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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호남정맥 종주 요약본 본문

1대간 9정맥/1대간 9정맥 요약본

[1대간 9정맥]호남정맥 종주 요약본

강/사/랑 2012. 12. 7. 16:52
   [1대간 9정맥]호남정맥 종주 요약본

 

 

출발 : 2009년  5월 23일

종료 : 2012년  3월   4일

거리 : 464.4km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이 땅의 중심축이자 등뼈이다. 백두산에서 출발한 대간(大幹)은 남으로 지리산을 향해 굽이쳐 흐르면서 그 자신의 좌우로 아홉 개의 정맥(正脈)을 갈래 친다. 그 아홉 정맥은 뻗어 나간 자신의 지세(地勢)는 물론, 깃들어 사는 인간세의 형상과 어우러지며 제각기 독특한 특징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낙동정맥(洛東正脈)처럼 장쾌한 산악미(山岳美)를 자랑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한남정맥(漢南正脈)처럼 인간세에 근접해 있어 개발에 따른 훼손이 심한 것도 있고, 낙동이나 호남정맥(湖南正脈)처럼 바다에서 끝을 맺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북정맥(漢北正脈)이나 낙남정맥(洛南正脈)처럼 강으로 잠기는 정맥도 있다. 또, 금남호남정맥이나 한남금북정맥처럼 바다나 강으로 잠기지 않고 대간과 다른 정맥을 이어 주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는 등 다들 저마다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정맥의 여러 특징 분류 중 길이의 장단(長短)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정맥 중 길이가 가장 짧은 것은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이다. 백두대간 영취산(靈鷲山)에서 갈라져 나와 전북 장수의 장안산(長安山)을 거쳐 진안의 조약봉(鳥躍峰)까지 이어지는 길이 65km의 짧은 산맥이다. 이름이 금남호남정맥인 것은 백두대간에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장 긴 정맥은 '호남정맥(湖南正脈)'이다. 그 길이가 무려 460여 km에 이른다. 65km인 금남호남정맥에 비하면 7배나 긴 산맥이다. 호남정맥은 전북 진안의 조약봉(鳥躍峰)에서 기원(起源)한다.


조약봉은 세 개의 정맥이 모였다 갈라지는 곳이다. 그래서 '삼정맥 분기봉(分岐峰)'이라 부른다. 이 봉우리에서 위로는 금강(錦江)의 남쪽을 울타리 치는 금남정맥, 아래로는 호남지방 전체를 구불구불 휘감아 도는 호남정맥이 갈라진다.



이곳 전북 진안 분기봉에서 시작한 정맥은 임실, 정읍, 순창, 담양, 곡성, 광주, 화순, 장흥, 보성, 순천 등 호남 대부분의 지방을 '디귿자' 형태로 휘감아 돌다 광양 백운산(白雲山)에서 우뚝 솟아올라 마침표를 찍는다.


무릇 산맥은 바다나 강으로 잠겨야하는 법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정맥을 바다로 늘렸다. 백운산을 넘은 정맥은 뒤풀이로 섬진강을 따라 남하하여 섬진강(蟾津江)이 남해바다와 만나는 망덕포구(望德浦口)에서 푸른 바다와 합일(合一)한다.

 

이렇듯 호남정맥은 호남의 전 지방을 아우르며 휘감아 돌아 산세(山勢)와 지세(地勢)를 형성함은 물론, 그 품자락에 깃들어 사는 인간세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끼치며 오래오래 그 인간세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강/사/랑의 우리 산하(山河) 두 발로 느끼기'는 단순히 산길 걷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둥지를 틀고 사는 인간세의 모습도 함께 느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밥벌이에 얽메인 몸이라 늘 시간에 쫓기기 일쑤여서 지역 사람들의 온기(溫氣)를 느끼기는 늘 수박 겉핥기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길 걷기 위해 오가며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들이 적지 않고, 산길 잇느라 머문 고장이 부지기수라 깊이는 없으나 폭 넓은 바는 제법 있는 편이었다. 그리하여 걸음걸이 쌓여 갈수록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는 제법 많아지기는 하였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호남지방에 여행 다닐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정맥길 걷느라 만 3년 동안 호남지방을 뻔질나게 드나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인연이 누적되고 여러 이야기들이 새로이 얻어졌다. 그 인연과  이야기들이 정맥의 산길은 물론이요, 그곳에 깃든 인간세에 대한 이해에도 도움이 되었으리라 여겨진다.




호남정맥/湖南正脈 


주화산(珠華山, 600m)에서 시작하여 내장산을 지나 전라남도 장흥을 흘러 영산강 유역과 섬진강 유역을 갈라 광양 백운산(白雲山)에서 끝나는 산줄기의 옛 이름.조선 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였던 산줄기 체계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이로부터 가지 친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졌다.『산경표(山經表)』에 근거를 둔 이들 산줄기의 특징은 모두 강 유역을 기준으로 한 분수산맥이라는 것이다. 이 정맥을 이룬 주요 산은 『산경표』에 웅치(熊峙)·사자산(獅子山)·운주산(雲住山)·칠보산(七寶山)·내장산(內藏山)·백암산(白岩山)·추월치(秋月峙)·금성산(金城山)·만덕산(萬德山)·무등산(無等山)·천운산(天雲山)·화악산(華岳山)·가야산(伽倻山)·금화산(金華山)·금전산(金錢山)·조계산(曹溪山)·동리산(洞裏山)·송현 (松峴)·계족산(鷄足山)·백운산 등으로 기록되었다. 우리 나라 남부의 호남 지방을 동서로 크게 갈라놓은 이 산줄기는 서쪽은 해안의 평야지대로, 동쪽은 남원을 중심으로 한 산간지대로 농경과 산업, 그리고 현격히 다른 생활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또한, 장흥의 용두산(龍頭山)에서 하동의 섬진강 하구까지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산줄기는 지리산에서 김해의 낙동강 하구까지 이어진 낙남정맥(洛南正脈)과 함께 우리 나라 남부 해안 지방의 동일한 생활 문화권역을 형성하게 하였다. 현대 지도에서의 산 이름으로 찾아보면, 곰재·만덕산·경각산(鯨角山)·오봉산(五峰山)·내장산·백암산·추월산·산성산(山城山)·설산(雪山)·국수봉(國守峰)·무등산·천운산·두봉산(斗峰山)·용두산·제암산(帝巖山)·일림산(日林山)·방장산(方丈山)·존제산(尊帝山)·백이산(伯夷山)·조계산·희아산(戱娥山)·동주리봉·백운산 등이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 호남정맥 개념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1구간(조약봉~슬치), 2009년 5월 23, 24일. 7개월 동안 대여섯 번 호남정맥 행(行) 짐을 꾸렸다 풀었다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2009년 5월, 호남길 대장정에 나섰다. 그만큼 호남정맥 종주는 시작 자체가 힘겨운 도전이었다. 첫구간은 출발이 늦었다. 오후 2시를 넘겨 느지막히 모래재 휴게소를 출발했다.

 

 

 

# 조약봉의 3정맥 분기점에서 출발하여 곰티재까지 짧게 걸었다. 이 날은 나보다 한 구간 먼저 호남을 시작한 해리님 내외와 전서방님 내외가 곰티재로 마중을 나와 주었다. 이 두 쌍의 부부는 호남정맥을 부부 종주로 함께 하기로 하였단다. 모래재 휴게소 한 켠에서 헝겊집 세 채 짓고 하룻밤 유했는데 두 쌍의 부부 사이에서 쬐끔 외로웠다.

 

 

 

# 둘쨋날 역시 혼자서 만덕산을 넘어 슬치까지 걸었다. 만덕산 전(前) 암봉에서 비로소 호남의 산신령들께 입산 신고를 할 수 있었다. 간단한 제물 올리고 홀로 산신제를 올렸다. "무사히 망덕포구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2구간(슬치~염암마을재), 2009년 5월 30, 31일. 이번 구간 역시 1박 2일로 호남길을 진행했다. 지난 주처럼 두 부부는 한 구간 앞에서 걸어 가고 있다. 첫날은 슬치에서 갈미봉, 효간치, 경각산을 넘어 불재까지 걸었다. 이른 더위로 땀을 많이 흘렸고 오르내림이 많아 힘들었다. 그러나 전망이 좋은 곳이 많아 눈 호사는 제대로 했다.


사진은 구간 막바지 경각산에서 불재를 내려다 본 모습이다. 불재는 불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 곳인데. 실재로 현재 불가마가 영업 중이다. 우측으로는 구름 모자를 쓴 모악산이 보인다.

 

 

 

# 불재 아래에 있는 신덕면 어느 마을의 쉼터에서 하룻밤 유했다. 1개 소대가 머물러도 될 것 같은 넓은 쉼터와, 화장실, 수도까지 완벽하게 갖춘 곳이다. 저 두 쌍의 부부는 소풍다니듯 재미나게 정맥 산행을 하고 있다.

 

 

 

# 2일 째는 불재에서 활공장과 봉수대를 넘어 염암마을 위의 구절양장 고개에서 끊었다. 이 날 도중에 광주의 소머즈 부부를 조우했다. 이 부부 역시 열정적으로 1대간 9정맥 종주를 하는 이들이다. 부부가 나란히 손잡고 산길 걷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당시는 1대간 9정맥 진행 상태가 나와 비슷했는데, 만고강산으로 산길 걷는 나와는 달리 순식간에 완주를 해 버리고, 기맥으로 뛰어 들었다더라.

 

 

 

# 3구간(염암마을재~솔개재), 2009년 6월 6, 7일. 이번에도 1박 2일로 구간 종주를 하였다. 부부 두 팀과는 일정이 맞지 않아 홀로 야영 및 진행을 하였는데, 이후 내내 홀로 호남길에 나서게 되었다. 첫날은 오봉산을 넘어 운암삼거리까지 걸었다. 오봉산은 옥정호의 조망처로 유명한 산이지만, 이 날은 박무가 짙게 끼어 있고 공사 때문에 옥정호의 물을 전부 빼버려 좋은 경치 구경은 못했다.

 

 

 

# 산행마치고 어두워져서 운암삼거리에 도착했는데, 이 날의 원래 계획은 옥정호 곁에 있는 아래 사진의 2층 정자에서 혼자 하루를 묵어 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운암리 식당의 주인이 강하게 말리는 바람에 옥정호의 다른 곳에 있는 작은 정자에서 자야 했다. 저 정자에서 어느 여인이 자진을 했고, 할머니 한 분이 낙상하여 돌아 가신 일도 있다고 하니 혼자서 잘 수가 있어야지...


홀로 산꾼 중에 간혹 저 정자에서 야영한 이들이 있었다. 사연 많은 곳이어서 그런지 헛것을 본 이도 있고 꿈자리 뒤숭숭했던 이들도 있었다. 식당 주인의 권유가 강해서 근처의 다른 정자로 잠자리를 옮겼다. 그래도 저 정자 곁에는 물 잘 나오는 화장실이 있다. 그곳 화장실에서 캄캄한 밤중에 홀랑 벗고 목욕은 했다!

 

 

 

# 둘쨋 날은 묵방산을 넘어 여우치 마을을 지나고 가는정이에서 성옥산을 넘어야 하는 코스다. 그런데, 전날 옥정호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 호수 구경하며 가다가 엄청난 알바를 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성옥산에 올라 스스로를 한탄했었다.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그래도 옥정호 구경은 잘했다.

 

 

 

# 4구간(솔개재~추령), 2009년 7월 4, 5일. 날씨가 제대로 더워지기 시작한 계절에 호남길에 다시 들었다. 첫날은 빡센 왕자산을 넘어 구절재를 지나고 복분자로 유명한 순창군 쌍치의 굴재까지 걸었다. 중간에 물이 떨어져  정맥 사면에 위치한 석탄사에 들렀는데, 석탄사 비구니 스님이 물은 물론이요, 시원한 매실즙과 감자, 단호박 등 여러 간식까지 주셔서 참 맛나게 얻어 먹었다. 사진은 돌이 굴러 여울이 되었다는 뜻의 석탄사(石灘寺). 절벽 중간에 그림처럼 자리한 사찰이다.

 

 

 

# 순창 쌍치에 있는 전봉준 피체지 기념관에서 하룻밤 잤다. 수십 억을 들여 조성해 둔 기념관은 찾는 이 없어 지역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하더라. 투자한 돈에 비해 한산한 곳이라 고요히 밤을 보냈는데, 이날 잠결에 녹두장군에게 한 대 얻어맞았다.

 

 

 

# 둘쨋날은 고당산을 넘어 개운치에 이르고 다시 망대봉을 넘어 내장산 산행의 기점이 되는 추령까지 걸었다. 오르내림이 심하고 날도 더워서 힘이 많이 들었지만, 경치는 정말 좋은 곳이었다. 복룡재 지나 바위전망대에 서면 내장산의 연봉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사진은 연꽃처럼 꽃잎을 오무린 형상의 내장산 전경.

 

 

 

 

# 5구간(추령~밀재), 2009년 8월 15, 16일. 성하(盛夏)의 뜨거운 열기가 가득할 무렵 다시 호남에 들었다. 이번 구간은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 구간이다. 가을쯤 지났으면 예쁜 단풍에 취할 수 있었겠지만, 나에게 그런 호사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진은 신선봉 지나 만난 전망대에서 돌아본 장군봉 일대의 정맥길.

 

 

 

# 추령에서 출발이 늦어 우군치, 장군봉, 신선봉을 넘어 소등근재에 이르니 이미 해가 많이 기울었다. 이곳에서 정맥길은 능선이 아니라 계곡을 따라 오르게 되어 있고, 마침 작은 계곡이 있길래 홀랑 벗고 오래 알탕을 즐겼다. 정맥 산행하면서 중간에 알탕해 보기는 또 처음이다.

 

 

 

# 순창새재를 지나 상왕봉에 이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상왕봉부터는 내장산이 아니라 백암산의 품이 된다. 금세 날이 어두워져 이마에 등불 달고 어두운 숲길을 걷는데, 등로 곁 넓은 산죽밭에서 멧돼지를 만났다. 그런데 멧돼지가 도망가지 않고 푹푹 콧김 소리를 내며 나를 위협했다. 놀래서 등로 곁에 있는 넓은 바위 위로 피신했다.


보통 멧돼지는 사람을 보면 먼저 피하는데, 이 놈은 새끼를 데리고 있는 녀석이었다. 새끼 가진 짐승은 사나워지는 법이다. 녀석은 내가 피해 있는 바위 좌우를 우두두두 내달리며 나를 마구 위협했다. 마침 바위가 높아 놈이 뛰어 오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호각을 꺼내 마구 불어 대며 스틱으로 바위를 내리쳤다.


10여 분 혼자서 미친 듯이 호각 불고 바위를 내리치다가 주위가 조용해서 둘러보니 돼지는 도망가고 없었다. 이후 백암산 능선을 정신 없이 뛰었다. 어둡고 위험한 산길이었지만 살필 겨를이 없었다. 기진맥진하고 땀범벅이 된 채 감상굴재에 도착했다. 2시간 반 거리를 한 절반 만에 도착한 듯 싶다. 홀로 산행하면서 이렇게 겁나고 아찔한 기억은 또 처음이다. 감상굴재 도로에 도착해서 길바닥에 오래 누워 있었다.

 

 

 

# 정읍 택시 불러 차 회수했다. 정읍의 택시기사들은 만날 때마다 모두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다. 이 날도 두 배쯤 요금을 지불했다. 그 바가지 택시 편으로 백양사 야영장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하룻밤 묵었다. 차가운 계곡물에 씻고 텐트 안에 들어가 누웠는데,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멧돼지 생각에 정신이 아찔하여 쉬이 잠들지 못했다.


뒷날은 대각산과 도장봉을 넘어 밀재까지 걸었다. 사진은 밀재 가기 전에 만난 전망대에서 백양산과 내장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돌아본 모습.

 

 

 

# 6구간(밀재~오정자재), 2009년 8월 22, 23일. 이번 구간은 담양호를 품에 안고 있는 추월산을 넘게 된다. 추월산정에 오르니 발 아래 담양호의 물결이 푸르고 푸르다. 나중 어느 달 밝은 밤에 벗들과 함께 물 위에 뜬 달빛을 희롱해 보는 것도 아름다우리라 생각들었다. 심적산에서 지나온 추월산과 담양호를 돌아 보았다.

 

 

 

# 이 날도 출발이 늦어 야간 산행을 해야만 했다. 천치재에 이르니 시각이 이미 오후 9시가 되었더라. 택시 불러 차 회수하고 인근 마을 정자에서 하룻밤 유했다.

 

 

 

# 천치재 포도 농장 벽에 거울이 달려 있길래 혼자놀기도 해 보았다.

 

 

 

# 둘쨋날 가장 높은 봉우리인 용추봉에 오르니 세자봉을 거쳐 회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눈에 들어 온다. 회문산은 동학군의 슬픈 역사가 어린 산이다.

 

 

 

#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낯익은 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가만히 보니 지리산 반야봉이다. 우측엔 노고단도 보이고... 지리산은 언제 보아도 가슴 뛰는 우리네 산꾼의 고향 같은 산이다. 오래오래 그 자리에 서서 지리를 조망하였다.

 

 

 

# 7구간(오정자재~방축재), 2009년 9월 20일. 이번 구간은 담양호를 끼고 강천산과 금성산성을 휘감아 돌아 담양의 방축재까지 가는 길이다. 처음으로 1박 2일이 아닌 당일 산행을 했고, 교통수단도 승용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수원역에서 열차 타고 남원으로 가서 찜질방에서 잤다. 뒷날 첫차로 순창으로 이동, 다시 동네 버스 타고 오정자재로 향했다. 종이로 만든 버스표를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된다.

 

 

 

# 이 구간은 호남의 대표적 산성인 금성산성이 주 포인트이다. 산성 끝에 걸터 앉으면 담양호가 발 아래 펼쳐진다. 그 풍광 보며 막걸리 한 잔 마셨다. 사진은 금성산성 끝자락에 있는 북바위의 모습.

 

 

 

# 8구간(방축재~과치재), 2010년 2월 21일.  2009년 9월 말에 방축재에 내려선 이후 무려 5개월만에 다시 호남길에 나서게 되었다. 그동안 똥꼬에 이상이 생겨 수술하고 재활하느라 집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던 탓이다. 수술할 때의 그 엄청난 모멸감, 그리고 수술 후 약 3개월 동안 겪은 무시무시한 통증... 생각만해도 끔찍하였다.


해가 바뀌고 나서야 겨우 몸을 추스리고 다시 호남길에 들어 설 수 있었다. 이번 구간은 방축재에서 88고속도로 곁을 따르다가 봉황산과 서암산을 넘은 뒤, 경치가 훌륭한 괘일산을 넘어 과치재까지 걷는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이목마을로 접어들면 자태 좋은 소나무를 만나게 된다.

 

 

 

# 오랜만의 호남길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이 구간은 괘일산의 경치가 일품인 곳이다. 사자 한 마리 허공을 향해 울부짖는 듯한 괘일산의 자태.

 

 

 

# 좌측 아래로 정석제 저수지가 보인다.

 

 

 

# 9구간(과치재~유둔재), 2010년 2월 27, 28일. 다시 1박 2일로 호남길에 나섰다. 첫날은 오후 늦게 과치재를 출발해서 연산을 넘었는데, 비가 쏟아지고 날이 어두워져서 방아재에서 멈추고 말았다. 곡성군에 위치한 연산의 정상. 비 안개로 뿌옅다.

 

 

 

# 방아재 인근의 청운동 마을에서 비 때문에 텐트도 못 치고 차 안에서 하룻밤 유했다. 뒷날 아침 비가 그치길래 산행을 이어갔다. 방아재에서 만덕산을 넘고 조금 가자 호남정맥 중간 지점이라는 안내목이 나타난다. 하지만 이 지점의 기점이 금남호남을 포함한 전체 길이로 따진 것이어서 진정한 호남 정맥의 중간지점은 아니다.

 

 

 

# 이후 국수봉을 넘고 노가리재를 지나는데, 갑자기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진행 속도가 뚝 떨어졌다. 새목이재, 어산이재를 지나는 정맥의 우측 아래는 우리나라 민간 정원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소쇄원(瀟灑園)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바람소리 들으며 거닐지 못하고 지친 다리를 끌고 엉금엉금 기어야 했다. 체력 고갈로 속도가 늦어 어두워진 후에 겨우 유둔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완전히 지쳐서 도착한 유둔재의 모습.

 

 

 

# 10구간(유둔재~어림고개), 2010년 3월 27, 28일. 이번 구간은 호남정맥의 상징이랄 수 있는 무등산 구간을 지나게 된다. 호남의 아픈 역사를 함께 한 무등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 그 품 언저리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밤이 많이 깊어서야 무등 언저리에 도착하여 좋은 싸이트를 찾지 못했다.


무등산 자락의 신선대 입구 억새밭에 타프 치고 야영하였다. 억새밭은 무등과 북산의 중간이라 바람이 지나는 곳이었다. 덕분에 밤새 말 달리듯 사나운 바람소리를 들어야 했다.

 

 

 

# 무등의 품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꼬막재 거쳐 지공너덜길을 걸어 규봉암에 도착하여 물을 보충한 후 장불재로 향했다. 3월 답지 않게 찬바람 가득한 장불재에서 무등을 올려보자 무등은 봄꽃 대신 하얀 상고대의 서리꽃을 달고 있더라.

 

 

 

# 이후 백마능선 지나 안양산을 넘고 둔병재 편백숲을 지나 어림고개까지 걸었다. 사진은 억새가 말갈기처럼 휘날린다는 백마능선의 모습이다. 저 멀리 안양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 11구간(어림고개~돗재), 2010년 4월 3, 4일. 계속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고 중간 기착지는 여전히 광주시이다. 이 무렵의 컨셉은 첫날 오후에 출발하여 중간에서 끊은 후 다시 나머지를 잇는 방식이었다. 어림고개에서 꽤 빡세게 올려 쳐야 만나는 별산을 넘고 묘치재 주릿재를 넘는데, 날이 캄캄해져 버린다. 이후 두 시간 동안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걸어 서밧재까지 걸었다. 사진은 별산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카메라의 모습.

 

 

 

# 화순의 찜질방에서 하룻밤 묵은 후 뒷날 천운산을 넘어 돗재까지 걸었다. 천운산에서 천지신명께 막걸리 한 잔 올린 후 음복하고 덤으로 홀랑 벗고 천지합일을 시도하는데 지역 산객이 불쑥 올라와 많이 민망했었다. ^^

 

 

 

# 12구간(돗재~예재), 2010년 5월 21, 22일. 한 달만에 다시 호남길에 나섰는데, 이 구간부터는 호남길 특유의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기 시작하는 구간이다. 첫날은 태악산, 노인봉, 성재봉, 촛대봉, 두봉산을 넘어 개기재까지 걸었다. 오르내림 심한 봉우리가 많아 힘이 들었다. 중간에 너무 졸려 배낭 멘 채로 등로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숲바닥의 그늘사초가 눈높이이다.

 

 

 

# 개기재 아래 묵곡리 정자에서 하룻밤 유한 후 다음 날 개기재로 올랐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철쭉 유명한 계당산을 넘자 빗줄기가 굵어졌다. 앞을 가로막는 잡목숲을 헤쳐가며 어렵게 예재에 이를 수 있었다.

 

 

 

# 이 구간 막판의 등로는 잡목이 앞을 막아 이런 모양이다. 그야말로 잡목과의 전쟁이었다. 힘든 구간이다.

 

 

 

# 13구간(예재~곰재), 2010년 6월 16일. 오랜만에 당일 산행을 하였다. 예재를 출발해서 온수산, 시리산, 봉화산, 고비산, 덕암산, 군치산, 숫개봉, 봉미산 등 많은 산과 추동재, 가위재, 큰덕골재, 뗏재 등 여러 개의 고개를 차례로 지나야 하는 아주 힘이 많이 드는 구간이었다. 잡목이 등로를 가로막아 헤쳐 나가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요, 숲속에 물안개가 가득해 온 몸이 비 맞은 듯 물에 푹 젖어 버렸다.

 

 

 

# 큰덕골재에서 군치산으로 이어지는 넓은 방화선은 뙤약볕 때문에 정수리가 뜨겁다. 이 구간은 잡목숲과 이런 노출지가 공존하는 극과 극의 산길을 보여준다.

 

 

 

# 14구간(곰재~피재), 2010년 9월 18, 19일.  6월달 때이른 무더위에 탈진하여 곰재에 내려선 이후 두어 달 호남길을 접어 두었다가 추석 연휴를 맞아 다시 짐을 꾸렸다. 정맥길은 이제 화순을 지나 장흥 땅으로 접어들게 된다. 오후 늦게 곰재를 출발해서 국사봉을 넘고 야간산행을 오래 하다가 깃대봉 정상에서 1박 야영했다.

 

 

 

 

# 저녁 준비하다가 무언가 어깨를 깨물기에 봤더니 진드기였다. 살 속에 머리를 쳐박았는데 어찌나 깊게 파고들었는지 손으로는 뗄 수가 없어서 아미 나이프로 살을 벌려서 빼내야 했다. 진드기는 치명적인 질병을 옮길 수도 있어서 내내 찝찝했다. 뒷날 아침에도 또 다른 한 마리에게 물렸다.

 

 

 

 

# 둘쨋날은 삼계봉, 장고목재, 가지산 등을 넘었는데 9월인데도 늦더위가 어찌나 심하던지 땀을 엄청나게 흘렸다. 체력 소모가 극심한 날이었다. 애초에 목적했던 감나무재까지는 못 가고 피재에서 멈추었다. 사진은 피재 도착 전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탐진호의 모습이다.

 

 

 

 

# 15구간(피재~골치), 2010년 10월 9, 10일. 가을이 익어가는 계절이다. 이제 정맥은 장흥 땅 깊숙히 접어들게 된다. 첫날은 피재를 출발해 병무산, 관한임도, 용두산, 만년리 임도를 지나 감나무재까지 걸었다. 오늘도 출발이 늦어 마지막에 두어 시간은 야간 산행을 해야 했다. 등로에 밤이 많이 떨어져 있어 알밤 줍느라 진행이 더뎠다.

 

 

 

# 보성읍의 어느 모텔에서 하룻밤 보낸 후 뒷날은 제암산 임금바위에 올랐다가 골치까지 걷고 용추계곡으로 탈출하였다. 제암산은 호남의 명산 중 하나로 전라도 땅을 휘감아 오던 호남정맥길에서 드디어 남해바다를 볼 수 있게 되는 곳이다.

 

 

 

# 제암산 임금바위 위에서 사진 한 장 남겼다.

 

 

 

# 드디어 남해바다를 보게 된다. 산길 따라 참 멀리도 내려 왔다. 인간의 발걸음이 무섭다.

 

 

 

# 16구간(골치~오도재), 2010년 10월 16, 17일. 이번 구간에는 보성과 장흥 사이에 산 이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일림산을 만나게 된다. 인간들의 갈등과는 무관하게 일림산은 의연하다. 정상에 서면 철쭉밭과 억새밭, 그리고 득량바다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일림산 정상에 홀로 선 나그네의 그림자가 길다.

 

 

 

# 득량바다의 리아스식 해안.

 

 

 

# 경치 구경하고 밤 줍느라 예상시간보다 늦게 봇재에 도착했다. 봇재의 차밭 전경.

 

 

 

# 봇재에서 오래 휴식한 후 느긋하게 봉우리 몇 개를 넘어 봉화산을 향하다가 봉화산 직전의 안부에서 커다란 멧돼지 두 마리를 바로 눈 앞에서 조우했다. 녀석들과는 오륙 미터 정도의 거리였다. 갑작스런 만남으로 놈들도, 나도 놀랐는데 서로 살 길 찾겠다고 멧돼지는 좌우로 허둥대고 나도 매달릴 나무 찾느라 숲으로 뛰어들어 헤매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나무에 매달렸다. 나무 위에서 보니 멧돼지는 등로 좌측 숲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뒤늦게 화가 난 멧돼지들과 10여 분 넘게 대치하였다. 호각 불고 고함 질러 놈들을 쫓아냈다. 이후 봉화산까지 한달음에 뛰어 올랐는데, 마침 마눌에게서 별일 없냐는 안부전화가 왔다. "별일? 엄청 많았소~ 아이고~~"


그동안 산행 역사 중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나는 평소 무거운 배낭과 커다란 카메라를 소지한 채 산행을 한다. 그 짐을 지고도 급박한 순간이 되니 나무에 오를 수가 있었다. 아찔하였다. 사진은 멧돼지에게 놀란 이후 한달음에 뛰어 오른 봉화산의 정상부이다.

 

 

 

# 봉화산 이후 그럭재까지 두어 시간 야간산행을 하고 용추계곡 주차장에서 야영하였다. 뒷날은 그럭재에서 오도치까지 짧게 구간을 끊었는데, 등로에 알밤이 어찌나 많이 떨어져 있던지 도저히 진행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저 배낭 안에는 알밤이 가득하다.

 

 

 

# 17구간(오도재~빈계치), 2010년 11월 20, 21일. 그동안 2년 정도 혼자 걸어 오던 호남길을 이 구간부터는 낙동 동지인 뚜벅과 함께 동행하기로 하였다.

 

 

 

#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뚜벅과는 낙동길 천리 산길을 함께 걸은 사이라 정이 아주 깊다. 그런 동무와 함께 하니 홀로 걷는 산길과는 또다른 재미가 있다. 주월산 정상에서 막걸리 전을 펼쳤다.

 

 

 

# 이 구간에는 지뢰지대로 유명한 존제산을 지나게 되어 내내 긴장하고 걸어야 했다. 군부대 철수하고 지뢰도 모두 철거하였다지만 알 수가 있나? 오르내림이 많고 구간이 길어 힘든 산길이었다. 노을 질 무렵 존제산에 올랐다.

 

 

 

# 주릿재까지 걸은 후 퇴근하는 군인 차를 얻어 타고 벌교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벌교 명물인 꼬막과 막걸리를 잔뜩 사 들고 기러기재 아래 휴게소 뒷편 소나무 밭에서 야영하였다. 둘이서 꼬막 안주로 밤늦게 까지 마셨다.

 

 

 

# 뒷날은 고사리로 유명한 백이산을 넘어 빈계치까지 걸었다. 사진은 중간에 있는 석거리재로 내려 가는 모습인데, 단풍 든 메타세콰이어 길이 멋지다.

 

 

 

# 18구간(빈계치~두월리고개), 2011년 1월 8, 9일. 호남길 나선지 어언 햇수로 삼 년째에 접어든다. 뚜벅과는 두 번째 호남동행이다. 눈이 많고 날씨도 엄청나게 추웠던 날이다.

 

 

 

# 찬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던 고동산 정상. 계획은 첫날에 조계산을 넘을 작정이었는데, 눈 때문에 지체가 심해 조계산 전 굴목재에서 끊고 두 시간 넘게 임도를 걸어 저동마을로 탈출하였다. 산골마을인 저동마을 주민들의 인심이 아주 좋았다. 승주읍의 허름한 모텔에서 1박 하였다.

 

 

 

# 뒷날 선암사를 출발해서 조계산을 올랐는데, 이 무렵 나의 체력이 엄청나게 떨어져 있을 때라 아주 힘들게 조계산을 올랐다. 낑낑 힘들게 눈길을 걸어 올라 가는 중간에 절벽 위에서 누군가 나를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알고 봤더니 그 날 우리 보다 먼저 조계산을 오른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허걱~ 귀신이었나? 산신령이었나?


접치로 하산해서 오성산을 넘었는데, 체력이 급저하해서 두월리고개까지만 걷고 두모마을로 탈출하였다. 힘든 구간이었다.

 

 

 

# 19구간(두월리고개~송치), 2011년 4월 2일. 지난 겨울 조계산 넘어면서 너무나 고생을 해서 몇 달간 호남길은 개점휴업상태이다가 봄날이 되어서야 다시 그 산길에 들어 설 수 있었다. 유치산, 닭재, 노고치, 바랑산을 넘어 송치까지 걸었다. 원래는 평소처럼 1박 2일로 산행을 할 생각이었는데, 이곳저곳 봄날 유혹하는 곳이 많아 하루만 하고 진주로 날랐다. 사진은 유치산 녹차밭으로 땡땡이 치는 모습이다.

 

 

 

# 찬바람 강했던 바랑산.

 

 

 

# 20구간(송치~미사치), 2011년 5월 8일. 호남길이 그 막바지로 치달을 즈음, 처음 호남정맥 할 때 나보다 한 구간 앞서 진행하던 부부팀 중 전서방 내외는 일찌감치 호남길을 멈추었고, 해리님 내외만 꾸준하였는데, 남아 있는 몇 구간을 함께 진행하기로 의기투합하였다. 그리하여 세 팀 네 명의 호남종주대가 호남길 끝무렵에 결성되어졌다.

 

 

 

# 농암산, 갈매봉, 갓거리봉 등 높은 봉우리들을 연달아 넘고 미사치로 내려서기 전 쉰질바위란 멋진 조망처가 나타난다. 건너편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장쾌하다.

 

 

 

# 21구간(미사치~천왕재), 2011년 9월 24, 25일. 뒤늦게 결성된 우리 호남정맥 종주대는 딱 한 번만 합동 산행을 하고는 다시 모일 줄을 모른다. 그리하여 진작에 끝이 나야 할 호남길이 지지부진 늘어지기만 하는데,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고서야 슬슬 움직여 보자는 연락이 왔다. 호남 졸업하기 힘들구나~ 사진은 도솔봉의 모습이다. 그 뒤로 저 멀리 억불봉이 뾰족하게 보인다.

 

 

 

# 도솔봉은 억새가 좋았다. 뒤쪽의 산이 호남정맥의 종착지인 백운산이고, 그  뒷쪽 뾰족한 산이 억불봉이다.

 

 

 

# 산행 막바지에 따리봉을 올랐다. 데크가 있는 따리봉에 홀로 야영 준비하고 있는 산꾼이 있어 같이 막걸리 한 잔 나눴다.

 

 

 

# 그날 밤은 백학동 정자에서 하룻밤 잘 잤다.

 

 

 

# 둘쨋날, 드디어 호남정맥의 종착지인 백운산정에 올랐다. 산경표에서는 이곳을 호남의 종착으로 표기하였는데, 산꾼들은 정맥이 강이나 바다로 잠겨야 한다고 믿고 있어 외망포구까지 산길을 늘여 놓았다.

 

 

 

# 22구간(천왕재~외망포구), 2012년 3월 3, 4일. 혼자였으면 2011년 초에 이미 호남길을 졸업했으련만 종주대로 팀이 구성되고 서로 일정 조정하다보니 또 한 해가 지나가 버렸다. 햇수로는 사 년째이구나! 해마다 봄철이면 망덕포구에 커다란 벚꿀이 잡힌다는 얘기가 있어 그 굴맛을 보고자 이 봄날까지 졸업을 미룬 탓도 있다. 백학동 정자에서 졸업 축하객을 포함 여러 명이 졸업 전야를 보냈다.

 

 

 

# 외회마을에서 천왕재를 치고 올라 갈미봉과  쫓비산을 넘고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불암산정에서 점심을 먹었다.

 

 

 

# 이 날은 외회마을의 백구가 하루종일 산길을 인도하였다. 이 놈은 우리 일행 중에서도 나만 하루종일 졸졸 따라 다녔다. 짜식~ 사람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 산행 마친 후 이 넘은 우리 차를 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 망덕포구 어느 횟집의 천막을 빌려 하룻밤을 은성하게 보낸 후 뒷날 마지막 남은 호남정맥의 산길을 걸었다. 홀로 시작하였던 호남길이 순천에 이르러 뚜벅과 동무를 이루더니, 광양에 이르러서는 네 명의 종주대로 불어나 드디어 함께 망덕산정에서 졸업을 하게 되었다.

 

 

 

# 2009년 5월에 출발했으니 햇수로는 4년이고 정확하게는 2년 10개월이 걸렸구나!

 

 

 

# 남해바닷물에 손 담궈 대단원의 마침표를 찍는다!

 

 

 

호남정맥은 진안의 모래재에서 홀로 산행으로 출발하였다. 혼자서 2년 넘게 전라도 일대의 산길을 걷다가 순천 땅에 이르러 낙동 동지인 뚜벅과 동행을 이뤘다. 이후 다시 광양에 접어들어 해리님 부부와 세팀 네명의 종주대를 결성하여 망덕포구까지 걸었다.

 

팀이 커진 만큼 일정 조정하기가 어려웠다. 막판에는 집중력이 떨어져 일정이 더욱 늘어졌다. 하지만, 막상 산길에서는 동무들이 있으니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며 산길 얘기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기 좋았고, 시도때도 없이 이어지는 막걸리 파티도 재미가 쏠쏠하였다.

 

역시나 산길은 홀로는 홀로라서 좋고, 둘이는 둘이라서, 여럿이서는 또 그대로 재미가 있는 법이다. 그러기에 호남정맥의 마지막은 여럿이서, 또 축하해주러 온 산동무들과 함께 재미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좋은 산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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