이 귀목으로 변했다는 말은 그다지 개연성(蓋然性)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옛사람들은 마을 입구나 뒷산에 '정자나무'를 곧잘 심었다. 그것은 정자나무가 액운이나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준다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무에 대한 믿음은 당산제(堂山祭)의 형태로 지역과 도농(都農)을 가리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당산나무로서 자주 심었던 나무는 느티나무나 회화나무, 팽나무, 은행나무 등이다. 그중에서도 '회화나무'는 사찰, 고궁, 서원이나 고택에 많이 식재(植栽)되었는데, 그것은 이 나무가 이름인 '괴(槐)' 자에 '귀신 귀(鬼)'가 들어 있어 특히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라 여겨졌던 탓이다. 그리하여 주(周)나라 때부터 삼공(三公)이나 사(士)의 살아생전 주거 공간과 사후의 무덤과 사당에는 회화나무를 심었다. 이른바 귀족나무이다. '느티나무'도 당산목으로 많이 심었다. 느티나무는 한자로 규목(槻木) 혹은 거목(﨔木)이라 불렀다. 하지만 우리 옛사람들은 따로 괴목(槐木)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회화나무를 괴목이라 불렀는데도 그렇다. 그것은 회화나무가 중국 나무이고 느티나무가 우리 나무이기 때문이다. 회화나무는 인위적을 심어 가꿔야 하는 나무이고 느티나무는 저절로 동네 주변에서 자생하였다. 아무래도 회화보다는 느티가 민초들의 눈에 입에 익은 나무이다. 그 결과 괴목(槐木)이란 이름도 느티가 가져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느티나무는 백성의 나무가 되었다. 그리고 회화나무는 수명이 백여 년에 불과하지만, 느티나무는 천 년까지 사는 장수(長壽)의 나무이다. 애초에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두 나무 중 우리 옛사람들이 마을의 당산목으로 심었던 나무는 대부분 느티나무였다. 그리고 그 느티나무를 괴목(槐木)으로 기록하였다. 따라서 한자로 괴목(槐木)이라 부를 때 괴목은 대부분 회화나무라기 보다는 느티나무이다. 짐작하건데 귀목마을에도 당산목(堂山木)으로 느티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는 수백 년을 산 노거수(老巨樹)로 자랐을 테고 오래된 나무 있으니 마을 이름은 느티마을이 되었을 것이다. 한자로는 괴목리(槐木里)가 된다. 한자로 된 마을 이름은 세월 흐르면서 곧잘 변음(變音)된다. 괴목(槐木)에서 나무 목(木)이 떨어져 나가면 귀목(鬼木)이 된다. 잡귀를 막아주는 당산목이니 귀신 귀(鬼)가 들어가 어색할 이유 없다. 귀목 마을에는 '장재울'이란 깊은 계곡이 있다. 장재울, 장자울 혹은 장재골, 장자골은 같은 이름이다. 맏아들이 터를 잡아 장자골이 되기도 하지만, 정자나무가 있어 정자골이었던 것이 장자골로 변한 경우가 많다. 귀목 마을이 정자나무와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증거이다. 이런 귀목 마을, 귀목 고개, 귀목봉의 이름 유래에 대한 유추(類推)는 어디까지나 강/사/랑의 어설픈 짐작일 뿐이다. 인터넷에 떠돌듯 정말 길목에서 변한 이름일 수도 있고 귀신나무와 관련된 전설이 있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일제 강점기에 귀목(鬼木)이란 이름의 왜인(倭人)이 이 골짜기에 살았을 수도 있다. 귀목(鬼木)은 왜말로 '오니기'라고 부르는데, 왜국의 성(姓)씨이기도 하고 마을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정서에 맞고 관련 예도 많으며 장재울이란 계곡까지 함께 있는 동네이니 아무래도 내 짐작이 떠도는 여러 유래 중 어느 정도 신빙성은 있어 보인다. 강/사/랑 부부의 이번 주 야영 산행지는 귀목봉과 그 산이 품고 있는 장재울계곡이다. 지난주 삼일리계곡 야영 때 나 혼자 갔더니 마눌은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은근 서운했던 모양이다. 계곡 좋은 산으로 야영 가자고 주중에 먼저 제안을 한다. "좋네, 그대가 원하니 내 좋은 곳 한번 물색해 봄세!" 귀목봉은 예전 한북정맥 종주할 때 강씨봉 자락에서 올려다본 산이고 마눌과 함께 명지산정에서 야영할 때 건너다본 산이다. 우리 둘 모두에게 낯설지 않은 산이다. 그리고 미답(未踏)의 산이다. 그 품속에 은근한 계곡까지 품고 있으니 이 계절에 찾기에 그만이다. 그리하여 미답의 귀목봉을 만나기 위해 등짐 챙겨 길을 나섰다. 축귀발복(逐鬼發福)의 산(山). 귀목봉(鬼木峰)! 일시 : 2017년 8월 12, 13일. 흙과 해의 날.
휴가철의 외곽고속도로는 차량으로 가득하다. 언제나 그렇듯 양재나들목 인근과 하남 인근, 그리고 구리나들목 근처에서 정체가 심했다. 이후 고속도로를 벗어나 포천 쪽으로 향하는 길도 진접 근처에서 잠시 막혔다. 집 나선지 두 시간 반 정도 걸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귀목리 초입 어느 수련원 입구에 주차 공간이 비어 있다.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준비된 주차 공간이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깊숙이 방해되지 않게 주차하고 산행 준비를 했다. 오랜만의 야영산행이라 마눌의 준비운동이 진지하다. 비교적 가볍게 꾸린 배낭을 마눌에게 건네주고 덕담으로 격려한 후 함께 길을 나섰다. 오후의 귀목리는 햇살 강하고 기온 높다. 귀목봉/鬼木峰 청계산과 명지산의 중간에 있는 귀목봉(높이 1,036m)은 이름없는 고지로 귀목고개 위에 있다 하여 등산인들이 귀목봉이라 부르며 동쪽으로 명지산, 서쪽으로 청계산, 북쪽으로 강씨봉이 인접해 있다. 귀목봉은 산의 높이에 비해 전반적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험준하지 않아 수월한 등산을 즐길 수 있다. 등산길 중턱에는 크고 작은 폭포와 물웅덩이가 있으며, 주변에는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과 울창한 숲이 잘 어울려 있다. 명지산 정상까지는 적어도 3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귀목봉 정상에 올라서면 경기도 최고봉들인 화악산과 명지산을 조망할 수 있다.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귀목봉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골짜기 깊은 동네라 휴가철인데도 한가하다.
# 차량 통행 드문 그 길을 따라 길게 올라갔다.
# 조종천 상류인 이 동네에는 대규모 수목원과 그곳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이 있다. 가족 단위의 피서객이 캠핑장 곳곳에 자리잡고 피서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번잡하지 않고 소란스럽지도 않다. 조용히 쉴 수 있는 곳이다.
# 다락터교로 접근했다. 전방에 뾰족한 저 산이 귀목봉인 줄 알았다. 나중에 확인하니 정상은 뒤쪽 멀리 있었다. 저 봉우리는 귀목봉에서 이곳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에 있는 852봉과 632.8봉이다.
# 언뜻 보기에도 물이 맑고 깨끗하다. 그 차가운 계곡에 몸 담근 저 가족들 참 시원하겠다.
# 우측에 계곡이 또 하나 있다. 귀목고개와 명지산 쪽의 아재비고개 방향에서 흘러내린 귀목계곡의 물이 조종천으로 합류하고 있다.
# 그런데 문제가 좀 생겼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계곡 입구가 철문으로 막혀 있다. 사유지라고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 둔 것이다. 좌우를 살펴보아도 들어갈 구멍이 없다. 계곡 전체가 사유지는 아닐 테고 입구 토지만 그럴 것인데 이렇게 막아두니 들어갈 방법이 없다.
# 전방 멀리 귀목고개가 보인다. 저 고개에서 우측으로 가면 명지산으로 올라가고 좌측으로 가면 귀목봉으로 간다. 계획을 바꿔 귀목고개를 통해 귀목봉을 찍고 다시 계곡으로 하산하는 방법도 잠시 고민하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야영짐을 진 마눌의 체력 때문에 곧 그 방법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 우여곡절이 많았다. 뭐... 어찌어찌 해서 장재울계곡 임도에 들어서기는 했다. 힘이 많이 들었고 상처도 많이 입었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쉬운 길이 있었는데 우리 체질에 맞지 않았다.
# 입구를 막아 두어 그런지 이 계곡의 임도는 사람 흔적이 적다. 수풀이 자라 임도를 뒤덮었다. 임도 따라 계곡을 길게 올라갔다. 중간중간 쉴 수 있는 곳이 여러 곳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위로 올라 가기로 했다.
# 상류쪽에 우리가 쉬기 좋은 장소가 있었다. 딱 텐트 한 동 들어갈 장소였다. 굵은 돌 좀 골라내니 안성맞춤으로 변했다. 마치 우리를 위해 준비해 둔 곳 같았다.
# 두어 명 몸 담그기 딱 알맞은 크기의 소(沼)도 갖춘 곳이다.
# 물이 맑고 깨끗하였다.
# 짚신나물 예쁘게 피어 배경이 되어 주었다. 이 야생초는 열매에 갈고리 같은 털이 달려 있어 짚신이나 바지에 잘 달라붙었다. 짚신나물이란 이름은 그래서 붙여졌다. 나물이라 이름 지었으니 당연히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 그곳에 우리 집을 지었다. 계곡물 흐르는 물가라 습기 많은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여름철 계곡 야영에서는 충분히 감내할 만한 일이다. 단풍나무 그늘 드리웠으니 뜨거운 햇살 맞을 일 없다.
# 집 지어놓고 짐 정리하였다. 들머리에서 고생을 하였더니 옷이 완전히 물구덩이다. 얼른 벗고 계곡에 뛰어들었다. 얼음 같이 차가운 물이라 정신이 번쩍 들게 시원하였다. 그 계곡물로 마음껏 호사하였다.
# 차가운 물로 몸을 꽁꽁 얼린 후 새옷으로 갈아 입었다. 깨끗하고 정갈한 몸과 마음으로 텐트 안에 누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역시 여름에는 계곡 야영이 최고다. 다만 이곳은 골짜기 깊어 통신이 터지지 않는 곳이다. 우리 역시 스마트폰에 중독된 현대인이라 스마트폰 연결되지 않으니 잠시 무얼해야 할지 난감하였다. 프로야구 중계도 못 보고 세상 소식도 못 들으니 눈 멀고 귀 멀은 듯하였다. 뒷날 확인하니 프로야구는 졌고 세상 뒤집어 엎으려는 자들은 또다시 자기돈 들지 않는다고 나랏돈 펑펑 풀 정책을 남발하였더라. 차라리 안 보고 못 들은 것이 더 좋았다.
# 뚜렷이 할 일 없으니 주위 아직 밝은 시각임에도 저녁상을 펼쳤다. 생선 굽고 찌게 하나 끓인 소찬이지만 막걸리 한 잔 곁들이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 저녁 먹고 나도 아직 캄캄한 밤은 아니다. 텐트 주변을 돌아다니며 가볍게 산책하였다.
# 빨간 우리 텐트는 그야말로 전천후이다. 한겨울 눈밭에도 염천의 계곡에도 진진이 예쁘게 핀 능선에도 단풍진 산정에도 늘 저 모습 그대로 우리와 함께 하였다.
# 몇 년 계속 사용했더니 이제는 폴대도 약간 휘고 색이 바래진 곳도 있지만 정든 녀석이라 버릴 수가 없다. 게다가 이 텐트는 가로 폭이 넉넉해 우리 부부 둘이 함께 활동하기에 딱 알맞다. 지금 시중에는 이런 스펙의 텐트가 잘 없다. 때문에 당분간은 계속 우리 야영 산행 사진 중 텐트 사진은 빨갱이가 될 수밖에 없다.
# 문명세계와 떨어지니 잠 자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다. 주중 같으면 아직 회사에 있을 시각인 여덟 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계곡 물소리 자장가 삼아 꿈나라로 들어갔다. 평소 새벽 한 시가 넘어 잠자리에 드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조기 취침이다. 취침 시간이 워낙 길어 여러 차례 자다깨다 반복하였다. 그러다 문득 텐트 위를 보니 하얀 백사(白蛇) 한 마리가 허공에 뜬 채 나를 지긋이 내려보고 있었다. 머리가 사람 머리만 하고 세모로 찟어진 눈빛이 아주 강렬하였다. 나도 지지 않고 그 눈을 응시하였다. 아주 오랫동안 백사와 나 사이에 눈싸움이 벌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백사는 텐트 바깥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 몇 해 전 설악산 마장터 눈밭에서 야영할 때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귀신과 눈싸움을 했었다. 마장터의 그 귀신은 나와 눈싸움하고 난 후 다른 동료의 텐트도 찾아갔었다. 마장터는 영동과 영서를 오가며 장사를 하던 선질꾼들의 쉼터였다. 갖가지 사연이 많았을 곳이다. 따라서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있기에 충분한 곳이다. 이곳 장재울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하얀 백사가 나타났을꼬?
얼마나 오래 긴장하며 백사와 눈싸움을 했는지 온몸이 경직되어 있다. 텐트 바깥으로 나와 굳은 몸을 풀었다. 주위 둘러보니 계곡 물소리 요란하고 밤새 처량히 울고 있다. 시각은 아직 자정에 불과하다.
# 일단은 우리도 그 고요한 나른함에 동참하기로 했다. 물소리 좋고 바람소리 좋다. # 아침 먹고 정리 대충한 후 한참을 쉬었다. 그리고는 마눌에게 네 가지 안(案)을 제시했다. 1. 짐 정리한 후 계곡을 치고 올라 귀목봉 찍고 귀목고개로 하산. 2. 짐은 그대로 두고 함께 귀목봉 올랐다 다시 야영지로 복귀. 3. 나 홀로 귀목봉 올랐다가 복귀. 4. 그냥 짐 꾸려 하산. 마눌의 선택은 당연히 4번이다. 그녀는 지난 번 월악산 야영산행 이후 제대로 된 산행을 못해서 자신의 체력에 걱정이 많다. # 우리 야영지 근처로 연세 지긋한 어르신 한 팀이 물놀이를 왔다. 그분들 가까이 있으니 마눌 혼자 있어도 걱정할 일 없어 보였다. 그래서 3번 안을 선택했다. 물 500ml 한 통과 간식으로 미니 빵 몇 개, 사탕 서너 개 챙기고 비상물품도 챙긴 후 혼자 길을 나섰다. 정상 찍고 돌아오는데 세 시간 정도면 충분해 보였다. 자료를 보니 귀목봉은 등로가 완만하고 두 시간 이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느긋하게 쉬고 있으라 하고 홀로 야영지를 떠났다. # 임도를 따라 길게 올라갔다. 다니는 사람 없어 임도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다. # 영아자가 보랏빛 꽃을 피웠다. 초롱꽃과이다. 봄철 어린 순을 뿌리째 캐 데쳐 나물로 먹는다. # 사위질빵. 사위 사랑이 지극한 장모가 있었다. 일꾼들이 함께 짐을 질 때 사위가 진 짐의 노끈을 이 야생초의 여린 덩굴로 묶게 했다. 여린 덩굴로 묶었으니 당연히 끊어지고 사위의 지게는 텅 비었다. 빈 몸으로 편하게 산을 내려 가라는 장모의 사랑이 담긴 야생초이다. # 누리장나무. 나무에서 누린내가 나서 누리장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렇게 꽃이 만발한 데도 막상 누린내는 별로 나지 않았다. 봄철 여린 잎은 나물로 먹고 가지와 뿌리는 이뇨, 신경통 등의 약재로 쓴다. # 등골나물. 국화과이다. 한방에서는 칭간초(秤杆草)라고 부르며 황달, 중풍, 고혈압 등의 약재로 쓴다. # 구불구불 임도따라 길게 올라 갔다. 얼마쯤 갔을까 임도는 휘어서 건너편 산자락으로 돌아가고 등로는 숲속으로 이어진다. # 우측으로 계곡은 계속 이어진다. 그곳에서 나온 물이 임도를 넘어 폭포를 이뤘다. # 표지기 매달린 숲속으로 들어갔다. # 이곳부터는 큰고비골이다. # 계곡은 계속 깊게 이어진다. 이 산은 계곡이 정말 발달한 산이다. 이렇게 깊숙히 산속으로 들어가는 계곡은 드물다. # 안쪽으로 깊게 들어왔음에도 소(沼)를 이룬 곳이 줄줄이 있다. # 그러다 계곡이 갈라지는 곳에서 중앙의 가파른 사면을 치고 오르라 한다. # 경사가 아주 가파르다. # 한차례 올려 능선에 오르자 터진 숲 너머로 봉우리가 보인다. 이때는 저 봉우리가 귀목봉인줄 알았다. 이 능선따라 마루금 고개까지 오르고 우측으로 저 봉우리에 오르면 될 듯 싶었다. 얼마 남지 않았고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 잠시 더 오르자 인공으로 돌을 쌓아둔 곳이 나왔다. 예전에 화전민이 살던 곳인지 무너진 성터인지 정확한 정보는 없다. 가까이 가보자 저 축성 위로 등로가 지나가고 있다. # 산의 우측 사면을 휘감아 돌며 위로 올라간다. # 등로의 상태가 아주 나쁘다. 가파르고 무너져 내리는 형태의 등로이다. # 계곡은 깊고 깊게 산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말 보기 드물게 계곡이 깊은 산이다. # 등로의 상태가 아주 나쁘다. 너덜지대의 돌들은 대부분 흔들리고 미끄럽다. 쓰러진 나무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있다. # 드디어 계곡이 끝나는 곳이다. 이곳부터 가파르게 좌측 사면을 치고 오르게 된다. # 엄청나게 가파르고 위험한 길이다. 이 길을 야영배낭 메고 올랐다면 쓰러진다는 말 나왔겠다. 마눌 데리고 오지 않은 것도 정말 잘했다. 만약에 고집 피워 함께 왔으면 두고두고 원망 들었겠다. 나한테도 정말 힘든 길이었다. 요즘 통 운동을 못한 데다 컨디션도 그다지 좋지 못했고 이 좋은 산에 오물 남기고 싶지 않아 변을 참았더니 몸속에 열기 가득하였던 모양이다. 마지막 가파른 사면을 오르면서는 열 걸음 걷고 한 번 쉬어야 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 땀을 너무 많이 흘렸다. 물 한 통으로는 어림없는 구간이었다. 배도 엄청 고팠다. 미니 빵 세 개와 사탕 세 개 먹은 힘으로 오르려 했으니 더욱 그렇다. 이 산을 너무 쉽게 보았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오르자 드디어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 네 발 짐승의 포즈로 마루금에 올랐다. 이곳은 한북정맥과 연결된 905봉과 귀목봉의 안부 갈림길이다. 야영지에서 이곳 갈림길까지 오는데 무려 1시간 50분이나 걸렸다. 정상까지 1시간 반이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엄청난 오산이었다. 나중에 지도 확인하니 이곳까지 1시간 40분을 예상하고 있다. 우리가 있던 곳이 고도 300m이고 이곳이 1,000m쯤 되니 고도를 무려 700m나 올려야 하는 구간이었다. # 등로 한 쪽에 털썩 주저앉아 오래 쉬었다. 한숨 돌리며 셀카를 찍어봤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머리가 올백이 되어 있다. 원래 통통했던 얼굴은 부어서 더 동글동글해졌다. # 무전기를 휴대한 산꾼이 한북정맥 방향에서 넘어왔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내 모습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힘들어 그렇다 했더니 격려하고 정상으로 먼저 올라간다. # 오래 쉬었다. 그래도 갈 길은 가야 한다. 계곡길이 워낙 가팔랐던 지라 정상에 이르는 길은 산책하듯 올랐다. 나름 로프가 설치될 정도로 경사를 가진 곳인데도 그렇다. # 정상 직전에 공터가 있는 갈림길이 있다. 좌측으로 가면 깊이봉 능선이 이어진다. # 마지막으로 계단길이 나온다. # 드디어 정상이다. 작고 소박한 모습이다. 야영지에서 2시간 20분 걸렸다. 정말 힘들게 올랐다. 요 몇 년 사이 최고로 힘든 산행이었다. # 장재울계곡이 내려다 보인다. 저쪽 끝에서 골따라 이곳까지 올라온 것이다. # 전방으로 조망이 툭 트였다.우측 산줄기가 한북정맥이다. 그 능선에 뾰족한 산이 청계산이고 중앙에 우뚝한 산은 운악산이다. 그 사이가 노채고개이다. # 청계산과 운악산을 가까이 줌인하였다. # 좌측에는 연인산이 있다. 아재비고개에서 연인산 정상 거쳐 우정고개까지 이어지는 우정능선이 보인다. # 중앙에 길게 누워 있는 산줄기의 좌측 끝이 금주산이다. # 중앙 멀리 있는 산은 도봉산이지 싶다. # 정상 뒷쪽으로 화악산이 구름모자를 쓰고 있다. # 정상 전방의 조망을 파노라마로 펼쳐 보았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힘들게 오른 기념으로 사진 한 장 남겼다. 하늘 향해 가슴 열어 귀목봉의 기(氣)도 한껏 받았다. 이 산은 축귀발복(逐鬼發福)의 산이다. 이 산정에 섰으니 이제 액운은 물러가고 복이 찾아 올 것이다.
정상 너머 귀목고개 방향에 산객 몇이 막걸리 잔을 돌리고 있나 보다. 막걸리 냄새 진동한다. 가까이 가서 한 잔 얻어 마시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다. 하지만 걱정 만발로 기다리고 있을 마눌 때문에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 정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길을 나섰다. 예상보다 훨씬 시간 소모가 많아 걱정하고 있을 마눌의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정상 내리막은 가파른 로프길이다. 준비 부족해 보이는 연세 드신 여성분들이 나보다 더 쌩쌩한 모습으로 오르고 있다. # 혈관 선명한 이질풀. 쥐손이풀과이다. 쥐손이풀은 줄무늬가 세 개, 이질풀은 다섯 개이다. 그리고 이질풀은 꽃이 두 개씩 달린다. 이질풀은 한방에서 현초(玄草)라고 하며 지사제로 쓴다. 타닌 성분과 케르세틴 성분이 있어 소염, 지혈, 수렴, 살균 작용이 있다. # 작은 종처럼 생긴 잔대. 초롱꽃과이다. 딱주라고도 한다. 사포닌이 있어 약재로 쓴다. 약재일 때는 사삼(沙蔘)이라 부른다. 강장, 진해, 거담 등 기관지에 약효가 있다. # 동자꽃. 석죽과이다. 석죽은 패랭이꽃을 말한다. 주황색 꽃이 예쁜 야생화이다. # 아래로 내려 능선 갈림길로 복귀했다. 연세 지긋한 멤버로 구성된 산악회가 휴식 중이다. 이들은 아마 논남기에서 오뚜기고개 거쳐 이곳으로 왔지 싶다. 나중에 하산하여 짐 챙기면서 보니 장재울로 하산하였다. # 장재울 방향으로 마눌의 이름과 비슷한 산악회 표지기가 매달려 있다. # 엄청난 비탈길로 올라왔으니 그 각도 그대로 내려 가야 한다. # 올라올 때는 중력을 거슬러 올라야 했고 내려갈 때는 중력을 잘 제어하며 내려가야 한다. 준비 없이 오르면서 다리 근육이 놀랜 모양이다.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자니 다리가 후덜거려 빨리 달릴 수가 없다. 배도 너무 고프고. 가파른 내리막 중간에 털썩 주저앉아 한참 쉬었다. # 사면이 온통 부서진 바위로 덮혔다. 신경 쓰지 않으면 발이 꺾일 위험이 있다. # 최대한 조심하며 비탈길을 내렸다. 계곡이 시작되는 곳으로 복귀했다. 이곳부터 큰고비골의 물길과 장재울의 물길이 시작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땅속으로 물은 흐르고 있었다. 이곳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은 진작에 떨어졌다. 배가 고프고 목이 너무 말라 계곡물을 조금 마셨다. # 계곡 갈림길로 복귀. # 소(沼)가 연달이 이어진 곳도 다시 만났다. 생각 같아선 풍덩 뛰어들고 싶었지만 지금은 빨리 야영지로 돌아가는 일이 급선무이다. # 드디어 숲을 벗어났다. 뜨거운 햇살이 반가운 순간이다. # 임도길 내달려 야영지로 복귀했다. 꼬박 네 시간이 걸렸다. 예상보다 한 시간 더 걸렸다. 마눌에게 장담한 것보다는 두 배 이상 걸렸다. 그동안 마눌은 혼자 애를 태우고 있었다. 걱정이 화로 바뀌는 순간인데, 완전히 지쳐 돌아온 모습을 보고는 화도 못낸다. # 열에 들뜬 몸을 계곡물에 뛰어들어 식혔다. 예상보다 힘들어 놀랬던 다리 근육도 차가운 물 온도로 진정시켰다. 그리고 늦은 점심 먹은 후 주변 정리하였다. 계곡 습기에 눅눅해진 장비는 햇볕에 잘 말렸다. # 그리고 1박 2일간 편안한 휴식을 제공해 준 야영지에 감사의 작별을 했다. # 정말 좋은 계곡이다. 칭찬한다. # 다시 등짐 챙겨 메고 속세를 향해 길을 나섰다. # 한가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 임도 길게 걸어 인간세로 복귀했다. # 금마타리. 꽃이 황금빛으로 예뻐 관상용으로도 많이 키우는 녀석이다. # 조록싸리꽃이 폭발하듯 사방 꽃을 피웠다. # 길게 걸어 다락터교로 복귀했다. # 수목원 캠프장에는 아직 사람이 많다. # 편안한 휴식과 짜릿한 산행길을 선사했던 귀목봉과 장재울에게 작별하고 그 동네를 떠났다. 잠시후 운악산을 다시 만났다. 운악산은 마눌에게도 구면의 산이다. 예전 내가 질병을 이겨내고 다시 산길로 복귀했을 때 처음 오른 산이 바로 운악산이다. 그때는 한북정맥 종주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함께 올랐던 저 산정에서 다시 하룻밤 머물며 별 구경할 날을 계획 중이다. # 이후 먼 길 달려 우리 동네로 돌아왔다. 자주 가는 식당에서 뒷풀이했다. 막걸리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키니 비로소 극심한 피로가 몰려들었다. 정말 드라마틱한 1박 2일이었다. 이번 귀목봉 산행은 정말 힘든 일정이었다. 처음 계곡 들머리에서 험난한 사투가 있었고 뒷날 귀목봉 오름에서 엄청난 고군분투가 또 있었다.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는지 집으로 돌아온 뒷날 입술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하였다. 내 몸은 마치 리트머스 시험지 같아서 스트레스 심하면 제일 먼저 입술이 반응한다. 지난 주말 귀목봉 산행이 그렇게 힘들었다는 표현을 내 몸이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힘들어 하는 몸과는 달리 마음은 아주 청명하였다. 그것은 고요하고 아늑한 계곡에서 하룻밤 잘 보냈으며 힘들게 올랐지만 축귀발복(逐鬼發福)의 산에서 좋은 기(氣)를 마음껏 받았기 때문이다. 그걸로 충분하였다. 세상사 모든 일은 다 그렇게 균형(均衡)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
'산이야기 > 일반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영산행]서운산/瑞雲山 - 서운(瑞雲)의 징크스! (0) | 2017.11.03 |
---|---|
[야영산행]민둥산/禿山 - 오랜 인연(因緣)의 산(山)! (0) | 2017.10.19 |
[야영산행]화악 삼일리/華岳 三逸里-편안함으로 수고로움을 대비하다! (0) | 2017.08.10 |
[야영산행]중미산/仲美山 - 겸양지산(謙讓之山)!! (0) | 2017.06.05 |
[야영산행]불발현/佛發峴 - 산냄시, 나물냄시, 사람냄시!! (0) | 2017.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