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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서른네번째(진고개~구룡령)-불어라! 바람아!! 본문

1대간 9정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서른네번째(진고개~구룡령)-불어라! 바람아!!

강/사/랑 2007. 6. 25. 22:15
 [백두대간]그 서른네번째(진고개~구룡령)  

 


모래밭에 나갔던 개미가 / 발바닥을 데어 절름거리며 / 풀 그늘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 동해를 빠져 오대산에 올랐더니, // 대궁이를 건들건들 저만치서 / 노란 원추리가 웃고 있었다. // 쓰러진 주목나무 가랑이 사이로 / 저승 나비가 쌍쌍이 나명들명 / 손을 비비고 있었다. // 다섯 송아리 봉실봉실 / 둘러다보면 호령, 비로, 상왕, 두로, 동대가 / 이승 설움 보듬어 올려 연꽃으로 뜨는데, // 하마 저녁 공양인가 / 발아래 상원사 종소리가 / 깃으로 돌아가는 새떼 날개짓에 / 풀무질을 하고 있었다.

―장호(章湖) '오대산'(전문)


강/사/랑은 여름휴가를 제법 길게 주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처음부터 주 5일 근무를 채택하고 있었고 매년 팔월 첫 주 근무일 5일 전부를 전 그룹사가 동시에 휴가로 사용하기 때문에 앞뒤 주말 포함하면 9일간의 긴 휴가가 확보되는 것이다. 이렇게 긴 휴가가 확보되니 백두대간 같은 장거리 여정에 나서기 좋다.


그래서 애초에 계획하기로는 긴 여름휴가를 맞이해 한계령까지 해치울 계획을 세웠다. 서너 구간 정도는 휴가 기간 중 두어 번 도전하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휴가 때가 되자 이내 그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이번 여름 백두대간의 한계령(寒溪嶺) 일대는 집중호우로 인해 엄청난 수해(水害)를 입었다. 휴가 계획을 세우는데, 수해 때문에 마음고생 심할 한계령 인근 주민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리하여 이번 휴가 기간에는 한계령이 아닌 구룡령(九龍嶺)까지만 하기로 결정했다. 남들 수해 복구에 애쓰는데, 팔자 좋게 산행 다닌다고 복구 현장 주변을 어슬렁거린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 탓이다.

휴가도 막바지에 접어든 8월 3일 목요일. 오후 11쯤 긴 밤길 달려 진고개 휴게소에 다시 올랐다. 월정삼거리에서 구불구불 올라가야 하는 진고개는 강릉시 연곡면과 평창군 도암면을 이어주고 있는 고도 970m의 고개다. 백두대간 동대산(東臺山)과 노인봉(老人峰) 사이에 있어 우리 같은 대간꾼에겐 익숙한 곳이다.

진고개란 이름은 비만 오면 땅이 질어 질척거린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한자로는 니현(泥峴)이라 불렀는데, 옛 지도인 조선지도와 대동여지도에 그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옛이름은 니현이지만, 지금은 포장이 말끔히 되어 있어 더 이상 질척거릴 일은 없다. 다만 강릉 쪽 구비가 아주 가파르고 구불구불하여 심심찮게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위험 구간이다.

최희준이 부른 '진고개 신사'는 이곳 진고개와는 전혀 무관한 노래다. 질척거리는 길에 말끔히 차려입은 신사가 나타날 일은 애초에 없는 일이다. 노래에서 말하는 진고개는 지금의 서울 충무로(忠武路) 쪽에 있는 옛 고개의 이름이다.


한편 이 고개의 이름인 진고개는 '긴 고개'란 말에서 변음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이 고개가 하도 길어 긴 고개라 불렀는데, 옛사람들이 지방 말로 불러 '긴'이 '진'으로 변음되었다는 것이다. '길다'가 '질다'로 불리는 경우는 허다하다.

평일이지만 밤늦어 불빛 하나 없이 캄캄한 진고개 휴게소엔 인적이 끊어진 지 오래다. 다만 강아지 두 마리만이 넓은 휴게소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와~~ 별이 쏟아져 내릴 듯 총총하다. 저렇게 많은 별을 언제 보았던가? 가끔 별똥별도 길게 꼬리를 물고 떨어진다. 한참을 별구경을 하다가 내일 산행을 위해 잠자리 꾸려 취침 모드에 들어갔다.




불어라! 바람아!! 伏中 대간길은 너무나 힘들다!!


구간 : 백두대간 제 47,48 소구간 (진고개~구룡령)
거리 : 구간거리(23.5 km), 누적거리(712.66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6년 8월 4일. 쇠의 날.
세부내용 :


진고개(04:50) ~ 동대산(05:50) ~ 1421봉(06:12) ~ 공터(헬기장) ~ 1330봉(06:25) ~ 1296봉(06:52) ~ 차돌배기(07:15) ~ 1261.8봉 ~ 1267봉(07:40) ~ 1234봉 ~ 신선목이(08:06) ~ 오대 02-18구조목(15분 휴식) ~ 1383봉(09:07) ~ 샘터갈림길 ~ 두로봉(09:24) ~ 잡목지대 ~ 1234봉(10:34) ~ 잡목지대 ~ 1121봉 ~ 신배령(11:05)/점심후 출발(11:35) ~ 조개골갈림길 ~ 1210.1봉 ~ 전망대 ~ 만월봉(12:30) ~ 통마람갈림길 ~ 응복산(13:23) ~ 1281봉 ~ 샘터갈림길(14:15)/10분 휴식 ~ 마늘봉(14:42)/15분 휴식 ~ 1261봉(15:20) ~ 1280봉(15:50) ~ 공터(16:20)/15분 휴식 ~ 약수산(17:13) ~ 1218봉 ~ 구룡령(17:50)

총 소요시간 13시간. 만보계 기준 48,600보.

 

진고개 휴게소는 저녁 때가 되면 불을 끄고 영업을 중지한다. 그러면서 화장실 문도 잠가버린다. 물 인심, 뒷간 인심은 예로부터 내려온 원초적인 미덕인데, 강원도 고갯길의 여러 휴게소나 쉼터는 갈수록 인심이 야박해져서 자기들 벌어 먹는 것만 생각하지 곤란을 겪는 길손 따위는 관심 밖이다.

휴게소 믿고 왔다가 거시기한 문제 때문에 한참을 곤란을 겪고 난 후, 5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산행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3시 10분에 기상했는데...

마눌과 휴게소 마당에서 스틱 부딪치며 '잘 하세!' 서로 격려하고 출발했다. 캄캄한 고갯마루에서 들머리를 못 찾아 잠시 헤매다가 강릉쪽 고개넘이 건너편 들머리에서 오늘의 산행을 시작했다.


동대산/東臺山

강원 평창군 진부면(珍富面)에 있는 산. 높이 1,434m.북쪽의 頭老峰, 북서쪽의 毘盧峰, 象王峰, 서쪽의 西臺山, 虎嶺峰, 동쪽의 老人峰 등과 함께 태백산맥의 줄기를 이루는 오대산맥 안에 솟아 있다. 이 산은 동사면을 흐르는 연곡천(連谷川)과 서사면을 흐르는 평창강(平昌江)의 발원지를 이루고 있다. 계곡과 짙은 수림에 유서 깊은 月精寺를 비롯하여 上院寺, 觀音庵 등이 있으며, 1975년 2월에 지정된 오대산국립공원 구역에 포함된 데 힘입어 관광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또 최근 관광·등산객이 늘어나면서 오대산과 노인봉을 잇는 등산로가 있다.

두로봉/頭老峰

강원도 평창군 珍富面과 홍천군 內面 및 강릉시 連谷面 사이에 있는 산. 높이 1,422m.毘盧峰, 象王峰, 虎嶺峰, 東臺山 등과 함께 태백산맥의 지맥을 이루는 五臺山脈 중에 솟아 있는 고봉이다. 산은 동사면을 흐르는 연곡천(連谷川)과 서사면을 흐르는 홍천강의 발원지를 이룬다. 상원사(上院寺)와 미륵암은 계곡과 더불어 명승지를 이루는데, 최근 오대산국립공원에 포함되었다.

약수산/藥水山

강원도 홍천군 내면(內面)에 있는 산. 높이는 1,306m이다. 산이름은 남쪽 골짜기에 있는 명개약수에서 생겨났다고 전해지며, 명개약수 외에도 이 산에서 발원하는 미천골계곡에 불바라기약수(미천약수)가 있고, 갈전곡봉(葛田谷峰:1,204m)과의 사이에 있는 구룡령계곡에 갈천약수가 있다. 많은 용이 뒤엉켜 있는 것 같다고 하여 九龍嶺(1,100m)이라는 이름이 붙은 고개 동쪽에 솟아 있다.구룡령 너머 서쪽으로 갈전곡봉, 동남쪽으로는 응복산(鷹伏山:1,360m), 만월봉(1,279m)이 나란히 솟아 있어 약수산과 함께 종주하는 산행코스가 있다. 약수산 산행은 외청도리를 기점으로 명개약수를 지나 정상에 오른 뒤 1,280봉을 거쳐 능선 안부와 바랑골을 지나 외청도리로 오는 코스가 있는데, 5시간 30분이 걸린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에는 습지가 있고 오른쪽으로 심마니들이 이용한 곳으로 보이는 샘터 자리가 있다.  空地로 된 정상에서는 남쪽의 백두대간길과 소황병산 및 오대산 구간이 잘 바라보인다. 내면 목맥동 일대는 수림이 울창하고 각종 희귀 동식물과 어류가 서식한다. 부근에 수타사와 삼봉약수 등 관광명소가 있으며, 미천골계곡은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47, 48 소구간 진고개 ~ 구룡령 개념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여름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 허접한 똑딱이 사진으로는 표현이 잘 안된다.

 

 

 

# 넓은 휴게소 주차장엔 온통 캄캄한 어둠뿐이고 공중전화 부스 불빛 만이 빛나고 있다.

 

  


# 동대산 들머리. 04:50. 준비 마치고 산행을 시작했다.

 

 

 

도로 건너 석축 위에 동대산 들머리가 있는데, 입산통제 팻말이 세워져 있고 로프로 막아 두었다. 현재 동대산 구간은 입산 금지 구역이다. 그렇다고 안 갈 수는 없는 일이고... 모든 대간꾼들이 다 같이 겪을 갈등을 잠시 하고 들머리에 접어들었다.

들머리 초입엔 수풀이 우거져서 온 몸으로 밀어 부치며 진행해야 한다. 당연히 수풀에 가득 매달려 있던 이슬이 우리 한테 달려든다. 순식간에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버린다.

그러나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되면 등로는 수풀을 벗어나 곧 안정을 되찾는다. 오름이 시작되자마자 가파르고 줄기차게 위로만 향한다. 지난 구간 마지막에 동대산의 위용을 보고 겁먹었던 기억이 난다.

오름인데도 사방에 멧돼지 흔적이 가득하다. 마눌은 시작부터 바짝 긴장해서는 스틱을 딱딱 부딪쳐가며 걸음을 옮긴다. 멧선생아~ 우리 올라가니 좀 비켜다오! 뭐 이런 뜻이겠지.

입산통제 구간 진행하느라 찜찜해하고, 멧돼지 흔적 때문에 겁 먹어서 전전긍긍하고, 혹시나 근육통 찾아 올까봐 조심스레 발을 내 디디면서 굳이 이렇게 백두대간 한다고 애를 쓰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아마도 백두대간 시인으로 유명한 권경업 시인의 이 詩 한 구절이면 대답이 충분하리라 여겨진다.

백두대간

내 누구의 오름일 수 있을까만
그대라는 그리움은
몰래한 내 오름의 시작이었네

아직은 미명의 산하

오솔길들의 새벽잠 눈 비비며 깨워
젖은 이슬의 아침 열어 가는, 한줄기
아! 백두대간

- 권경업

진고개가 해발 970m에 위치해 있고 동대산이 1,434m이니 꼬박 464m나 해발고도를 올려야 동대산 정상에 설 수 있다. 그러나 애초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출발을 해서인지 무작정 힘들지만은 않다. 500m 단위로 박혀 있는 이정목을 기준으로 위로 위로 고도를 높여 가는데, 산의 3분의 2쯤 올라 왔을까? 동쪽 숲 너머로 일출이 시작되면서 붉은 빛줄기들이 숲의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 들기 시작한다.

 

동대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고 준비를 했었는데, 휴게소에서 화장실 찾느라 헤매는 바람에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지만 싱싱한 날해의 정기를 놓칠 수야 있나? 마눌과 둘이 나란히 서서 양팔 벌리고 신성한 태양의 정기를 마음껏 받아 들였다.

기고만장(氣高萬丈) 하세!

나름 충만해진 기를 안고 다시 가파른 오름을 내쳐 올라 '동대산 정상'에 이른다.(05:50)

 

 


# 동해에서 시작된 일출이 붉은 빛줄기를 숲속으로 쏘아댄다.

 

 

 

# 동대산 정상.

 

 

 

동대산은 진고개에서 1.7km이고 지도상 1시간 예상 거리인데, 정확히 그 시간이 걸렸다. 동대산 정상은 넓은 헬기장으로 되어 있고, 삼각점과 조망 안내판이 있다. 그러나 개스탓에 안내판이 일러 주는 조망은 볼 수 없다.

정상 헬기장엔 달맞이꽃, 동자꽃, 큰까치수영, 어수리 등 야생화가 만발하고 바닥엔 질경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야생화 구경하고 있는데, 홀로 대간꾼 한 사람이 아래에서 올라 오더니 1초도 쉬지 않고 그냥 내달려 버린다. 빨리 마쳐서 좋기는 하겠다만 무슨 재미로... 우리는 이런 저런 구경하며 10분 넘게 휴식했다.

 

 


# 쉼 없이 내달리던 홀로 대간꾼.

 

 

 

# 꽃을 활짝 피운 어수리. 동대산 정상에 만발하다.

 

 

 

헬기장 너머 수풀 속으로 대간길은 이어지고 정상을 벗어나 잠시 내리다가 곧 편안한 마루금을 진행한다. 이 구간엔 고사목들이 등로를 가로 막고 있는 곳이 많이 있다. 등로를 가로 막고 누워있는 굵은 고사목을 타고 넘기도 하고, 고개를 숙여 대간길에 인사하며 숙여 지나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눌이 머리를 감싸 안고 아파서 어쩔줄 몰라한다. 등로를 가로막고 있는 고사목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제대로 축구선수 지단처럼 박치기를 한 모양이다. 이곳 역시 등로 양쪽으로 멧돼지 흔적이 가득해서 마눌은 계속 그곳에 신경을 쓰느라 미처 고사목을 못 본 것이다.

 

 


# 등로를 막고 있는 고사목이 많다.

 

 

 

# 쿵! 박치기 한 후 아파하고 있다. 치열한 저널리즘 정신으로 사진부터 찍고 호호 불어 주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시 오르니 잡풀이 무성한 헬기장이 있는 '1421봉'에 오른다.(06:12). 헬기장을 나와 잠시 내렸다가 마루금을 길게 진행한다. 그러다 고도계에 1420m가 찍히는 헬기장에 이른다.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 헬기장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다. 아마도 지도상 '공터'인가 보다.

공터를 내려와 급하게 떨어져 내렸다가 다시 길게 마루금을 진행한다. 등로 주변으로 끝도 없이 멧돼지들의 흔적이 이어진다. 마눌은 극도로 공포스러워하며 연신 스틱을 부딪쳐 소리를 내며 간다. "걱정 마라, 원래 야생동물들은 사람을 먼저 피한다." 마눌 달래고 속도를 내서 길게 진행하다가 '1330봉'을 지났다.(06:25)

바람이 아주 시원하다. 아래로 길게 떨어져 내리는데 또 허벅지 근육통이 시작된다. 잠시 멈춰서서 아픈 허벅지를 주물러 진정시킨 후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려갔다. 해발 1300m/동대산 2km/두로봉 5km 라고 적힌 이정목이 있는 곳까지 떨어져 내렸다.(06:35)

다시 전방의 무명봉을 바로 치고 올라갔다. 오름 중간에 바위지대를 만나 낑낑 오르고 무명봉을 넘자 다시 떨어져 내리고 안부에서 다시 전방의 무명봉 하나를 낑낑 올라갔다. 동대산 2.2km/두로봉 4.5km 라고 적힌 이정목이 있는 무명봉이다. 아마도 '1296봉'인 듯하다.(06:52)


        

# 1421봉 헬기장.

 

 

 

# 고사목 하나 하늘 향해 절규하고 있다.

 

 

 

# 오름 중간에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 "수구리!" 해야 하는 곳이 많다.

 

 

 

# 이정목이 있는 1296봉.

 

 

 

1296봉에서 간식 먹으며 10분간 휴식했다. 근육통이 벌써 시작됐으니 살살 달래 가며 천천히 가기로 했다. 휴식 후 아래로 급하게 떨어져 내리다 다시 길고 완만하게 내린다. 안부에 이르자 탐방로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을 구경하고 있는데 좌측 숲속에서 뭔가 큰 짐승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구~ 빨리 가자! 급하게 내 빼는데 바로 '차돌배기'가 나온다.(07:15)

 

 


# 차돌배기.

 

 

 

하얗고 커다란 차돌 세 개가 등로가에 서 있다. 이정목엔 해발 1230m 라고 적혀 있는데 고도계 확인하니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잠시 내렸다가 조금씩 고도를 높이며 길게 진행했다. 중간에 둥근 구멍이 뚫린 아주 큰 고목 한 그루를 지나고 계속 길게 올라 '1261.8봉'을 지난다. 다시 완만하게 아래로 내려 넓은 안부를 만난다.


이곳은 운동장을 방불케 할 만큼 광범위하게 파헤쳐져 있다. 상당 부분은 갓 파헤친 흔적이 완연하다. 숲속 너머에 멧돼지들이 있을 것 같아 겁이 덜컥 난다. 이거 이러다 오늘 무슨 일 나는 것 아냐? 멧선생이 두려워 발걸음을 빨리 해서 전방의 무명봉을 오른다. 조금씩 고도를 높여 가는 형세다. 곧 삼각점과 헬기장이 있는 '1267봉'에 오른다.(07:40)

 

 


# 둥근 구멍이 뚫린 고목.

 

 

 

# 멧돼지의 작품. 갓 파헤친 흔적이 즐비하다.

 

 

 

# 멧돼지가 두려워 발걸음을 최대한 빨리 했다.

 

 

 

# 헬기장과 삼각점이 있는 1267봉.

 

 

 

# 숲 너머로 두로봉의 모습이 보인다. 

 

 

 

헬기장 바로 너머에 해발 1260m/동대산 4km/두로봉 3.0km 라고적힌 이정목이 서 있다. 숲 너머로 두로봉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아래로 떨어져 내려 가는데 다시 근육통이 시작된다. 이제는 막 짜증이 난다. 웬만하면 적응될 때도 되었는데...

조심스레 내려 안부에 이르고 다시 깅낑 올라 '1234봉'을 지난다. 길고 가파르게 1234봉을 내려 가는데 전방에 두로봉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진다. 길게 내려가니 '신선목이'가 나온다.(08:06)

 

 


# 신선목이. 안내판과 하얀 사스레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 샘이 메워졌다고 한다.

 

 

 

# 흰물봉선. 

 

 

 

 

신선목이는 실전 백두대간에는 이름도 없이 그냥 샘터로만 기록되어 있다. 안내판에 누군가 샘이 없다고 펜으로 적어 두었다. 이번에 새로 구입한 '고산자의 후예들'이란 곳에서 나온 지도에는 '신선목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여전히 샘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제부터는 길고 가파르게 올라 가야 한다. 헉헉 낑낑 40여분 꾸준히 올라 고도 1370이 찍히는 마루금에 오른다. '오대 02-18' 구조목이 서 있다.(08:50)

 


# 바람이 아주 시원했던 오대 02-18 구조목 지역.

 

 

 

이곳에서 간식 먹고 휴식하는데 바람이 너무 좋아 간만에 거풍(擧風)을 즐겼다. 15분간 푹 쉬고 09:05에 출발했다. 낑낑 오르자 바로 위에 '1383봉'이 나온다.(09:07)

 

 


# 1383봉.

 

 

 

잡풀이 무성한 헬기장이 있고, 삼각점은 풀에 가려 찾기 힘들다. 잠시 내렸다가 한바탕 길게 치고 오르자 '북대사 갈림길(두로봉 0.3km)'이 나오고, 다시 낑낑 올랐다가 마루금을 편하게 조금 진행하자 '두로봉'이 나온다.(09:24)

정상 입구에 다시 북대사 갈림길임을 알리는 이정목과 안내판이 서 있다. 바로 뒤의 정상은 아주 좁고 작은 바윗돌 몇 개 만이 있는 볼품없는 곳이다.
그러나 이 두로봉에서 한강기맥이 분기하여 긴 흐름을 이어가서 두물머리에서 한강으로 잠기게 된다.


이곳에서 신배령까지 출입금지 구간임을 알리는 경고판이 서 있다. 경고판 옆으로 나가자 바로 뒤에 '헬기장'이 나온다. 수풀이 우거져 바로 뒤에 있는 헬기장을 보지 못했다.

 

 


# 두로봉 정상의 북대사 갈림길 이정목.

 

 

 

# 아무 볼품 없는 두로봉 정상.

 

 

 

# 두로봉 정상의 헬기장.

 

 

 

 

두로봉은 오대산의 주요 봉우리이고, 이름이 頭老인 걸로 봐서 정상 부위가 희다는 의미인데, 노인봉처럼 바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겨울철 흰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모습에서 얻은 이름인가 보니다. 해발고도가 1421.9m이니 겨우내 흰눈 덮어 쓰고 있는 것은 당연 하겠지.

頭老가 아닌 頭靑에서 15분을 소요한 후 급경사 내리막을 내려 갔다. 근육통이 무서워 최대한 천천히 조심하며 진행했다.

잡목숲 지역을 만나 길게 마루금을 따라 조금씩 고도를 낮춰 가는데, 등로 양쪽이 완전히 멧선생들에 의해 넓은 배추밭이 되어 있다. 분위기 상 숲 아래쪽에 놈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마눌은 극도로 긴장하고 공포에 질려 있다. 앞장서서 시야를 멀리 두고 주변을 최대한 넓게 살펴가며 진행했다. 마눌은 뒤에 따라 오면서 스틱소리를 딱딱 내고 있다.

길게 가다가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다시 길게 가다가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를 반복한다. 바닥에 바짝 붙어 자라는 산죽밭을 지나 다시 길게 가다가 아래로 내려 안부에서 전방의 무명봉 하나를 낑낑거리며 올라섰다. '1234봉'인 듯하다.(10:34)

이 봉우리는 해발고도가 절묘하게 1,234m다. 오늘 구간엔 두로봉 직전에도 1234봉이 있었다.

이곳에서 급하게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가 다시 길게 고도를 낮추며 내려 갔다. 멧돼지 흔적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길게 가다가 무명봉 하나를 치고 오르니 수풀이 우거진 묶은 '헬기장'이 나온다. '1121봉' 인가 보다.

앞장 서 가는 마눌 뒷모습 사진찍고 있는데, 우측 잡목 너머에서 킁킁 쉭쉭!! 하는 멧돼지 콧김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린다. 스톱! 조용! 외치고 빽빽한 잡목을 헤치고 넘겨다 보니, 두두두두두~~ 서너 마리의 멧선생들이 무리를 지어 산 아래로 내뺀다. 아이구~ 놀래라!!! 마눌 어느새 내곁에 바싹 붙어 매달린다. 어떡해!어떡해! 난들 아냐? 좀 기다려 보자!

오도 가도 못하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수풀 헤치고 넘겨다 보니 이미 산 아래로 모두 달아난 모양이다. 지놈들도 갑자기 나타난 우리 보고 놀란 것이다.

 

이거 위험해서 안되겠다. 대책을 세우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마눌 배낭에 매달아 둔 호각을 떼어내 입에 물고 갔다. 그러다 오래된 흔적은 무시하고 갓 파헤친 멧돼지 흔적이 나타나면 호각을 불면서 전진했다. 키 낮은 산죽밭을 지나 계속 아래로 내려 '신배령'에 도착했다.(11:05)

 

 


# 가야 할 대간길. 12시 방향의 응복산, 좌측에 약수산.

 

 

 

# 약수산 너머로 구름을 목에 두른 산이 보인다. 아마도 점봉산인 듯하다. 우측의 바위봉들이 설악의 준봉들이고.

 

 

 

# 1121봉. 이 사진을 찍는 순간 바로 우측 숲 너머에서 멧돼지의 위협하는 콧김소리가 들렸다. 순간, 얼음 상태가 되었다.

 

 

 

# 신배령.

 

 

 

멧돼지 때문에 놀랜 가슴을 진정시키고, 자빠진 김에 쉬어 간다고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두로봉 이후론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신배령 역시 낭떠러지 위의 안부라 바람이 좋을 법한데 이상하게도 무풍지대다. 오늘 구간은 내도록 숲속을 걷는 지라 바람만 불어 준다면 널널 산행을 할 수 있는데 아쉽다.

어쨌든 30분 동안 식사하고 휴식도 취했다. 신배령엔 누군가 야영을 했었는지 모닥불을 피운 흔적이 있다. 딴에는 감춘다고 신문지로 덮어 두었다.

음~ 조심들 하자! 산불 나면 끝장 아닌가? 그리고 제발 산에서 담배 좀 피지 말고!!! 산에서는 꾹 참았다가 산행 마치고 한 대 피워 물면 담배 맛이 더 날 것 아닌가? 휴식 후 11:35 出發!

 

 


# 신배령엔 누군가 불을 피운 흔적이 있다.

 

 

 

출발과 동시에 위로 밀어 올린다. 산죽밭을 따라 한바탕 올랐다가 잠시 평탄하게 진행하더니 이내 다시 위로 무섭게 치고 오른다. 식사 후에는 되도록이면 평탄하게 가거나 내리막을 택해야 하는데, 멧돼지 때문에 놀란 가슴 진정시키느라 안부에서 쉬었더니 오름을 오르기가 아주 힘들다.

그렇게 힘들게 낑낑 오르다 산의 정상 부근에서 좌측으로 휘감아 꺾어 나간다. 이곳이 '1210.1봉'인데 실전 백두대간 지도에는 정상(삼각점)을 통과하는 걸로 되어 있어 이후 독도 실패와 착각의 빌미를 제공한다. 게다가 점심 후 오름 오르기가 너무 힘들어 정신이 없던 탓도 있고.

바람 한 점 없는 산마루금을 타고 길게 나아 가다가 전방의 봉우리 하나를 힘겹게 치고 오른다.(12:30) 나무를 베어서 '사계청소'를 해 둔 정상엔 아무 표식도 없고 '삼각점'만 있다. 멀리 북동쪽에 구룡령으로 올라 오는 도로와 그 너머에 양양으로 짐작되는 곳이 희미하게 보이지만 동해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고도계엔 1290으로 찍힌다. 이곳이 '만월봉'인데 당시엔 이미 지나 온 1210.1봉으로 착각을 했다. 고도계가 아무리 엉터리라고 하더라도 80m이상 차이가 나지는 않을텐데... 그런데 그런 착각을 한 이유는 선답자의 산행기에 만월봉엔 웅덩이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정상엔 웅덩이는 고사하고 볼록 솟아 있는 지형이었다.

 

 


# 만월봉 정상. 나무를 베어 사계청소를 해 두었다.
 

 

 

 

# 멀리 양양쪽 풍경.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정상을 나와 몇걸음 숲속으로 들어가자 구덩이가 거의 메워진 얕은 참호같은 것이 하나 있다. 산을 휘감아 우측으로 내려 급하게 떨어지며 길게 고도를 낮춰 내려 갔다. 그렇게 내려 가다가 갑자기 눈에 별이 번쩍한다. 등로를 가로막고 있는 나무와 제대로 박치기를 한 것이다. 어찌나 아픈지 한동안 정신을 못차렸다.

오전엔 마눌이 박치기를 하고 오후엔 내가 또 박치기를 했다. 언젠가 다른 구간에서도 똑같은 일을 되풀이한 적이 있는데... 하여튼 재미있는 부부다.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아픈 이마 매만지며 길게 내렸다가 다시 고도를 높여 위로 올라갔다. 오전엔 간간이 시원하게 불어 주던 바람이 오후가 되면서 올 스톱이다. 숲속이라 그늘이 져서 뙤약볕이 직접 내려 쬐지는 않지만, 바람 한 점 없이 습도가 높아 푹푹 찌는 형국이 꼭 뜨거운 전기밥통 속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온도 측정하니 무려 35도나 된다. 아이구~ 더버라!!! 땀을 너무 많이 흘렸더니 현기증이 난다. 헉헉대는 소리가 증기기관차 소리처럼 터져 나온다. 멧돼지 때문에 호각을 입에 물고 헉헉댔더니 그 소리가 우습다고 마눌은 놀린다.

전방의 봉우리가 만월봉인 듯한데 가도 가도 정상을 보여 주지 않는다. 헉헉대며 낑낑대며 죽을똥 살똥 올라가니 뙤약볕 가득한 정상이 나타난다. 아이구 이렇게 고마울 데가!!! 만월봉인줄 알고 절망적으로 오른 봉우리가 바로 '응복산'이다.(13:23)

 

 

 
# 응복산 정상.

 

 

 

# 가야 할 길. 마늘봉과 그 너머에 뾰족한 1261봉, 너머에 1280봉, 좌측 제일 높은 약수산.

 

 

 

# 약수산 자락과 구룡령으로 구불구불 올라오는 56번 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이곳이 만월봉이라면 응복산까지는 다시 50분을 더 가야 하는데, 응복산 정상 동판을 보는 순간 고맙고 기쁘기 한량 없었다.

응복산 정상엔 삼각점과 이정목(진고개 15.29km/구룡령 6.71km), 정상 동판이 있다. 정상 뒷쪽으로도 길이 나 있지만, 그 길은 양양쪽으로 뻗은 1052봉 가는 길이고, 대간길은 좌측 수풀 속으로 표지기들을 잔뜩 매달고 있다. 응복산 정상에서 10분간 간식 먹고 휴식하고 출발했다. 오늘 휴식 정말 많이 한다.

좌측길로 잠시 진행하다가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잡목 숲 너머로 가야 할 대간길과 구룡령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보인다. 통나무계단을 급하게 떨어져 내렸다. 내리막에 계단이라 극도로 조심하며 아래로 내려가니 '명개리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명개리는 1.3km 거리다. 지난 번 해리님, 대명님 팀들이 이 다음에 나타날 1261봉 오름에서 너무나 힘이 들어 이곳에서 탈출할 걸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하던 곳이다.

 

 


# 명개리 갈림길.

 

 

 

길게 진행하다가 '1281봉'을 지나 아래로 다시 떨어져 내링다. 길고 길게 내려갔다. 또 얼마나 올라 갈려고 이렇게 내려 가나?

통나무계단을 내려가다가 돌계단, 다시 통나무계단식으로 계속 계단길이 나온다. 허벅지 근육때문에 최대한 조심하며 내려갔다. 남들은 내리막길에서 시간 단축을 하는데 우리는 내리막길에서 오히려 지체가 심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계단길을 길게 내려 샘터 갈림길에 닿았다.(14:15)

 

 


# 나무 벤치가 있는 샘터 갈림길.

 

 

 

구룡령 5.12km/약수산 3.74km/진고개 16.88km 라고 적힌 이정목이 서 있고, 나무벤치가 있어 지친 대간꾼에게 더없이 좋은 휴식처다.

지도에는 좌측 아래에 샘터가 있다고 표시되어 있는데, 주변 어디에도 물이 있다는 시그널은 없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도 샘에 관한 언급이 없어 고민을 하게 만든다. 바람 한점 불지 않고 푹푹 찌는 무더위라 물소비가 많아 남아 있는 물로는 간당간당한 실정이다. 샘터가 있다면 물을 보충해야 하는데...

마눌보고 쉬고 있으라 하고 좌측 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처음 초입에서는 작은 소로가 보이더니 이내 짙은 수풀에 가려 길이 사라져 버린다. 수풀을 헤치고 좀 더 내려가 보지만 샘이 있을만한 조건이 아니다. 에이~ 그냥 가자!!

샘터 갈림길로 돌아와 벤치에 앉았다. 얼른 출발해야 하는데 계단길을 너무 힘들게 내려왔더니 다시 올라갈 엄두가 안난다. 쉬자! 푹 쉬었다 가자! 빨리 갈 이유 엄따!!!

아예 배낭까지 벗고 쉬고 있는데 해리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라? 전화가 터지네? "대전 출장 갔다가 지금 집에 돌아 왔는데 어디까지 갔느냐? 구룡령 택배해 줄까 하는데 어떠냐?" 고 하신다. 아니, 사당동서 여기가 어디라고 이곳까지 택배해 주러 온단 말입니까?


그냥 집에서 쉬십시오! 이성은 이렇게 판단을 내리고 정중히 사양하라고 시키는데, 입이 저절로 "휴가철인데 차가 막히지 않을까요? 세리님은 괜찮으실까요? 힘 드실텐데..." 요래 지 맘대로 말이 되어 튀어 나왔다.


사실 이곳 진고개~구룡령 구간은 산행후 차량 회수하기가 지리산에 못지 않게 어려운 곳이다. 택시비도 문제지만 막상 차량 이동 거리나 시간도 백두대간 구간 중 최고 수준이다.

15분 가량 푹 쉰 후 출발했다. 마늘봉 오름은 급경사가 아니다. 지도에도 등고선 간격이 널찍널찍 하다. (14:42)'마늘봉 정상'에 올랐다.

 

 


# 잡풀 무성한 마늘봉 정상.

 

 

 

마늘봉 정상엔 잡풀 무성한 공터가 있고, 역시 나무 벤치가 있다. 마늘봉은 아마도 좀 전에 지나온 '만월봉'의 변형된 音借로 얻은 이름이 아닐까 짐작된다.

뙤약볕이 강렬해서 금방 출발했다.
내림길 숲 너머로 뾰족한 1261봉이 언뜻언뜻 보인다. 그 모습이 가히 위압적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뾰족한 쐐기 모양이다. 선답자들이 모두 혀를 내두른 1261봉이다.

전방의 무명봉 하나를 넘어 안부에 이르고(고도계에 1115m로 찍히는), 이제부터는 죽기살기로 오르는 일만 남았다. 선답자들이 모두 죽는 소리를 많이 한 산이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오름에 붙었다. 엄청나게 가파른 경사가 계속 이어진다. 선답자들의 탈출 유혹이 실감났다.

화끈한 산이다. 중간에 잠시 쉬어 주거나 방향을 틀거나 하는 일도 없이 그냥 가파른 경사로 화끈하게 위로 밀어 올린다. 완전히 탈진하기 직전에 땀을 비오 듯 흘리며 겨우 겨우 '1261봉' 정상에 닿았니다.(15:20)

 

 


# 군더더기 하나 없이 뾰족한 1261봉. 대간길의 복병이다.

 

 

 

# 1261봉 정상. 오랜만에 만나는 둘산악회의 코팅 안내판.  누군가 우유통을 나무에 꽂아 두었다.

 

 

 

# 가야 할 1280봉. 좌측으로 능선따라 내려야.

 

 

 

# 능선따라 두 산 사이의 안부까지 깊게 내렸다가,

 

 

 

# 중앙의 약수산 정상까지 길게 올라야 한다.

 

 

 

1261봉은 특별한 이름도 얻지 못한 산인데 깔끔하고 화끈하게 대간꾼들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름을 하나 지어주기로 했다. 산의 모양이나 오름, 가파름 등이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한 삼각형 모양이므로 그 모양을 본떠 '쐐기봉'. 쐐기란 것이 원래 길쭉하고 날카로운 피라미드 모양으로 되어 있고, 틈 사이에 끼워서 벌리거나 고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 의미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쐐기봉(1261봉) 정상엔 나뭇가지에 누군가 플라스틱 우유통을 끼워 두었다. 이유가 뭘까? 왜 그랬을까? 좋은 쪽으로 잠시 고민해 보지만 결국엔 누군가 짐 줄인다고 버리고 간 것이겠지.

마늘봉 안부에서 쐐기봉 정상까지는 해발 고도를 약 160여m 올린 것 뿐인데, 워낙 뾰족하게 가팔라 체감적으로는 보통이 아니다.

정상의 내림은 암반지대다. 잠시 가파르게 내렸다가 다시 길게 마루금을 진행하다가 다시 아래로 내리고 안부에서 본격적인 1280봉 오름이 시작된다. (15:50)헉헉대며 '1280봉' 정상에 오른다.
        

 

 

# 모싯대.

 

 

 

# 1280봉 정상. 좌틀해야 한다.

 

 

 

1280봉에서 좌틀해서 아래로 내려 간다. 잠시 내렸다가 길게 안부 마루금을 진행한다. 무명봉을 하나 넘고 다시 길게 아래로 내려 간다. 이제는 내리막만 만나면 고통스럽다.

(16:20)'약수산 안부 공터'에 도착했다.

 

 


# 벤치가 있는 약수산 안부 쉼터.

 

 

 

원래 계획은 이 시각 무렵에 구룡령에 도착하는 것이었는데, 중간중간 각 포스트 마다 워낙 휴식을 많이 취했고 근육통때문에 내리막에서 최대한 천천히 내려왔더니 시간 지체가 심했다. 안부 쉼터 벤치에 앉았더니 비로소 골을 타고 넘어 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아이구~ 시원하다! 간만에 만난 바람이니 놓치기 아깝다. 푸욱 쉬어 가자!!

정말로 푸욱~~ 쉰 후 다시 출발했다. 약수산 오름은 나름대로 이름값을 한다. 처음엔 걱정했던 것보다 쉽게 마루금을 보여 주길래 만만하게 봤더니 갈수록 정상인 듯하다가 아니고 또 정상인 것처럼 하다가 아니고를 반복한다.

낑낑 대며 공터를 지나고 다시 한참을 애를 쓰고서야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는 그야말로 툭 트인 시야를 제공하고 있다. 우측 방향으로 양양, 중앙엔 구불구불한 구룡령 도로, 좌측엔 한계령쪽 조망을 선사한다. 그러나 선명하고 깔끔한 시야는 아니어서 쬐끔 아쉽다.

전망대를 나와 다시 낑낑 두 번이나 더 정상인 듯한 봉우리에 속은 후에야 '약수산 정상'에 설 수 있다.(17:13)

 

 


# 전망대에서 바라 본 양양쪽 조망.

 

 

 

# 좌측 한계령쪽 조망.

 

 

 

# 구불구불 휘감아 구룡령으로 올라 가는 56번 도로.

 

 

 

# 약수산 정상.

 

 

 

# 요래서 얻은 이름이다.

 

 

 

역시 이곳에도 동판으로 정상석을 대신한다. 정상을 나와 돌계단을 가파르게 내려갔다. 벤치가 있는 쉼터가 다시 나오고 전방에 작은 봉우리 하나가 앞을 가로 막았다. 지도 확인하니 '1218봉'이다.

가볍게 넘으면 되겠지 하고 봉우리 하나를 넘었더니, 웬걸? 이게 장난이 아니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면서 지친 대간꾼의 진을 뺀다. 그렇게 한바탕 마지막 성질을 부리더니 '쉼터'가 다시 나오고, '우측'으로 꺾이더니 비로소 마지막 내리막이 시작된다.

가파른 돌계단이 쭈욱 이어진다. 지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그렇게 가파르게 계속 내려 구룡령 동물 이동통로까지 다 내려왔지만, 이번엔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는다. 동물이동통로를 보호한다는 명분같은데, 철조망으로 막아두면 동물은 어떻게 지나가지?

속리산 밤티재의 동물이동통로(동물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게 깎아지른 절개지 사이에 만들어 둔) 보고 개탄을 한 적이 있는데 이곳 역시 마찬가지다. 하여튼 우리나라는 참 대단한 공무원들을 모시고 살아가고 있다.

저 아래의 구룡령 휴게소도 동물 이동통로 때문에 영업을 못하고 산림전시장으로 바뀌었다.(불빛, 소음 차단한다는 의미로...) 그런데 그 이후에도 이 동물 이동통로로는 단 한마리의 동물도 지나가지 않더라는 조사 결과를 다른 분의 산행기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철조망 때문에 좌측으로 우회해서 계단길을 내려 오니 구룡령 휴게소 뒷마당으로 내려서게 된다.(17:50)

 

 


# 철조망 때문에 우회해서 고사목 지대를 지난다.

 

 

 

# 이제는 산림전시장이 되어 버린 구룡령 휴게소.

 

 

 

# 구룡령 휴게소의 영업을 막고 대간길도 차단한 문제의 구룡령 동물 이동통로.

 

 

 

대간 시작한 이래 중간 휴식이 가장 많았던 구간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으로 멧선생과 조우를 하기도 하고...

도로 가에 짐 내리고 흙먼지도 털어냈다. 차가 많이 막혔는지 3, 40분을 기다린 후에야 해리님 내외와 반갑게 해후했다. 살짝 얼린 막걸리를 가져 오셔서 오랜만에 씨~원한 막걸리 맛을 보았다. 내 이놈을 두로봉 정상에서 마셨으면 아마 날아서 이 구간 마쳤을꺼야!!!

그런데 동물이동통로에 밀려 영업장을 뺏긴 이 구룡령 휴게소. 문제가 좀 있다. 넓은 주차장이 있건만 대문을 걸어 잠그고 차량의 출입을 막는 것은 물론, 화장실이 급해 갓길에 차 세우고 들어 오려는 사람들을 일체 접근치 못하게 한다. 해리님 기다리는 동안 수십 명의 사람들이 화장실 찾으러 왔다가 돌아가는 것을 봤다. 게다가 관리인은 술 먹고 운전하면서 아무에게나 시비 걸고...

강원도 고갯길의 휴게소나 쉼터들 요즘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 대간길을 가로 지르는 고갯길의 휴게소나 쉼터들은 그야말로 강원도의 첫인상이자 얼굴인데 장삿속으로만 운영하거나 안하무인으로 행동들을 한다. 삽당령, 진고개, 이곳 구룡령.

최소한 강원도를 찾는 길손들에게 마실 물이나 화장실은 열어 둬야 할 것 아닌가? 그게 우리 古來의 미풍양속이요 사람살이다. 성격 괴팍한 사람들로만 골라서 고갯길 장사를 시키나?

 

 


# 해리님 덕분에 편안히 차량회수 하러 돌아 온 진고개 휴게소. 저 흰구름 아래 산 마루금을 걸었다.

 

 

 

구룡령 휴게소에서의 불쾌한 기분도 해리님 내외와 함께 소금강 계곡에서 하룻밤 야영하면서 나눈 정으로 전부 풀려 버렸다. 야영은 언제나 즐거워! "해리님! 택배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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