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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100대 명산]24(태백산/太白山)-맑고 투명한 혹한의 태백! 본문
2005년 2월. 백두대간 종주를 결심하고 그 사실을 백두대간의 산신령께 고한 후 허락을 받기 위해 남녘 백두대간의 주요 산인 태백산, 소백산, 지리산을 차례로 올라 신고를 하기로 했었다. 그리하여 제일 먼저 찾은 산이 바로 '태백산(太白山)'이었다.
태백은 그 높이가 1,567m에 이르는 높디높은 산이지만, 산행 출발지가 1,000m에 가까운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비록 쌩초보 산꾼이랄지라도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다. 그 덕에 첫 번째로 낙점을 받았다. 또 마눌로 하여금 백두대간이 한 번 도전해 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들 목적도 있었고.
게다가 태백은 '크게 밝은 산'이란 이름을 얻을 정도로 신령스러운 곳이라 예로부터 하늘에 제를 올리는 천제단(天祭壇)을 모신 곳이다. 인왕산, 일월산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 무속신앙의 메카로 알려져 지금도 많은 무속인들이 추위,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치성을 올리는 기도처로도 유명하다. 그러니 산신령께 강/사/랑의 백두대간 종주를 허락받기에 최적지라 할 수 있다.
그날의 태백은 쨍하게 맑고 쨍하게 추웠지만, 하얀 눈과 맑고 청량한 공기가 가득해 백두대간 첫 신고를 올리기에 알맞았다. 알려진대로 비교적 쉬운 산행 여건과 멋진 조망으로 초보 산꾼의 자신감을 키우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해가 바뀌어 2006년 1월 1일. 백두대간 종주가 한창 궤도에 오를 무렵, 새해 첫날 첫 산행을 태백산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태백 정상의 천제단에서 천지신명께 한 해의 무사안녕과 멋진 백두대간 마무리를 기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도래기재에서 태백으로 스며들었다.
처음 구룡산을 넘을 때부터 무릎과 종아리를 넘던 눈길이 신선봉을 넘고 깃대배기봉에 이를 즈음엔 허벅지에 이를 만큼 깊어졌다. 아무도 지나지 않은 신설(新雪)을 러셀하면서 진행하자니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급기야는 날까지 저물고 말았다.
조난의 공포에 마음 졸여 하는 마눌을 달래가며 어두운 밤길을 헤쳐 진행하였다. 나중에는 나조차 조난을 심각하게 고민하지만 휴대폰이 불통지역이니 그마저 여의치 않고, 일단 천제단까지만 가면 바로 아래에 망경사가 있으니 조난은 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묵묵히 눈을 헤치며 걸었다.
어찌어찌 부쇠봉을 넘고 하단을 거쳐 얼음같이 미끄러운 비탈을 올라 천제단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조난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엄청난 눈보라와 강풍 때문에 한 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워 더듬더듬 천제단을 올랐다.
하지만 그 칠흙 같은 어둠 속에 혼자서 중얼중얼 기도를 올리고 있는 무속인 때문에 깜짝 놀라 그곳에서 계획했던 제는 포기해야 했다. 대신 광풍 휘몰아치는 천제단 앞에서 천지신명께 간단하게 기도 올리는 걸로 천제를 갈음하였다.
그날 우리는 무려 16시간 20분 동안 눈밭을 헤맨 후에야 화방재에 내려설 수 있었고, 그 날의 모진 산행 경험은 두고두고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아찔한 위험이기도 했지만, 산꾼으로서 단단해지는 담금질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태백은 우리에게 있어 남다른 의미를 가진 산이어서 늘 겨울이 돌아오면 다시 한 번 올라 보고 싶은 산이 되었다. 따라서 1대간 9정맥 종주를 마치고 맞이한 첫 겨울에 당연히 제일 먼저 눈(雪) 산행지로 선택되어지게 된다.
일시 : 2012년 12월 23일. 해의 날.
순이를 떠나보낸 후 휑한 집에 혼자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마눌은 태백에 같이 가자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동의를 하고, 회사 일로 바빠서 정신없는 나를 대신해 산행 짐까지 이것저것 알아서 준비를 한다.
그런데 막상 태백으로 출발하려는 전날. 기상청은 강원도 일대에 한파주의보를 발령하고 당일에 급격한 기온 저하와 강풍을 예보한다.
간만에 겨울 산행을 결심한 마눌의 마음이 마구 흔들리는데, 옛날 16시간 20분 동안 눈길을 헤친 사람이 무슨 이런 한파 정도에 겁을 먹냐고 자부심을 자극한 후 얼른 배낭을 등에 올려 준다.
자, 한번 가보자~ 태백이 얼마나 추운지! 태백산/太白山
경상북도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태백시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567m이다. 설악산·오대산·함백산 등과 함께 태백산맥의 ‘영산’으로 불린다. 최고봉인 장군봉(將軍峰:1,567m))과 문수봉(文殊峰:1,517m)을 중심으로 비교적 산세가 완만해 경관이 빼어나지는 않지만 웅장하고 장중한 맛이 느껴지는 산이다. 산 정상에는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天祭壇:중요민속자료 228)이 있어 매년 개천절에 태백제를 열고 천제를 지낸다. 볼거리로는 산 정상의 고산식물과 주목 군락, 6월 초순에 피는 철쭉이 유명하다. 태백산 일출 역시 장관으로 꼽히며, 망경사(望鏡寺) 입구에 있는 용정(龍井)은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솟는 샘물로서 천제의 제사용 물로 쓰인다. 그 밖에 태백산석장승(강원민속자료 4), 낙동강의 발원지인 함백산 황지(黃池), 한강의 발원지인 대덕산(1,307m) 검룡소(儉龍沼) 등의 주변 명소도 찾아볼 만하다. 태백산 일대는 탄전이 많은 데다가 주변에 철광석·석회석·텅스텐·흑연 등이 풍부하여 지하자원을 개발하는 사업도 활발하다. 1989년 강원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사시사철 등산객과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저곳> (F11 키를 누르면 보시기 편합니다.)
일요일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하고 짐을 챙겼다. 무섭게 떨어진 기온이 겁이 나서 그런가 둘 다 이래저래 미적거리기만 하였다. 일어나기는 다섯시가 못 되어 일어났지만 정작 출발은 일곱시를 넘기고 있다.
24시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 사서 넣고 자동차에 기름도 보충한 후 광명을 떠나 고속도로에 차를 올린다. 요즘들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집중력이 떨어진 탓인지 고속도로에서 갈림길을 두 번이나 지나치는 어처구니 없는 알바를 한 후 제천나들목에서 국도로 갈아 탄다.
네비양의 음성을 듣고 진행하는데 제천, 영월, 민둥산, 고한을 지나 다시 지방도로 갈아 타게 만들더니 눈 덮인 고갯길을 구불구불 밀어 올린다. 예전에 태백에 드나들 때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라고 한다.
여기가 도대체 어딘데 이렇게 구불구불 구절양장의 눈 덮인 고갯길을 올라 가냐? 하고 올라 가니 어머나! 그곳은 바로 만항재이다. 만항재는 백두대간 함백산의 어깨에 위치한 고개이자 우리나라 고갯길 중 자동차로 올라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만항재에는 태백 선수촌에 입촌한 선수들이 훈련하러 나와 있고, 관광버스 몇 대에서 등산객들이 내리고 있다. 함백이나 만항재는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눈 덮여 위험한 고갯길을 구불구불 조심스레 내려 가면 태백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이자 백두대간 주요 고갯길 중 하나인 화방재(어평재)에 도착하게 된다.
잠시 옛추억에 잠겨 2006년 당시의 아찔했던 기억을 반추해보며 고개 주변을 둘러 본 후 아래로 내려가면 태백산 유일사 매표소에 도착하게 된다.
# 한파주의보 때문인지 휴일임에도 등산객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동네는 도립공원이라고 입장료와 주차료를 징수하고 있다. 돈 내고 산을 오른다는 것은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 마눌에게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시키고 가볍게 몸 푼 후 산행을 시작한다. 영하 15라는데 차가운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20도 이하로 떨어진 듯 하다.
# 유일사 매표소 뒤의 낙엽송숲은 7년 세월 동안 키가 두 배는 커진 듯 하다.
# 정말 추운 날이다. 얼굴 버프가 입김 때문에 금세 얼어 붙어 버려 오히려 얼굴이 더 차가워진다.
# 그래도 간만의 눈산행이라 기분은 좋다.
# 전형적인 겨울 산행의 그림을 보여준다.
# 기억에 이곳 주목단지 입구까지는 별로 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오늘은 차가운 날씨때문인지 굉장히 멀게 올라 온 느낌이다.
# 저 주목은 여전히 기상넘치는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다.
# 잠시 더 오르면 유일사 갈림길이 나오는데 예전에는 없던 건물이 생겼고, 그곳에서 어묵을 팔고 있다. 마눌은 배 고프다고 야단이다. 하지만 장군봉 근처에서 먹기로 하고 다시 출발!
# 유일사 삭도는 여전하다. 유일사는 눈에 덮혀 있구나.
유일사 갈림길 부터는 유일사 쪽에서 사면을 넘어 오는 강풍이 등로를 강타하고 있다. 바람에 노출된 오른쪽 얼굴이 차갑게 얼어 붙는데, 요즘 들어 수족냉증이 심해진 마눌은 이곳부터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속장갑이 있는 혹한기용 고어텍스 장갑에 별도로 이너장갑 하나를 더 착용하고 양말은 두개나 신었는데도 손발이 시렵다 못해 아프다고 야단이다. 그래도 별 수 있나? 일단 올라 가서 따뜻한 음식 먹으면 좀 나아질테니 올라 갑시다!
# 예전에는 없던 나무계단이 생겼구나.
# 바람 센 오르막 능선을 올라 서면 주목군락지가 나타난다.
# 7년여 만에 다시 와 본다.
뒤쳐져서 오던 마눌은 삐졌는지 불러도 대답도 없이 그냥 올라 가 버린다. 달래서 바람 적은 구석을 찾아 짐 내리고 점심 준비를 한다. 오늘 점심 매뉴는 떡라면과 김밥, 그리고 막걸리이다.
추워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마눌 때문에 얼른 불 피우고 물을 끓여야 하는데 버너에 불이 붙지 않는다. 내가 주력으로 쓰는 것은 캠프4인데 점화버튼이 얼어 붙어 불꽃이 튀질 않고 눌려진 버튼이 그대로 얼어서 리바운드가 되질 않는다.
예비로 가지고 다니는 캠프3를 꺼내서 점화를 시도하는데 이 넘도 마찬가지로 버튼이 얼어 붙어 있다. 라이터가 있으면 그것으로 불을 붙이겠는데 담배 피지 않으니 라이터도 없고... 고육책으로 버너 점화장치를 입김으로 호호 불어 녹인 후 누르니 딸깍 불꽃이 튀고 버너에 불이 붙는다.
어렵게 물을 끓이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라면을 먹으니 비로소 몸이 좀 풀리고 정신도 돌아 온다. 하지만 막걸리와 김밥은 이미 동태가 되어 있어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라면 조차도 씨에라 컵에 덜어서 먹다가 잠시 주변 정리하다가 다시 먹으려고 보니 국물이 얼어 있다.
도대체 오늘 기온이 몇도인데 먹던 라면국물까지 얼어 붙는단 말인가? 그동안 겨울산행은 물론 동계 야영을 여러차례 했었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또, 이때부터 카메라 배터리가 거의 방전 직전에 이르러 사진을 찍기가 어려워 진다. 내가 쓰고 있는 니콘 카메라는 배터리 성능이 좋아 한번 충전하면 보통 3~4일은 문제없이 사용 가능한 녀석인데, 아침에 완충하여 온 것이 사진 10여 컷도 찍지 못하고 추운 날씨때문에 방전이 되어 버렸다.
이후의 사진은 꼭 필요한 순간에만 카메라를 품에 넣어서 체온으로 데운 후 사진을 찍는데, 그나마도 배터리 부족으로 리뷰가 되지 않아 사진을 찍고 나서도 어떤 구도로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을 할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그냥 감으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다. 어허~ 참으로 대단한 날씨이다~~!!
그래도 뜨거운 국물덕분에 한결 나아진 몸으로 다시 길을 나선다.
# 주목들은 여전하다. 그러나 금세 한기가 찾아 들어 얼른 정상으로 향한다.
# 능선을 올라 서면 함백산에서 중함백을 거쳐 매봉산으로 다시 피재로 이어지는 대간길과 우측으로 통리 거쳐 백병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의 흐름이 눈앞에 펼쳐진다.(아래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을 볼 수 있음)
# 잠시 후 찬바람 휘몰아치는 장군봉에 이른다. 이곳 역시 예전에 없던 정상석이 생겼다.
# 한파주의보 때문에 휴일인데도 정상엔 사람이 별로 없다.
# 덕분에 장군봉 제단을 홀로 독차지하고 남의식하지 않고 기원을 올릴 수 있다. 萬事亨通 萬事如意!
# 문수봉이 건너다 보인다.
# 천제단도!
# 한파가 잡인들을 모두 물리쳐 버렸다. 평소 휴일이면 사람들로 북새통일텐데...
# 청명한 겨울 산하와 하늘.
# 좀전에 지나온 함백산이 건너다 보인다.
# 대간때 이후 몇 년 전 여름에 올랐었지.
# 장군봉 제단을 내려와 천제단으로 향한다.
# 수족냉증 때문에 마눌은 내내 손을 주무르며 걷고 있다. 대책이 필요하구나!
# 2006년 1월 1일. 밤 아홉시경에 오른 이후 7년 만에 천제단에 올라 본다.
# 그날밤처럼 찬바람은 아주 강렬하다. 다만 눈보라만 없구나.
# 부쇠봉.
# 영월 상동면의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데, 지형이 특이하구나!
# 땡겨보니 눈덮힌 옥수수밭인듯 하다.
# 지나온 장군봉도 돌아보고,
# 부쇠봉에서,
#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도 둘러 본다.
# 부쇠봉 사면에는 바람 피해 야영할 곳이 몇 곳 보인다.
# 문수봉 정상 부근에도 야영자리가 있다든데...
# 주목과 푸른 눈의 조화.
# 애초의 계획은 부쇠봉, 문수봉을 거쳐 당골로 하산할 계획이었으나,
# 한파때문에 완전히 질린데다가 하산후에도 당골에서 다시 차를 세워 둔 유일사매표소까지 걸어 가야해서 그냥 유일사매표소로 원점회귀하기로 한다.
# 오늘 태백의 한파에 완전히 질려 버린 마눌.
#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사람이 한파때문에 체면을 다 구긴다.
# 저멀리 아스라히 매봉산 풍차들이 보인다.
# 그 뒤로 두타 청옥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이 보일텐데 지도 꺼내 확인할 정신이 없다.
# 장군봉에 복귀하고,
# 다시 주목군락지를 통과한다.
# 하산하는 마눌 앞으로 함백이 우뚝하다.
# 좌측 정상석과 우측 통신대의 모습이 보인다.
# 매봉산엔 풍차가 더 많이 세워졌구나!
# 찬바람때문에 정신없이 지나쳤던 주목군락을 하산하면서 비로소 둘러 보게 된다.
# 주목군락지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다.
# 주목은 그대로인 듯한데 주변에 잡목이 많이 우거져 있다. 그것이 주목의 생장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 올라갈 때는 거의 울상이었는데 이제 많이 안정이 되었다.
# 작은 산새 한 마리 눈밭에 평화롭다.
# 길고 지루한 내리막을 오래 걸어 하산을 한다. 내려 올때 썰매를 타겠다고 비닐 깔판을 준비해 갔는데, 손 시렵고 배낭에서 꺼내기 귀찮아 그냥 생략해 버렸다.
# 한가한 유일사 매표소 주차장. 화장실에 더운물이 나오고 있어 꽁꽁 언 손을 녹일 수 있다.
단 세 차례 올랐을 뿐이지만, 우리와는 각별한 인연을 가진 겨울 태백산을 칠 년만에 다시 찾았다가 매서운 한파 때문에 준비했던 일정과 나름의 행사를 전혀 시도해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태백의 산하는 맑고 푸르렀고 여전히 쨍하게 추운 날씨와 맑고 투명한 공기가 가득해 세속에 찌든 정신이 찬물 샤워를 한 듯 청량해지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태백은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 깊은 산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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