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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명산]13(감악산/紺岳山)-말없이 살라 하네! 본문

산이야기/100대 명산

[100대 명산]13(감악산/紺岳山)-말없이 살라 하네!

강/사/랑 2009. 6. 28. 14:21

 [100대 명산]13(감악산/紺岳山) 


옛날 옛적 어느 왕조 시대(王朝 時代). 그 왕조는 신라 시대여도 좋고 고려일수도 있고 조선 초기일 수도 있다. 경기 북부 지방 어느 산골에 올곧은 선비 한 사람이 살았더란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성현의 가르침을 열심히 본받아 그 품성이 아름답고 학식 또한 뛰어났다.

 

낭중지추(囊中之錐추). 송곳은 주머니 속에 있어도 튀어나오는 법이라 그의 명성은 고을을 넘어 도성(都城)에까지 이르렀고 마침내 왕의 부름을 받고 출사(出仕)하게 되었다.

 

선비의 높은 학식과 고매한 인격에 반한 왕은 그에게 높은 벼슬을 내렸고 그 역시 오랫동안 갈고 닦은 그의 학문이 널리 세상에 이롭게 되기를 원했던 지라 기꺼이 출사하여 뜻을 펼치고자 했다.


과연 그의 재주는 남다르게 뛰어난 바가 있었던지라 그가 주장하는 정책은 하나같이 혁신적이고도 효율적이었다. 자연 그의 주변엔 그를 흠모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그의 정책들도 널리 백성들에게 추앙을 받아 그는 곧 온나라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혁신은 반동(反動)을 불러오는 법이고, 개혁에는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기득권자들이 있기 마련이라 그는 곧 강력한 반대자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또 어느 시대에나 반대자들은 무섭도록 집요하고 지능적이고 조직적이어서 그에 대한 음해는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이쯤이면 왕 또한 부쩍 커버린 선비의 위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또 어느 시대에나 왕들은 적당히 어리석고 적당히 교활한 법이어서 간신배들의 끊임없는 탄핵에 경도(傾倒)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왕은 선비가 이룩해 놓은 혁신들을 모두 철회하게 되고 개혁 정책들은 반동에 의해 꺾이게 된다. 선비는 그러한 왕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개혁 조치들을 유지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게 되고 그러한 선비의 날카로운 주장이 왕은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오로지 칭송에만 익숙해 있는 권력자의 귀에 그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선비의 간언(諫言)은 그 내용이 비록 옳은 것이기는 하나 권력자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결국, 선비는 왕에 의해 내침을 당하게 되고 고향으로 낙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왕에 대한 충성심과 백성에 대한 애민의 마음으로 매일같이 상소를 올려 왕에 대한 간언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올곧은 푸른 마음은 어리석은 왕과 집요하고 사악한 반대자들에게는 쉬운 먹잇감인지라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야 말았다.

 

왕이 내린 독사발을 마시고 선비가 죽은 그 산꼭대기에 훗날 그 고을의 사람들은 돌비석 하나를 세웠다. 그러나 그 비석엔 귀 어두운 어리석은 왕과 선비의 푸른 마음을 알지 못한 세상, 그리고 선비가 이룩하고자 했던 변화된 세상의 허망함을 상징하듯 글자를 한 자도 새기지 않았다.

 

이름하여 몰자비(沒字碑)요,무자비(無字碑)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위의 이야기는 100대 명산 순례 중에 감악산 정상에 있는 몰자비를 보고 강/사/랑이 그냥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이다.

 

감악산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과 연천군 전곡읍, 그리고 양주시 남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감색 紺'자를 쓰는데 산이 전체적으로 짙푸르고 암봉이 발달했다 하여 이런 이름을 얻었다. 세상에 짙푸르지 않은 산이 몇이나 되겠는가만 이곳의 짙푸름은 유별난 데가 있었나 보다.

 

그러나 감악산은 그 이름보다 정상에 있는 고비석(古碑石) 때문에 더 유명하다. 감악산 정상에는 높이 170cm, 너비 78cm 되는 큰 비석 하나가 서 있는데, 원래 글자가 없었는지 세월에 씼겨 글자가 바람 속에 사라졌는지 알 수 없지만 큰 비석에 글자 한 자 찾아볼 수가 없다.


학계에서는 진흥왕 순수비(眞興王 巡狩碑)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당나라 장수 설인귀(薛仁貴) 비석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는 모양이지만, 기록이 없고 그 비석 자체에도 글자가 없어 다만 논쟁거리만 될 뿐이다.

 

100대 명산 순례 열세 번째 걸음으로 감악산 정상에 올라 이 몰자비를 보는 순간. 나는 문득 이 비석이 애초에 글자를 새기지 않은 무자비(無字碑)이고 그 안에는 어느 개혁가의 꿈과 좌절이 스며들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시(時)의 고금(古今)과 양(洋)의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충언(忠言)은 역이(逆耳)하기 마련이다. 오랜 직장 생활 동안 나 역시 올바르다 생각한 나의 소신 탓에 손해본 바 많아 감악산 몰자비를 보고 문득 느끼는 바 있어 스스로에게 경계하였다. '세상 시비(是非)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말없이 살 일이로세!' 




말없이 살라 하네!



일      시 :  2009년 6월 27일. 흙의 날

세부내용 : 설마교(12:00) ~ 매표소 ~ 범륜사 ~ 숯가마 쉼터 ~ 묵은밭 ~ 만남의 숲 ~ 전망대 ~ 갈림길 ~ 장군봉 ~ 임꺽정봉 ~ 얼음골재 ~ 감악산 ~ 팔각정 ~ 까치봉 ~ 460봉 ~ 쌍소나무 ~ 삼거리 ~ 묵은밭 ~ 범륜사 ~ 설마교.



토요일이다. 원래 계획은 호남정맥 종주하러 전라도 땅으로 내려가는 것이었지만, 전날 금요일부터 일기예보는 전국적으로 비를 예보하고 있다. 특히 호남정맥이 있는 전남북 지방은 토요일 일요일 내도록 장맛비를 예보하고 있다. (나중에 이 일기예보는 모두 구라로 밝혀진다.)

 

그래서 대안을 찾던 중 지난 봄부터 한번 가 보려고 자료를 찾아둔 100대 명산 중 하나인 감악산 산행을 결정했다. 감악산은 예로부터 화악산, 운악산, 관악산, 송악산 등과 더불어 경기 5岳(京畿五岳)의 하나로서 숭배되던 산이다. 폭포·계곡·암벽 등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임진강·개성 송악산 등의 조망이 좋은 점 등을 고려하여 100대 명산으로 선정되었다.


경기 오악 중 하나이고 100대 명산에 속하니 꼭 찾아야 할 산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 산행 결정에서는 무엇보다 수도권에서 가까워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가 쉬운 장점을 갖춘 산이란 점이 나에겐 제일 우선 선정 이유이다.


감악산/紺岳山


 

경기도 파주시, 양주시, 연천군 사이에 있는 산. 높이 675m이다. 예부터 바위 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하여 감악(紺岳), 즉 감색바위라고 하였다. 이 일대는 광활한 평야지대로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원래 감악사, 운계사, 범륜사, 운림사 등의 4개 사찰이 있었다는데 현재는 1970년 옛 운계사 터에 재창건한 범륜사만 남아 있다. 장군봉 아래는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꺽정이 관군의 추적을 피해 숨어 있었다는 임꺽정굴이 있다. 6·25전쟁 때는 격전지로 유명해서 설마리 계곡에 영국군 전적비와 대한의열단 전적비가 남아 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으며, 의정부 북쪽 회천에서 양주시 남면을 지나 설마리를 거쳐 감악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높이 20여 미터에 달하는 운계폭포가 나온다. 폭포 뒤로 범륜사가 있고 그뒤로 전형적인 암산의 모습을 띤 감악산이 보인다. 범륜사에서 감악산으로 오르는 길은 오른쪽 능선을 타고 임꺽정봉, 장군봉을 거쳐 정상에 이르는 코스와 남쪽에서 계곡길을 거쳐 올라가는 코스가 있다. 임진강 하류의 넓은 평야지대를 바라보면서 북쪽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도 있다. 맑은 날에는 개성의 송악산과 북한산이 보인다.

 

감악산 新羅古碑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積城面) 감악산 정상에 있는 신라의 고비. 빗돌대왕비·설인귀사적비라고도 한다. 1982년 6월 5일 동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이 발견하였다. 학계에서는 비의 양식이나 건립 추정연대·지형적 조건 등으로 보아 또 하나의 진흥왕순수비로 추정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이유로는 비의 형식이 북한산비(北漢山碑)의 전체적인 외형과 흡사하고, 특히 기단(基壇)의 경우, 자연암반에 축을 형성하여 건립한 양식이 똑같으며, 크기는 감악산비가 높이 170cm, 두께 19cm, 너비 78cm인 데 비해 북한산비는 높이 155cm, 두께 20cm, 너비 71cm로 거의 비슷한 크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호(金正浩)는 《대동지지(大東地志)》 〈적성조(積城條)〉에서 감악산단(紺岳山壇)을 기술하면서 '상유고비(上有古碑)'라 기록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발간된 《적성군읍지(積城郡邑志)》에도 그 소재를 밝히면서 명문(銘文)의 판독이 불가능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자가 마멸되어 없어졌으므로 고증할 수 없는 몰자비(沒字碑)이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감악산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산행 준비 마쳤지만, 호남과 감악산 사이에서 갈등하고 일기예보 검색하느라 감악산행 출발은 아침 여덟 시를 넘겨서야 가능하다.

 

산본역에서 전철 타고 서울로 들어가 한강을 건너고 북쪽으로 올라 올라 창동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탄다. 다시 도봉산, 의정부 지나 가능역에서 하차하고 역앞 큰길 건너 버스 정류소에서 적성行 버스를 기다린다. 의정부에서 적성 가는 버스는 25번과 25-1번 두 대가 운행하는데 배차 간격은 20분이다.

 

마침 들어오는 25-1번 버스 타고 MP3로 음악 듣다가 졸다가 1시간여 흔들리며 북상하니 종점 전 정류소인 범륜사 정류소에 도착한다.

 

 

        

# 적성행 25-1번 버스. 

 

 

        

# 나그네를 내려 준 버스는 설마교를 지나 적성으로 향한다.

 

 

여덟 시에 산본 집을 나섰는데, 무려 네 시간이나 걸려서 겨우 범륜사 입구에 도착했다. 전철 두 시간, 버스 한 시간이면 가능한 거리이지만 이동하고 환승하고 기다리고 하다보니 네 시간이나 걸렸다.

 

구라청에선 비를 예보했지만 "아나, 콩콩" 햇살만 강렬하다. 그러나 장마 직전이라 그런지 습도가 아주 높아 푹푹 찌는 무더위가 출발 전부터 온몸이 땀에 젖게 만든다. 보따리 둘러메고 설마교를 출발했다.(12:00)

 

 

        

# 빨간색 코스로 올라 갔다가 분홍색 코스로 내려올 생각이다.

 

 

                              

# 감악산은 오랜 세월 전쟁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었다.  또 신령스런 산이라 무속의 신산(神山)으로 오래 알려졌다.       

 

 

                               

#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곧 거북바위 휴게소가 있는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가 있는 걸로 보아 예전에는 입장료를 징수했나 보다. 매표소에서 좌측으로 꺾어 올라 가는데 포장도로가 길게 이어지지만 갈수록 경사가 급해진다.


강렬한 뙤약볕 아래 노출되어 오르려니 힘이 많이 든다. 길게 올라가면 좌측 아래 계곡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들인다. 아마도 '운계폭포'인 듯하지만 숲이 가로 막고 있어 구경 할 수는 없다. 바로 위에 '범륜사'가 있다.


 

        

# 정상까지는 3km 정도 남았다.

 

 

        

# 포장도로는 범륜사까지 이어진다.

 

 

                              

# 기린초. 산지 및 해안의 바위 틈에서 자라는 돌나물과의 다육식물이다. 한자로는 비채(費菜)라 한다. 비싼 나물이란 뜻이다. 기린초란 이름은 일본명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꽃이 지면서 별 모양의 열매가 사방으로 달리는데 그 모습이 상상속 동물인 기린의 뿔을 닮아 기린초라 불렀다 전해진다.

 

 

        

# 오늘 구간의 대세는 윤기 흐르는 털중나리이다.

 

 

        

# 범륜사(梵輪寺). 고색창연한 사찰은 아니다. 원래 이 산에는 감악사, 운계사, 범륜사, 운림사 등 네 개의 사찰이 있었다 하는데 대소 전란을 겪으며 모두 소실되고 지금의 사찰은 1970년 옛 운계사 터에 다시 세운 것이다.

 

 

                                

# 범륜사를 지나면 잠시 흙길이 길게 이어진다.

 

 

        

# 부부 동반 산객들이 많다.

 

 

        

# 곧 숲으로 들어간다. 숲속은 돌길이 길게 이어진다. 

 

 

        

# 숯가마 쉼터. 예전 이곳에 숯가마가 있었나 보다.

 

 

                              

# 등로를 보호한다고 깔아둔 이런 돌길이 너무 싫다. 주로 국립공원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진 작업인데, 저런 길을 오래 걷고 나면 무릎에 엄청난 부담이 간다.

 

 

        

# 잠시 트인 공간이 나온다. 이 지역은 예전에 화전민들이 살던 '묵은 밭'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까치봉을 지나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일반적인 정상 방향 등로는 직진이다.

 

 

         

# 잠시후 나무 데크가 설치되어 있는 '만남의 숲'이 나온다.

 

 

만남의 숲에서 길은 양갈래로 갈라진다. 일반적으로 직진하여 계곡길로 감악산 정상으로 향하는게 보통이지만, 나는 우측길로 능선을 치고 올라 장군봉과 임꺽정봉을 거쳐 감악산 정상으로 향하기로 했다.

 

곧바로 경사가 급해진다. 길게 치고 오르는데 기온이 높은 데다 습도까지 높아 숲속은 푹푹 찌는 가마솥 안을 방불케 한다. 땀이 어찌나 흐르는지 금세 온몸이 땀에 푹 절어 버리고 옷을 쥐어 짜면 물이 줄줄 흐른다. 다만 이쪽 길은 일반 산객들이 전혀 찾지를 않아 한적한 산길을 홀로 즐길 수 있어 좋다.

 

헐떡헐떡 혀빼문 짐승처럼 허덕대며 길게 오르면 전망대가 있는 암봉 위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개스가 짙게 끼어 있어 조망은 전혀 없다.

 

 

        

# 힘들게 오른 바위 전망대. 개스 때문에 조망은 전혀 없다.

 

 

        

# 좌측 위에 푸른 봉우리 하나가 우뚝하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보면 암봉이다.

 

 

        

# 땡겨보니 어느 산객이 홀로 만찬을 즐기고 있다.

 

 

        

# 암봉을 지나 다시 위로 오르는데 생태조사를 하는지 포집조(捕集槽)가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다.

 

 

        

# 암봉을 다시 오르는데 중간에 고인돌을 닮은 바위가 나온다.

 

 

                              

# 이쪽에서 보니 조금 전에 지나온 전망대 있는 암봉의 위용이 대단하다.

 

 

                              

# 내가 섰던 암봉 정상에는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산객들이 보인다.

 

 

         

# 암봉 중간에 뿌리를 내린 위풍당당 소나무.

 

 

 

        

# 저 아래로 신암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뒤쪽으로 양주시 남면의 인간세가 있다. 

          

 

        

# 산빛이 검푸르다. 과연 감악(紺岳)하는 산이다.

 

 

        

# 좌측으로 올려다 보면 장군봉과 임꺽정봉이 올려다 보인다. 가야 할 길이다.

 

 

        

# 임꺽정봉을 땡겨 본다.

 

 

                               

# 아래로 내리면 계곡길 따라 오르다 임꺽정봉으로 오르는 갈림길과 만난다.

 

 

        

#  나무계단과 바윗길을 올라 장군봉에 오른다. 지나온 암봉을 땡겨보니 나무 그늘 아래 여유로운 산객 부부가 보인다.

 

 

# 장군봉의 파노라마. 좌측 너머 안테나 있는 곳이 감악산 정상이고 암봉이 임꺽정 봉, 우측이 지나온 암봉들이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뒤쪽 안테나 있는 곳이 감악산 정상이다.

 

 

        

# 장군봉에서 내려가면 다시 계곡길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 한차례 암릉길을 올리면 임꺽정봉에 오르게 된다. 임꺽정은 양주 일대에서 활약하여 이 고장 이곳저곳 흔적을 많이 남겨 두었다. 한북정맥 상에도 백석읍에 내려서기 전에 우뚝한 임꺽정봉을 만나게 된다. 임꺽정봉은 공통적으로 뛰어난 암릉미와 조망을 자랑한다. 아마도 임꺽정 일당이 늘 쫓기는 신세라 접근하기 힘들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암봉을 선호했기 때문일 것이다.

 

 

# 임꺽정봉으로 오르는 암봉의 파노라마, 장군봉과 얼굴바위 등이 보인다. 감악산 정상이 군부대 때문에 조망이 열악하여 이봉우리가 더 정상 분위기가 난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임꺽정봉에서 잠시 한숨 돌린 후 아래로 내리면 암봉 사이에 계곡이 나오고 임꺽정굴 안내판이 있다. 그러나 굴은 이곳에서 더 내려가야 하는 모양이다. 지치고 힘들어 바랑 내리고 늦은 점심상을 차린다.

 

 

                               

# 계곡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이다.

 

 

         

# 낭떠러지 아래 양주쪽 조망. 사찰이 보인다. 지도 확인하니 봉암사라 적혀 있다.

 

 

        

# 서울막걸리와 마눌표 또띠야로 민생고를 해결했다. 이 산을 누볐을 풍운아 林巨正에게도 술 한 잔 권했다.

 

 

        

# 그늘은 시원한데 바람은 없다.

 

 

        

# 점심 후 바위에 기대 나뭇잎 별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 보고 느긋한 여유를 즐겼다. 바쁜 일정에 쫓기는 종주 산행이 아닌 이런 여유로운 산행이 아주 좋다.

 

 

        

# 한참을 쉰후 정상을 향해 갔다. 계곡길로 곧장 감악산 정상으로 오르는 '어름골재'.

 

 

        

# 잠시 후 감악산 정상에 도착했다. 넓은 광장과 군부대가 위치해 있다.

 

 

                              

# 신령한 산이라 감악이라 불렀다 한다.

 

 

        

# 정상석과 몰자비가 서 있다.

 

 

        

# 빗돌대왕 전설은 무얼까?

 

 

                               

# 과연 글씨가 전혀 없다.

 

 

        

# 정상 바로 아래에 하얀 성모상이 햇볕에 빛나고 있다. 이 산이 신령스런 산이라 천주교도 한 몫하려는 모양이다.

 

 

        

# 임꺽정봉이 건너다 보인다. 양주 백석의 임꺽정봉 역시 저런 모양이다.

 

 

        

# 뙤약볕이 너무 강렬해 오래 머물지 못하고 군부대 철조망 따라 까치봉 쪽으로 하산했다.

 

 

# 정상 바로 아래 작은 바위전망대가 있어 주변을 파노라마로 펼쳐보았다. 안테나 있는 정상과 임꺽정봉, 장군봉에서 신암리로 이어지는 능선과, 우측의 팔각정 지나 까치봉 지나 적성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팔각정.

 

 

        

# 이곳에서 야영하며 별구경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 개스가 짙어 좋은 조망은 아니다.

 

 

        

# 까치봉에서 적성으로 내려가는 능선. 요즘 계속 산 위에서 좋은 조망은 보지 못하고 있다. 개스 짙어 그렇다.

 

 

        

# 까치봉을 땡겨보고.

 

 

        

# 아래로 길게 내렸다가 한차례 밀어 올려 까치봉에 오른다. 까치봉에서 정상과 임꺽정봉을 올려다 본다. 바위에서 푸른 빛이 나오는 산은 분명하다. 눈에 보이는 산의 모습이 온통 검푸르다.

 

 

        

# 감악산은 나무데크가 많이 설치되어 있고 현재도 계속 공사중이다.

 

 

                              

# 지도에 쌍소나무로 표기되어 있는 소나무.

 

 

        

# 바로 아래에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하면 적성으로 가고 좌틀하면 범륜사로 내려 간다.

 

 

                                

# 열심히 살라는 말은 옳은데 태도가 영 불손하다.

 

 

        

# 바로 좌측 아래에 묵은밭 삼거리가 나온다.

 

 

                               

# 알아두면 좋다.

 

 

        

# 길게 내려 숯가마 쉼터, 범륜사를 지나 다시 시멘트 길 길게 내려 설마교 근처로 내려갔다. 대중교통으로 또 서너 시간을 가야 하므로 땀냄새가 너무 나면 곤란하다. 약간 으슥한 계곡으로 내려가 몸을 씻었다. 아이구~~ 조타!!!

 

 

        

# 설마교 입구 휴게소에서 아이스케끼 하나 사 먹으니 금상첨화로세!

 

 

        

# 10여 분 기다려 버스 타고 졸다 깨다 오래 달려 녹양역까지 갔다.

 

 

        

# 녹양역에서 1호선 타고 창동역까지 가고 다시 4호선으로 갈아타고 금정역으로, 다시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네 시간이 걸렸다.

 

 

감악산은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는 산은 아니지만 암봉이 발달하여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그곳에서 솟아난 짙푸른 산빛이 아름다운 산이다.


무엇보다 정상의 몰자비(沒字碑)가 던지는 글자 없고 내용 없는 이야기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마다 제각각 다른 이야기로 해석되는 요즘말로 멀티 컨텐츠의 생산자라 할만 하다. 산행기의 서두에 풀어놓은 이야기는 강/사/랑이 해석한 몰자비의 비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고려시대 가전체(假傳體) 소설 국순전(麴醇傳)의 작가이자 예안 임씨의 시조인 임춘(林椿)이 감악산을 노래한 한시 한 수(首)를 소개한다.

 

  

造物小兒眞好弄   조물소아진호롱

博沙戱作千峯象   박사희작천봉상

玆山首尾羌數州   자산수미강수주

天外廻翔如舞鳳   천외회상여무봉

 

조물주는 어린아이처럼 장난을 좋아하였는지

모래를 모아다가 많은 산봉우리를 만들었네

이 산머리에서 끝까지 몇 고을을 깔고 앉았는데

그 모습 하늘을 뚫고 나는 봉황과 같도다

 

- 고려시인 임춘(林椿)이 감악산을 노래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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