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서른다섯번째(구룡령~조침령)-오르고, 내리고! 또또...!!

[백두대간]그 서른다섯번째(구룡령~조침령) 갈전곡봉 칡넝쿨 / 밀치고 당기고 휘감고 / 할퀴고 쪼으면서도 / 어제같은 오늘 살아가는데 / 뇌성벽력 장대비 퍼부을 때는 / 오히려 그 삶이 힘이 되어서 / 흰머리메 큰줄기 / 거친 너덜에 / 질기고 모질게 아래로만 긴다 / 비 개이는 아침 내일을 위해 / 한뿌리의 의지 악착같이 / 줄기줄기 홍자색 / 꽃을 피우는구나 / 사람들아 / 아랫동네 갈전리 / 황시댁 텃밭에서/ 햇감자 / 하얀 속살로 살쪄가고 / 북녘 북청땅 희사봉 아래 / 측산포 비탈에도 / 옥수수알 희망처럼 / 노랗게 여물어 가는데 / 좌절과 절망은 오히려 희망이 되어 / 내일로 가는 오늘 / 칡밭골봉 칡꽃같은 꽃을 피우소. - 권경업 '葛田谷峰 칡꽃'(전문)   '정감록(鄭鑑錄)'은 우리나라 고래(古來)의 도참서(圖讖書)다. 도참서란 참위서(讖緯書)라고도 하는데, 미래의 일을 예견하는 비기(秘記) 혹은 비결(秘訣)을 기록한 책이다. 우리나라 도참의 대표적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에 '삼둔사가리'라는 글귀가 나온다. '세 곳의 둔과 네 곳의 가리'를 뜻하는 말이다. '둔'이란 펑퍼짐한 산기슭을, '가리(거리)'란 사람이 살 만한 계곡가를 의미한다.   결국, 삼둔사가리는 '사람이 살만한 오지(奧地)'를 가리키는 말이다. 오지라고 마냥 깊은 산골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경작과 주거를 위한 공간은 물론 농사나 생존에 필요한 물을 갖춘 곳이었다. 그리하여 이 세 곳의 널찍한 산기슭과 네 곳의 한적한 계곡은 인적 닿지 않는 깊고 깊은 산속 오지에 있어 난리를 피해 숨을 만한 피난처(避難處)로 역할하였다.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어 난리도 미치지 못할 만큼 오지인 삼둔사가리는 '홍천군 내면의 살둔(생둔), 월둔, 달둔과 인제군 기린면의 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결가리)'등 일곱 곳의 피장처(避藏處)를 가리키는 말이다.   난리도 미치지 못할 곳이니 오죽 한 곳이겠는가? 그야말로 달도 해도 반만 뜬다고 할 만한 깊고도 깊은 산골짜기이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이란 이름도 오히려 역설적(逆說的)으로 사람 살기 어려운 곳이니 이름만이라도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닌가 짐작하게 만드는 곳이다.   삼둔 중 '살둔'은 한자로는 '생둔(生芚)'이라고 하며 '삶둔'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마을은 원래 단종 복위(端宗 復位)를 꾀하던 이들이 숨어 살았던 곳이라 전해진다.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세조(世祖)와 그 정권의 서슬이 오죽했으면 이 머나먼 산골짜기까지 숨어들었을까? 단종의 복위와 관련된 전설이나 지명은 이곳 외에 소백산 자락 순흥(順興) 땅에도 남아있기는 하다.   사가리의 '가리'는 계곡 안에 자리잡은 땅을 말한다 전해지나 일설에는 소가 밭을 간다는 '갈이'에서 온 말이라고도 한다. 아침가리, 곁가리란 이름에서 그 어원이 짐작된다. 아침가리는 아침에 일어나 밭을 갈면 해가 진다는 의미도 있고, 아침나절이면 밭을 다 갈 정도로 밭이 좁다는 의미도 있다. 한자로는 '조경동(朝耕洞)'이라고도 부르는데, 그냥 아침가리란 좋은 우리말이 더 예쁘다. 나는 산꾼이 되기 전 낚시꾼으로 이 땅의 여러 강과 계곡을 누비고 다녔다. 계곡에서의 낚시는 계류(溪流)낚시라고 부르는데, 주대상어는 송어나 산천어 등이다. 아침가리 계곡은 골이 깊고 수량이 풍부한 곳이다. 여울 돌아드는 계류 곳곳에 살찐 산천어가 숨어 있었다. 그 시절 아침가리 골짜기 여러 곳을 참 부지런히도 더듬고 다녔다. 백두대간 서른다섯 번째 나들이는 구룡령~조침령 구간으로 삼둔사가리 중 아침가리골과 연가리골을 좌측에 두고 그 꼭대기 마루금을 지나게 된다. 삼둔사가리는 정감록에서 인정한 피장처다. 난을 피해 숨을 수 있는 곳이라면 유토피아나 샹그릴라 같은 이상향(理想鄕)의 비처(秘處)인 셈이다. 조망 좋은 산마루금이라면 그 비밀스러운 이상향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구간은 하루종일 조망 없이 숲속 길을 오르내리기만 했고 그나마 오후에는 내도록 짙은 개스 속을 걷느라 삼둔사가리는 코빼기도 못 봤다. 하지만 보지 못했다고 해서 삼둔사가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원래 소중한 것은 눈에 잘 안 뵈는 법이다. 봐야 할 순간이 되면 저절로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언제고 대간 종주 끝내고 나서 삼둔사가리를 골 따라 물 따라 두 발로 느껴 봐야겠다! 오르고, 내리고! 오르고, 내리고!! 또또...!!! 구간 : 백두대간 제 49 소구간 (구룡령~조침령) 거리 : 구간거리(21.25 km), 누적거리(733.91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6년 8월 26일. 흙의 날. 세부내용 : 구룡령(06:50) ~ 무명봉 ~ 1100.3봉(07:11 )~ 구룡령 옛길 정상 ~ 1121봉(07:30) ~ 공터 갈림길(07:55) ~ 치밭골령(08:28)/1063봉(?) ~ 갈전곡봉(08:50) ~ 1107.4봉(09:40) ~ 1016봉(10:05) ~ 왕승골 안부(10:58) ~ 평해손씨묘(11:20) ~ 948봉 ~ 968.1봉(11:50) ~ 산죽밭 ~ 1020봉(12:38) ~ 잡목지대 ~ 연가리골 샘터(13:00)/점심 후 출발(13:35) ~ 950.9봉 ~ 1059봉(14:48) ~ 막영지/공터 ~ 1080봉/갈림길(15:25) ~ 단풍나무 군락 ~ 바람불이삼거리(15:50) ~ 큰고목 있는 넓은 야영지(16:17) ~ 황이리갈림길(16:30) ~ 830봉 ~ 바위 전망대(17:14) ~ 민박집팻말 ~ 쇠나드리고개/옛조침령(17:30) ~ 로프구간/급경사오르막 ~ 802봉 ~ 796봉 ~ 나무통로 ~ 임도 ~ 조침령(18:20) 총 소요시간 11시간 30분   직장 생활을 꽤 오래 해 왔는데, 해가 갈수록 더욱 힘이 든다. 특히나 직장에서 인간관계를 맺어 나가는 일이 갈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젊은 시절에는 인간관계가 가장 자신 있었고 언제나 주변에 사람들로 붐볐는데, 어찌 된 것이 나이가 들어가고 아는 게 많아질수록 인간관계는 팍팍해져만 간다.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인간관계에 실망하는 횟수가 많아져서 그런가? 사람들의 영악한 뒷모습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서 그런가? 아니면 정작 내 눈이 세파에 오염되고 비뚤어져서 그런가? 이럴 때는 그저 백두대간에 들어가서 세파에 찌든 눈을 맑게 씻어내는 것이 특효다. 가자! 눈 씻으러!! 백두대간으로!!! 8월 25일 쇠의 날.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인상 쓰고 있었더니 가슴이 답답하다. 인상 쓴다고 일이 풀리는 것이 아닌데 그게 맘대로 안 된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 때문에 팍팍한 맘으로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니 시각은 이미 11시가 넘었다. 산동무 해리님 내외는 이미 구룡령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비 오지 않냐고 물었더니 도착 무렵에 조금 왔다고 한다. 허허 내일 산행 쉽지 않겠구만... 부랴부랴 먹고 씻고 준비해서 출발하니 이미 날짜를 하루 넘겨 토요일 12시 30분이다. 이제 몇 구간 남지 않은 오대산, 설악산구간은 집에서 접근거리가 가장 먼 곳이다. 영동고속도로 타고 강원도로 넘어 가는데 이 시각에도 차량들이 꽤 많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래도 막히지는 않아서 날듯이 달려가는데 원주 쯤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일기예보에서는 토욜 저녁부터 일욜까지 비가 많이 온다고 했는데 벌써 비가 오다니... 속사 나들목 나와 운두령을 넘는데 너무나 졸립다. 몇 번이나 까무룩 졸아 위험한 순간을 넘겼다. 마눌은 아무것도 모르고 조수석에서 잘도 잔다. 창촌 지나 구불구불한 구룡령 고갯길을 졸음을 쫓으며 겨우겨우 올라가니 구룡령 정상 휴게소 대문 앞에 해리님 차가 서 있다. 3시 30분이다. 해리님네 깨지 않게 얼른 시동 끄고 취침 모드로 들어갔다. 두 시간만 자자!! 구룡령/九龍嶺 높이 1,100m, 양양에서 서남방 100여리에 걸쳐있다. 도로가 대단히 높고, 험하며 계곡이 많다. 홍천, 횡성으로 통하는 신작로로 1874년 개통되어 현재 국도 56호선으로 임산물 반출 및 한계령과 더불어 영동과 영서를 잇는 관문이다. 구룡령이라 함은 령 정상에 오르려면 99곡의 우회를 한다는 데서 유래되었고, 청룡, 황룡 두 폭포와 불바라기약수로 유명하다. 또한 가을철에 계곡 가득한 단풍은 구룡령을 찾는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갈전곡봉/葛田谷峰 강원 인제군 기린면(麒麟面)과 양양군 서면(西面)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174m. 가칠봉(1,240m), 私參峰(1,322m), 鷹峰山(1,016m) 등과 함께 태백산맥의 일부를 이룬다. 또한 소양강의 지류인 방대천(芳臺川)을 비롯하여 계방천(桂芳川), 내린천(內麟川) 등의 발원지를 이루고 있다.     옛조침령/鳥寢嶺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와 양양군 서면 서림리를 연결하는 750M의 백두대간 고개. "새도 하루 자고서 넘어야 할 만큼 높은 고개"라는 뜻에서 얻은 이름이다. 옛적에는 선질꾼(산간지역 간 교역을 담당했던 소상인)들이 하루 50여 명씩 옛조침령을 넘었다. 그들은 양양에서 소금이나 어물 등속을 사서 지게에 지거나 말에 싣고 인제 땅에 팔았다. 이 고개가 옛조침령이 된 이유는 이곳에서 2km 떨어진 곳에 현재 조침령(770m)으로 알려진 고개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1983,4년 3군단 공병여단이 21km에 이르는 새로운 비포장 고갯길을 닦았다. 전시에 대비한 작전 도로였다. 비포장길이라고 하지만 당시 이곳 사정으로선 신작로나 다름없는 길. 이 새 고개가 조침령이란 이름을 물러 받았다. 현재는 포장공사가 진행 중이며 곧 왕복 2차로의 아스팔트길과 터널이 개통돼 현재의 비포장길을 대신하게 된다. 현지인들은 옛조침령을 조침령으로, 현재의 조침령을 반부둑 고개라 부른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49 소구간 구룡령 ~ 조침령 개념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5시 30분에 맞춰 둔 알람소리에 놀래서 눈을 떠 보지만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일어나야 한다는 의지와 조금만 더 누워 있자는 생각이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일어 나야지. 억지로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킨다. 하루 전날 도착해서 푹 자고 좋은 컨디션으로 산행을 해야 하는데, 돌아보면 백두대간 35번 중 거의 대부분이 잠을 아예 못 자거나 두세 시간 겨우 눈 붙이고 나서느라 나쁜 컨디션으로 시작했다. 퇴근이 언제나 늦은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의 비애(悲哀)다. 침낭 개며 차창 밖을 보니 컴컴한 구룡령 정상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아이고~ 이 일을 우짜노!! 해리님 내외는 이미 누룽지 끓여서 아침 준비를 해두고 있다. "일단 아침 먹고 나서 산행 여부는 결정합시다." 구룡령 정상 갓길에서 장사하시는 분의 파라솔을 잠시 펼쳐서 비를 피하며 아침을 먹는데, 구룡령 휴게소 주인 아저씨가 어슬렁 어슬렁 다가온다. 이 양반 지난번에 술 먹고 음주운전하면서 우리한테 시비 걸었는데... 해리님이 깍듯이 인사하고 커피나 한 잔 하시라고 했더니 뭔가 한마디 하러 접근한 게 분명한데, 표정이 부드러워지면서 친절해진다. 바리케이트를 치우며 차를 휴게소 안에 주차하라고까지 한다. "그럴것 까지는 없습니다. 그냥 갓길 공터에 세워도 됩니다." 깍듯한 인사 한마디가 관계를 180도 바꿨다. 이게 답인가? 이렇게 살면 되는가? 식사 마치고 커피까지 한 잔씩 했지만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일단 준비를 마치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일기예보에서는 오늘 저녁 늦게부터 비가 온다고 했으니... 비닐로 배낭 속 물건들을 싸고 배낭커버도 씌우고 미니스패츠도 착용했다.     # 비를 맞으며 산행준비를 했다.       요즘 회사일로 스트레스가 심했고, 간밤에 잠을 두 시간도 채 못자서 컨디션도 좋지 않다. 추적추적 계속해서 내리는 비 핑계로 자꾸만 꾀가 난다. "해리님, 비가 계속 올 것 같은데 우리 양양으로 내려 가서 회나 한 접시 합시다~~ 비 오는 바닷가에서 먹는 쐬주, 이게 또 운치 있거든~" 대간 졸업을 앞두고 맘이 급해지는지 해리님은 일단 산행준비를 다 해 놓고 기다려 보자고 한다. 그렇게 산행준비를 하고 자동차도 갓길에 안전하게 다시 주차하고 하는 사이에 그럭저럭 비가 그쳐준다. 일단 기상청을 한번 믿어 보기로 하고 산행을 강행했다. 구룡령 정상 동물이동통로 옆 철제 펜스에 표지기들이 많이 달려 있지만, 그리고 가면 출입금지를 해둔 동물 이동통로를 따라야 한다. 정상 너머 구룡령 표지석 쪽으로 가면 오늘 구간 들머리가 나온다. 구룡령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하고 오늘 산행을 시작했다.(06:50)     # 잘 하세! 서로 격려하고...       # 물기 가득한 수풀을 헤치고 들머리로 들어 섰다.       아직도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과 수풀에 잔뜩 매달려 있던 빗물들이 일시에 달려든다. 순식간에 아랫도리가 흠뻑 젖어버린다. 그래도 해리님네는 비닐봉지로 간이 스패츠를 만들어 착용했고 우리는 미니 스패츠를 해서 신발 속은 안전하다. 시작부터 오름의 각도가 높아지고 준비 덜 된 몸이 힘들다고 신호를 보낸다. 그 각도 그대로 낑낑 올라 '무명봉' 하나를 넘고 다시 능선 길을 오르내리게 된다. 등로를 따라 음식점 커피 자판기에 쓰이는 노란 플라스틱 컵이 땅에 박혀 있어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나 성질이 나려는데, 자세히 보니 2m 정도의 간격으로 수십 개의 컵이 일정하게 설치되어 있다. 컵 속에 물이 담겨 있고 곤충들이 빠져 있는 것으로 보아 생태 조사를 위한 곤충포획용으로 설치해 둔 것 같다. 잠시 후 삼각점이 있는 '1100.3봉'에 이른다.(07:11)     # 오늘 구간 중 조망이 있는 몇 안되는 봉우리 중 하나다.       # 다행히 비가 그쳤다.       # 양양쪽 조망. 운무가 피어 오른다. 운무 탓에 인간세(人間世)가 전혀 뵈질 않는다. 인간세에서도 우리를 못 볼 것이다. 그럼 여기가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인가?       1100.3봉 정상엔 사계청소가 되어 있고 안내판에 갈전곡봉이라고 적어 두었다. 이제 겨우 20분을 왔을 뿐인데 2시간 거리에 있는 갈전곡봉이라니... 잘못된 안내판 때문에 잠시 헷갈렸다. 조망 구경 좀 하다가 출발했다. 곧 바로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데 첫번째 내리막에서 벌써 허벅지 근육에 신호가 온다. 다들 내 허벅지를 걱정한다. 살살 달래며 가겠다고 걱정 말라고 말해 주었다. 안부에 이르니 '구룡령 옛길 정상'이라는 나무 팻말이 서 있다. 팻말 뒤쪽으로 희미하게 소로길이 보인다.     # 구룡령 옛길 정상. 숲속이 어두워 후래쉬를 터뜨려야 한다.       안부에서 바로 위로 낑낑 올라 가니 '1121봉'이 나온다. (07:30). 아주 급한 내리막으로 내렸다가 다시 고만고만하게 오르내리다 길게 한바탕 올라 가니 '사면의 공터'가 나온다. 대간길은 이곳에서 갑자기 우측으로 떨어져 내린다.     # 사면의 공터가 나오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지도에는 90도로 꺾이게 표시되어 있지는 않다. 나침반을 확인해보니 우측으로 내려가는 방향이 북쪽이다. 가파르고 길게 내려간다. 허벅지에 부담이 가지 않게 살살 달래 가며 스틱에 의지해 내려갔다. 안부에 내려서서 잠시 편안하게 진행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내 두어 차례 오르내리며 고도를 높인다. 오늘 구간은 '긴 마루금'이나 '평탄한 산길' 이딴 말들을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올랐다 하면 무조건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내렸다 하면 곧 바로 위로 올라야 한다. 고도표를 보니 뾰죽뾰죽 톱의 단면을 그려 놓은 듯하다. 백두대간 구간 중 가장 힘들다는 댓재~백봉령 구간이 이런 식이다. 그러나 그 구간은 전체 길이가 길고, 오르내림이 길고 가파르지만, 가끔 편안한 안부나 긴 마루금을 허락하는 편이다. 그에 비해 오늘 구간은 고만고만한 봉우리가 제각기 독립되어 계속 이어져 있다. 따라서 올랐다 하면 무조건 내리고, 내렸다 하면 무조건 바로 올라야 한다. 하~ 그것 참~~        # 꽃 구별이 가장 어려운 산형과이다. 아주 작은 넘인데...사상자(?)기름나물(?)       # 짚신나물.       # 산형과 중 정확하게 아는 유일한 넘. 어수리.       # 금강초롱.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 마주송이풀.       # 분취.       오늘 구간은 궂은 날씨 때문에 조망은 전혀 없고 단지 숲속을 오르고 내리고를 할 뿐이다. 산행기도 올랐다 내렸다 말만 하면 된다. 그나마 중간중간 만나는 야생화가 반가워 계속 촬영하며 진행했다. 그 때문에 앞서 가는 세 사람과 자꾸만 뒤쳐지게 된다. 오늘 구간엔 꽃며느리밥풀과 마주송이풀이 대세이다. 길게 위로 오르며 고목이 자빠링하고 있는 마루금을 오르고 다시 길게 헉헉대며 올라가니 '치밭골령'이라 적어 둔 콘크리트 정상석을 만난다.(08:28)       # 치밭골령.         아마도 지도상 '1063봉'의 다른 이름인 듯하다. '치밭골령'이란 '골을 가파르게 치받아 오르는 재'란 뜻일까? 권경업 시인의 시에 '칡밭골령'이란 표현이 나오는 걸로 봐서 '칡밭골령'을 잘못 기재한 것일 수도 있겠다 짐작한다. 터진 숲 사이로 전방에 갈전곡봉이 보인다. 치밭골령에서 바로 아래로 잠시 내렸다 다시 길게 올라갔다. 헉헉 낑낑 아주 힘들게 무명봉 하나를 치고 올라 가지만 갈전곡봉은 아직 뒤쪽에 보인다. 다시 위로 가파르게 올라 '갈전곡봉'에 오른다.(08:50)     # 갈전곡봉의 소박한 정상.       갈전곡봉은 해발 1204m로 오늘 구간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이자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봉우리다. 오늘 구간에만 공식적으로 지도상에 이름대신 해발고도를 올린 봉우리가 10여 개가 넘지만, 정작 이름을 가진 것은 갈전곡봉이 유일하다. 역시 세상 모든 것이 희소가치에 따라 그 몸값이 결정 지어진다. 도심 근교에서는 삼사백 미터만 되어도 제대로 된 이름은 물론이고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칡 葛', '밭 田'을 쓰는 것으로 봐 옛적엔 칡이 아주 많이 난 모양이지만, 특별히 칡이 많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갈전곡봉 정상엔 '갈림길'이 있어 좌측으로 가면 가칠봉, 응봉산, 구룡덕봉으로 산줄기가 이어지고, 구룡덕봉과 대간길에서 흘러내린 골이 아침가리골을 이룬다. '가칠봉(加漆峰)'은 한자로 해석하면 옻칠을 더했다는 의미이지만, '가칠'은 모든 산지를 통틀어 부르는 우리 옛말인 '갓'의 향찰식 표기이다. 결국 가칠봉은 '외진 곳에 있는 산'이란 뜻이다. '아침가리골'은 그 유명한 삼둔사가리 중 하나이다. 구룡덕봉(1,388.4m) 기슭에서 발원하여 20㎞를 흘러 인제땅 방태천으로 들어간다. 물론 중간에 갈전곡봉에서 그 흐름을 더하게 된다. '아침가리'란 '아침에 밭을 간다'는 뜻으로 '아침갈이'라고도 하며 지도에는 한자어로 '朝耕洞(조경동)'이라고도 표기되는 곳이다. 대간끝내고 저 삼둔사가리 전부를 트래킹 형식으로 걸어 봐야겠다. 갈전곡봉 정상은 수목에 싸여 여전히 조망이 없고 소박한 정상 이정목이 서 있다. "구룡령 3.4km, 2시간/ 쇠나드리 12.7km, 6시간30분"이라고 적혀 있다. 한참을 쉬면서 지도 꺼내 갈 길을 확인했다. 지도상으로는 가파르게 내렸다가 다시 그만큼 밀어 올리고, 바로 절반 정도 내려 이후 대여섯 차례 오르내려야 다음 포스트인 '왕승골 갈림길'에 갈 수 있다. 갈림길에서 우측 왕승골갈림길 방향으로 내려갔다. 잠시 내렸다가 편안하게 가는가 싶더니 이내 아래로 길고 가파르게 내려간다. 갈전곡봉 오름을 모두 까먹게 가파르게 내려간다. 중간 가파르게 내리는 시작점에서 우측으로 툭 트인 '전망지' 한 곳을 지난다. 갑갑한 숲속만 걷다가 툭 트인 조망을 바라보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 간만에 조망이 있는 곳을 만난다. 양양 방향.       그렇게 계속 가파르게 내려가는데 갑자기 앞서가던 마눌이 휘청하더니 거꾸로 처 박힌다. 놀래 달려가 일으켜 세웠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야, 이 사람아! 조심해야지! 그리고 자빠링을 하면 왜 꼭 거꾸로 처박냐?" 다시 출발해서 내려 가는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다들 걱정스런 얼굴인데 다행히 숲길을 걷는 지라 비는 덜 맞는다. 그리고 많이 내릴 비도 아닌 것 같다. 고도를 200m 가까이 까먹고 나서야 안부에 이르는데 잠시도 편하게 걷지 못하고 바로 위로 올라가야 한다. 가파르게 위로 올랐다가 잠시 내리더니 다시 계속 위로 밀어 올린다. 비가 계속 내려 걱정이 많다. 그렇게 낑낑 올라 '1107.4봉'에 이른다.(09:40)     # 1107.4봉을 힘겹게 치고 오른다.       10분 가량 휴식을 취하는데 비가 그치고 햇살이 들기 시작한다. 오늘 구간엔 갈전곡봉 이전까지는 멧돼지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 전구간(대관령~진고개~구룡령) 내도록 멧돼지 흔적을 밟고 진행을 해야 했고, 두로봉 가는 길에서는 멧돼지를 직접 조우하기까지 했었는데, 오늘 구룡령에서 갈전곡봉까지는 멧돼지 흔적이 전혀 없다. 그러나 갈전곡봉을 넘어 서서 부터는 다시 중간중간 온 산을 파헤친 멧돼지 흔적을 만나게 된다. 1107.4봉에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데 지겹게 달려드는 파리떼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휴식 후 출발하면서,"이 구간은 대간길에서 유명한 진드기 출몰 지역이니 배낭을 잘 털고 메십시오." 라고 했더니 금세 으악~ 하는 소리가 들린다.   해리님 내외 배낭 아래에 작은 구더기들이 가득 매달려 꾸물대고 있다. 파리들이 나무 밑둥 습기 진 곳에 알을 깐 모양이다. 조침령 구간엔 진드기 대신 구더기들이 점령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정상을 나와 가파르고 길게 아래로 내려갔다. 비에 젖은 가파른 내리막이 아주 미끄럽다. 해발고도를 100m 까 먹고 다시 위로 길고 가파르게 오른다. 정상 부근에서 잠시 편안하게 가는 듯 하더니 이내 다시 가팔라 진다. (10:05)삼각점이 있는 '1016봉'에 오른다.   # 잠시 편안한가 했더니,       # 곧 바로 위로 치고 올라야 한다.       # 1016봉, 삼각점이 있다.       1016봉은 사계청소가 되어 있어 햇볕에 노출되어 있고 햇살이 따갑다. 파리떼가 계속 귀찮게 덤벼 들어 이내 출발했다. 곧 바로 아래로 내려간다. 오늘 구간 철저하다. 절대로 정상에서 평탄한 마루금을 간다든지, 안부에서 편안하게 진행한다든지 하는 경우는 없다. 무조건 오르면 내리고, 내리면 오른다. 꾸준히 내려 안부에 이르고 잠시 가는 듯하더니 다시 위로 밀어 올려 '통나무 하나 누워 있는 안부 오름'에 이른다.     # 모두들 꼬부랑 할매 모드로 들어간다. 아이구~허리야~       비가 그치며 매미들이 발악을 하듯이 울어 댄다. 해가 나면서 개스가 밀려 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 옅은 상태여서 시야를 가릴 정도는 아니다. 다시 아래로 내리고 또 오르더니 또 내리고, 이내 길게 올라간다. (이번 산행기에는 오르고 내리고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무명봉 하나를 올랐다가 다시 떨어져 내렸다. 이제는 오름 숫자 세는 것도 귀찮다.  두어 번 더 오르 내리더니 이번에는 급하고 가파르게 떨어져 내린다. 젖은 땅이라 아주 미끄럽고 위험하다. 내리막에 취약한 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11:58)'왕승골 갈림길'에 도착했다.     # 왕승골 갈림길. 개스가 조금씩 밀려 든다.       # 좌우로 1.5km 정도 내려가면 탈출이 가능하다. 삼둔사가리인 조경동, 연가리골이 산 아래다.       왕승골 갈림길에서는 고도가 835로 찍히지만 오늘 고도계는 믿을 수가 없다. 비가 왔다가 해가 났다가를 반복해대니 고도계에 오류가 많다. 우측으로 왕승골로 내려가는 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대간길은 여기서 다시 지체없이 위로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10여 분 휴식 후 곧바로 무섭게 밀어 올린다. 그렇게 잠시도 한눈 파는 법 없이 위로만 올라 '평해 손씨 묘'에 올랐다.     # 평해 손씨 묘. 누군가 술을 올렸는지 쐬주병이 하나 누워있다.       # 지나온 대간길. 저 산에서 내려와 다시 가파르게 올라왔다.       비석에 2000년이란 글자가 있는 걸로 봐서 그다지 오래 되지 않은 묘지 같은데, 참 높은 곳에 조상을 모셨다. 묘지때문에 사계청소가 저절로 되어 있어 간만에 하늘 구경을 했다. 묘지 바로 뒤에 정상이 있어 이곳이 948봉인가 했지만, 정작 948봉은 아직 뒤쪽에 있다. 묘지 뒷 봉우리에서 곧 바로 위로 오르지 않고 잠시지만 또 아래로 내린다. 오늘 구간은 철저하다. 잠시 내렸다가 다시 위로 올라 암봉을 만나 정상 직전에서 우회한 다음, 또 잠시지만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낑낑 올라 가니 '948봉'이다. 올랐으니 또 무조건 내려야 한다. 안부까지 내린 다음 이번에는 또 무조건 위로 오른다. 사진 찍고 기록하느라 맨 뒤에 쳐저서 진행해 왔는데, 이제는 힘들어서 저절로 맨 뒤로 쳐지게 된다. 3개월 동안 꾸준히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고 산에도 다니고 해서 체력이 많이 좋아졌으리라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지난 번 보다 훨씬 힘이 더 든다. 자전거는 너무 무리해서 타서 허벅지 근육통이 생겼고, 요근래 회사 일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속을 끓이며 지냈더니 체력적인 면에서 오히려 더 나빠진 모양이다. 반면 세리님은 지난번 삽당령 구간 같이 할 때에 비해서 엄청나게 체력이 좋아졌다. 자전거 타고 수영하고 체력관리를 많이 하셨다더니 한번도 처지는 법 없이 씩씩하게 잘도 올라 간다. 으메~ 기 죽어!!! 산죽밭을 낑낑 치고 올라 삼각점이 있고 사계청소가 넓게 되어 있는 '968봉'에 오른다.(11:50)     # 처음으로 툭 트인 전망을 선사한 968봉.       # 가야 할 대간길. 좌측 높은 봉우리가 1020봉이다.       # 지나온 대간길. 운무가 산허리를 휘감았다.       # 정상엔 '닭의 장풀'이 산죽밭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당(唐)나라 때의 시인 두보(杜甫)가 사랑한 꽃이다. 두보는 이 꽃을 방안에 피는 대나무라며 아주 좋아했다. 잎이 댓잎을 닮은 탓이다.       오르내림이 심해서 오늘은 각 포스트마다 충분히 쉬면서 진행했다. 어차피 구간 소요시간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성격인지라 해지기 전에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쉬면서 주변 경치 구경 충분히 한 후 출발했다. 정상에서 아래로 잠시 내리더니 두세 차례 오르내린 후 평탄한 마루금을 걷는다. 오늘 처음 있는 일이다. 바람이 가늘긴 하지만 마루금을 타고 넘어 온다. "쉬었다 갑시다. 이래 좋은 평탄함과 바람을 놓칠 수 없다!" 좀 전에 쉬었음에도 바람이 아까워 잠시 한숨 돌렸다. 그러나 이내 길게 올라 가야 한다. 그러면 그렇지... 힘들게 올랐지만 계속 올라 가는 것이 아니라 심술 부리 듯 잠시 아래로 내리더니 다시 위로 산죽밭을 길게 올라간다. 낑낑 올라 오름 하나를 오르는데 누군가 초대형 표지기를 나무에 매달아 두었다. 선거 때 사용하는 어깨띠 수준이다. 다시 위로 낑낑 올라 가니 수풀에 뒤덮혀 있는 '1020봉'이 나온다.(12:38)     # 초대형 표지기.       # 힘들게 올라온 1020봉. 수풀을 헤치고 전진.       1020봉 정상엔 헬기장이 있지만 수풀에 뒤덮혀 2평 남짓만 모습을 남겨 두고 있다. 대간길도 수풀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잡목지대를 지나 아래로 길게 길게 내려 '연가리골 샘터'에 도착했다.(13:00)     # 먼길을 걸어 도착한 연가리골 샘터.       # 낡은 안내판. '단풍굴락지'라고 적어 두었다. 맞춤법 공부해야겠다.       # 점심 준비. 왠지 불쌍한 자세로 보인다.       배 고프다, 밥 먹읍시다. 마음에 점 하나 찍고 휴식하며 체력도 회복했다. 좌측으로 150m 정도 내려가면 샘터가 있다고 하지만 아무도 선뜻 내려 가겠다는 사람이 없다. 물도 모자라지는 않을 것 같고 이제 내리막이라면 치가 떨리는 지라... 식사 후 13:35에 출발했다. 위로 오르며 계단식으로 고도를 높인다.  멧돼지 흔적이 등로를 따라 이어지는데 모두 이제 막 만들어진 것이다. 비 그친지 몇시간 되지 않았는데 흙이 모두 뽀송뽀송하다. 모두들 바짝 긴장하였다. 잠시 후 삼각점이 있고 사계청소를 해 둔 '950.9봉'이 나온다. 고도계엔 960이 찍힌다.     # 삼각점이 있는 950.9봉       그러나 정상은 좀 더 오른 뒤쪽에 있다. 삼각점이 있는 곳이 950.9봉인지 아니면 뒤쪽 봉우리가 950.9봉인지는 알 수 없다.   올라왔으니 당연히 떨어져 내려야 한다. 이제는 아무도 불평 따윈 하지 않는다. '적응력'이란 것이 무섭다. 길게 떨어져 내려 안부에 닿지만 곧바로 올라야 한다는 걸 모두들 안다. "평탄한 직진 따윈 없다. 무조건 오르는 거다. 올랐다면 내리는 거다." 모두들 냅다 내달릴 줄만 아는 축구선수 차두리가 된 기분이다. 그렇게 길게 올라 '바람골' 하나를 발견한다. 마루금을 넘어 오는 바람이 아주 시원하고 좋다. 마눌과 단 둘이 왔다면 당연히 거풍을 할 곳이지만 팔 벌려 바람맞이 하는 걸로 만족했다.     # 미역취.       한바탕 찐하게 위로 밀어 올린다. 힘들다! 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능선에 올라 조금씩 고도를 높여 올라간다. 멧선생들이 밭갈이를 참 넓게도 해 두었다. 잠시 후 고도계에 1105가 찍히는 봉우리에 오른다. 지도 꺼내 확인해 보니 '1059봉'이다.(14:48). 오늘 고도계는 전혀 믿을 수가 없다. 바로 뒤에 '막영지가 있는 공터'가 나온다.     # 1059봉 뒤 막영지.       주변에 멧돼지 흔적이 많아 야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후 당연히 내려간다. 단풍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내리막니다. 바닥엔 키 작은 산죽밭이 쭉 이어진다. 안부에 이르자 곧바로 위로 올라야 하고 비교적 편하게 조금씩 고도를 높이며 오른다. 한참을 올라 표지기가 많은 '1080봉'에 도착했다.(15:25)     # 단풍나무 군락.       # 갈림길이 있는 1050봉.       지치고 힘들어서 갈림길에서 잠시 헷갈렸다. 우리가 올라온 길에도 남진하는 사람들이 표지기를 잔뜩 매달아 두었는데, 그 길로 도로 내려 갈 뻔 했다. 우리 둘만 왔으면 바로 알바로 이어질 아찔한 순간이다. 하산길은 급하고 가파른 산죽밭길이다. 비온 뒤라 아주 미끄러운데 결국 해리님이 이곳에서 자빠링을 하였다. 스틱이 휘어져 버렸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고 스틱도 바로 펼 수 있었다. 계속 아래로 내려 '바람불이 삼거리'에 도착했다.(15:50)     # 미끄러운 단풍나무 군락지 하산길.       # 바람불이 삼거리. 휘어진 스틱 펴고 있다.^^       '바람불이'란 이름이 아주 정겹다. '쇠나드리'의 또다른 이름인가 보다. 가파르게 잠시 올랐다가 이후 길고 완만하게 고도를 높인다. 웬일이야? 했더니 이내 아래로 급하고 미끄럽게 떨어져 내린다. 그럼 그렇지! 무릎이 시큰시큰하다. (16:17)'큰 고목이 있는 넓은 야영지'에 이른다.     # 큰 고목이 있는 넓은 야영지.       이곳에서 곧바로 위로 가파르게 올랐다가 산의 정상부에서 우회해서 좌측으로 내려 간다. 그런데 갑자기 짙은 개스가 숲 전체에 퍼진다. 순식간에 숲이 컴컴해졌다. 이거 조짐이 이상한데.... 곧 비가 쏟아질 듯한 분위기다. 위로 올라 산죽밭 속을 길게 진행하면 작은 공터가 있는 '황이리 갈림길'에 도착했다.(16:30)     # 갑자기 짙은 연무가 밀려든다.       # 순식간에 숲 전체가 컴컴해진다.       # 산죽밭 속의 황이리 갈림길.       어느 지역 백두대간 산악회 표지기가 황이리쪽에 홀로 매달려 있다. 저쪽으로 탈출해서 어쩌자는 건지... 곧바로 위로 밀어 올린다. 산죽밭이 길게 이어졌다. 계속 위로 올라 '830봉'을 지난다. 특징없는 작은 공터만 있어 그냥 지나쳤다. 계속 짙은 연무속을 아무 조망도 없이 아무 느낌도 없이 전진만 했다. 재미 없다. 내가 야간 산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그냥 묵묵히 걷기만 하다 보니 이정목이 하나 나타난다. 조침령, 구룡령이라고 방향만 적혀 있다. 거리나 시간을 좀 적어 두지... 그래도 몸통에 좌표를 달고 있다. GPS나 상세 지도가 없으면 무용지물인데... 민짜 이정목 바로 뒤에 '바위전망대'가 있다.(17:14)     # 바위전망대 앞의 민짜 이정목.       이렇게 짙은 개스 속에 바위전망대가 무슨 조망을 주겠는가? 패스해서 그냥 아래로 내려갔다. 안부를 잠시 진행하는 듯 하더니 다시 산죽밭 길을 길게 떨어져 내린다. 한참을 내려 '쇠나드리 갈림길'에 닿았다. 쇠나드리 민박집에서 펜으로 갈겨 쓴 안내판을 매달아 두었다. 이곳에서 하얀 로프가 쳐져있는 가파른 길을 조심스레 내려가니 '옛조침령'에 이른다.(17:30)     # 쇠나드리 갈림길.         # 민박집에서 안내판을 매달아 두었다.       # 이곳에도 민짜 이정목이 있다.       # 쇠나드리로 내려가는 옛조침령 길.       옛조침령길은 산죽에 뒤덮혀 길도 잘 보이질 않는다. 이 길을 따라 옛 사람들은 등짐을 지고 넘나 들었을 것이다. 고개 아래 쇠나드리는 바람 거세기로 유명한 곳이다. '쇠나드리'란 이름도 황소까지 날려 버릴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부는 곳이라서 얻은 이름이다. 실제로 경운기까지 바람에 뒤집힌 적이 있다고 한다. 한자로는 '우탄동(牛灘洞)'이라고 한다. 오늘은 바람은 없고 개스만 가득하다. 옛조침령은 짙은 수풀에 갇혀 있다. 수풀을 헤치고 구불구불 올라 완만하고 길게 진행한다. 잠시 후 하얀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지도에도 '급경사 오르막'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헉헉 낑낑 마지막 힘을 뽑아내 위로 올라 별 특징없는 세 개의 봉우리를 연달아 지났다. 지도상 '802봉'은 셋중 하나일텐데 구분을 할 수가 없다. 고도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이제 지도상 하나의 봉우리(796봉)만 넘으면 되는데, 이 구간 끝까지 오르내림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지독한 놈!!! 802봉을 지나 다시 아래로 떨어지더니 안부에서 또 바로 위로 올라 간다. 무명봉 하나를 넘고 두 번째에야 '796봉'이 나타났다. 그러나 역시 아무 특징없어 그냥 지나고 드디어 아래로 내려간다. 더이상 올라 가는 곳은 없겠지... 잠시 후 나무 통로를 만나고 통로 좌측 아래에 비포장 조침령 길이 보인다. 나무 통로를 지나자 바로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     # 단풍취.       # 나무통로. 이제 다 왔다.       # 드디어 조침령길에 내려섰다.       표지기 하나 매달아 무사히 한 구간 마친 걸 자축하고 조침령 길따라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오늘 구간의 종착지 조침령 표지석 앞에 도착했다.(18:20)     # 안개 자욱한 조침령길.       #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초췌한 모두의 얼굴에서 힘든 오르내림을 하루종일 걸은 흔적이 보인다.       # 다음 구간 들머리.       참 오래도 걸렸고 참 많이도 오르내렸다. 백두대간 전 구간 어느 하나 쉬운 곳이 있겠는가만 이 구간도 難코스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톱니 구간'이라는 이름을 내 맘대로 지어주었다. 오늘 우리에겐 산동무 대명님의 택배 서비스가 기다리고 있다. 남들 같으면 지금부터가 차량회수 문제로 큰 곤란을 겪을 일이지만, 우리는 대명님 덕분에 아주 편하게 차량회수가 가능하였다. 대명님이 준비해 오신 맥주로 타는 듯한 갈증도 없애고, 서림쪽으로 내려가서 폭포에서 알탕도 즐겼다. 대명님의 늙은 무쏘가 몽니를 부려 작은 에피소드가 있긴 했지만, 명개리 민박집에서 산꾼들끼리 산얘기, 사는 얘기를 오가는 술잔에 띄워 마무리 방점을 찍었다. 대명님은 뒷날 비 때문에 한계령구간 산행도 못하고 우리들 택배만 하였다.     # 대명님의 늙은 무쏘. 그러나 우리는 이 넘 덕을 많이 봤다.        아, 이제 백두대간도 세 번만 가면 끝이 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면 강/사/랑의 다음 블로그 "하쿠나마타타"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