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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남정맥]마지막 걸음(나밭고개~매리)-체중 3.5kg의 힘으로 걸은 낙남 마지막 구간! 본문

1대간 9정맥/낙남정맥 종주기

[낙남정맥]마지막 걸음(나밭고개~매리)-체중 3.5kg의 힘으로 걸은 낙남 마지막 구간!

강/사/랑 2012. 7. 30. 15:36
 [낙남정맥]마지막 걸음(나밭고개~매리)

 

  

낙남정맥(洛南正脈)은 백두대간의 끝자락 지리산(智異山) 영신봉(靈神峰)에서 출발한다. 그곳에서 남으로 가지를 뻗어 삼신봉(三神峰), 고운동 고개, 돌고지재를 거쳐 옥종(玉宗) 초입의 천왕봉에 이르러 지리산과는 이별한다. 이후 하동 옥종, 사천 곤명 등을 지나 진주 남쪽을 휘감아 도는 동안 지리산에서와는 달리 야트막하게 기세를 낮춘다.

 

그러다 고성 땅에 이르러 무량산(無量山), 깃대봉 등으로 다시 높이를 높여 그 맥(脈)을 강하게 올린다. 그 기세 그대로 마산, 창원의 여항산(艅航山), 광려산(匡廬山), 무학산(舞鶴山)을 거쳐 김해 땅에 이르고, 신어산, 동신어산(東神魚山)을 넘어 매리(梅里) 고암나루에서 낙동강(洛東江)에 잠기며 그 맥을 다하게 된다. 

 

산맥의 이름 그대로 낙동강의 남쪽을 분수(分水)하며 길게 동서로 누워 우리나라 내륙과 남해안 지방을 분계(分界)하고 있다. 이 산줄기의 남쪽 해안지방은 연평균기온 14℃로 제주도 다음으로 따뜻한 고장이다. 난온대산림대(暖溫帶山林帶)를 형성하고, 귤나무의 북방한계선을 이룬다. 그야말로 '따뜻한 남쪽 나라'인 셈이다.

 

낙남정맥은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갈래친 아홉 개의 정맥 중 제일 아래에 위치해 있고,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마무리하는 지리산에서 갈래 쳐 나와 있어 흔히 1대간 9정맥 종주(縱走)의 제일 마지막 도전처가 된다.

 

나 역시 애초에 남들처럼 1대간 9정맥 마지막 마무리 산줄기로 낙남을 걷겠노라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에 결성된 우리 '만고강산 금남정맥(錦南正脈) 종주대'가 이름처럼 1년에 한 번 출격하는 만고강산으로 늘어지는 바람에 그 계획을 바꿔 낙남을 먼저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때가 작년 10월 중순이니 막 가을빛이 우리 산하에 스며들 즈음이었다. 느낌으로는 그 가을과 겨울, 봄 이렇게 세 계절이면 낙남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추운 계절의 산행을 재미있게 하자는 계획이었다.

 

낙남정맥은 그 산맥이 지나는 경우 하동과 진주 구간에서는 정맥길이 과수원이나 농장을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 봄, 여름, 가을의 농사철에는 농민들과 마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곳이다. 때문에 농한기(農閑期)인 겨울에 그 구간을 지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사 모든 것이 뜻대로만 풀리는 것이 아니다. 날이 갈수록 힘들고 할 일 많아지는 회사일 때문에 주말이나 휴일에도 출근해야 할 때가 많아졌다. 그리하여 봄은커녕 여름이 맹위를 떨쳐갈 즈음에야 겨우 마무리 길에 나설 수가 있다.

 

그런데 때마침 짧은 장마가 끝나고 연일 폭염이 전국을 휘감아 현재 낙남정맥 일대는 며칠째 폭염주의보를 넘어 폭염경보가 발령된 상태다. 이웃 일본에서는 몇백 명이 폭염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도 들린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겨울 한 철 보내려던 계획이 겨울은커녕 봄을 보내고 성하(盛夏)의 폭염 경보 아래 찜통 속 같은 산길을 걷게 되었으니 애초의 계획과는 틀어진 바 크지만 世上事不如吾心(세상사불여오심)이니 너그러이 감수해야 할 일이다.

 

아, 그러나 이상은 너그러우나 현실은 냉혹한 법. 낙남정맥 마지막 걸음은 밀양 37.5도, 김해 37도의 폭염 경보 발령으로 그동안 1대간 9정맥 종주를 하느라 삼천 킬로미터 가까이 산길을 걸으면서 만났던 더위 중 최고의 찜통 무더위였다.

 

게다가 숲속은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운 전기밥통 속 같았다. 그 숲속을 걷자니 수도꼭지에서 물 흐르듯 땀이 흘렀다. 덕분에 산행 마치고 확인하니 단 하루 동안 체중이 무려 3.5kg이나 빠졌다. 고행(苦行)의 길에 다름없었다. 그렇게 낙남정맥 마지막 걸음은 고행의 길로 남게 되었다.  

 


체중 3.5kg의 힘으로 걸은 낙남 마지막 구간!

구간 : 낙남정맥 제 13구간(나밭고개~매리)
거리 : 구간거리(20.4km), 누적거리(242.75km)(접속구간 포함)
일시 : 2012년 7월 29일. 해의 날.
세부내용 :

나밭고개(04:20) ~ 378봉 ~ 337봉/옥선봉(05:00) ~ 402.9봉 ~ 임도/벤치(휴식) ~ 송전탑봉우리 ~ 임도 ~ 천문대 ~ 천문대주차장 ~ 가야랜드 ~ 신어산산림욕장 ~ 은하사 ~ 천진암 ~ 헬기장 ~ 출다리 ~ 쉼터 ~ 신어산(08:20) ~ 사거리안부 ~ 신어산동봉 (08:40)/휴식 후 09:45 出 ~ 대문바위 ~ 생명고개(10:11) ~ 임도/20분 휴식 ~ 453봉 ~ 522봉 ~ 안부십자로/30분 휴식 ~ 481봉 ~ 478봉/백두산 갈림봉 ~ 감천고개/20분 휴식  ~ 전망대 ~ 전망대 ~ 499봉 ~ 안부고개 ~ 동신어산(15:00) ~ 암릉 ~ 267봉 ~ 고속도로 절개지 ~ 고속도로 굴다리 ~ 매리(16:00).

           
총 소요시간 11시간 40분.

 

  

2012년 7월 28일, 흙의 날. 지난주는 집안 행사 때문에 산에 못 가고 이번 주는 꼭 산을 가든지 아니면 국토종주 잔차길을 마무리 짓든지 해야겠는데, 일기예보에서는 전국적으로 폭염주의보와 경보를 예보하고 있다.

 

금요일 늦은 퇴근 때문에 간만에 늦잠 자고 일어나니 아침인데도 집안 공기는 후텁지근하고 베란다 밖의 거리는 지글지글 끓고 있다. 늙은 강아지 추위 탄다고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켜지 않던 마눌이 이날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에어컨 켠다고 청소를 해 달란다.

 

산에 가려면 잘 보여야겠기에 에어컨 닦고 필터에 곰팡이 제거제도 뿌리고 환기시킨 후 시원하게 바람도 불러일으켜 주었다. 이 시원한 문명의 이기(利器)가 주는 혜택을 마다하고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 뜨거운 햇살 속으로 가겠다는 건지 내 맘을 나도 잘 모르겠다. 오후 다섯 시 마눌이 태워주는 차편으로 광명역에 도착하고 곧바로 밀양행 KTX에 몸을 실었다.

 

 

신어산/神魚山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삼방동·대동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630m. 금관가야(金官伽倻) 시조 수로왕과 허황옥(許黃玉) 왕비의 신화가 어린 성산(聖山)이다. 신어는 수로왕릉 정면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를 뜻하며 밀양 만어산(萬魚山:670m) 전설에도 나오는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과 가락국(駕洛國)의 상징이다. 일명 선어산(仙魚山)이라 하며, 동신어산은 동쪽 신어산의 와전이다. 이 산을 핵으로 시 복판의 황새봉(393m)·경운산(慶雲山:379m)·분성산(盆城山:375m)이 동쪽 백두산(白頭山:352m)·덕산(德山:457m)·까치산(342m) 등과 연봉을 이루고 낙동강 건너 소백산맥의 산들과 대치하고 있다. 카펫처럼 부드러운 백두산∼신어산 종주능선은 부산 근교의 워킹 산행지이다. 산마루에 서면 부산을 에워싼 연봉들의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금정산(金井山:801m)과 태백산맥의 구봉산(九峰山)에서 몰운대(沒雲臺)로 뻗은 낙동정맥(洛東正脈)의 산군은 물론, 지리산 영신봉(靈神峰:1,651m)에서 분성산에 닿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의 연산들을 비롯해 이웃한 무척산(無隻山:703m), 양산시 물금읍 오봉산과 원동면 토곡산(土谷山:855m), 웅상읍 원효산(元曉山:992m)과 천성산(千聖山:812m) 등 동부의 크고 작은 산들을 살펴볼 수가 있다. 가야의 올림포스산답게 초기의 고찰 은하사(銀河寺)와 영귀암(靈龜庵) 등이 있으며 기우단도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구암사(龜岩寺)·십선사(十善寺)·청량사(淸凉寺)·이세사(離世寺)가 있다고 할 정도로 이 산은 불모산(佛母山:801m)의 신화와 함께 남방불교 전래의 성지라 할 수 있다. 대동면 초정리 원명사에서 출발, 약수터와 백두산, 510봉 감천재로 종주하고 상동면 대감리 고암마을로 내려오며 7시간쯤 걸린다. 신어천이 낙동강으로 흐르는 경관 속에 삼림욕장 등을 갖춘 종합레저시설 가야랜드와 골프장이 인근 도시민들의 주말 휴양지로 인기다. 경부선·경전선·남해고속도로 등이 통과한다.

 

김해 가야유원지 조성 28년째 표류 <골프장 만들땐 온갖 사탕발림, 부대조건 이행은 '나몰라라'>


가야개발이 경남 김해 신어산 중턱에 조성한 가야컨트리클럽과 가야유원지가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성 계획 중 하나였던 가야CC(컨트리클럽)는 1988년 6월 18홀 규모로 개장했으며 현재는 265만 ㎡에 54홀(퍼블릭 9홀 포함)로 전국 최대 규모다. 반면 가야유원지 조성계획은 지금까지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고 일부 설치한 시설은 문을 닫은 채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업체 측은 채산성 악화로 문을 닫았다고 하지만, 돈이 되는 골프장 규모를 확대하면서 놀이시설과 수영장 등은 적자를 이유로 가야CC 허가 당시 스스로 제시한 부대조건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가야개발은 가야CC 조성이 한창이던 1989년 가야랜드의 일부로 놀이시설과 대중수영장을 조성해 운영에 들어갔다. 이는 부대조건을 이행하는 측면도 있었으나 골프장을 순조롭게 조성하려는 목적이었다는 분석이다. 가야개발은 2005년 가야유원지 계획 부지 남쪽 끝에 눈썰매장을 개장했다가 2009년 폐장했다. 이것이 가야유원지 조성 계획시설 중 마지막이었다. 이 무렵 가야CC의 시설 확대 공사도 대부분 마무리됐다. 하지만 가야유원지 조성은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이 때문에 가야개발이 가야CC의 규모를 확대할 때마다 가야유원지를 조성하는 것처럼 하다가 골프장 조성을 끝낸 이후에는 슬그머니 물러섰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낙남정맥 제 13구간 나밭고개~매리 지형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진영이나 구포까지 한 번에 가는 차편이 없어 밀양에서 환승해서 진영으로 갈 작정인데, 오늘 밀양은 전국에서 가장 HOT한 곳이라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더운 기운이 훅 밀려 든다.

 

밀양역 플랫폼에서 한 30여 분 대기 한 후 진영 거쳐 마산으로 가는 무궁화호에 올라 탔다. 진영은 대학 1학년 때인 80년에 와 봤으니 무려 32년 만에 와 보는 셈이다. 한 번 잠깐 들른 곳이고 하도 오래된 일인데다 특별한 추억도 없어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만...

 

진영역 앞 버스 정류장은 한 곳은 진영행 버스가 한 쪽은 김해행 버스가 서는 곳이다. 그만큼 진영은 김해와 가까워 한 생활권으로 살고 있다는 얘기다.

 

한참을 기다려 김해행 버스에 올랐다. 30여 분 흔들린 후 지난 구간에 지났던 망천고개를 넘어 김해 시내로 내려갔다. 고개 넘자마자 하차해서 다시 택시 타고 가장 가까운 찜질방을 부탁하니 5분여 거리의 용천찜질방 앞에 데려다 준다.

 

 

 

#  밀양역. 지금 밀양은 폭염경보 중이다.

 

 

 

#  하루 서너 차례 KTX가 서는 진영역.

 

 

 

#  지하에 위치한 용천찜질방.

 

 

 

# 찜질방 앞에 있는 복요리집에서 시원한 복국으로 허기를 달랬다. 복국매니아인 강/사/랑 입에 딱 맞게 시원하고 은근한 맛이 났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찜질방은 손님이 그다지 많지는 않은데, 내부 공기가 너무 더워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얼음방이란 곳을 들어가 보지만 30여 분 머물기는 적당하나 그곳에서 잠을 자기는 어렵다.

 

다시 바깥으로 나와 한쪽에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올림픽 경기 보느라 이곳저곳 TV를 크게 틀어놓고 응원에 열중이라 쉬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올림픽 경기 보다 "아냐 아냐 잠을 좀 자 둬야 해!" 다시 눈을 감아보다가 새로 1시 40분이나 되어서야 겨우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알람을 새벽 2시 30분에 맞춰 두었으니 한 시간을 채 못 잤는데, 이 폭염의 산길을 가자면 시원한 새벽 시간에 산행을 서너 시간 해 둬야겠기에 천근만근인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싸우나로 들어가 시원한 찬 물을 뒤집어 써 보지만 잠벌레가 쉬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가야지...!

 

짐 챙겨 찜질방을 나섰다. 주변의 음식점을 찾는데, 이곳이 제법 유흥의 중심인지 밤샘 장사를 하는 곳이 몇 곳 있다. 해장국집에서 아침 먹고 점심 먹을 도시락도 챙기고, 근처 편의점에서 막걸리와 일용할 간식도 준비했다.

 

이후 택시 타고 10여 분 달려 오늘 구간의 출발지인 나밭고개에 올라섰다. 나밭고개 천리교 교당 진입로 앞에서 산행 준비를 했다. 일단 날이 더워 어제 오늘 입었던 반바지를 배낭에 집어넣고 긴 등산바지로 갈아 입었다. 대낮 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대로 상 탈의 및 환복이 캄캄한 어둠을 빌미로 마음대로 이뤄졌다.

 

그러나 옷을 갈아입자마자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한다. 새벽이라 하지만 열대야 현상으로 기온은 여전히 27, 8도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도 굳었던 몸을 풀기 위해서는 준비운동을 해야 해서 허리 숙여 스트레칭을 하는데, 갑자기 머리 앞에서 크르릉~ 하는 짐승의 위협소리가 들렸다.

 

큰 개의 위협 소리인데, 저건 위험한 소리인 것이 컹컹 소리내어 짖는 놈은 잘 덤비지 않지만, 저렇게 낮고 굵은 소리로 으르릉대는 놈은 공격하기 직전에 하는 짐승들의 패턴이기 때문이다. 허리 숙인 상태에서 짱돌 두어 개를 살며시 집고서 머리를 드니 사오 미터 밖에서 진돗개 한 마리가 눈에 파란 불을 켜고 나를 위협하고 있다.

 

몸통을 향해 돌을 던지며 크게 고함을 치니 고개 위쪽 어둠 속으로 도망을 간다. 그러더니 이제는 계속 큰 소리로 컹컹 짖으며 주위를 맴돈다. "알았다, 이 놈아 기선은 내가 제압했다. 이제 너는 무섭지 않다!" 이마에 등불 달고 배낭 둘러멘 후 주머니에 짱돌 서너 개를 집어넣고 나밭고개를 출발했다. 04:20

 

 

 

# 신새벽 어둠 속의 나밭고개. 저 고개 위 작고 파란 불빛이 진돗개의 눈빛이다.

 

 

 

진돗개란 넘이 주변을 계속 맴돌아서 강력한 직진성을 자랑하는 내 헤드랜턴을 최대로 줌 시켜 놈을 정면으로 비췄다. 그렇게 놈의 시야를 어둡게 만든 후 돌을 던져 몸통을 맞히니 비로소 천리교 교회 안으로 도망간다. 천리교 교회에서 야간에는 개를 풀어 두는 모양이다.

 

천리교는 나하고도 인연이 좀 있는 일본 종교다. 일본의 어느 농촌 여성이 신내림을 받아 창건한 종교라는데, 불교의 교리도 좀 차용하고, 일본 신도(神道)도 녹아들어 있고, 샤머니즘 적인 요소도 들어 있는 독특한 종교다. 우리나라에는 일제시대에 전해져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방 이후 왜색(倭色)종교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배척당해 그 교세가 거세게 확장되지는 않는데, 오랜 일제 잔재의 끈질긴 생명력처럼 일반 민중 속에는 아직도 만만치 않은 종교적 파급력을 유지하는 모양이다. 가난하고 근심 걱정거리 많으며 아픈 곳 많은 민초들 사이에서는 일제시대부터 주변에서 자주 듣던 천리교의 교리가 감응되는 바 있어서 그럴 것이다.

 

뭐,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남을 도와서 자신을 돕는다는 그런 박애정신도 녹아 있는 것 같으니 민중들에게는 무턱대고 배척되기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릴 때 우리 동네에 천리교를 열심히 믿는 사람이 있어 여성들을 중심으로 제법 활발한 포교가 이뤄졌었다.

 

종가집 큰 며느리에 엄청난 평지풍파의 신산한 삶, 자식들 뒷바라지와 대가족 부양, 홧병과 심장병으로 고생이 심하셨던 우리 어머님도 당시에 그 중에 한 분이어서 제법 열심히 천리교 모임에 나가시고 기도도 드리고 교회 찬송가 같은 노래도 부르시곤 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어머니 따라 그 종교 모임에 가서 천리교의 노래를 아무 뜻도 모른 채 따라 부르곤 했었다. 기억하기로 그 가사가 "악한 것을 물리치고 도와주소서!..." 뭐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 같다.

 

사십몇 년 전의 오랜 옛일인데, 불교의 목탁 대용으로 사용하는 나무 막대기의 청아한 울림, 가벼운 손동작의 율동을 곁들여 부르던 노래 등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허허허...

 

어쨌거나 오늘은 그 천리교의 진돗개가 나름 인연이 있는 나를 위협하다 된통 혼이 나서 도망을 갔다. 천리교 교당 정문을 지나 고개 위로 올라가면 우측 숲에 표지기들이 나부끼고 있다.

 

 

 

# 물기 가득 머금은 숲이 기다리고 있다.

 

 

 

새벽 숲속은 캄캄하다. 이슬을 잔뜩 메단 풀잎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있어 더워 땀나는데다 이슬까지 겹쳐 금세 바지가 축축해졌다. 곧장 위로 오르면 전방에 건물 하나가 나타나고 그 건물 우측 절개지 상단으로 올라갔다.

 

위로 오를수록 점점 경사가 급해져서 숨이 가빠오는데, 열대야의 오늘 새벽은 바람 한 점 없이 습하고 무더워 땀이 아주 비오듯 쏟아진다. 장갑 낀 손으로 땀을 닦다가 장갑이 축축해져서 배낭에 매단 미니 수건으로 땀을 닦는데 역시나 금세 축축하게 젖어버린다.

 

흠뻑 젖어서 힘들게 '378봉' 정상에 올라 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정맥길은 우측으로 꺾어 떨어져 내리게 된다.

 

 

 

# 378봉 정상. 우틀하여 떨어지라고 한다.

 

 

 

잠시 내렸다가 편안하게 가더니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길게 진행하다가 전방의 봉우리를 2단으로 치고 오르는데, 첫번째 봉우리에는 고사목을 세워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다. '옥선봉'이란 지도에 없는 이름표도 달고 있다. 사진 찍고 기록하는 동안 하늘이 희뿌옅게 밝아 오고 있다. 10분 휴식하다가 5시 10분에 출발했다.

 

아래로 내렸다가 희미한 옛고개를 지난 후 위로 올렸다. 계단식으로 길게 밀어 올리는데, 땀이 물 흐르듯 쏟아져 온 몸이 흠뻑 젖어버렸고 바지가 맨살에 척척 휘감겨 매우 불편하다.

 

평소에 땀을 그다지 많이 흘리는 체질이 아닌데, 오늘은 그와는 상관없이 내 몸에 수도꼭지 하나가 달린 듯한 기분이다. 게다가 모기떼까지 무더기로 덤벼 들어 한밤인데도 얼굴가리개를 뒤집어 쓰야 했다. 길게 올라 오늘 구간 두 번째 포스트인 '402.9봉'에 올라섰다.

 

 

 

# 지도에 없는 옥선봉.

 

 

 

# 402.9봉. 이제 날이 밝았다.

 

 

 

봉우리 정상에는 삼각점과 안내판이 서 있고 준희님의 이름표도 매달려 있다. 정상에서 한숨 돌린 후 다시 길을 나섰다. 곧바로 잔봉 하나를 넘고 잠시 내렸다가 길게 진행하게 된다.

 

봉우리 하나를 오르다 정상 부근에서 좌측 사면으로 우회하여 오른다. 그 각도대로 진행하다가 봉우리에서 좌틀하여 내려가면 전방으로 송전탑이 보이고 곧 임도에 내려선다. 임도 끝에는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 배낭 내리고 벤치에 앉아 휴식하였다.

 

 

 

# 숲 너머로 송전탑이 보인다.

 

 

 

# 임도에 내려서면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한참을 휴식타가 다시 길을 나섰다. 이 임도를 따를까 하다가 숲으로 들어가서 잠시 올라 진행했다. '송전탑'을 지나고 산길을 계속 따르는데 우측 아래로 임도가 따라오고 있다. 이쯤에서 좌측으로 영운리고개 가는 갈림길이 있다는데, 까무룩 졸아서 그랬나 무슨 까닭인지 모르고 지나쳤다.

 

잠시 후 그 임도와 다시 만나는데, 정자가 하나 설치되어 있고 표지기 두 개가 임도를 향해 펄럭이고 있다. 그 표지기 믿고 아무 의심도 없이 이번에는 임도를 따랐다.

 

구불구불 휘는 임도는 산자락을 감으며 길게 이어지는데, 김해 마라톤 클럽 단체 훈련 중인지 마라토너들이 연신 헉헉대며 지나친다. 아무 생각없이 임도를 따르다가 아무래도 이상타 싶어 맞은 편에서 오는 마라토너에게 이 길 끝에 가야골프장이 나오냐고 물으니 일, 이초 생각하더니 있다고 그냥 직진하라고 한다. "오케이! 맞게 왔나보다!"

 

그러나 한참을 더 가도 영운리 고개는 나오지 않고 임도만 계속 이어진다. 나침반 확인하니 동진하는 것이 아니라 남진을 하고 있다. 이게 뭔일이래? 그러나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일단 가는 데까지 한번 가보자!

 

그러다 모퉁이 하나를 돌자 전방에 천문대의 돔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오잉? 웬 천문대? 영운리고개가 나와야 하는데 웬 천문대? 지도 꺼내 확인하니, 어머나! 정맥에서 우측으로 엄청나게 멀리 와 버렸다. 우찌 이런 일이...

 

 

 

# 벤치에 앉았다 일어서자 물에 흠뻑 젖은 몸도장이 찍혀 있다. 오잉? 내가 짝궁뎅이인가?

 

 

 

# 송전탑을 지나쳐 다시 임도와 만났다. 이때 벌써 알바인데, 임도쪽으로 매달려 있는 표지기 두 개를 믿고 그냥 임도를 따랐다.

 

 

 

# 임도가 길게 이어지는데 알바인 줄도 모르고 신나게 임도를 따른다.

 

 

 

# 김해 여성 마라토너들이 훈련 중이다. 힘들자 야~야~ 귀여운 기합을 넣으며 달려간다. 운동으로 단련되어 건강미 넘치는 여성들의 뒷모습이 보기 좋다.

 

 

 

# 정맥에서 우측으로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는 이 김해천문대까지 와버렸다.

 

 

 

천문대 입구에서 지도 꺼내 들고 망연자실 서 있자니 지역 주민 몇 분이 지나면서 어딜 찾는지 묻는다. 영운리 고개 지나 가야골프장으로 가는 길이랬더니 "아이구, 한참 엉뚱한 곳인디..." "그러게 말입니다..."

 

다시 돌아가자면 임도길 한 30여 분 걸으면 될 법하지만 날 밝기 전에 골프장 직원이나 골퍼들과 마찰없이 골프장을 통과하려던 계획은 이미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별수 없이 다시 돌아간다면 내 좋은 산길 걸으며 남들에게 욕 먹고 비굴한 웃음 날려야 하고 도둑처럼 눈치보며 골프장을 통과해야 한다.

 

그짓은 정말 하기 싫구나! 지도 확인하니 천문대에서 영운리쪽으로 내려가서 맞은편 산줄기에 붙어 은하사 거쳐 신어산으로 바로 올라가면 될 것 같다. 다만 접근거리가 너무 멀고 돌아가는 형국이라 영 께름찍하긴 하다만...

 

천문대 입구에서 도로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구불구불 몇 차례 휘감아 내려가니 천문대 주차장이 나오고, 천문대 윗길로는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 두었다. 잠시 주변 구경하다가 아래로 내려가는데, 주차장에서 봉고 승합차 한 대가 막 출발을 하려고 한다. 가까이 가서 아랫 동네까지만 합승을 부탁하니 흔쾌히 태워 주신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구불구불 천문대 입구 도로를 휘감아 내려가면 영운리고개를 넘어가는 넓은 도로와 만나고, 건너편에 페허로 변해가는 가야랜드가 나타난다. 저 가야랜드는 가야골프장에서 사업허가를 낼 때 골프장 허가를 쉽게 얻기 위해 시민들을 위한 휴양시설 목적의 부대사업으로 진행하겠다고 해 놓고는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지 않아 저렇게 폐허가 되었다 한다.

 

골프장으로 돈 벌 생각만 하지 말고, 저런 약속도 제대로 지키고, 정맥길과 골프장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도 내어 놓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차장에서 히치한 차가 마침 김해로 가는 차여서 인제대학교 앞쪽에 내려 준다. "감사합니다!"

 

도로 건너 신어산 중턱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가면 상방고등학교, 스포츠센터, 산림욕장을 차례로 지난다. 헉헉 대며 길게 올라 은하사 아래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넓은 공터를 만났다. 마침 그곳에 음료수 자판기가 있길래 짐 내리고 이온음료 하나 구입했다.

 

 

 

# 엉뚱한 곳으로 알바하는 바람에 김해 천문대 구경도 하였다.

 

 

 

#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은하사 아래 공터.

 

 

 

한참을 휴식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포장도로는 은하사를 휘감아 위로 천진암을 목표로 이어지고 있다. 일단 그 길을 따르기로 했다.

 

가파른 아스팔트길을 길게 올리면 '달마야 놀자' 란 영화의 촬영지라는 은하사를 지나고, 멋진 소나무 숲을 지나 공터에 이르러 도로가 끝나게 된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산길이 이어진다. 길은 모조리 가파른 돌길이다. 헉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한 차례 밀어 올려 천진암을 지나고 잠시 후 능선 갈림길에 도착했다. 좌측으로 가야골프장 외곽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있고 경고판이 서 있다. 우측길로 다시 한차례 빡세게 밀어 올려야 한다. 아침시간인데도 기온이 어찌나 높고 무더운지 땀이 아주 비오듯 쏟아진다.

 

특히 바지는 완전히 물에 담근 듯 축축하게 젖어 다리에 휘감기는데, 그 안쪽을 타고 흘러 내린 땀들이 등산화 속에 차서 마치 장맛비 맞고 산길 걷다가 신발이 물에 빠지듯 신발 속에서 개구리 소리가 난다.


상황이 이러니 옷을 갈아 입기는 해야 겠는데, 일단은 신어산을 지나 인적 없는 곳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주 힘들게 위로 밀어 올리면 넓은 '헬기장'에 이르게 되고 비로소 정맥길에 복귀했다.

 

 

 

# 아침 햇살 내리는 부도탑 아래 간절한 소망이 올려지고 있다.

 

 

 

# '달마야 놀자'란 영화의 촬영지라는 은하사.

 

 

 

# 포장도로이기는 하지만, 경사가 가팔라 힘이 많이 드는 소나무 숲길.

 

 

 

# 포장도로가 끝나고 본격적인 산길이 이어진다.

 

 

 

# 소박한 천진암 일주문.

 

 

 

# 한차례 올려 능선갈림길에 도착.

 

 

 

# 과태료 좋아하시네~

 

 

 

# 우여곡절 끝에 정맥길에 복귀했다.

 

 

 

# 신어산은 아직 한참 더 가야 한다.

 

 

 

# 신어산 정상을 땡겨보고,

 

 

 

신어산 정상은 이곳 헬기장에서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한다. 우측으로 내렸다가 봉우리를 계속 치고 오르면 '출렁다리'가 나온다. 잠시 더 가서 공터 갈림길을 만나는데, 간이 매점이 하나 있고 젊은 여성이 장사 준비에 분주하다.

 

공터 한 쪽에 지도가 있어 확인하니 이 신어산 오르는 길도 지름길을 두고 가장 먼 우회로를 빙빙 돌아서 올라 왔다. 오늘 도대체 왜 그런다냐? 에휴~

 

다시 한차례 더 진행해서야 신어산 정상부에 도착하였다. 한 쪽에 정자가 있다. 신어정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정자는 전방으로 훌륭한 조망을 보여 준다. 그 조망 속에 좀 전에 엉뚱한 산길을 걸은 끝에 만난 김해천문대가 건너다 보인다.

 

오늘 구간 중 처음으로 시원한 바람과 조망을 만나는데, 일반 산객들이 있어 옷을 벗을 수도 오래 지체할 수도 없다. 바로 위쪽에 '신어산 정상'이 있다. 08:00

 

 

 

# 출렁다리.

 

 

 

# 동림사로 오거나 은하사 우측으로 오면 빠른데, 제일 먼 길을 돌아 왔다.

 

 

 

# 정상 가는 길.

 

 

 

 

# 정상 입구에 조망 좋은 정자가 하나 서 있다.

 

 

 

 

# 김해쪽으로 조망이 트여있다.

 

 

 

# 건너편 산의 정상부에 하얀 천문대 건물이 있다. 저 산꼭대기에 있는 천문대까지 알바를 했다.

 

 

 

# 알바의 추억~,  도대체 왜 이런다냐?

 

 

 

# 인제대학교. 산 친구인 장산님의 모교다.

 

 

 

# 우측 산봉우리에 가려 보이지 않는 송전탑 있는 곳에서 이쪽으로 건너와야 하는데, 저 산길을 계속 걸어서 구름 아래 있는 천문대까지 가버렸다. 여기서 보니 알바한 산길이 한 눈에 들어 온다.

 

 

 

# 지나온 정맥길.

 

 

 

# 정상엔 산불감시초소가 두 개나 있다.

 

 

 

# 힘들게 올라 온 신어산.

 

 

 

# 밋밋한 정상석만 찍기 싫어 모델을 부탁드린 여성 두 분.

 

 

 

# 직장에서 함께 온 모양인데, 웹 서핑을 통해 이 사진을 찾아낼 수 있으려나?

 

 

 

신어산은 오늘 구간의 최고 포스트이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한적한 장소와 그늘,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다. 몸에서 물이 줄줄 흐르고 있어 정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얼른 길을 나섰다.

 

이정목에는 매리까지 '10.3km거리' 라고 기록해 두었다. 강렬한 햇살 내리쬐는 노출된 등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천불사 갈림길'이 나오고, 다시 전방의 봉우리를 한차례 밀어 올리면 '신어산 동봉'에 도착한다. 08:20

 

 

 

# 10.3km 남았다.

 

 

 

# 바람이, 바람이 없다.

 

 

 

# 멋진 소나무.

 

 

 

# 전방의 신어산 동봉을 향해 곧바로 출발.

 

 

 

 

# 천불사 갈림길.

 

 

 

# 돌탑이 있는 동봉.

 

 

 

주변 돌아 보지만 마땅히 바람 좋은 그늘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이곳 동봉에서 휴식을 하기로 했다. 정상 한 켠 작은 그늘에 자리 깔고 준비한 막걸리와 소박한 제물로 천지신명께 낙남의 무사한 졸업을 감사드렸다.

 

그리고 웃통 벗어서 뙤약볕에 말리고 물구덩이 바지는 비닐 봉지에 담아 배낭에 패킹했다. 이 지역 산꾼들은 대부분 좀 전의 안부 갈림길로 올라 와서 신어산으로 올라 가기 때문에 이 봉우리에 올 일은 별로 없어 보였다.

 

음복으로 나도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삼각김밥 하나와 햄버그, 과일 등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바람이 없어서 그늘 아래 있지만 땀이 계속 줄줄 흐른다. 수건을 여러 차례 짜서 햇볕에 말려 가며 땀을 닦아내고 간식 먹으며 그늘에 가만히 있으니 그나마 조금 견딜만은 하다.

 

한 시간을 넘게 휴식을 취한 후 옷이며 양말을 모두 뽀송뽀송한 새옷으로 갈아 입는데, 특히 하의는 반바지로 착용했다. 09시 45분 출발.

 

곧바로 떨어져 내려 안부로 향한다. 한도 끝도 없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신어산 오르면서 밀어 올렸던 고도를 모조리 다 까먹을 작정인 모양이다. 맞은 편에 산이 우뚝한데 고도를 이렇게 모두 까먹으면 어쩌란 말이냐?

 

바닥까지 완전히 떨어져 내려 고개에 도착했다. 긴 내리막에 다리가 후덜후덜 떨린다. 넓은 임도가 고개를 가로 지르는 이곳은 '생명고개'란 이름을 갖고 있다.

 

 

 

# 천지신명께 막걸리 한 잔 올리고,

 

 

 

# 정맥에서 갈래친 산줄기 끝에 낙동강이 있다.

 

 

 

# 박무 때문에 희미한 낙동강을 땡겨본다.

 

 

 

# 좌측으로 직진하여 정맥이 뻗어나가고, 뒷쪽에서 우측으로 갈라지는 산줄기가 백두산으로 가는 길이다.

 

 

 

# 다리가 후덜후덜 떨리게 깊이 떨어져 내려 고개에 이르면 전방에 봉우리가 우뚝하다.

 

 

 

# 이름과는 달리 생명이 간당간당하게 만드는 생명고개.

 

 

 

넓은 고개 정상의 우측으로 정맥을 따라 임도가 올라 가고 있어 그 도로를 따랐다. 지도를 확인하니 453봉 전까지 정맥과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어 그냥 임도를 따라 오른다. 구불구불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405봉'의 좌측으로 가로질러 고개를 치고 오르면 임도는 정맥 우측으로 달아 나버리고 정맥은 고개 위 좌측 숲으로 이어진다.

 

좀 전 동봉에서 갈아 입은 새옷이 이미 완전히 젖어 버려서 물기가 흥건한데, 다만 하의는 반바지를 입었더니 휘감기는 것이 없어 좋다. 너무나 힘이 들고 졸려서 고개 한 켠 그늘 아래 주저 앉아 아무 생각 없이 20여 분 멍 때리듯 휴식한 후 10시 50분에 숲으로 들어 갔다.

 

 

 

# 이곳에서부터 모든 이정표는 백두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임도를 길게 따라 올라 가다가 고개 위에서 좌측 숲으로 스며든다.

 

 

 

#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운 날씨다.

 

 

  

이 동네의 모든 이정목은 백두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 백두와 그 이름이 동일한데, 높이는 354m에 불과하지만 이름만은 거창하다.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이 지리산을 거쳐 이곳 백두산에서 마감하여 '백두'라 이름을 동일하게 부르고 수미쌍관(首尾雙關)의 멋을 부렸다면 일견 이해가 되겠지만, 이곳 백두산은 낙남정맥에서 우측으로 갈라져 나온 곳에 솟아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대홍수가 났을 때 이 산이 옷감을 재는 단위인 100마 정도 남아 있어 그렇게 불렀다 하는데, 한 마가 0.9144m이니 백마라면 91.44m 정도 물 위에 남았다는 얘기다. 4분의 1 정도만 남은 셈이다. 인근에 이 보다 더 높은 산이 많은데, 왜 유독 이 산만 그런 이름을 얻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나저나 오늘 낙남의 숲속은 정말 엄청나게 무덥고 힘이 든다. 아무리 폭염주의보가 발령 중이라 해도 숲속에는 그늘이 있으니 바람만 좀 불어 주면 견딜만 할텐데 바람 한 점 없이 무덥고 습하며 후덥지근하다.

 

증기기관차 언덕 올라 가듯 훅훅 쉭쉭 소리를 내며 봉우리를 치고 올라 가면 '453봉'에 이르게 된다. 살짝 내렸다가 올린 후 계단식으로 치고 오른다. 땀을 너무나 많이 흘려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그렇게 힘겹게 '531봉'에 도착했다.

 

 

 

# 준희님의 이름표와 같은 모양의 산이름표가 매달려 있다.

 

 

 

# 531봉, 롯데야구장 갈림봉이란 이정목이 서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폭염과 엄청난 땀, 그리고 졸음과 싸우며 숲속을 걸었다. 531봉에서 우틀하여 한차례 떨어져 내리고 다시 그만큼 치고 오르면 갈림길이 있는 '522봉'에 오르게 된다.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리는데, 또다시 깊고 깊게 떨어져 내리라고 한다. "오늘 도대체 왜 이런다냐? 그냥 좀 평탄한 마루금으로 이어지면 어디 덧나나?" 그런데 이 동네 떨어져도 그냥이 아니라 무식하게도 깊게 떨어져 내린다. 하이구야~

 

깊고 깊게 떨어졌다가 잠시 진행하면 옛고개를 만난다. 잠시 후 작으나마 바람이 이는 곳이 나타나 그 그늘에 짐 내리고 깔판까지 깐 후 휴식을 취했다. "그냥은 도저히 못 가겠다!"

 

 

 

# 522봉.

 

 

 

# 무식하게 깊이 떨어진 이후 도저히 더 이상 진행을 못 하고 자리 깔고 드러누웠다.

 

 

 

너무 힘들어 그늘 아래 휴식을 취하는데, 이번엔 모기란 넘들이 엄청나게 덤벼든다. 반바지를 입은 다리 곳곳에 모기들이 매달렸는데 몇 번 쫒다가 귀찮아 그냥 두었더니 산행 이후 일 주일여 동안 상처가 덧나서 고생했다.

 

30여 분 휴식한 후 다시 짐을 챙겨 길을 나서면 바로 뒤에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길도 백두산이고 우측길도 백두산 가는 길이란 이정목이 서 있다. 다만 좌측은 4km이고 우측은 3.9km 거리다. 지도 꺼내 확인해보니 좌측길은 481봉을 올랐다가 우틀하여 내리는 길이고 우측길은 지름길이다.

 

당연히 나의 선택은 우측 지름길이다. 우측 사면을 따라 길게 구불거리며 진행하는데, 중간에 물소리가 들리더니 작은 실여울같은 계곡이 나타난다. 누군가 나뭇잎 두 장으로 물을 받을 수 있게 만들어 두었다. 계곡이 좀 넓다면 훌렁 벗고 씻기라도 하련만 아쉬운 일이다. 물만 좀 받아 가기로 했다.

 

오늘 아침에 출발하면서 물을 3.5리터, 막걸리를 한 통 준비했는데, 땀을 무지막지하게 흘리는 바람에 현재 물이 간당간당 하다. 계곡물을 살짝 마셔보니 깨끗하고 먹을 만은 한데, 이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생물이나 대장균이 걱정되어서 그냥은 못 마시겠고 목 마를때 입에 머금었다가 가글을 하고 조금씩만 마실 생각이다.

 

길게 진행하여 능선 마루금에 올라서면 481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한다. 다시 위로 치고 오르는데, 한참 전에 임도에서 퍼질러 앉아 쉬고 있을때 백두산 간다고 지나갔던 지역의 여성 한 분이 폭염에 벌겋게 익은 채 내려 오더니 물 남은 것 있으면 좀 달라고 한다.


"아이고~ 아주머니, 저는 장거리 산행하는 사람이고 저 역시 물이 떨어져서 계곡물로 입을 씻으며 오고 있답니다. 계곡물 떠다가 벌컥벌컥 마시지는 마시고 입만 씻으며 가시면 될 겁니다!" 아주머니와 헤어져 한차례 위로 올리면 백두산 갈림봉인 '478봉'에 이르게 된다. 13:00.

 

 

 

# 481봉 전 갈림길.

 

 

 

# 백두산 갈림봉인 478봉.

 

 

 

곧바로 좌틀하여 떨어지는데 또다시 무지막지하게 떨어지라고 한다. 도대체 마지막에 왜 이 모양으로 사람을 괴롭힌다냐? 성질이 나서 등로 중간에 주저 앉아 버렸다.

 

다시 한참을 쉬면서 투정을 부려보지만, 누가 대신 걸어줄 수는 없는 일이니 다시 길을 나서야 한다. 끝장을 보게 깊게 떨어지더니 제법 넓은 고개인 '감천고개'에 이르게 된다.

 

내리막 중간에 쉬었지만, 오늘 처음으로 바람 다운 바람이 이곳 감천고개를 넘고 있어서 그 바람이 아까워 그냥 갈 수가 없다. 짐 내리고 홀랑 벗은 채 또 30여 분 휴식하였다.

 

"무식하게 떨어졌으니 다시 무식하게 올라야겠지?"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체력이 방전되었는지 그렇게 휴식을 많이 했는데도 오르막 오르기가 너무나 힘이 든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위로 오르는데, 처음엔 열 걸음 걷다가 쉬고, 다시 열 걸음 걷다가 쉬고를 반복하다가 나중엔 백 걸음, 이백 걸음... 이렇게 쉬는 횟수를 줄이니 '전망대'에 이르게 된다.

 

우측 대감리 쪽 조망이 좋아서 한참 구경하다가 다시 위로 치고 오르면 이번에는 지나온 길들이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서게 된다. 하지만 정상은 저 뒤로 물러 나 앉는다. 지친 몸을 이끌고 두어 번 더 실망 한 이후에야 겨우 정상은 그 자리를 허락한다. '499봉'

 

 

 

# 감천고개.

 

 

 

# 바람이 처음으로 불고 있어 짐 내리고 또 휴식했다.

 

 

 

# 오름 중간 전망대의 조망.

 

 

 

# 김해 대동면 일대의 인간세와 낙동강, 그 너머 양산 물금의 아파트단지도 보인다.

 

 

 

# 지나온 정맥길. 백두산 갈림봉에서 엄청나게 길게 내려왔단 걸 알 수 있다.

 

 

 

# 김해 백두산 가는 길.

 

 

 

# 뒷쪽에 뾰족한 저 산이 이름도 거창한 백두산이다.

 

 

 

# 정말 힘들게 오른 499봉.

 

 

 

# 정상 너머에 있는 흔들바위. 힘들어 흔들어 보지는 못했다.

 

 

 

# 우측으로 낙동강이 보이고,

 

 

 

# 둔치에 조성된 수변공원.

 

 

 

# 물금나루. 배들이 많이 정박해 있는데 아무래도 공사용인 듯하다.

 

 

 

# 낙동강을 가로로 넓게 펼쳤다. 내 저 낙동강을 보려고 이 염천의 폭염을 뚫고 예까지 왔구나!  (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고암나루.

 

 

 

# 동신어산까지는 또 아래로 떨어졌다가 올라야 하는구나! 정말 징그럽게 오르내리는구나!

 

 

 

499봉은 정말로 힘들게 올라 왔는데 그만큼 사방 조망은 아주 훌륭아다. 천삼백 리 낙동강이 굽이쳐 흘러 가고 있고 낙남의 끝자락인 고암나루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러나 전방의 동신어산을 보는 순간, 입에서 욕이 나온다. 동신어산은 다시 아래로 깊게 떨어졌다가 올라야 하는 형상으로 앞에 딱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에라이~!

 

어떻게 할 것인가? 가야쥐~ 짐 챙겨 정상을 나서면 곧바로 아래로 떨어지는데, 하도 오르내렸더니 무릎이 시큰거리고 살려달란 소리가 절로 나온다. 길게 내려 희미한 고개가 있는 안부에 이르고, 잠시 평탄하게 가다가 위로 밀어 올렸다. 겁을 많이 먹은 것과는 달리 다행스럽게도 경사가 그다지 급하지는 않다.

 

한차례 밀어 올려 마루금에 오르고 우틀하여 좀 전에 499봉에서 마지막에 길게 마루금을 따라 고도를 높여 간 것처럼 올라 가면 '동신어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15:00.

 

 

 

# 동신어산.

 

 

 

# 동무 없으니 기념 촬영은 못하고 정상표지석 어루만져 기념을 갈음했다.

 

 

 

# 가야 할 능선이 아직도 남았구나.

 

 

 

# 무척산쪽 산줄기인가?

 

 

 

 

동신어산은 낙남의 마지막 이름 가진 봉우리라 보통 이곳에서 졸업 세러머니를 하지만, 동무 없고 지쳐 잠시 강산 구경하고 정상표지석 어루만지는 것으로 갈음했다.

 

하지만 정상을 지나자 바로 앞에 암봉 전망대가 있어 그곳에 서서 비로소 팔 벌려 천지신명과 교감도 나눠보고 천지기운도 받았다. 이후 암릉구간이 계속 나타나 암릉길을 진행하다가 급경사 내리막을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스틱에 의지해 최대한 천천히 내려간다. 암릉 내리막이라 무릎에 무리가 많이 간다. 깊게 내렸다가 한차례 올려 봉우리를 넘고 또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267봉'을 넘으라고 한다. 욕이 나오지만, 마지막 봉우리라 예의를 갖추고 이후는 깊고 깊게 떨어져 내리다 드디어 고속도로 절개지 위에 나서게 된다.

 

마지막으로 표지기 하나 달고 좌틀하여 절개지 도수로를 따라 내려가면 레미콘공장이 나오고 고속도로 다리 아래에 내려서게 된다.

 

 

 

# 암봉이 하나 나오는데,

 

 

 

# 사방 조망이 좋구나! 낙동강에 배 띄우고 수상스키를 즐기는 이들.

 

 

 

# 267봉.

 

 

 

# 고속도로 절개지 위에 마지막으로 표지기 하나 달고.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자 마자 우측으로 도수로 따라 올라 가서 숲으로 들어간다. 살짝 올려 야트막하게 봉우리 넘었다. 그곳에서 아래로 내려 가면 매리2교 우측의 삼거리에 내려 서며 드디어 낙남정맥의 마지막 발자욱을 남기게 된다.

 

막상 졸업이라고 하지만 사진 찍어 주고 박수 쳐 줄 동행도 없는 상황인 데다, 두 시간 가까이 물 못 마시고 계곡물로 목만 적시고 왔더니 낙동강으로 내려가 발 담그는 졸업 세러머니는 꿈도 못 꾸겠다.

 

일단 목마름부터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졸업의 감격은 느낄 겨를도 없이 도로 따라 우틀하여 50여m 내려가니 고암마을이 나타나길래 제일 첫 번째 집에 들어가 염치불구하고 물을 좀 청했다. 마당 그늘에서 쉬고 계시던 노인부부께서 냉장고에 넣어둔 생수를 주신다. 500ml 한 통을 숨도 쉬지  않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급하게 먹다가 사래가 들려 콜록콜록 기침하며 눈물을 흘리자 아주머니께서 이 더운 날 무엇한다고 그 고생을 하느냐고 혀를 차신다. "그러게 말입니다."

 

 

 

# 매리2교 우측 삼거리에 내려서며 낙남정맥을 졸업했다.

 

 

 

# 주변이 공사장이라 낙동강으로 내려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타는 듯한 갈증이 해결되고 나니 주변이 눈에 들어오고 비로소 낙남정맥 졸업도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 염천의 뙤약볕 아래 특별한 세러머니를 할 수는 없고 버스 정류장 앞에 배낭 내리고 기념사진 하나 남기는 걸로 갈음했다.

 

 

 

#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이곳을 지나고 있다. 낙동강 종주를 했다는 부자.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아들은 내도록 힘들다고 투정이다. 그래도 그 먼 길을 이곳까지 잘 따라왔다. 나도 국토종주 자전거길 중 낙동강 길만 남았으니 곧 이 장소를 다시 지나가겠다.

 

 

 

# 파이팅!

 

 

 

고암마을에서 구포역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데, 배차 간격이 아주 넓은지 한참을 기다려도 나타나질 않았다. 그러다 마침 부산으로 들어가는 택시가 한 대 오길래 그 차편으로 구포역으로 갔다.

 

구포역 근처 목욕탕에서 찬물로 깨끗이 씻고 새옷으로 갈아 입는데, 오늘 하루종일 땀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아침에 찜질방 싸우나에서 잰 몸무게보다 무려 3.5kg이나 체중이 빠져있다. 아이구야~ 우찌 이렇게나~! 결국 체중 3.5kg의 힘으로 낙남 마지막 구간을 걸은 셈이다.

 

후 미리 예매해 둔 6시 20분 발 KTX를 탔다. 2시간 10분여 만에 광명에 도착하였다. 빠른 세상이다. 연락 받고 기다리고 있던 마눌 차편으로 귀가하며 힘들었던 낙남정맥 졸업산행을 마감했다.

 

 

 

# 낙남하면서 KTX를 자주 타게 되었다.

 

 

 

애초에 낙남정맥은 추운 계절을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중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진행이 느려지면서 '따뜻한 남쪽나라'가 아닌 설설 끓는 가마솥 속같은 계절에야 겨우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이 힘들기는 했지만, 낙남 덕분에 오랜만에 지리산에서 홀로 하룻밤 야영도 즐겨 보고, 고향 진주 근처를 지나며 옛 추억에 잠겨도 보고, 옛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했으니 그걸로 충분하였다.

 

무엇보다도 진주에 이십몇 년을 살았으면서 늘 말로만 듣고 가 보지는 못했던 하동, 사천, 진주, 고성, 함안, 마산, 창원, 김해의 산줄기들을 두 발로 모두 더듬어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였다.

 

이제 금호남의 산줄기를 너댓 번만 가면 1대간 9정맥도 모두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참 사람의 발걸음이 무섭다... 반복의 힘이 참으로 위대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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