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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낙남정맥종주 요약본 본문

1대간 9정맥/1대간 9정맥 요약본

[1대간 9정맥]낙남정맥종주 요약본

강/사/랑 2012. 12. 20. 15:05
[1대간 9정맥]낙남정맥종주 요약본



출발 : 2011년 10월 15일
종료 : 2012년  7월  29일
거리 : 242.75km

 

  

'낙남정맥(洛南正脈)'은 이 땅 아홉 개의 정맥 중 한반도의 제일 남쪽에 위치한 산줄기다. 남쪽이란 위치적 특징 외에 낙남은 방향에서도 독특하다. 백두대간이나 정맥 대부분이 남북 방향으로 굽이치는데 유독 낙남 만은 옛 가야 땅을 동서(東西)로 가로질러 흘러나간다.

 

지도에서 보면 그 독특한 흐름이 확연하다. 백두산에서 출발한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종점은 지리산(智異山)이다. 원래 이 땅의 산맥은 강이나 바다로 잠기며 그 맥(脈)을 다한다. 그런데 백두대간은 바다가 아닌 지리산에서 흐름을 멈춘다.

물이 아닌 산에서 멈춤이 아쉬웠든지 백두대간은 여흥(餘興)으로 꼬리 하나를 길게 늘였다. 그것이 낙남정맥이다. 때문에 아홉 개의 정맥 중 제일
막내 같은 느낌을 준다.

 

그 흐름을 보면 백두대간이 마무리하는 지리(智異)의 영신봉(靈神峰)에서 남으로 길게 가지를 쳐 삼신봉(三神峰)을 넘고, 극악의 산죽밭을 지나 고운동재에 이른다. 이윽고 사천(泗川) 곤명 땅을 가로질러 태봉산, 실봉산을 솟구친다. 

 

이어 진주(晉州)를 지나 백운산, 봉래산을 일으킨 후 고성군(固城郡)에 이르러 대곡산, 마산(馬山)에서는 무학산으로 솟아오르고, 정병산을 거치며 창원(昌原)을 가로지른다. 그러다 김해(金海) 장유를 지나 대동면의 신어산(神魚山)에서 마감한다.

 

산경표(山經表)에는 "낙남이 '분산(盆山)'에서 그 맥(脈)을 다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분산의 위치는 현재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때문에 뒷사람들은 산맥의 흐름이 이어지는 김해 신어산으로 낙남의 완성을 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산줄기는 강이나 바다로 잠기며 마무리되는 것이 정석이다. 그리하여 물길로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 모아져 신어산 지나 '동신어산(東神魚山)'에서 낙동강으로 잠기는 것으로 낙남정맥은 대단원(大團圓)을 이룬다.

 

도상(圖上) 거리 200여km, 실(實) 거리 300여 km의 산줄기인 낙남정맥은 온전히 경남지방만을 동서로 잇고 있다. 때문에 여러 도(道)에 걸쳐 있는 다른 정맥과는 또 다른 순혈(純血)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 따뜻한 남쪽 지방에 위치해 산림이나 식생(植生)의 모습도 다른 정맥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여러 특징들이 모여 낙남을 다른 산맥과 구별 짓는다.

 

그중에서도 낙남은 그 위치가 백두대간의 끝자락에서 갈래 쳤다는 지형적 특성이 가장 큰 차별성을 가진다. 때문에 1대간 9정맥 종주 산행을 하는 산꾼들은 대부분 수년에 걸친 대장정의 마지막 코스로 낙남정맥을 걷는다. 이른바 1대간 9정맥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강/사/랑도 다른 산꾼처럼 낙남정맥을 1대간 9정맥의 마지막 졸업용으로 마무리할 생각으로 아껴 두었었다. 하지만, 처음 계획대로 마무리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현재 내가 걷고 있는 호남정맥과 금남정맥 때문이다.

 

이 두 정맥은 홀로 정맥이 아니라 팀 종주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팀 종주는 산동무들과 함께 산길 걷는 재미가 있는 반면 일행 모두의 일정 조율에 난점이 있다. 다들 생업에 바쁜 생활인인 까닭이다.

우리 팀도 그러했다. 종주 팀을 꾸린 둘 다 팀원들의 일정 맞추기가 너무 어려웠다. 결국, 두 정맥과는 별도로 혼자 편하게 마음 내킬 때 갈 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다. 그 대안의 산길이 낙남정맥이었다.

 

게다가 현지 사정도 지금 시점에 낙남정맥 종주를 하게끔 유도했다. 낙남정맥은 진주 근처에 이르러 농장을 지나는 곳이 많아 농번기 때는 농장주인들과 마찰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곳이다.

그래서 농민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농사가 없는 겨울 시즌에 그곳을 지나가는 것이 좋을 듯하였다. 
무엇보다 겨울 한 철을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보내 보자는 생각이 가장 강렬하기도 하였고.../font>



낙남정맥/洛南正脈

지리산의 영신봉(靈神峰)에서 김해 분성산(盆城山)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한반도의 산줄기체계는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에서 비롯된 이들 맥은 10대강의 유역을 가름하는 분수산맥을 기본으로 삼고 있어 대부분의 산맥 이름이 강 이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낙남정맥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정맥으로,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이 끝나는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남강의 진주와 남쪽의 하동·사천 사이로 이어져, 동쪽으로 마산·창원 등지의 높이 300∼800m의 높고 낮은 산으로 연결되어 김해의 분성산(360m)에서 끝난다. 서쪽에서는 섬진강 하류와 남강 상류를 가르고, 동쪽에서는 낙동강 남쪽의 분수령산맥이 된다. 연결되는 주요산은 옥녀산(玉女山, 614m)·천금산(千金山)·무량산(無量山, 579m)·여항산(餘航山, 744m)·광로산(匡盧山, 720m)·구룡산(九龍山, 434m)·불모산(佛母山, 802m) 등으로 그 길이는 약 200㎞이다. 이 산줄기는 전라도지방의 호남정맥(湖南正脈) 남쪽 산줄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남해안지방과 내륙지방을 자연스럽게 분계하고 있다. 이 산줄기의 남쪽 해안지방은 연평균기온이 제주도 다음으로 따뜻한 14℃이며, 난온대산림대(暖溫帶山林帶)를 형성하고, 귤나무의 북한계가 된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낙남정맥 개념도.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1구간(영신봉~고운동재), 2011년 10월 15, 16일. 가을이 한창 익어 갈 무렵 낙남길에 나섰다. 낙남은 그 출발지가 지리산이니 내 고향인 진주로 가야 한다. 고속버스 타고 진주로, 다시 새벽 첫차 타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거림에서 짐 꾸려 영신봉을 오르는데, 지리는 시나브로 가을이 한창 익어가고 있었다.

 

 

 

# 세석대피소 지나 낙남의 출발지인 영신봉을 올랐다. 그곳에 간단한 제물을 차리고 천지신명께 무사(無事)한 낙남길을 기원하였다.

 

 

 

# 원래 계획은 묵계치 쯤에서 1박을 할 생각이었는데, 중간에 해찰 부리느라 진행이 늦었다. 또, 외삼신봉 암봉에서 길을 못 찾아 헤맨 후 바위에 매달려 아찔한 순간을 보내는 등 사연이 많아 외삼신봉 지나 암봉 아래에서 야영하였다. 밤새 비가 퍼부었는데, 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불었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숲에 물기 하나 없이 다 말랐더라.

 

 

 

# 2일째는 1대간 9정맥 중 가장 악명 높은 묵계치 구간의 산죽밭을 지나게 된다. 살다 살다 이런 산죽밭은 난생처음이다. 딱 사람 키 높이로 자란 산죽이 등로에 빽빽하게 자라 있어 물살 가르듯 손을 앞으로 뻗은 채 헤쳐나가야 했다. 묵계치 이후의 991봉은 가파른 오르막을 산죽과 싸우면서 올라야 해서 엄청나게 힘이 들었다.

 

 

 

# 산죽과 싸우느라 너무 지쳐서 고운동재에서 멈추기로 했다. 인근 계곡에서 알탕 한번 하고는 말 많고 탈 많았던 고운동호를 구경하였다. 고운호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내 눈에는 심각한 환경파괴의 주범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 2구간(고운동재~돌고지재), 2011년 11월 13일. 정신없이 바쁜 회사일 때문에 한 달 만에 다시 낙남길에 나섰다. 이 구간은 고운동재를 출발해서 길마재, 칠중대고지, 양이터재, 방화고지 등을 지나 돌고지재까지 걸어야 한다. 그중 양이터재는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곳이라 쉼터와 화장실을 갖추고 있었다.

 

 

 

# 낙남길 때문에 고향 진주를 자주 들르게 된다. 고향 떠나온 지 이십 오륙 년 만에 이즈음 가장 자주 고향을 찾게 되었나 보다. 진주의 고속터미널은 이십육 년 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 3구간(돌고지재~원전고개), 2011년 11월 20일.  토욜날,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나 막걸리 한 잔 나눴는데, 뒷날 새벽 그 친구 덕분에 편하게 돌고지재까지 갈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래된 친구인데 서로 사는 게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있다.

 

 

 

# 이 구간은 천왕봉을 기점으로 지리산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되고 산의 높이도 급격하게 낮아지게 된다. 천왕봉은 지리의 상봉과 그 이름이 같은데, 정상에 서면 지리 주능의 천왕봉이 바로 건너다 보이는 것이 이 산 이름이 왜 천왕봉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게 된다.

 

 

 

# 4구간(원전고개~비리재), 2011년 12월 25일. 정맥은 하동 옥종을 지나 사천의 곤명, 나동, 유수로 향하게 된다. 이 구간의 산들은 나지막한 동네 뒷산 분위기이고 내도록 농장들을 만난다. 그러다 나동 공원묘지를 지나 솔티고개를 지나면 진양호반이 내려다 보이는 태봉산에 오르게 된다. 진양호는 내가 소싯적에 낚시하러 뻔질나게 드나들던 호수이다.

 

 

 

# 5구간(비리재~돌장고개),2012년 1월 15일. 이제 해가 바뀌어 2012년이다. 정맥길도 강/사/랑의 고향인 진주를 입구 쪽에서 지나게 된다. 낙남하면서 고향을 연속으로 방문하게 되고 터미널 앞 찜질방은 주인과 안면을 익힌 사이가 되어버렸다. 용의 해를 맞아 진주 입구의 와룡산에서 천지신명께 나름 제를 올리기도 하였는데, 뜻밖에 고향땅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기도 하였다. 사진은 진주분기점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해돋이 공원.

 

 

 

# 6구간(돌장고개~배곡고개), 2012년 1월 29일. 이 구간에서 정맥은 객숙치, 봉대산을 넘으면서 고성군 관내로 들어선다. 양전산, 부련이재, 대곡산을 넘고 날이 어둑해져 갈 무렵 날개를 다친 독수리를 만났다. 덩치가 엄청나게 커서 처음에는 노인이 한 사람 앉아 있는 줄 알았다.

 

 

 

# 덩치가 엄청나게 큰 놈이고 부리가 날카로워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성군청 문화재과에 전화해서 구조를 요청했다. 고성군청 공무원이 자기 관내의 지리를 잘 몰라 한 시간 반 넘게 통화를 해야 했다. 결국, 내가 하산하여 산속에 있는 야베스농장 입구 도에서 기다린 후 담당 공무원 두 사람을 만나 독수리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그리고 어두워지는 산길을 달려 배곡고개에서 산행을 마친 후 택시 타고 진주로 가서 귀경하였다. 도중에 궁금해서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보니 내가 알려준 위치에 갔는데 독수리가 없더란다. 아마도 독수리가 다시 날아갔나 보다고 얘기하는데, 더 이상 추궁할 수가 없어서 수고했노라 치하했다. 

 

그러나 그다음 주에 그곳을 지난 다른 정맥꾼들이 내가 말했던 위치에 죽어 있는 독수리의 주검을 발견했노라고 내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결국, 그 고성군청 담당자가 귀찮아서 산을 올라가지 않았다는 얘기이고 안타깝게 독수리는 홀로 굶어 죽었다는 얘기인 것이다. 본분을 망각한 인간들의 무지함이 한 생명을 덧없이 사라지게 만들었구나... 이 사진이 결국 독수리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다...

 

 

 

# 7구간(배곡고개~배치고개), 2012년 3월 25일. 정맥은 고성의 천황산, 대곡산, 무량산, 백운산 등을 지나게 된다. 지난 구간 산속에서 만났던 독수리가 구조를 받지 못하고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내내 슬픈 마음으로 산길을 걸었다. 지난 구간 대곡산이 건너다 보이는 같은 이름의 대곡산정에서 독수리를 위한 간단한 제(祭)를 올려 독수리의 영혼을 위로했다.

 

 

 

# 대곡산정에 서면 드디어 남해바다를 조망하게 된다. 대곡산이 낙남정맥의 최남단인 탓이다.

 

 

 

# 8구간(배치고개~발산재), 2012년 4월 7일. 겨울 한 철 동안에 마무리 지으려고 생각했던 낙남길이 봄이 깊어가도록 아직 갈길이 멀다.  매봉산, 봉광산, 필두봉, 용암산, 깃대봉을 넘으면서 행정구역도 고성을 지나 마산시 관내로 접어든다.

 

 

 

# 깃대봉에서 돌아본 지난 정맥길. 첩첩한 산그리매에서 오르내림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 이후 진주에서 낙남정맥을 비슷하게 진행하고 있는 해리님 내외와 진주 산꾼 객꾼을 만나 봄밤이 깊도록 술잔을 나누었다. 찜질방에서 자고 뒷날 진주 중앙시장의 유명한 제일식당 해장국을 먹었다.

 

 

 

# 9구간(발산재~한치), 2012년 4월 14일. 정맥길은 본격적으로 마산 관내로 들어가고 마산과 함안에 걸쳐 있는 명산인 여항산을 넘게 된다. 하늘에 맞닿아 있는 미산령을 거쳐 여항산을 오르는데 힘이 무척 많이 들었다. 여항산은 낙남의 여러 산 중에 손꼽을 만한 조망처이다. 아무도 없는 정상에서 천지 기운을 마음껏 받았다.

 

 

 

# 일상에 지쳐 있던 시절이라 산행 도중 엄청나게 졸리고 피곤해서 혼이 났다. 꾸벅꾸벅 졸면서 서북산을 올랐다. 그 때문이었나? 서북산을 내려서 대부산을 오른 후 한치로 가지 않고 엉뚱하게 우틀하여 진북면의 베틀산 쪽으로 가는 엄청난 알바를 하고 말았다.

 

 

 

# 캄캄한 밤길을 두어 시간 넘게 헤맨 후에 겨우 진북면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한 구간 앞서 진행한 해리님 내외가 한치에서 오래 나를 기다렸다. 완전히 탈진해서 택시 불러 한치로 가서 두 분을 픽업해서 진동면으로 갔더니 마침 미더덕축제를 하고 있더라. 같이 막걸리 한 잔 나누고 다시 마산으로 나가서 찜질방에서 잤다.

 

 

 

# 10구간(한치~마재), 2012년 6월 3일. 이제 정맥은 온전히 마산시를 통과해서 마산의 명산인 광려산과 무학산을 넘는다. 접근도 이제는 진주가 아니라 마산으로 바로 가게 된다. 사진은 광려산 일대의 모습이다.

 

 

 

# 대산, 대곡산을 지나 무학산을 오르는데 이른 더위로 무척 힘이 들었다. 무학산은 마산의 진산이라 정상에 서면 항구도시 마산이 모두 발아래 조망된다.

 

 

 

# 마산 앞바다와 돛섬의 모습이 보인다. 80년대 후반 첫 직장을 때려치우고 잠시 이곳저곳 떠돌 때 저 섬 부근에서 하루를 보낸 일이 있다. 참 오래된 옛날 일이다.

 

 

 

# 11구간(마재~신풍고개), 2012년 6월 17일.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의 원칙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된다. 1대간 9정맥이야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 대원칙이기는 하지만 간혹 어쩔 수 없는 환경변화 때문에 부득이 작은 물길을 건너야 할 때도 있다. 이번 구간의 중지고개 지난 곳에 작은 물길을 건너는 곳이 있는데 원칙을 고집하고 가시덤불 속으로 표지기를 매단 선답자 때문에 한 시간 넘게 가시덤불 속에서 헤매어야 했다.

 

 

 

# 그 알바로 인하여 맥이 빠진 데다 날씨까지 엄청나게 더워 땀을 아주 많이 흘리며 걸어야 했다. 힘들게 천주산을 올랐는데 창원시 일대가 발아래 펼쳐진다. 창원은 공업단지 때문에 형성된 계획도시라 도시가 모두 바둑판 모양이다.

 

 

 

# 땀을 엄청나게 흘렸다. 너무나 더워 중간에 아이스께끼를 두 개나 사 먹었다. 힘들게 천주봉에 올랐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 12구간(신풍고개~나밭고개), 2012년 6월 23,24일. 시절은 유월이지만 이 남쪽나라는 이미 폭염의 한여름이다. 막바지의 낙남길 첫날은 신풍고개에서 정병산을 넘고 진례산성과 청라봉, 대암산, 용지봉을 거쳐 냉정고개까지 가게 되는데 행정구역은 이미 김해시에 이르렀다.

 

 

 

# 낙남은 갈수록 산세가 험해지는 것이 꼭 강원도 어느 산줄기를 보는 기분이 든다. 

 

 

 

# 힘들게 오른 용지봉은 그만큼 멋진 조망을 보여준다. 

 

 

 

# 냉정고개에서 버스 타고 김해 장유로 내려갔다. 어느 식당에서 허기를 달래고 막걸리도 한잔 하고 있는데, 나보다 한 구간 앞서 낙남을 졸업한 해리님 내외와 뚜벅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후 그들은 부산 산사람들과 낙남 졸업 파티를 마친 후 김해 사시는 노고지리님 차편으로 함께 김해 장유로 달려왔다. 소라찜 잘한다는 집에서 뒤풀이를 하였다.

 

 

 

# 낙남을 먼저 졸업해버린 이들은 찜질방에서 계속 자고 있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짐 꾸려 다시 정맥길에 들었다. 냉정고개에서 황새봉, 쇠금산 등을 넘고 거대한 공동묘지도 두어 개 지나고 김해시로 가까워지면서 망천고개 거쳐 나밭고개까지 걸었다. 숲 속엔 산딸기가 가득하였다.

 

 

 

# 13구간(나밭고개~매리), 2012년 7월 29일. 겨울 한 철을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보낼 작정으로 시작했던 낙남길이 가을, 겨울, 봄을 거쳐 여름이 완전히 깊어진 후에야 겨우 졸업을 하게 된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 졸업에 나선 날은 그 여름 들어 가장 기온이 높아 전국적으로 폭염경보가 내린 날이다. 

 

특히 저녁에 KTX를 갈아 탄 밀양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하였다. 김해의 찜질방에서 자고 새벽 일찍 나밭고개 천리교당 앞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저 사진을 찍을 무렵 천리교당의 커다란 개와 잠시 대치를 하였다.

 

 

 

# 날이 더워 판단력이 떨어졌던지 가야골프장으로 가야 되는데 엉뚱하게 정맥 우측의 김해천문대로 가는 엄청난 알바를 하고 말았다. 결국 엄청나게 우회해서 은하사 거쳐 신어산을 바로 치고 올라야 했다. 사진 우측의 구름 아래로 내려와서 이곳으로 와야 하는데 뒤쪽의 산줄기 타고 천문대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 신어산은 김해의 진산으로 가야의 수로왕과 허왕옥 왕비의 신화가 어린 산이다. 회사에서 함께 산행 왔다는 두 여성에게 모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해서 정상 사진을 남겼다.

 

 

 

# 정말로 엄청나게 무더운 날이었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나중에 산행 마치고 확인하니 체중이 무려 3.5kg이나 빠졌더라. 신어산 동봉, 생명고개, 감천고개 등을 거쳐 동신어산으로 향하는데 드디어 낙동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며칠 뒤 저 반대편 강변에 있는 자전거도로를 따라 자전거 국토종주를 하였다.

 

 

 

# 낙남정맥 마지막 이름있는 봉우리인 동신어산. 홀로 졸업이라 그냥 정상표지석만 남겼다.

 

 

 

# 날씨가 너무나 더워 물이 모두 떨어져 버렸다. 마지막 봉우리를 넘어 매리로 내려 섰는데 목이 너무나 말라 낙동강으로 내려가는 것은 생략하고 인근 마을로 달려가서 물부터 얻어 먹어야 했다. 목이 마르지 않아도 뙤약볕이 워낙 강해 강으로 내려가지는 못하겠더라. 강변도로 현수막에 적힌 낙동강 글씨로 강물을 대신하였다.

 

 

 

이로써 지리산 영신봉에서 출발한 낙남정맥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동안 하동, 사천, 진주, 고성, 마산, 함안, 창원을 거쳐 이곳 김해에 이르렀는데, 이 낙남길이 고향인 진주를 기점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어 고향 떠난 지 26년 동안 가장 활발하게 고향을 찾게 되었다.

 

덕분에 옛 친구들도 만나고 잊힌 일기장 속에 있던 옛 추억도 더듬을 기회가 많았으니 낙남정맥길은 나에게 있어 또 다른 의미를 가진 산길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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