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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금북정맥]다섯번째(추정재~이티재)-聖地인가? 性地인가? 본문

1대간 9정맥/한남금북정맥 종주기

[한남금북정맥]다섯번째(추정재~이티재)-聖地인가? 性地인가?

강/사/랑 2008. 5. 7. 12:39

 [한남금북정맥]다섯번째(추정재~이티재)

 

 

'원균(元均)'은 이순신 장군의 대척점(對蹠點)에 서 있는 인물이다. 인류 해전사(海戰史)에 전무후무한 전승(全勝)의 명장이 이순신(李舜臣) 장군이라면, 우리나라 전쟁사 중 최악의 패전 중 하나인 칠천량(漆川梁) 해전의 패장이 원균이다.


임란 발발 당시 원균(元均)은 경상우수사(慶尙右水師)였다. 왜군이 들이닥치자 전선(戰船)을 침몰시킨후 육지로 도주하려 헸다. 그러다 수하의 건의에 따라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연합하여 옥포와 당포에서 승리하였다.


주장(主將)은 아니었지만 승리하였으니 논공행상(論功行賞)의 대상이기는 했다. 그 과정에서 공(功) 다툼을 벌이다 충청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로 전출되었다.


칠천량을 비롯한 여러 전투와 임란 당시 그의 여러 행적에서 무수한 비난을 받는 원균이지만, 충청병사로 부임해서는 한 가지 제대로 된 일을 수행했다. 그것은 청주(淸州)에 있는 '상당산성(上黨山城)'을 대대적으로 수리한 일이다.


청주는 왜군의 주요 북상로(北上路) 중 하나였다. 그곳에 있는 산성의 수리는 왜군의 북상 저지를 위해 시급히 이루어야 할 과업이었다. 그런데 이 상당산성의 수리 때문에 원균은 또다시 비난과 탄핵의 위기에 몰렸다.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원균은 청주뿐 아니라 충북 전역의 백성을 징발해 부역(負役)에 투입했는데, 잔폐(殘弊)한 고을이건 부성(富盛)한 고을이건 가리지 않고 각각 200∼300명을 내게 하여 부역을 독촉하였다. 그리하여 유민(流民)이 발생하고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였다.


그 때문에 조정에서 탄핵의 위기에 몰렸는데, 동인(東人)의 영수였던 유성룡(柳成龍)이 적극 옹호하여 처벌을 면하였다. 상당산성 개축 당시 원균은 토실(土室)을 만들어 움막생활을 하며 현지에서 직접 공사를 열성적으로 감독하였다. 유성룡은 그 성실성과 나라 위하는 마음을 높이 산 것이다.

 

상당산성에서 보인 원균의 행적은 그의 전 생애 중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공적(功積)이다. 역사의 죄인으로 비난받는 그였지만, 무장(武將)으로서 경력을 쌓아온 그의 눈에도 상당산성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과업이었던 것이다.


상당산성은 백제 상당현(上黨縣)에 세워진 산성이었다. 상당산성이라는 이름은 거기에 연유한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백제가 아닌 신라 김유신의 셋째 아들인 원정공(元貞公)이 서원경(西原京)의 술성(述城)을 쌓았다고 적혀 있다.


서원경(西原京)은 신라의 오소경(五小京)의 하나로 지금의 청주를 말한다. 신라 이름인 서원경이 아닌 백제 이름 상당으로 산성의 명칭이 정해진 것은 연유를 알 길이 없다. 아마도 백제 시대에 이미 토성이 쌓여 있었던 것을 나중에 원정공이 개축하지 않았나 싶다.


한편, 조선 후기 상당산성의 승장(僧將)인 영휴(靈休)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는 김유신 장군의 아들이 아닌 아버지 김서현(金舒玄)이 쌓았다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였건 아들이었건 김유신 일가(一家)가 상당산성을 쌓은 것은 사실인 듯하다.

 

지금은 그 이름이 '청주 상당산성'으로 변경되었다. 서원경이 청주로 이름이 바뀐 고려 태조 23년(940년) 이후 천백여 년만의 이름 변경이다.


상당산성은 청주에서 동쪽으로 7.5km거리에 위치한 해발 491.2m인 상당산(上黨山) 위에 있다. 둘레가 4.2km, 높이 3~4m, 면적 54,700평의 거대한 포곡식(包谷式) 석축산성이다. 포곡식 산성은 성곽 안에 계곡을 감싸고 축성한 것으로 계곡과 산세 지형을 이용 축성하여 규모가 크고 수원이 풍부하므로 오래 농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대규모 산성이다.


청주는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 고을이다. 삼국시대에는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쟁패지(爭覇地), 고려시대에는 거란의 침공이나 홍건적의 침입 당시 왕의 피난소,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의 주요 격전지, 영조 때 이인좌(李麟佐)가 난을 일으킨 점령지 등 역사적으로 그 중요성이 높았던 고장이다.


그런 주요 요충지(要衝地)로서 청주의 방위를 대비하기 위해 그 뒷산인 상당산에 산성을 쌓아 청주읍성에서 농성(籠城)이 불가능할 경우 읍성의 관민이 이곳에서 장기전을 치루던 군사적 요충이자 청주의 수호성으로 역할한 것이 바로 상당산성이다.


임란 때 원균의 개보수 이후 숙종 42년인 1716년에 대규모 개보수(改補修) 작업을 시작하여 3년 만에 완공하였고 개발 시대 이후에도 그 위치가 도시 외곽의 산 위에 있어 무분별한 난개발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그리하여 비교적 온전하게 원형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 역사성 높고 성제(城制)가 훌륭하여 사적 제212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지금은 후손들의 역사 교육장으로 혹은 청주시민들의 훌륭한 산책로나 운동코스로 애용되고 있다.  


강/사/랑의 한남금북정맥 다섯 번째 나들이는 낭성면 머구미고개에서 시작해서 구녀산이 있는 이티재까지다. 이 구간의 중간점엔 청주의 수호성인 상당산성이 있다. 역사적 가치 높은 곳이라 방문 이전부터 기대가 컸다. 그리하여 그 산성 속에서 하룻밤 보내며 역사의 향취를 느껴보자 하였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결코 기대하지 않았고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그곳에서 목격하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그것은 공공연한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였다.

산성고개에서 하루치 산행을 마친 후 나는 산성 주차장 공터에 헝겊집 한 채 세우고 야영하였다. 농구장 크기 만한 주차장은 불빛 적어 어두운데 구석구석 불꺼진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바람 없이 고요한 밤이었다. 그런데 그 차들은 바람 불지 않는데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주차장 전체가 끈끈한 공기에 뒤덮혔고 후끈하였다. 그리고 뒷날 그들이 떠난 주차장 바닥에는 더러운 오물이 그득했다.


백제에서 출발하여 통일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며 중원의 오랜 고을 청주의 수호성이었던 상당산성이 역사의 교육장이 아니라 이 지역사람들의 훌륭한 거시기(?) 장소로 더 많이 애용되고 있는 듯하였다. 이 고장 사람들은 이 훌륭한 역사의 장소이자 후손 교육의 장소를 애욕(愛慾)의 장소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오호통재(嗚乎痛哉)라! 목숨바쳐 이 산성을 쌓고 적들로부터 조국을 방어한 선조들의 눈 앞에서 이 무슨 망발이던고? 오호애재(嗚乎哀哉)라! 슬프고 안타깝도다!



聖地인가? 性地인가?


구간 : 한남금북정맥 제 5 구간(추정재~산성고개~이티재)
거리 : 구간거리(25.1 km), 누적거리(76.5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8년 5월 3,4일, 흙과 해의 날
세부내용 : 머구미고개(08:05) ~ 철망농가 ~ 갈림길 ~ 395봉 ~ 410봉(08:45) ~ 432봉 ~ 483봉(09:15) ~
372봉 ~ 임도고개 ~ 485봉 ~ 백족산분기봉 ~ 임도고개 ~ 선두산(11:10)/점심(11:55) ~ 돌탑고개 ~ 안건이 고개 ~ 441봉 ~ 535봉 ~ 선도산(13:07) ~ 530봉 ~ 500봉/묘지 ~ 442봉 ~ 수레너미고개(13:50) ~ 임도 ~ 은행장묘 ~ 옛성터 ~ 목련공원 ~ 403.6봉 ~ 아스팔트고개 ~ 것대산/활공장(15:20) ~ 상봉재 ~ 산성고개(15:55)/ 상당산성에서 야영.

산성고개(07:50) ~ 통신안테나 ~ T자형 갈림길 ~ 상당산성(08:12) ~ 미호문 ~ 성벽보수 공사장
 ~ 동암문/갈림길(08:55) ~ 430봉/갈림길(09:15) ~ 돌탑고개 ~ 벌목지/고개 ~ 477봉 ~ 475봉 ~ 475봉 ~ 500봉 전 갈림길 ~ 느티나무 있는 주차장 ~ 대형묘역 ~ 블록 벙커 ~헬기장/486.8봉(12:48) ~ 이티재(13:20)

총 소요시간 13시간 20분(1일차 7시간 50분, 2일차 5시간 30분).
 

이번 구간은 거리가 25.1km에 이르고, 처음 절반인 산성고개까지의 산세가 오르내림이 심해 하루에 마치기는 어렵다. 그래서 중간에서 1박하고 연속으로 하느냐, 아니면 두 번으로 나눠서 짧게 끊느냐로 고민했다. 그러나 쉽게 결론을 얻지 못해 결국 당일 배낭과 대형 배낭 두 개 모두 차에 싣고 집을 나섰다.

 

오늘도 역시 고속도로 세 개 갈아타고 문의나들목으로 나가 32번 국도 고은삼거리에서 우틀하여 지난번 내려왔던 추정재에 도착했다.



상당산성/上黨山城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山城洞)에 구축된 조선시대의 산성. 사적 제212호. 상당산성이 처음 축성된 것은 백제시대 때 토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상당산성이라는 이름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통일신라 때 행정구역인 서원소경이 청주에 설치되는데 이때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서현(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이후 조선시대 선조 29년 임진왜란 당시 개축되었다가 숙종 때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산성의 면적은 2.6ha, 성 둘레 4,400m이며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구축하고 그 안쪽은 토사로 쌓아올리는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축조하였으며 높이는 4.7m이다. 동·서·남방 3개소에 성문을 두었는데, 남문은 무사석(武砂石)으로 홍예문을 만들고 그 위에 목조 문루(門樓)를 세웠다. 지금은 석축 부분만 남아 있고, 성문의 높이는 3.5m, 너비는 4.2m이다. 동문과 서문도 역시 문루가 있었으며 성문은 무사석으로 네모지게 축조하였는데 높이 2.7m, 너비 2.8m이다. 동문과 남문 부근에 1개소씩의 암문(暗門)이 있고 동남방에 수구(水口)가 있었으나 지금은 여기에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장대(東將臺)와 서장대(西將臺)의 터가 남아 있다. 1996년 현재 이 성내에는 5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읍지(邑誌)에 따르면 이 산성은 1716년(숙종 42) 고지(古址)에 의거하여 석축으로 개수하였다고 하며, 남문 등의 성문·성벽에 당시의 공사관계자들의 이름과 관직명 등이 새겨져 있다. 남문의 문루는 1977년 복원되었다.

선두산/先頭山, 선도산/先到山

선두산은 낭성면 무성리, 지산리, 현암리 경계에 있는 해발 547.2m의 산이다. 옛날에 신선이 이곳에 와서 놀았다고 전해진다. 선두산은 가덕면 한계리와 청주시 월오동 사이에 걸쳐 있는 해발 572m의 산이다. 선도산과 선두산은 한자의 표기와 관계없이 '선돌산'의 변화형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선돌'은 우뚝 서 있는 바위를 뜻한다. 따라서 '선돌산'은 '선 돌이 있는 산'으로 해석된다. 선두산은 선도산의 변화형이고, '선도산'은 '선돌산'에서 치조음 'ㅅ'앞의 유음'ㄹ'이 탈락되면서 실현된 어형이다.

백족산/白足山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상야리에 있는 산. 높이는 413m 이다.조선조 세조대왕이 속리산을 행차하다 이곳을 지나게 되어 산 중턱에 있는 백족사 샘물에 발을 씻었는데 발이 희었으므로 이름을 백족산이라 했다 한다

머그미

묵정은 우물빛이 먹물처럼 검게 보였다는 전설이 있으며 머그미, 먹우물이라고도 한다. 장자불 위에는 장수굴이 있는데, 옛날 장수가 나온다는 전설이 있어 이를 막기 위해 중국 장수가 혈을 판 구덩이라고 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한남금북정맥 제 4구간 대안리고개~추정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추정재 주유소 뒷편 넓은 공터에 주차하고 산행준비를 했다.  일기예보에서는 오늘 청주지방 기온을 31도로 예상했다. 31도면 한여름 날씨다. 이제 겨우 오월의 시작인데 벌써 31도라니??


이런날 무거운 대형 배낭 메고 산행하다간 탈진하기 십상이다. 천천히 걸어 산성고개까지만 하고 자동차 회수한 후 상당산성에서 야영하고 나머지 구간은 내일 마저 하자! 대형 배낭에 넣어둔 짐들 중 꼭 필요한 것만 당일 배낭으로 옮겨 챙기고 '머그미고개'를 출발했다.(08:05)


머그미마을 농자재 창고 옆으로 해서 마을 안으로 들어갑니다. 잠시 길을 잃고 헤매지만 뒷산을 기준으로 올라갔다. '녹색 철망 담장을 한 깨끗한 농가' 뒤로 들머리가 열려 있다.





# 추정재 주유소 뒷편 공터에 주차하고 출발했다.

 

  

      

# 농자재창고 옆으로 들어갔다.

 

 


표지기 하나 달고 안전한 산행을 기원한 후 오름에 몸을 맡긴다. 시작은 순하게 경사를 높혀가는 형태이다.  그러나 요즘 계속 일 때문에 무리를 많이 했고, 잠도 많이 부족해 컨디션이 좋지 않은 터라 시작부터 힘이 부친다. 헉헉대며 오르막을 올랐다. 금세 땀이 젖어든다.

 

곧 '갈림길'이 나와 계곡길을 버리고 우측 능선길로 올라갔다. 서서히 경사가 급해지고 각오를 단단히 할 무렵 '395봉'은 정상을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산의 사면을 우회한다. 곧 안부능선에 오르고 좌틀하여 마루금을 따른다. 봉우리 3개를 연달아 넘는데 도레미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진다. 세 번째 봉우리가 '410봉'이다.(08:45)

 

발정기를 맞은 고라니가 쉰 목소리로 캑캑대며 이방인을 경계하고, 홀딱벗고는 아침부터 홀딱 벗어라고 재촉한다. 쬐끔 기다려라, 나중에 점심 먹고 홀딱 벗으마!! ^^*

 

곧 길게 내리며 올렸던 고도를 모두 까먹고 '옛고개'에 닿았다. 우측 아래에 골프장이 있다. 전국 곳곳의 정맥 산자락에 골프장이 난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좀 전과 마찬가지로 세 개의 봉우리를 다시 연달아 넘는데, 도와 레는 짧게, 미는 길고 완만하게 밀어 올린다.  미가 '432봉'이다.  잠시 내렸다 한차례 길게 밀어 올리면 오늘 구간의 첫 포스트인 '483.1봉'에 오른다.(09:15)

 

 

                          

# 이게 옻나무인가?

 

 

       

# 아님, 이 녀석이 옻나무인가? 옻나무와 개옻 혹은 참죽나무 등은 구별이 어렵다.

 

 

      

# 마루금에서 지난 구간의 정맥길을 돌아본다.

 

 

       

# 괴불나무. 인동과이다. 가을에 빨간 열매가 열리는데 식용으로 한다. 어린 잎과 꽃은 차로 달여 먹는다.

 

 

                          

# 하얀 자작나무가 있는 483.1봉

 

 

      

# 준,희님은 487봉이라 적어 두었다.

 

 

정상을 지나 좌측으로  내려간다. 묘지들이 연달아 나오는데 은방울꽃과 둥글레가 묘역을 완전히 덮었다. 사진 촬영하고 있는데 단체산행객들이 내려온다.

 

능선마루금을 따라 내려 가다가 우측숲으로 들어간다. 쭉쭉 뻗은 낙엽송군락을 길게 내려간다. '372봉'을 가볍게 넘고 내려서 '임도'를 지나 '납골묘'를 지나 '넓은 고개'에 내려섰다.(09:45)


전방의 절개지를 치고 오른 후 한차례 올라 '420봉'을 넘는다. 다시 약간 더 높은  봉우리를 하나 더 넘으면 곧 아래로 내리게 되고  '고개'를 지난다. 임도 따라 위로 순하게 오른다. 길게 올라 '485봉'을 오르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꺾어 내린다. 485봉은 '백족산 갈림봉'이다.

 

같은 높이의 봉우리를 하나 더 넘고 이번에는 길게 구불구불 내려간다. 봉우리를 하나 넘고 내리다 묘지가 나와 위에 서면 건너편에 산이 하나 우뚝하다. 선도산인가 했는데 지도 확인하니 전위봉이고 선두산은 그 뒤에 숨어 있다. 조금 더 내려 '넓은 고개'에 내려 선다.(10:45)


고개를 지나 한차례 빡세게 밀어올린다. 날이 무더워 힘이 많이 든다.  땀이 비오듯 떨어진다. (1:07) 전위봉에 오른다. 고도계에 525가 찍힌다. 그 각도 그대로 조금 더 올라 가면 '선두산'이 나온다.(11:10)



# 둥글레.

 

 

      

# 은방울꽃.

 

 

                         

# 쭉쭉 뻗은 낙엽송 군락지를 내려간다.

 

 

                         

# 곧 편안한 임도가 이어진다.

 

 

       

# 임도삼거리에 도착.

 



 

# 제비꽃을 희롱하는 예쁜 나비.

 

 

                         

#고개를 치고 오른다.

 

 

# 간만에 만난 조망.

 

 

# 선두산인가 했더니 전위봉이다.

 

 

# 자재가 쌓여 있는 넓은 고개.

 

 



# 선두산. 

 

 

선두산 정상은 잡목이 무성하여 아무 조망도 없고 잡목에 밀려 한 쪽에 있는 삼각점이 외롭다. 정상을 나와 숲 그늘 아래에서 짐 풀고 마음에 점 하나 찍었다.

 

점심 후 매트 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 보니 어느새 신록이 점점 그 색을 짙게 물들이고 있다. 연초록에서 짙은 초록으로 변해가는 신록들을 올려다 보노라니 졸음이 살살 밀려 온다. 한잠 늘어지게 잤으면 좋으련만 갈길 먼 종맥종주꾼에게 그런 일은 사치일 뿐이다.  11:55 出發 


올라온 만큼 길게 내려가노라면 '돌탑이 있는 고개'를 만난다. 다시 작게 두어 번 오르내리게 된다. 그래도 힘들다! 옛고개를 만나 좌측으로 진행하면 곧 다시 고개를 만난다.  '안건이고개'다. (12:22)


햇살 강렬한 고개를 지나 한차례  찐하게 밀어 올린다. 역시나 힘들때 마다 하는 숫자세기를 한다. 630을 세고서야 봉우리 정상에 오른다. '441봉'이다.(12:34)

 

정상엔 갈림길이 있고 정맥은 우측길로 간다. 계단식으로 두 번을 올리면 희미한 옛고개를 지나고, 다시 한차례 찐하게 올리면 갈림길이 있는 '535봉'에 오른다. 역시 우측길로 진행해서 하늘금을 따라 진행하다 한차례 밀어 올리면 '선도산(先到山)'에 도착한다.(13:07)

 

      

# 숲속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 본다. 아~ 졸려...

 

 

# 돌탑있는 고개.

 


# 안건이 고개.

  


 

# 노린재나무. 가을에 단푼 든 잎을 태우면 노란색 재라 남는다 하여 노린재나무라 불렀다. 가을에 파란 열매가 달린다. 한방에서는 화산반과(華山礬果)라 하여 말린 가루를 진무른 창(瘡)에 약용한다.

 

 

# 선도산.

 

 

선도산 정상엔 작은 정상석과 통신시설물이 서 있다. 노출된 정상에 뙤약볕이 너무 강렬해 금방 지나친다. 우측으로 내려가다보면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역시 우측길로 가면 곧바로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530봉')가 다시 나오고 이곳에선 좌측길로 내려간다.  


길고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능선길을 버리고 우측 아래로 떨어진다. 길게 내려가다가 '442봉'을 만나는데, 다행히 좌측으로 우회하게 된다. 길게 내려가면 산을 벗어나 마을에 내려서게 되고, 백곰님  산행기에 나오는 양모씨 댁 마루에 그 산행기에 처럼 할머니가 앉아 계신다. 


마루에 앉아 책을 읽고 계시던 할머니가 뭐라뭐라 그러시는데 잘 안들려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바로 아래에 포장도로가 지나고 있다. '현암삼거리'이다.(13:50)

 

 

      

# 큰애기나리. 백합과이다. 우리나라 전역의 숲속 반그늘에서 잘 자란다. 어린잎은 식용으로 쓴다.

 

 

# 양씨댁 할머니가 마루에서 책을 읽고 계신다.

 

 

# 현암삼거리. 전방 고개가 수레너미고개.

 

 

잠시 도로를 따르다 길가에 있는 묵밥집에 들러 식수를 얻었다. 아침에 식수를 충분히 챙겼는데 날이 너무 무더워 물소비가 많았다.

 

공원묘지로 가는 '현암삼거리'를 지나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수레너미고개'를 올라 가면, 도로 좌측 화단 너머로 표지기들이 들어 오라고 손짓한다. 이 수레너미고개를 오르는 동안 만나는 길 건너 송전탑이 있는 작은 봉우리가 원정맥길이다. 하지만 곧 바로 고개로 복귀할 일, 굳이 그 특징없는 숲을 치고 오를 일은 없다.

 

화단을 지나 숲으로 올라가면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고, 헤치고 나가면 곧 임도를 만난다. 결국 고개를 조금 넘어 임도따라 오르는 것이 더 편하다는 얘기다. 임도 바로 위에 넓은 묘역이 나오는데 은행장 모씨의 묘이다.(14:14)


묘를 지나 한바탕 진하게 밀어 올인다. 갑자기 경사가 가팔라진 정상부는 허물어진 '옛 성터'다.  마루금에 올라 서는데 표지기가 전혀 없다. 한참을 좌우로 헤매다 방향을 찾았다. 우측길이다. 그길로 조금 가다가 좌측으로 급격하게 떨어져 내린다. 그러다 곧 엄청난 규모의 '공원묘지' 상단에 올라 서게 된다. 

   

뙤약볕이 강렬한 공원묘지 상단을 걷다가 '고개'에서 숲으로 들어 간다. 무수히 많은 일반 묘역들을 지나 한차례 밀어 올려 '403.6봉'을 넘고 아래로 내리자 '아스팔트 고개'가 나온다. 고개를 건너 절개지를 치고 오른다. 아주 무더운 날씨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 기진맥진해진다.


지쳐서인지 산 하나를 오르는 것이 너무 힘이 든다. 게다가 이 산은 정상을 한번에 보여주지 않고 계단식으로 3단을 찐하게 밀어 올려야 한다. (15:20). 것대산에 오른다. 

 

  

      

# 수레너미고개 좌측 화단 너머로 오른다.

 

 

# 은행장 묘 위에서 돌아본 모습. 건너편 송전탑이 있는 봉우리가 원정맥길이다.

 

 

# 엄청난 규모의 목련공원묘지.

 


# 공원묘지 상단을 걷다 숲으로 들어가 좌측 산 정상을 넘어야 한다.

 

 

# 가침박달. 찔레꽃을 닮았다. 같은 장미과이기 때문이다. 은은한 향이 좋다. 지리산 종주할 때 주능선에서 잘생긴 가침박달 나무를 본 적이 있다.

 

 

# 아스팔트 고개를 만나 그늘아래에서  한참을 쉬었다.

 

 

# 것대산 활공장.

 

 

정상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다. 주말을 맞아 많은 글라이더들이 비행을 즐기러 나왔다. 그런데 이 사람들 즐길줄만 알지 올바로 즐길줄은 모른다.

 

정자 안에선 왁자지끌 웃음소리가 낭자하고 이곳저곳 담배를 피워 문 사람들이 많다. 이 정상에서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커다란 마대 푸대에 술병이 한가득이다. 음주 비행은 자살행위일텐데... 

 

 

      

# 바람을 한껏 안고 하늘로 날아 오른다.

 

 

# 음.... 저 넘을 타고 하산하면 한 방에 내려 갈 수 있겠다.

 

 

# 날고, 찍고...

 

 

# 멋지다.

 

 

# 하산용으로 그만일것 같다.

 

 

# 산에서 담배 피지 말고 ,음주 비행은 정말 안돼요!!

 

 

글라이더들의 비행 모습을 한참이나 구경하다 정맥꾼은 다시 두 발로 길을 나선다. 정상을 지나 무심코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뭔가 이상하다. 주변 지형 확인하니 도로가 아니고 좌측 능선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그래야 봉화대도 구경할 수 있다.

 

그래도 금방 그 능선길과 만나게 되어 있다. 삼봉재에서 다시 정맥길과 합류하고 작게 오르내리다가 길게 진행하면 산성고개에 내려서게 된다.(15:55)

  

 

# 건너편 산 정상부를 휘감는 상당산성이 보인다.

 

 

# 삼봉재.

 

 

# 편하게 내려가다가,

 

 

# 산성고개 구름다리를 만난다.

 

 

그냥 계속 산길을 이어가자면 이 구름다리를 건너야 하겠지만, 무더운 날씨에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오늘은 그만 하기로 했다. 산성고개는 좁고 경사가 급해 차 얻어타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고개 우측으로 도로 따라 내려갔다. 상당산성 갈림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봉고차 한 대가 서더니 타라고 한다.

 

산성 안에 있는 기념품상에 상품을 제공하는 사람이란다. 이 젊은 분 덕분에 낭성면까지 편하게 갔다. 낭성면에서 추정재까지는 빤히 바라다 보이지만 걷기에는 너무 먼 거리이다. 마침 택시 한 대가 지나길래 탔는데 가까운 거리이고 지나던 길이라고 돈을 받지 않는다. 대신 트렁크에 있는 물건을 조수석으로 옮겨주는 일로 차비를 대신했다.

 

머구미고개 주유소 매점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바 하나부터 사먹고, 주유소 뒷편에 세워둔 차 회수해서 다시 산성고개를 넘어 청주시로 들어 갔다. 청주에서 목욕탕에 들러 하루종일 땀에 절은 몸을 씻고 새옷으로 갈아 입었다. 산성고개로 돌아 오는 길에 길가에 기사식당이 있어 들렀는데 이 집 완전 대박이다. 저렴한 가격에 반찬은 가지수는 푸짐하고 맛도 일품이다. 후식으로 누룽지탕이나 국수를 마음껏 먹을 수도 있다.

 

편의점에 들러 내일 먹을 점심으로 막걸리 한 통과 간편식 몇 개를 준비하고 다시 차를 돌려 상당산성으로 올라갔다. 이미 땅거미가 내려 캄캄한 산성에서 야영할 곳을 찾다가 저수지 아래 넓고 한적한 운동장을 발견하고 그리로 들어갔다. 캄캄한 운동장 안엔 승용차 몇 대가 서 있어 한 쪽의 한적한 곳에 주차하고 얼른 집 한 채 세워 잠자리를 준비했다.

 

잠자리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 그냥 지나쳤는데, 야영 준비마치고 자세히 보니 운동장에 서 있는 차들이 좀 이상하다. 대여섯 대의 자동차가 서로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 캄캄한 구석에 주차되어 있고 그 중 몇 대는 아래 위로 흔들리기도 한다.

 

가만 보니 차안 공기가 흐리고 끈끈한 열기 가득하다. 시방 저 자동차들 속에는 뼈와 살이 타는 남녀상렬지사(男女相悅之詞)가 한창이다. 저 넘의 인간들이 선조들의 호국성지(護國聖地)를 불륜성지(不倫性地)로 만들고 있구만!! 괘씸타!! 이 산성을 축성하고자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눈물을 흘렸으며 이 산성을 수호하고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바쳤겠는가? 그 엄숙한 곳에서 짝짓기라니?


헤드랜턴 밝히고 가까이 가서 쌩쑈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 하다가 점잖은 체면에 그냥 참기로 했다. 그나저나 오늘 잠자리 영 뒤숭숭하겠구만!!

 

차 한잔 꿇여 먹는다고 버너 불 피우고 랜턴 불빛 번쩍였더니 인기척을 느꼈는지 한 대 두 대 차례로 시동걸더니 자리를 뜬다. 그 와중에도 한 대는 끝장을 보려는지 한참을 버티더니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시동 걸고 주차장을 떠난다. 어허, 거 참!!!

 

점잖치 못한 분위기 때문에 뒤숭숭하여 쉬 잠들지 못했다. 게다가 간간이 차들이 지나다녀 자다깨다를 반복했다. 새벽에 비로소 잠이 좀 깊이 들었는데 부지런한 새들 때문에 일찍 눈을 떠야만 했다. 다섯 시 반에 기상해서 텐트 걷고 아침 준비를 했다.


아침 끓여 먹고 주변 정리 한 후 운동삼아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그런데, 이곳이 이 지역 사람들의 거시기 장소로 얼마나 애용되는지 주변이 온통 고무풍선 천지다. 사용했으면 잘 싸서 가져 가야지 버리기는 왜 버리냐? 밤새 잠자리가 뒤숭숭한 이유가 다 있었구만! 수정되지 못하고 고무풍선에 담겨 버려진 억울한 원혼이 수 억일테니 잠자리가 편할 리가 있나?

 

 

# 저수지 아래 넓은 운동장 한 쪽에서 야영 했다.

 

 

# 아침에 눈 떠보니 주변이 온통 이것들 천지였다. 더럽고 한심하였다.

 

 

산성 입구의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그곳 화장실에서 화장 마치고 산성고개로 이동했다. 산성고개 우측 공터에 주차하고 산행준비를 하는데, 이 공터 바닥에도 온통 버려진 고무풍선 천지다. 이 동네 사람들 도대체 왜 이러냐? 청주가 원래 교육도시이고 점잖은 고장으로 유명한데? 세월 흘러 풍속이 변하였나? 

 

      

# 산성고개 우측 공터에 주차하고 산행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곳 공터에도 온통 거시기 흔적으로 난잡하다.

 

 

(07:50). 가볍게 몸 풀고 산행을 시작했다. 절개지를 올라 마루금에 서고 넓은 등로를 따라 편하게 올라 갔다. 잠시 후 '통신 안테나'가 있는 봉우리를 넘자 봉우리 하나가 더 나타난다.


봉우리에 올라서면 T자형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우 모두에 표지기가 매달려 있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상당산성'의 성벽과 만나게 된다.  산성 위에는 지역 주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 복 받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멋진 산책로를 가졌으니...


암문을 통해 들어가 성벽 위에 올라섰다. 청주대 쪽으로 조망이 트였는데, 날씨가 흐려서 명쾌한 조망은 아니지만 평소 한남금북의 조망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도 감지덕지다.

  

 

# 등로가 넓어 편안하게 하루 분량의 산행을 시작한다.

 

 

#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갔다.

 

 

# 잠시후 상당산성을 만나 암문을 통해 들어 갔다.

 

 

# 청주쪽 조망. 우측 아래에 청주대가 있다.

 

 

# 산책 나온 주민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상당산성은 유지보수가 잘 되고 있는 성이다. 이 지역 주민들에겐 최고의 선물이다. 길게 성을 따라 진행했다. 아침 일찍 산책나온 주민들을 계속 만나고 성밖으로 통하는 갈림길도 지난다. TV에도 여러 번 출연한 아이스크림 장수가 나와 있지만, 아직 그걸 사 먹을 정도는 아니다. 

 

서문 성루를 지나 잠시 가면 성벽보수 공사를 하는 곳이 나와 길을 통제하고 있다. 때문에 성벽 우측 산길로 올라 가야 한다. 잠시 후 다시 성벽으로 나와 봉우리 두 개를 넘으며 동암문을 계속 찾았다. 그러다 두 번째 봉우리에서  좌측 숲쪽을 보니 갈림길이 있고 '숲속의 둥지'란 팻말이 박혀 있다.(08:55)

 

 

# 성벽을 따라 길게 진행했다. 

 

 

# 성 아래로 등산로가 이어지고 있다.

 

 

# 청주 시내 조망. 흐려서 희미하게 보인다.

 

 

# 서문 성루를 지난다.

 

 

# 허물어진 성벽 보수공사를 하는 곳이 중간중간 나타난다. 임진왜란 당시 원균은 이곳 상당산성 보수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청주민 뿐 아니라 충청 전역에서 부역을 동원해 원성이 자자하였다. 하지만 전시에 방어를 위한 성벽의 보수는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었다. 그 자신 이곳에 움막을 짓고 축성 공사를 현장 지휘했다. 원균 생애 최고의 열정이었다.

 

 

# 정맥길은 숲길과 성벽을 오가며 진행한다.

 

 

# 가야 할 정맥 줄기.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음.)

 

 

# 성벽 좌측 아래로 갈림길이 보인다.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그럼 이곳이 동암문이란 얘긴데 주변을 둘러 보지만 암문은 보이질 않는다. 할 수 없어 성벽을 타고 조심조심 내려갔다. 갈림길을 보니 이곳이 정맥길은 맞다. 성벽을 따라 길이 이어지는 걸로 봐서 암문은 좀더 진행해야 나타나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성벽과 이별하고 갈림길을 따라 내려 갔다. 숲속의 둥지란 음식점이 정맥길과 같은 방향에 있나 보다. 

 

갈림길에서 숲속으로 내려갔다. 길고 완만하게 진행한다. 큰 고도차 없이 편안한 길이기는 한데 바람이 전혀 없고 습도가 높은  무더운 날씨라 금세 온몸이 땀에 흠뻑 젖는다.

 

봉우리 하나를 오르자 T자형 갈림길이 나오고 '491봉'이란 팻말이 매달려 있다. 봉우리처럼 생기지도 않은데??? (09:15). 우측 방향으로 '등산로, 숲속의 둥지'란 팻말이 박혀 있다. 아마도 지도상 '430봉'전인가 보다. 그런데 고도계는 490을 가리키네?? 


우틀하여 내려가면 바로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이번에는 좌틀하여 내려간다. 곧 돌탑이 있는 고개에 내려섰다. 아랫 마을이 탑산리인데, 그 고개에 돌탑이 있다.

 

       

# 동암문에서 성벽 아래로 내려 이 갈림길로 와야 한다.

 

  

# 능선길에 491봉이란 팻말이 매달려 있고 갈림길이 있다.

  

  

# 돌탑이 있는 고개.

 

 

잠깐 올라 봉우리 하나를 넘고 완만하게 진행하다 보면 다시 고개를 하나 지나고 우측으로 벌목지가 나오는데, 그 아래는 큰 농장이다. 한차례 밀어 올려 봉우리에 오르고 바로 우틀하여 내려간다. 잠시 내렸다 봉우리 하나를 넘고 바로 길게 밀어 올리면 '477봉'이다.(10:13)

 

고도계는 540이 찍힌다. 어제 셋팅을 해 뒀는데 오차가 60여m나 발생했다. 어제와 기압이 그만큼 변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좀 전의 갈림길이 있던 봉우리는 지도에 나오는 430봉이 맞다.

 

고도를 서서히 낮추며 오르내리다 '옛고개'를 지나고 한 차례 올라 '475봉'을 오른다. 정상엔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좌측길로 내려 편안하게 진행하다가 다시 옛고개가 있는 잘록이를 지나 숫자세기를 하며 봉우리 하나를 오른다. 숫자 430개를 세고 정상에 오르면 삼각점이 있는 두 번째 '475봉'에 도착한다.(10:58)

 

 

# 벌목지를 지나고,

 

 

# 인간세도 잠깐 구경한다.

 

 

# 소나무가 있는 첫 번째 475봉.

 

 

# 삼각점이 있는 두 번째 475봉.

 

 

땀을 너무 많이 흘려 지친다. 그래서 이곳에서 때이른 점심을 먹었다. 어제 저녁 청주 편의점에서 산 막걸리가 아직까지 차갑게 보관되어 있다. 막걸리 살 때 쭈쭈바 몇개를 사서 같이 넣어둔 덕분이다. 옛날 낚시꾼 시절, 낚시 끝내고 잡은 물고기를 집에 가져 올때 사용하던 방법이다. 

 

무더운 여름날 잡은 고기를 현장에서 정리해서 집에 그냥 가져오면 대부분 무더운 날씨 탓에 상하기 일쑤다. 그럴 때 쭈쭈바를 몇 개 사서 잘 다룬 물고기와 같이 넣어 오면 싱싱하게 보관해 올 수 있다.  이때 녹은 쭈쭈바는 다시 냉동실에 넣어 두면 맛있는 얼음과자로 되돌아 간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방법이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 과 김밥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출발했다.(11:30). 완만하게 진행하다가 한차례 올리는가 싶더니, 좌측으로 산의 사면을 우회한다. '500봉전 갈림길'이다. 능선 마루금에 합류하고 다시 길게 내린 후 평탄하게 가다가 한차례 올려 '430봉'을 넘었다.

 

이후 급격하게 경사가 급해지며 떨어져 내리더니 급기야 고도를 모두 까먹고는 '엄청나게 큰 느티나무가 있는 고개'에 내려서게 된다.(12:19 ). 이 고개는 미원면 대신리에서 내수읍 저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고개 뒤엔 큰 느티나무가 있고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다.

 

느티나무가 어찌나 큰지 어른 대여섯 명이 팔을 펼쳐도 다 안기 어렵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뒷면은 구멍이 뻥 뚫려 있다. 구멍 역시 굉장히 커서 어른 몇 명이 들어서도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그 뻥뚫린 구멍에 어떤 몰상식한 인간이 불을 질렀는지 검게 그을려 있다. 보호수로 지정해서 한시바삐 치료와 관리가 필요해 보였다.

 

느티나무 어루만져 위로하고 오름에 오르는데 호화롭게 가꿔진 대형 납골묘가 나타나고, 묘 아래 그늘에 후손들이 문중 제사라도 지냈는지 남녀노소 일가친척 수십 명이 모여 지지고 굽고 맛난 점심식사가 한창이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시커멓게 완전무장한 산꾼이 신기한지 백여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나를 향해 집중된다. 아주머니 몇 분이 날더러 식사 같이 하자고 초청하지만, 좀 전에 식사를 했는지라 정중히 거절하고 오름에 몸을 맡겼다.

 

한차례 올려 '395봉'을 오르면 우측으로 꺾어 잠시 내렸다 곧 치고 오르게 된다. 헉헉대며 계단식으로 3단을 밀어올리면 블록으로 만든 벙커가 있는 봉우리가 나타납니다.(12:48).


 

# 쭈쭈바 덕분에 막걸리가 아직 차갑다.

 

  

# 족도리풀. 쥐방울덩굴과이다. 산지의 나무그늘에서 자란다. 홍자색의 꽃이 족도리를 닮았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세신(細辛)이라 하여 두통과 소화불량 등에 사용한다.

 

 

# 500봉은 좌측으로 우회한다.

 

 

# 물참대.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 낙엽관목이다. 범의귀과이다. 다섯 개의 하얀 꽃잎과 길게 자란 10개의 수술이 특징이다. 꽃향기가 좋고 꿀이 많아 밀원(蜜源)으로 좋다.

 

 

# 주차장이 있는 고개가 나타난다.

 

 

 

# 엄청난 크기의 느티나무.

 

 

# 그러나 뒷면은 구멍이 뻥 뚫려 있다.

 

 

# 잘 가꿔진 납골묘를 지나 395봉을 오른다.

 

 

# 벙커가 있는 486.8봉 전위봉.

 

 

안부에서 990 걸음이 걸렸다. 이 봉을 486.8봉으로 착각하고 벙커 위에 올라섰다. 바람이 너무 좋아 홀라당 벗고 거풍(擧風)을 하며 천지기운을 받아 들였다. 흐흐읍~~ 흐흐읍~~ 흐흐읍~~!!!

 

한참 쉬다가 다시 출발했다. 잠시 가다가 조금 올리자 '헬기장'이 나오고 뒤에 삼각점이 있는 정상이 나온다. 이곳이 '486.8봉'이다. 결국 안부에서 1,000걸음이 훨씬 넘은 셈이다. 


잠시 내렸다가 봉우리 하나를 더 넘고, 이제부터는 정말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길게 구불구불 내려가다가 '갈림길'을 만나는데 표지기가 전혀 없다. 지도 확인하고 '좌측길'에 표지기 하나 매달아 뒷사람들에게 알리고 내려갔다. 이후 갈림길이 계속 나타나지만 표지기를 따르면 문제 없다. 그러다 드디어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이티재'에 내려서게  된다.(13:20)

 

 

# 이 조망이 내수쪽이었는지 미원쪽이었는지 기억이 없다.

 

 

# 486.8봉.

 

  

# 휴게소가 있는 이티재.

 

 

이티재는 내수읍 초정리와 이원면 대신리를 잇는  511번 지방도가 지나는 길이다.  고개 정상에 주유소와 휴게소가 있다. '이티재'란 이름이 정말 특이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다녀갔나? 이정표에 영문으로 'ET JAE'라고 적어 두었다.

 

영화 ET는 그 이전까지 외계인은 지구를 공격하기 위해 온 존재라는 냉전적 사고를 깨뜨린 최초의 영화이다. 지구에 온 식물학자 외계인, 어린이들과 친구가 되는 외계인이란 새로운 컨셉은 당시로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 고개의 이름인 이티는 한자로 '梨峙'나 혹은 '李峙'로 배나무나 오얏나무가 많아 얻은 이름일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이틀간의 산행을 마치고 차회수해서 귀가해야 하는 일만 남았다. 휴게소에서 아이스바 하나 사먹으며 대중교통을 물으니, 버스가 있긴 한데 하루에 두어 번 밖에 없다 한다. 한참을 휴게소 건너 고개 위에서 히치를 시도하다 겨우 차 하나를 얻어 타지만 가는 곳이 서로 맞지 않아 고개 바로 아래 대신리 삼거리 갈림길까지만 차를얻어 타고 내려갔다.

 

삼거리에서 도로따라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마침 오래된 승용차 한 대가 나타난다. 얼른 손 들고 차를 세우니 마침 상당산성으로 산행 가는 부부이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이 분들 덕분에 산성 입구까지 한 방에 도착하고 잠시 걸어 고개를 올라 산성고개에 세워둔 차를 회수했다.

 

어제 오늘, 이틀 동안 네 번의 히치를 통해 교통비를 하나도 들이지 않고 차를 회수했다. 감사한 일이다. 세상은 이런 작은 호의들이 쌓여 큰 강물을 이루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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