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백두대간]서른일곱번째(단목령~한계령)-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하고! 본문

1대간 9정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서른일곱번째(단목령~한계령)-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하고!

강/사/랑 2007. 6. 25. 22:20
 [백두대간]그 서른일곱번째(단목령~한계령)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 저 산은 내게 내려 가라 내려 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 양희은 노래 '한계령'

 


30여 년 전의 일이니 70년대 후반의 이야기다. 청춘(靑春)의 방황으로 힘겨운 고교 시절을 보내던 강/사/랑은 질풍노도(疾風怒濤)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청춘은 외롭다. 그리고 쉬 동화(同化)된다. 그때 아주 친한 친구 녀석이 한 명 있었다. 우리 둘은 그 몰아치는 바람같고 성난 파도같은 시절을 공유하며 늘상 뭉쳐 다녔다. 그 친구는 나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정말 아꼈다. 


학교에서 항상 얼굴 보면서도 서로에게 매일 엽서를 보냈다. 지금 본다면 헛웃음 나올 내용의 글을 시랍시고 수필이랍시고 소설이랍시고 끄적여 서로에게 보내곤 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서로 평가하고 칭찬하고 고치기도 했다. 무심한 세월 흘러 연락 두절 되고 이제는 얼굴도 기억도 가물가물 하다.

 

그 때 우리는 대학 입시공부 따위는 아예 내팽개치고 엉뚱한 것에 푹 빠져 있었다.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절을 살던 우리 두 녀석은 시집(詩集) 한 권과 무협지(武俠誌) 한 질, 쐬주 한 병이면 싸나이 하루 치의 행복에 충분하다 여기고 지냈다.

당시 우리를 사로잡은 인물은 천재 시인 '이상(李箱)'과 가수 '양희은'이었다. 매일 부르느니 양희은의 노래고 중얼거리느니 이상의 싯귀절이었다.


날개와 오감도(烏瞰圖)의 시인 이상(李箱)은 난해(難解)한 내용의 시어와 비형식의 시를 썼던 사람이다. 기생 금홍과 살림을 차리고 함께 다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자의식(自意識) 강하고 초현실적(超現實的)인 그의 시처럼 그의 삶도 그러하였다. 보통 사람의 눈에 비정상으로 보이는 그의 삶은 괴짜 그 자체였다. 씻지 않고 깎지 않고 정돈되지 않았다. 일본 동경에서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구속되었다가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어 스물일곱의 나이로 사망했다.


우리 둘은 시인 이상을 닮겠다고 친구 자취방에서 한 달간 두문불출하며 씻지도 않고 버티기도 했다. 얼마나 더러웠는지 겨울인데도 한 달 뒤에 이불을 치우니 벌레가 나왔다. 시인의 시적 정서(詩的 情緖)나 시작 능력(詩作 能力)을 배운 것이 아니라 이미지에만 빠진 치기(稚氣)였다.


지금은 TV 예능 프로에도 나오고 라디오 진행도 하지만, 젊은 시절 양희은은 특별한 가수였다. 그녀의 노래는 일반 대중가요와는 격(格)이 달랐다. 그녀가 부른 '아침 이슬', '작은 연못', '백구', '세노야' 등은 그 자체로 시(詩)였다.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에게 그녀는 연인(戀人)이었다. 그녀가 살이 너무 쪄서 풍선처럼 부풀어도 같이 살자고 하면 살 수 있겠다고 흰소리를 하곤 했었다.

젊은 시절 우리의 연인이었던 그녀 양희은이 암 투병 후 인생을 달관(達觀)한 듯한 목소리로 부른 노래가 '한계령(寒溪嶺)'이다.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

 

오랜 세월 보내고 청춘도 다 지나갔다. 시간은 모든 것을 무디게 만든다. 질풍노도의 바람도 가라앉았다. 나는 더이상 어설픈 치기를 부리지 않는다. 더이상 이상의 시를 읽지 않고 양희은의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다. 다만 가끔 산길 걷다가 그녀의 노래 '한계령'은 흥얼거리곤 한다.


그것은 그녀의 노랫말에 나오듯 한 줄기 바람처럼 살고픈 마음이 아직 조금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조금 남아있던 바람이 나를 백두대간(白頭大幹)으로 이끌었다. 그리하여 2년 여 동안 그녀의 노래 흥얼거리며 백두대간의 산길을 허위허위 걸었다.


가끔 사람들은 자기가 부르는 노래를 닮기도 한다. 즐겨 부르는 노랫말 같은 일이 눈앞에 벌어지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난다. 백두대간 산길 걸으며 한계령을 즐겨 흥얼거렸더니 그 노랫말처럼 한계령은 오지 말라고 거부(拒否)의 메시지를 계속 보낸다.

 

우선은 집중폭우를 퍼부은 하늘의 거부이다. 지난 여름 강원도 지방을 휩쓴 폭우가 한계령을 완전히 초토화 시켜 버렸다. 그 여파로 한계령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렇게 상처 입은 계곡과 그 산자락의 이재민들 보노라면 마음 아파 대간길 나서기가 어렵다.

 

다음은 한계령을 보러 가기로 한 날 겪은 느닷없는 마눌의 득병(得病) 때문이다. 현역 대간꾼 중 부부 팀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우리를 포함해 두어 팀이 있을 뿐인데, 그중 해리님 내외와는 대간 진행 속도가 비슷해 얼마 남지 않은 대간길을 끝까지 나란히 걸어보자 약속했었다.

 

그리하여 서너 구간을 함께 발 맞추어 오손도손 재미있게 걸었다. 그러다 지난달 한계령을 코 앞에 두고 마눌이 느닷없이 식도염을 얻어 단목령에서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1박 2일 계획을 하고 하루 동안 함께 산길을 걸었는데, 야영 도중 병을 얻어 우리만 뒷날 산행을 포기한 것이다.


그날 우리와 헤어져 산행하고자 단목령으로 올라가는 해리님 내외를 쳐다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하였다. 함께 산길 걷다가 그들은 산으로 우리는 산 아래 남아서 배웅이나 하고 있으려니 상실감이 컸던 탓이다. 수만 년 이 땅을 지켜온 백두대간이 당장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가벼운 이 마음은 그다지 굳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 해리님 차를 한계령에 갖다 두고 한계령에 주차해 둔 우리 차를 회수하여 집으로 귀가하며 한계령을 돌아 내려오는데, 발길이 쉬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돌아선 한계령을 2주일 만에 다시 가려고 하였지만, 여전히 한계령은 우리 더러 "오지 마라! 오지 마라!" 고 한다.

9월 16일. 설악산 지역 강수 확률 60%, 예상 강수량 5mm라는 일기예보로!!!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구간 : 백두대간 제 51 소구간 (단목령~한계령)
거리 : 구간거리(13.55 km, 접속 1.5km), 누적거리(760.81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6년 9월 16일. 흙의 날.
세부내용 :

진동리 설피밭 삼거리(07:55) ~ 알바 ~ 단목령(08:55) ~ 855.5봉(09:05) ~ 점봉 11,10구조목 ~ 920봉(09:40) ~ 산죽밭 ~ 사거리 안부 ~ 972봉 ~ 오색사거리(10:17) ~ 952봉 ~ 오색삼거리(10:46) ~ 통나무 계단 ~ 공터 ~ 너른이골 갈림길(11:26) ~ 주목보호수1 ~ 포토 포인트 ~ 점봉산(12:15) ~ 잡목지대/주목 ~ 점심(12:55출발) ~ 갈림길 ~ 망대암산(13:18) ~ 암릉구간 ~ 십이담계곡 갈림길(14:16) ~ 930봉 ~ 산죽밭 ~ UFO바위(14:37) ~ 1157.6봉(15:00) ~ 1155.9봉(15:20) ~ 만물상 암릉구간 ~ 필례령(17:40) ~ 한계령(17:50)

총 소요시간 9시간 55분(접속 및 알바 포함)

 


9월 15일. 쇠의 날.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더니 시각은 이미 저녁 11시가 넘었다. 마눌은 벌써 산행 짐들을 거실에 쭈욱 늘어 놓고 있다.

"몸은 좀 어떻나? 산행할 수 있겠소?" / "괜찮아요, 가요!" / "일기예보에서 비 온다는데... 강수확률 60%라면 반드시 온다는 얘기야." / "비 맞고 하지 뭐, 그냥 가요!"

작년 3월 백두대간 시작한 이래 마눌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간길 나서자고 하는 것은 처음이다. 막상 산에 들어가면 나보다 훨씬 더 산을 잘 타는 사람이 언제나 출발하기 까지는 간다 못간다 줄다리기를 해야 집을 나설 수 있었는데, 오늘은 웬일로 아주 적극적이다.

 

아마도 2주 전 자기 때문에 단목령에서 눈물을 머금고 발길을 돌린 것이 자기 딴에는 내내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그러나 오늘은 오히려 내가 영 망설여 진다. 회사 일이 뜻대로 잘 안풀려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고, 덕분에 극심한 건망증과 탈모증에 이러다 갑자기 노인이 되버리는 게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되는 요즘인 탓이다.

 

게다가 마눌 몸 상태도 아직 완쾌 수준은 아니고 비가 온다면 만물상 암릉길이 위험할 텐데 무사히 넘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마눌은 자기 때문에 못한 한계령 구간을 빨리 마무리 해야 겠다며 성화가 대단하다.


"좋다! 일단 진동리 설피밭 마을까지는 한번 가 보세!" 대신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비옷, 미니 스패츠, 테이프 슬링, 산행 도중에 갈아 입을 여벌 옷과 우모복까지 챙겨 비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했다.

 

점봉산/點鳳山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과 양양군 서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 1,424m이다. 한계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 대청봉과 마주보며 점붕산이라고도 한다. 설악산국립공원 중 남설악의 중심이 되는 산으로, 설악산의 최고봉인 대청봉을 오르는시발점이기도 하다. 북동쪽에 대청봉(1,708m)이 있고, 북서쪽에 가리봉(1,519m), 남서쪽에 가칠봉(1,165m) 등이 솟아 있다. 산의 동쪽 비탈면을 흘러내리는 물은 주전골을 이루어 오색약수를 지나 백암천에 합류한 뒤 양양의 남대천으로 흘러든다. 산자락에 12담계곡,큰고래골, 오색약수터, 망월사, 성국사터 등 명소가 많으며, 오색약수를 거쳐 오르는 주전골은 단풍명소로서 흰 암반 위를 흐르는 계곡물과 단풍이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낸다. 등산로는 약수터와 온천이 있는 오색에서 시작하고 정상에 오르면 대청봉·가리봉 등 설악산의 영봉과 푸른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 일대에 펼쳐진 원시림에는 젓나무가 울창하고, 모데미풀 등 갖가지 희귀식물을 비롯하여 참나물·곰취·곤드레·고비·참취 등 10여 가지 산나물이 자생한다. 특히 한반도 자생식물의 남북방한계선이 맞닿는 곳으로서 한반도 자생종의 20%에 해당하는 8백 54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어 유네스코에서 생물권 보존구역으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주전골 성국사터에 보물 제497호인 양양오색리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망대암산/望對岩山

높이 1,234m이다. 인제 동쪽 21km 지점, 양양 서쪽 18km 지점에 있다. 태백산맥 설악산 群峰 중의 하나로, 북동쪽에 최고봉인 大靑峰(1,708m), 남쪽에 點鳳山(1,424m), 남서쪽에 시선봉(侍仙峰:1,167m) 등이 같은 산체 안에 있는 형제봉으로서 삼각형을 이루어 대좌하고 있다. 대청봉 북쪽의 한계령(寒溪嶺)은 남쪽 대관령과 함께 영동·영서 간 교통의 요로이며, 북동 산록에는 오색약수·오색온천이 있어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산은 정상이 尖峰이고 망대암과 금표암 등 기암괴석으로 덮여 있다. 소양강과 양양 남대천의 분수령으로서, 사면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좁고 긴 협곡과 폭포,벽담(碧潭)을 이룬 데다 삼림이 울창하여 설악산국립공원의 일부를 이룬다.

한계령/寒溪嶺

강원 인제군 북면(北面), 기린면(麒麟面)과 양양군 서면(西面)과의 경계에 있는 고개. 높이 1,004m. 인제~양양 간 국도가 통한다. 설악산국립공원에 속하는 고개로, 영동·영서 지역의 분수령을 이룬다. 옛날에는 소동라령(所東羅嶺)이라고 불렸으며 동해안 지역과 내륙지방을 잇는 교통의 요지가 되어왔다. 1971년 12월에 양양과 인제를 연결하는 넓은 포장도로가 고개 위로 뚫려 내설악(內雪嶽) 및 외설악의 천연관광자원 개발에도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제 51 소구간 단목령 ~ 한계령 개념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9월 16일 0시 30분. 집을 나서는데 이미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출발 전 진동리 민박집에 전화해서 확인하니 그곳도 비가 하루종일 오락가락했단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강원도로 넘어가는데, 역시나 비는 오다말다를 반복한다.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홍천까지 내달려 홍천나들목 나와 44번 도로를 달려 가다가 철정검문소에서 우틀하여 451번 지방도로를 다시 갈아탔다.

물안개 가득하고 구불구불한 강원도 길을 홀로 내 달려 진동계곡쯤 왔는데, 졸음이 쏟아져 도저히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더 이상은 무리다, 자야 한다!! 인적없는 작은 지방도 옆 임시주차장에 주차하고 취침 모드로 전환!(03:30)

두 시간쯤 토막잠 자고 알람 소리에 눈을 떠 어두운 차창 밖을 살피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아이고, 오늘 산행은 틀렸다, 잠이나 더 자자!!!

얼마간 잠을 더 자고 있는데 차 한 대가 들어와 주차하더니 이것저것 짐 챙기는 소리가 요란하다. 음, 우리 같은 산꾼이 또 있나 보다. 비는 그쳤나? 차문 열고 나와 보니 산꾼이 아니라 진동계곡 산천어와 송어 잡으러 온 플라이 낚시꾼이다. 산행은 관두고 저 사람처럼 계곡의 美女 산천어 얼굴이나 보러 갈까? 어느새 비는 그치고 진동계곡엔 물안개가 가득하다. 차 시동 걸고 설피밭으로 출발했다.

아침가리골의 수려한 경치 구경하며 구불구불 가다가 쇠나드리 지나고 조침령으로 올라가는 갈림길도 지나고, 설피밭 마을도 지나 더이상 길이 없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좌측으론 강선리 거쳐 야생화 천국인 곰배령으로 올라가고, 우측길은 북암령, 직진길은 단목령으로 가는 길로 갈라진다.

지지난 주 참담한 심정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작은 공터에 주차하고 누룽지를 끓였다. 가랑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 우산을 쓰고 버너에 불을 부쳤다. "마눌, 이래서는 오늘 산행 못 한다." "일단 아침 먹고 봐요."

대단한 열정을 보이는 마눌에게 점봉산 여신이 감복하셨는지 아침 먹고 볼일 보고 하는 동안에 비가 서서히 그친다. "거 봐요, 이제 출발해요!" "좋타, 한번 가 보세!" 
07:55.

 



# 지지난주 산동무 해리님 내외를 배웅했던 그 길을 따라 올라 간다.
  

 

 

 

마지막 민박집을 지나 숲속으로 들어섰다. 숲속은 어둡고 축축하다. 좌측으로 계곡을 끼고 올라 가는데 비가 많이 왔었는지 2주 전과는 상대가 되지 않게 계곡물이 많이 불어 있다. 등로도 물에 잠긴 곳이 많아 발이 푹푹 빠진다. 그래도 경사가 완만해 힘은 들지 않는다.

 

 


# 촛대 승마. 숲속이 어두워 촛점을 못맞췄다.

 

 

 

# 비가 많이 와 계곡물이 상당히 불었다.

 

 

 

2주전에 내려올 때는 몰랐는데, 올라 가자니 오름길은 갈림길이 중간중간 많이 나타난다. 표지기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일단 가장 뚜렷한 길을 골라 올라 갔다. 그런데 계곡을 건너야 하는 곳이 나오는데 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다. 주변을 뒤져 큰 돌을 주워와 징검다리를 만들어 건넜다.

그러나 다시 갈림길이 여럿 나오는데, 전부 다 길은 사라지고 물길이 되어 있다. 그 중 제일 뚜렷한 놈을 골라 올라 갔다. 잠시후 길이 사라져 버린다. 계곡 건너편에 길이 보여 계곡을 다시 건너 위로 올라갔다.

또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길이 뚜렷하다. 2주 전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요즘 극심한 건망증에 시달리는 이 몸이 이곳 지형을 기억할 리 없다. 그리고 지난번 내려올 때 너무 쉽고 편하게 내려와서 올라가는 길이 헷갈릴 거라고는 상상도 않했다. 해리님도 아주 가볍게 20분 만에 단목령까지 올라 갔다고 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비가 와서 등로가 물에 잠겨 사라져 버려 길 찾기가 어렵다. 일단 우측 뚜렷한 길로 올라 가보자. 한참을 길 따라 올라 가는데 주변 지형이 영 낯설기만 하다. 자빠링한 고목, 저 넘은 처음 보는 놈인데... 저 묘지도 처음 보는데... 묘지는 없었는데...

나침반 꺼내 방향 측정을 하니 우리가 가는 방향이 동쪽이 맞다. 남북을 가로 지르는 백두대간을 서에서 동으로 넘는 단목령 길을 걸으니 동진하는 것이 맞지!

좀 더 올라 가 보지만 이거 낯설어도 너무 낯설다. 지도 꺼내 나침반 정치하고 확인하니 대간길은 북암령을 지나 북진하다가 단목령 앞에서 좌측으로 꺾여 서진한 후 점봉을 향해 다시 우측으로 꺾여 북진하기 때문에 조침령 가는 길은 동쪽이 아니고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빠꾸 오라이~~~

잠시 아래로 내려와서 계곡을 다시 건너고 이번에는 길도 없는 산죽밭을 가로질러 치고 올라 갔다. 얼마간 산죽에 긁히며 헤치고 올라가니 뚜렷한 등로와 만난다. 이 길이 바로 대간길이다! 그런데 여긴 단목령 가기 전의 대간길이닷!!!

처음 계곡을 건넌 후 계속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등로가 물에 잠겨 사라지는 바람에 다시 계곡을 건넌 것이 오늘 알바의 원인이다. 약 100 여미터 2주 전에 밟았던 대간길을 복습하면서 아래로 내려가니 단목령 장승들이 반겨준다. 08:55.  20분 거리를 무려 한 시간 만에 도착했다. 

 

 


# 2주일 만에 다시 만난 단목령 장승들.

 

 

 

# 험악한 인상 때문에 나쁜 액운들이 무서워서 모두 도망갈 것 같다.

 

 

 

# 대간 안내석과 산림보호 안내판 사이로 대간길이 이어진다. 

 

 

 

시작부터 어처구니 없는 알바를 했다. "그래 이걸로 오늘 액땜했다 치자. 오늘의 관건은 더이상 비가 안 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아랫도리는 빗물에 젖어 축축하게 젖었다. 계곡 몇 번 건너 다니느라 신발 속도 꿉꿉하다. 사전에 미리 미니 스패츠를 착용했지만 아까 계곡물에 푹 빠진 것이 원인인 듯하다.

단목령은 박달나무 '檀' 자를 써서 '박달령'이라고도 한다. 이 고개는 오색과 인제의 오지마을인 진동리를 이어주는 고개다. 고려 고종 4년 김취려 장군이 충북 제천에서부터 추격해온 거란족을 이곳에서 섬멸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역사는 이제 잊혀지고 고갯길도 인적 끊겨 수풀에 뒤였다. 단지 대간꾼들이 넓은 공터와 가까운 계곡물 때문에 야영하기 좋은 곳으로만 입소문 내고 있을 뿐이다.

 

한숨 돌리고 본격적인 대간길을 나섰다. 시작부터 가파르게 위로 밀어 올린다. 통나무 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가파른 각도 그대로 위로 밀어 올린다. 잠시 후 삼각점이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855.5봉'이다.(09:05)

 

 


# 삼각점과 안내판.

 

 

 

그러나 물안개가 가득해서 전망은 전혀 없다. 삼각점은 있지만 정작 이곳은 정상이 아니라 노출된 능선 마루금의 시작점일 뿐이다. 안내판에도 해발고도를 843m라고 적어 두었다.

이후 계속 위로 올라갔다. 구불구불 방향을 바꿔가며 고도를 계속 높였다. 등로 주변으로 멧돼지 흔적이 가득하다. 모두 따끈따끈한 새것이다. 1시간 전까지 비가 왔었는데, 이곳의 멧돼지 흔적들은 비에 젖지 않고 고슬고슬하다. 지금 막 파헤친 흔적이고 저 숲 아래에 놈들이 있다는 얘기다.


얼른 호각을 꺼내 입에 물고 불면서 전진했다. 약 5~6분 정도 진행하니 멧돼지 흔적이 끊어진다. 호각소리 듣고 숲 아래로 피했나 보다. '단목11 구조목'을 지나고 위로 낑낑 올라 고도계에 '900이 찍히는 무명봉'에 오른다.(09:20)

 

 


# 갈림길이 있는 무명봉. 좌틀해야 한다.

 

 

 

이곳엔 갈림길이 있고 직진길은 나무로 막아 두었다. 그러나 야간에는 무심코 직진하기 십상인 듯해서 좌측길에 표지기 하나 매달아 둔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90도 꺾여 잠시 내렸다가 곧바로 위로 올라 가야 하고 길게 오름의 각도를 유지하며 구불구불 진행한다.

'점봉10(점봉산 5.5km) 구조목'을 지난다. 이곳의 구조목은 500m 단위로 세워져 있다. 위로 꾸준히 올라 넓은 평원을 만나 평탄하게 진행하는데, 좌측 아래 산죽밭에서 멧돼지들이 우두두두 내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구, 놀래라!! 얼른 호각 꺼내 불고 스틱 딱딱 소리내며 속도를 냈다.


비 오고 개스 가득해서 숲속이 어두컴컴하니 야행성인 멧돼지들이 활동을 많이 하는 모양이다. 다시 위로 올라 대문 형상으로 대간길을 가로 막고있는 '고사목'을 지나고, 위로 올라 '공터가 있는 무명봉'에 오른다.'920봉'이다.(09:40)

 

 


# 대문 고사목.

 

 

 

'고산자의 후예들'에서 나온 지도에는 이곳을 '구릉지 등산로'라고 기록해 두었다. 말 그대로 높낮이가 적고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는 곳이다. 920봉을 지나 잠시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전방의 무명봉 하나를 가볍게 넘고 점차 고도를 낮춰간다.

이 지역은 온통 단풍나무 군락지다. 아직은 모두들 새파란 잎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몇 주 후면 멋진 풍광(風光)을 보여 줄 것 같다.

잠시 위로 올라 봉우리 하나를 넘어 서자 '내무부'라고 새겨진 시멘트 표지석이 나온다. 옛날엔 국립공원을 내무부에서 관리했나 보다. 이 표지석은 이후 자주 눈에 띈다.
바로 곁에 '점봉 8'구조목이 나온다.

 

 

 

# 점봉 8 구조목. 갈림길이 있다.

 

 

 

이곳엔 갈림길이 있어 우측으로 갈라지는 곳이 나오고, 대간길은 직진해서 위로 올라가야 한다. 한바탕 찐하게 위로 밀어 올린다. 헉헉 소리가 절로 난다. 길게 위로 올라 920이 찍히는 무명봉의 9부 능선에서 우측으로 우회하여 평탄한 숲속길을 길게 진행했다.

내무부 표지석이 몇 개 이어서 나온다. 다시 위로 찐하게 밀어 올린다. 땀이 비오 듯한다. 숲을 가득 메운 짙은 연무 탓인지 호흡하기가 쉽지 않다.


헉헉 낑낑 올라 965가 찍히는 무명봉을 올라 좌측으로 90도 꺾어 진행한다. 그런데 정상을 지나와 아래로 내려가는 내리막 도중에 삼각점이 나타난다. 어라? 여긴 삼각점이 왜 여기 박혔나? 구불구불 조금씩 고도를 낮춰 가다가 급하게 아래로 내려 '오색 사거리'에 도착했다.(10:17)

 

 


# 오색사거리

 

 

 

# 우측으론 오색, 좌측으론 너른이골로 내려간다.

 

 

 

'점봉 3.0km/ 오색 3.3km/ 너른이골 3.6km' 라고 적힌 이정목이 서 있다. 연무가 점점 더 짙어진다. 이미 젖어 있던 숲은 짙은 연무를 만나 빗방울에 버금가게 물을 후두둑 떨어뜨린다. 곧바로 위로 치고 올라 봉우리를 넘고, 넓은 평원을 만나 편하게 진행한다. 그러다 점점 고도를 높여 가다 경사 가파르게 올려 고도계에 945가 찍히는 봉우리에 오른다.(10:30)

'점봉 5' 구조목이 있다. 지도 확인해 보니 이곳이 아마도 '952봉'인 듯하다. 이후 편하게 약간씩 오르내리며 길게 진행한다.빗물만 아니라면 춤을 출 듯한 구간이다. 온몸이 척척해서 상쾌한 산행은 아니지만 뙤약볕 아래 걷는다면 땀으로 젖어 척척할테니 피장파장이다.

위로 한차례 밀어 올리니, 어라? '오색사거리'가 또 나오네?(10:45) 지도 확인하니 이곳을 '오색삼거리'로 기록해 두었다. 혁진님의 개념도에도 좀전의 사거리를 '오색사거리', 이곳을 '오색삼거리'로 표시해 두었다. 그러나 이곳을 오색사거리로 표시한 지도도 있다.


 


# 산앵도 열매.

 

 

 

# 딱총나무 열매.

 

 

 

# 오색삼거리.

 

 

 

삼거리라고 지도에는 나오지만 실상은 사거리다. 이정목엔 '오색 3.0km/ 너른이골 4.5km/ 점봉 2.1km' 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측으로 오색으로 내려 가는 방향엔 흰 로프로 막아 두었다.

잠시 후 곧바로 위로 치고 오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점봉산 오름이 시작된다. 헉헉대며 오르다 '큰 고목이 있는 공터'를 지나고 '삼각점과 내무부 표석'이 같이 있는 지점도 지난다.

다시 위로 낑낑 오르자 마대와 통나무 계단으로 등로를 복원해 둔 곳이 나온다. 경사가 아주 가파르다. 헉헉 소리가 난다. '고사목들이 벤치 역활을 하는 공터'를 지난다. 다시 위로 낑낑 올라 잠시후(11:20) 1170이 찍히는 능선 마루금을 오르고 이후는 마루금을 길고 편하게 걷는다.

좌측으로 내려가는 희미한 '갈림길'이 있는 곳을 지나고, 바로 '속이 빈 고목'을 만난니다. 이 고목은 남아 있는 일부분의 줄기만으로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꺼칠꺼칠한 나무 둥치 어루만져 이 고목이 이겨 왔을 긴 세월을 격려하고 다시 위로 고도를 높히며 올라 갔다. 바로 위에 '너른이골 갈림길'이 나온다.(11:26)

 



# 고목이 있는 공터.

 

 

 

# 잠시 해가 나는 듯해서 카메라를 꺼내 보지만 딱 몇 초 뿐이다. 이것이 오늘 하루 종일 본 햇살의 전부다.

 

 

 

# 흙이 든 마대와 통나무계단으로 보수해 둔 곳. 경사가 가팔라 헉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나무.

 

 

 

# 너른이골 갈림길.

 

 

 

'점봉2 구조목'과 이정목이 서 있다. 이정목엔 좌측으로 내려가면 '샘'이 있다고 펜으로 적혀 있다. 지도엔 이곳을 '홍포수 막터'라고 적어 뒀지만 주변에서 찾을 수는 없다. 아마도 좌측으로 너른이골 쪽으로 내려가야 나오는가 보다.

홍포수란 사람이 이곳에 움막을 짓고 살았던 모양이다. '토지'에 나오는 강포수 같은 사람이 있었나? 신분 상승을 꿈꾸다 결국에는 상전인 최치수를 죽이는 살인범이 되고 만 독녀(毒女) 귀녀, 그 귀녀를 일편단심 사모했던 산짐승에 다를 바 없는 순수 산사내 강포수. 귀녀가 사형을 당한 뒤 귀녀가 낳은 아이를 안고 사라지는 강포수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다시 위로 가파르게 고도를 높이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급기야 좍좍 쏟아진다. 재미있는 것은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빗방울이 오락가락했지만 견딜만한 정도여서 이 정도로만 비가 온다면 문제 없겠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것이다. 예지 능력이 있는 건가? 아니면 머피의 법칙인가?

얼른 배낭에서 판초우의 꺼내 마눌에게 입히고, 나도 착용했다. 다시 위로 올라 '점봉1 구조목'을 지나고 엄청나게 가파른 돌길을 치고 올라 갔다. 너무 힘이 들어 오랫만에 숫자세며 오르기를 했다. '보호수 1' 이라고 명찰을 단 주목을 지나고 잠시 후 '포토 포인트'에 오른다.(11:58)

 

 


# 가파르게 위로 올라 간다. 점점 연무가 짙어 진다.

 

 

 

# 급기야 비가 쏟아져 우의를 착용했다.

 

 

 

# 포토 포인트. 그러나 오늘은 조망이 제로다.

 

 

 

고도계에 1340m가 찍힌다. 포토 포인트라고 하지만 비 쏟아지고 개스 가득하여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데 뭐가 보이는 게 있을 턱이 있나? 그냥 팔 벌려 판초우의 안으로 신선한 공기나 공급할 뿐이다.

다시 위로 낑낑 올라 가서 능선 마루금을 만나고 마루금 따라 좌측으로 고도를 높였다. 키 낮은 철쭉 군락 사이를 헤집고 나간다. 어느새 머리 부분은 숲 위로 노출되어 있지만 개스 때문에 아무것도 뵈는 것은 없다. 잠시후 오늘의 주 포인트인 '점봉산' 정상에 오른다.(12:15)

 

 


# 오늘 구간의 주산인 점봉산 정상.

 

 

 

# 비바람이 강하게 몰아쳐 몸을 가누기 어렵다.

 

 

 

 

# 전망 좋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오늘은 아니다. 

 

 

 

# 조망 안내판을 보고 짐작만 할 뿐이다. 설악의 주능을 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인데...

 

 

 

점봉산(點鳳山)은 설악산 국립공원에 속하면서 한계령 남쪽에 있다고 남설악이라고도 불린다. 과거에는 '등벙산', '등붕산(登朋山)'이라고도 불렀다. '벗과 같이 오르는 산'이란 뜻인가? 아니면 등명산(登明山), 혹은 등월산(登月山)등의 이름이 오기(誤記)되어 굳어진 것인가? 해발 고도는 1424.2m이다.

설악의 서북 능선이 한 눈에 조망되는 곳이라 설악 조망소로 유명한 곳이지만, 오늘은 비바람 가득해서 몸을 가누기 조차 어렵다. 점봉의 정상은 평소에도 많이 부는 바람 탓인지 민둥산으로 되어 있고 정상 부근의 수목들도 모두 키를 바짝 낮춘 형태로 땅바닥에 붙어 있다.


점봉의 정상석은 형태가 좀 우스꽝스럽다. 일본 만화의 캐릭터 같기도 하고 도로공사 캐릭터를 닮은 듯도 하다. 맑은 날이었다면 푹 쉬면서 경치 구경 실컷 했으련만, 비바람때문에 얼른 정상을 물러났다. 정상을 넘어 서자 바람때문에 키를 땅바닥에 붙힌 관목숲이 나오고, 대간길은 아래로 급하게 떨어져 내린다.

중간중간 주목들이 관목숲 위로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야생화들도 이곳저곳 바람을 피해 저 마다의 맵시 자랑이 한창이다. 투구꽃, 금강초롱, 수리취, 고려엉겅퀴 등등...

아래로 급하게 떨어져 내리다가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고 비를 그을 수 있는 곳이 나오길래 점심을 먹기로 했다.(12:35)

 

 

 


# 키 낮은 관목숲 사이로 떨어져 내린다. 비는 계속 쏟아지고...

 

 

 

# 산수유 인가?

 

 

 

# 오늘 구간의 대세 투구꽃.

 

 

 

# 수리취.

 

 

 

# 까마중인가?

 

 

 

# 문어발처럼 다리를 벌리고 있는 주목.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어 초스피드로 점심식사 해결하고 출발했다. 아마 대간길 중 가장 빠른 식사 시간인 듯하다.(12:55) 출발.

다시 아래로 길고 가파르게 내려간다. 밥 먹는 동안 빗방울이 많이 가늘어져서 우의를 벗어 배낭에 집어 넣었다. 그러다 안부에 이르러 서서히 고도를 올리며 진행하다가 '갈림길'을 만났다.  아랫길은 망대암산을 우회하는 길이고 위쪽길이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위쪽으로 밀고 올라 가자 '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바위구절초가 군데군데 피어 있다. 정상은 조금 더 뒤로 가야 있다. 비좁은 바위로 된 '망대암산 정상'에 오른다.(13:18)

 

 

 


# 전망대에서의 실루엣.

  

 

 

# 망대암산 정상. 한계령에서 올라온 단체 산객들과 조우했다.

 

 

 

망대암산은 1236m 이다. 한자로 '望對岩'이라고 쓰길래 '만물상 바위를 바라보는 산', 혹은 '설악의 암봉을 바라보는 산' 쯤으로 짐작했더니, 그 옛날 주전골에서 불법 엽전을 만들던 위폐범들이 망을 보던 산이라 얻은 이름이란다.

어쨋든 기가 막힌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란 얘기를 듣고 왔지만 뵈는 거라곤 짙은 개스 뿐이다. 아쉽다!!!! 한참 바람 따라 휘날리는 연무 감상하고 있는데 ,아랫쪽에서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올라온다. 한계령에서 올라 온 이들이다. 대간꾼은 아니다.

망대암산 하산길은 암봉을 미끄러져 내려야 한다. 빗물 때문에 바위 표면이 미끄러워 위험하다. 마눌 입에서 어머~어머~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 바위구절초.

 

 

 

# 빗물 때문에 바위 표면이 아주 미끄럽다. 

 

 

 

끙끙대는 마눌 확보 봐 줘가며 바위 암봉을 내렸다. 암봉을 완전히 내려와서 무심코 능선을 따라 직진하니 작은 암봉 하나가 앞을 막고 아래쪽으로 내려 가는 소로길이 나온다. 표지기도 하나 달려 있다.

길 따라 조금 내려가는데, 어렵쇼? 갑자기 길이 사라져 버리네? 빠꾸다, 빠꾸! 위로 다시 올라가 좀전에 내려온 암봉 아래로 가니 암봉 아래로 휘감아 아래로 내려 가는 길이 보인다. 저쪽 능선으로 길도 없는 곳에 표지기를 매단 사람은 도대체 누구야?

암봉을 휘감아 아래로 내려갔다. 아주 가파르고 미끄러운 내리막이다. 미끄러지지 않게 스틱 팍팍 찍어 가며 조심조심 내려갔다. 길게 길게 아래로 내려 가는데 한계령에서 올라오는 단체 산행객들과 연이어 교행한다. 점봉까지 가는 사람들이다. 이 비 내리는 날 미끄럽고 위험한 이 산을 선택한 사람들이 또 있었다. 우리 더러 만물상 바위 구간 조심하라고 조언해 준다.

안부에서 잠시 위로 오르는 듯 하더니 다시 아래로 급격하게 떨어져 내린다. 이 구간은 온통 산죽밭의 연속이다. 길게 길게 아래로 내려 '십이담계곡 갈림길'에 이른다.(14:16)

 

 


# 미역취.

 

 

 

# 빗물을 매달고 있는 바위떡풀.  

 

 

 

# 남들은 단풍들어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제야 새순을 밀어 올리는 철 모르는 놈.

 

 

 

# 풀솜대 열매. 

  

 

 

# 까치밥나무 열매. 우리 고향에서는 찔레 열매를 까치밥이라고 부르는데... 

 

 

 

# 솜털 보송한 흰진범. 

 

 

 

# 하회탈처럼 생긴 버섯. 

 

 

 

# 어수리. 

 

 

 

# 안부 너머 잠시 물안개가 걷히고 만물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 카메라 꺼내는 순간 다시 개스 속에 갇혀 버린다.

 

 

 

# 십이담계곡 갈림길.

  

 

 

우측으로 내려 가는 십이담계곡 아래 주전골이 옛날 위폐를 만들던 곳이다. 이번 여름 한계령을 강타한 수해복구를 하는 과정에 주전골에서 상당량의 엽전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주전골이란 지명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란 것을 증명한 것이다.

직진하여 산죽밭 사이로 진행했다. 개스가 밀려들어 숲속이 컴컴해진다. 곧 비가 또 많이 쏟아질 듯한 분위기다. 간간이 내리는 비와 개스에 응축된 물방울들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진다. 만물상 지날 때까지만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다.

빽빽한 산죽밭을 헤치고 위로 올라 가자니 힘이 든다. 등로를 뒤덮은 산죽가지가 옷이며 배낭이며 마구 걸린다. 그나마 아까 올라간 산객들이 산죽잎에 달려 있던 물방울들을 다 털고 가서 아랫도리가 자유로운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산죽길을 끝없이 올라 990이 찍히는 봉우리를 오른 뒤, 좌측으로 마루금을 따라 진행했다. 잠시 편하게 가더니 전방의 봉우리로 밀어 올린다. (14:37)'UFO 형상을 한 바위가 있는 공터'가 나온다.

 

 


# 산죽밭을 길게 올라 간다. 

 

 

 

# UFO바위를 만났다.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바위에 걸터 앉아 잠시 한숨 돌린 후 우측으로 다시 올라 갔다.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헉헉! 낑낑! 힘이 많이 든다. 정상은 좀처럼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빗줄기가 또 굵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의 입지 않고 그냥 진행했다.

다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960을 세고 나서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1157.6봉'이다.(15:00). 정상 우측엔 전망대가 있지만 오늘은 무용지물이다. 좌틀해서 길게 마루금을 오르내려 '1155.9봉'에 닿았다.(15:20)

 

 


# 안내판이 잘못되었는지 훼손되고 펜으로 수정해 두었다. 

 

 

 

# 안내판에서 좌측으로 능선 따라 내려 가는 길이 있어 알바 주의 구간. 대간은 우측 위로!

 

 

 

1155.9봉은 지도상 길주의 구간이다. 정상 입구에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 가는 길이 나 있다. 그러나 대간길은 우측으로 올라 정상 너머로 내려가야 한다. 표지기 하나 매달아 뒷사람에게 알리고 출발했다.

정상 너머 본격적인 하산길이 시작된다. 암봉들이 이곳저곳 불쑥불쑥 솟아 있어 곧 다가올 만물상 암릉구간을 예고한다. 마눌, 각오 단단히 해라! 이곳이 대간길 암릉 중 제일 위험한 곳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파르게 아래로 내려 첫 번째 암봉을 만난다. 가느다란 밧줄 하나가 매달려 있니다. 바위 표면에 굴곡이 많은 편이라 쉬워보여서 마눌 더러 먼저 올라 가라고 했다.

그러나 반쯤 올라가더니 바위가 미끄러워 발 디딜 수가 없다며 아우성이다. 얼른 사진 한 방 찍고 따라 올라가 밀어 올렸다. 바위 틈에 자란 소나무에 로프를 매달아 두었는데, 표지기가 전혀 없다. 그리고 짙은 개스 때문에 2~3m 앞을 분간할 수 없어 바위를 넘어가야 할지 우측으로 돌아 내려야 할지 잠시 헷갈리게 만든다.

가만히 살피니 우측으로 발 디딘 흔적들이 있어 그 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 방향으론 밧줄도 없고 빗물 때문에 미끄러워 바위를 안고 내리기도 어렵다. 바위에 등을 대고 발을 아래로 뻗어 보는데 이번에 등에 진 배낭이 바위에 걸려 몸을 휘청이게 만든다. 아찔하였다.

에라 모르겠다, 아래쪽 나무를 겨냥하고 그냥 뛰어버렸다. 난 용케 내려왔지만 마눌이 걱정이다. "배낭 벗어서 던져라. 스틱도! 그리고 바위에 등을 대고 발을 뻗어라. 내가 손으로 받쳐주리다!"

 

 


# 거대한 암봉들이 다가올 만물상 암릉길을 예고한다. 

 

 

 

# 비에 젖어 아주 미끄럽다.

 

 

 

# 바위떡풀이 바위 표면 구석구석 많이도 피어 있다. 

 

 

 

# 첫 번째 암봉. 쉬워 보여 먼저 올려보냈는데, 

 

 

 

# 중턱에서 바둥대고 있다.

 

 

 

# 건너편 암봉. 바로 1~2m 앞에 있지만 개스탓에 희미하다.

 

 

 

# 빗물 때문에 바위 표면이 너무 미끄러워 배낭을 벗어 던지고 내렸다.

 

 

 

기암들이 연속으로 나타났다. 개스 탓에 그 전모를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래로 내렸다가 바위 구멍을 타고 오른다. 다시 내렸다가 두 번째, 세 번째 바위틈 속으로 올랐다가 아래로 내려간다. 어? 벌써 끝났나?  택도 없는 소리!

전방에 암봉이 다시 나타나고 갈림길이 나온다. 아랫쪽 길은 우회로인가 보다. 이 구간에 드물게 있는 표지기 몇 개가 위쪽으로 달려 있다.

삼단으로 올라 간다. 암릉 구간만 만나면 쩔쩔 매는 마눌 격려하고 밀어올려 낑낑 올라간다. 다시 바위 옆을 돌아 이번에는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전방에 암봉 하나가 우뚝 서 있다. 개스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더욱 위압적이다.

우측으로 우회로가 있지만 직진하여 암봉을 치고 올라갔다. 암봉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무시무시하다. 맑은 날이었다면 기가 막힌 절경이었을 위치이지만, 오늘은 짙은 개스 속에 언뜻언뜻 보이는 뾰족한 암봉들이 무섭게 다가온다.

 



# 바위 틈새로 낑낑 오른다.

 

 

 

# 암봉이 연이어 나타난다.

 

 

 

# 개스가 점점 짙어진다. 비는 꾸준히 내리고...

 

 

 

# 가시 거리가 2~3m를 넘지 않는다. 우뚝 선 모습이 위압적인 암봉.

 

 

 

# 평소엔 쉬웠을 곳도 오늘은 미끄럽고 조심스럽다.

 

 

 

# 암봉을 낑낑 오르고,

 

 

 

# 바위 틈새를 비집고 오른다.

 

 

 

# 배낭이며 옷 등이 진흙투성이가 된다.

 

 

 

# 애쓴다, 마눌!

 

 

 

# 등산학교에 보내줄까? 바위 좀 배워 오게.

 

 

 

# 암봉이 계속 이어진다. 대간길 중 제일 긴 것 같다.

 

 

 

암릉구간엔 표지기가 거의 없다. 게다가 개스가 너무 짙게 끼어 있어 방향 분간이 어렵다. 암봉에서 잠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헷갈렸다. 직진해서 암봉 아래로 내려 가는 길도 보이고, 잠시 내렸다가 바로 우측 위로 올라가는 길도 보인다.

암봉 사이로 내렸다가 다시 위로 올라 가 본다. 이 길이 맞다. 그러나 곧 무섭게 떨어져 내린다. 나무뿌리를 잡고 로프에 의지해 내려 갔다. 다시 암봉을 지나 아래로 급히 떨어져 내린다. 그러다 다시 좌측으로 가파르게 올라 간다. 이상하다, 원점회귀하는 기분이다!

그러나 표지기도 하나 없고 개스때문에 방향 분간이 어려우니 판단이 잘 되지 않는다. 일단 올라 가 보자! 낑낑 올라 가 보니 바람 쌩쌩 부는 안부가 나오고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을 알리는 시멘트 표지석이 서 있다.

안부에서 우측으로 돌아가는 길도 있고 아래로 내려 가는 길도 있다. 일단 아래로 내려 가니 얼라? 고사목을 통채로 기대어 사다리로 사용하는 곳이 나오네? 우측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나오는데 "등산로 아님"이라고 팻말을 달아 두었고, 위로 안부 쪽을 올려다 보니 그 방향으로도 "등산로 아님' 팻말이 달려 있다.

그렇다면 이 고사목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나? 지난주에 이곳을 통과한 대명님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았다. 전화가 이어졌다 끊어졌다 감도 불량이어서 정확한 안내는 못 받고, 단지 고사목 사다리는 두 개가 나오는데 모두 내려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까 그 암봉에서 우리는 우회로로 돌아 왔나보다. 암봉을 넘으면 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 와야하고...

 

 


# 이스트 섬에 있는 모아이 석상의 얼굴을 닮은 암봉.

 

 

 

# 군데 군데 설치되어 있는 밧줄이 너무나 부실하다.

 

 

 

# 비에 젖어 있어 미끄러지면 대형사고가 발생한다. 조심조심!!!

 

 

 

# 왜솜다리. 이 넘을 에델바이스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는 사람도 있고...

 

 

 

# 첫 번째 고사목 사다리. 이 넘은 우회해서 오는 바람에 내려서질 않았다.

 

 

 

자빠진 김에 쉬어 간다고 안부에 자리 깔고 간식 먹으며 한참을 휴식했다. 오늘 구간은 일단 거리는 짧으니 느긋하게 하자!  한참을 휴식하고 체력 회복한 후 다시 출발했다. 비가 참 끈질기게도 온다. 그래도 주룩주룩 쏟아지는 수준이 아니라 견딜만은 하다.

암봉을 휘감아 돌다가 다시 아래로 급하게 떨어져 내린다. 빗물에 젖은 바위와 경사면이 젖어 있고 신발에 진흙이 많아 아주 미끄럽다. 마눌에게 계속 조심할 것을 당부하며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오늘은 시간은 아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잠시 후 두 번째 고사목 사다리를 만났다. 첫 번째 사다리와는 달리 사람들이 얼마나 밟고 내려 갔는지 가지들이 전부 떨어져 나가고 너덜너덜 하다. 교체하든지 밧줄을 매달든지 대책이 필요할 듯하다.

두 번째 고사목 사다리를 지나자 이제 만물상 암릉 구간도 끝이 난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소문보다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대간길 중 가장 어려운 곳이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절기나 악천후 때 통과한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암봉이 비에 젖어 미끄러운 데다 짙은 개스 탓에 가시거리가 좁아 방향 구분이 어려웠다. 암릉 구간 하나하나 조심스레 통과하느라 시간 지체가 아주 심했다. 1155.9봉에서 필례령까지 지도에서는 1시간을 예상했는데, 우리는 무려 2시간 20분이나 걸렸다.

암릉 구간을 벗어나면 이제는 편하게 아래로 내려 가기만 하면 된다. 길게 구불구불 돌아돌아 고도를 낮춰 가다보니 군 벙커 몇 개가 나오고 아래쪽으로 필례령을 올라가는 차소리가 들린다.

짙은 안개 속에 필례령 도로, 철조망과 감시초소가 희미하게 보임다. 국공파 때문에 한참을 사주경계를 한 후 필례령으로 내려갔다. 초소 우측 철조망을 따라 길게 가다보면 철조망이 끝나고 도로에 올라설 수 있다. 초소 좌측 뒤 돌로 막아 둔 개구멍으로 나왔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곳으로 나올려면 정말 낮은 포복을 해야 한다.

 

 


# 두 번째 고사목 사다리.

 

 

 

# 이끼옷을 입은 고사목.

 

 

 

# 필례령 안개 속의 각시취.

 

 

 

이제부터는 도로 따라 한계령휴게소까지 올라가면 된다. 그런데 도로따라 올라가는 것도 조심스럽다. 개스가 얼마나 짙은지 바로 코 앞에 차가 나타날 때까지도 소리만 들릴 뿐 차를 발견할 수가 없다. 갓길에 바짝 붙어 올라가야 했다. 10여 분 후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해 오늘 구간을 마쳤다.(17:50)

만물상 암릉 구간에서 정말 지겹게도 시간 지체가 심했다. 그렇지만 안전하게 내려 왔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이다. 마눌 역시 자기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했던 한계령에 무사히 내려 선 것이 너무 좋은 가 보다.

 


# 수고했소, 마눌!

 

 

 

# 신발이며 바지가 뻘구덩이다.

 

 

 

# 한순간 바람이 강하게 불어 휴게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

 

 

 

무사히 한계령에 내려 서서 좋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우리 차를 인제 진동리 설피밭 삼거리에 세워 뒀기 때문에 양양 내려가서 택시 타고 비포장 조침령 넘어 설피밭까지 길게 올라 가든지, 필례 거쳐 현리로 가서 방동, 쇠나드리 거쳐 설피밭까지 가든지 해야 한다.

어느 방법이든지 대간길 차량 회수 중 가장 먼거리에 속한다. 일단 화장실 가서 옷이며 신발이며 범벅이 된 진흙이나 좀 씻자. 그동안 마눌이 한계령에 경치 구경 온 부부와 인사 나누더니 자동차 얻어타기를 성공한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얼른 달려 나와 차 얻어 타고 고개를 내려 갔다.

천안에서 오신 분들인데 속초에 집안 행사 때문에 왔다가 한계령 구경하러 오셨다고 한다. 짙은 개스 탓에 아무 것도 못 보고 대간꾼 태워주는 적선(積善)만 하셨다.

이분들 덕분에 한계령에서 내려오는 44번도로와 양양에서 구룡령으로 넘어가는 56번도로가 갈라지는 '논화리'까지 편안하게 잘 내려 왔다. 여기서 서림까지 다시 히치를 할까 생각하다가 어차피 조침령을 넘어 갈려면 다시 택시를 불러야 하니 양양택시에 전화를 했다.

5분 만에 달려온 양양택시 타고 56번 도로 달려 서림까지 갔다가 우측으로 현리 방향으로 꺾어 비포장 조침령을 구불구불 낑낑 올라 넘고 다시 쇠나드리에서 길게 올라가 설피밭 삼거리에 도착했다. 미터 요금으로 30,000원 나왔다. 차량 회수에 최고 10만원까지 각오했었는데 양호하게 왔다.

젖은 옷 모두 벗어 버리고 뽀송뽀송한 새옷 갈아 입고 한기 막기 위해 우모복까지 입으니 나른하고 기분 좋은 피로가 몰려든다. 마눌은 내도록 자신을 괴롭히던 부채 의식에서 벗어나 한계령에 내려 선 것이 너무나 기쁜 모양이다. "그래! 수고했소!"

한계령은 우리 더러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며 마눌을 아프게 하고 비 뿌려 방해했지만, 또 한편으론 잊으라 잊어 버리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그래! 슬픔도 아픔도 분노도 다 잊고 바람처럼 살다 갑시다!


산행 마치고 귀가해서 사진을 컴퓨터에 업로드하려고 카메라 전원을 켜는 순간, 삐익 소리가 나더니 메모리카드를 포멧하겠다는 메세지가 뜬다. 비 오는 와중에 무리하게 사진 촬영을 감행했더니 카메라가 비에 젖어 에러가 발생한 모양이다. 지난번 늘재구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올림푸스 본사에 메모리카드 A/S를 보냈더니 처음엔 하나도 못 살리겠다고 하더니 다행히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량의 사진을 되살려 보냈다. 만물상 암릉구간 사진이 많이 날라가서 아쉽기는 하지만, 어차피 비 오고 개스 짙어 깨끗한 사진은 기대하기 어려웠고 이나마도 복구한 것이 정말 다행이다. 사진이 부족해서 만물상 구간 자세한 표현이 못된 것이 아쉽지만...



*아래 배너를 클릭하면 강사랑물사랑의 다음 블로그 "하쿠나마타타"로 이동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