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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열번째 걸음(한치~마재)-잣대처럼 올바르게! 본문

1대간 9정맥/낙남정맥 종주기

[낙남정맥]열번째 걸음(한치~마재)-잣대처럼 올바르게!

강/사/랑 2012. 6. 4. 13:38
[낙남정맥]열번째 걸음(한치~마재) 

 

 

중국의 역사는 진시황(秦始皇)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진시황 이전에 하(夏), 은(殷), 주(周)로 이어지는 국맥(國脈)이 존재했었고, 그 이전에 신화(神話)로 전해지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시대까지 생각한다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중국이 온전히 중국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것은 진시황이 천하 통일을 이룬 이후부터다.

 

진시황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기 이전의 중원(中原)은 일곱 개의 강국이 군웅할거(群雄割據)하던 전국(戰國)의 시대였다. 진시황이 피비린내 나는 정복전쟁 끝에 마지막으로 산동지방에 있던 제(齊)나라를 멸망시킴으로써 비로소 중국은 하나의 나라로 역사 속에 등장하게 되었다.

 

흔히들 진시황을 일러 포악한 독재자요, 통일을 위해 무수한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목숨을 희생시킨 잔혹한 인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진시황은 냉철한 현실주의자인 동시에 통일국가의 기틀을 꿈꾼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그가 천하를 통일한 후 제일 먼저 채택한 정책은 바로 문자의 통일, 즉 동문(同文)정책이었다. 통일 이전의 7국은 제각기 다른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진시황은 이를 진나라의 소전(小篆)이라는 글자로 통일하였다. 그 유명한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 역시 버려진 육국 문자를 없애는 과정에서 파생된 일이다.

 

다음으로 채택한 정책은 동궤(同軌), 즉 수레바퀴 규격의 통일이다. 당시의 수레는 물자의 수송은 물론 전차(戰車)로써 전시에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전쟁 도구였다. 전국시대 모든 나라는 제각각의 바퀴 폭을 가지고 있어 적국의 전차가 마음 놓고 자기 나라에서 달릴 수 없도록 하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거운 수레가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도시의 도로마다 기차 레일 같은 수렛길이 생기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남북한을 잇는 거대한 아시아 대륙철도(大陸鐵道) 프로젝트가 구상되었지만, 끝내 결실을 보지 못한 것도 각 나라마다 열차의 궤간(軌間)이 표준궤(標準軌)와 광궤(廣軌)로 다른 것이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이런 사실은 2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역사가 진시황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씁슬한 자화상이었다 하겠다.

 

인문, 군사정책의 통일에 이어 국가 근간(根幹)을 이루는 것이 조세(租稅)정책의 확립이다. 조세는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 유지의 큰 기틀이어서 절대로 소홀할 수 없는데, 이 조세정책의 바탕이 바로 도량형(度量衡)의 통일이다. 역시나 당시 7국은 제각각의 잣대로 들이와 길이를 측정하였고, 이는 통일중국의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였다.

 

조세정책이란 것이 형평성(衡平性)의 바탕 위에서 확립되는 것이고, 이를 위해 도량형의 통일은 필수적이어서 진시황은 길이를 재는 자(尺)와 들이를 재는 말(斗)의 통일을 우선적으로 확립한 것이다.

 

이러한 통일정책의 근간 위에 진시황은 주나라 이래의 봉건제도를 없애고, 중앙집권적인 군현제(郡縣制)를 채택함으로써 통일천하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2천 2백 년 전 천하통일을 이룬 진시황의 인문, 국방, 경제, 정치제도의 확립은 세월이 흐르고 문명이 발달한 현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국가유지의 근간으로써 그가 단순히 독재자요, 침략자로 규정될 수만은 없는 생생한 증거가 되고 있다.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근본은 큰 변화가 없는 법이라 2,200년 전 진시황시대나 정보통신의 혁명을 이룬 현대나 마찬가지로 길이와 들이의 잣대가 동일하여 형평성을 확보해야만 국가 존립의 근거가 마련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과연 오늘날 우리나라는 이 들이와 길이의 잣대가 형평성을 이루고 있을까? 진보든 보수든 정권만 잡았다 하면 어김없이 각종 권력형 비리와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잣대로 상대 진영을 공격하여 단죄(斷罪)하는 일이 필수적으로 이어진다.

 

이는 정권교체가 일어나면 전세 역전(逆戰)을 이루어 이번에는 공격자가 바뀌어 반대로 상대 진영을 박살내는 피비린내 나는 정치보복의 악순환(惡循環)으로 이어지게 된다. 조선왕조시대 오백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던 사화(士禍)의 재현에 다름 없는 일이다.

 

이러한 추악한 악순환의 바탕에는 권력과 돈의 더러운 거래 관행이 단절되지 않는 데도 그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자기만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도량형의 이중성(二重性)에 그 원인이 있다. 진보는 진보의 잣대로, 보수는 보수의 잣대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는 또 제각각의 잣대로 자신들에게는 관대하게 상대방에게는 가혹하게 잣대를 들이대고 공격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진시황시대보다 더 문명화(文明化)되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진시황의 천하통일 정책처럼 우리나라의 잣대를 동일하게 만들 도량형의 통일이 무엇보다 절실한 요즘이라 하겠다.

 

강/사/랑의 낙남정맥 열 번째 걸음은 고성, 함안을 지나 마산으로 들어서게 되고, 대중교통 도착지도 진주가 아닌 마산으로 변하게 된다.

 

낙동의 줄기가 해안도시인 부산에 이르러 엄광산, 고당봉, 백양산 등 빼어난 산줄기를 바다와 나란히 품고 가듯이 낙남의 줄기 역시 마산에 이르러 광려산, 대산, 무학산 등 도시 외곽의 산이라기엔 놀라울 정도로 멋진 산세를 가진 산줄기를 바다와 나란히 품고 있다.

 

특히 '무학산(舞鶴山)'은 마산의 진산(鎭山)으로써 항구도시 마산의 역사적 부침(浮沈)을 오랜 세월 묵묵히 함께 해 온 마산 그 자체의 산이다. 무학산은 산세가 마치 학이 날개를 펼쳐 춤을 추는 듯한 형상이라 얻은 이름이라 하는데, 원래의 이름은 '두척산(斗尺山)'이다. 무학산이란 이름은 일제시대 이후에 생겨난 이름이다. 실제로 광여도, 대동여지도 등에는 두척산이라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얼마 전 무학산이란 이름이 일제의 잔재이니 두척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오랫동안 논쟁을 벌렸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결론에 이르지는 못한 듯하다.

 

두척산이란 이름은 '말 斗', '자 尺'이란 글자에서 보듯이 조세정책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과연 고려초부터 마산의 옛이름인 합포에는 지방의 곡식을 모아 조정으로 보내는 조창(漕倉)인 석두창(石頭倉)이 있었다고 나온다. 영남 일대에서 조세로 거둬들인 미곡들이 이 석두창을 통해 고려조에는 송도로 조선시대에는 한양으로 보내졌던 모양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 당시 쌓여있는 곡식 더미가 석두창 앞에 우뚝 서 있는 두척산의 어느 높이에 이르는지 눈으로 재어보고 세금으로 거둔 곡식의 양과 하역 운송작업의 시간을 짐작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합포의 진산으로 우뚝 선 산이 두척산이란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된 유래다.

 

지금도 무학산 좌측에는 곡식과 관련한 '쌀재고개'가 있고, 우측에는 곡식의 양을 재는 말(斗)에서 연유하여 '말재'로 불리다 '마재고개'로 변음된 고개가 있으며, 그 곁에 '두척동'이란 동네도 남아 있다. 모두가 도량형의 기준으로써 두척(斗尺)의 존재를 보여주는 역사이다.

 

마산(馬山)이란 이름도 이러한 '두척(斗尺)'의 '말'에서 유래하여 마산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고려말 여몽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합포에 진을 치고 말을 키워서 마산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과 함께 마산의 지명유래로 알려져 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피정복국가로써 또다른 전쟁의 희생양이 된 말과 관련된 지명유래보다는 도량형의 잣대로써 말과 관련된 지명 유래가 더 신빙성이 가고 끌리는 바 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이 제각기 자기만 옳고 자기 진영만 절대선(絶對善)이라고 아전인수격으로 재는 왜곡된 잣대의 창궐(猖獗)에 지쳤기 때문이다.

 

어감상으로는 무학산이 훨씬 더 부드럽고 정감이 가지만, 두척산이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가 더 끌림은 올바른 잣대의 통일을 바라는 소박한 소망에 바탕함일 것이고!

  



잣대처럼 올바르게!


구간 : 낙남정맥 제 10구간(한치~마재)
거리 : 구간거리(15.6km), 누적거리(164.72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2년 6월 3일. 해의 날.
세부내용 :

한티재(08:15) ~ 광려산(09:30) ~ 752봉/광려산 ~ 704봉/광려산아래 갈림봉 ~ 657봉 ~ 대산(11:35)/점심 후 12:20 出 ~ 광산먼등 ~ 윗바람재 ~ 산불감시초소 ~ 바람재(13:00)/30분 휴식 ~ 447봉 ~ 쌀재고개(13:50) ~ 헬기장 ~ 대곡산/ 20분 휴식 ~ 체육시설 전망대 ~ 안개약수터/ 20분 휴식 ~ 무학산(14:10) ~ 하산초입 간식/30분 휴식 ~ 710봉 ~ 시루봉갈림길 ~ 662봉 ~ 524봉 ~ 중리역갈림길 ~ 송전탑 갈림길 ~ 마재고개(18:00). 
           
총 소요시간 9시간 45분.

 


2012년 6월 2일, 흙의 날. 회사 직원 두 명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라 토요일엔 산에 못 가고 예식장을 한 군데 가야 한다. 두 명이 같은 날 결혼하는데, 식장을 한 군데만 가도 되는 이유는 그들 둘이 결혼하기 때문이다. 사내 커플이 결혼을 하니 여러 가지로 간편하고 좋다. 결혼식장을 한 번만 가도 되고 축의금도 한 번만 내도 되고...

 

마눌에게 예식장 들렀다 산에 가겠노라 했더니 고속터미널 상가에서 쇼핑 좀 하겠다고 차 운전을 해 주겠단다. 덕분에 결혼식 마치고 집에 다시 들를 필요 없이 자동차에 산행 짐을 실어 두고 양복 차림으로 예식장을 갔다.

 

예식장 주차장에서 등산복으로 갈아 입고 고속터미널 앞에서 마눌과 만나 자동차를 넘겨 준 후 나는 마산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지난 4월 이후 무려 두 달 만에 나서는 낙남길이다.

 

음악 들으며 책 보며 졸며 하다 보니 마산에 도착하게 되고, 시내버스편으로  마산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찜질방을 찾아 갔다.

 


광려산/匡廬山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과 함안군 여항면·함안면·산인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720m이다. 중생대 백악기 말기(약 8천만 년 전)의 퇴적암이 주류인 함안층 산지로, 주봉은 삿갓봉이다. 마산 무학산(舞鶴山:761m)이 물가에 춤추는 학이라면 등뒤 서쪽에 숨겨져 알려지지 않은 이 산은 학집같이 아기자기한 맛이 나며, 《삼국사기(三國史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창원읍지(昌原邑誌)》 등에도 기록되어 있는 유서 깊은 명산이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과 진북면, 함안군 여항면·함안면·산인면과 경계를 이룬다. 남북의 대산(代山:727m)에서 730봉과 이어져 산세가 당당하다. 무학산·대산·광려산·730봉으로 둘러싸인 내서읍 감천골(감골 또는 중마을)은 첩첩산골로 700m급 산들 때문에 청정한 풍광을 지녀 사철 마산 등지에서 찾는 산꾼과 유람객들로 붐빈다.  기슭에는 신라 때 절 광산사(匡山寺)를 비롯하여 법륜사(法輪寺) 등의 사찰이 있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옛날에는 함안고을을 오가던 광산재·매봉재·질마재 등의 고갯길이 있었다 한다. 이 산의 매력은 광산·매봉·길마봉·상투봉·삿갓봉(또는 투구봉)·중바위(또는 흔들바위) 등 빼어난 봉우리들이 한자리에 앉은 골짜기와 천혜의 비경을 등산객들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내서읍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주산이며 젖줄인 광려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대산의 계곡물을 모아 광려천(光廬川)을 이루고 무학산·화개산(華蓋山:445m)·천주산(天柱山:656m)의 지류 안성천(安城川)과 삼계천(三溪川) 등을 안고 장장 50여 리를 감돌아 기름진 들녘을 넓히며 낙동강 중류에 합류한다. 광산사 약수터에서 계곡을 지나 폭포의 오른쪽 산비탈과 동릉을 거쳐 정상의 돌탑 옆에 표지판이 있다.《가고파》의 남쪽바다와 마산 진동면이 보이고 등뒤로는 함안 여항산(艅航山:744m)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밖에 마산 월영동의 만날재에서 쌀재와 바람재(평전)를 거쳐 대산에서 남릉을 타는 길과 여항면 내곡에서 직접 오르거나 내서읍 삼계마을 뒤쪽의 상투봉을 지나 광려산과 대산을 종주하는 코스도 있다.


무학산/舞鶴山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에 있는 높이 767m의 산으로 백두대간 낙남정맥의 최고봉이다.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갈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마산지역을 서북쪽에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크고 작은 능선과 여러 갈래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동쪽으로 뻗어난 서원계곡에는 수목들이 수려하다. 산세는 전체적으로 경사가 급한 편이다. 봄철이면 진달래꽃이 산록에 넓게 퍼져 있으며, 전국에서 손꼽힌다. 대곡산(516m) 일대의 진달래군락이 가장 화려하고 밀도도 높다. 진달래는 대개 4월 중순에 산기슭을 물들이기 시작하여 하순이면 절정을 이룬다. 산행은 자산동 약수터를 기점으로 한다. 자산약수를 거쳐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지능선의 중간 봉우리인 학봉을 만난다. 이 봉우리에 올라서면, 학이 비상하려는 듯한 진면목이 한눈에 들어온다. 학봉은 암봉 일대에서 진달래빛이 유난히 고운 봉우리이며, 여기서 주능선에 이르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주능선에 이른 다음,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가면 정상이다. 정상에서는 동쪽으로 구(舊) 마산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주능선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남해뿐만 아니라 다도해의 풍광도 전망된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상에 702m 봉우리가 솟아 있고, 그 사이에는 ‘서마지기’란 이름의 넓은 공터가 자리잡고 있다. 하산은 능선을 따라 관해정이 있는 서원계곡으로 내려가면 된다. 제2코스는 서원곡계곡으로 들어가 오른쪽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먼저 702봉에 이르러 서마지기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방법으로, 대표적인 코스이다. 그밖에 종주코스 산행인데, 먼저 남쪽의 만날고개에서 북쪽으로 대곡산에 이른 후 무학산 정상에 다다르고, 하산길에 702봉을 지난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274봉에 닿는다. 이곳을 거치면 봉화산에 도달한다. 산행시간은 3~ 4시간으로, 거의 모든 코스를 산행할 수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낙남정맥 제 10구간 한치~마재 지형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낙남하면서 마산행 버스는 처음 타게 된다.

 

 

 

# 지난 번 한치에 내려 선 후 해리님 내외와 같이 하룻밤 묵었던 찜질방.

 

 

 

요근래 일에 치여 많이 피곤한 데다 간밤에 옛 직장 동료를 만나 막걸리를 두 통이나 마셨더니 몸 상태가 엄청 좋지 않다. 그리하여 주말의 소란스런 찜질방 환경에도 불구하고 깊이 잠이 들었다. 그러다 눈 뜨니 새벽 2시, 좀 더 자야지... 다시 눈 뜨니 3시, 좀 더 자자... 그렇게 4시, 다시 5시 반이 되어서야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나게 된다.

 

원래 계획은 4시 반쯤 일어나 먹고 씻고 마산역으로 가서 한치 아래의 진북면 대현마을까지 가는 6시발 버스를 탈 계획이었는데, 잠에 취해 놓치고 말았다.

 

이왕 늦은 것 느긋하게 아침 먹고 씻고 밖으로 나가 길 건너에서 진동행 버스를 기다렸다. 20여 분 이상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고 택시 정류소에 가서 한치까지 요금을 물으니 25,000원이나 요구해서 망설이는 차에 마침 진동행 70번 버스가 들어 온다.

 

얼른 달려 가서 탑승하니 진동까지 버스 요금은 1,000원, 다시 진동에서 한치까지 택시 요금 10,000원, 도합 11,000원에 한치에 도착하였다.

 

 

 

# 한치에 있는 진고개 휴게소. 

 

 

 

# 나를 내려 주고 돌아가는 진동택시.

 

 

 

휴게소 한 켠에서 가볍게 몸 푼 후 도로를 건너 오늘 구간 들머리를 찾았다. 08:15. 예상보다 출발시각이 늦어 걱정이 되지만, 어차피 오늘 구간은 거리가 15.6km밖에 되지 않으니 큰 부담은 없다.


그나저나 요근래 봄이 사라져 버리고 때 이른 무더위가 기성을 부려 모두들 이상 기온이다 지구 온난화다 해서 기후 변화의 이슈가 되고 있는데, 오늘 역시 아침부터 푹푹 찌는 것이 만만치 않을 모양이다.

 

휴게소 길 건너 한우식당과 큰 느티나무 사잇길로 들머리가 열려 있어 길을 찾아 오른다. 날 무더워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시작부터 곧장 위로 밀어 올리라 한다. 한 차례 길게 밀어 올린 후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지나도 여전히 우측 숲길로 위로 올라야 한다.

 

이후 점차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하여 힘들 때면 언제나 하는 숫자세기를 했다. 하나, 둘, 셋... 백... 이백... 오백! 이런 끝이 없네? 육백, 칠백, 팔백... 어디까지 계속 이렇게 경사가 계속 될려나? 천, 천백... 어허!  천오백, 천육백... 어쭈구리? 이천, 이천백, 이천이백, 이천삼백을 세고서야 비로소 봉우리에 오르게 된다. 아이고~ 대단하다!

 

잠시 편안하게 마루금을 따르다가 살짝 올리면 드디어 오늘 구간의 첫 포스트인 '광려산'에 이른다. 09:30.

 

 

 

# 큰 느티나무 옆으로 들머리가 있다.

 

 

 

# 빡세게 위로 밀어 올리면 중간에 이정목을 만난다.

 

 

 

# 힘들게 오른 광려산 정상. 삿갓봉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다.

 

 

 

# 정상 한 쪽에는 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 저 멀리 무학산이 보인다.

 

 

 

# 진북면 대현리 일대의 인간세가 내려다보인다.

 

 

 

# 가야 할 정맥길.

 

 

 

한 시간 십오 분 동안 곧장 위로 치고 오르기만 한 셈인데, 한 번의 오름질로 이미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물구덩이다. 노출된 정상엔 '광려산 삿갓봉'이란 정상석이 서 있다. 이 지역에서는 이 봉우리를 삿갓봉, 정맥길에 있는 752봉을 광려산이라 부르고 있다.


하지만, 국립지리원 지도를 비롯한 여러 지도에서 이 봉우리를 광려산, 다음 봉우리는 이름 없이 그냥 752봉이라 높이만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주봉인 이 봉우리의 높이가 720.2m로 우측에 있는 752봉 보다 높이가 낮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그렇게 표기하고 있나 보다.

 

정상 한 쪽에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대현마을 쪽 인간세가 내려다 보이지만, 오늘은 박무가 짙어 조망이 깔끔하지는 않다. 그래도 그 데크에 앉아 20여 분 휴식하였다. 그러다 막 출발하려는데, 지역 산객 한 분이 올라온다. 그와 인사를 나누고 우틀하여 길을 떠났다.

 

좌측 길은 감투봉으로 가는 길이다. 현지의 이정목에는 투구봉이라 적혀 있다. 편안하게 마루금을 따라 진행하다가 한차례 올리면 '전망대'가 나온다. 지나온 한티재와 전 구간의 봉화산과 너머로 여항산도 건너다 보인다. 전망대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752봉'이다. 10:10.

 

 

 

# 정맥은 우틀.

 

 

 

# 바위전망대의 조망. 지나온 정맥길과 한티재의 인간세.

 

 

 

# 저 멀리 여항산이 우뚝하다.

 

 

 

# 752봉.

 

 

 

# 지나온 광려산.

 

 

 

잠시 마루금을 따르다가 전방이 트이는 곳을 만나 아래로 떨어져 내리게 되고, 잠시 후 광산사 갈림길을 만났다. 다음 포스트인 대산까지는 아직 2.2km를 더 가야 한다.

 

아래로 더 내렸다가 안부에서 치고 올라 봉우리를 하나 오른다. 정상 좌측에서 우회하고 곧바로 한차례 더 올려 벤치가 있는 '705봉'에 이른다.

 

 

 

# 전방이 트이며 저 멀리 대산이 보인다.

 

 

 

# 광산사 갈림길.

 

 

 

# 벤치가 있는 705봉.

 

 

 

정상의 이정목에는 '광려산 아래 갈림길'이라 적혀 있다. 아래로 내렸다가 봉우리 하나를 넘고 다시 내리는데, 갈림길이 나타나고 좌측 산불조심 표시목이 있는 방향과 직진 모두에 표지기들이 많이 매달려 있다. 나침반 확인하니 직진 방향이 동진 방향이라 그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시 아래로 내렸다가 한 차례 올려 '657봉'을 넘은 이후 본격적인 대산 오르막이 시작된다. 대산 오름은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데 두 번째 계단은 봉우리이고 세 번째 계단이 가장 가파르다.

 

낑낑 소리내며 위로 오르면 암봉에 설치된 계단이 나타난다. 위로 오르면 멋진 조망이 지친 나그네를 반겨 준다. 지나온 산줄기와 인간세를 한참이나 감상하다가 잠시 더 오르면 '대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11:35.

 

 

 

# 가야 할 대산.

 

 

 

# 좌측 멀리 무학산.

 

 

 

# 양 방향 모두에 표지기가 매달려 있어 잠시 헷갈린 갈림길.

 

 

 

# 대산까지는 계단식으로 올려야 한다.

 

 

 

# 나무계단이 설치된 암봉.

 

 

 

# 지나온 정맥길. 1시 방향 광려산의 모습.

 

 

 

# 광산사의 모습.

 

 

 

# 정맥 우측의 추곡저수지.

 

 

 

 

# 지나온 정맥길을 넓게 펼쳤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대산 정상.

 

 

 

대산 정상은 멋진 조망을 보여 주는 곳인데, 오늘은 박무 때문에 모든 것이 흐릿하다. 그래도 저 멀리 마산 앞바다의 물결과 돝섬, 그 곁에 정박해 있는 선박들의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가야 할 쌀재고개와 그 뒤에 우뚝한 무학산의 위용도 한눈에 들어오고...

 

잠시 조망 감상하다가 정상을 나와 등로 한 켠 암봉 위에 자리 깔고 마음에 점 하나 찍기로 했다. 천지신명께 술 한 잔 올리고 여러 소망을 담은 4배도 올린 후 음복으로 나도 막걸리 한 잔 들이켰다. 캬~ 시원타~

 

지나던 산객이 노란 양은으로 된 내 막걸리 잔을 보고 감탄하였다. 몇 해 전 겨울 잣나무숲 야영하러 가면서 청평 매운탕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놈을 샀다는 말은 못했다. 오래 휴식타가 12:20에 출발했다.

 

 

 

# 박무 때문에 조망이 아쉬운 마산 앞바다.

 

 

 

# 무학산.

 

 

 

# 정상부를 땡겨보고.

 

 

 

# 가야 할 정맥길 모두를 한 눈에 본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암봉 한 쪽에 자리 깔고 천지신명께 술 한 잔 올렸다. 나도 마음에 점 하나 찍고.

 

 

 

잠시 가다 보면 벤치가 있는 봉우리가 나오고, '광산 먼등'이란 지도에 표식 없는 작은 정상석이 서 있다. 이후 길게 떨어져 내리게 되는데 뙤약볕에 노출되어 힘이 많이 들었다. 길게 내려 안부에 이른 후 한차례 낑낑 올리면 '윗바람재'에 이르게 되고, 잠시 더 가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569봉'에 이르게 된다.


조망 구경하다가 다시 출발하였다. 569봉 내리막은 아래로 깊고 깊게 떨어져 내리는 형태다. 뙤약볕과 가파른 경사가 합동으로 홀로 산꾼을 힘들게 만든다. 13:00. '바람재'에 내려섰다. 넓고 잘록한 안부인 바람재는 그 이름처럼 바람이 아주 성(盛)한 바람의 고개다.


바람재란 이쁜 이름을 가진 곳으로는 백두대간 황악산 자락의 바람재가 유명한데, 그곳은 올해 우리 홀로 산꾼들의 시산제 장소이기도 하다.

 

바람재 정자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그 바람 그냥 두고 떠날 수가 없어 짐 내리고 오래오래 그 바람을 즐겼다. 대산 정상에서 만났던 지역 등산객들이 옆에 앉아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댔다. 완전무장하고 홀로 산길을 걷는 내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고 부럽고 그런 모양이다.


 

 

 

# 광산 먼등.

 

 

 

# 인간새 하나 바람재에서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

 

 

 

# 윗바람재.

 

 

 

#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569봉.

 

 

 

# 마산앞바다가 내려다보인다.

 

 

 

# 가고파의 고향 마산.

 

 

 

# 바람재.

 

 

 

# 넓은 안부와 정자가 있다.

 

 

 

# 툭 트인 바람골이다.

 

 

 

# 쌀재 아래를 통과하는 5번 국도.

 

 

 

생각같아서는 그냥 이 바람 끝까지 즐기며 쉬고 싶지만 그럴 수야 있나? 아쉬운 바람 옷자락에 매달고 다시 길을 나섰다. 쌀재까지는 오똑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를 하나 넘어야 하는데, 좌측으로 임도가 산허리를 휘감아 쌀재까지 이어지고 있어 잠시 갈등을 하게 만든다.

 

마음은 임도를 외치는데, 몸은 나도 모르게 산길로 올라가고 있다. 계단식으로 낑낑대며 위로 치고 오르면 '447봉'에 이른다. 정상에서 우측으로 방향 잡아 내린다. 오른 것보다 더 깊게 내리라 한다. 산허리를 가로로 길게 조성된 밭을 두 번 가로질러 아래로 내리면 '쌀재고개'에 도착한다. 13:50.

 

 

 

# 긴 밭을 두 번 지났다.

 

 

 

# 쌀재고개에는 까마귀들이 난리다.

 

 

 

# 전방에 우뚝한 대곡산.

 

 

 

# 쌀재고개.

 

 

 

쌀재고개는 이 지역 사람들이 무학산이나 대산으로 오르는 기점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다. 고개 정상부가 사유지라 철조망으로 막혀 있고 정맥길도 당연히 단절되어 있다. 그 옛날 합포 포구로 쌀을 지어 나르던 쌀재고개이건만, 오늘은 개인 농장이 고개를 단절시키고 있고 산을 찾는 산객들만이 드나들 뿐이다.

 

사거리로 갈라지는 쌀재고개에서 좌측 길로 꺾어 내려 잠시 가다 보면 우측으로 등로가 열려 있다. 곧장 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계단길이 시작되는데, 가파르게 치고 오르다 보니 대산에서 마신 막걸리가 이후 뙤약별에 노출되어 열이 오른 데다가 가파르게 오르막 치고 오르느라 더욱 체온이 올라 몸속에서 마구 발효가 되는지 속에서 열이 너무나 난다.

 

속에서 발효되어 부글거리는 술기운에 취하고, 먼길 내려오느라 잠 못 자서 졸음에 취하여 다리가 휘청휘청 흔들렸다. 계단길을 오르다 두어 번 주저앉아 쉬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봉우리를 오르고, 묵은 헬기장을 지나 한 차례 더 올리면 '대곡산정'에 이르게 된다. 아이고~ 힘들다!

 

 

 

# 개인사유지 때문에 정맥길이 막혔다.

 

 

 

# 잠시 도로를 따르다 보면 우측에 등로가 열려 있다.

 

 

 

# 정말 힘들게 오른 대곡산.

 

 

 

# 아휴~ 힘들다!

 

 

 

너무나 졸립고 힘들어 그늘이 있는 참호 속에 털썩 주저 앉았다. 무학산을 찾은 지역 주민들이 이런 내 모습을 보며 힐끗거리며 지나 간다. 그러나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15분 정도 넋을 놓고 있다가 다시 수습하여 길을 나섰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않아 운동시설과, 조망데크, 그늘이 있는 쉼터가 나온다. 아휴~ 여기서 편하게 쉴걸...

 

 

 

# 쉼터의 조망데크.

 

 

 

# 마산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 유원지가 있는 돝섬.

 

 

 

# 마창대교.

 

 

 

# 마산항 일대.

 

 

 

# 25년 전 첫 직장을 다닐 때 마산에서 잠시 산 적이 있는데, 그때와는 너무나 달라졌다.

 

 

 

이후 편안하게 진행하다가 잘게 두어 번 오르다 아래로 내렸다. 전방에 무학산이 우뚝한데, 아직 전위봉 두 개를 더 넘어야 한다. 고도를 높이며 계속 전진하다 보면 봉우리를 두 개 만나게 되는데, 다행히도 모두 좌측으로 우회하게 되어 있고 길게 밀어 올리면 '안개약수터'에 이른다.

 

이 약수터는 시원한 그늘과 정자, 벤치를 갖추고 있고, 무엇보다 시원한 물이 졸졸졸 잘도 나오고 있어 휴식처로는 그만이다. 수낭 속에 있는 미지근한 물을 모두 버리고 시원한 약수를 가득 채웠다. 물론 몸 속에도 시원한 약수를 가득!

 

20여 분 동안 벤치에 앉아 휴식하였다. 오늘 정말 많이 쉰다. 일반적으로 남들은 정맥 한 구간을 한다면 점심시간 포함해서 길어야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할 테지만, 오늘 나는 더위 때문에 그 몇 배의 시간을 휴식하게 된다.

 

오래 휴식한 후 다시 길을 나서 곧 바로 오르막을 치고 오르게 되는데, 넓은 등로가 정상을 향해 열려 있어 뙤약볕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여름날 밭 가는 소처럼 쉭쉭대며 위로 오르다 보면 오늘 구간의 최대 포스트인 '무학산정'에 도착한다. 14:10.

 

 

 

# 처음은 편안하게 고도를 높인다.

 

 

 

 

# 물이 정말 시원한 안개약수터.

 

 

 

# 정자까지 갖추고 있다.

 

 

 

# 쉭쉭 낑낑 오르다 보면 정상이 가까워진다.

 

 

 

# 뙤약볕이 강렬하다.

 

 

 

# 무학산정(舞鶴山頂).

 

 

 

# 태극기 펄럭이고 있다.

 

 

 

# 지나온 정맥길.

 

 

 

# 당연히 마산 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 저 멀리 3시 방향의 광려산에서 예까지 왔다.

 

 

 

 

# 지나온 방향을 파노라마로!(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정상 좌측의 헬기장. 뙤약볕 강렬하다.

 

 

 

# 이 산꼭대기에 산소를 모셨다.

 

 

 

# 마산서여중 방향 하산길.

 

 

 

# 무학이란 이름이 최고운과 연관이 있다고? 이건 또 무신 소리? 일제시대라는데! 어느 것이 옳은가?

 

 

 

무학산은 오늘 구간의 주요 포스트로서 하루 종일 이 무학을 목표로 산길을 걸어 왔고, 오늘 구간 어디에서나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에 걸맞게 훌륭한 조망과 멋진 풍체를 자랑하고 있는데, 이 지역 최고의 산인만큼 찾는 사람도 많다.

 

지나온 정맥길과  가야 할 길, 그리고 마산 앞바다와 그에 깃들어 사는 인간세의 모습 등 사방 막힌 곳 없는 뛰어난 조망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하루종일 계속된 박무 때문에 깨끗한 조망을 보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정상에서 오래 머물며 조망 구경에 지역 산꾼들 구경에 시간을 보내다가 이정목이 가리키는 중리방향으로 출발하였다. 기분같아서는 이 정상에서 정상주 한 잔 하고 거풍도 했으면 좋으련만 뙤약볕 강렬하고 사람들 수시로 오가고 있어 둘 다 불가능하다. 잠시 아래로 내려가면 좋은 나무 그늘이 있어 그곳에 짐 내리고 남은 막걸리와 간식으로 홀로 만찬을 즐겼다.

 

 

 

# 중리 방향으로 하산해야 한다.

 

 

 

# 재주도 용타!

 

 

 

# 정상을 나와 조용한 그늘 아래에서 홀로 만찬을 즐겼다.

 

 

 

오래 머물며 휴식과 간식을 먹은 후 다시 길을 나섰다. 이제는 오로지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이 구간은 아무리 걸어도 표지기가 나타나질 않는다. 흔히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 등은 관리자들이 표지기를 제거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곳도 그러한가?

 

지도 꺼내 확인해 보지만 다른 길은 보이지 않는데 표지기가 없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다 중간에 몇몇 표지기를 만나는데, 통상 정맥길에서 만나는 정맥 표지기가 아니라 일반 산악회의 표지기만 드문드문 나타날 뿐이다.

 

요근래 낙남에서 하도 어처구니없는 알바를 많이 겪은지라 오늘도 그럴까봐 영 불안한데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다. 갈수록 이 길이 정맥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렬하고...

 

그러다 이정목을 만나지만 마재에 관련된 기록은 전혀 없고 중리 방향이란 표식만 계속 나타난다. 아무래도 알바일 것 같아 주변 지형 살피며 탈출할 길을 찾아보지만, 등로 우측 방향은 잡목 우거진 낭떠러지일 뿐이다. 잠시 후 '시루바위 갈림길'을 만났다. 하지만 이 이정목도 마재에 관한 기록은 없다. 중리는 정맥 좌측에 있는데...

 

 

 

# 시루바위 갈림길.

 

 

 

곧바로 '661봉'을 넘고 이후는 계속 고도를 낮춰 가며 진행하는데, 정맥 표지기는 보이지 않고 간혹 일반 산악회의 표지기만 나타난다.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고 알바 일지언정 그냥 진행해 보기로 했다. 길게 길게 고도를 낮추며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는데 드디어 처음으로 우측 방향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타나고 그 방향이 마재 방향이라는 이정목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우측길에 그동안 전혀 없던 정맥꾼들의 표지기가 너무 많다 싶게 무더기로 매달려 있다. 아이고~ 왜 이제서야 나타나는 거야? 찾을 때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더니... 중간 이정목에 중리 방향과 마재라는 글자 하나만 보였어도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았을 텐데... 끄응...

 

 

 

# 표지기가 여럿 있는 곳이 나오지만 모두 일반 산악회의 표지기다.

 

 

 

# 원계, 삼계 갈림길.

 

 

 

# 비로소 마재고개란 말이 처음으로 나타난다.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내리는데 급격하게 고도를 낮추며 깊게 떨어져 내린다. 어찌나 깊게 떨어지는지 무릎이 시큰시큰한데, 종아리가 후덜거릴 즈음에야 '송전탑이 있는 고개'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그냥은 못 보내주겠다고 정면의 봉우리를 하나 넘어라고 한다. 좋아, 넘어주지! 그러나 한 개로는 않된다고 또 하나를 넘어라고 하고, 이후로도 그냥 끝이 아니라 구불구불 휘감으며 돌게 만들더니 욕이 나올 즈음 겨우 '마재고개'를 허락한다. 18:00..

 

 

 

# 정말 어렵게 도착한 마재고개.

 

 

 

마재고개는 마산에서 내서읍으로 넘어가는 5번 도로가 지나는 번화한 곳이라 차량 통행이 아주 많다. 긴 내리막에 지쳐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는데, 마침 지나던 택시가 나를 보고 멈춰 섰다. 먼지구덩이인 몸을 털어낼 짬도 없이 달려가 택시에 올라 탔다.

 

잠시 시내를 달려 마산역에 도착했다. 미리 예매해 둔 9시 20분발 KTX 표를 물리고, 7시 50분 차의 입석표를 예매했다. 열차 시각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근처의 목욕탕에 들러 깔끔하게 씻고 새옷으로 갈아 입었다. 그리고 식당에 들러 이른 저녁을 먹으면서 스마트폰으로 계속 접속을 시도한 끝에 좌석표를 하나 구하여 편하게 광명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 새롭게 단장한 마산역.

 

 

 

# 마산역에는 KTX가 있어 깔끔하게 돌아 올 수 있다.

 

 

 

애초에 낙남정맥은 겨울 한 철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보낼 작정으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중간에 열심히 집중하여 다니지 못한 관계로 이제는 따뜻함을 넘어 무더위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무더위에 지쳐 혀 빼물고 다닐 지경이 되어버렸으니 당분간 겨울이 올 때까지 쉬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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