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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아홉번째 걸음(발산재~한치)-아, 내가 왜 이럴까? 본문

1대간 9정맥/낙남정맥 종주기

[낙남정맥]아홉번째 걸음(발산재~한치)-아, 내가 왜 이럴까?

강/사/랑 2012. 4. 16. 18:16
 [낙남정맥]아홉번째 걸음(발산재~한치)

   

 

'고문관(顧問官)'이란 말이 있다. 원래는 자문(諮問)에 응하여 의견을 전하고 기술을 전수해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만, 보통 군대에서 어리바리하게 제 역할을 못 해내는 부적응자들을 고문관이라고 부른다.

 

30여 년 전 강/사/랑은 몸무게 47kg의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초슬림한 몸매로 군에 입대하였다. 겉보기에 너무 약해 보여 다들 걱정하였지만, 나름 악으로 깡으로 무장이 되어 있고 센스도 제법 있는 편이라 고문관 소리를 들을 일은 전혀 없었다.

 

강/사/랑이 훈련을 받은 논산훈련소는 당시의 군대 문화에서 볼 때는 제법 체계를 갖춘 곳이라 교육성과(敎育成果) 위주로 신병 교육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었다. 그래서 교육성과가 좋은 훈련병들은 본보기로 교육을 일찍 마쳐 주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항상 빨리 교육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그룹에 속하곤 했었다.

 

그 당시 논산훈련소의 교관과 조교들은 마지막까지 남아 반복 훈련을 해도 교육성과를 못 내는 고문관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히거나 체벌을 가했는데, 그중 한 가지가 "내가 왜 이럴까?" 복창(復唱)이다. 고문관 중에는 기합을 주어도 효과가 없고 체벌을 가해 두들겨 패도 효과를 못 내는 끝판왕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고문관들에게 최후의 수단으로 "내가 왜 이럴까? 나는 바보야, 사회에서는 안 그랬는데, 군대 와서 또라이가 됐나 봐! 등등" 자기비하적인 복창을 시켰다. 이것은 일종의 심리적 자극을 주자는 의도로써 스스로를 바보라고 인정하고 모멸감을 느끼게 하여 조금이라도 개선을 시켜 보자는 처방인 셈이다.

 

뭐 그렇게 해서 교육 효과가 발생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내가 왜 이럴까?"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행위는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로서는 반드시 필요한 자기검증(自己檢證)의 절차다.

 

우리는 모두 인생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대부분의 경우 동일한 실수를 늘 반복하곤 한다. 개중에는 그 실수의 강도가 너무 커서 자신이 쌓아 온 인생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큰 실수를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나락에 빠지는 경우도 왕왕 볼 수 있다.

 

반복해서 성 추문(性 醜聞)을 일으킨다든지, 상습 도박이나 마약으로 뉴스에 등장하고, 거듭되는 막말이나 말 실수로 구설수에 올라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인생을 망쳐 버리는 유명인들이 그런 예이다. 그런 반복된 실수에는 나이나 직업의 구별이 큰 의미 없게 다양한 계층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인간들이 철저하게 습관(習慣)에 의해 행동이 좌우되는 유약(柔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습관은 오랜 세월 몸과 정신에 각인된 행동 양식이다. 돌에 새기듯 뿌리 깊은 습성이니 바뀌기 쉽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깊은 성찰(省察) 없이 찰나의 감정에 의해 행동을 결정하는 우(愚)를 늘 반복한다.

 

이러한 반복되는 실수에서 벗어나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 바로 "내가 왜 이럴까?"라고 하는 '자기 성찰(自己 省察)"이다. 자기 성찰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기 검증의 절차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왜 동일한 실수를 반복할까에 대한 이해를 할 때 비로소 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방안이 생겨나는 법이다.

 

논산훈련소의 조교들이 이런 실수 극복의 기전(機轉)을 알고 그렇게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그렇게 치밀한 검토 후에 나온 교육법은 아닐 것이다. 그저 "정신차려. 이 멍충아!" 같은 모욕적 꾸지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오랜 교육 경험을 통해 자신들도 모르게 효과 탁월한 훌륭한 교육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던 셈이다.

 

강/사/랑도 인생을 살면서 무수한 실수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내가 왜 이럴까?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등등 나름의 해결 방안을 갖고 실수를 극복하기도 하고 또 어리석게 반복하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실수의 반복은 아마 나의 한살이 전부를 통해 이어질 터인데, 그 반복 회수의 과다(寡多)와 실수의 강도에 따라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것이다. 다만 나이 들어가면서 조심성이 늘어 실수의 회수가 좀 줄어들기는 한다. 아마도 동일한 실수의 반복을 늘 경계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늘 가볍고 어리석다. 그리하여 아침에 다짐한 각오가 저녁이면 흐릿하기 일쑤다. 나 역시 늘 그러하다. 이번 낙남(洛南) 아홉 번째 길에도 그런 실수의 반복이 있었다. 산길에서 겪는 실수는 대부분 길 찻기의 판단 착오이다. 아무도 없는 오지(奧地)의 산속에서 잘못된 판단으로 길을 잃으면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동안 1대간 9정맥 종주를 하면서 그런 실수가 수시로 있었다. 늘 경계하면서도 어느새 그 실수를 반복하는 자신을 보는 일이 흔하다. 이번 산길에서 그 대표적 실수인 대형 알바를 또 범하였다. 실수 반복의 우(愚)였다. 그 결과 캄캄한 산속에서 홀로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전말은 이렇다. 11시간 정도 산길을 걸어서 지친 몸으로 마지막 봉우리인 대부산을 올랐다. 이 산만 넘으면 하루 일정의 산행이 끝나게 되어 있었다. 너무 힘이 들어 정신 멍한 상태로 정상 주변을 살피니 정상 입구 우측에 표지기가 많았다. 무심코 그 표지기를 따라 우측 길로 방향을 잡았다. 엉뚱한 산줄기를 타는 대형 알바였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캄캄한 산길을 두 시간 가까이 헤맸다. 여기가 어딘지 이 길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판단할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저 길의 끝을 기대하며 묵묵히 걸었다. 짜증나고 황당하며 어이없었다. 그러나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그저 걷는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어두운 산길을 홀로 방황하는 내내 내 머리를 떠나지 않던 말 한마디가 있었다. " 내가 왜 이럴까?"



아, 내가 왜 이럴까?


구간 : 낙남정맥 제 9구간(발산재~한치)
거리 : 구간거리(22km), 누적거리(149.12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2년 4월 14일. 흙의 날.
세부내용 :

발산재(07:00) ~ 줄무덤 ~ 290봉 ~ 326봉 갈림봉 ~ 태극기 고개 ~ 임도 ~ 임도표석 ~ 정맥복귀 ~ 355봉 ~ 큰정고개 ~ 399봉 ~ 오봉산 갈림봉 ~ 526봉 ~  524.4봉(10:40)/ 점심 후 11:40 出 ~ 오곡재 ~ 558봉 ~ 미산령 갈림봉 ~ 미산령(13:00)/휴식 20분 ~ 745 ~ 돌탑봉 ~ 돌들샘 갈림길 ~ 헬기장 ~ 여항산(14:40)/ 휴식 ~ 능선 쉼터/30분 취침 ~ 669봉/소무덤봉 ~ 709봉 ~ 706봉 ~서북산(17:10) ~ 갈밭골 고개 ~ 452봉 ~ 603봉/ 후 알바 ~ 송전탑 ~ 평지산 ~ 배틀산 임도 ~ 진북면 부산리 ~ 한치(20:00) 
           
총 소요시간 13시간.

 


2012년 4월 13일. 쇠의 날. 퇴근하여 짐 꾸리고 집을 나섰다. 오늘도 시각은 밤이 늦어 10시를 넘겼다. 고속터미널에서 심야 버스 타고 진주에 도착하니 새벽 3시 50분. 택시 타고 시외터미널로 이동하여 이른 해장국 한 그릇 먹고 늘 들르는 자금성 찜질방에 들어갔다.

 

여유 시간이 딱 30분이라 탈의실 한쪽 평상에 눕는데, 잠을 전혀 자지 못해 엄청나게 피곤한 데도 쉬이 잠을 들지 못했다. 딱 10분 까무룩 존 후 5시에 일어나 샤워하고 찜질방을 나섰다. 이렇게 잠을 전혀 못 자고 긴 산행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편의점에 들러 간식거리와 막걸리를 구입한 후 커피 한 잔 타서 들고 시외터미널로 갔다. 그리고 남마산행 05:50분 첫차에 승차했다. 목적지인 발산고개까지는 한 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이라 잠깐이라도 눈을 부칠 겨를은 있는데, 마침 오늘이 진동 장날이라 중간중간 타시는 시골 할머니들의 수다 때문에 역시나 잠을 전혀 자지 못했다. 발산고개에 도착하니 정확히 한 시간이 소요되어 6시 50분이다.

 

 

 여항산/艅航山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에 있는 산. 높이는 770m이다. 1583년(선조 16) 정구(鄭逑)가 함주도호부사로 이곳에 부임하여 이 산에 여항(艅航)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풍수지리학적으로 함안의 지형이 남고북저하여 나라를 배반할 기운이 있다고 풀이되어서 '배가 다니는 낮은 곳'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남쪽에 위치한 이 산에 지어준 것이다. 이곳에서는 각데미산, 혹은 곽데미산으로도 부르는데, 이는 정상 부근에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 진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6·25전쟁 당시 미군들이 전투에 지쳐 '갓뎀'이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계곡의 맑은 물과 산허리를 감싸는 운무, 산중턱의 원효암과 칠성각, 의상대, 서리봉, 피바위 등으로 유명하며, 6·25전쟁 때는 낙동강방어선으로 격전을 치른 곳이다. 정상에 오르면 20~30명이 앉을 수 있는 넓고 큰 마당바위(곽바위)가 있으며, 마당바위에서 남쪽에는 상여바위, 북쪽으로 조금 지나면 배넘기 도랑이 나오는데 노아의 홍수 때 배가 넘나들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산행에는 7코스가 있는데 어느 길이든 당일코스로 충분하다. 제1코스는 주서리 좌촌에서 정상에 올라 다시 좌촌으로 내려오면 2시간 걸리는 길이고, 제2코스는 좌촌으로 정상에 올라 서북산을 타고 갈밭골로 내려오면 4시간 걸리는 길, 제3코스는 좌촌으로 정상에 올라 미산을 타고 내려오면 3시간 걸리는 길, 제4코스는 미산을 타고 정상에 올라 서북산으로 해서 갈밭골로 내려오면 5시간 걸리는 길이다. 대중교통편은 가야읍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여항면 좌촌행 완행버스를 타고 좌촌에서 내린다. 


서북산/西北山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鎭北面)에 있는 산. 높이는  735.5m이다. 장년 산지의 특색을 보여 봉우리가 뾰족하고 사면이 급한 형세이다. 진북면의 서북단에 있다고 해서 서북산으로 불리며, 6.25때 2개월 동안 격전지가 된 산으로서 미군이 고전을 면치 못한데서 ‘갓데미산’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낙남정맥 제 9구간 발산재~한치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발산재를 거쳐가는 진주발 남마산행 버스 시간표.

 

 

 

# 외로운 산객을 발산재에 내려주고 떠나는 버스.

 

 

 

# 중앙분리대를 넘어 가면 도로 우측에 발산재 휴게소로 오르는 도로가 있다.

 

 

 

#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휴게소.

 

 

 

진주에서 발산재로 갈 때는 버스 기사에게 발산재 고개 위에 세워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한다. 발산에서 하차할 경우, 발산마을 버스 정류소에서 고갯길을 한참 걸어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고개 우측 아래에 지하통로가 있다고 하는데, 그냥 중앙 분리대를 넘어 무단횡단했다. 도로 우측에 휴게소로 오르는 도로가 있어 그 도로를 따르면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 발산휴게소가 나온다. 좋은 봄날이라 휴게소는 고요한 가운데 꽃향기와 새소리가 가득하다.

 

휴게소 한 켠에서 가볍게 몸 풀고 입구 우측에 있는 들머리로 향했다. 발산재 들머리는 특이하게 생긴 장승 둘이 대문을 벌리고 서서 길 안내를 하고 있다. 장승에게 인사하고 들머리로 스며들었다. 07:00.

 

 

 

# 휴게소 입구 우측에 들머리가 있다.

 

 

 

# 독특한 모습의 장승이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다.

 

 

 

# 오곡재까지는 네 시간 정도 걸린다.

 

 

 

들머리에서 우측으로 휘면서 올라 가는데, 워밍업을 위해 천천히 사면을 치고 오른다. 곧 묘지가 있는 능선에 이르고 좌틀하여 조금 더 가면 세로로 나란히 선 줄무덤이 나타나며 그 뒤로 봉우리 하나 우뚝하다.

 

그 봉우리로 오르는 길은 길고 가팔라 제법 힘을 써야 오를 수 있다. 땀에 흠뻑 젖어 배낭 내리고 쟈켓을 벗어 패킹하였다. 나무로 만든 벤치가 있는 '290봉'이다.

 

잠시 내렸다가 봉우리 하나를 넘고 그 각도 그대로 다시 봉우리 하나를 오르면, 누군가 PET병을 나뭇가지에 꽂아 둔 '326봉 갈림봉'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우측 길은 326봉으로 가는 길이고 정맥은 급좌틀하여 진행한다. 깊게 떨어져 옛고개를 지나고 이어서 송전탑도 지난 후 평탄하고 길게 진행했다.

 

그러다 태극기가 매달려 있는 고개를 만난다. 고개 우측에 임도가 정맥길과 나란하다. 임도파가 임도를 만났으니 당연히 임도로 내려섰다.

 

 

 

# 줄무덤과 뒤쪽의 290봉.

 

 

 

# 소박한 벤치가 있는 290봉.

 

 

 

# 326봉 갈림봉. 급좌틀하여 내린다.

 

 

 

# 송전탑을 지나고,

 

 

 

# 평탄한 소나무숲길이 길게 이어진다.

 

 

 

# 태극기가 있는 고개.

 

 

 

# 우측에 임도가 정맥과 나란하다.

 

 

 

임도파가 임도를 만났으니 물 만난 고기라! 콧노래가 절로 난다. 이 구간은 임도와 마루금의 표고차가 거의 없어 임도로 가나 산길로 가나 소요시간은 거의 동일하다. 중간에 봉우리 두 개가 있어 산길은 세로로 두 번 솟았다 내려야 하고 임도는 두 번 멀리 휘감아 돌아야 해서 그렇다.

 

임도 주변 숲속은 온통 진달래 꽃밭이라 꽃구경하며 콧노래 불러 가며 임도 탐방을 하는데, 산도야지들이 임도 주변을 많이도 파헤쳐 놓았다.

 

길게 진행하다가 임도 표석을 지나고 희미한 고개가 나타나며 좌측 위에 정맥길이 근접한다. 지도 꺼내 확인해보니 이곳이 임도와 정맥이 가장 가까운 곳이다. 물론 좀 더 임도를 따라가다가 산의 사면을 치고 올라도 되겠지만...

 

9시 13분에 정맥 복귀한 후 곧바로 한차례 밀어 올려 '355봉을 넘고 아래로 길게 내리면 옛고개를 지나게 된다. 전방에 526봉이 우뚝한데, 숲속엔 발정기 만난 고라니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위쪽으로 길게 밀어 올리면 '근정고개'에 이른다. 이 고개는 잘록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이하게 산 중턱에 위치한 고개다.

 

 

 

# 우측 멀리 여양저수지의 물결이 보인다.

 

 

 

# 임도 곳곳에 멧돼지 흔적이 많은데 임도 절개지를 이렇게 많이 파헤쳐저 우기때 토사가 쏟아질 위험이 있다. 멧돼지는 이런 의미에서도 유해조수가 될 수도 있겠다.

 

 

 

# 진진아!

 

 

 

# 99년도에 만들었나 보다. 1999년에 난 뭘했지? 낚시 다녔나?

 

 

 

# 정맥에 복귀.

 

 

 

# 커다란 고목나무 곁을 지난다.

 

 

 

# 한차례 길게 올려,

 

 

 

# 355봉에 오른다.

 

 

 

# 오곡재까지는 아직도 많이 남았다. 높은 봉우리도 두어 개 남았고.

 

 

 

# 근정고개.

 

 

 

이후 길고 길게 올라가는데 고도를 무려 250이나 곧장 올리게 되어 있어 힘이 많이 들었다. 그래도 꾸준히 발걸음을 옮기면 중력을 거슬러 위로 오르게 되고 곧 '암봉전망대'에 이른다. 아쉽게도 박무가 짙어 조망은 없다.

 

잠시 마루금을 따라 평탄하게 가다가 다시 한차례 낑낑 올리면 '오봉산 갈림봉'에 도착한다. 바로 뒤에 '526봉'이 있다. 하지만 힘들게 올라온 보람 없게 정상은 초라하고 조망도 빈약하다.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어 내렸다가 한 차례 올리면 '524.4봉'이 나온다. 비로소 정상의 면모를 보여주는 장소이고, 삼각점과 벤치, 그리고 조망도 약간이나마 볼 수 있다. 벤치에 짐 내리고 쉬었다 가기로 했다. 10:40.

 

 

 

# 암봉 전망대. 박무 때문에 조망은 없다.

 

 

 

# 꽤 힘들게 오른 오봉산 갈림봉.

 

 

 

# 힘들게 오른 보람 없게 초라한 526봉 정상.

 

 

 

# 정상다운 면모를 갖춘 524.4봉.

 

 

 

# 먼저 천지신명께 막걸리 한 잔 올리고,

 

 

 

# 음복으로 나도 한 잔. 오늘은 간만에 마눌이 이것저것 챙겨 넣었다.

 

 

 

 

정상 한 켠에 참나무를 잘라 만든 소박한 벤치가 있어 그곳에 마눌이 준비해 준 먹거리와 막걸리 한 잔 진설하고, 천지신명께 4배와 함께 기원을 올렸다.

 

아직은 그늘보다 햇살이 좋아 그 벤치에 그대로 앉아 음복으로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마음에 점도 하나 찍었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어 쬐끔 서운키는 하지만, 홀로 만찬도 나름 운치가 있어 스마트폰으로 음악도 한 곡 들으며 휴식을 즐겼다.

 

따스한 햇살 아래 풍류를 너무 오래 즐겼나? 정상 한 가운데 서서 팔 벌려 천지기운도 받고 거풍도 즐기며 한 시간 넘게 쉰 후 짐 챙겨 다시 길을 나섰다. 11:40.

 

잠시 진행하다가 갈림길 있는 봉우리에서 좌틀하여 깊게 떨어지는데, 잔봉을 두어 개 넘으며 길게 내려가면 '오곡재'에 이르게 된다. 12:00.

 

 

 

# 오곡재로 오르는 구절양장의 도로.

 

 

 

# 함안 군북면 오곡리 방면이다

 

 

 

# 가야 할 미산령이 올려다보인다.

 

 

 

# 아이고, 저 넘의 고개는 왜 그리 꼭대기에 있다냐?

 

 

 

# 오곡재.

 

 

 

# 군북 오곡과 마산 산서를 이어주는 고개인데, 군북 쪽에서는 오곡재, 산서 쪽에서는 비실재라고 모두들 자기네 동네 이름을 따서 부른다.

 

 

 

다른 산꾼들은 대부분 앞 구간을 진행하면서 이곳 오곡재까지 연결하여 진행하고 여기서 마산 방향으로 탈출하는 코스를 선택한다. 지난 번 구간 진행시 나 역시 계획은 여기까지 진행하는 것으로 하였었다.

 

오곡재에서 숲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르게 되고 살짝 내렸다가 다시 가파르게 위로 밀어 올린다. 식후라 기운이 펄펄나야 하는데, 어젯밤 잠을 전혀 자지 못했더니 체력 회복이 되지 않고 오르막 오르기가 무척 힘이 많이 들었다.

 

한차례 올려 '558봉'을 넘고 잠시 내렸다가 다시 계단식으로 위로 치고 오르게 된다. 작게 두 계단을 치고 오른 후 본격적인 오르막이 길게 이어지는데, 졸음이 밀려와 전혀 힘을 쓸 수가 없고 체력적으로 많이 부대낀다.

 

헉헉 낑낑 아주 힘들게 오르막을 올라 '미산령 갈림봉'에 이르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일부 지도에는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야 미산령이 나온다고 되어 있고 다른 지도에는 정맥길에 있는 고갯길이 미산령이라 기록하고 있다. 우틀하여 아래로 길게 내려가면 굳이 없어도 될 법한 동물이동통로와 정자가 있는 '미산령'에 이르게 된다. 13:00.

 

 

 

# 미산령 갈림봉까지는 아직 한참이구나!

 

 

 

# 올해 처음 만난 민들레.

 

 

 

# 귀한 산자고를 만났다. 산자고(山慈姑)는 자애로운 시어미란 뜻인데, 중국 이름이고 우리 말로는 까치무릇이란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식용이나 약재로 쓰인다. 백합과인데 꽃말은 봄처녀이다. 꽃말도 예쁘다.

 

 

 

# 미사령.

 

 

 

# 정자가 있고 도로 따라 자동차로 오를 수 있어 이곳에서 하룻밤 묵고 여항산 산행을 즐겨도 될 것 같다.

 

 

 

# 함안면 파수리 미산마을 방향.

 

 

 

# 함안의 인간세. 함안은 수박이 유명하다.

 

 

 

# 낙남정맥 안내판이 있다. 이곳까지 이르면서 느낀 바로는 사천, 진주, 마산의 낙남에 대한 이해는 높은 데 반해 고성군의 낙남정맥이나 독수리 등 천연기념물에 대한 이해나 관심은 적은 편이다. 고성군은 공룡발자국 한 가지에 올인하는 느낌이다.

 

 

 

# 진전면 여양리쪽 조망.

 

 

 

# 박무 때문에 깨끗하지는 않지만 나름 산첩첩을 보여준다.

 

 

 

정말 힘들게 미산령에 도착했다. 오곡재를 출발해서 정확히 한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하도 땀을 많이 흘리고 헉헉거렸더니 진이 모두 빠지는 기분이다. 주변 경치 구경할 생각도 못 하고 미산령 정자에 올라 짐 내리고 홀라당 벗어 열기에 들뜬 몸을 식혔다.

 

한참을 그렇게 알몸으로 열기를 식히자 비로소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 미산령은 진전면 여양리와 함안면 파수리 미산마을을 이어주는 옛 고개를 포장하여 자동차 통행이 가능하게 만들고 동물이동통로인 에코브릿지까지 설치하였는데, 정작 차단기를 설치하여 자동차로 고개를 넘어갈 수는 없다.

 

설사 차단기가 없더라도 이렇게 구절양장의 좁은 산길을 차로 넘을 사람은 없을 듯한데, 굳이 이런 첩첩 산꼭대기에 에코브릿지를 설치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 예산을 다른 차량 통행이 빈번한 고개에다 사용했으면 더 효율적일 텐데...

 

다만 정자는 아주 경치가 좋은 곳에 설치되어 있어 이곳까지 자동차로 올라서 정자에서 하룻밤 묵은 후 뒷날 여항산까지 가볍게 산행을 다녀오면 좋을 듯싶다. 20여 분 휴식한 후 여항산을 향해 길을 나섰다.

 

 

 

# 파수와 둔덕을 잇는다는  말쌈.

 

 

 

잠시 올라 능선에 이르고 이제부터는 위로 밀어 올리는 일만 남았다. 여항산은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한 산이라 등로를 전부 나무계단으로 정비하고 또 돌길로 덮어 두었다. 당연히 발걸음이 어색하고 무릎이 아프다. 게다가 이쯤에서부터는 극심한 졸음이 밀려 들기 시작하였다. 간밤에 잠을 전혀 자지 못하고 진주에 도착, 다시 이곳 발산까지 와서 산행을 했더니 몸이 견디질 못한다.

 

까무룩까무룩 졸면서 긴 계단길을 밀어 올려 '암봉전망대'에 이르는데, 전방으로 지나온 정맥길이 눈 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위로 올렸다. 계단길은 계속 이어지고 졸음 역시 계속 밀려든다. 졸며 걸으며 헉헉대며 빡세게 올리면 이정목이 나타나고 바로 뒤에 '745봉'이 나온다.

 

여항산까지는 아직 봉우리 몇 개를 더 넘어야 하는데, 잔봉 능선을 넘어 가다가 봉우리 하나를 올리니 '돌탑을 쌓아 둔 봉우리'가 나온다. 나도 돌 하나 얹고 기원을 올렸다.

 

다시 아래로 내렸다가 이정목 있는 갈림길을 지나고 한차례 치고 오르면 벤치와 데크가 설치되어 있는 봉우리에 이르게 된다. 여성 한 분이 데크에 앉아 쉬고 있길래 무서워할까봐 인사하고 얼른 지나쳤다. 곧 바로 파란 잔디가 자라는 '넓은 헬기장'을 만난다. 여항산 가기가 참 멀고 험하다. 다시 암릉길을 조금 더 진행한 이후에야 암봉으로 된 '여항산'에 오를 수 있다. 14:40.

 

 

 

# 여항산 오름은 온통 계단길이라 걸음걸이가 어색해진다.

 

 

 

# 길게 올라 암봉전망대에 이르면 지나온 정맥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 미산령갈림봉과 너머의 745.4봉.

 

 

 

# 둔덕마을에서 미산령으로 오르는 임도.

 

 

 

# 여양저수지.

 

 

 

 

# 넓게 파노라마로 펼쳐본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힘들게 오른 745봉.

 

 

 

# 여항산까지는 아직 봉우리가 몇 개 남았다.

 

 

 

# 지나온 745봉.

 

 

 

# 돌탑봉우리.

 

 

 

# 함안 여항면에서 오르는 갈림길.

 

 

 

# 지나온 정맥길.(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중간중간 갈림길이 나타난다.

 

 

 

# 한차례 길게 올라 쉼터에 이르고,

 

 

 

# 바로 뒤에 잔디가 파랗게 자란 헬기장이 나온다.

 

 

 

# 여항산은 조금 더 가야,

 

 

 

#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 여항산.

 

 

 

# 하지만 최고의 조망을 보여주는 곳이다.

 

 

 

# 가야 할 정맥길, 저 멀리 서북산.

 

 

 

# 서북산을 땡겨 본다.

 

 

 

# 여항산 좌측 여항면의 인간세.

 

 

 

# 이 고장은 여항산에 기대어 살고 있다.

 

 

 

# 지나온 방향으로 넓게 돌아보고,(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반대로 가야 할 방향으로 넓게,(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여항산은 낙남길 여러 산들 중 손에 꼽을 만한 조망을 보여주는 산인다. 꾸벅꾸벅 졸면서 이곳까지 왔는데 경치가 하도 좋아 졸음이 싹 달아났다.

 

다만 정상이 너무 좁아 오랜 휴식을 취하기는 조금 어렵고 박무 때문에 명쾌한 조망을 볼 수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그래도 정맥 좌우의 함안과 마산의 인간세, 걸어 온, 그리고 걸어 가야 할 정맥길 등을 눈으로 더듬으며 오래 조망 감상을 하였다. 기분 같아서는 홀랑 벗고 천지기운을 만끽하고 싶지만, 아까 그 여성분이 올라 올까 봐 그냥 정상에서 팔 벌려 천지기운을 받는 것으로 만족했다.

 

한참을 조망 감상하다가 다시 길을 나서면 곧 암릉 하산길이 나타난다. 옛날엔 밧줄 붙들고 용을 써야 하는 곳이었다지만, 지금은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편하게 내려갈 수 있다.

 

잠시 진행하면 갈림길을 지나고 데크가 있는 쉼터가 나온다. 헌데 졸음이 밀려와 도저히 더이상 갈 수가 없다. 결국 이곳에서 짐 내리고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서북산까지는 구불구불 한참을 가야 한다.

 

 

 

# 암릉 하산길을 나무계단으로 내렸다.

 

 

 

# 잠시 진행하다 만난 쉼터.이곳에서 졸음을 못이기고 한 잠 잤다.

 

 

 

피로가 너무 심해서 그런지 걸을 때는 까무룩까무룩 졸립더니 막상 자리에 누우니 몸은 무지 피곤하지만 정신은 말똥말똥해진다. 자리에 30여 분 누워 있었는데, 한 10분 정도 까무룩 졸았나 싶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토끼잠이라도 잤더니 몸이 많이 개운해졌다. 이왕 쉰 것 푹 쉬자 싶어 남은 막걸리와 간식 꺼내 민생고도 해결했다.

 

무려 한 시간을 쉰 후 15시 45분에 다시 길을 나섰다. 짧은 휴식이지만 졸음을 해결한 개운한 기분으로 평탄하게 가다가 로프 구간을 만나 아래로 내렸다. 아마도 지도상 '귀바위' 인가 보다. 다시 길게 진행하다가 위험 표시가 되어 있는 암봉을 만나 좌측으로 우회했다. 이곳이 지도상 669봉인 '소무덤봉'이다.

 

암릉길은 위험하다고 막아 두었는데 굳이 그곳으로 가라고 표지기를 매달아 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막상 지나보면 우회길이 더 빠르다. 암릉길이 별로 위험해 보이지는 않긴 하다만...

 

완만하게 고도를 낮추며 진행하다가 벤치가 있는 쉼터를 지나 아래로 더 내려갔다. 이후 오르내림 없이 길게 진행하다가 간혹 봉우리를 만나지만 우회하는 경우가 많다. 암봉전망대를 지나 계단식으로 밀어 올리면 '709봉'에 이른다. 바로 앞에 706봉이 오똑한데 중간에 암봉 하나를 지나 다시 올려야 '706봉'에 오르게 된다.

 

 

 

# 밧줄 구간이 있는 귀바위.

 

 

 

 

# 서북산까지의 산길을 파노라마로.(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통행을 막아 둔 소무덤봉.

 

 

 

# 지나와서 보면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는 않다. 동절기엔 얘기가 달라지겠지.

 

 

 

# 헬기장을 지나고,

 

 

 

 

# 여항산을 돌아본다.

 

 

 

# 땡겨보고,

 

 

 

# 우회하는 곳이 많다.

 

 

 

# 709봉.

 

 

 

 

# 지나온 정맥길과 여항산을 돌아본다.

 

 

 

# 여항산은 이 방향에서 보니까 그 진면목을 볼 수 있다.

 

 

 

# 706봉.

 

 

 

# 가야 할 서북산이 눈 앞에 보인다. 아직 한참을 가야 한다.

 

 

 

706봉에 서면 제법 넓은 바위가 있는데 지도에는 마당바위라 이름을 부여하고 있고 전방으로 가야 할 서북산까지의 능선이 눈에 들어 온다. 서북산까지는 아직 1.9km가 남았고 여항산에서는 2km를 온 거리인데, 계단식으로 내렸다가 안부에 이르고 다시 계단식으로 고도를 높여서 올라 가야 하는 형태다.

 

다행인 것은 중간에 큰 오르내림이 없다는 점이고 전체적으로 고도차가 적기는 하지만, 1.9km라는 거리는 부담이 된다. 여항산 지나서 한 시간을 쉰 것이 걱정이 되어 얼른 출발을 하고 자전거 타듯이 RPM 위주, 즉 잔걸음으로 걸음 수를 많고 빠르게 진행했다.

 

예상대로 큰 오르내림이 없어 속도도 빠르고 힘도 적게 든다. 모모음식점으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면 서북산 정상까지 600m 거리라는데, 600m가 참 멀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낑낑 대며 벤치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고 조금 더 오르면 넓은 헬기장이 있는 '서북산'에 이르게 된다. 17:10.

 

 

 

# 여항산에서 3.3km를 왔다. 음식점 갈림길.

 

 

 

# 벤치있는 봉우리를 지나,

 

 

 

# 서북산 정상에 이른다.

 

 

 

# 비교적 빨리 왔다.

 

 

 

# 넓은 헬기장이 있는 서북산정.

 

 

 

 

# 가야 할 대부산.

 

 

 

# 정맥에서 벗어나 있는 봉화산. 그리고 가야 할 대부산.(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서북산은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지여서 정상 한 켠에 전적기념비가 서 있다. 그 유명한 낙동강 전선의 한 축이 이곳 서북산이었나 보다. 육이오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애국자들이 역사적으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밀려 나 있듯이 이곳에서도 전적 기념비는 정상 가운데가 아니라 정상 아래 한 쪽 귀퉁이에 밀려나 있다. 씁쓸하다.

 

맞은 편에 가야 할 대부산이 우뚝한데, 대부산은 이곳 서북산에서 곧장 떨어진 이후에 바로 올리는 형태가 아니라 서북산과 멀찌감치 떨어져 솟아 있고 그 사이를 긴 회랑처럼 산줄기가 이어 주고 있다. 그만큼 시간 소요가 많이 된다는 얘기다. 어두워지기 전에 한치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서북산 하산길은 징그럽게 길고 가파른 내리막길이 길게 이어진다. 아마도 낙남을 서진하는 사람들은 이쯤에서 욕 꽤나 쏟아 낼 듯하다. 어찌나 경사가 급하고 깊게 떨어지던지 무릎이 후덜후덜 떨린다. 그렇게 길게 떨어져 정맥을 가로 지르는 고개에 도착했다. 17:40.

 

 

 

# 길고 가파르게 내려 도착한 고개.

 

 

 

이 고개는 진북면 영학리와 여항면 주동리를 이어주는 고개이고 이 주변 정맥의 사면은 농장들로 인한 임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곳이다.


지도를 보니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가서 위로 올리면 다시 정맥과 합류할 듯한데, 직진하여도 고도차가 그다지 많지 않아 고개를 지나 오르막에 스며들었다. 한 차례 올라 봉우리를 넘으면 과연 좌측에서 올라오는 고개가 있고, 지도에는 '감재고개'라고 적혀 있다.

 

이후는 넓은 수렛길이 길게 이어져 대부산 자락까지 연결되는데, 어느새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어 마음이 급해졌다. 한차례 올려 '452봉'을 넘고 아래로 내린다. 등로가에 멧돼지 흔적이 낭자해 호각 꺼내 불며 큰소리로 고함 질러가며 진행했다.

 

그러다 본격적인 대부산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오름 중간쯤에서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짐을 느낀다. 잠 못 자고 긴 산행을 해서 그런가 보다. 한걸음 한걸음 노래 불러 가며 힘겹게 고도를 높여 갔다. 그러다 바위 전망대를 만나 뒤를 한 번 돌아 보고 다시 대부산을 향해 낑낑 올라갔다.

 

그렇게 힘겹게 오르막을 치고 올라 능선 마루금에 이르면 좌측에 봉우리가 있어 대부산 정상인 듯한데, 우측으로 표지기들이 많이 휘날리고 있다.

 

 

 

# 서북산은 아직이다.

 

 

 

# 넓은 수렛길이 회랑처럼 길게 서북산과 대부산을 이어주고 있다.

 

 

 

# 이곳이 대부산 정상인 줄 알았다.

 

 

 

능선 갈림길 좌측 4,5m 쯤에 봉우리가 있어 당연 그곳이 대부산인 줄 알았고, 우측으로 표지기들이 많이 매달려 있어 그냥 좌측으로 사진 한방 찍고 우틀하여 표지기들을 따르기로 했다.

 

한 구간 앞서 진행하고 있는 해리님 내외는 산행마치고 한치의 진고개휴게소에서 벌써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얼른 그들과 합류하기 위해 대부산 정상석 확인하는 것 생략하고 우틀해 버린 것이다.

 

잠시 후 송전탑을 지나고 작게 봉우리 하나를 넘은 후 길게 가다가 다시 봉우리 하나를 치고 오르면 정상에 이 지역 특유의 나무 이름표에 '평지산'이라 적혀 있다. (이쯤에서 지도를 확인했으면 내가 정맥에서 우측으로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웬일인지 지도 꺼낼 생각도 안 했다.)

 

정상 좌측으로 표지기들이 많이 매달려 있어 그 방향으로 내려갔다. 까마귀들이 까악까악 기분 나쁘게 계속 울고 있다. 길게 내리면 갑자기 넓은 임도가 나타난다. 잠시후  임도는 좌측으로 휘감기고 직진하여 봉우리 하나를 넘어라고 표지기들이 손짓한다.(도대체 이 표지기들은 무어냐?)

 

봉우리를 넘어 아래로 내리면 다시 임도를 만나고 전방에 산 하나가 뾰족하게 솟아 있다. 당시는 이 산을 한치 직전의 봉우리로 굳게 믿었다. 임도는 한편으로는 평지산을 휘감아 돌아가고 한편으로는 전방의 산쪽으로 뻗어 있다.

 

잠시 진행하면 임도가 산의 우측으로 휘감기고 전방 산 정상 방향으로 표지기들이 많이 매달려 있고 '베틀산 가는 길'이란 팻말이 매달려 있다. 이때도 지도만 꺼냈으면 알바임을 알았을텐데 또 그냥 지나쳤다.

 

 

 

# 갈림길에서 표지기 따라 우측으로 잠시 가면 송전탑이 나타난다.

 

 

 

# 마당바위에서 전방의 봉우리를 올려다 보고,

 

 

 

# 그 봉우리는 평지산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다. 저렇게 표지기들이 많이 매달려 있으니 전혀 의심을 할 수가 없었다.

 

 

 

# 넓은 임도를 만났다. 이런 임도가 있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혹시나 해서 표지기들을 확인해 보니 J3클럽 등 유명 대간 정맥하는 팀들의 표지기들이라 아무 의심도 못 했다. 해리님과 통화하니 베틀산은 잘 모르겠고 아마도 한치 직전의 마지막 봉우리인 듯하니 그냥 임도를 따르란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입니다요!"

 

일단 임도를 따르기로 하는데,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와 이마에 불 밝히고 구불구불 임도를 걷는다. 그런데 우측 아래에 마을 불빛이 보이건만 임도는 점점 좌측으로 산을 휘감아 마을과 멀어지고 가도 가도 마을이나 불빛이 나타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아, 알바이구나! 도대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그런데 아직도 중간중간 나타나는 저 표지기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 순간에도 지도 꺼낼 생각은 못 했다.)

 

기다리다 지친 해리님이 전화를 해 오는데, 이쯤에서 알바임을 선언했다. "지금 알바예요. 일단 이 임도를 끝까지 진행해서 마을로 탈출할 테니 걱정 말고 기다리세요!"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마을이나 불빛은 나타나질 않고, 고도 역시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자꾸 헛웃음이 나오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대부산 정상을 확인해 보지 않은 것이 원인인 듯하다. 그쪽에서부터 일이 틀어졌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정맥길에 항상 만나게 되는 그 표지기들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를 않는다. 왜 이 방향으로 표지기들이 잔뜩 매달려 있었을까?

 

구불구불 임도를 얼마나 걸었을까? 대부산이라 착각한 능선 갈림길에서 6시 30분에 출발했으니 무려 1시간 30분을 이 산길에서 헤매었구나! 완전히 탈진하여 아래로 내리는데 개 짖는 소리 요란한 농장에 도착하게 된다.

 

농장 안에 들어가 문을 두드리니 도배를 하고 있던 사람이 나오는데, 자기들도 도배하는 인부라 이 동네를 잘 모르고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면 마을이 나오니 그곳에서 물어보란다.

 

다시 얼마를 더 내려가자 마을이 나타나지만, 노인들만 사는 시골 마을이 다 그렇듯 8시가 채 못된 이 시각에 산골 동네는 벌써 한밤중이다. 마침 전봇대가 나타나길래 한전에 전화해서 전봇대 번호 불러 주고 위치 확인을 하니 이곳이 한치고개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진북면 부산리 마을이다. 하이구야~ 우짜다가 이곳으로 왔을꼬?

 

부산리 마을 회관 앞에 배낭 내리고 털썩 주저앉아 택시를 기다리며 비로소 지도를 꺼내보니 정맥에서 우측으로 엄청난 거리를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도를 왜 진작 꺼내 볼 생각을 안 했을까? 평지산에서 낯선 산 이름을 봤으면 확인차 한 번만 꺼내 봤어도 이런 알바는 면했을 텐데...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저지르는 많은 실수들 중에는 중간에 한 번만 확인을 하면 얼마든지 파국을 피할 길이 있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경우도 그렇지만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 대형 스캔들 중에서도 당사자들 중 누군가 한 명만 점검을 했어도 최악의 경우는 피할 수 있는데, 거짓말처럼 모두가 파국을 향해 눈 멀고 귀먼 바보가 되어 달려간 경우를 허다하게 볼 수 있다. 일종의 집단최면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허~참! 헛웃음만 자꾸 나온다. 온몸이 땀범벅에 먼지투성이인데, 평소와는 달리 허탈하여 털 생각도 못 하고 땅바닥에 앉아 있다가 택시편으로 한치고개로 향했다.

 

 

 

# 알바의 궤적.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한치고개에 있는 진고개 휴게소에 도착하니 해리님도 나름 이 동네 주민과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어서 열을 받아 있다. "오늘 우리 둘 다 일진이 사나운 날이군요." 그 택시 그대로 다시 진동으로 향하는데, 마침 오늘이 진동에서 미더덕 축제를 하는 날이란다.

 

"미더덕은 생긴 것과는 달리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식품이라 알바와 봉변에 지친 우리 세 사람이 기분 전환할 좋은 계기가 될 터이니 그곳으로 가 봅시다."

 

 

 

# 전국 어디나 축제는 천편일률적이다. 풍물시장에, 연예인 불러 노래 부르고...

 

 

 

# 색기가 넘치는 목소리의 이름 모를 가수.

 

 

 

# 가끔은 이런 번잡한 소란스러움이 좋을 때도 있다.

 

 

 

# 오늘 일은 모두 잊고 막걸리나 한 잔 합시다!

 

 

 

# 기대한 만큼 맛은 없었다. 옛날 진주에 기가 막히게 미더덕 찜을 잘해 주는 집이 있었는데...

 

 

 

축제장에서 불친절과 기대 이하의 음식으로 실망스러웠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미더덕찜이라 넘어가 줄 만하였다. 그리고 축제에 들뜬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란스러움이 꿀꿀한 기분을 조금은 희석시켜 주어 나름 괜찮았다.

 

이후 짐 챙겨 다시 택시 타고 마산으로 나가 해리님 내외가 어젯밤에 묵었다는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나나 해리님 내외나 이 먼 길을 달려 와서 하루만 산행을 하고 가기에는 시간이나 비용이 너무 아까운데, 막판에 너무나 대형 알바를 했더니 더이상 산에 들어갈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컨디션 확인하고 각자가 알아서 산에 들어 가든지 아니면 마산 아구찜이나 복요리를 맛보기로 하고 각자 잠자리로 들었다. 그런데 우리가 잠자는 무슨무슨 방에 새벽쯤 술 취한 두 놈이 들어와서 남들 의식하지 않고 마구 떠들어 댔다. 그러더니 잠이 들었나 싶지만, 자는 와중에도 계속 잠꼬대로 술주정을 한다. 에라이 나쁜 놈들아!

 

결국 그 방을 나와 넓은 찜질방 한 쪽에 자리 잡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해리님 내외는 하루 더 산행을 한다고 산으로 들어 가고 없다. 잠시 고민하였지만, 이렇게 계속 어처구니 없는 알바가 반복될 때는 잠시 한 발 물러 서서 자신을 돌아 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나는 오늘 산행은 그만 두기로 했다.

 

찜질방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 먹고 싸우나에 들러 몸 풀고 짐 챙겨 찜질방을 나섰다. 마침 이 찜질방 근처에 마산역이 있어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니 10시에 서울행 KTX가 있다. 얼른 예매하고 걸어서 마산역으로 향했다.

 

무려 25, 6년 만에 와보는 마산역에서 열차 타고 책 좀 읽다 보니 어느새 광명역에 도착한다. 마중 나온 마눌과 외식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마산은 KTX가 연결되니 접근성이 이렇게 좋다.

 

 

 

# 정말 오랜만에 와보는 마산역.

 

 

 

어쨌거나 낙남길은 당분간 한 걸음 물러나 잠시 쉬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이 산길을 왜 걷는지부터 점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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