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한남금북정맥]여섯번째(이티재~행치고개)-길이 아닐땐 원점으로 돌아가라! 본문

1대간 9정맥/한남금북정맥 종주기

[한남금북정맥]여섯번째(이티재~행치고개)-길이 아닐땐 원점으로 돌아가라!

강/사/랑 2008. 5. 12. 23:59
 [한남금북정맥]여섯번째(이티재~행치고개)


백두대간이나 9정맥 종주는 산의 마루금을 따라 산맥(山脈)을 이어나가는 산행 방식이다. 마루금은 산맥의 흐름에 따라 휘어지거나 오르내리고 산의 형태에 따라 다기망양(多岐亡羊)으로 갈라진다. 이런 마루금 산행을 하다보면 간혹 길을 잃고 엉뚱한 곳을 헤맬 때가 많다. 이를 우리 산꾼들은 '알바'라고 표현한다.

알바는 아르바이트의 속어다. 젊은이들 용돈벌이에 사용되는 알바가 산꾼들의 용어가 된 것이다. 누가 어떤 의도로 제일 먼저 사용했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냥 산꾼들 사이에 구전(口傳)으로 전해왔고 산꾼 사이에 일상적 용어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꽤 심각하게 관련 자료를 찾아 봤지만 그 시작점을 찾을 길은 없다. 다만 짐작컨데 전업인 올바른 산길을 가지 않고, 부업하듯 엉뚱한 길을 헤맨다는 뜻에서 '알바'라고 표현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이 말이 의미 전달이 정확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헛질'이란 순우리말로 표현하는 이들도 간혹 있긴 하다. 알바이든 헛질이든 하루에 10여 시간씩 산길을 걷는 우리같은 종주 산꾼들에게 길을 잃고 엉뚱한 곳을 헤맨다는 건 시간상, 체력상으로 맥빠지는 일이거니와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종주 산꾼에게 알바는 일종의 숙명이다. 종주꾼이라면 대부분 한두 번씩 이상은 경험하는 흔한 일이다. 알바는 대부분 오르막 보다는 내리막에서 많이 발생한다. 따라서 빨리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 전혀 엉뚱한 산자락에 내려 서기 일쑤다. 또 백두대간보다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고 개발이 많이 되어 지형이 변해버린 정맥에서 많이 경험하게 된다.

알바를 한 경우 가장 최선의 해결책은 길을 잘못 든 시작점(始作點)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흔히 애매한 갈림길에서 알바의 원인이 존재하므로 원점으로 돌아가서 알바의 원인을 분석하고 정확한 길을 찾아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내리막을 한참 내려선 후 알바임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다시 오르막을 치고 올라가 원위치 한다는 게 싫어서 그냥 계속 가거나,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잘못된 것 같긴 하지만 계속 가다보면 이 길이 혹시 맞거나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 싶어 계속 고집을 피우고 가는 경우가 많다.

고집은 늘 부작용을 낳는다. 알바의 데미지는 체력과 정신에 깊고 강렬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언제나 알바의 후유증은 원위치 하는 것보다 더 힘들고 고생스럽다.


나 역시 알바를 한 경우 원위치 하기보다는 그냥 고집스레 잘못된 길을 계속 가는 편이다. 따라서 내 산맥 종주의 기록에도 알바는 큰 상처의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러한 종주 산꾼들의 알바라는 행위는 항상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에서 발생한다는 점과,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고집을 피우고 계속 가기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해결된다는 점에서 우리네 인생이나 정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 북악산 자락 푸른 기왓집에 계신 분이 쇠고기 협상, 한미 FTA, 물가, 당내 친박팀과의 갈등, 각종 인사문제 등으로 아주 곤혹스러워 하는 것 같다. 이것저것 방향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것이 영락없는 '알바'의 모습이다. 우리네 알바가 대부분 내리막길에서 발생하는 것과는 달리 시작하자마자 알바를 하고 있는 것이 좀 다르기는 하다만...

그런데 알바의 해결책이 우리 산꾼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을 그대로 답습(踏襲)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고 느껴지면 처음 시작했던 지점으로 돌아가서 어느 선택이 잘못되었는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어느 곳인지 정확히 따져보면 의외로 쉽게 해결책이 나올텐데, 이왕 선택한 길이니 이 길이 맞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 길로 가다보면 뭔가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다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여 답답한 마음이다.

흔히 길을 잃는 대부분의 원인은 원칙(原則)보다는 수단(手段)에 집착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정수(正手)보다는 꼼수에 현혹되어 발생하는 수가 많은 법이다.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자파 세력의 확장 기회로만 삼으려고 하다 보니 친박 인사들을 공천에서 배제했고 이것이 총선에서 친박연대라는 희한한 세력의 등장과 득세를 가져왔고,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처지에 한미 FTA를 위해 쇠고기 시장의 개방은 불가피하고 따라서 한우 농가를 위한 대책은 이러하고 안전한 쇠고기의 수입을 위해 검역은 이렇게 하겠다는 대안(代案)을 정확히 국민들에게 알리기 보다는 미국 방문에 앞서 서둘러 대충 발표만 하고 넘어 가려다 보니 반미 인사들의 손에 촛불로 만든 칼을 쥐어준 셈이 되고 말았다.

또 재산 형성 과정이 어떻든 도덕성이 어떻든 능력 좋고 일만 잘하면 된다는 어설픈 실용(實用) 논리로 문제투성이의 인사들을 내각이나 비서진에 포진시켜서 결국은 국민들의 신뢰를 잃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분명한 것은 지금 그가 알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인식(認識)하는 것이 제일 먼저 필요한 조치이다. 모든 문제는  문제의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냥 처음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처음 본인이 푸른 기왓집에 들어가려고 했던 그 지점으로 돌아가면 해결책은 바로 나오게 마련이다. 대통령 간판 한번 달아 보자고 그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을 추종했던 세력들만 잘 먹고 잘 살게 만들겠다고 그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은 원칙(原則)이다. 정정당당하고 올바른 길을 모두에게 설명하고 같이 가자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의외로 너무도 쉽게 올바른 길은 찾아질 것이다. 산길이든, 인생길이든, 정치의 길이든 이 길이 아닌 듯하면 고집을 피우기 보다는 얼른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제일 상책(上策)이다.

아,
오늘 강/사/랑의 이러한 주저리주저리는 한남금북길 행치재 내려가는 길에 가정자에서 잠깐 갈림길 한번 놓치고 계속 고집 피우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1시간 20분 동안 방향 감각 잃고 헤매면서 내내 생각한 것이다. 정답은 늘 가까이 있다.

길이 아닐땐 원점으로 돌아가라!!



길이 아닐땐 원점으로 돌아가라!


구간 : 한남금북정맥 제 6 구간(이티재~모래재~행치고개)
거리 : 구간거리(30.3 km), 누적거리(106.8 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08년 5월 10,11일, 흙과 해의 날.
세부내용 : 이티재(09:25) ~ 구녀산(09:52) ~ 옛고개 ~ 457봉 ~ 425봉 ~ 분젓치(10:34) ~ 430봉 ~ 분기봉
~ 분기봉 ~ 536봉 ~ 방고개(12:05) ~ 벤치있는 분기봉 ~ 538봉 ~ 주차장 갈림길 ~ 좌구산(13:15)/점심(14:00)出 ~ 옛고개 ~ 588봉 ~ 612봉 ~새작골산 ~ 질마재(15:06) ~ 410봉~460봉(15:48) ~ 410봉 ~ 415봉 ~ 칠보치(16:30) ~ 칠보산(17:24) ~ 550봉 ~595.5봉(18:13) ~ 전기철조망 ~ 녹색철조망 ~ 송치재(18:50) ~ 390봉 ~ 340봉 ~ 모래재(19:25)/증평읍 찜질방에서 일박.

모래재(08:15) ~ 보광산 임도 ~ 보광사/휴식(09:15)出 ~ 봉학사지 ~ 보광산 갈림길 ~ 보광산
(09:28) ~ 400봉 ~ 395.4봉(09:58) ~ 임도 ~ 고리티고개(10:15) ~ 370봉 ~ 백마산분기봉 ~ 내동고개 ~ 395.4봉 ~ 445봉 ~ 벌목지대 ~ 보천고개(12:02) ~ 378.5봉 ~ 시멘트도로/인삼밭 ~ 가정자(13:10) ~1시간 20분 알바 후 가정자 복귀(14:30) ~ 묘지 ~ 고개 ~ 절개지 ~ 행치고개(15:05).

총 소요시간 16시간 50분(1일차 10시간, 2일차 6시간 50분). 만보계 기준 58,600보(1일차 32,900걸음, 2일차 25,700걸음).


5월 10일 흙의 날. 5시에 기상했지만, 이런저런 준비로 오늘도 출발은 늦어 집 나선 시각은 6시 40분이다. 황금 같은 3일 연휴의 첫날인지라 영동고속도로는 벌써 교통정체가 시작되었다.


결국 국도로 청북까지 내려갔다가 평택~안성간 고속도로 타고 안성으로 빠져 나와 진천 방향으로 향했다. 곧 전방에 높고 험준한 산줄기가 앞을 가로 막고 구불구불 고갯길을 한참이나 올라가는데, 아주 안면이 많은 고개다.

고개 정상에 올라 주위 확인하니 금북정맥의 '엽돈재'다. 작년 여름 금북이 하면서 넘었던 고개이다. 벌써 일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고 땀 뻘뻘 흘리며 이 고개를 지났던 금북정맥은 이미 졸업했으며 한남금북정맥도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간다.

반갑다, 엽돈재야! 구불구불 고갯길을 내려 가는데 숯가마가 계속 나타난다. 이것 역시 금북이 이 지역사람들에게 배푸는 공덕이다.

진천에서 다시 중부고속도로에 올라 잠시 달리다 증평나들목으로 나갔다. 좌회전해서 한참 가다가 진암사거리에서 우틀하고, 다시 북이삼거리에서 우틀하여 36번 도로 달리다 내수IC에서 우틀하여 좌측으로 크게 휘감아 511번 도로에 올라 섰다. 그러다 초정삼거리에서 우틀하여 초정약수를 지나고 구불구불 구절양장의 고갯길을 한참 올라가면 지난 주 내려 왔던 '이티재'에 도착한다.



구라산/謳羅山, 구녀산/九女山

'구라산’은 미원면 大新里,鍾岩里와 내수읍 牛山里의 경계에 있는 해발 497m의 산이다. 정상을 둘러싸고 석축산성(石築山城)이 있는데, 이는 삼국시대 축조된 것으로 삼국 특히, 신라와 백제 또는 신라와 고구려의 각축전이 벌어졌던 곳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궁예(弓裔)가 이 성에 진을 치고 북쪽 북이면 부연리 낭비성(娘臂城)에 있는 후백제왕 견훤(甄萱)과 싸웠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산은 예로부터 '구려산(句麗山)' '구녀산(九女山)' '구라산(謳羅山)'등으로 불려왔다. 이들은 음이 비슷한 관계로 인해 다양하게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 절터 법당 扁額 밑에서 嶺海客이란 인물이 쓴 <등시(登詩)>라는 시구가 발견되었는데, 그 시구에는 '구녀사시구려사 구려성시구녀성(九女寺是句麗寺 句麗城是九女城)'이라 적혀 있다. 이 때부터 절은 구녀사[구려산]로, 산성은 구려성[구녀성]으로 불렸다. 그리고 구려성이나 구녀성이 변하여 ‘구라성’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려성''구녀성''구라성'의 어원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구려'로 미루어, '고구려'나 '고려'와 관련된 것으로만 추정할 뿐이다.

좌구산/座龜山

미원면 대덕리(大德里)와 괴산군 청천면 사이에 있는 해발 657m의 산이다. '좌구산'은 거북이가 앉아 남쪽을 바라보는 형상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 이서개(李書豈)가 북상하는 왜병을 피하여 제자들을 이끌고 이 산에서 화를 면했다 한다. 이 산 밑에 형성된 마을 또한 '좌구산'인데, 이 마을은 ‘대덕리’에 속해 있다.

분티/粉峙

'분티'는 증평읍 율리(栗里)로 넘어가는 도로변 좌측 고개에 있는 마을이다. '분티'는 '분'과 '티'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티'는 '고개'이나,'분'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전국적으로 '분토골' '분투골' '분터골'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리고 이들에는 '분토가 난다'는 유래담이 관련되어 있다.
'분토(粉土)'는 '방앗간에서 쌀을 찧을 때에 섞는 희고 고운 가루흙'을 말한다. 따라서 '분토골(粉土-)'이나 이것이 변한 '분투골'은 '분토가 나는 골짜기'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분터골'은 '분토가 나는 터를 가진 골짜기'로 풀이된다. 이상의 설명을 따르면 '분티'의 '분'도 '분토'로 해석되고, '분티'는 '분토로 된 고개'로 이해할 수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한남금북정맥 제 6구간 이티재~모래재~행치고개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이티재 휴게소 한 쪽에 주차하고 가볍게 몸 풀고 산행을 시작했다.(09:25). 들머리는 휴게소에 있는 주유소 좌측이다. 휴게소에서 방목하는 토종닭 철망따라 완만하게 올라갔다. 곧 숲으로 들어가 넓은 등로따라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한가롭게 산나물을 캐면서 올라가는 지역주민들이 종종 눈에 띈다.

 

한차례 고도를 밀어 올리면 '구녀산성'이 나타난다. 전 구간의 상당산성에 비하면 완전히 방치되어 있다. 둘 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역사적 유물인데, 한 쪽은 잘 정비되어 지역주민들의 역사교육장과 여가지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고, 한 쪽은 허물어진 성 흔적만 남겨둔 까닭은 뭘까? 아마도 해당 지자체의 재정상태나 단체장의 역사인식 차이에서 온 결과일 것이다. 좀 더 오르면 운동시설이 나오고  바로 뒤에 '구녀산 정상'이 있다.(09:52)  





# 주유소 뒷편 언덕으로 올라간다.  

 

  

# 넓찍한 등로를 따라 편하게 올라간다.

 

                          

# 오누이가 성 쌓기 시합하는 전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 소나무 숲 정자를 지나,

 

 

# 구녀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엔 돌탑과 충청지방 특유의 검은 정상석이 서 있다. 구녀산은 옛날엔 구라산으로 불렀다 한다. 구라를 많이  쳤나? 실제론 구려산(고구려를 뜻하는)에서 변화한 것이란 설이 유력한가 보다.

 

고도계 셋팅 후 출발했다. 완만하게 고도를 낮추며 진행한다. 군데군데 갈림길이 있으나 표지기들이 좋아 별 걱정은 없다. 그러다가 고도를 낮춰 희미한 옛고개를 지나는데 고개 우측으로 폐가가 내려다 보인다. 전방의 봉우리는 잠시 오르는가 싶더니 우측으로 우회했다. '457봉'이다.

 

다음 작은 봉우리는 좌측으로 우회하고 그 다음 것은 온전히 위로 넘었다. '425봉'이다. 아래로 길게 내려가다가 묘지가 있는 봉우리에서 더 떨어져 내린다. 그러면 포장도로가 있는 분젓치에 내려서게 된다.(10:34)

 

 

       

# 참꽃마리. 지치과이다. 산속 습기 있는 곳을 좋아한다. 종이로 오린 듯한 연한 남색의 작은 꽃이 특징적이다. 잎과 줄기는 한방에서 빈뇨증 약으로 쓴다.

 

 

      

# 노린재나무.

 

 

      

# 분젓치. 도로가 지나고 있다.

 

 

분젓치 도로가에 멋진 정자가  있고 아래로 증평저수지와 증평읍이 내려다 보인다. 간만에 시원한 조망과 바람내음을 맡을 수 있다.

 

분젓치는 분치(粉峙)라고도 한다. 분토가 나는 곳이라 얻은 이름이다. 이 고개에서 청원군과 괴산군이 갈라진다. 정자는 좌구정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부부가 도시락을 펼쳐 놓고 식사 중이라 오래 지체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정자에 누워 한 잠 늘어지게 잤으면 좋으련만... 몇 해 전 백두대간할 때 상주땅 화령재에서 마눌과 점심식사 후 시원한 정자에서 낮잠 자느라 더이상 산길 이어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끊은 기억이 난다.

 

분젓치는 깎아지른 절개지가 앞을 가로 막고 있어 미원쪽으로 고개를 넘어가면 좌측으로 절개지 가장자리로 오르는 들머리가 나온다. '한남금북정맥 좌구산 4km'라고 적힌 이정목이 서 있다. 이 고장 사람들 제법인데!!

 

절개지 가장자리로 올라 절개지 상단에 서면 아래쪽 정자에서 보다 더욱 훌륭한 조망이 펼쳐잔다. 그 경치에 반해 한참이나 휴식하며 경치구경했다.

 

 

                          

# 좌구정에서의 조망.

 

     

# 들머리엔 이정목이 서 있다.

 

 

# 절개지 상단에서의 조망. 시원하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이후 평탄하게 가다가 한차례 밀어 올린다. '430봉'이다. 다시 완만하게 고도를 낮추더니 본격적으로 한바탕 밀어 올려 480이 찍히는 봉우리를 넘는다. 이후 잠시 내렸다가 금방 또 한차례 올리면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정맥은 우측으로 마루금을 따르는데 좌측 아래는 벌목 후 세월이 흘러 다시 숲이 형성된 곳이다. 그 때문에 잠시 멀리까지 조망이 트여 정맥에서 흘러 나온 산줄기들을 조망할 수 있다.  잠깐 올려 갈림길 있는 봉우리를 하나 더 넘고 살짜쿵 오르면 '536봉'이다.

 

그런데 너머로 봉우리가 하나 더 있네? 조금 내렸다 오르니 역시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다. 우측으로 급경사 내리막을 길고 길게 내려간다. 숲 너머에 좌구산이 우뚝한데 이렇게 자꾸 내려가면 어떡하냐?? 고도를 200여m나 까먹고 나서야 '방고개'에 내려 섰다.(12:05)

 

 

      

# 충청의 산하들이 겹겹이 펼쳐진다.

 

 

# 땅비싸리. 콩과이다. 콩과 특유의 꽃모양을 하고 있다. 키가 작고 땅 위를 덮듯 작은 군락을 이룬다. 한방에서는 산암황기(山岩黃芪)라 하여 줄기와 뿌리, 열매 모두를 말려 폐렴, 황잘, 치질, 피부병의 약으로 쓴다. 

 

 

# 방고개.

 

 

밤고개는 비포장 임도가 넘어가고 있는데, 백두대간 박달령의 정자처럼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산림청 작품인가 보다. 밤이슬 피할 비박지로 그만이다.

 

나무데크를 따라 건너편 숲으로 올라가면 숲속에 누워 산림욕을 할 수 있는 벤치들이 잘 만들어져 있다. 배낭 맨 채로 벌러덩 누워본다.  오늘 구간엔 왜이리 그만 가라고 유혹하는 곳이 많은지??


이곳을 저녁 때쯤 도착하게 시간 맞춰와서 야영하면 그만이겠다. 이곳에서 좌구산까지는 고도를 무려 300여m나 올려야 한다.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고도를 서서히 높이고 한차례 길게 올리면 '벤치가 있는 분기봉'이 나온다. 좌측으로는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정맥은 직진이다. 그러나 곧장 위로 올라 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다시 떨어진다.

 

길고 완만하게 다시 밀어 올린다. 그러다 발 앞에 뭔가 길죽하게 누워 있어 깜짝 놀라 바라보니 커다란 뱀이다. 1m는 훨씬 넘어 보이는 꽃뱀(花蛇) 한 마리가 일광욕을 하고 있는데 사람을 보고도 꼼짝을 하지 않는다. 제 덩치를 믿는다는 얘기다. 구녀산에서도 작은 화사 한 마리를 만났는데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녀석이다.

 

길게 올라 봉우리를 만난다. 봉우리 끝에서 좌측으로 꺾는다. 그러다 잠시 오르면 다시 '주차장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으로 오르더니 다시 아래로 떨어진다. 그러지 마라~ 올라야지 왜 내리냐?

 

낙엽송군락을 따라 위로 올라 간다. 꾸준히 올려 아직 고도를 130m 더 올려야 한다. 숫자세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둘, 셋...배고프다! 넷, 다섯, 여섯...힘들다!!

 

다시 전위봉이 나타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좌측으로 우회한다. 계속 위로 더 올려 숫자를 1,100을 세고서야 '좌구산 정상'에 올라 섰다.(13:15)



 

 

# 밤고개 쉼터.

 

 

# 숲속에 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다.

 

  

 

# 로프구간도 만났다.

 

 

# 주차장 갈림봉을 올랐다 다시 내려야 한다.

 

 

# 아주 커다란 花蛇 녀석이 일광욕중이다. 1m는 훨씬 넘어 보인다.

 

 

# 다시 주차장 갈림봉을 만나고.

 

 

# 아직 700m 더 가야 한다.

 

 

# 뾰족한 좌구산 정상에 올랐다.

 

 


뾰족하고 좁은 정상엔 까맣고 작은 정상석과 이정목이 두 개나 서 있다. 정상 바로 뒤엔 좁은 터에 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참 대단한 후손들이다. 배가 너무 고파 얼른 배낭 벗고 민생고를 해결했다. 힘들어 밥 먹고도 한참을 더 휴식한 후 14:00에 출발했다.


새작골산 방향으로 로프 있는 급경사를 내렸다가 마루금을 따랐다. 좌측 아래로 증평읍이 내려다보인다. 한 차례 올랐다가 길게 내리고 높은 꼭대기에 있는 옛고개를 지나자마자 한차례 올려 '588봉'에 오른다. 이후 아래로 내렸다가 작게 봉우리 하나를 넘고, 길게 봉우리 하나를 오르다가 정상 부근에서 우측으로 우회했다.

 

다시 한차례 밀어 올리는데 헉헉 소리가 절로 난다. 암릉길을 올려 '612 봉'에 오른다.(14:35). 좌구산에서 질마재 구간은 잡목 때문에 걷기가 힘들다는 선답자의 산행기를 봤는데, 누군가 등로 정비를 잘 해두어 지금은 문제가 없다. 잠시 내렸다가 완만하게 봉우리를 하나 넘고 내리막이 시작되어 길게 고도를 낮춰 가는데 봉우리도 아닌 곳에 이정목이 서 있고 '새작골산'이라고 적혀 있다.(14:50)

 

질마재까지는 1.3km 더 가야 한다. 이곳에서 질마재까지는 급경사 내리막을 구불구불 길게 내려간다. 숲 너머로 질마재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듯하고 차소리도 들려 금방 도착할 것 같았는데, 잡목을 헤치고 길게길게 내려 무릎이 아야아야~ 소리가 나올 즈음 '질마재'에 내려설 수 있다. (15:06 )


 

 

      

# 밤고개로 오르는 임도가 구불구불 산허리를 휘감고 있다.

 

 

      

# 청원지방의 최고봉이란다. 막걸리 한 잔 대접했다.

 

 

       

# 정상에 서 있는 물참대.

 

 

 

#오늘밤 하루 묵어야 할 증평읍이 멀리 건너다보인다.

 

 


# 쥐오줌풀.

 

 

                         

# 저 봉우리를 넘어 왔다.

 

      

# 벌목지 상단이라 잠시 조망이 허락된다.

 

 

      

# 봉우리도 아닌 곳에 서 있는 새작골산 이정목.

 

 

      

# 질마재.

 

 

질마재란 이름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흔한 이름이다. 어디보자~ 고개가 소의 질마처럼 생겼나? 주변을 둘러보지만 당연히 소의 질마처럼 생겼다. 그렇게 생기지 않은 고개도 있던가??

 

도로 건너 최씨 공덕비 뒤로 올라야 하는데 우측으로 임도가 올라 가고 있길래 지도  확인하고 임도를 따랐다. 그러나 결국은 고개를 치고 올라야 하므로 그 넘이 그 넘이다. 임도 따라 오르다 묘지들을 만났다. 묘지 위에서 돌아보니 좌구산이 건너다 보이는데 과연 거북이가 앉아 있는 모습을 닮았다. 길게 밀어올려 정맥길에 합류하고 조금 진행하면 TV안테나가 있는 '410봉'이 나온다.(15:30)


곧바로 아래로 내리는데 올랐던 고도를 모두 까먹는다. 약초 재배단지가 있는 고개에 도착하더니 이번에는 다시 가파르게 치고 오르게 한다. 고개에서 출발하면서 입에 넣은 커다란 청포도사탕이 다 녹을 무렵 '460봉'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이 봉우리도 곧 고도를 모두 다 까먹는다. 다만 급하고 짧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길고 완만하게 고도를 낮춰간다. 그러다 안부에서 길게 한 차례 밀어 올려 '410봉'에 오른다. 하지만 곧바로 올라온 만큼 떨어져 내려 고개를 지나고 또 그만큼 다시 올려 쳐 '415봉'에 오른다. 징하다!

 

이후 길게 내려가다 보면 우측으로 트인 곳이 나와 가야 할 칠보치와 칠보산에 이르는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내리막을 계속 길게 내려 '칠보치'에 내려섰다.(16:30)


 

 

      

# 질마재에서 만난 미나리아재비.

 

 

# 거북이 앉아 있는 모습을 닮은 좌구산(座龜山).

 

 

# 안테나가 있는 410봉.

 

  

 

# 보리수나무 꽃.

 

 

# 저멀리 칠보치로 오르는 고개와 칠보산이 조망된다.

 

 

# 칠보치.

 

 

칠보치는 비포장 임도가 넘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오늘 구간 종착지인 모래재까지는 아직 3시간을 더 가야 한다. 큰일났다! 

 

절개지를 치고 올라 길게 한차례 올리는데 잡목이 우거져 등로를 막고 있다. 아직은 지날만 하지만 한두어 달 뒤쯤이면 악명 높은 한남금북 등로 이름값 하겠다. 아래로 내리면 우측이 트이며 산 아래에 커다란 창고 두 동과 비닐하우스 등을 짓고 있는 현장이 나온다.

 

다시 두 차례 오르내린후 계단식으로 빡세게 밀어 올린다. 서너 계단을 밀어 올린 후 봉우리에 오르면 '칠보산 쪽지봉'이란 팻말이 매달려 있다.(17:24)  

 

 

                          

# 수풀이 우거져 지나기가 어렵다.

 

 

# 칠보산이 조망된다.

 

 

# 칠보산 쪽지봉. 지도에 없는 이름이다.

 

 

칠보산  정상은 우측으로 조금 더 올라 가야 한다. 결국 정맥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셈이다. 쪽지봉이란 이름은 지형도에 없는 봉우리인데 누가 이 이름표를 매달았는지 알 수 없다. 국토지리원에도 이 지역 자치단체와 문화원 홈에도 이 이름은 언급이 없다.

 

정상엔 갈 일 없고 좌측으로 떨어져 내린다. 가파르고 길게 내려가는데 숲 건너편에 산이 하나 우뚝하다. 그런데 이렇게 내리면 우짜노?

 

깊게 내려 안부에 이르고 다시 위로 밀어 올린다. 다행히 오름이 가파르진 않지만 길게 고도를 높인다. 길게 올라 봉우리 하나는 정상 부근에서 우측으로 우회하고 곧바로 다시 치고 오른다.

 

(18:00). '550봉'에 오른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전방에 다시 595.5봉이 우뚝 솟아 있다. 대단타! (18:13). '595.5봉'을 힘들게 넘고 좌측으로 떨어져 내린다. 길게 고도를 낮춰가는데 우측에 '전기철조망'이 나타나더니 정맥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숲 아래는 흑염소를 기르는 목장지대다.

 

길게 가다가 목장과 헤어져 좌측으로 떨어진다. 고개를 지나 다시 '암봉' 하나를 치고 오른다.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떨어져 내리더니 이후 우로 좌로 여러 차례 방향을 바꿔가며 진행한다. 그때마다 고도를 뚝뚝 떨어뜨린다. 그러다 '녹색 철제 펜스'를 만나 길게 펜스를 따라 진행한다. 역시 목장이다. 철조망 밖의 길이 좁아 걷기가 힘들다.

 

(18:50)  '송치재'에 이르고 철조망과 헤어져 '390봉'을 오른다. 마지막 힘을 끌어 모아 오르막을 오르면 정상엔 '부부 합장묘'가 있다.

 

정상을 넘어 내려가다가 다시 봉우리(344.1봉) 하나를 넘고 이제는 정말 내리는 일만 남았다. 내리막 곳곳엔 참나무 시듬병 때문에 훈증 처리를 해둔 곳이 나오고, 고독성 농약을 쳤으니 출입금지한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이미 들어선 걸 어떡하나? 얼른 지나가야지! 길게 내려가다 보면 '보광산농원'을 만난다. 그러나 문이 잠겨 있어 농원을 통해 내려 갈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좌측으로 우회하여 내려가는데 급경사 절개지가 앞에 나타난다. 야간에 이곳으로 내려가다가는 큰일 당할 수도 있겠다. (19:25)  '모래재'에 올라섰다. 

 

 

                           

# 전기철조망이 정맥을 따른다.

 

 

# 참나무시듬병 때문에 훈증처리해 둔 곳이 많다.

 

 

# 랩 다이어트를 하는 것 같다.

 

 

# 오늘 구간의 종착지인 모래재.

 

 

# 보광산 수련원이 출입을 막아 한참 우회해야 했다.

 

 

# 다음 구간은 이곳으로 올라 신설도로를 횡단하든지 고개 아래로 내려 길게 한바퀴 우회하든지 해야 한다.

 

 

모래재에서 잠시 기다리니 마침 드물게 있다는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편으로 편하게 '증평'으로 향했다. 증평에서 다시 버스로 '내수'까지 가서 내수에서 택시 타고 이티재로 가 차량회수를 했다.

 

이티재 휴게소 주차장엔 내 차만 외롭게 주인을 기다리며 서 있다. 차 회수 후 다시 초정 쪽으로 내려가 내수 지나 증평으로 돌아갔다. 증평은 작은 소읍이라 차로 한바퀴 돌자 순식간에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시장 뒤쪽에 작지만 깔끔해 뵈는 식당에 들렀다. 기대한 대로 맛이 좋다.

 

조근조근한 성품의 주인 아주머니께 찜질방 위치를 물으니 아파트 단지 옆에 한 개가 있단다. 식사 후 찜질방으로 이동 한가한 찜질방에서 편안하게 하룻밤을 보냈다.

 

몇 해 전 백두대간 종주할 때 삼척에서 난생 처음 찜질방 구경을 했다. 그때 하도 어수선하고 난장판 경험을 한지라 다시는 찜질방에서 밤을 보내진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이곳은 충청도 양반 동네라 그런지 조용하고 편안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다음날, 5월 12일. 일요일 아침. 샤워하고 밥 먹은 후 증평을 출발했다. 대간과 정맥길 걸으니 전국 여러 지방을 두루두루 구경하고 좋은 경험들을 많이 한다. 증평이란 동네를 내 평생 또 올 기회가 있을까? 잘 있거라, 증평이여! 좋은 기억을 갖고 가노라!

 

36번 도로 타고 가다가 34번 도로로 갈아 타고 잠시 달리면 어제 내려왔던  '모래재'에 도착하게 된다. 

 

 

      

# 신설도로인 34번 도로 상의 모래재.

 

 

34번 도로 갓길 넓은 공터에 주차하고 산행준비를 했다. 아침부터 뙤약볕이 강렬하다.(08:00). 도로 우측 보광사 안내판 뒤로 임도 따라 올라 가는데 산길 입구 쓰레기 더미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솟아 오르고 있다. 


누군가 어제 쓰레기 더미를 태우고 완전 진화를 하지 않고 떠난 모양이다. 그 잔불이 밤새 버티다가 아침에 다시 불을 피워 올렸나 보다. 그냥 두면 산불로 번질 것 같다. 주변의 흙을 가져다 덮고 발로 밟아 불을 완전히 껐다.

 

불 끄느라 15분 정도 소모하고 다시 출발했다. 조금 오르다  우측길로 오르면 바로 위에 큰 묘역이 있고 장군석이 웅장하다. 돌아보면 지나온 정맥길이 조망된다. 


숲으로 들어가 잠시 오르는데 좌측 계곡 방향으로 표지기들이 많이 달려 있다. 이상타? 표지기 따라 그 방향으로 잠시 내려가 보니 입구에서 헤어진 임도로 향하는 길이다. 임도 따라 오르다 이 길로 올라오면 되나보다.

 

다시 원위치해서 등로 따라 올라간다. 신선한 아침 숲속을 걷노라니 기분이 저절로 업된다. 잠시 후 갈림길이 나오고 '보광사 진입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등로는 우측 산길로 올라 가야 하지만, 갑자기 근심이 깊게 밀려와 빨리 보광사로 올라가 이 근심을 풀어야 했다. 물맛 좋다는 보광사 약수물 맛도 봐야 하고...

 

발걸음을 최대한 빨리해서 보광사로 향했다. 아랫배에 묵직하게 근심이 깊어진다. 빨리 빨리! 잠시 후 계단길로 올라 보광사 경내에 들어선다. 생각보다 작고 아담한 사찰이다. 아무리 근심이 깊다한들 예의를 잊어서야 되겠는가? 보광사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시원한 보광사 약수물맛도 보고 해우소(解憂所)에 들러 근심도 풀었다.

 

 

      

# 보광산 안내판 뒤로 올라 갑니다.

 

 

# 임도를 버리고 우측길로 올라갔다.

 

 

# 바로 넓은 묘역이 나온다.

 

 

# 묘역에 서면 지나온 정맥길이 조망된다. 이곳도 정맥을 갉아먹고 있다.

 

  

# 연등이 길잡이를 해주는 보광사 진입도로.

 

 

# 뾰족한 잎과 오글거리는 꽃잎을 가진 넌 누구냐?

 

  

# 보광사. 의외로 작고 아담하다. 

 

 

# 건물도 별볼일 없다. 다만 이 건물만 옛 맛이 조금 난다.

 

 

우(憂)를 해(解)하고 09:15에 출발했다. 사찰 옆 등나무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갔다. 보랏빛 등꽃이 만발하니다. 잠시 오르면 숲바닥에 녹색 융단을 깐 아름다운 숲이 나타나고, 석탑이 있는 넓은 사찰터가 나온다. 고요한 평화로움이 충만한 숲이다. 보들보들한 숲바닥에 드러누워 한바탕 봄꿈이라도 꾸웠으면 하는 심정이다.

 

'봉학사지' 뒤에는 넓은 묘역이 있고 그 위에서 바로 정맥과  합류한다. 잠시 능선을 따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정맥은 이곳에서 갈라지지만 보광산 정상이 코앞이니 다녀오기로 한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보광산 정상'에 서게 된다. (09:28) 

 

 

                          

# 등꽃 만발한 등나무 아래로 올라간다.

 

 

# 녹색융단을 깐 아름다운 숲그늘. 나는 이 무렵의 숲을 너무나 좋아한다.

 

 

# '봉학사지'를 만났다.

 

 

# 밝은 숲속 한 쪽에 석탑(石塔)이 고즈넉이 서 있다. 봉학사지 오층석탑이다. 높이는 4.97m.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이다. 고려 초기의 석탑으로 보광사(普光寺) 혹은 봉학사(鳳鶴寺)가 있던 자리에 절은 사라지고 홀로 남아 있다.

 

 


 

 

# 보광산 갈림길.

 

 

# 보광산 정상.

 

 

보광산(普光山)은 원래 봉학산(鳳鶴山)이라 불렀는데 조선 중기부터 보광산으로 바뀌었다. 높이는 539m로 아담한 높이다. 정상에는 괴산 특유의 까만 정상석이 서 있고 한 쪽에는 녹슨 리어카가 서 있다. 이 정상석을 싣고 온 리어카인 모양이다.

 

정상석 한번 쓰다듬고 다시 길을 나서 갈림길로 복귀했다. 아래로 길게 내려 가는데 하늘 한점 볼 수 없는 숲속길이다. 한여름에 이곳을 지나면 뙤약볕 걱정할 일은 없겠다.

 

길고 가파르게 내렸다가 한차례 올려 '400봉'을 넘고 고만고만하게 봉우리를 두어 개 더 넘는다. 갈림길을 알리는 이정목을 지나자마자 삼각점이 있는 '395.4봉'에 오른다.(09:58).


정상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면 숲을 벗어나고 산허리를 휘어감는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임도를 가로질러 숲으로 내려가면 하얀 이정표가 나무에 매달려 있고 고리티재가 가까움을 알린다. 길게 내리막을 내려가면 잡목으로 인해 인적이 끊긴 '고리티 고개'에 내려선다.(10:15).


 

  

 # 둔터골 갈림길.

 

 

# 395.4봉.

 

  

# 고리티재 前 임도.

 

 

# 낙서가 버릇이 될라나?? 그래도 이정표에 덧칠을 해 줬으니 뒷사람에게 도움이 될 터.

 

 

# 자벌레 한마리 햇볕 영롱한 허공에서 줄타기를 즐기고 있다.

 

 

고리티재는 지리산 고리봉처럼 배를 매어 둔 전설이 있는 고리인가? 아니면 골이 깊어 고리티인가? 내력을 알 수 없으니 짐작한 할 뿐입이.  

 

우측 바로 아래에 농가가 있는데 분뇨냄새가 진동한다. 고개를 지나 한차례 밀어 올려 '350봉'을 넘고 다시 한차례 올려 T자형 마루금에 오르는데 사계청소를 하면서 표지기를 모두 없애 버렸다. 잠시 방향 감각을 잃고 헤매다 우틀하면서 표지기 하나 달아 뒷사람에게 알리고 곧 봉우리에 올라섰다. '370봉'이다.

 

사진 찍고 기록하고 있는데 단체 산행객 몇이 나타나더니 마치 폭주기관차처럼 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후미에 선 사람은 저 먼지를 다  마시겠는데? 허허~ 참....


고만고만하게 오르내리다 길게 한차례 올리니 '백마산 분기봉'이 나온다.(10:55). 아래로 내려 '내동고개' 를 지나고 길게 오르내리며 가다가 '395.4봉'을 지난다. 다시 길게 진행하다 오르면 '377.9봉'이 나온다. 백곰님이 달아둔 정상 표식이 보인다.

 

그곳에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인천에서 온 단체 정맥꾼들이 무리무리 지어서 나타난다. 혼자 정맥하는 나를 무척 측은한 듯이 쳐다본다. 그렇게 측은지심을 불러 일으킬 정도는 아닌데? 산이란 혼자 가도, 둘이 가도, 여럿이 가도 좋은 곳 아니던가?

 

곧장 제대로 한번 밀어 올리면 '445봉'이 나온다. 그곳에서 잠깐 내렸다 벌목지대를 지나고 다시 길게 떨어져 내리면 '보천고개'에 내려선.(12:02)


 

 

      

# 백곰님 표지기 한 쪽을 잠시 빌렸다.

 

 

#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인천 정맥팀 선두조들.

 

  

 

# 백마산 분기봉.

 

 

# 금난초. 만나기 쉽지 않은 귀한 넘을 여기서 만났다. 원래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녀석인데 간혹 중부 지방에서도 발견된다. 아마도 지구온난화 때문에 기온이 오른 탓인 듯하다.

 

 

# 377.9봉의 백곰님이 매단 정상표식.

 

 

# 큰 느티나무가 있는 보천고개.

 

 

 

# 아까시 향이 진동한다.

 

 

# 멀리 음성 시가지가 조망된다.

 

 

# 원남면 방향의 조망.

 

  

# 밭두렁 사이 농로에 내려 섰다.

 

 

# 인삼.



포장도로가 지나는 보천고개엔 연륜이 묻어나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 그늘아래 잠시 노거수(老巨樹)의 은택(恩澤)을 누리고 깊게 포응하여 교감을 나눴다. 

 

이후는 뙤약볕에 노출되어 제대로 빡세게 밀어 올리게 된다. 헉헉대며 위로 오르면 정상 근처 넓은 묘역에서 인천 산객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독한 가양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잠시 더 오르면 '378.5봉'에 도착한다.(12:28). 뒤쪽으로는 음성시가지가 보이고 전방으론 원남면의 농가들이 내려다보인다. 


좌측으로 진행하다가 우측으로 꺾어 떨어져 내린다. 올라온 고도를 모두 다 까먹게 깊게 내려 간다. 옛 고개를 지나고 작게 봉우리 하나를 넘고 또 떨어져 내린다. 그러면 비닐 멀칭이 된 밭을 지나 시멘트 도로에 서게 된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인삼밭을 지나 잣나무숲으로 올라 봉우리 하나를 넘었다. 산 아래로 기차터널이 지나고 있어 열차 지나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숲을 벗어나 '시멘트도로'에 내려섰다. '가정자(주봉리)'다.(13:10).

 

인천 단체 정맥팀의 리더를 이곳에서 만나 둘이 같이 길을 나섰다. 전방 '갈림길의 묘지'위로 올라갔다. 묘지를 지나자 마자 우측으로 꺾어야 하는데 무심코 작은 봉우리 위로 올랐다.

 

무시무시한 알바의 시작이다. 봉우리 위에 섰는데 표지기가 없다. 좌측으로 가는 길이 뚜렸해 잠시 진행하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시 원위치하기 위해 묘지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인천팀의 리더가 그쪽에서 오면서 표지기가 없더란다. 오잉? 그럼 이 길로 다시 한번 가 봅시다.

 

좌측으로 뚜렷한 등로를 따라 가다보니 검은 차양막이 등로를 가로 막는다. 농장인가 보다. 둘이서 잠시 방황하다가 우측으로 차양막을 따라 내려가 보니 앞이 툭 트이며 마을 뒤로 나오게 된다.

 

인천분은 잘못 온 것 같다고 다시 돌아 가겠단다. 뭔가 이상하고 길을 잘못 든 것 같으면 잘못이 시작된 그 시점으로 원위치해야 하는데, 항상 이 놈의 강고집이 문제다.

 

일단 지금까지 진행해 온 노력이 아깝다. 두 번째는 지도 꺼내 확인해보니 잘못 온 것은 맞지만, 아래로 내려 마을길로 가로 질러 가면 정맥길과 다시 합류할 것 같은 기분이다.

 

나름 큰 비젼을 갖고 임기를 시작했던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도중 모두 실정을 저지르고, 그 실정을 만회할 여러 기회가 있었지만 한결같이 자기 고집을 피우다 하나같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만 것은 다 이런 노순을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 싶으면 대통령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보면 너무나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텐데 모두들 그것을 못했다.

 

똥고집을 피우며 인천분과 헤어져 마을로 내려갔다. 일단 우측으로 가야 할 것 같아 도로를 따라 가는데 아까 지난 듯한 충북선 철길이 앞을 지나고 있다. 일단 철길을 지나야 오늘 종착점인 행치재로 가기 때문에 철길을 지나갔다.

 

그런데 아무래도 지도와 주변 지형이 일치하질 않는다. 그때 저 멀리 할아버지를 도와 논 일을 하는 고교생이 보여 한참을 걸어가 이곳 위치와 동네 이름을 물어 보는데 잘 모르겠단다. 자기 동네 이름을 모르는 학생이라니...

 

다시 지도와 주변을 검색하는데 저 멀리 좌측 전방에 높은 산 하나가 우뚝한 것이 다음 구간의 큰산같은 느낌이다. 우측으로 가야 큰산이 나올 것 같은데? 왜 좌측이야? 일단 그 산을 목표로 농로를 따라 가다 농사 짓는 어르신들이 계시길래 다시 이곳 동네 이름을 물어 보는데 아무도 정확한 이름을 알고 있질 못한다. 아니, 이 동네 사람들은 어째 자기 동네 이름도 모르냐??

 

산길이 아닌 농로를 한참 헤매다 보니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방향 감각도 애매해졌다. 큰산으로 생각한 그 산도 큰산이 아닌 듯하고... 그래도 그 산으로  접근하기 위해 전방의 야산 하나를 치고 올랐다. 길도 없는 잡목 숲속이다. 앞을 가로막는 잡목숲을 헤치고 올랐다. 도대체 이게 웬 난리인지? 가정자에서 30여 분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을 듯했는데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숲을 헤매고 있으니...

 

산을 넘어 철길을 다시 건너 밭을 가로질러 마을로 접근하는데, 친정집에 나들이 온 젊은 부인을 만나 다시 길을 물어보았다. 그 부인이 동네로 같이 들어가 동네 어른께 물어보니 동네 뒷길로 올라가면 정맥길과 만날 수 있단다. 앞 동네 사람들은 애도 어른도 자기 동네 이름조차 모르던데 이 동네 어른들은 정맥길도 아신다.

 

감사드리고 시멘트길 따라 길게 위로 올라가니 고개가 나오는데, 세상에나, 네상에나 이곳은 바로 처음 표지기를 못 찾아 헤맨 묘지가 있는 '가정자'이다.(14:30). 무려 1시간 20분 동안 엉뚱한 곳에서 홀로 헤매다 다시 원위치한 것이다.

 

       

# 저 묘지 위에서 우틀하거나 그냥 길 따라 우측으로 가면 되는데, 좌틀해서 1시간 20분 동안 알바했다.

 

 

# 백곰님 표지기가 숲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그걸 모르고 지나쳤다. 이곳에서 우틀해야 했었다.

 

 

처음 길이 좀 이상하다 했을때 바로 원위치 하거나, 아니면 두 번째, 인천 산꾼하고 같이 다시 산을 올라 원위치 했더라면  잠시 알바한 걸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는데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다 쌩난리를 겪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다. 누구나 잘못은 저지른다. 그리고 그 잘못을 수정할 기회는 여러 번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오류 수정의 기회를 고집이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무시하여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다시 묘지 좌측으로 올라 가니 좌측으로 뚜렷한 등로 대신에 '우측으로 희미한 갈림길'이 있다. 백곰님 표지기가 매달려 있었는데 누군가 나무를 베어버리는 바람에 표지기가 바닥 가까이 낮게 매달려 있다. 아까는 저걸 왜 못 봤을까?

 

우측으로 꺾어 길게 오르내리며 진행하는데 맥이 빠져 걷기가 싫다. 계속 오르내리다 한순간 앞이 툭트이는 곳이 나온다. 묘지가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이내 우측숲으로 들어가고 '고개'를 지나 한 차례 길고 완만하게 올린다. 곧 절개지 상단에 서게 되고 전방에 행치고개와 큰산이 건너다 보인다.

 

좌측으로 가다가 다시 살짝 넘으면 '무시무시한 절개지' 위에 선다. 절개지 아래는 석재공장이다. 절개지를 조심조심 내리다 이번에는 제대로 미끄러져 한바탕 자빠링을 했다. 끝까지 이렇게 난리블루스를 하는구만... 팔꿈치가 까져 피가 난다.

 

대충 닦고 스틱에 의지해 엉금엉금 기어 아래로 내려간다. 석재공장을 지나 36번 도로 중앙분리대를 넘어 '행치재 휴게소'에 도착했다.(15:05)

 

 

# 넒은 묘역을 만나 잠시 숲을 벗어난다.

 

 

#  깎아지른 절개지 위에 서면 행치재와 큰산이 건너다보인다. 이 동네가 반기문 UN사무총장의 고향이다. 

 

 

# 행치재 휴게소.

 

 

잘못된 판단의 댓가를  톡톡히 치른 하루였다. 한편으론 좋은 교훈을 얻은 고마운 산길이기도 했다.

 

'길이 아닐땐 원점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절대 원칙을 잊지마라!' 

 

 

      

# 행치재에서 먼지 털고 버스로 증평, 다시 택시로 모래재로 돌아가 차를 회수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면 강/사/랑의 다음 블로그 "하쿠나마타타"로 이동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