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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낙동정맥 종주 요약본 본문

1대간 9정맥/1대간 9정맥 요약본

[1대간 9정맥]낙동정맥 종주 요약본

강/사/랑 2012. 11. 28. 14:27
   [1대간 9정맥]낙동정맥 종주 요약본


 

출발 : 2007년  7월 22일

종료 : 2009년  5월   9일

거리 : 418.9km

 

강/사/랑은 원래 낚시꾼이었다. 수십 년 청춘(靑春) 내내 비린내 풍기며 이 땅의 맑은 여울을 찾아다녔다. 그때 나의 화두는 "섬세하고 우아하게!"였다. 단 한 마리의 물고기를 낚더라도 섬세한 채비로 우아하게 낚아내자는 의미였다. 그렇게 맑은 강물의 흐름과 함께 한 세월 잘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백두대간(白頭大幹) 종주(縱走)를 결심하고 정들었던 물가를 떠나 산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물을 떠나 산을 택하며 홀로 다짐하기를 백두대간 종주가 끝나면 곧바로 원래의 자리였던 강물 곁으로 돌아가리라 하였다.

 

그렇게 이 년여 땀 냄새 풍기며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걸었다. 예정대로라면 이제 땀 냄새 씻고 강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백두대간 종주가 거의 끝나갈 무렵 이곳저곳에서 정맥(正脈) 종주에 대한 유혹이 들어 왔다.


한반도는 백두대간으로 척추를 삼고 아홉 개의 정맥으로 뼈대를 이룬다. 따라서 백두대간을 종주한 산꾼들은 대부분 다시 아홉 정맥을 걷게 된다. 1대간 9정맥을 완주해야 비로소 이 땅의 산맥 대부분을 걸었노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백두대간만 걷고 다시 낚시꾼으로 돌아가리라 작정하고 나선 길이었다. 그래서 정맥에 대한 유혹은 애써 물리치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만약 정맥길로 들어선다면 제일 먼저 낙동정맥(洛東正脈)을 하겠노라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하곤 했었다.

 

그것은 낙동정맥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象徵性) 때문이다. 낙동정맥은 기존에 우리가 이 땅의 산맥(山脈)을 거론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태백산맥(太白山脈)의 옛 이름이자 올바른 산줄기 개념이다. 이른바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고 있는 큰 산맥이자 대표 산맥이다.

 

낙동정맥은 한반도의 동쪽 해안선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그로 인해 이 땅은 동고서저(東高西低)의 독특한 지형을 형성한다. 산맥 가로막히니 동쪽과 서쪽의 자연환경이 구분되고 그 속에 깃든 인간세의 풍토도 달라지게 되었다. 자연히 동서의 사람살이가 독특해 진 것이다.


모두가 낙동정맥의 존재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땅의 대표 산줄기이자 우리 민족의 삶 속에 큰 영향을 끼친 산줄기이니 그 상징성이 남다르다. 따라서 정맥을 거론하자면 자연히 제일 먼저 낙동정맥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삶이란 원래 뜻대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백두대간 종주를 진행하는 동안 삶의 여러 사연들이 겹쳐 애초에 생각지 않았던 정맥 종주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출발은 집에서 가까운 한남정맥(漢南正脈)과 한북정맥(漢北正脈)이 되었다.


우여곡절(迂餘曲折)이 많았던 탓이다. 여러 일들을 겪었고 많은 어려움을 극복했다. 어찌 되었건 시간을 흘렀고 삶은 또 이어졌다. 그리고 집 근처의 두 정맥도 종주하였다. 그러다 보니 이왕 정맥에 뛰어든 이상 아홉 개의 정맥 모두를 걷자 싶었다. 그리하여 두 개의 정맥이 끝나자마자 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낙동정맥으로 향하게 되었다.

 

낙동정맥은 낙동강과 짝을 이루는 산맥이다. 낙동강(洛東江)은 태백산(太白山) 금대봉(金臺峰)에서 발원(發源)한다. 그 물줄기는 태백, 봉화, 울진, 영양, 포항, 경주, 언양, 양산을 거쳐 흘러 부산 다대포에서 남해바다와 합일(合一)한다. 천삼백 리 긴 물길이다.


산길과 물길은 그렇게 천삼백 리를 나란히 흘러내리며 우리 땅의 근간(根幹)을 이룬다. 근원의 물길이자 근본의 산길이다. 그 산길 걸어보지 않고 이 땅의 산맥을 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산하(山河)를 두 발로 제대로 느껴 보자면 반드시 걸어야 할 산길인 것이다. 그런 생각이 나를 자연스럽게 낙동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낙동정맥은 기본적으로 접근 거리가 먼 곳이다. 게다가 우리 땅에 마지막으로 남은 오지(奧地)의 산길이다. 따라서 멀고 험하며 높고 웅장하다. 아무나 함부로 걸을 수 없는 산길인 것이다. 온전한 건강을 가지지 못한 나에게는 더욱 힘들고 어려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쉽게 덤벼들어 연속으로 내달리지 못하고 꽤 많이 망설이고 오래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일단 첫발을 내디뎌 놓고 조금씩 조금씩 발걸음을 더하다 보니 강력한 반복(反復)의 힘과 의지(意志)가 결합해 드디어는 다대포(多大浦) 몰운대(沒雲臺) 바닷물에 발 담글 날이 오기는 하더라!

 

그러하다! 모든 일이 그러하다! 중요한 것은 일단 시작하는 일이고, 거기에다 될 때까지 도전하는 반복의 힘에 주력하는 일이다. 그러면 된다! 모든 일이! 




낙동정맥/洛東正脈 

 

강원도 태백시의 매봉산에서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沒雲臺)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 낙동정맥은 낙동강 동쪽에 위치한 정맥으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전국토의 근골(筋骨)을 이룬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태백산 줄기인 구봉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영천의 운주산(雲住山, 806m)까지 높이 1,000m에 달하는 산줄기를 형성하고, 월성군 서면 아화리의 낮은 구릉을 넘어 다시 경상남도의 가지산(加智山)을 거쳐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까지로, 낙동강 동쪽 하구에서 끝난다.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동해안과 낙동강유역의 내륙을 가르는 분수령산맥이다. 연결되는 주요 산은 백병산(白屛山, 1,259m)·백령산(白嶺山, 1,004m)·주왕산(周王山, 907m)·주사산(朱砂山)·사룡산(四龍山, 685m)·단석산(斷石山, 829m)·가지산(加智山, 1,240m)·취서산(鷲棲山, 1,059m)·원적산(圓寂山, 812m)·금정산(金井山, 802m) 등으로 길이는 약 370㎞에 이른다. 현재의 태백산맥 남부에 해당되지만, 분수령산맥의 개념으로 산줄기를 파악한 우리 조상들의 산맥인식으로는 해안지방과 내륙지방의 자연조건에 따른 식생과 생활환경의 분기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낙동정맥 개념도.(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1구간(피재~통리), 2007년 7월 22일. 많은 고민 끝에 일단 시작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낙동의 산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백두대간 태백의 매봉산 자락에 있는 1145봉의 낙동분기점에서 출발해서 구봉산, 유령산을 넘어 통리역까지 짧게 걸었다. 사진은 1145봉의 낙동 분기점.

 

 

 

이 산은 느릅나무가 많아 느릅산인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니 유령(楡嶺)이라는 제법 으시시한 이름이 되어 어감이 별로 좋지 않다. 그래도 낙동 처음으로 만나는 봉우리에 정상석까지 있어 그 산 정상에 제물 올리고 천지신명께 무사한 낙동의 진행을 기원했다.

 

 

 

# 2구간(통리~석개재), 2007년 8월 25일.  이 구간에는 낙동정맥 최고봉인 백병산과 낙동정맥 중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산으로 알려진 면산이 버티고 있다. 건강 회복한지 두어 달 만에 이 어려운 구간을 도전하면서 스스로 엄청나게 긴장했었다. 실제로 다섯 개의 전위봉을 갖춘 면산은 그 거리가 너무나 멀고 오르내림이 많아 마지막엔 완전히 탈진하여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야 했다. 사진은 해발 1,259m로 낙동정맥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인 백병산 정상.

 

 

 

# 정말 끝도 없는 오르막이 이어지던 면산. 전위봉을 다섯 개나 가지고 있어 봉우리를 넘어도 넘어도 정상이 나타나지 않아 막판에는 엉금엉금 기어서 올랐다. 저 정상석 붙들고 혼자서 속으로 울었다.

 

 

 

# 3구간(답운치~애미랑재), 2007년 9월 22일. 추석 연휴를 맞아 낙동으로 들었다. 그런데 석개재에 오르니 비가 억수로 퍼붓고 있어 도저히 산으로 들어 갈 수가 없었다.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는데, 그냥 귀경하자니 너무나 억울했다. 혹시나 싶어 차 몰고 답운치로 이동하여 올라 가 봤는데, 마침 비가 그치고 있더라. 그래서 늦은 시각에 부랴부랴 짐 꾸려 산으로 들어가 짧게 애미랑재까지만 끊었다. 사진은 물안개 자욱한 통고산 정상의 모습이다. 이후 어두운 밤에 애미랑재에 내려 섰다.

 

 

 

# 4구간(석개재~답운치), 2007년 9월 29일. 8월에 혼자서 엉금엉금 기어 면산을 넘은 소식이 홀로 산꾼들 사이에 알려졌다. 건강 회복된지 얼마 되지 않은 몸으로 낙동의 오지를 걷는 모습이 불안해 보였나 보다. 낙동길 나서려는데 산 동무인 해리님이 뚜버기님과 뱌그라님이 낙동 들어간다고 하니까 팀을 구성해 보란다. 알아보니 마침 이 팀도 나와 낙동에 비슷하게 입문을 하였더라. 그래서 의기투합하여 3인 1조의 낙동종주 팀이 결성되기에 이른다. 이후 우리 팀은 내도록 함께 산길을 걸어 다대포까지 걸었다. 사진은 묘봉 갈림길에서 짐 풀고 막걸리 마실 준비하는 모습이다.

 

 

 

# 소광삼거리 지나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헝겊집 짓고 하룻밤 유했다. 홀로 산길 걷다가 동무들과 함께 하니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재미, 중간중간 막걸리 잔 돌리는 재미가 예사가 아니다.

 

 

 

# 2일째는 하루종일 비가 와서 비를 흠뻑 맞고 산길을 걸었다. 덕분에 젖은 생쥐꼴로 푹 젖어 답운치에 내려 서야 했다. 그래도 동무들이 있어서 든든했다.

 

 

 

# 답운치에서 고개를 넘는 트럭을 얻어 타고 현동으로 넘어 왔다. 현동에서 아주 맛난 민물매운탕도 먹었었지.

 

 

 

5구간(애미랑재~한티재), 2008년 4월 19일. 낙동종주 팀 결성 이후 첫산행을 하고는 무려 7개월 동안이나 개점 휴업상태가 이어졌다. 그동안 나는 금북정맥으로 홀로 들어가 충남 태안의 안흥진까지 냅다 달려 버렸다. 그렇게 해를 넘기고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우리 팀은 다시 낙동길에 나서게 된다. 이번 구간은 나는 이미 답운치에서 애미랑재까지 걸어 둔 바람에 애미랑재에서 홀로 출발하고 두사람은 답운치에서부터 먼길을 걷기로 했다. 세 번째 오른 답운치인데 처음으로 날씨가 화창하게 맑았다.

 

 

 

# 낙동의 스타인 십지춘양목. 위풍당당하다.

 

 

 

# 산행내도록 우측으로 무속인들의 영산 중 하나인 일월산이 보였다.

 

 

 

영양군 수비면 발리로 넘어 가는 한티재에서 하루치 산행을 멈추었다. 한티재 너머 수비면 발리는 정말 오지마을이다. 저 멀리 검마산이 보인다.

 

 

 

# 한티에서 우리 팀과 재회하여 검마산 휴양림에서 하룻밤 유했다.

 

 

 

# 6구간(한티재~검마산휴양림), 2008년 4월 20일. 검마산 휴양림에서 하룻밤 묵은 후 한티재에서 다시 출발하였다. 이 구간은 낙동길 최초로 인간세가 가까이 나타나는 곳으로 우천마을이라는 오지 산간 마을의 뒤를 지나게 되고, 쉼터가 있었던 추령을 지나기도 한다. 최종적으로는 검마산 휴양림 위 임도에서 멈추었다. 이틀간 함께 한 동지들.

 

 

 

귀경길에 봉화 명호에 있는 어느 매운탕집에 들렀다. 꽤 맛난 집이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이 집 여사장과는 이 날 이후 두어 차례 더 만날 기회가 있었다.

 

 

 

# 7구간(검마산휴양림~창수령), 2008년 5월 24, 25일. 찬란한 계절 오월을 맞이하여 이번에도 1박 2일간 낙동길에 나섰다. 첫날은 검마산을 넘어 아랫삼승령까지 가서 그곳에서 야영하고, 둘쨋날은 쉰섬재, 독경산을 넘어 창수령까지 걸었다. 사진은 검마산 정상의 모습이다.

 

 

 

# 검마산을 넘어 백암 온천으로 넘어 가는 임도삼거리에서 점심상을 펼쳤다. 그곳에서 나물 캐러 온 이 지역 여인들과 함께 점심을 들었다.

 

 

 

오월의 숲바닥은 그늘사초가 초원처럼 자라있다.

 

 

 

# 아랫삼승령 정자를 어느 고약한 인사들이 선점하고 있어 자갈길 한 켠에서 잠자리를 펼쳤다. 하지만 오지 중의 오지인 낙동길에서 야영하는 재미는 쏠쏠하더라.

 

 

 

# 둘쨋날은 숲속에 물안개가 가득해서 오전 동안에 이미 온 몸이 흠뻑 젖어 버렸다.  마지막 봉우리인 독경산 가기 전에 햇살 좋은 넓은 임도를 만나 전부 홀라당 벗고 젖은 옷과 장비를 말렸다.

 

 

 

# 8구간(창수령~OK목장), 2008년 7월 19일. 다시 두 달만에 낙동에 들었는데, 태풍이 올라 오고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텐트 치고 밤을 보냈다. 그런데, 밤새 비가 억수같이 뿌리고 아침이 되어도 그칠 생각을 않았다. 그래서 일단 창수령까지만 가보자 했다. 창수령에 가니 마침 비가 그쳐 산으로 들어 섰다. 그러나 곧 다시 천둥번개를 동반한 엄청난 비가 퍼 부어서 모두들 비를 쫄딱 맞아야 했다. 창수령 너머엔 울치재를 지나 산꾼들에게 유명한 당집이 하나 있다. 혹자는 저곳에서 귀신을  만났다고도 하고, 혹자는 환청을 들었다고도 하는데, 가까이 가보니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곳이라 혼자서는 가까이 가기가 겁나겠더라.

 

 

 

# 울치재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꿋꿋이 막걸리 잔을 돌리는 우리 동지들. 참으로 장하십니다! 막걸리를 빨리 마시지 않으면 빗물이 섞혀 술맛이 밍밍해져 버린다.

 

 

 

# 9구간(OK목장~황장재), 2008년 9월 6일. 이 구간은 소 방목지와 감자밭이 있던 OK목장에서 출발하게 되는데, 목장과 농장은 사라지고 국내 최대규모의 풍력발전단지가 건설 중이었다.

 

 

 

# 봉화산, 명동산, 박짐고개, 화매재를 넘어 황장재까지 걸었다. 출발이 늦어 캄캄한 밤중에야 황장재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사진은 산불감시탑이 있는 명동산 정상이다.

 

 

 

# 10구간(황장재~피나무재), 2008년 9월 20일. 이 구간은 국립공원인 주왕산의 마루금을 넘는 곳으로 빼어난 경치와 조망처를 자랑하는 곳이다. 사진은 송이꾼들의 베이스 캠프인 송이모둠터이다. 그들이 설치해 둔 텐트는 비바람에 시달려 완전히 누더기가 되어 있더라.

 

 

 

# 이 날의 일기예보는 흐림이었는데, 점심 먹고 나서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비가 날이 완전히 저물어 아홉시 무렵까지 줄기차게 쏟아졌다. 일기예보 믿고 우의 없이 간 나는 완전히 비에 젖어서 위험한 지경이 될 뻔 했고, 너무 강한 빗줄기 때문에 진행 속도가 느려 밤 아홉시가 다 되어서 모두들 탈진하여 피나무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치 좋은 구간인데, 하루종일 빗물 구경 밖에 할 수 없었다. 낙동정맥에 들어간 이후 두 번째로 위험한 날이었다.

 

 

 

# 11구간(외항재~지경고개), 2008년 10월 3, 4일. 영남알프스 억새가 곱게 익어간다는 소문이 바람결에 들려 구간을 왕창 건너 뛰어 영알로 향했다. 이번에는 뱌님이 일이 있어 빠지고, 대신 비그쳐님과 솔숲님이 합류하여 종주팀이 네 명으로 늘었다. 사진은  외항재에서 운문령을 넘고 가지산 가기 전 쌀바위대피소 옆 전망대의 모습이다.

 

 

 

# 석남사를 품고 있는 가지산.

 

 

 

# 석남재 너머 능동산을 거쳐 배내고개로 향하는 낙동의 용트림.

 

 

 

# 우리가 영알에 왔다는 소식이 이곳저곳 흘러 갔는지 구미의 샷다님과 울산의 구경쟁이님, 그리고 홀로바우님이 맛난 음식을 싸들고 배내고개로 환영을 오셨다. 특히 산속에서 먹는 전어회의 맛이 일품이었는데, 이날 배내고개의 밤이 무척 뜨거웠다.

 

 

 

# 뒷날은 영알 억새를 만끽할 수 있는 배내봉,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을 넘었다. 간월산 가는 길에 나름 설정에 들어간 뚜벅.

 

 

 

# 가을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간월재는 넘치더라.

 

 

 

# 영축산 가는 길의 억새물결.

 

 

 

# 영알팀의 인증샷.

 

 

 

# 12구간(피나무재~한티재), 2008년 10월 18, 19일. 영알구간 때문에 건너 뛰었던 원정맥 종주길로 복귀했다. 주왕산 자락의 피나무재를 출발해서 포항땅으로 접어 들었다. 사진은 가을이 익어가는 임도길을  따르는 모습.

 

 

 

# 어두워지고나서 가사령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야영하였다..

 

 

 

# 둘쨋날은 포항 침곡산을 넘어 한티재까지 걸었다. 한티는 큰 고개란 뜻인데, 몇 구간 앞 영양군 수비면에도 한티가 있었다. 낙동정맥 중간 지점인 배실재에서 막걸리 한 잔씩 나누었다.

 

 

 

# 13구간(한티재~아화고개), 2008년 11월 22, 23일. 낙동은 한 번 나서기도 어렵고 접근하기도 어렵다. 서울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 있고 오지가 많은 탓이다. 그래서 대부분 1박 2일로 진행하였다. 한티터널에서 한티재로 치고 오르는데, 도깨비까시밭이 앞을 가로 막아 가시가 박혀 다리가 완전히 털난 짐승같이 되어 버렸다. 저것 모두 떼어내는데 한 시간이나 걸렸다.

 

 

 

# 이 구간은 길기도 하고 운주산, 봉좌산 등 높은 산도 많아 아주 힘이 많이 들었다.

 

 

 

# 거리가 점점 멀어져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갔다. 첫날은 시티재까지 걸어 고개 아래에 있는 모텔에서 자고 뒷날 한무당재 지나 독특한 모양의 관산을 넘어 경주 근처인 아화고개까지 걸었다. 사진은 모자처럼 독특한 모양과 엄청나게 가파른 오르막으로 유명한 관산의 모습이다.

 

 

 

# 14구간(아화재~외항재), 2008년 12월 27, 28일. 계절이 어느새 겨울로 접어들고, 낙동에 나선지도 1년 6개월이 지났다. 첫날은 경주의 아화고개에서 출발해서 사룡산, 우라생식마을, 부산성, 독고불재를 지나 땅고개까지 걸었다. 사룡산 자락에는 생식을 하고 산다는 우라마을이 있는데, 왠지 스산하고 서글퍼 보이더라. 그 동네 초입의 어느 양지바른 곳에서 어묵탕 끓이고 막걸리 한 잔 나눴다.

 

 

 

# 부산성 상단은 고랭지채소밭으로 되어 있다. 그 날은 온통 눈이 덮혀 스키 슬로프 같은 분위기가 났다. 눈길을 걸어 올라 가는 산꾼들의 뒷모습이 힘들어 보인다.

 

 

 

# 건천에 있는 모텔에서 1박했는데, 김천의 mt주왕님이 밤길을 차 몰고 달려 와 위문을 해 주었다. 맛난 과매기도 잘 얻어 먹었고, 뒷날 아침 땅고개까지 택배도 해 주었다. 감사하였다! 

 

 

 

둘쨋날은 경치도 좋고 힘도 많이 들었다. 단석산 지나 방주교회 앞의 풍광은 고원의 느낌이 나는데, 그곳에서 경치 구경하며 차가운 막걸리 한 잔 나눴다. 

 

 

 

# 소호고개에서 백운산까지는 오르내림이 많아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 백운산에서 날이 어두워졌고 이후 고헌산까지 눈이 덮힌 등로가 하늘 꼭대기에 이를 듯 위로 솟아 있어서 참으로 힘들게 올라야 했다. 오름이 너무 힘이 드니까 우리 낙동 팀의 분위기도 다들 날카로왔다. 정말 힘든 구간이었다. 사진은 백운산 정상에 서 있는 뚜벅의 모습이다.

 

 

 

# 15구간(양산지경고개~부산지경고개), 2009년 2월 14,15일. 드디어 낙동길은 부산으로 접어들게 된다. 세월 흘러 해도 넘기게 되고. 양산까지 버스 타고 내려가서 통도사 골프장을 지나고, 정족산을 넘어 안적고개까지 갔다. 그리고 웅상읍으로 내려가서 그곳 모텔에서 하룻밤 묵었다. 정맥길의 골프장 대부분은 정맥꾼들에게 아주 적대적이만 이곳은 아무도 간섭을 않는다.

 

 

 

# 둘쨋날은 몇 해 전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천성산을 지나게 된다. 천성산은 어느 여자 승려의 단식과 좌빨들의 선동으로 엄청난 국고의 낭비와 국민적 갈등을 야기한 곳이다. 현장에서 확인하니 KTX 터널과 천성산 화엄늪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도저히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거리였다. 사진의 억새밭으로 모자를 쓴 산이 천성산이고, 터널은 사진 좌측 바깥쪽 지표면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어설픈 환경주의와 교활한 좌빨이 합작하여 엄청난 갈등과 국고 낭비를 가져온 현장이었다. 분노하였다.

 

 

 

# 거꾸로 굴러 떨어질 듯한 급경사 고갯길을 길게 내려 넓고 긴 저 방화선을 따라 운봉산까지 올라야 한다.

 

 

 

# 16구간(지경고개~개금고개), 2009년 3월 28일. 이제 완전히 부산시내로 들어 서게 되었다. 범어사가 있는 금정산을 넘고, 금정산성을 따라 걷다가 백양산을 넘어 개금고개까지 가야 한다. 사진은 금정산의 정상인 고당봉의 모습.

 

 

 

# 금정산성, 점심에 산성막걸리를 사 먹었는데 우리에겐 안 맞는지 숙취가 심하였다.

 

 

 

# 산성고개를 지나 우뚝 솟아 있는 백양산은 정말 힘들게 올랐다. 이후 날이 어두워져서 두어 시간 야간 산행을 해야 했다.

 

 

 

# 뒷날 졸업도 가능했는데, 부산 산꾼들이 개금으로 마중을 나온 데다 타지에서 산을 타던 홀로 산꾼들까지 몰려와 부산에서 느닷없는 잔치가 벌어졌다. 부전시장의 꼼장어가 참 맛나더라. 뒷날은 낙동 정맥을 마지막으로 1대간 9정맥 졸업을 하는 산꾼이 있어 그 축하의 자리에 다들 참석하여 축하를 해 주기도 했다.

 

 

 

# 17구간(개금고개~몰운대), 2009년 5월 9일. 드디어 낙동의 졸업이다. 이 날은 부산시내를 관통하는 산줄기를 따라 엄광산, 구덕산을 넘고, 시가지를 누비다가 아미산을 넘어 다대포로 향하였다. 엄광산 정상에서 제일 먼저 막걸리부터 한 잔 했다.

 

 

 

# 시약산 레이더 관측소에서 부산 시내를 굽어보다. 

 

 

 

# 아미산 봉수대, 이제 산은 끝이다.

 

 

 

# 천삼백 리를 달려 온 낙동강이 남해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 만 2년만에 몰운대 바닷물에 발을 담그다. 처음 백두대간 피재에서 홀로 출발했다가, 석개재에서부터 이 두 동지와 팀을 이뤄 길고 긴 낙동길을 함께 걸었다.

 

 

 

# 이곳저곳에서 온 많은 이들이 축하를 해주어 은성한 뒷풀이를 오래 즐겼다. 2년 동안 동고동락한 우리 동지들은 축하객 모두 떠난 후에도 자갈치에서 오래 술잔을 나눴다. 고마웠소이다, 그리고 즐거웠소이다, 동지들!

 

 

 

천리길을 같이 걸어온 신발 세 짝이 자갈치 바닷가에 나란히 도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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