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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산행]봉화산/烽火山-2016년 홀산 가을 모임!! 본문

산이야기/일반 산행

[야영산행]봉화산/烽火山-2016년 홀산 가을 모임!!

강/사/랑 2017. 1. 11. 09:45

[야영산행]봉화산/烽火山  



지난 2007년 산림청(山林廳)은 우리나라 산의 개수를 모두 4,440개라고 발표했다. 이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자연 지명자료를 기초로 현장 숲길 조사, 수치지형도 분석, 관련 기관 전문가의 검토 등을 거쳐 최종 집계한 결과이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우선 국토지리정보원 자연지명 자료 중에서 산, 봉, 재, 치(티), 대 등 산으로 분류될 만한 자연지명 8,006개를 수집한 후 이 가운데 재, 치(티), 고개를 제외하였다. 재나 고개는 산이라기보다는 산과 산을 연결하는 개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기초하여 지자체(地自體)의 등산로 현황 자료에 나타난 산 목록을 비교하고 산림청 산림지리정보시스템(FGIS)의 수치지형도 및 관리주체별 자료를 대조(對照)하여 등고선이 없거나 확인되지 않은 산을 또 제외하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지형 지리학계, 국토지리정보원, 산악단체 등 관련 전문가의 자문(諮問)을 거쳐 최종 확정하였다. 그 숫자가 '4,440'이다.


산의 개수가 4,440이라 하면 일견(一見) 많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악지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많다고만 할 수 없다. 감각과 현실 사이에 일정 괴리(乖離)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수만 개의 산이 있을 것이란 일반의 짐작보다 실제 파악된 산의 개수가 적은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유명산의 경우 하나의 이름 아래 여러 봉우리가 포함된 경우가 많다. 지리산의 예를 보자면 주능선 상에만 백여 개가 넘는 봉우리가 있다. 그중에 이름을 가진 봉우리는 이삼십여 개에 불과하다.


또 하나는 인적 드문 오지(奧地)에 있어 이름을 얻지 못한 경우이다. 이름이라는 것이 원래 눈에 자주 띄고 거론될 일 많아야 존재하게 되는 법이다. 그것이 세상 만물 이름의 존재 이유이다. 산 역시 그러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이름 없이 존재하는 산이 이 땅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것이 산 이름에 대한 감각과 현실에 괴리가 생기는 까닭이다.


나는 홀로 산꾼이다. 그중에서도 산경도(山經圖)의 산줄기를 모두 걸어보자 작정한 산줄기 탐색자이다. 그리하여 지도 한 장 손에 들고 늘 이 땅의 산줄기를 더듬어 오르내리고 있다.


그렇게 십수 년간 백두대간과 아홉 개의 정맥을 종주하고자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발품을 팔았다. 그때 나를 이끄는 길잡이는 지도 한 장이 전부였다. 지도는 산맥의 흐름과 방위, 그리고 등고선으로 나 같은 산꾼의 길잡이가 된다. 때문에 나는 지도와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산의 흐름이나 이름에 늘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산행 전에 인도어 클라이밍을 하면서 혹은 산행 도중에 길을 찾으면서 늘 산 이름을 등대 불빛 바라보듯 찾게 된다. 그런데 이 땅의 산에는 예상외로 이름 없이 높이로만 존재하는 산이 많다. 눈앞에 분명히 우뚝 솟은 산이 앞을 가로막는데, 정작 지도에는 이름도 높이도 없이 등고선만 촘촘한 것이다.


높이가 일이백 미터에 불과한 동네 뒷산조차 구름산이니 천자봉이니 천황봉이니 하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하늘같이 솟아 있는 오지의 산들이 700봉, 1200봉 등 이름도 없이 높이로만 존재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앞에서도 거론했지만, 유명산에 부속된 산으로 이름 없이 우뚝하였거나 오지에 특별한 개성 없이 솟아 있기만 하여 특징적이지도 사람의 발길 잦지도 않은 탓일 것이다.


산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 이를 데 없을 일이나 세상일이란 것이 늘 공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주목받지 못하여 이름 없이 잊혀지기 십상인 사람살이처럼 산의 세계에도 주목받지 못하면 이름을 얻을 일은 없는 법이다.


한편, 이렇게 이름 없이 잊혀진 산이 있는가 하면 그 이름이 흔하거나 의미 깊어 이곳저곳 동명이산(同名異山)으로 불리는 산도 많이 있다. 봉화산, 국사봉, 옥녀봉, 매봉산, 남산 등이 그러한데 대표적인 것이 '봉화산(烽火山)'이다.


앞에 거론했던 조사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봉화산은 전국에 무려 마흔일곱 곳이나 있다. 봉화산이란 이름은 예전에 국가 긴급상황을 전달하던 '봉수(烽燧)'가 있던 산들이 얻은 이름이다.


봉수(烽燧)는 불빛이나 연기를 이용하여 국가적 비상 상황을 전달하던 고대의 통신시설이다. 옛 시절 국가의 비상 상황이란 것은 외적(外敵)의 침입에 의한 것이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쟁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이 땅 역시 그러하여서 봉수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적이 침입이 잦아질수록 봉수는 더 정교하게 연결되었는데, 조선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전국을 다섯 개의 직봉로(直烽路)와 간봉(間烽)을 거쳐 한양 목멱산(木覓山)의 경봉수(京烽燧)로 완전하게 이었다.


봉화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 중 백두대간 능선 상에 위치해 유명세를 얻은 남원 아영면 구상리에 있는 봉화산이 있다. 이 산은 장수군 번암면 동화리와 노단리, 그리고 남원시 아영면 구상리와 경계하고 있어 이 봉수를 '봉화산 봉수' 외에 '노단리 봉수' 혹은 '구상리 봉수'라고도 부른다.


다섯 개의 직봉로 중 전라도 지방을 통과하는 봉수는 '제오거(第五炬) 직봉(直烽)'이다. 이 봉수로(烽燧路)는 순천(順天)의 '방답진(防踏鎭)'에서 출발한다. 이후 전남과 전북의 해안을 따라 북상한 후 공주, 천안, 수원을 거쳐 남산의 경봉수로 연결된다.


남원은 지리산이 있는 내륙의 고장이다. 따라서 남원 봉화산 봉수는 이 직봉과는 연결되지 않고 멀리 내륙에 떨어져 있다. 간봉(間烽)도 이곳과는 무관하여 이 봉수는 연결고리가 없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유적과 구전(口傳)으로만 전해지는 봉수이다.


그 고립무원이 궁금하여 기록을 찾아보니 봉수를 이뤘던 석축(石築)과 함께 6세기 이전 신라 양식의 토기(土器)가 발굴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서 이 봉수가 통일신라 이후에 폐지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혀있다.


신라 시대에는 봉수의 진행 방향이 경주로 이어졌으니 봉수는 동진(東進)하면 되었지만, 고려나 조선 시대에는 봉수의 전달 방향이 남북 방향이라 이곳 봉수는 그 기능이 사라졌을 것이다.


왕조 바뀌어 봉홧불 방향 바뀌었어도 이왕에 있던 시설을 활용하면 될 터인데 폐지한 것은 이 산의 남북에 지리산(智異山)과 덕유산(德裕山)이라는 높디높은 산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산 앞뒤로 막고 있으니 남북으로의 연결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그것이 이 봉수가 폐지된 까닭이다.


원래 봉수대로 기능하는 산은 전후좌우 막힘이 없이 우뚝하여 시인성(視認性)과 연결성(連結性)이 좋아야 한다. 이 산 역시 처음에는 그러했다. 비록 왕조가 바뀌면서 봉수의 방향도 변하여 기능은 사라졌지만, 봉화산은 우뚝함을 잃지 않고 그 기상 역시 변함없다.


백두대간 종주할 때이니 십몇 년도 더 된 옛 기억이지만, 멀리서 바라본 봉화산의 위용은 우뚝하여 굳건하였고 정상에서의 조망은 막힘없이 시원하였다. 다만 이 산의 자랑거리가 봄날의 철쭉 잔치와 가을날의 억새 바람인데, 우리가 찾은 계절이 철쭉 피기에는 이른 삼월이어서 그 유명세 맛볼 기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산정에서 철쭉꽃 향기 맡으며 하룻밤 보낼 기회를 오래 꿈꾸어 왔는데, 홀로 산꾼들의 가을 모임 장소가 문득 그곳 봉화산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들려 온다.


백두대간 종주할 때 옛 추억이 있는 봉화산과 그때부터 인연 맺어온 산 동무들과의 만남이 있으니 그 모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 반가운 만남을 위해 오랜만에 무거운 등짐 챙겨 길을 나섰다.

 


2016년 홀산 가을 모임!!


일시 : 2016년 10월 29, 30일. 흙과 해의 날.


오랜만에 참석하는 산꾼들 모임이다. 그런데 그 장소가 참으로 멀다. 여러 개의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남진하였다. 그러다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 장수나들목을 나와 고갯길을 구불구불 올라간다.


그 고개 안면이 많아 자세히 살펴보니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갈래 쳐 장안산 거쳐 신무산으로 이어지는 금호남정맥이 지나는 무룡고개이다. 아, 이 고개에서 몇 해 전 모임을 가진 적도 있었지.


그렇게 옛 추억 더듬으며 어두운 밤길을 달려 장수군 번암면 쪽에 있는 봉화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담한 주차장엔 찬바람 강하게 불고 있고, 먼저 도착한 산 동무들은 한쪽 정자에 자리잡고 이미 여러 차례 술잔을 돌린 후이다.


반갑게 인사하고 나도 개인화기 챙긴 후 술상 곁에 자리한다. 반가운 악수보다 후래자 삼배(後來者 三杯)로 술잔이 먼저 건너온다. 급하게 몇 잔 마셨더니 오랜만의 만남이 반가운 만큼 취기가 쉬 오른다.



봉화산/烽火山


높이 920m이다.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 그리고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의 경계에 솟아 있다. 봉화산은 철쭉으로 유명한 산으로, 5월 중순이 되면 산 능선과 바위 언덕 곳곳에 군락을 이룬 철쭉들이 만개한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북쪽으로 장안산(1,237m)과 남덕유산(1,507m)·기백산(1,331m)이, 남쪽으로 지리산의 봉우리들이 연이어 펼쳐진다. 남원시 아영면 성리 흥부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복성이재(545m)~치재~꼬부랑재(665m)~다리재(850m)를 거쳐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신기마을에서 올라가면 다리재를 거쳐 정상에 닿게 된다. 복성이재 근처에 삼국시대의 산성인 아막성(阿莫城, 전라북도기념물 제38호)이 있다. 아막성에서부터 복성이재를 거쳐 꼬부랑재에 이를 때까지 곳곳에 철쭉군락지가 있고, 장수 쪽에서 다리재로 오르는 길에도 철쭉군락지가 펼쳐진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긴 밤이었다. 홀로 산길 더듬던 산꾼들이 오랜만에 얼굴 마주하니 쉬 자리를 털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오래도록 술잔이 오갔다. 나도 제법 술기운 거나하게 오른 뒤 텐트 속으로 들어갔다. 대취 후의 숙면으로 잘 잤다. 그리하여 뒷날 아침 기상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서둘러 함께 아침 끓여 먹고 봉화산 산행을 준비했다.




# 이곳 봉화산 주차장은 샘물과 화장실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우리 같은 나그네가 하룻밤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 우리 홀로 산꾼들은 땀냄새 풀풀 풍기는 산꾼이지만 이런 작은 여유도 부릴 줄 안다. 풍류(風流)의 한 자락을 놓치지 않음이리라! 그나저나 가을 꽃이 술병에 꽂혀 꽃향기 대신 술향기 풍기겠다.




# 철쭉단지 대문을 통과하여 하나둘 출발했다.




# 대간길까지는 불과 6백미터 거리이다.




# 평소와는 달리 다들 가벼운 빈몸으로 산으로 스며들었다.





# 이 철 모르는 놈이 곧 눈보라 칠 겨울을 앞둔 이 계절에 꽃을 피웠다.



# 한차례 땀 흘리며 낑낑 올라 치재 고갯마루에 올랐다. 철쭉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 치재 너머로는 아영면과 연결된다. 이 고갯마루를 백두대간이 지난다. 우측으로는 복성이재와 멀리 지리산, 좌측으로는 봉화산과 멀리 덕유산으로 이어진다.




# 전에 없던 시설물이 들어서 있다.




# 봉화산이 저멀리 우뚝하다.


 


# 정상을 땡겨보니 십몇 년 전 백두대간 종주하면서 보았을 때보다 억새밭이 아주 많이 줄어 들었다. 그때는 산의 사면 대부분이 억새밭이고 군데군데 얼룩처럼 작은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 우측 복성이재 방향으로도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 저 봉우리 정상에도 나무데크가 있다. 철쭉 필 때 저곳에서 하룻밤 보내면 밤새 철쭉향 가득할 것이다. 저 봉우리는 전에 없던 '매봉'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 문경 산꾼 달아네.




# 우측 장수 번암면 쪽의 산도 매봉재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 번암면과 동화호의 물빛.




# 영취산, 무룡고개, 장안산에서 흘러내린 지지(知止) 계곡의 물이 저곳 동화호에 모여든다. 2002년에 건설되었으니 내가 백두대간 종주할 때 이제 막 건설되었던 댐이다.




# 경치 구경하느라 출발이 늦다. 선발대는 벌써 한참 갔을 것이다. 우리도 얼른 짐 챙겨 다시 봉화산을 향해 출발한다.




# 치재 근방의 산길은 순하다.



# 오붓하게 추억의 대간길을 걷는 해리님 부부. 저 부부와는 참으로 오랜만에 같이 산행을 해 본다.




# 선발대는 어느 바람 좋은 곳에 앉아 바랑 속에 숨겨온 막걸리로 한바탕 술판을 벌인 후였다. 그들과 합류 다시 출발이다. 몇몇 작은 봉우리와 고개를 연달아 지난다. 다 이름이 없는 곳이고 다만 꼬부랑재만 이름이 있는데, 어딘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알 수 없다.




# 한차례 올려 전망대를 만났다. 이곳이 다리재였던가?




# 남원 방향 조망이다.




# 여원재 곁에 있는 고남산이다. 십몇 년 전 백두대간 종주를 처음 시작한 날에 저 고남산을 마눌과 함께 넘었다.




# 봉화산 정상이 지척이다. 이곳은 예전에는 역새밭이었는데, 지금은 잡목이 많이 자라 있다.




# 봉화산 정상에 도착했다. 전에 없던 정상석이 서 있다. 예전 우리가 백두대간 종주할 때는 스테인레스 말뚝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산불감시원이 늘 상주했었고.




# 뒷면에는 백두대간이 그려져 있다.




# 엉터리 봉화대를 만들어 두었다. 작은 데크도.




# 무인 산불감시 카메라도 전에 없던 것이다.




# 육십령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의 흐름. 이곳도 예전에는 억새 위주였는데 잡목이 많이 자랐다.




# 남원 아영면의 인간세. 그 뒤로 지리산 주능의 흐름이 장쾌하다.




# 헬기장 쪽 억새밭은 여전하다.




# 남원 아영 구상리의 구상저수지 물빛이 은빛으로 빛난다.




# 봉화산 정상은 사방으로 조망이 툭 트인 곳이다. 그런 지형적 조건 때문에 삼한시대 이곳에 봉수대를 설치했다.



# 지리 주능의 장쾌한 흐름. 지리산은 그 속에 있어도 멀리서 보아도 늘 가슴 설레는 산이다.




# 맨 뒷쪽 산줄기는 지리 주능이다. 우측 노고단, 가운데 우뚝한 반야봉. 좌측 바로 아래에 삼도봉. 그 옆에 뾰족한 토끼봉. 완전 좌측에 명선봉. 앞쪽 중간 산줄기는 지리 서북 능선의 바래봉과 덕두산이다.




# 지리 상봉과 중봉, 그리고 하봉. 그리고 천왕봉 우측에 제석봉과 장터목도 보인다.


 

# 방송 시설이 있는 고남산. 우측 멀리 무등산이 보인다.




# 맨 뒷쪽의 우뚝한 산이 무등산이다. 좌측으로는 장불재와 안양산. 앞쪽 가로로 길게 누은 산 줄기 우측에 오똑한 산은 고리봉이다.




# 가운데 뾰족한 산은 남원 산동면에 있는 만행산(萬行山)이다. 높이가 909.6m나 되는 산이다. 저 산의 주봉도 이름은 천황봉이다. 앞쪽 좌측 노단리에 있는 산은 제법 높이가 있어 보이는데 이름을 얻지 못했다.




# 저멀리 뾰족한 산은 화순의 모후산(母后山). 그 산 앞의 봉우리는 구례 견두산(犬頭山)이다.





# 북동쪽 백두대간 방향의 조망. 저멀리 덕유산이 보이고 좌측으로 장안산이 보인다.





# 가까이 땡겨보면 덕유서봉과 남덕유산이 눈앞이다. 그 앞에는 영취산과 좌측에 무룡고개.




# 금남호남정맥 첫번째 산인 장안산. 우측 산 능선에 억새밭이 보인다.




# 장안산에서 흘러 나간 금남호남정맥의 흐름,




# 그곳에 있는 팔공산의 모습이다. 정상의 시설물이 뚜렷하다.




# 진안 백운면에 있는 선각산(仙角山). 높이가 1142m나 된다.




# 동쪽 멀리의 조망.




# 그곳에 있는 철쭉 화려한 합천의 황매산(黃梅山)도 보인다.




# 좌측 제일 멀리 오돌토돌한 산은 함양의 황석산(黃石山). 제일 중앙은 같은 함양의 대봉산 계관봉, 우측은 천왕봉이다.





# 풍력발전단지가 있는 거창의 감악산이다. 좌측 멀리 희미한 산은 대구 비슬산이다.




# 임도 휘감아 도는 저곳에 예전에 없던 정자가 하나 서있다. 백두대간 종주할 때 저 근처 소나무 그늘 아래서 막걸리 한 잔 마시며 이곳 봉화산을 돌아보곤 했다.




# 이 광활한 조망에 다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간밤의 숙취가 장쾌한 조망 덕분에 뻥 뚫려 버렸다.




# 원래 이곳 봉화산은 철쭉과 억새로 유명한 산이다.





# 봉화대를 복원해 두었는데 영 엉망으로 복원했다. 봉화는 원래 다섯개로 구성되어 있고 불을 피워 연기와 불꽃을 내보낼 수있게 윗쪽이 뚫려 있어야 한다. 이곳은 그냥 봉화 비슷한 모양의 돌탑 하나를 세웠을 뿐이다. 이왕 복원하는 것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 뭐 어쨌거나 조망 훌륭하니 모두 용서할 수 있다.




# 땀 흘려 몸속 알콜 기운 모두 내보냈으니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




# 주변 경치 안주 삼아 느긋하게 한 잔씩 돌린다.







# 다시 취기 알딸딸하게 오를 무렵 주변 정리하고 정상을 떠난다.




# 예전 현역 시절 백두대간 종주할 때 만났던 봉화산 정상의 조망과는 또다른 감회를 안고 다들 봉화산 정상을 떠난다.




# 저마다의 추억을 되새기고 또 새로운 추억을 남기며 봉화산과 작별하였다.





# 천천히 길게 내려 치재로 복귀.




# 이곳에 철쭉 만발할 때 다시 한번 오고 싶다.





# 치재 한 쪽에 봄날 철쭉 대신 가을 구절초 예쁘게 피었다.




# 동화호 물빛 푸르다.




# 다시 길게 내려 철쭉 주차장으로 복귀했다.





# 가을 햇볕에 텐트가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기분 좋은 감촉 즐기며 얼른 짐 정리했다.




#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




# 아쉬운 마음 뒤로 하고 각자의 서식지로 헤어졌다. 




# 봉화산 철쭉 필 때 사발통문 돌려 정상에서 꽃향기 맡으며 야영 한 번 합시다!





# 동무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고개 하나를 넘는데 고개 주변의 모습이 안면이 많다. 차 세우고 돌아보니 금남호남정맥이 지나는 수분치(水分峙)이다. 열심히 정맥 종주할 때 홀로 지났던 곳이다. 뒤쪽 산이 신무산이다. 저 산 우측 아래에 금강의 발원지인 뜬봉샘이 있다. 참 오랜 옛 이야기이다.


 


이후 긴 여정을 거쳐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홀로 산꾼들의 가을 모임이 있었던 봉화산 야영을 마감하였다. 봉화산은 백두대간의 추억이 깃든 산이다. 이 산을 지날 때의 우리는 백두대간 종주에 막 나선 초심자들이어서 산행 실력은 미숙하였으나 열정만은 최고조였다. 


이제 세월 흘러 백두대간은 물론 아홉 개의 정맥 마저 모두 종주하고 제법 산을 안다고 큰소리 남발하고 있다. 하지만 문득 돌아보면 그때의 열정은 이미 식어 버리고 건성으로 산을 대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열정보다는 목표보다는 숩관적으로 산을 다니고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라는 연약한 존재로 세상에 생겨나 언제나 변함없이 한결같기는 진정 어려운 일이다. 아. 그러나... 그립다! 그때의 열정(熱情)이! 그 시절의 순수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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